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02
2부 080화
– 17 –
“왜인들이 모두 숙소에 들었습니다. 저들 일행이 흩어진 데 대해 다소 불만을 표하였으나, 충분한 숙소가 없음을 말하고 양해하라 하였습니다.”
“잘 하였다.”
일본인들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마주친 첫 번째 현실적인 고민이 숙소 문제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동평관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3백 명이나 되는 인원을 모두 동평관에 넣을 수는 없었다. 간단히 말해 용량초과…였다.
어쩔 수 없이 나가마스와 남자 시종 80명, 왜장 둘만 동평관에 두고, 요도기미와 시녀들은 원각사 안에 있는 비구니 승방에 유숙시키기로 했다. 원각사에는 비구니들 거처 외에도 왕실 여자들이 불공을 드리러 갔을 때 사용하는 방이 있으니, 그 정도 손님은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 골칫거리, 왜병 2백 명은 5위 각 군영에 40명씩 나눠 집어넣기로 결정했다. 왜장 두 명은 이미 말했듯 병사들과 따로 떼어 동평관에 두기로 했다. 전력을 가능한 분산시켜 놓아야 놈들이 엉뚱한 짓을 벌이지 못하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을 맞이하고 숙소를 안내하는 일을 맡은 유성룡에게는 아무 직책도 내리지 않았다. 일본 천황도 아니고 노부나가가 사적으로 보내는 사절 따위를 ‘공식적으로’ 맞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유성룡은 이번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친분’ – 유성룡은 지난번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나가마스와도 만나 면식을 쌓았다 ? 으로 손님을 맞으러 나가는 것으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현직 예조참판이 나가는 접대다. 격은 충분히 높고도 넘친다.
“그래, 고니시 외에 그대가 얼굴을 익힌 자는 없었는가?”
고니시가 통역으로 왔다는 이야기는 일찌감치 보고를 받았다. 노부나가는 고니시를 사실상 준 외교관으로 써먹기로 작정했나 보다.
“혹시나 하여 시종 80명 전원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습니다만, 신이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은 고니시 하나였습니다. 통역으로 꼭 필요하여 따라왔다 하였습니다.”
고니시가 왔으면 왠지 가토도 왔을 것 같은데. 자기랑 그렇게 사이가 나쁜 고니시가 특명을 받아 조선에 간다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가토가 아닐 것 같다. 혹시 이쪽 세계에서는 둘이서 별로 사이가 나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거야 알 수 없지.
유성룡은 가토를 정식으로 소개받은 적이 없어서 못 알아보았을 수도 있다. 금위사에 명을 내려 동평관에 있는 왜인들 중 가토가 혹시 없는지 찾아보게 해야겠다.
찾은 뒤…도 문제일세. 가토는 일단 사절단의 일원이고, 함부로 죽일 수도 없다.
생각 같아서야 왜군이 본격적으로 쳐들어오기 전에 가토고 고니시고 다 죽여 버리고 싶다.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저놈들이 준 피해가 얼마나 컸나? 이쪽 세상에서는 아직 그 죄를 안 지었다고? 아니, 그럼 지금 살려둔다고 쟤들이 그 은혜를 알아서 조선 침공 참여를 거부할까?
문제는 확실한 명분 없이 사신 일행을 죽이면 우리가 준비를 채 마치기도 전에 노부나가가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거다. 아직 전선도 목표한 수량의 절반밖에 건조하지 못했고, 그 위에 실을 총통도 부족하다. 경상도 해안지대 요새화도 미진하다.
“젠장, 내 손에 들어온 가토와 고니시를 처치할 수 없다니.”
노부나가는 자신이 이미 보유한 전력으로도 원정을 감행할 수 있지만 난 아직도 준비가 덜 됐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전쟁준비가 완료되려면 한 5년은 더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는 내가 먼저 도발할 수는 없다. 심히 유감이지만 말이다.
“이제까지 있었던 상례와는 어긋나나, 하인이라 하더라도 동평관을 함부로 벗어날 수 없게 하라. 저들의 수가 너무 많으니, 혹 간자가 섞여 있을지 모른다.”
“예, 전하.”
