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75
2부 0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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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들킬 수밖에 없는 문제이긴 하였습니다.”
“맞는 말이다. 수습할 궁리나 해야겠지.”
언젠가 닥치리라고 예상했지만, 오지 않기를 바라던 사건이 터졌다. 뭐냐고? 중국 기술자가 증기기관을 목격해버렸다. 그것도 아주 분명하게.
“어쩌다 감시를 놓쳤느냐?”
“대국인이 갈 것이니 기관을 꺼 두라고 분명히 탄광에 전갈을 보냈는데, 어인 연유에서인지 그만 연락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기관이 돌아가면서 나오는 매연과 소음을 접한 대국인이 저게 무슨 일이냐고, 화재가 난 게 아니냐며 급히 불구경하러 가는 것을 막지 못하여….”
“쯧쯧, 가능한 숨기라 하였거늘!”
이번 사태는 전혀 뜻밖의 요인으로 촉발되었다. 이미 계획했듯 벽돌공장은 평양 인근에다가 짓기로 했고, 벽돌을 굽는 연료는 평양 탄광에서 나오는 석탄을 쓰기로 했다. 헌데 벽돌공장 건설을 돕기로 된 장씨라는 중국인 장인이 탄광에 가보고 싶다고 한 것이다.
벽돌기술자가 왜 탄광을 보고 싶어 했는지는 모르겠다. 연료 품질이 궁금했다면 그냥 견본 좀 갖다 달라고 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아니면 도로상태가 연료 운송에 지장이 없을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탄광에서 벽돌공장까지 레일을 깔고 있었는데.
아, 물론 여기 까는 레일은 목제 레일이다. 목제 레일을 깔고 말이 끄는 화차를 써서 짐을 운반한다. 물론 철제로 깔면 좋겠지만, 그만한 철재를 공급할 능력이 없다. 아놔, 그러고 보니 귀차 같은 거 만들지 말고 차라리 여기다 레일을 까는 데 조금이라도 보탤까?
사실 중국인 기술자를 산업 현장에 투입하면서부터 각오했던 문제다. 지나간 뒤에 한숨을 쉬면 무엇하랴. 에라, 지난 80년 동안 숨겼으면 잘 숨긴 거다. 이제 수습할 생각이나 해야지.
“이왕 들켰으니 할 수 없다. 저들을 죽여서 입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언행을 살펴서 대국에 이를 알리지는 못하게 하여라. 대국 조정이 알게 되면 좋을 일이 없다.”
명나라 조정에서 증기기관을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 한 대 특별히 만들어 보내라고 할까? 아니면 별 관심이 없을까?
명나라는 증기기관 없이도 세계 최강 수준 국력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 인력이 남아도니까 기계화 같은 데는 전통적으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거 생각하면 별 관심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조선에서 신기한 물건을 만들었다니 일단 가져다 진상해 보라고 할 것도 같다.
만력제 성격을 생각하면 ‘아 조선이 뭘 만들든 무슨 상관이야 내버려둬’라고 할 것 같기도 하고, 도리어 ‘조선에서 그런 걸 만들었다고? 어디 한 번 보자’ 할 것 같기도 하니 영 짐작이 안 가는군. 어쨌건 쟤들이 모르게 하는 게 가장 좋다. 아, 좋은 방법이 있네.
“이미 전조 때부터 중국에서 온 이들이 귀화한 사례가 많지 않으냐. 저들에게 하나씩 짝을 지어 주어 여기서 뿌리를 내리게 하라. 그리하면 저들도 조선 사람이 될 터이니 우리 기밀을 대국에 알릴 연유가 없으리라.”
어쩌면 신하들 중에도 이 방안을 생각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제결혼이라니, 이런 방안은 내가 승인하지 않으면 어차피 실행할 수 없다. 그럼 내가 낸 아이디어로 실행케 하는 쪽이 서로 편하지 뭐.
