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9
1부 030화
– 1 –
“전하, 이 어인 일이시옵니까!”
궁으로 돌아온 내 모습을 본 대전내관들, 상궁들이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눈이 붉게 핏발이 서 있는 데다 말에서 나뒹굴 때 묻은 흙먼지가 전신에 묻어 있으니, 당연한 일일게다.
말을 타기 시작한 초기에는 당연히 자주 떨어졌다. 하지만 지난 2년여는 한 번도 낙마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딱 보기에도 낙마한 게 분명한 꼬락서니로 돌아왔으니 이들로서는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타고 간 말은 어쩌고 겸사복의 말을 타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너는 어서 전하께 드릴 새 옷을 가져오너라! 너는 당장 목욕물을 준비해라!”
내시감 김처선이 급히 내관들을 다그쳐 나를 쉬게 할 준비를 시켰다. 이 양반과도 근 1년을 함께하다 보니 요즘은 정이 좀 들었다. 처음엔 서먹했지만 저쪽에서 나를 애지중지하는 게 빤히 눈에 보이니 내가 계속 거리를 두기도 미안했다.
지금도 내 심기가 불편함을 바로 알아채고 나를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 건 고마웠다. 하지만 지금 급한 건 목욕과 휴식이 아니었다. 아직도 분노에, 그리고 공포감에 온몸이 떨렸다. 내 뒤에 서 있는 박원종과 유자광 두 사람 역시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그놈은 누구냐! 당장 끌고 오너라!”
조금 정신을 차리게 되자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분노였다. 고려 공민왕 이래, 조선이 망하기까지 감히 임금에게 무기를 들이댄 자는 없었다. 독살 시도는 있었던 것으로 알지만, 몰래 하는 독살과 대놓고 하는 저격은 전혀 경우가 다르다.
“무엇들 하느냐! 어서 끌고 오라지 않느냐!”
양편에서 부축하는 박원종과 유자광의 손을 뿌리쳤다. 고개를 들자 겸사복 한 명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가 떨어트린 총을 쳐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화승의 불은 이미 꺼지고 불접시에 있던 화약도 쏟아져 발포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아무 말 없이 총을 낚아챘다. 총구를 잡고 개머리판을 땅바닥에 내리찧어 지팡이로 삼았다. 그제야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내 발로 땅 위에 굳게 설 수 있었다. 분노 덕분인지 땅에 부딪혔던 허리에서도, 말에 깔렸던 다리에서도 통증은 전혀 없었다.
“에이잇! 뭣 하는 게냐!”
자객이 화살에 맞고 나무에서 떨어질 때 이미 겸사복들이 그 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소나무 밑에 도착한 겸사복들은 자객이 땅바닥에 떨어졌는데도 바로 끌고 오지 않았다. 뭔가 당황한 듯,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화가 치민 내가 내 발로 소나무를 향해 걷기 시작하자 겸사복 하나가 이쪽을 보고는 급히 달려왔다. 그리고는 내 앞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넓죽 엎드렸다. 응축된 분노가 엉뚱한 상대를 향해 폭발했다.
“네 이놈! 내, 자객을 어서 끌고 오라 하지 않았더냐! 둘러서서 뭘 하고 있었던 게냐? 네놈들도 한패라, 재차 기회를 노릴 궁리를 한 게냐!”
“아, 아니옵니다! 신들은 전하를 충실히 모시는 신하일 뿐입니다. 어찌 역심을 품겠습니까!”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겸사복이 그대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서울 장안을 뒤흔든 역모 사건이 겨우 끝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사건이 터졌으니 이들로서도 두렵기는 할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지금 경호가 실패한 데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할 판이니 말이다.
“신들이 바로 어명에 따르지 못한 죄를 용서해 주소서. 그것이, 그만……놈이 이미 절명하였습니다. 전하, 용서하시옵소서!”
“죽었다고?”
순간 아차 싶었다. 놈은 박원종이 쏜 화살에 맞고 7~8m 정도 되는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 크게 다치긴 했겠지만 설마 즉사했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죽어버린 건가.
“과인이 직접 확인하겠다!”
백여 보는 작정하고 걸으면 몇 분 걸리지도 않는 거리다. 내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나머지 겸사복들과 박원종, 유자광 등이 우루루 몰려와 주변을 둘러쌌다. 유자광과 박원종은 활을 들고 주위를 경계했고 다른 이들은 모두 검을 뽑아들었다.