8명도 아니고 80명이나 되는데 간첩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가마스가 요도기미만 전달하고서 바로 데리고 돌아갈 거라고 해서 그 많은 시종들을 다 데려오게 해 주긴 했다만, 가토 정도 되는 자가 시종들 사이에 섞여 있다면 첩보임무 외에 다른 용무는 없을 거다.
어쩌면 시종 80명 전원이 그처럼 위장한 스파이일지도 모른다. 아예 첩보를 위해 훈련받은 닌자들이 섞여있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호위병들은….
“왜희를 호송하는 왜장은 이름이 뭐라고 하는가?”
왜장 이름은 처음에는 장계에 적혀있지도 않았다. 나중에 온 장계를 보니 ‘?田昌幸’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건 내가 확실히 모르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역관을 불러다 이 이름은 뭐라고 읽는지 물었더니 ‘왜인들 이름은 저마다 읽는 법이 달라 직접 물어봐야만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어이가 가출하는 대답이 있나? 니미 젠장이다.
아무튼 기다리면 도착할 테니 다른 일 하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 확인할 때가 됐다. 내 귀에 익은 이름일까?
“신이 물어보았더니 주장(主將)은 사나다 마사유키, 부장(副將)인 청년은 사나다 노부시게라 하였습니다. 두 장수가 부자 관계이고 거느린 병사들도 모두 자기들 가신이라 하옵니다.”
“자, 잠깐. 지금 사나다 마사유키, 노부시게라 하였느냐?!”
한자 이름은 못 알아봤다만, 사나다 부자라면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겨우 2500명으로 도쿠가와군 3만 8천의 발목을 잡은 아버지 마사유키! 오사카 여름의 진에서 이에야스 군을 몰아쳐 본진까지 뚫고 들어갔던 아들 노부시게! 진짜 사나이들 아닌가!
아니, 이런 인재들이 왜 고작 요도기미 따위를 호위해서 조선에 온 거지? 노부나가가 자기 조카를 그렇게 아꼈나? 내 입장에서는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요도기미 때문에 망하게 되었을 사나다 노부시게가 요도기미를 경호해서 조선에 오다니?!
이건 정말 사연을 알아봐야 할 일이다. 나가마스가 경복궁에 인사하러 올 때 필히 사나다 부자도 함께 데리고 들어오도록 해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전하. 신장의 동생 나가마스, 즉 장익이 이르기를 하루빨리 조카와 함께 전하를 배알하고 싶다 하는데 뭐라 답하면 좋겠사옵니까.”
잠시 멍해 있는데 유성룡이 고개를 조아린 채 물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모레 아침에 들라 이르라. 그만하면 여유 있게 준비가 되지 않겠느냐.”
“예, 전하.”
– 18 –
“궁궐에 들어가 조선 국왕을 알현할 사람은 우리 다섯 사람이면 충분하리라 본다.”
나가마스가 자기 앞에 있는 네 사람을 지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시바 공에게도 들었다만, 그대들은 조선의 정세를 가능한 상세히 살펴 돌아가는 임무를 받았다고 했지. 그럼 굳이 다른 시종들을 데려가서 기회를 낭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맞는 말씀입니다.”
고니시가 고개를 숙였다. 통역으로서 조선인들을 접하면서 중요한 일을 많이 맡다 보니, 아무래도 고니시가 네 사람 중에서 선임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가토 기요마사는 지금의 상황을 매우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가마스 앞이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차차는 한껏 들떠서 궁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고…헌데 이상한 일이 있어. 유 공이 아까 전하기를, 국왕의 당부가 있었으니 사나다 부자를 꼭 데려오라고 했었지? 연유가 무엇일까?”
“아마 우리 군사들이 변란이라도 획책하지 않을까 해서 경계하고자 부르는 거겠지요. 우리 정예 2백이 왕궁을 급습하기라도 할까봐 두려운 게 아니겠습니까?”
가토 요시아키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나다 가문 병사들은 분명 정예다. 하지만 모든 무기와 갑옷은 조선군이 압류했고 병사들도 조선군 진영 5개소에 분산되었다. 이래서야 몰래 궁궐을 습격할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이루기는 난망이다.
“습격이 걱정된다면 병사를 분산시켜 억류한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굳이 대장을 불러 국왕이 직접 만나볼 필요까지는 없을 텐데.”
