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91
2부 069화
– 14 –
“그대가 거느리고 온 군사는 얼마요?”
“기병으로만 8천입니다.”
“나와 같군.”
신립은 북평까지 올라가지 않고서 부여주군 주력과 조우했다. 목단강변에 늘어선 봉수대를 따라 북상하던 중, 마찬가지로 목단강을 따라 남하하던 부여주 좌병사 신각과 조우한 것이다.
“도순변사께서도 도중에 있는 봉수대에 병력을 남겨두고 오셨습니까?”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오.”
신립과 신각, 두 사람 모두 출발할 때 거느린 군사는 1만이었다. 하지만 적이 포위한, 또는 방치한 봉수대를 구출할 때마다 2,3백 명씩 군사를 남겨두고 왔다. 행여 강 저편에서 적이 더 넘어올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적이 북방으로 돌아 빠져나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북병사가 8천 군사로 그 길을 꼭 막고 있으니 말입니다.”
“잘 하였소.”
신립은 신각이 그동안 취한 조치를 모조리 들었다. 두 사람은 같은 풍산 신씨로 종씨이기도 했지만, 한가롭게 족보 이야기나 나눌 여유는 없었다.
“음, 귀공이 취한 조치는 옳다고 생각하오. 놈들이 움직일 수 있는 길을 좁혀놓아야 일거에 쓸어버리기가 용이하지. 내가 거느리고 온 좌군장과 우군장도 아래쪽에서 열심히 놈들을 몰고 있소. 조만간 우리 정면에 적 대군이 나타날 거요.”
“저 역시 우병사에게 들어오는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우병사가 맡은 구역까지 파고들어온 적괴는 오직 니탕개 하나뿐이며, 놈도 이제 막바지로 쫓기고 있습니다. 우병사가 놈들 패거리 머리 하나당 말 한 마리를 포상으로 걸었더니 효과를 보았습니다.”
신립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우병사는 사람이 무르군. 그냥 소리쳐 내몰면 되는 것을 아까운 말을…뭐 그거야 우병사가 알아서 할 일이니 되었소. 그보다 우리는 몰려오는 적을 맞아 싸울 준비를 해야겠구려.”
신립은 시선을 내려 지도를 살폈다. 이 일대 지형이야 굳이 지도를 볼 필요도 없이 환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려면 역시 지도가 있는 편이 좋다.
“후군을 좀 넉넉히 남겨두어야 하리라고 보입니다.”
참모장 이일이 끼어들었다.
“소관이 알고 있기로 해서부는 군사 6만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부여주에 들어온 적은 그 수가 2만이라고 했는데, 그럼 아직 4만이 남아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지금쯤에는 놈들도 우리가 내려온 사실을 알았을 테니, 필시 자기네 군사를 구원하고자 나설 겁니다.”
목단강 너머는 해서부 영역, 엄밀히 말하자면 명나라 요동 땅이다. 소규모 정찰대라면 모를까, 대군을 출동시키기에는 조선군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듣자하니 이번 침입은 놈들이 작정하고 힘을 모아 벌였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모은 2만 군사를 놈들이 쉽게 포기할 리가 있겠습니까?”
“없겠지.”
“예, 분명히 구원하려고 하겠지요. 그 대군을 그대로 날려버릴 까닭이 없습니다.”
“소관이 생각하기에도 그렇습니다.”
신각이 이일에게 동조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제 휘하에 있는 숙련된 정탐꾼 2백 명을 강 건너로 보내 불온한 낌새가 있을 경우 즉시 알리게 해 두었습니다. 아직은 보고가 없습니다.”
신립과 신각 두 사람 모두 목단강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니 저쪽에서 모르고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원정대가 위험에 빠졌다고 보고 분명 난리가 났으리라.
“잘 하였네. 허나 저들이라고 해서 병력이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야. 6만은 저들이 사내라면 어린애부터 노인까지 다 긁어모아야 채울 수 있는 수가 아닌가?”
해서부가 경계해야 할 적은 조선만이 아니다. 여진 각 부족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적대하고 있고, 몽골과 명나라도 있다. 북방은 언제나 호시탐탐 서로 칠 기회를 노리는 분쟁의 땅이다.
