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17
2부 0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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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는 지도를 보면서 천천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제 동쪽은 다 제압했다. 호조 공략 임무를 맡은 타키가와 카즈마스가 훌륭히 임무를 해결한 덕분이다.
과거 아케치가 반역을 일으켰을 때, 타키가와는 호조 군과 대치하다가 참패한 적이 있었다. 겨우 1만 8천 병력을 가지고 5만 대군과 싸워야 했던 데다가, 아케치 때문에 혼란이 일어난 오다 군 본진에서 제대로 지원도 해주지 못해 어쩔 수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노부나가는 일전에 마음먹은 대로 타키가와에게 설욕할 기회를 주었다. 무려 9만 병력으로 공성에 나선 타키가와는 4개월에 걸쳐 호조 우지나오의 거성인 오다와라 성을 포위공격했다. 이어지는 강공에 외성은 하나씩 무너졌고 얼어붙은 해자는 재와 시체로 덮였다.
동원한 병력 중 절반은 노부나가의 직할이 아니라 인근에서 동원한 다른 병력이다. 하지만 이들도 일단은 노부나가 측 병력이고. 결사항전하는 호조 군을 쳐부순 타키가와의 역량 역시 평범한 솜씨는 아니었다. 그러면서 수군 1만으로 바다까지 틀어막았다.
전쟁에 적당하지 않은 겨울철에, 우에스기가 무너질 때보다 더 큰 병력을 투입했으면서도 이를 능숙하게 움직이는 오다 측의 역량에 겁을 먹은 동북지방 제 영주들은 잇달아서 순종의 뜻을 표했다. 호조 우지나오와 동맹을 맺고 있었던 다테 마사무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모든 외성이 무너지고 혼마루 하나만 간신히 살아남은 상황까지 왔다. 마침내 패배를 인정한 호조 우지나오는 전면 항복했고, 자신 뒤에서 실권을 쥐고 있던 부친 우지마사와 함께 할복에 처해졌다. 우지나오는 이에야스의 사위였지만 장인에게 구명을 받지는 못했다.
이제 동쪽에서는 더 이상 노부나가에게 맞설 상대가 없다. 데와를 지배하는 다이묘 모가미 요시아키는 이에야스와 친분이 있었던 덕분에 일찌감치 노부나가 편에 섰다. 요시아키의 조카(누이의 아들)면서 대립하는 관계였던 오우의 다테 마사무네도 항복했다. 이제 누가 있는가.
자연스럽게 관심은 서쪽으로 돌아갔다. 이제 일본 66주에서 남은 땅은 규슈뿐이다.
지금 규슈에서는 시마즈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다른 두 다이묘를 몰아치고 있다. 매복으로 당주 다카노부를 잃은 류조지는 규슈 북부로 밀려서 숨만 붙어 있고, 오토모 소린은 간신히 방어선을 유지하면서 구원요청만 죽어라 보내고 있다.
본래는 히데요시에게 유사시 오토모 구원을 위해 출병하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소린이 말 그대로 자기 내장이라도 빼서 넘길 만큼 절박해질 때까지 출동을 미루라 명하고, 군단만 주고쿠에 이동시켜 놓고 히데요시는 아즈치로 소환해두었다.
아마 시마즈는 규슈 전체를 손에 넣기만 하면 노부나가와 맞설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상경전을 벌여 교토를 손에 넣고 아즈치를 함락시킨다거나 하는 황당한 계획은 아닐 것이다. 규슈 전체의 힘을 모아 싸우거나, 규슈를 기반으로 해서 협상을 할 의도겠지.
하지만 그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성공할 가능성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대결을 택한다면 최소한 세 방향에서 규슈에 상륙하는 30만 대군을 만날 것이고, 협상을 택한다면 점령한 영토를 모조리 토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시코쿠의 호소카와처럼.
당분간은 호조 정복 뒤처리를 위한 논공행상을 하면서 두고 보자. 소린이 직접 바다를 건너 오사카에 와서 구원을 청할 때까지. 그때까지는 히데요시를 놀려 둔다. 지금처럼 조선 왕자와 풍류놀음이나 하게 두면 족하다.
정말이지, 조선 국왕이 차차를 볼모로 받은 데 대한 답으로 자기 오촌 당숙을 볼모로 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듣기로 이 당숙은 어려서부터 국왕과 함께 자란, 형제나 다름없는 매우 친한 친척이라고 했다. 더구나 그 장남이 차차의 남편이 되었다.
