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86
2부 064화
– 1 –
“조선 놈들아, 내가 돌아왔다!”
불타는 조선인 마을이 발밑에 펼쳐져 있었다. 니탕개가 그 불길을 보며 미친 듯이 웃었다.
“네놈들이 내게 한 대로, 그대로 베풀었다! 네놈들이 좋아하는 문자대로, 인과응보다!”
니탕개의 뒤에 늘어서 있던 측근들은 매서운 눈으로 그 불길을 노려보았다. 분노와 원한이 눈동자 속에 가득 들어 있었다.
“선봉은 그대가 맡으시오.”
니탕개가 기대했던,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대가 이끌고 있는 군사 1천이면 충분히 방어선이 허술한 곳을 골라서 부수고 들어갈 수 있소. 그대가 돌입하면 다른 족장들도 일제히 그 뒤를 따라 쳐들어갈 테니, 그대 혼자 적중에 고립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소.”
1년이 넘게 기다리던 때가 왔다. 고대하던 복수의 순간이 왔는데 적중에 고립될까봐 걱정할 까닭이 없었다. 주변이 다 적이라 함은, 사방에 쳐 죽일 놈들이 널려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걱정해 주시지 않아도 되오! 내가 놈들을 너무 많이 쏘아죽여 버려, 그대들 몫을 남겨두지 못하게 될까봐 유감이오.”
해서부 추장들은 웃었다. 니탕개의 호언장담이 듣기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면 뭐 어떻소. 우리야 그대를 돕는 것으로 만족하오. 우리가 원하는 건 조선군을 많이 죽이는 게 아니니까. 그대도 알리라 믿소만.”
해서부 추장들이 껄껄대며 웃었다. 니탕개도 마주 웃었다. 그 시커먼 속들은 익히 알았지만, 굳이 대들어 싸울 필요는 없었다. 복수할 힘과 기회가 생길 때까지 신세만 지면 그만이었다.
“그럼, 잘 가시오.”
“고맙소. 은혜는 다음에 갚으리다.”
그 은혜는 지금 신나게 갚고 있는 중이다. 해서부에서 니탕개에게 원하는 바는 실컷 날뛰어 조선군의 이목을 끌라는 것이었고, 니탕개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신나게 날뛰는 중이다. 불길과 피에 취한 니탕개의 부하들은 그칠 줄을 몰랐다.
“추장, 이만 그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측근 부하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꺼냈다. 하지만 니탕개는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벽력같이 소리쳤다.
“이건 우리 모두의 원한이다! 이대로 내버려 둬!”
지금 니탕개가 거느린 부하들은 모두 지난번 반란 때 조선군 토벌대에게 집과 가족을 잃은 자들이었다. 니탕개가 직접 거느렸던 이들 말고도, 이 부락 저 부락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친 생존자들이 해서부에 있는 니탕개를 찾아 모여들었다. 그 수가 천여 명에 달해 있었다.
“조선 놈들은 우리 집을 태우고 가족을 죽였다. 그러니 그 분풀이라도 실컷 하게 놔둬!”
‘호랑이 병마사’ 신립은 수백이나 되는 마을과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통째로 불태웠다.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니탕개 역시 그 참극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러니 그 분노를 잊을 수 있을 때까지 조선 놈들을 죽이고, 그 집을 불태우고, 여자를 취할 것이다.
“추장,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 마을을 습격할 때 봉화가 올라갔습니다. 분명히 그 신호를 보고 조선군이 달려올 겁니다. 그대로 목을 내놓을 게 아니라면, 여기는 적당히 끝을 내고 또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복수를 끝내시렵니까?”
부하의 간곡한 말에 니탕개가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어서 움직여서 조선 놈 하나라도 더 죽여야지! 겨우 부락 하나 휩쓸어놓고 죽을 수는 없다.
“저놈들은 버려두고 간다.”
고개를 돌린 니탕개가 봉수대를 증오스러운 눈길로 노려보았다. 봉수대에서는 지금도 연기 다섯 줄기가 힘차게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봉수대는 토벽으로 둘러싸였고 둘레에는 빙 둘러 해자가 파여 있었다. 니탕개는 처음 강을 건너자마자 봉수대부터 덮쳤지만 보루가 워낙 단단해서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게다가 성벽에 오른 조선군이 총과 활을 빗발같이 쏘아댔다. 니탕개는 여기서 1백에 달하는 병력을 잃었다.
무모한 공격으로 큰 손실을 입고서야 니탕개는 봉수대 공략을 포기하고 마을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쪽에서는 전혀 손해를 입지 않았다. 진즉에 봉수대 따위 버릴 것을 그랬다.
“하지만, 밖으로 나와서 우리 군사들을 공격하지 못하는 걸 보면 놈들도 피해를 크게 낸 게 분명합니다. 지금 한 번 더 공격하면 함락시킬 수 있을 듯합니다만….”
다른 부하가 못내 아쉬운 듯 말고삐를 몰아쥐며 봉수대 쪽을 보았다. 확실히 적군은 봉수대 뒤에 펼쳐져 있는 마을이 공격당하는데도 구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필시 충분한 병력이 없을 것이다.
