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295
2부 073화
– 25 –
위풍당당한 요동도사 관저에는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야 당연히 이곳 주인인 요동도사 이성량이 지금 몹시 기분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성량은 회의실에 측근 장수 몇 사람과 장성한 아들들을 앉혀 놓았다. 이들은 총병 이여송으로부터 해서부 진압차 실시했던 출동 경과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었다. 배석한 이들 모두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조선군은 확실히 생각보다 강합니다. 처음에 부여주군이 지리멸렬할 때만 해도 그 추태를 실컷 비웃었는데, 장수가 교체된 것만으로 대응 태세가 전혀 달라졌습니다. 특히 전 병마사 신립은 그 무용이 무척이나 뛰어나, 절대 쉽게 볼 상대가 아닙니다.”
설명하던 이여송이 인상을 찌푸렸다. 목단강변에서 열린 승전 축하연에 초대받았던 생각이 났다.
“배신(陪臣)이 총병께 술을 한 잔 올립니다. 받으시지요.”
이미 싸움이 끝나긴 했지만, 전장이니 예법을 간소화한다는 명분으로 신립과 이여송은 나란히 상석에 앉았다. 푸짐한 술과 안주가 두 사람 앞에 놓였다.
“적을 일거에 몰아치는 솜씨가 무척이나 우수하니, 조선군이 그만큼 정예임을 알 수 있소. 도순변사가 군을 움직이는 솜씨도 무첫 훌륭하였소.”
옷을 갈아입었음에도 신립에게서는 피 냄새가 풍겼다. 이여송 역시 피 냄새에는 익숙했지만 술상 앞에서 맡는 피 냄새가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대인께서 거느린 요동 마병이야말로 천하에 제일가는 강병이 아니겠습니까. 저희 소방의 군사는 그에 비할 바가 못 되옵니다.”
신립이 하는 말은 분명히 겸양하는 인사일 것이다. 하지만 이여송의 귀에는 그리 간단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분명 오늘 싸움에서 해서부 군사들은 조선군에 비해 열세였다. 일단 규모부터 절반 이하에, 미리 구축된 방어진에 돌입하는 입장이었으며 화기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쳐부순 조선군 장졸들의 태세는 얕볼 만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군 조총수들은 백오십 보라는 먼 거리에서 명중탄을 냈다. 명나라 조총수들은 적이 70보 정도는 다가와야 발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격할 수 있는 거리가 2배다. 고로 조선군 조총수들이 훨씬 솜씨가 뛰어나다고 볼 수 있었다.
한성에서 데려왔다고 하는 장창병들도 정예였다. 적 기병이 눈앞에 밀어닥치는데도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켰다. 장창이야 명나라에도 있으니 놀라울 게 없지만, 기강과 질서는 탄복할 만했다. 종종 만나는 조선 기병들이야 그 솜씨를 익히 알고 있으니 굳이 칭찬할 것도 없다.
“아니, 귀군 군사들은 충분히 정예였소. 싸우는 모습에 탄복하여 뭔가 포상을 주고 싶으나 아쉽게도 내 가져온 재물이 없구려.”
“괜찮습니다. 말로 칭찬해주시는 것만 해도 황송합니다.”
그 뒤로 연회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이여송 뿐 아니라 함께 초대받은 그의 동생들, 그리고 보조부대로 따라온 요동 일대 여진 족장들까지 참여한 잔치는 그날 밤을 지나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전 병마사 신립은 분명 소장에게 과시하려는 의도로 연회에 초청했음이 분명합니다. 자기 군사들이 얼마나 강한지 보라고 말입니다.”
“그 잔치 자리에서 전과 보고도 있었다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거둔 수급이 3458개, 포로로 잡은 자는 7294명, 해방한 조선 백성이 1840명, 노획한 우마가 총 4721두, 곡식이 4만 석 가량이라고 했습니다. 거둬들인 갑옷이 2245벌, 그 외 병장기는 아직 그 숫자도 세지 못했었습니다.”