나무 밑에 도착하자 하늘을 보는 자세로 땅바닥에 누워 있는 시신이 보였다. 시체 옆에 서 있던 두 겸사복은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옆으로 비켜났다.
“이런 제기랄.”
자객은 확실히 죽어 있었다. 두 눈은 감지 못한 채 부릅떴고,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룩했다. 옷과 같은 색깔인 복면이 옆에 떨어져 있고 얼굴 한복판에는 화살이 깊이 꽂혀 있었다.
생각도 못 했다. 박원종이 제대로 겨냥할 여유도 없이 급하게 쏜 화살이 정확하게 자객의 인중을 맞혔을 줄이야! 화살은 앞니를 깨부수고 들어가 입천장을 뚫고 비강(鼻腔)을 통과, 뇌 속에 박혀 있었다. 이래서야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았더라도 살아있을 리 없다.
“전하! 어서 환궁하셔야 하옵니다. 이 자리는 일단 겸사복 몇을 남겨 지키게 하시고, 신들과 함께 궁으로 돌아가소서. 혹시 자객이 더 있을지 모르니,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하옵니다!”
이미 죽은 자객을 내려다보며 분노를 곱씹고 있는데 유자광이 옆에서 채근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분노뿐이던 머릿속에 공포감이 깃들었다. 그렇다. 이게 계획적인 암살이라면, 분명 백업을 위해 두 번째 저격수가 근처 어딘가에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말을 가져오너라!”
박원종이 소리치자 겸사복들이 급히 말을 끌고 왔다. 내가 그중 한 마리에 오르려 하자 말을 끌고 온 겸사복이 급히 자기 겉옷을 벗어서 내 몸에 덮어주었다.
“고맙다.”
나를 대놓고 노린 거라면, 다른 이의 옷으로 위장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렇게 위에 걸치면 몸의 윤곽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아서 활로 겨누기가 조금은 까다로워지니 말이다.
“어서 자객의 시신도 말에 실어라! 그리고 너희 넷은 여기서 어마(御馬)를 지키고 있으라!”
“예, 나리!”
유자광이 나를 말에 태우는 사이 박원종은 겸사복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미 화살에 맞아 죽은 내 말을 지키라고 한 걸 보면 현장을 보존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사살된 자객 시체는 여기 놓고 가기에는 너무 중요하니 실으라고 시켰겠지.
“전하, 어서 궁으로 돌아가시지요. 조금 서두르겠습니다.”
자객의 시신을 안장에 비끄러매고, 자객이 가지고 있던 활을 비롯한 모든 유류품도 주머니에 담아 말안장에 달고 난 박원종이 다가와 보고했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소리를 내어 대답하기에는 지금 받은 충격이 너무 컸다.
“이랴! 달려라!”
열두 필의 말이 나를 중심에 두고 질풍처럼 달렸다. 누가 길을 막기라도 하면 가차 없이 밟아죽일 기세였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고삐를 잡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점점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 바람도 쐬고, 꿩이라도 잡아서 기분 좋게 들어가려던 승마 길이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제기랄!
도대체 주범이 누구야? 잡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릴 테다!
“도승지! 도승지 어디 있느냐! 도승지를 당장 불러 오거라!”
지금 휴식이 문제가 아니다. 나는 편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건물 앞에 선 채 도승지를 찾았다. 편전으로 들어오는 문은 모두 급히 나온 내금위 소속 군사들이 무기를 들고 막아섰다.
도대체 저격범의 배후가 누구지? 사림 세력?
지금은 그 외에 혐의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조선 선비들은 웬만해서는 무력으로 임금을 축출하려는 시도 따위는 하지 않았다. 물론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내가 진짜 연산군이나 광해군 수준으로 막장으로 굴지는 않았잖은가?
게다가, 만약 사림들이 나를 시해하려다가 적발된다면 범인이 처형되는 정도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이번 사화는 물론, 갑자사화와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난리가 날 거다. 감히 하늘이 내린 임금을 시해하려 한 대사건이 아닌가 말이다.
주범이 사림이라면, 이번 사화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들은 물론 이래저래 검거망을 벗어난 이들까지도 모조리 처단된다. 사림이라는 말 자체가 정말로 사라질 정도로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그걸 뻔히 아는 이들이 저격 음모 따위를 꾸밀까?
“그래…그 정도로 멍청이들은 아니겠지.”
마침 자객의 시체가 내금위 군사들의 손으로 떠메어져 왔다. 내 주변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내관과 궁녀들이 시체를 보고 흠칫하며 물러섰다.
“바닥에 놓아라!”