“아니, 이대로 동쪽으로 간다.”
니탕개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생각이 달랐다.
“저놈들이 우리보다 훨씬 수가 적다고 해도 저건 성이다. 작기는 해도 성이란 말이다! 성벽 뒤에 아직 놈들의 포수와 궁수가 숨어있으니 이대로 두고 간다.”
경원성, 회령성을 공격하다가 피해만 입고 좌절했던 악몽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번엔 작은 봉수대라 좀 가볍게 보고 공격했는데, 또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는 조선군이 지키는 성이라면, 그게 얼마나 작건 다시는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저놈들을 두고 가면 우리 숫자나 가는 방향을 사방에 알릴 겁니다. 그러면 부여주 전체에서 적이 우리를 잡으러 올 텐데요….”
보루를 공격하자고 하던 부하가 못내 아쉬운 듯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 말에 아무 말도 없이 칼을 뽑은 니탕개가 곧바로 겁먹은 듯 보이는 부하의 목을 찔렀다. 칼에 찔린 그 부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말에서 굴러 떨어지자 주변에 있던 다른 부하들이 술렁였다.
니탕개는 심상찮은 주변 공기를 눈치챘다. 그리고 소리쳐 어수선해지는 분위기를 제압했다.
“이따위 겁쟁이가 내 측근이었다니! 모두 들어라! 우리가 이대로 떠나면, 저기에 틀어박혔던 놈들은 주변에 우리 소식을 알리겠지. 우리가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지 말이다! 그리고 놈들이 우리를 쫓으려고 군사를 동원할 때 해서부 대군이 놈들을 후려칠 거다!”
해서부가 뒤따라 올 거라는 사실은 니탕개의 부하들도 알았다. 목소리가 미치는 범위 안에 있던 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여주에 있는 조선군은 죄다 북평 일대, 목단강 연변에 몰려 있다! 놈들이 해서부를 막는 사이 우리는 마음껏 부여주를 휩쓸 수 있다. 우리 고향, 가족들이 묻힌 땅에 갈 수 있다!”
그동안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들이 살았던 두만강 연변 땅에도 조선인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모조리 죽여 버리고 되찾아야 했다. 그 이후에 할 일?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 가자! 동쪽으로! 무거운 건 두고 가라!”
이 일대에 있는 조선인 마을 위치는 확실하게 조사했다. 그것만 알고 있으면 양식도 가져갈 필요가 없다. 더구나 ‘호랑이 병마사’ 신립도 이제 여기 없으니 마음껏 휩쓸고 다닐 수 있다. 니탕개는 뒤꿈치로 말 옆구리를 걷어차며 속도를 냈다.
– 2 –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나도 모르게 신음이 튀어나왔다. 처음에 봉화를 통해 전해진 소식으로 궁궐이 발칵 뒤집힌 뒤, 사흘 만에 부여주 관찰사 정만기가 보낸 장계가 도착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적은 기병과 보병을 합쳐 총 2만에 달한다고 했다.
“해서부는 내분이 치열하여 침입이 없을 거라 하지 않았느냐! 이게 무슨 꼴이냐!”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해서부 야인들은 올 겨울에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며, 오더라도 ‘작은 무리가 노략질하는 게 고작일 것’이라고 소리 높여 확언하던 병조판서 박홍선은 얼굴이 시뻘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병조판서 박홍선을 당장 파직하노라! 그 자리는 강무관 동지사 김명원으로 하여금 맡아서 수행하게 하겠으니, 당장 북변으로 보낼 군사를 준비하라!”
박홍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수그렸다. 다른 신하들도 차마 박홍선을 두둔하고 나서지 못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박홍선이 한 호언장담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은 보기 2만이라 하였다. 지금 강동 땅에 있는 군사는 얼마인가?”
“봉수대 방비를 맡았던 왜인여진 2천 외에는 북평에 집결한 함경도 기병 2만과 보병 5천이 전부이옵니다. 지금 북평 일대부터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밖에 없다고? 더 있지 않았던가?”
“연해주에도 군사가 필요하다 하여 일부 병력을 연해주 관찰사 예하로 옮기셨사옵니다.”
“아, 아, 그랬었지. 내가 정신이 혼미하여 잠시 잊었다.”
연해주 분리는 지난 9월에 시작했다. 초대 관찰사는 유경석, 지방 행정 경험이 풍부한 서얼 출신 관료다. 관찰사는 처음이지만 함경도, 부여주 등에서 경험을 쌓은 관공리들을 다수 딸려 보냈기에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휘하에는 함경도 군사 5천을 배속했다.
“즉시 연해주에 영을 내려 거느린 군사를 부여주 접경으로 이동케 하라! 함경도와 평안도 군사들도 즉시 변경으로 이동하게 하라!”
32만 정군 중에서 지금 소집상태인 병사는 10만이다. 이중에서 북방 2도 2주의 최일선에 배치된 병력이 6만. 그중에는 번을 서러 간 남도 출신 병력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현지인인 함경도, 평안도 출신이다. 이들만 잘 운용해도 도적떼 2만 정도는 격파할 수 있다.
