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80
2부 058화
– 15 –
김지가 만드는 신무기가 늘 중후장대한 돈 먹는 하마들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내가 생각도 못 하고 있던 간단하면서 돈이 크게는 안 드는 장비를 하나 만들어냈다.
“보시옵소서. 조총에 맞아도 뚫리지 않는 갑옷이옵니다.”
철갑이나 가죽갑옷은 아무리 두꺼워 봐야 총에 맞으면 뚫린다. 총알에 뚫리지 않을 정도로 두껍게 만들면 너무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다. 서양 기사들이 전장에서 더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총이었다.
조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임진왜란 때 숱한 장수들이 분명히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도 왜군이 쏘는 조총에 맞아 죽었다. 이순신, 정발,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이들이 말이다.
“철퇴로 송판을 후려치면 깨지고 철판은 우그러지지만, 삼베는 바로 원래대로 펴지옵니다. 그러니 질긴 삼베를 여려 겹 겹치면 총탄도 막아낼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어? 이거 어디선가 들은 이론 같은데?
“자, 포수가 저 허수아비를 쏘겠사옵니다.”
익숙한 얼굴을 한 군기시 장인이 강선조총을 겨누었다. 총구가 향한 방향에는 사람 형태를 한 허수아비 하나가 우뚝 서 있고, 그 몸에는 삼베로 된 갑옷이 입혀져 있었다. 어라라 하는 참에 조총이 불을 뿜고, 갑옷에 탄환이 박혔다. 포수가 천천히 두 발을 더 쏘았다.
“걷어오너라!”
김지가 기세 좋게 호령하자 관노 두 사람이 허겁지겁 허수아비를 향해 뛰어갔다. 두 사람이 허수아비를 들고 돌아오자 김지가 탄흔 세 개가 새겨진 갑옷을 직접 벗겨서는 의기양양하게 내 앞에 펼쳐 보였다. 탄환 세 발 중에 하나도 갑옷을 뚫지 못했음이 확실했다.
“보소서, 전하. 삼베 13겹을 겹쳐 만들었더니 강선조총 탄환도 뚫지 못하나이다. 바다 건너 왜적들도 지금 수십만 정이나 되는 조총을 가졌다 하니, 우리 군사들에게도 이와 같이 총탄이 뚫지 못하는 갑옷을 주어야 하지 않겠나이까.”
“음, 그대가 하는 말이 옳기는 하다.”
으윽, 면제배갑! 흥선대원군 때 만들었던 이 방탄복이 벌써 나오다니. 김지가 시대를 앞서는 천재인 건가, 발상의 전환이라 실은 생각만 하면 만들 수 있는 병기였던 건가.
일단은 칭찬을 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이 면제배갑에는 세 가지 단점이 있었다. 방어력이 뛰어난 만큼 무겁고, 입고 있으면 미치도록 덥다는 거다. 그리고 불이 붙으면 벗기 전에 타죽는다. 더구나 철갑의 대체라면 지갑(紙甲)이 이미 있지 않은가?
“헌데, 철갑보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갑옷으로 지갑이 이미 있지 않으냐? 무종께서 널리 갖추게 하셨던 뒤로 각 군영에 충분히 보급하지 않았느냐.”
“그간 전선조차 제대로 건조하지 못했는데 갑옷이 어찌 유지되었겠나이까. 각 군영이 갖춘 지갑은 거개가 낡고 헐어서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입니다. 설사 원형을 유지한 물건이 있다 해도 문제가 있는 것이, 지갑은 칼과 화살은 잘 막지만 총탄은 막지 못합니다.”
“그런가?”
깜짝 놀랐다. 내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김지가 고개를 돌리더니 명령을 내렸다.
“지갑 한 벌을 대령하고, 허수아비를 다시 세워라!”