멍석에 얹은 시체가 멍석 째로 바닥에 놓였다. 다시 한 번 훑어보았지만 갈색 옷을 입은 것 외에 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더 찾아내려면 저놈의 품속을 뒤져야겠지만 임금으로서 체통도 서지 않는 일이고, 내 손을 그런 일로 더럽히고 싶지도 않았다.
“전하! 무사하시옵니까! 전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신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급히 달려온 내금위장이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젠장, 이 양반은 따지자면 청와대 경호실장 격인 양반이니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도 무리가 아니긴 하다.
“되었으니 어서 자객의 정체나 밝히라!”
“예, 예, 전하!”
몇 번이나 이마를 땅바닥에 부딪히던 내금위장은 벌떡 일어서더니 뒤로 돌아섰다. 그 뒤에는 그를 따라온 내금위 군사들이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이 놈의 품속을 살펴라!”
“예이!”
당장 달려든 군사들이 자객의 옷을 벗기고 품속을 뒤졌다. 그 광경을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건, 사림파 세력의 반격이라기보다는 그저 개인적인 복수가 아닐까? 이번 사화로 잡혀간 이들과 관련이 있는 주변 인물들 중, 연좌되어 함께 울릉도에 보내질 정도로 가까운 인척은 아니지만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있었을 수 있다. 친척이든, 친구든, 아예 남이든 말이다.
그런 이들 중 하나나 둘이 복수심에 눈이 뒤집혀 개인적으로 꾸민 일이라면? 그렇다면 배후세력이란 게 존재하지 않으면서 이런 사건이 터질 수 있다.
허나 설사 그렇다고 해도 사림파에서 남은 세력은 치도곤을 맞게 될 게 분명하다. 당장 저들과 관련이 있는 바로 그자는 울릉도에서 도성으로 도로 끌려와 거열형을 당할 것이고, 그자의 가솔들은 그대로 바다에 던져질 게 뻔하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거다.
“전하, 도승지 입시이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도승지 정미수가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도승지를 부르러 갔던 내관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그 뒤에서 뒤처져서 따라왔다. 그리 큰 소리를 지르다니, 평소라면 무례하다고 욕을 먹을 짓이겠지만 지금 무례 따위가 무슨 문제인가?
“전하!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천지신명의 가호가 있으셨사옵니다!”
“고맙소.”
정미수가 알고 있는 걸 보니 나와 같이 환궁한 겸사복들이 이미 궁내에 소문을 퍼뜨린 모양이다. 이 개새끼들, 이런 일을 함부로 발설하면 어떡하나!
“당장 승정원에서 명을 내려 각 군영에 군사들을 대기시키라 하시오! 또한, 지금 당장 4대문을 닫고 자객의 일당을 잡으라 하시오! 분명히 한패가 있을 거요!”
“전하, 외람되오나 자객이 매복한 장소는 성 밖이지 않습니까. 패거리가 더 있다면 성 바깥에 있지 않겠사옵니까?”
정미수는 며칠 전 이조판서가 된 신수근의 후임으로 도승지가 된 지 이제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비상사태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 말이 되지 않는 지시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침착한 정미수를 상대하려니 나도 차분해져야 했다. 화를 억누르며 말을 하다 보니 나 역시 흥분이 가라앉고 냉정함이 돌아오는 기분이 느껴졌다.
“아니! 분명 도성 내에 일당이 있소. 놈은 과인이 말을 달려 지나가는 길 바로 옆에 숨어 있었소. 이는 과인이 언제 말을 달리는지, 어느 길로 다니는지 치밀하게 조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오.”
요즘 내 승마 코스는 거의 일정했다. 자하문으로 나가서 북악산을 돌아 혜화문으로 들어온다. 대충 12km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 정도 거리면 운동으로 삼기에 시간도 적당하고 내 실력으로도 지치지 않고 달릴 만했다.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다 보니 짐승도 꽤 있었고.
“전하, 이 자는 호패는 물론이고 신분을 알 만할 물건을 아무 것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내금위장이 얼굴에서 진땀을 흘리면서 보고했다. 젠장! 그럼 당연하지. 테러하러 가는 놈이 민증 가지고 가겠어? 호패 같은걸 뭐 하러 찾아? 역시 수사 비전문가라 그런 모양이다. 전문수사기관에 맡기는 게 낫겠다.
“호패 따위는 당연히 없을 것이다! 아니, 여기서는 그만 뒤지고 의금부로 옮겨라! 의금부 관원들로 하여금 철저히 수색케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