이토록 자기와 친한 이의 집안과 차차를 결혼시켰을 뿐 아니라 볼모로까지 보내다니, 조선 국왕은 진실로 이쪽과 잘 지내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한 셈이다. 노부나가로서도 이에 성의로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을 공격하는 일은 삼가야겠군. 적어도 당분간은.”
대륙을 원정하여 명나라를 쓰러트리고 북경에 오다 가문의 군기를 꽂는 일은 과거부터 그가 가지고 있던 꿈이었다. 하지만 이를 이루자면 조선을 통해야만 한다. 조선을 짓밟건, 협력자로 끌어들이건 그 땅을 지나야만 명나라에 갈 수 있었다.
만약 조선을 거치지 않는다면 규슈에서 직접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 보급선은 너무 불안해서 절대 유지될 수 없다. 류큐를 통과하는 길도 마찬가지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명나라를 섬기고 있으니, 분명 그 해로를 중도에 끊으려고 들 것이다.
“천천히, 우리 편으로 만들어 볼까.”
노부나가는 조선이 영토를 넓히려는 야심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선은 과거에 명나라로부터 엄청난 영토를 얻어낸 적이 있다. 백 년도 안 된, 별로 오래되지도 않은 시기의 일이다.
볼모로 온 하성군은 자신의 큰할아버지인 3대 전 국왕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인 끝에 그 땅을 중국 황제에게 얻어냈는지, 아주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워낙 큰 땅을 한 번에 얻어냈던 탓에, 최근에야 그 땅을 완전히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조선인들도 영토를 넓혔을 때 받는 그 짜릿한 느낌을 안다. 그렇다면, 그 달콤한 기분을 백 년 만에 한 번 더 느끼고 싶은 욕심이 과연 없을까?
조선이 싸워서 정복하지 못할 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에서 소모할 전력과 조선이 보유한 전력을 모두 합쳐서 명나라 원정에 투입한다면 훨씬 효과적인 싸움을 벌일 수 있을 것도 분명하다.
조선 국왕이 바보가 아니라면 이 계획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가 동맹군이 되어 중국 원정에 동참한다면, 노부나가는 기꺼이 그에게도 명나라 영토를 나눠줄 생각이었다. 조선은 중원에서 천축까지 크게 뻗어나간 새로운 제국의 제후국이 되어 함께 번영을 누릴 수 있으리라.
“그럼 준비가 되는 동안 동쪽을 한번 건드려 볼까.”
조선으로 가는 반대편에는 에조치가 있다. 미개한 에조들이 사는 척박한 땅이다. 그 땅은 과연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까?
오다 측에서는 이제까지 에조치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풍토와 주민이 다른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일단 너무 멀었다. 중간에 낀 다른 다이묘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바뀌었다. 모가미 요시아키가 항복했으니 노부나가의 판도는 단숨에 북쪽 바다까지 뻗쳤다. 바로 그 너머가 에조치인 것이다.
노부나가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래, 요시아키에게 명령해서 에조치에 원정대를 보내게 하자. 지금 당장 에조치 전체를 정복할 필요는 없다. 주민이 얼마나 되는지, 지리는 어떤지만 파악해도 된다.
어쩌면 그 땅이 대륙 북쪽으로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조선을 건드리지 않고도 중국 공격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어딘가 새로운 땅을 얻을 수 있는 통로일지도 모른다.
노부나가는 책상 위에 놓인 지구의를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세상에는, 일본 바깥에는 아직 엄청나게 많은 나라들이 있었다. 그가 지배해 주기를 바라는 나라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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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페데스 신부가 공상에 너무 깊이 빠진 모양인데.”
편지를 손에 든 프로이스 신부가 한숨을 쉬었다. 노부나가가 배려해주는 덕분에 선교사업은 순조롭고, 일본에서는 다소 여유도 생겼다. 그래서 새로 파견된 선교인력들을 모두 조선으로 보내주었다. 아무래도 일손이 필요한 곳이니까.
조선 선교를 맡은 세스페데스 신부에게서는 두 달에 한 번 꼴로 보고서가 온다. 조선에서 진행되고 있는 선교 상황을 적은 이 보고서에는 신자 수 추이에서 조선 국왕이 받기를 원하는 물품의 세목까지 많은 정보가 실려 있었다.
“용병이라. 마닐라에 연락을 보내봐야겠군.”
스페인 병사들은 늘 황금에 굶주려 있다. 유럽에서 주는 만큼 급료를 준다고 하면 당장에 열 명이 아니라 백 명이라도 모을 수 있으리라. 그중에 불한당이 아닌 괜찮은 자를 골라내는 것도 큰 일이다만.