아직 한창 연회가 진행되는 중에 참모장이라는 자가 들어와서 보고를 했다. 이여송은 비록 취중이었지만 조선군이 거둔 전과에 대한 상세한 수치를 분명히 들어두었다. 다른 장수들도 함께 들은 만큼, 귀영한 뒤 그 수치를 복원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죽은 자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살아남은 해서부 놈들은 엄연히 우리 소관이 아닌가. 귀관은 조선 도순변사에게 놈들을 송환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는가?”
“요구했습니다. 모두 요동부로 압송해서 합당한 벌을 받게 하겠다고 분명히 말했지요. 허나 도순변사는 조선 땅에서 잡은 도적은 조선 법으로 처결해야 한다며, 조선 임금이 명하지 않는 한 포로를 넘길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만약 조선군이 조금만 더 약했으면 힘으로 포로를 빼앗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여송은 조선군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목격자였다. 휘하에 거느린 철기가 5만이라 해도 4만 가까운 조선군을 확실히 이길 자신은 없었다.
해서부는 요동도사 관할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은 자를 벌하는 권한도 요동도사에게 있다고 몇 번을 반복해서 이야기해 보았지만 신립이 보이는 태도는 철벽같았다. 결국 이여송이 손을 들고 말았다.
“도순변사는 그대로 포로를 끌고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놈들을 내놓게 하려면 칙명이라도 청해 한성에 보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씨 일가가 조선 혈통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의식이 없었다. 조상이 조선에 살았다 해서 어찌 자신이 조선인이겠는가? 자신들은 명나라 관리, 명나라 사람이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요동에서 명나라가 쥔 패권을 계속 유지시키고, 그에 편승하여 자기네 가문의 요동 지배권을 길이 누리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요동의 왕으로 계속 군림하는 것보다 중요한 과제는 없었다.
“해서부가 약화된 건 좋다. 그건 계획대로 됐어. 하지만 우리 생각보다 조선군이 훨씬 강한 건 상정한 범주 밖이었다. 적어도 두어 달은 더 해서부가 부여주를 휩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성량은 조선이 계속 충성스러운 번국으로 남으리라고 믿지 않았다. 조선은 이미 2백 년 전에 요동을 먹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분명히 요동을 넘볼 것이다.
그동안은 비교적 걱정이 덜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조선은 부여주 땅에서 군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부여주를 안정시키기 위한 적절한 힘을 확보한다는 선을 넘어, 장차 요동까지 차지하려는 깊은 계획이 숨어있는 술책일 수 있었다.
“일단은 황제께 글을 올려 조선으로 하여금 해서여진 포로들을 반환하게 해달라고 청하라. 그리고 앞으로 요동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지체하지 말고 조선에 원병을 청하라.”
“놈들을 소모시킬 생각이십니까?”
“그렇다.”
군대를 출동시키는 데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게다가 공들여 양성한 병력이 줄어들면서 입는 타격도 크다. 이성량은 조선군이 더 강해지기 전에 가능한 소모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조선은 소국이다. 요동 뿐 아니라 달단 일대에 이르기까지, 난리가 일어날 때마다 군사를 일으킬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계속해 끌어내면 저들은 재정이 소모되어 극히 곤란한 지경에 빠지리라.”
이쪽에서 충분히 견제, 감시할 수 있을 만큼 적은 규모로만 부른다면 조정에서도 딱 잘라서 각하하지는 않으리라. 칙명으로 출병을 요구하면 조선 임금도 계속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 내 명령으로 동원한 여진 부족들은 잘 해산했느냐?”
“예, 섭섭지 않게 챙겨주었습니다. 불평하는 자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알겠다. 믿어보겠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이성량 자신을 비롯한 이씨 일가는 모두 명나라 신하, 명나라 사람이다. 여러 여진 부족들은 일단은 명나라 판도 안에 있고, 적절히 구슬리면서 손바닥 안에 올려놓고 요리하면 된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이 명나라 밖에서 천하 패권에 영향을 미치는 꼴은 결코 용인할 수 없었다. 필히 미연에 싹을 잘라야 하리라. 일단 천천히 힘을 빼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 26 –
“잘 다녀오셨습니까, 형님.”