곧바로 방금 전에 한 것과 같은 실험이 이어졌다. 총알구멍 세 개가 선명하게 뚫린 지갑과 일거에 관통된 허수아비를 보니, 확실히 김지의 말이 옳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하께서 박문국을 세워 책과 방문을 대대적으로 찍어내실 예정이시라 들었습니다. 종이는 가뜩이나 귀물(貴物)이건만, 책을 많이 만드신다 하면 어찌 갑옷을 만들 종이가 남아서 쓰겠습니까? 하지만 삼은 밭에서 얼마든지 자라니, 이 갑옷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하아, 분명 삼은 밭에서 자라긴 하지. 한지 만드는 닥나무보다는 흔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갑옷은 삼베 한두 겹으로 만드는 게 아니잖은가! 종이 값보다 삼베 값이 훨씬 비싸게 들겠다! 그리고 이 갑옷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은?
“허나 그대가 직접 입어보면 알겠지만, 저 면제배갑은 상당히 무거울 것이다. 저런 무거운 옷을 입고 군사들이 어찌 날래게 움직이겠으며, 마치 누벼서 만든 솜옷과 같으니 더위는 어찌 참겠으며, 불이 붙으면 그대로 타오를 터인데 그 점은 어찌 하겠는가?”
삼국지에 보면 가볍고 튼튼하면서 물에 뜨기까지 하는 궁극의 갑옷이 나온다. 바로 올돌골 휘하 군사들이 입은 등나무 갑옷이다. 하지만 등나무를 기름에 절여 만든 탓에 불에 약했고, 제갈공명이 가한 화공으로 싹 타버렸다. 면제배갑도 신미양요 때 실전에서 같은 꼴을 겪었다.
“전하께서는 역시 총명하십니다. 어찌 한 번 보기만 하고 이 새 갑옷이 가진 문제점을 그리 바로 파악하십니까? 신은 실로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니 할아버지, 아니 아저씨, 괜히 굽실거리지 마요, 대하기 거북하니까. 그래도 이 양반이 이렇게 웃으면서 나한테 아부하는 걸 보면, 전차프로젝트 축소 건으로 생겼던 유감은 사라진 모양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바의 문제점은 신이 군기시 장인들과 토의하던 중 이미 나왔사옵니다. 때문에 해결책도 이미 마련해 두었습니다.”
“어이 해결할 생각인가?”
“신은 온몸을 지키기 위해서 이 갑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옵니다. 방금 전하께서도 배갑(背甲)이라 하셨습니다만, 총탄으로부터 몸을 지키려면 총으로 쏘기 쉬운 몸통과 머리만 보호하면 됩니다. 팔다리에는 걸치지 않아도 됩니다.”
하긴 현대식 방탄복도 몸통만 보호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팔다리까지 전부 지키려면 무겁고 거북해지는 건 어느 시대건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팔다리 보호에 쓸 장갑재 중량으로 몸통을 더 보호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투구, 배갑만 착용하면 무게는 8근(4.8kg) 정도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두정갑이 40근 이상 나가는 데 비하면 월등히 가벼우니, 그 정도면 충분히 총과 창을 들고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또한 팔다리는 드러내니, 더위도 크게 두렵지 않습니다.”
어째 이야기가 다르네. 내가 기억하기로는 대원군 때 군사들에게 면제배갑을 입히고 훈련을 시켰더니 무게와 더위 때문에 군사들이 코피를 흘리고, 줄줄이 나가떨어졌다고 들었는데? 그 갑옷은 혹시 팔다리까지 덮는 전신갑옷 형태라 더 힘들었던 건가?
“불이 붙는 문제는, 가죽으로 만든 덧옷을 한 벌 껴입으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옵니다. 불티만 옮겨 붙지 않으면 되니 비싸고 튼튼하게 만들 필요도 없사옵니다.”
으음, 생각보다는 그럴듯한데? 가죽은 확실히 불이 잘 붙지 않는 재료다. 물에 적신 가죽을 덮어쓰면 불길 속에 뛰어들어도 잠시간은 무사할 수 있을 정도이니, 보통 가죽옷이라고 해도 전장에서 튀는 불티 정도는 막을 수 있다. 불화살이 박히더라도 바로 뽑으면 괜찮을 거다.
연산군 때는 총을 가진 적이 없으니 방탄 따위 신경 쓸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신경을 쓸 때가 되긴 했다. 그리고 면제배갑 가격이 지갑보다는 비쌀지 몰라도 두정갑이나 어린갑보다는 확실히 싸게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가죽옷을 더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동북아시아에서도 앞으로 전장의 주역은 확실히 총이 될 거다. 전통갑옷보다는 이런 형태의 덜 복잡한 갑옷이 훨씬 실용적이 되지 싶다. 유럽에서도 그랬으니까. 허락하기로 하자.