“어쩌면 국왕이 작년 우에다 성 전투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던 참에, 그 승리의 장본인이 왔다고 하니 직접 만나보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오타니 요시츠구가 차분하게 한 마디 했다. 하지만 나가마스는 회의적이었다.
“설마 조선 국왕이 그토록 우리 사정에 밝을까? 모르겠네. 내일 가보면 알게 되겠지.”
한숨을 쉰 나가마스는 조선 국왕이 사나다 부자를 부른 이유에 대한 추측을 포기했다. 그는 자기 능력이 닿지 않거나 자기가 알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게 그동안 속 편히 살아온 비결이었다.
– 19 –
“누르하치가 내게 진상품을 올렸다고?”
“그러합니다, 전하.”
성이 결혼식이야 어차피 내가 좌우할 몫이 없다. 그래서 그쪽은 신경 끄고 열심히 일하는데 평안도에서 올라온 장계가 눈에 들어와서 먼저 읽고 깜짝 놀랐다. 추장직에 오르고도 그동안 데면데면하던 놈이 웬 선물을 바쳤지?
“전하의 덕을 평소부터 흠모해 왔다고 하면서 강계부사에게 준마를 한 필 가져왔다 합니다. 지금 서북에서 내려오는 중입니다.”
“고맙구나. 평안도에서 면포를 적당히 내려 주도록 하여라.”
누르하치에게 말에 대한 답례로 면포를 주라고 한 건 내가 짠돌이라서가 아니다. 북방에서 면포가 상당히 가치 있는 상품이면서 교환수단이기 때문이다. 은은 우리가 쓸 것도 모자라고, 저화는 줬다가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게다가 건주위는 일단은 법적으로 명나라 영토다. 명나라는 자기 권역에 있는 여진족들이 조선과 조공-책봉관계 비슷한 사이가 되는 것을 국초부터 무척 싫어했다. 굳이 비싼 선물을 답례로 내려 명나라 조정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누르하치는 이성량이 내린 명에 따라 출병했는데, 그때 우리 군사들이 해서부를 섬멸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우리 군사들의 위용을 보았으니 겁을 먹고 전하께 허리를 숙이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을 것 같은데…누르하치는 절대 단순한 야만인이 아니다. 우리가 명분 없이는 자기를 공격하지 못할 것도 알고, 자기가 가진 힘과 또 우리가 가진 힘의 차이도 역시 분명하게 알고 있다. 말 한 필 받았다고 방심하면 절대 안 된다.
“이성량은 여전히 우리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으니, 누르하치가 소를 제공할 의사가 있는지 한번 타진해 보도록 하라. 아마 저들은 분명 응하리라.”
겨울이라 중단했던 사민은 이번 달부터 재개했다. 그동안 이송을 미룬 사민대상자 3만 명이 일시에 북으로 보내졌다. 저번 겨울에 상실한 인구가 그대로 메워진 셈이나, 농우가 부족한 문제는 아직 해결이 안 됐다. 이거, 누르하치를 통해 풀 수 있지 않을까?
“건주위는 작은 부족입니다.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가축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이 소유한 가축만 입수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소를 필요로 하며, 적절한 대가를 내줄 의사가 있다고 슬쩍 내비치기만 해도 저들은 당장 소를 만들어올 것이다.”
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부족하다. 건주위에서도 농사를 짓느니만큼 자기네 소는 절대 팔지 않을 것이다. 아마 방어력이 약화된 해서부 부락을 털어서 팔 소를 구해오리라.
분명 평소 사던 소 값에 어느 정도 프리미엄이 붙겠지만, 그 정도 비용은 감수하는 수밖에 없겠지. 어차피 소 값은 소비자인 백성들에게 할부로 받아내니까 국고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누르하치에게 사자를 보내 말을 바친 일을 치하하고, 소를 가져오면 대가를 주리라고 살짝 언질을 주어라. 그러면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소를 가져올 것이다.”
이성량은 여진 부족들이 가진 세력이 평준화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누르하치가 가서 약해진 해서부를 털어도 아마 방관할 것이다. 이성량은 반항할 가능성이 있었던 해서부를 약화시키고 누르하치는 노획물을 얻고 우리는 농우를 얻으니 어찌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 아니겠는가.