“전하, 저들 중 대국에 두고 온 가족에게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어쩌면 좋겠나이까. 여기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을 억지로 잡아두고 혈육과 떼어놓음은 이 또한 도리를 거스르는 일이 아니겠나이까.”
예조판서 김민도가 나서서 물었다. 뭐, 상식적인 의문이다. 그리고 별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기도 하다.
“우리 땅에 온 대국 장인들에게 조회하여 대국에서 가족을 데려오고 싶어 하는 자들을 찾아 명단을 작성하라. 그리고 다음 동지사 편에 황제께 청하여 ‘장인들이 외로워하니 그 처자식도 동토(東土)로 보내주십사’ 청한다. 그리하면 그들도 굳이 돌아갈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내가 80년 전에 데려온 일본인 포경기술자들처럼 하는 거지 뭐. 전에 한번 알아보니 걔들은 지금도 일본 이름 쓰고 일본말 쓰면서 지들끼리 집단촌 이뤄서 살고 있더라. 꼭 조선인들이랑 어울리기 싫어서라기보다는 기술 보호 때문인 것 같았지만 말이다.
중국인들 중에 향수병이라도 나서 갑자기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자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고향과 먼 외국에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가족이 딸린다면 더욱 어렵다. 특히 조선인 아내라면, 동참하기는커녕 탈출 시도를 고변하는 고발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안 그래도 올해 동지사는 청할 일이 많은데, 한 가지가 더해지는구나. 벌써 8월이니 슬슬 사신으로 보낼 이를 인선해야겠다. 묘당에서는 적절한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하라.”
“예, 전하.”
– 7 –
“그런 것을 원하시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파타타, 메이즈라니….”
“금은보화보다도 중요한 게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하는 그런 작물들이 아니겠는가? 내, 파타타 종묘 한 덩어리에 금 한 덩어리를 내놓을 의사도 있네만.”
8월에 접어들자 세스페데스의 조선말은 나와 자연스레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까지 향상되었다. 사역원 관원들이 최선을 다해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 본인이 열성적으로 노력한 덕이 무척 컸다.
마침내 통역관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면서 좀 더 솔직하게 내가 원하는 바를 드러내는 대화가 가능해졌다. 물론 사관은 아직 붙어있지만, 어차피 나와 세스페데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할 건 마찬가지다.
“분명 옳으신 말씀입니다. 세상이 가진 금은보화를 다 내놓는다 해도 굶주린 사람을 살려낼 수는 없으니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정말 의외입니다. 어느 나라에서건, 힘을 가진 권력자들은 자신의 부를 증진하거나 힘을 키울 수 있는 선물을 원하기 마련이니까요.”
“파타타와 메이즈를 보급하여 내 백성들이 척박한 땅에서도 보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내 왕국이 부유해지는 길이 아니겠는가?”
파타타(patata)는 스페인어로 감자를 뜻한다. 메이즈(maiz)는 옥수수다. 둘 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스페인어 단어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전하.”
세스페데스는 미소를 지으며 내 견해에 동의했다. 하지만 곧 표정을 굳혔다.
“이전부터 여쭙고 싶었습니다만, 전하께서는 도대체 어디서 그러한 지식들을 얻으셨습니까? 아시아에 온 어떤 선교사도 전하께서 알고 계시는 그러한 내용을 담은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일본을 통해 마카오에 조회했더니 놀라워할 뿐이었습니다. 자기들도 모르는 일이라고요.”
“말하지 않았나. 옛 책에서 본 내용이라 잊어버렸다고.”
나는 완벽하게 사실을 말했다. 내가 하는 말 중에 거짓말은 없었다.
“여러 해 전, 상당히 오래 전에 읽은 책일세. 거기서 배웠네.”
“하지만 전하, 여러 해 전에 배웠다고 하시지만 전하께서 알고 계시는 일들 중에는 최근에 유럽에서 있었던 일들도 적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조선 속담을 빌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말도 쓸 줄 알다니, 그대가 조선말이 많이 늘었구나.”