“집을 지키려면 적어도 사내들 중 절반은 남아야겠지. 저들이 동패를 구출하기 위해 우리를 뒤에서 치려 군사를 낸다 해도, 최대 1만을 넘지 못할 걸세. 그 이상 과도한 욕심을 부린다면 자기네 마을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될 테니까.”
신립은 무조건 싸움밖에 모르는 장수가 아니었다. 상황을 파악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해서 싸움을 벌이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만든 뒤 싸우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물론 신립이 바라는 가장 바람직한 싸움의 조건은 전군을 동원해서 벌이는 회전(會戰)이다.
“하오면, 도순변사께서는 어느 정도 병력을 후위로 뺌이 적당하다고 보십니까?”
신각의 질문을 받은 신립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4천이면 되네! 우리 땅에 들어온 적 2만 중에서 이미 6천을 격파했고, 니탕개 놈이 이끄는 무리는 아예 따로 놀고 있으니 남은 적은 많아야 1만 3천일세. 저들이 모두 무사히 집결한다고 해도 나와 그대가 이끄는 군사 1만 2천이면 충분히 짓부술 수 있네.”
“좌군, 우군도 지금 남쪽에서 적을 몰아올라오고 있습니다. 적이 전부 모이기 전에 더 부술 수 있고, 결전이 벌어질 때는 적을 후방에서 포위할 수도 있습니다.”
이일이 옆에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신각은 이 전망에 다소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저들이 별군으로 움직이고 있는 좌우군을 격파하고 남쪽으로 도망칠 우려는 없겠습니까?”
“이미 부여주 전체에 눈이 깊이 쌓여 있습니다. 저들은 포로를 끌고 있는 만큼 추위 때문에 행군에 더욱 지장을 받을 겁니다. 우리 좌우군은 모두 날랜 기병이니, 저들에게 잡혀 패배할 만큼 굼뜨게 굴지 않을 겁니다. 도리어 반가운 일이지요.”
이일이 살짝 웃었다.
“만약 저들이 우리 별군을 치고 측면으로 빠져나가려 한다면, 좌군장과 우군장이 저들을 붙드는 사이 우리 본영에서 후방을 들이치면 됩니다. 도리어 더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백성들을 구하기도 더 쉽겠지요.”
적을 베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포로로 잡힌 백성들을 구하는 것이다. 임금의 이름으로 사민한 백성들을 어찌 야인의 노예로 끌려가게 두겠는가?
“알겠사옵니다. 그럼 후위로 남길 군사는 제가 거느린 병력에서 할애하도록 하지요.”
신각은 별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그가 보기에는 다소 불안해 보였지만, 어차피 지휘권은 도순변사 신립에게 있으니까 말이다. 싸움에 있어서는 신립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아마 믿어도 되리라.
회의를 마친 신각이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려는데 이일이 슬쩍 다가왔다.
“좌병사께 여쭐 것이 하나 있는데…혹시 삭탈관직을 당하고 충군된 전 아산보 만호 원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혹시 아시는지요?”
본래 이일은 원균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은 자신의 부하였고, 싸움도 함께 치렀다. 임금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함께 곤욕도 치렀다. 자신은 다행히 도성에 불려갔지만 원균은 그러지도 못했다. 이런 큰 난리에 목숨이라도 부지했을지,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글쎄, 잘 모르겠소. 아마 북병사 밑에 있을 테니 죽지는 않았을 거요.”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이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북병사 밑에 있다면, 아마 큰 싸움은 겪지 않겠구나 싶었다. 아마 눈은 죽도록 치워야 하겠지만 말이다.
– 15 –
북방에서 벌어지는 소식은 꽤 신속하게 내 귀에 들어왔다. 장수들은 매일 한 통씩 꼬박꼬박 장계를 올렸고, 파발이 올 때마다 최신 정보가 업데이트되었다. 비변사에 차린 상황실에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드나들며 부여주 상황을 공유했다.
“도적놈들이 욕심을 지나치게 부렸습니다.”