문제라면 부여주가 너무 넓고, 아군이 방어하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싸울 장소를 선택할 수 없다는 핸디캡은 방어측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다.
보통 공격하는 군대는 방어군보다 전력이 3배는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공격군은 방어선이 취약한 부분을 찾음으로서 국지적으로 쉽게 전력 우세를 달성할 수가 있다. 무리를 해서 전체 전력을 3배로 만들어놓을 필요가 없는 거다.
“이성량에게는 도움을 청했느냐? 답이 있었느냐?”
요동도사 이성량에게는 십만 철기가 있다. 이성량이 도와준다면, 부여주까지 군사를 끌고 오지는 않고 해서부 놈들의 본거지만 살짝 두드려 주더라도 우리는 훨씬 수고를 덜 수 있다. 뒷덜미가 뜨거워진 놈들이 당장에 물러갈 테니까 말이다.
“사자는 보냈다고 합니다만, 아직 도움이 왔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으음, 아직 통신이 원활하지 않으니 이성량이 돕는지 안 돕는지 알 수가 있나. 어쩌면 이미 요동병이 출동해서 적과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군사전략을 짜면서 과도한 기대를 넣는 건 금물이겠지.
“일단은 요동군이 우리를 도우러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좌상!”
“예, 전하.”
좌의정 이영송이 고개를 숙였다. 그 위로 내 호령이 떨어졌다.
“이미 배는 다 준비되었을 것이다. 대국에 가져갈 공물은 마련되었는가?”
“조금 미진한 부분이 있습니다만….”
“되었다! 나머지는 내탕고에서 전용하라. 당장 대국에 가서 대국 조정에 상주하여 야인들이 대규모로 쳐들어왔으니 요동도사로 하며금 군을 움직여 적도들을 토벌하도록 명령하여 달라고 청하라! 조정에서 직접 명하면 이성량도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을 수 없으리라.”
요즘 북경에서는 점점 황제가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스승을 해치워 마음속이 편안해진 만력제가 슬슬 놀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조만간 세상만사에 마음을 완전히 끊게 될 텐데, 그 전에 뜯어낼 건 다 뜯어내야 한다. 물질적이건, 제도적이건.
“예, 전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영송이 하는 인사를 들으니 아쉬운 마음에 한숨이 나왔다. 장래를 위해서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 긴급한 순간에 유성룡을 비롯한 천재 4인방을 내 곁에서 떠나보내야 하니까 말이다. 다른 신하들이 어느 정도는 구실을 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전하, 이번 난리를 진압하는 데 있어서 신이 한 가지 진언할 바가 있사옵니다.”
영의정 박순이었다. 노신의 충고는 듣는 게 좋은 법, 잠자코 고개를 돌렸다.
“전하, 오위도총부 부총관 신립으로 하여금 도성에서 원군을 이끌고 가게 하소서. 북방에는 조총도 아직 강선이 없는 것을 쓰고 있을 정도이니 도성에서 강선조총을 보내 적과 싸우는데 도움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또한 부총관은 적들이 두려워하니 보냄이 가합니다.”
“원군과 조총을 보냄은 확실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부총관을 보내는 것은….”
신립은 분명 맹장이다. 이제까지 있었던 전과로 미루어보면, 신립이 군사를 끌고 부여주에 간다면 분명 목단강을 여진족의 피로 채우게 만들어놓을 거다. 문제는 신립 그 자체였다.
“부총관 신립은 부여주 병마사로 있으면서 야인들에게 원망을 매우 많이 샀다. 만약 신립을 체직시키지 않았으면 지난번 반란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는 점은 그대들도 동의하지 않느냐?”
“그렇긴 하오나, 신립이 용맹하여 적과 싸우는 데 신립을 당할 자가 없음도 사실이옵니다. 그만큼 싸우는 자가 또 있을 수도 있으나, 작금 상황은 새 장수를 찾아낼 여유가 없사옵니다. 일단 신립으로 하여금 싸우게 하소서.”
이조판서 이형종도 신립을 출정시키자는 쪽에 섰다. 젠장, 신립 출동시켰다가 그거 때문에 신립이 복귀하는 줄 알고 식겁한 부여주 야인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쩌나? 별 수 없다. 신립을 내보내자고 한 놈들을 몽땅 조정에서 잘라버려야지. 물갈이할 명분 되겠구나.
“전하, 이미 도성과 경기도 일대에 금혼령이 내리고 세자 저하의 국혼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인데 어쩌시겠사옵니까. 이런 난리가 터졌으니 일시 중지하셔도 가할 듯합니다만….”
“아니다. 이깟 도적떼가 변방에서 준동한다 하여 중요한 행사인 국혼을 더 미룰 수는 없다. 세자의 혼사는 그대로 진행하라.”
나라가 망할 상황도 아닌데, 그나마 축소해서 진행하는 세자빈 간택을 멈출 수는 없다. 내 위신도 걸려 있으니까. 외적이 쳐들어왔다고 간택을 중단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나.
그나저나 얼마 전부터 한 가지 걱정이 된다. 설마 상희가 세자빈으로 뽑히는 건 아니겠지? 부디 그런 일이 없기만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