“음, 다녀왔다.”
요동도사의 호출에 따라 출병했다 왔건만 소득은 거의 없었다. 이여송은 해서부를 쥐어짜서 여비조로 말 몇 필과 곡식 약간을 내놓게 했고, 그걸 받아왔을 뿐이었다. 전투에 나간 추장이 노획물을 잔뜩 가져오리라고 기대하고 있던 부족민들은 당연히 실망하는 눈길을 보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해서 4부라는 큰 세력을 공격하러 가서 건져온 게 하나도 없다니요? 다들 실망이 무척 큽니다.”
“놈들이 순순히 항복해 버리는 바람에 약탈을 할 수 없었다.”
동생 슈르하치와 둘만 남은 자리에서는 표정에 가식을 띄울 필요가 없었다. 한껏 인상을 쓴 누르하치가 손에 든 투구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요동도사였다면, 놈들이 항복을 하건 말건 우리한테 약탈을 허락했겠지. 그런데 총병은 안 그러더군. 그 젊은 놈은 점잔을 빼면서 ‘놈들이 순순히 항복했으니 약탈하면 안 된다’는 거야. 성인군자 나셨지, 제기랄.”
이성량과 이여송, 두 부자 사이에는 엄청난 연륜 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야인들을 다루는 역량에 있어서도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성량이었다면 일단 소동을 일으킨 범인인 해서부를 벌할 겸, 약탈을 허용하여 보조부대로 동원한 다른 부족들의 불만을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젊은 이여송은 그런 마음씀씀이가 부족했다.
“겨우 말 네 마리에 딱 돌아오는 길에 먹을 식량! 그나마 가는 길에 먹은 식량은 고스란히 우리 부담이야. 이래서야 완전히 손해였어. 빌어먹을 이 총병, 입으로는 한껏 친한 사이처럼 굴더니.”
누르하치는 밖에서 들리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쉴 사이 없이 욕을 퍼부었다. 형을 탓해봤자 별 도리가 없다는 사실을 빤히 아는 슈르하치는 조용히 욕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차라리 조선군 장수들이 더 나았어. ‘건주위에서 이 먼 곳까지 도와주러 와 주어 고맙다’고 말로라도 감사를 표했으니까.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먹을 양식은 넉넉히 있냐고 묻더군.”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충분히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했지. 요동도사나 총병이라면 모를까, 조선인들에게 양식을 구걸할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이 굴욕은 언젠가 꼭 갚아주고 말 테다.”
누르하치나 슈르하치나 아직 젊었다. 장차 대업을 이루겠다는 야망은 있었지만 아직 확고한 전망을 세워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성량 밑에서 졸개 노릇이나 할 생각은 없다. 아직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이번 출정이 소득 없이 지나간 건 이미 지나간 문제고…조선군은 확실히 강력한 존재였다. 앞으로도 평안도 땅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어.”
“저도 동의합니다.”
건주위가 지배하는 땅에서 압록강을 건너면 바로 평안도다. 온하위와 같은 일부 소부족들이 압록강 북안에 살면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맞닿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누르하치는 조선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아직 세력이 미약한 그로서는 조선이나 이성량 같은 거대세력과 충돌해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요즘 세력이 커지면서 노동력 부족이 두드러졌고, 농사지을 일손이 필요했다. 때문에 조선 변경에서 노예를 약간 조달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전쟁에서 조선군이 펼친 활약을 보고 그럴 마음을 싹 접었다.
“해서부 4천 기병이 일거에 박살이 났다. 물론 조선군이 정예병 3만을 동원했기에 그랬던 거지만, 평안도 군사들도 그 못지않은 정예가 아닌가? 그러니 저들에게 덤비기보다는 가능한 좋게 지내려는 자세를 보여야겠지.”