병조판서 김명원이 내 앞에 서서 설명했다.
“놈들이 목단강에 바짝 붙은 둔전촌과 조금 후방에 새로 지은 마을들만 공격하고, 재빠르게 물러섰다면 뒤늦게 출동한 우리 군사들은 닭 쫓던 개 꼴이 되었을 것입니다. 허나 도적놈들이 부여주 깊숙이 있는 마을까지 노린 덕분에 놈들이 도리어 진창에 빠진 셈이 되었습니다.”
당연한 결과다. 사민은 재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주가 빨랐던 곳들은 담을 쌓고 목책을 둘러 방어를 굳힐 시간이 있었다. 장정들을 조련하여 유사시에 전투에 동원할 준비도 되었고 말이다. 마을 대장장이들이 직접 창칼을 벼려서 무장을 강화하기도 했다.
놈들은 침입 초기에는 갓 사민한지라 미처 방책도 세우지 못한 마을을 주로 덮쳤다. 홍수가 개미집을 휩쓸 듯 고을이 무너지고 관장이 살해당했다. 집이 불타고 사람과 가축이 끌려갔다.
하지만 허술한 표적은 금방 동이 났다. 적들은 국경에서 거둔 성과로 만족하지 못하고 점점 더 우리 영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설마 여기까지 적이 오겠냐고 방심하고 있는 마을을 노린 것이다. 기병들이 종횡무진으로 날뛰는 동안 보병들은 노략질한 사람과 재물을 끌고 다녔다.
아직 정확하게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공격당한 마을 숫자는 최소한 백 개는 된다. 놈들에게 피해를 입은 백성들 숫자도 만 단위로 헤아려야 한다. 경작지가 짓밟히고 창고가 불타 식량을 잃은 이들을 위해 조정에서 내년 양식을 공급해 주어야 하게 된 건 덤이다.
어린아이 팔 비틀 듯 쉽게 이어지던 놈들의 약탈행진은 우리 땅으로 깊숙이 들어오면서 그 기세가 점점 약해졌다. 이쪽 지역에 있는 우리 정착촌들은 대부분 1년이 넘게 지나 방어책을 강구한 뒤였으니까 말이다.
초조해진 놈들이 한 탕만 더, 한 탕만 더 하는 사이 북평에서 남하한 신각 군과 백두산에서 북상한 신립 군이 만나 놈들의 퇴로를 끊었다. 남쪽이나 북쪽으로 우회해서 도망치려고 해도, 그 길은 최호와 유극량 등 별군을 이끈 장수들이 막고 있다.
“게다가 놈들의 뒤에서는 우병사 김우서가 1만 군사로 쫓고 있다고 하였겠다.”
“그러합니다.”
김우서는 원래 휘하에 거느리고 있던 관군 뿐 아니라 부여주 야인들 중에서도 군사를 뽑아 대군을 편성했다. 니탕개 군을 토벌하기 위해 내걸었던 포상금을 약속대로 지급하면서 신뢰를 쌓았고, 임금에게 충성하면 더 큰 보상이 있을 거라고 꼬드겼다.
김우서가 쌓은 신뢰는 부여주 야인들이 신립에 대해 품고 있는 증오심보다 더 컸다. 신립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져 야인 군사들이 분노했을 때도 김우서가 나서서 설득하자 난동이 다시 진정되었다.
“해서부만 쫓아내면 병마절도사는 다시 도성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힘써 싸워 해서부를 쳐 물리치자!”
말이야 바른 말이지, 신립을 쫓아내겠다고 야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신립은 도성으로 오는 대신 반란을 진압하러 갈 게 아닌가. 야인들이라고 그 정도 판단도 못할 만큼 멍청하진 않다. 당연히 야인들은 해서부를 몰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덕분에 니탕개 놈도 쉽게 구석으로 몰았지. 그 못된 놈 같으니.”
다른 해서부 놈들이 부여주 서부에서 약탈과 납치에 열중하는 사이, 니탕개는 혼자 두만강 코앞까지 파고들었다. 미친놈처럼 날뛰는 그 자식 때문에 완전히 파괴된 마을만 십여 군데나 되고, 죽은 이는 몇 명인지 아직 세지도 못했다.