3월에 도착할 배에 다른 짐은 필요 없으니 초석만 가득 실어서 보내달라는 요청도 확실히 접수했다. 인도에서 제조하는 초석은 순도가 높아 어디서든 인기가 높다. 일본인들도 사실상 남만선이 실어오는 인도산 초석에 화약 생산을 의존하고 있다.
조선인들이 본격적으로 인도산 초석을 사용하면 예수회는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으리라. 사랑과 평화를 전해야 할 선교회가 무기를 거래한다는 데서 이율배반이 또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포를 주조할 수 있는 자, 야금술이 뛰어난 대장장이, 갈레온을 건조할 수 있는 배 목수, 광산 찾는 데 재주가 있는 탐광업자…보수는 모두 금으로 지급하겠단 말이지.”
그 내용이 무엇이든, 조선 국왕의 요청을 들어주는 건 필요했다. 그래야만 선교의 자유를 인정받아 조선 백성들의 영혼을 구해낼 수가 있다. 지금도 최선을 다해 국왕의 요구에 응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에서 조금씩이나마 교세가 늘고 있다.
다만 세스페데스의 편지에는 기쁜 소식만 적혀있지는 않았다. 조선 국왕이 사제왕 요한의 후손이고 솔로몬 왕의 비술을 물려받은 모양이라는 황당한 소리가 이번에도 적혀 있었다.
“사제왕 요한 같은 건 없다고 결론이 난지 오래이건만, 아직도 이렇게 미련을 갖는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그것도 바로 내 옆이라니.”
사제왕 요한, 전설 속에 있는 동방의 기독교 군주. 중세에는 그의 왕국이 아시아 어딘가에 있다고 여겼지만 그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왕국은 아프리카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가 발견되면서 사실로 입증되었다.
애초에 사람들이 요한의 왕국을 찾았던 이유는 십자군 때문이었다. 성지를 점령한 무슬림 세력을 동서에서 협공하기 위해서 동쪽에서 동맹자를 구하려는 목적이 컸다. 하지만 십자군은 이제 끝났다. 유럽은 갈라졌고, 성지 탈환을 위해 하나가 된 유럽은 더 이상 없었다.
아시아에서 사제왕 요한을 찾는 이들은 이제 꿈 많은 몽상가들 정도였다. 더구나 조선이 그 후보라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일본인들은 분명 말했지. 조선인들은 단 한 번도 그리스도를 맞이한 적이 없다고. 그런데 조선 국왕이 사제왕 요한일 리가 없지 않은가.”
요한은 단순히 ‘그리스도교를 믿는 군주’가 아니다. ‘그리스도교 국가를 다스리는 군주’다. 헌데 단 한 번도 그리스도교 국가가 아니었던 조선 국왕이 요한일 수는 없었다. 일단 들어온 보고를 임의로 묵살할 수는 없기에 마카오로 보내고는 있지만, 한숨이 나는 일이었다.
“시커먼 연기를 내는 기계? 이게 솔로몬의 악마라고?”
이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직접 보기 전에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 프로이스는 언젠가 한 번 시간을 내서 직접 조선에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도대체 세스페데스가 무엇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는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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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에 달하는 군사들이 대열을 갖추었다. 무장도 완비했다. 검게 색칠한 조총이 둔한 빛을 내는가 하면 창날은 번쩍이는 은빛을 냈다.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인지 아는 이가 있는가?”
내 질문에, 주변에 있던 무장들 중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선전관 하나가 겨우 입을 열었다.
“16년 만인 줄 아옵니다.”
“그래! 16년!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노라.”
더 길게 욕하고 싶었지만, 내가 나 자신을 욕하는 것도 남들 보기에는 난감한 일이라 입을 다물었다. 내가 보기에야 경성군이 남이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내 과거 행동을 비난하는 모습으로밖에는 비치지 않을 테니까.
뭘 비난하느냐고? 지금 뭐 하는 거냐고?
간단하다. 지금, 나 사냥 나왔다.
“전하, 삼군이 모두 대형을 갖추고 진격할 채비를 마쳤습니다.”
이번 사냥에서 총지휘를 맡은 장수는 도총관 신립이다. 지난번 전쟁에서 해서부 야인들을 아주 휩쓸어버리는 대공을 세웠지만, 무장으로서 딱히 더 올라갈 직책이 없어 여전히 도총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병조판서는 행정가를 앉혀야지, 돌격대장을 앉힐 자리가 아니니까.