“확실히 추후로 벌일 싸움에서는 칼이나 화살보다는 탄환을 잘 막는 갑옷이 필요하다. 그대 착안이 좋다고 보아 일단 윤허하겠으니, 한번 만들어보라.”
“감사하옵니다, 전하! 열과 성을 다해 만들겠사옵니다!”
김지가 얼굴에 한껏 기뻐하는 함박웃음을 떠올렸다. 아유, 우리 땜장이 장군 신나셨네, 신이 나셨어. 그래, 다음 신무기도 실용적인 걸로 계속 부탁합니다! 저번 귀차 같은 거 말고!
– 16 –
“서원이 너무 많다. 멋대로 세우다 보니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세금도 내지 않는 토지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지 않느냐!”
올해는 가뭄 때문에 세수가 다소 줄었다. 모아둔 물 덕분에 농사에 큰 지장은 없고, 기근이 닥칠 정도까지는 아니라지만 풍년이 든 것은 아니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입이 줄었다고 해도 나라 살림이 쪼들릴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돈 쓸 곳이 사방에 널려 있다 보니 아무래도 초조해졌다. 어떻게든 새 세원을 발굴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전국에 서원이 백 개가 넘는다. 고을마다 이미 향교가 있어서 학생을 모아 가르치고 있고 선현 제사도 맡고 있건만, 굳이 이렇게 서원이 많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내가 연산군으로 좀 오래 살았으면 서원 따위 세우도록 허락도 안 했을지도 모른다. 후대에 문화재 취급을 받기야 한다만, 서원이 꼭 만들어야 할 만큼 필요한 시설인지는 의문이다.
“서원은 선비들이 모여 마음껏 학문을 닦으며 선현을 기리는 장소입니다. 나라에서 권해야 하는 일을 스스로 하고 있으니 칭찬을 해도 모자랄 일인데 어찌 역정을 내십니까.”
역시 대간들의 우두머리답구나. 대사헌 김철신은 서원을 세우는 선비들을 두둔하고 나섰다. 논거야 뭐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바, 그대로였다.
“향교에서 일하는 교수와 훈도는 대개 학문 수준이 그리 높지 못합니다. 향교에서 가르치는 바가 높지 못하니, 선비들이 더 좋은 스승에게 배우고 싶어 함이 어찌 잘못이겠습니까? 또한, 선현을 모심도 스스로 존숭하는 이를 직접 골라 모시니 어찌 뜻이 깊지 않다 하겠습니까.”
“그대가 하는 말이 틀리진 않다. 허나 그 혜택이 과도하다. 스스로 학문을 닦음이 기특하다 하면 말로써 칭찬하면 그만이지, 어찌하여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고 세금까지 면제해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냐?”
이쪽 세상에서도 최초의 서원은 1542년에 설립되었다. 황이가 즉위한지 37년째 되던 해다. 세운 이는 풍기군수 주세붕, 백운동서원이었다. 이 부분이 우리 세계랑 똑같은데, 이런 것까지 바뀌기엔 내가 초래한 변화가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황이는 이 서원에 이라고 직접 쓴 현판을 내려주기까지 했다. 이것까지 똑같은 건 참 뭐라고 할 말이….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것보다는 지금 서원들이 누리는 혜택이다. 황이는 서원에 이름 뿐 아니라 토지와 노비까지 주었고, 보유한 토지에 매기는 세금까지 면제해 주었다. 그런 서원이 이제 전국에 백 개가 넘게 있는 것이다.
“선비가 학문을 닦으려면 당연히 기반이 필요합니다. 서원은 그 기반을 닦는 장소이니만큼 살림을 유지하기 위해서 토지가 필요하고, 그 토지를 경작하려면 노비가 필요함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대사헌은 학문을 닦는 장소로서 서원을 이야기했지만, 내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영상은 공부하는 선비들이 아니었다. 당파싸움에 열을 올리는 소인배들, 그리고 패거리를 지어 절을 습격하는 폭도들이었다.