조선 국왕에게 뭔가 공물이라도 바치면서 비위를 맞춰야겠다. 그러면 인접한 다른 부족들과 싸울 때 조선군이 도와줄지도 모르니까. 건주위에서는 요양보다는 평양이 엄연히 훨씬 가까운 도시가 아닌가 말이다.
– 27 –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겨울이지만 동대문에서 서대문까지, 도성을 횡단하는 도로변에는 구경꾼들이 빽빽하게 몰려나와 있었다. 광화문 문루 위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참으로 뿌듯했다.
이 많은 사람이 몰려나온 건 당연히 개선식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부여주에서 돌아온 경군 원정대가 무기를 받쳐 들고 의기양양하게 종로를 걸었다.
“천세! 천세! 주상전하 천세!”
부여주에서 수만에 달하는 외적이 침입했다는 소문은 도성 백성들에게도 화제였다. 안전한 곳에서 소문으로만 외적을 접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이야깃거리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화제임에는 분명했다.
“아버지! 아버지!”
“아이고, 삼식아!”
늘어선 백성들 중에는 출정했던 장병들의 가족도 있었다. 이들은 힘껏 소리쳐 부르며 자기 피붙이를 찾았다. 행진하던 병사들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사상자가 없지는 않았으니, 부름에 답해주는 이가 없는 가족들도 분명 있겠지만….
신립이 어떻게 싸웠는지는 일단 서면으로 보고를 받았다. 작전지도는 훌륭해서 내가 나무랄 점이 없었다. 포로가 좀 더 많았으면 좋았겠지만, 미리 주의를 주지 않은 내 잘못이니 도리가 없다. 신립이 알아서 그런 데 신경을 쓸 사람은 아니니까.
“야인 놈들이다!”
“우~!!”
어느새 초라한 행색을 한 여진 포로들이 광화문 밑을 지나고 있었다. 허름한 가죽옷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인 것이 그렇게 처량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도성에 데려오는 포로 수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대부분 부여주에서 바로 연해주로 보내서 탄광과 도토(陶土) 채굴장에서 노역을 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가는 동안에 지쳐서 죽은 자들이 꽤 된 모양이지만, 그거야 자기들이 자초한 결과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이제 내게 남은 건 전후처리다. 공을 세운 이들에게는 논공행상을 해야 하고 제대로 대처를 못한 자들에게는 벌을 내려야 한다. 일단 정만기는 꼭 해임해야겠다.
이번에 공을 세운 젊은 장수들을 요직에 올리는 것도 필수적인 일이다. 이순신이 부친상만 당하지 않았어도 이번에 한 공훈 했을 텐데 유감이다. 가급적이면 3년 상이 끝나는 내후년쯤 적당한 규모로 뭐가 좀 터져 주면 좋겠다. 이순신 승진용으로 쓰기 좋게 말이다.
한 가지 찝찝한 건 이여송이 와서 마지막 결전을 참관했다는 보고였다. 자기 휘하 장수들과 여진족 부장들까지 한 떼거리나 끌고 왔다는데, 우리 쪽 기밀이라도 캐내 간 건 아닐까? 차후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놈들이 어떤 심산이든, 부리는 술수는 역으로 이용해서 우리가 이득을 얻도록 만들 테다. 일단 이번 난리 때문에 우리가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조치부터 받아내야지? 군비 소모, 인명 손실, 재산 피해, 얼마나 많은가! 땅은 받기 곤란하니 해서부가 가진 가축이라도 받아내야지.
이런저런 온갖 고민을 하면서 개선식 행사를 마치고 경복궁으로 돌아왔다. 침전에서 옷을 갈아입는 중인데 도승지가 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깜짝 놀랄 답이 돌아왔다.
“전하, 동래에서 파발이 왔사옵니다. 왜국에서 신장이 질녀를 보내왔다 하옵니다!”
뭐야? 노부나가 그놈이 정말 조카를 보냈다고? 요도기미를, 조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