덤으로 누르하치는 원정을 성공시키면서 건주위 자체를 성장시킬 수도 있다. 주변 부족을 정복하는 것만이 성장하는 길은 아니니까. 약탈을 성공시켜 성과를 내는 우두머리에게는 한몫 끼워달라는 패거리들이 몰려들게 마련 아니겠는가.
누르하치가 성장하면 명나라와 우리 사이에서 효과적인 완충지대를 형성할 수 있다. 본래 역사에서 청나라가 조선을 짓밟고 명나라를 쳐부순 건 모든 여진족을 통합하면서 힘을 모았기 때문인데, 이쪽에서는 만주의 절반을 조선이 먹었다. 당연히 여진족 중 상당수는 내 백성이다.
여진족 통합에 한계가 있으니만큼 누르하치도 조선을 넘보거나 명나라를 쓰러트릴 정도까지 자라지는 못할 거다. 이제 8월에 북경에 보내는 사신을 통해서 이성량만 날려버리면 확실히 날개를 달고 성장을 시작하겠지.
이성량을 날려버리는 건 간단하다. 장거정을 날렸을 때처럼 만력제한테 직소할 테다. 비록 그 게으름뱅이가 요즘 완전히 태업모드로 들어갔다고 하지만, 돈 문제에는 지독하게 민감하니 이성량이 요동에서 얼마나 해먹고 있는지 고발하면 쉽게 넘어가지는 못할 거다.
이성량이 요동도사 자리에서 밀려나고 북경에서 책상물림이 새로 내려오면, 그게 누구든지 북방은 크게 흔들릴 거다. 이성량만큼 여진족들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까.
비록 우리가 이성량과는 다소 껄끄러운 상태지만, 다른 여진 부족들은 해서부가 박살나는 꼴을 보고서는 지금 건주위가 하듯 우리 눈치를 보고 있다. 덕분에 북방에서는 요즘 비교적 평온이 유지되고 있다. 잡다한 소부족들도 도둑질을 멈추었다.
“지금이 기회다. 부여주 관찰사에게 명을 내려 황명이 있었다고 선포하게 하고, 각 부족이 아직도 가지고 있는 칙서를 모조리 압수하라. 저항하는 자들이 있으면 용서 없이 쳐서 깨트려 반도들이 처할 말로를 보여주어라.”
위소 폐지와 칙서 무효화는 지난번에 확답을 듣지 못했다. 그게 다 태조 주원장이 시행했던 정책이다 보니 만력제도, 조정 상서들도 결정할 수 없었던 탓이다. 다만 명나라 조정에서도 목단강 이동 땅은 조선 땅이라고 확실히 인정한다. 그럼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 것이다.
“전하, 저들은 지금도 칙서를 들고 목단강을 넘어가서 요동부에 조공을 바치고 희사를 받아 돌아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칙서를 빼앗고 이를 금하면 반발이 클 터인데, 이를 대신해 다른 이익을 안겨주지 않으면 필히 저들이 불만을 품을 것입니다.”
영의정 이영송이 진언했다. 맞는 이야기라 나도 수긍했다.
“칙서를 순순히 내놓은 자들에게는 내 이름으로 교서를 내려 매년 그 교서에 기록한 대로 은상을 내릴 것이다. 허나 내놓지 않다가 힘으로 져서 내놓은 자들은 아무 보상도 얻지 못할 것이니, 각 부족에서는 현명하게 판단해야 하리라.”
칙서는 놈들을 명나라와 연결하는 마지막 법적 고리다. 위소 정도야 뭐 그저 부족 이름으로 쳐도 되지만, 칙서는 아니다. 그게 있는 한 놈들은 명나라와 조선에 이중으로 속한다. 그런 건 이제 끝낼 때가 됐다.
“이제 사민으로 야인들이 사는 땅을 계속 우리 백성으로 둘러싸면, 놈들도 점점 힘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그러면 북방도 안정되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감자만 공급되면 풍요로워지기까지 하겠지. 북방 경영도 얼른 해나가자. 휴우, 이제 내일은 요도기미 일행을 만나야 하는군. 도대체 어떤 애일지 궁금하다. 자기를 팔아먹…은 외삼촌을 원망하고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