하지만 김우서가 침착하게 대응한 게 효과를 보았다. 예하에 있는 관군으로 요지를 막아서 봉쇄하고, 야인들을 풀어 주변에서 니탕개를 압박하게 했다. 결국 니탕개는 몰리고 몰린 끝에 한줌밖에 안 남은 부하들과 숲속을 헤매고 있다.
“니탕개 놈을 산채로 잡으면 솥에 삶아서 죽이고, 죽여서 잡으면 온몸의 가죽을 벗겨 속에 짚을 채운 다음 광화문 앞에 걸어놓을 테다.”
개놈의 새X! 욕은 간신히 참았다. 그래도 왕 체면이 있는데 너무 저속한 표현은 삼가야지.
어쨌든 지금 전체적인 전황은 슬슬 대단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소 안심이 된다.
“도순변사가 세운 계획대로 놈들이 덫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부디 단 한 번 싸움으로 놈들을 모조리 진멸하기를 바란다.”
한 가지 아쉬운 건 화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신립은 서둘러 적을 쳐야 한다면서 보병들은 물론이고 화포도 몽땅 후방에 두고 갔다. 김지가 내 지시대로 새로 만든 귀차도, 기존에 있던 신기전기도, 야포를 비롯한 각종 총통도 가져가지 않았다.
지금 신립이 이끄는 군사들이 가진 화기는 개인이 휴대한 조총이 전부다. 신각 역시 보유한 화기를 대부분 북평 방어를 위해 놓고 왔기 때문에 활과 조총밖에 안 가지고 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것만 가지고도 이길 것 같긴 하다. 최종병기 신립이 있으니….
“전하, 침입한 적도들을 다 물리친 뒤에 후속조치는 어찌하실 생각이신지요.”
“상황을 보아 결정하겠다.”
일단 개XX들인 해서부. 약탈원정을 시도하다가 2만이나 되는 병력을 잃으면 해서부 놈들은 당분간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아직은 명나라 눈치를 보아야 하니 보복으로 해서부 영토를 정복한다거나 하긴 힘들겠지만, 다른 방식으로라도 어떻게든 보상을 받아낼 생각이다.
부여주, 연해주 일대에 있는 각 야인 부족들은 아직까지도 법제상으로는 명나라의 위소로 편제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양측에서 자기 편할 대로 이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범법행위를 저지른 야인이 자기는 명나라 벼슬이 있다면서 배를 짼다. 흉년에 조선 지방관이 구휼곡 지급을 거절하면서 요동도사한테나 가보라고 비꼰다. 이래서야 내 통치가 제대로 만주 전역에 미칠 리가 없지 않겠는가.
‘부여주 일대를 안정시키기 위해’ 위소를 폐지하고, 이들이 아직까지 보물단지처럼 간직하고 있는 칙서를 모두 무효화시킨다. 혹시 선황제들이 내리신 어쩌고 하면서 무효화가 안 된다고 나서면 그건 그거대로 좋다. 칙서를 전부 뺏어서 내가 갖는다. 그럼 북경에서도 할 말 없겠지.
포로로 잡은 해서부 놈들은 당연히 몽땅 노비다. 바다 건너 북해도로 보내서 아이누 동맹군 지원병으로 써먹을까? 아니면 연해주에서 탄광노동 같은 걸 시킬까?
“동지사로 간 이영송 일행이 아직 돌아오지 않는 게 유감이구나. 저들이 어서 와야 이성량 그놈이 어찌 움직일지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성량이 해서부를 멸망시킬거라고는 기대도 안 한다. 단지 놈들을 어서 제압해서 더 이상 병력을 내지 못하게는 해 줘야 한다. 그래야 신립이 뒤통수 걱정 없이 적을 쳐부술 수 있다.
에휴, 그러고 보니 오늘은 중궁전에 한번 들러봐야겠다. 벌써 임신 7개월이 된 중전을 못 만난 게 벌써 며칠이냐. 전쟁도 전쟁이지만 가족도 챙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