자기 말을 듣고 내가 웃음을 터트렸지만 세스페데스는 웃지 않았다.
“전하, 제게는 심각한 일입니다. 물론 말씀하신 파타타와 메이즈는 구해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야 일본에 들어오는 상선에 부탁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아, 하나만 더. 그 두 가지 말고 다른 것도 좀 부탁하네. 왜 똑같이 남아메리카에서 나고, 파타타처럼 땅에서 키우는데 훨씬 달콤한 맛이 나는 파타타 있잖은가? 그리고 그 매운 맛이 나는 그…아, 칠리! 그리고 타바코하고…아, 그만 됐네.”
빤한 이야기겠지만 칠리(Chile)는 고추다. 타바코(Tabaco)는 담배. 또한 ‘달콤한 파타타’는 당연히 고구마를 가리킨다. 영어로도 ‘달콤한 고구마’ 맞잖아 뭐.
생각 같아서는 호박하고 땅콩도 같이 주문하고 싶은데, 이것들은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영어로는 생각나는데 세스페데스는 당연히 영어를 모를 거고…에라, 이건 나중으로 미루자. 놔둬도 때 되면 들어오겠지.
감자랑 고구마, 옥수수, 고추는 당연히 민간에 풀 거다. 하지만 담배는 아니다. 담배는 오직 내수사에서만 독점재배로 돌린다. 건강에 안 좋은 거 알지만, 수입 좀 짭짤하게 올려 보자. 이 연기 나는 식물이 나름 긍정적인 역할도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인삼이랑 같이 명나라에 내다 팔면 아주 한몫 단단히 올릴 수 있는 효자상품이 될 거다. 담배는 담배대로 팔고 인삼은 인삼대로 ‘담배로 약해진 몸’을 보하는 데 아주 효과가 좋다고 해서 팔면 말 그대로 병 주고 약 주고가 되겠지?
물론 담배장사가 마약장사나 마찬가지라는 건 안다. 하지만 내가 담배를 안 심는다고 해서 동북아시아에 담배가 안 들어올 것도 아니지 않은가? 넉넉잡아 30년이면 한중일 삼국에 전부 담배가 퍼질 텐데 말이다. 어차피 확산될 담배라면, 내가 먼저 벌고 싶을 뿐이다.
“알겠습니다. 일본에 있는 프로이스 신부님께 편지를 보내 전부 준비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허나 저는 의문이 가시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무슨 책을 얼마나 보셨기에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도 알고, 타바코나 파타타처럼 최근에 알려진 농작물도 알고 계십니까?”
“잊어버렸다니까 그러느냐.”
“저는 잊어버리셨다는 그 말씀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도무지….”
세스페데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서양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어야 할 조선국왕이 별의 별 것을 다 알고 있으니까. 물론 모르는 사안들이 더 많지만 내가 알고 있는 부분만 해도 세스페데스가 눈이 휘둥그레지기에는 충분할 터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천주님이 알려주셨다고 생각하게나. 그대에게 가장 납득이 되는 해답이 그것 아닌가? 신의 섭리는 늘 놀라운 법이니까.”
어차피 세스페데스도 자기 상관들에게 보내는 보고서 내용을 내게 안 알려주지 않는가. 그 안에서 내 이야기를 어떻게 적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어차피 어떤 오해를 하고 있든지 간에 나는 정답을 알려줄 수 없지만 말이다.
지금 사관은 내 말을 받아 적느라 얼마나 골이 깨질까. 받아 적는 것도 내용을 이해할 때나 쉽지, 영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으면 힘들다. 지금 적는 기록이 얼마나 실록에 들어갈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군. 편집 과정에서 왕창 잘리겠지, 아마도?
– 8 –
세스페데스는 나하고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다른 신하들과도 수시로 토론을 하고 있다. 유학 지식으로는 아무래도 우리 신하들한테 밀리지만, 그도 나름 서양 철학과 신학의 정수를 습득한 인재다 보니 꽤 팽팽하게 논전이 이어지곤 했다.