“서원을 세워 학문을 닦고, 성현 중 받들고 싶은 이를 골라 제사를 모시는 거야 사대부로서 할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서원 살림을 유지하기 위해서 토지와 노비를 증여받아 가지고 있는 행위도 인정할 수 있다. 허나 서원이라 하여 세금을 면제받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토지를 가진 사람이 누구건, 세금만 법에 정해진 대로 잘 낸다면 눈감아줄 수 있다. 하지만 서원들은 문전옥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좁쌀 한 톨 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나라에서 내린 토지야 그렇다 치고, 사적으로 기부를 받은 토지에 붙어야 할 세금까지 말이다!
면세를 남발하는 것도 재정에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다. 나도 지금이 임진왜란을 코앞에 둔 시기만 아니라면 양반들을 다독일 겸 서원에 손을 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도 없이 돈이 들어갈 전쟁준비를 앞에 두고 이런 블랙홀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하, 서원 뿐 아니라 향교도 역시 토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허나 그에 대해 따로 조세를 납부하지 않는데, 어찌 서원이 가진 토지에만 세금을 매기려 하십니까? 둘 다 학문을 닦도록 장려하는 장소임은 마찬가지인데, 이리 차별하심이 어찌 온당한 조처라 하겠습니까?”
그래, 너 말 잘했다. 향교랑 서원을 비교해? 그럼 똑같이 대우하라고 해주면 되겠지?
“대사헌은 각 향교가 가지고 있는 토지가 얼마쯤 되는지 아는가?”
“5결에서 7결쯤 된다고 알고 있사옵니다.”
“그럼 각 서원이 보유한 토지에도 7결까지 조세를 면해 주고, 7결을 넘어가는 토지는 일반 사전(私田)과 똑같이 조세를 징수하면 되겠구나. 그러면 향교와 똑같이 대우하는 게 아니냐?”
대부분의 신하들은 지난 2년 동안 내게 익숙해졌다. 경성군이 아닌 내게, 내가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게 타협의 제안이 아니라 최후통첩이라는 걸 알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김철신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굽히려고 하지 않았다.
“전하, 향교는 정원이 정해져 있으므로 그만한 토지로도 살림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허나 서원은 인원이 정해져 있지 않고, 어떤 스승을 모시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학사를 채우므로 겨우 7결로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부디 면세에 한계를 두지 마소서.”
“형편이 넉넉지 않다면 학생을 적게 받는 게 마땅하지 않으냐? 아니면 부호들에게 후원을 받거나, 준비가 넉넉하게 갖춰질 때까지 서원 문을 열지 말도록 하라. 준비도 없이 서원부터 세워놓고 나라에서 땅과 노비를 내려주기만 기다리는 자들도 있으니, 이게 무슨 법도인가?”
서원의 폐해는 교과서에 나온 내용만 가지고도 한 페이지를 채운다. 조세 회피를 위한 재산 은닉 수단, 지역 양반층이 집결하는 특권 유지 장소, 당쟁의 근거지 등등. 차마 강제로 폐쇄해 버릴 수는 없지만, 제약을 가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스스로 모여서 공부를 하면서 성현도 받들겠다면 이는 분명 장한 일이다. 허나 사대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해서 조세를 면제해 달라니, 이게 무슨 욕심인가? 더구나 나라에 가뭄이 들고 왜구와 북적으로 군비가 늘어 재정이 어렵다. 그대의 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
올해 조세까지는 봐주지. 하지만 내년부터는 모든 서원에서 면세 토지는 7결로 한정한다. 그 이상은 무조건 조세를 내야 한다. 반항하는 서원은 때려 부숴 버릴 테다.
내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음에도 김철신은 계속 이의를 제기했다. 다른 신하들 중에서 그쪽 의견에 대놓고 동조하는 사람이 나오기 전에 쐐기를 박아야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졌다.
“대사헌 김철신을 파직하라! 임금이 여러 면을 감안해 결정을 내렸음에도 이를 따르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주장만 고집하니, 이는 임금을 능멸하는 행위이다. 당장 하옥하여 국문하라!”
김철신은 바로 끌려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 혼자 속으로 툴툴거렸다. 제기랄, 나도 이런 거 싫다고! 착한 사람 자꾸 나쁘게 만들지 말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