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90
2부 068화
– 11 –
앞으로 나흘만 더 가면 두만강이다. 회령부 앞에 있는 옛 고향이 이제 눈앞에 있다.
“어려운 목표인가.”
다만 거기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조선인 마을이란 마을은 모조리 불태우고 피바다를 만들면서 진격한 결과, 니탕개 일당도 반으로 줄었다. 처음 덮쳤던 봉수대 밑 마을처럼, 전부 무방비 상태였던 건 아닌 탓이다.
“사냥개 노릇을 하는 개 같은 배반자 놈들만 아니었어도 훨씬 쉬웠을 텐데 말입니다.”
머리에 난 상처를 천으로 싸맨 부하 하나가 음침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니탕개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들을 위협하는 적은 부여주 관군뿐이 아니었다. 같은 핏줄인 여진족 각 부족에서도 짐승 사냥을 하듯 이들을 쫓았다. 포로를 하나 잡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개 같은 조선 놈들, 우리 목에 상금을 걸다니!”
부여주 우병사 김우서가 한 짓이었다. 김우서는 변방에서 뼈가 굵은 무관으로, 야인들에게 어떤 미끼를 주어야 말을 듣게 만들 수 있는지 잘 알았다. 니탕개의 부하를 죽여 머리 하나를 잘라오면 말 한 마리를 주겠다는데 눈이 뒤집히지 않을 야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니탕개 휘하 전사들은 지금 사기가 극도로 떨어져 있었다. 조금만 무리에서 뒤처지면 언제 사냥당해 목이 달아날지 몰랐다. 사방이 적이다 보니 정찰병도 제대로 내보내지 못했다.
“형님, 이제 한계입니다. 차라리 해서로 돌아가지요.”
부하 하나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니탕개의 사촌동생, 갈다개였다.
“이미 가족들은 죽은 지 오래고, 우리 땅에는 조선 놈들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돌아간들, 맞아줄 사람도 땅도 없는 곳에 굳이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복수는 이미 충분히 했습니다. 강 건너 서쪽에서 새롭게 살아가면 안 되겠습니까.”
이미 부하들 사이에는 체념하는 기운이 만연해 있었다. 그동안 이들이 죽인 조선인 숫자만 해도 수천 명은 된다. 피를 충분히 덮어쓰면서 분노는 식었고, 앞으로 자신의 안위를 고려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이들도 이제 살고 싶어졌다. 복수는 충분히 했으니까.
“지금 우리는 정찰병도 제대로 보내지 못합니다. 내보내기만 하면 십중팔구는 화살을 맞고 목이 떨어지니까요. 우리는 관군이 어디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놈들은 우리 위치를 손바닥 보듯 알고 있을 겁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해서로 돌아갑시다.”
모두 이심전심으로 알고는 있지만 차마 하지 못하던 이야기였다. 부하들은 목단강 동쪽으로 돌아온 뒤 니탕개가 얼마나 잔혹해졌는지 다들 알았다.
자기 지시에 바로바로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베어버린 부하들만 십여 명이 넘었다. 조선인 부락을 습격할 때 아녀자를 죽이기를 망설였다고 처단당한 자들도 있었다. 그런 판에 ‘도망가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가 있을 리 없었다.
입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없다면 몸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사라진 인원 중 일부는 적과 싸우다 죽은 게 아니고 탈주자였다. 적어도 백 명 이상이 도망쳤다. 정확히 몇 명이나 되는지, 그 수는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길도 끊겼다. 탈출을 시도한 자들이 잇달아 머리 없는 시체로 발견되면서 탈주해봐야 죽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이제 남은 5백 명은 반쯤 자포자기 상태로 니탕개를 따르고 있었다.
“죽은 가족들을 위한 제물은 충분히 바쳤습니다. 이제 해서로 가죠. 우리가 모두 죽는다면 우리 부족의 씨는 누가 남긴단 말입니까.”
갈다개는 지금 니탕개에게 유일하게 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측근들은 싸우다 전사하거나, 직언하다 처형당하거나, 도망쳤다. 측근들 중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 갈다개였다.
침묵하는 니탕개를 설득하기 위해 갈다개가 뭐라고 더 말하려는데 니탕개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조용히 갈다개 앞으로 다가갔다.
“형님, 이제 끝냅시다. 이만하면 해서부 추장들한테 약속한 만큼은 했어요. 이제, 저쪽에서 다시 시작을…헉!”
니탕개는 어느새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도를 뽑아 갈다개의 배를 찌르고 있었다. 뻗어 나온 칼날은 천천히 희생자에게서 피를 빨아냈고, 니탕개는 손에 잡은 칼손잡이를 천천히 좌우로 비틀었다. 갈다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억억거릴 뿐이었다.
자기 배를 찌른 칼날을 붙들고 헉헉거리던 갈다개는 얼마 안 가서 니탕개의 어깨에 기댄 채 축 늘어졌다. 사촌동생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니탕개가 천천히 칼을 뽑았다. 칼날에 묻은 피와 기름을 갈다개가 입은 옷에 닦은 니탕개는 칼을 도로 칼집에 집어넣었다.