“전하, 저 남만승을 언제쯤 돌려보내실 생각이시옵니까?”
이조판서 이형종이었다. 계속 거절하는데도 ‘일전에 약속한 대로’ 자기 집에 찾아와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겠다고 집요하게 달라붙는 세스페데스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고 한다. 조회에서 내게 정면으로 항의할 정도면 어지간히 빡친 모양이다. 짐짓 떠 보았다.
“저들의 가르침이 혹세무민하는 것도 아니니 계속 머무르게 해도 되리라 생각하고 있노라.”
“혹세무민이 아니라니요! 전하, 신이 남만승과 수차에 걸쳐 토의해본 바, 저들은 불승들이나 마찬가지로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는 자들이옵니다. 불승들이나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은 뒤에 극락과 지옥에 간다 하며 겁을 주고, 이를 통해 재물을 얻어냄이 불교와 같습니다.”
집에 못 들어오게 했다더니 얘기는 꽤나 많이 한 모양이네? 밖에서 만나 이야기한 건가?
“또한 저들은 건강한 남녀가 일은 하지 않고 승려가 되어 염불만 왼다는 점에서도 불승들과 같습니다. 남만승이 스스로 인정하기를, 전교가 험한 일이라 사내들만 와 있지만 본향에서는 숱한 여자들이 비구니가 되어 사원에 스스로를 가둔다 합니다. 이 어찌 바람직하겠습니까?”
수녀원이 어째 좀 이상한 형태로 전달된 것 같군. 하지만 사대부들이 불교를 싫어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그 남녀 승려가 결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라가 잘 되려면 인구가 늘어야 하는데 혼인도 출산도 안 하는 건 막되어먹은 종자들이라는 거지.
천주교라는 낯선 종교에서 불교랑 비슷한 구석이 눈에 띄면 띌수록 점수가 까이는 건 어쩔 수 없을 게다. 성직자의 출가, 헌금, 사후세계, 종말론 이런 게 다 거슬리겠지.
“뿐만 아니라 저들은 유럽에 있는 교황이라는 자를 받드는데, 모든 천주교 신자들은 교황이 내리는 명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곧 전하를 배반하고 다른 군주를 따른다 함이니, 어찌 역적들이 아니겠습니까? 마땅히 금지해야 합니다!”
대전 안이 웅성거렸다. 이 문제는 확실히 신하들에게 충격을 줄만했다. 엄연한 조선 백성이 다른 군주를 따르다니, 말이 되는가 말이다. 음, 세스페데스가 지금 여기 없으니 반론을 할 수 없는데 혹시 그걸 노리고 지금 터트리는 건 아닐 테지.
“이대로 저들이 세를 확대한다면, 교황이라는 자의 명을 받아 역모를 꾸밀지도 모르옵니다.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자면, 아예 전교를 금지하고 남만승을 추방해야 하옵니다.”
이형종은 아무래도 천주교에 대한 반감을 단단히 품은 모양이다. 세스페데스의 선교 시도가 역풍을 불렀다고밖에는 볼 수 없겠는데.
반감을 품은 사람이 이형종 하나라면 괜찮다. 문제는 이형종이 세스페데스를 비난하면서 그 주장을 들은 다른 이들도 반기독교 입장에 선다는 거다. 미리 물을 좀 뿌려야겠다.
“그대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노라. 저들이 교황에게 속해 있음은 사실이나, 교황이란 어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가 아니다. 불교에서 쓰는 말로 하자면 조사(祖師)와 같으니, 오직 교단 내에서 지배권을 가지는 일개인일 뿐이다.”
차마 가톨릭 군주인 프랑스 왕이나 독일 황제가 로마를 약탈하고 교황을 잡아갔던 전례가 있다고는 말해주지 못하겠군. 그럼 또 그런 막장 종교 따위 허용할 필요가 없다고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