“시작하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립이 얼굴에 희색을 띠면서 달려 나갔다. 곧 대기하고 있던 취타대 군사들이 치는 북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면서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도 오랜만이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천리경으로 벌판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연병장에서 하는 기동훈련, 제식훈련이야 제법 많이 했다. 하지만 그동안 사냥은 하지 않았다.
본래 군대를 동원한 사냥은 그저 유희삼아 하는 게 아니다. 적(짐승)을 찾아 몰아내고, 적이 기습을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연습을 하고, 도주하면 퇴로를 막아 포위한 뒤 섬멸하는 군사훈련이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사냥을 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사냥을 하는 데 소요되는 돈과 인력, 그리고 민폐다. 동원되는 군사와 백성들에게는 본래 보수가 없다. 따라서 생업을 팽개치고 나와야 하는데 자기 먹을 것까지 지참해야 한다. 게다가 짐승을 쫓는 발길은 농경지도 짓밟기 일쑤다.
때문에 조선 초기부터 사대부들은 임금이 사냥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왕실에 아직 무인의 기풍이 진하게 남아 있던 초기에는 신하들이 뭐라고 하건 사냥을 했지만, 세조 이후로 대폭 감소했다. 나도 잔소리 때문에 대규모 사냥은 거의 못 하고 측근들만 데리고 다녔었다.
헌데 내가 죽은 뒤로 사정이 더 나빠졌다. 신씨를 닮은 탓인지 황이와 환이는 둘 다 사냥을 별로 즐기지 않아서 2년에 한 번, 3년에 한 번 하는 식으로 군사들에게 사냥을 시켰다. 한술 더 뜬 경성군은 아예 즉위 이후 한 번도 사냥을 하지 않았다. 유학자들은 이를 칭송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해봐야 별 수가 없다. 내가 사냥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사냥을 재개할 생각이었지만, 그동안 겨울마다 뭔가 사건이 생겼다. 전쟁에, 가뭄에….
이제야 겨우 만사가 정리되고 자리가 잡혔다. 농사철이 제대로 시작되기 전에 대규모 사냥 한 번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디 군사들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들이기를 기대하면서 장막으로 돌아갔다.
장막에는 따뜻한 술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상희가 있었다. 활짝 웃으면서 반겨주는 상희를 보고 기꺼운 마음으로 말에서 내리는데,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낀 대사헌 정철이 장막 입구에 서 있다가 잔소리를 했다.
“전하, 이제 곧 농사철이 오는데 각지에서 가뭄으로 농사가 걱정된다는 상소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품행을 주의하며 하늘에 제를 올리셔도 모자랄 판에, 전국에 걸쳐 사냥을 하라고 명하시니 이 어찌 바른 일이겠습니까?”
정철이 이런 소리를 하니 단박에 배알이 꼴렸다. 틈만 나면 술을 드시고 술고래가 되시는 분이 나한테 가뭄에 품행을 운운하다니,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나? 어디 자기부터 하늘을 보고 거리낌이 없을 만큼 품행을 바르게 해보시지 그래.
“대사헌은 들으라! 내가 사냥을 하건 말건 올 비는 오고 오지 않을 비는 오지 않는다. 또한 이번 사냥에서 잡은 짐승들은 군사들에게 그 고기를 모두 나누어줄 것이고, 가죽은 국가에서 용처에 맞춰 쓸 것이다. 내가 홀로 즐기자고 하는 사냥이 아니다.”
정철의 말대로다. 도성 일대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지방군에게도 사냥을 벌이라는 명을 내렸다. 훈련도 훈련이지만, 가죽을 수집할 필요가 있어서다.
모든 갑옷을 철갑으로 할 필요는 없다. 일선에서 적과 맞붙는 살수들이라면 모를까 궁수나 조총수, 경기병에게는 가죽 갑옷으로도 충분하다. 경성군 시절에 관리부실로 낡아버린 갑옷을 보충하고 앞으로 터질 전쟁에 대비하려면 가죽이 필요했다.
멧돼지 가죽, 사슴 가죽은 갑옷에 쓴다. 곰, 표범, 호랑이 가죽은 교역품으로 활용한다. 그 외에 잡다한 다른 짐승들도 잡아만 놓으면 용처는 있다. 게다가 사냥한 고기도 군사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겠는가.
내가 놀자고 하는 사냥도 아닌데 잔소리라니, 짜증이 날 뿐이다. 언제쯤 이런 소리를 안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