“들어라.”
니탕개가 발길을 움직이자 갈다개의 시체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니탕개는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네놈들이 도망쳐서 살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해서로 가지 않는다. 천하에 머저리들인 너희는 조선 놈들이 저지른 짓을 잊을 수 있는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충성한다고 저놈들이 양식을 주었느냐? 오직 칼과 몽둥이밖에 더 있었느냐?”
이제 와서 해서로 도망친다 한들 달라질 것도 없다. 조선군은, 그리고 포상에 눈이 먼 다른 부족 전사들은 끈질기게 뒤를 쫓으리라. 살아서 목단강을 넘어간다고 해도 조선군은 이들을 그대로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분명 강을 건너 해서부 땅까지 쫓아올 게 분명하다.
조선군이 니탕개 일당을 쫓아 쳐들어오면, 과연 해서부가 자기네들 희생을 무릅쓰면서까지 지켜줄 것인가? 니탕개는 애초에 그런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각오도 되어 있었다.
“너희에게 남은 길은 둘 뿐이다. 나와 함께 싸우다가 전사답게 죽거나, 도망쳐서 짐승처럼 사냥감이 되거나. 뭐든지 마음대로 택해라.”
말을 마친 니탕개는 그대로 말에 올랐다. 채찍으로 후려치자 말이 펄쩍 뛰어오르더니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던 부하들이 급히 말에 올라 뒤를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 12 –
“집결하라고?”
“그렇소. 조선군 토벌대가 남쪽에서 올라오는 모양이오.”
이순원은 사자를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 이제 겨우 만만한 부락을 하나 만나서 재미를 보는 참인데 당장 돌아오라고 하니 당연히 기분이 나빴다. 게다가 사자는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우린 이제 겨우 부락 하나를 털었을 뿐이다. 노예도 아직 4백 명밖에 잡아들이지 못했는데 벌써 본진으로 돌아오라고?”
여진족들은 원래 노인이건 어린애건 죄다 노예로 거래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대규모 원정을 벌인 참이라면, 당장 노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성년 남녀만 잡아가도 충분하다. 노인이나 어린애는 데려가기만 힘든 짐 덩어리일 뿐이다.
“벌써 다섯 개나 되는 부대가 당했소. 지금 우리 부대는 고작 1천에서 2천, 이 정도 수로는 3천기씩 몰려다니는 조선 놈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단 말이오.”
해서부에서는 국경을 돌파한 뒤에 가능한 넓은 간격을 두고 군사들을 흩었다. 그래야 넓은 범위를 비로 쓸듯이 지나가면서 방비가 허술한 마을들을 약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이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어서 상당한 포로를 잡았다. 하지만 흩어진 약탈부대는 적이 시도하는 각개격파에 취약했다. 이제라도 그에 맞게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도, 가축도, 재물도 이만하면 충분히 얻었소. 이만 돌아가도 충분하오. 진즉에 발길을 돌렸어야 하는데 그대들 같은 욕심쟁이들 때문에 늦은 거요.”
“그거야 너희 본진 이야기겠지. 우리는 이제 겨우 마을 하나를 얻었을 뿐이다.”
사자가 비웃는 듯 미소를 지었다. 망할 자식, 나는 뒷배도 없는 조선인 혼혈이지만 자기는 진짜배기 해서부 귀족이다 이거지?
“불만이 심한 줄은 알지만, 그래도 어서 돌아오시는 게 나을 거요. 안 그러면 그대가 본래 조선인이라 조선군에게 투항하려고 이탈했다는 소리를 들으실 테니까.”
사자에게 협박하는 말을 들은 이순원이 움찔했다. 조선군에 투항한다?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다! 그는 이미 국경 연변에서 악명이 높았다. 자칫하면 투항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머리가 달아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런 의심을 받는다니!
“알았다. 가능한 빨리 이동하지.”
“서두르시오.”
이순원이 무겁게 내뱉은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사자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에 올랐다. 저 자식이 작정하고 입을 놀리면 그대로 등짝에 화살이 꽂힐 수도 있는 처지다 보니, 꾹 참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멀어져가는 사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절로 욕지기가 치밀었다.
제기랄, 이런 대접을 받느니 정말로 투항해버릴까?
– 13 –
예부상서에게 호출을 받은 이영송은 급히 시종들을 재촉했다. 수레 준비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서 속이 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국어를 할 줄 알아야 욕이든, 재촉이든 할 게 아닌가.
황제는 신년행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조선을 비롯한 여러 조공국에서 온 사신들이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지만, 황제는 결국 식이 끝나기까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정녕 이항복이 듣고 온 바가 사실인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야 명나라 조정으로 하여금 이성량을 움직이게 할지 고심하던 중에 날아든 상서의 호출은 실로 하늘이 내린 동아줄이었다. 천천히 굴러가는 수레가 답답하기만 했다.
“앉으시오.”
예부에 도착한 이영송은 역관을 통해 예부상서 심리(沈鯉)와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받은 뒤에는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앞자리에 마주앉은 심리가 문서를 한 장 꺼냈다.
“거두절미하고…칙령이 내렸소. 요동도사 이성량으로 하여금 군을 이끌고 나가 난을 일으킨 해서부를 진압하고 조선이 안정되도록 도우라는 내용이오.”
드디어! 이영송은 자기도 모르게 환호하고 싶은 충동이 치솟는 것을 억눌러 참았다. 심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별 생각이 들지 않는지 차분하게 자기가 할 말을 했다.
“북경에 있으면서 그대도 보고 들은 바가 있겠지만, 요즘 폐하께서는 그다지 국정에 열중…하시지 못하고 있소. 건강이 다소 좋…지 못하신 때문이오.”
이영송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심리가 그렇게 말해두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니까. 황제가 남들 모르게 주색잡기에 빠져 있건, 아니면 조부인 가정제처럼 방술에 빠져 있건 조정 업무만 제대로 돌아간다면 외국인 조선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천하의 중심인 폐하께서 와병중이시라니 실로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조선에 돌아가는 대로 저희 임금께 아뢰어 쾌유를 비는 제사를 올리고, 전국에 명을 내려 좋은 영약을 구해서 다음 사신 편으로 보내게 하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소.”
심리는 조용히 사의를 표했다. 하지만 예의상 하는 답변일 뿐, 그 제안을 진실로 기뻐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이영송 역시 그런 반응이 돌아오리라고 예상했다. 황제가 진짜 병이 난 것도 아닐 테고, 조선 임금이 멋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도 못마땅할 테니까 말이다.
“요동에다 조회해 보았소. 요동도사가 올린 보고에 따르면, 해서부 각 부족이 힘을 합쳐서 부여주를 약탈하겠다는 풍문을 듣고 ‘그런 허황된 계획이 성공할 리 없다’고 생각하여 내버려두었는데 그만 일이 커졌다 하오. 요동도사도 당황했다니 이해하시오.”
이성량이 당황했건 말건 상관없다. 실제적인 조치 쪽이 더 급하다.
“요동군은 언제쯤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부여주는 심히 혼란스럽습니다.”
“빨리 움직이면 이달 안에 출정할 수 있소. 요동도사는 거느린 병력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언제나 철저히 관리하고 있으니, 심려치 마시오. 그대가 귀국하여 조선 국왕에게 요동 소식을 전할 때쯤이면 요동군이 해서부로 달려가고 있을 거요.”
“대인의 배려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명나라 배를 타고 서해를 횡단하니 확실히 빨랐다. 항해술을 가르치도록 초빙해온 명나라 뱃사람들은 한강 어귀를 나서자마자 능숙하게 바다 한가운데로 배를 몰았다. 아무런 표지도 없는 망망대해였지만 세 척 다 아무 탈 없이 산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단 사흘 만에 말이다.
지금 바로 북경을 출발해서 텐진으로 가면 엿새 안에 한강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때까지만 이성량 군이 출동해 줘도 제법 신속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귀국 국왕이 청한 남만과의 교역을 허락해 달라는 건 말인데….”
심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긴장한 이영송이 허리를 바짝 곧추세웠다.
“대국에서도 저들이 찾아오니 받아주고는 있소. 하지만 저들이 가져오는 물건이란, 대개가 이미 중화에서 생산되거나 그보다 못한 것들이오. 아니면 눈만 어지럽힐 뿐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잡물(雜物)들이지. 그대들이 왜 굳이 그런 자들과 교역을 하려는지 모르겠소.”
남만인들은 대부분 중개무역을 한다. 유럽에서 가져오는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역내에서 운송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유럽제 상품이 동양에서 별로 인기가 없고, 원양을 항해하는 능력은 저들이 가장 뛰어난 탓이다.
“저희 전하께서는 저들에게서도 받아들일 재주가 있다고 보셔서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여기도 선교사들이 있지만, 분명히 우리에게 없는 재주를 익히고 있긴 하오. 정 원한다면 그대 나라의 문호를 열어 남만인들을 받아들여 보시오. 뭐, 크게 해가 될 일이야 없을 테니.”
뜻밖에 선선히 허가가 내렸다. 임금이 부여한 두 가지 주요 임무가 모두 해결되자 이영송도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이야기가 끝났으니 준비한 물건을 꺼낼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대인. 작지만 받아주십시오. 제 조그만 성의입니다.”
상자 속에는 인삼 열 근이 들어 있었다. 고르고 고른, 가장 질 좋고 큰 물건이었다. 심리가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이런 걸 왜 본관에게 주시오?”
“예부는 대국 내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천하의 여러 일을 모두 맡아 관장하는 부서가 아닙니까. 그런 예부를 담당하는 상서가 되셨으니, 몸도 많이 축나실 겁니다. 몸을 보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하여 준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련한 물건이니 편히 받으시지요.”
“고…고맙소.”
망설이던 심리가 상자를 받았다. 열 근이나 되는 최고급 조선인삼, 이만한 선물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으리라.
비싼 물건이지만 앞으로 심리가 해줄 일들을 생각하면 절대 비싼 대가가 아니다. 이영송은 예부에서 물러나오면서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주상 전하를 위해서라면 남만승 따위보다 역시 예부상서가 훨씬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