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24
2부 102화
– 18 –
체포와 심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가 위관 ? 일종의 특임수사관 – 이산해에게 명령한 건 단 한 가지였다.
“무도한 언사를 일삼은 자들을 모조리 색출하되, 심문을 하다가 죽여서는 안된다. 죄인들은 모두 살아서, 그리고 제정신으로 엄중한 심판을 받게 하라.”
한참 심문과 재판이 이어진 후에야 정여립이 무슨 수단으로 정철의 첩을 심문했는지 알게 되었다. 제기랄, 이 무도한 놈. 손톱을 단번에 뽑는 것도 아니고 조각내서 하나씩 뜯어내다니, 그거 정말 잔인하잖아! 생각만 해도 아프다.
정영립 말마따나 손톱 뽑기는 원래 조선에 없던 고문을 내가 처음 도입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손톱을 뽑았던 건 딱 두 번밖에 없었다. 전라도를 침입한 왜구들을 잡았을 때 본보기로 한 번, 그리고 완원군 역모사건 때 연락책을 맡았던 놈한테 한 번이다.
그런 지독한 고문을, 그것도 여자한테 시전하다니. 정여립한테 생겼던 호감이 단방에 짜게 식는다. 이거, 멋대로 굴게 두면 안되겠다. 정철 건이 종료되는대로 잘라버려야지.
정여립이 정철 본인에 대한 형문을 망설인 이유를 듣고는 웃어버렸다. 아니, 아무려면 내가 이 판에 정철이 갖는 집안 빽 따위를 신경쓸 것 같았나?
누나가 선왕 후궁? 그래, 법적으로 굳이 따지면 외삼촌인 셈이지. 하지만 국구인 윤승구가 잡혀들어오는 판이다. 후궁의 동생, 그나마 후궁 본인은 20여년 전에 죽었고 후사도 없는데 ? 후사가 있었으면 경성군이 아니라 걔가 왕이 됐겠지 ?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월산대군의 손자며느리인 작은누나나, 하성군의 첩인 조카는 그만한 비중도 없다. 한마디로, 정여립이 아예 대놓고 내 눈치를 안 보고 정철을 바로 족쳤어도 나는 눈도 깜짝 안 했을 건데 왜 애꿎은 첩을 조졌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족쳤는지, 그 덕분에 정철의 첩은 지금 제대로 된 대화와 심문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상태를 보고 돌아온 좌승지의 보고로는 아예 반쯤 정신이 나가서 멍하니 앉아있더라나. 과연 그 자백이 진짜 자백이기나 한지 모르겠다. 정여립이 쓴 각본에다가 수결만 했을지도.
어쨌든 첩이 자백한 덕분에 정철과 얽힌 서인 쪽 인사 3백 명 가까이가 걸려들었다. 당연히 거의 전원이 역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부인했다. 몇몇은 적당히 매 좀 치니까 국정에 대한 불평 정도까지는 인정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만으로는 저들이 역모를 꾸몄다고 보기 곤란하옵니다.”
내 푸념을 듣고 이런 가차없는 지적을 한 사람은…뜻밖이겠지만 중전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중전이니까 할 수 있는 조언이기도 하다. 누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내게 정치적 조언을 하겠는가. 죽으려고 환장하지 않은 다음에야 말이다.
“전하께서는 전하의 뜻을 쉽게 따르지 않는 서인들을 조정 상층부에서 몰아내고자 하시지요? 허나 역모란 그저 불평 몇 마디 한 정도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저들을 벌하자면 이제까지 밝혀낸 이상의 증거가 필요합니다.”
내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던 중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정말이지 중전은 때로는 나보다 훨씬 냉철하고 현명했다.
“체포된 자들의 집을 뒤져 저들이 주고받은 서한을 모두 뒤져내고 있소.”
“글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정변을 일으키려면 많은 군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저들이 그 군사들을 어디서 모으려고 했는지, 전하 대신에 누구를 추대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계획까지는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저들이 충분히 추대할법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라고 해서 아예 그런 쪽을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단지 정철을 비롯한 주동자(?)들 주변을 캐다 보면 뭔가 끌어넣을만한 빌미가 나오리라 여겼는데 뜻밖에 아직 찾지를 못했을 뿐이다. 여기서 중전이 한 마디 더 한 이야기가 내게 힌트를 주었다.
“전하께서 바꿀 필요를 크게 느끼시는 자리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또한 그 직위에 앉아있는 이들 중에서 정철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겠지요. 그러하시다면 그들이 정철과 모의하여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지는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중전이 주는 실마리를 받아들자 갑자기 머릿속이 팽팽 돌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이번에 터진 역모는 기획으로 터트린 역모다. 기왕 홍수를 일으키기로 했다면, 앞을 가로막은 제방에 발을 멈출 게 아니라 부수고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고맙소, 중전. 덕분에 과인이 나갈 길을 찾았소이다.”
답답한 김에 잠시 들렀던 교태전에서 뜻밖의 자극을 받았다. 역시 정무에 있어서는 중전이 상희보다는 훨씬 뛰어나다. 조선 세도가의 딸로 태어나 중전으로 살아온 20년 가까운 세월은 역시 무서운 거다.
“당장 위관 이산해를 편전으로 들라 하라!”
교태전을 나서며 명령하자 수행내관이 즉시 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달려갔다. 서둘러 편전을 향해 걸어가면서 머리를 굴렸다. 자, 마침 적당한 자리에 있는 적당한 사람이 있다. 연관성을 찾아내기만 하면 간단한 일이다.
– 19 –
“죄인 윤두수는 당장 나와 오라를 받으라!”
전주성 안에 자리잡은 전라감영은 득달같이 들이닥친 금부도사와 나장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관아 안에서 업무에 집중하고 있던 관찰사 윤두수가 깜짝 놀라 밖으로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윤두수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기절초풍할 만한 모습이었다. 전주부 관아에서 일하는 이속과 군사들은 모두 한편으로 밀려나 있고, 의금부 나장들이 사방을 헤집으며 뒤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한 번 더 고함을 지르자 금부도사가 나타나 윤두수 앞으로 걸어왔다.
“전라도 관찰사, 윤두수 영감이 맞으시지요? 역적으로 추포하라는 어명이 내렸으니, 당장에 꿇어 엎드려 오라를 받으시오!”
윤두수는 금부도사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았다. 청요직 천거를 해주지 않았다는 작은 이유로 스승을 비난하고 당파를 바꾼 패륜아, 정여립이었다.
“그대는 지금 무슨 무도한 짓을 하는가! 이 내가, 역모에 가담했다고 누명을 씌우다니!”
윤두수는 단 한 순간도 역심을 품은 적이 없다고 하늘에 맹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여립 쪽에서도 할 말은 있었다.
“영감께서 대사헌과 친분이 깊었음은 모르는 이가 없소. 대사헌이 역모를 주동하면서 이에 필요한 군사는 전라도에서 동원하려 했음이 밝혀졌으니, 영감께서 가담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 계획이 성립하였겠소? 당장 오라를 받으시오!”
정여립이 호통을 치자 곧바로 나장들이 달려들어 윤두수의 양쪽 팔을 움켜잡았다. 말도 안 되는 누명에 격분한 윤두수가 몸을 두틀며 고함을 질러댔으나 소용이 없었다.
“네 이놈들! 내가 충심으로 상감을 섬긴 세월에 단 한 점 부끄러움이 없거늘, 너희가 어찌 있지도 않은 죄를 씌워 내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이냐!”
동인들은 무조건적인 충성이야말로 절대가치라는 사고방식을 성균관에서 주입받는다. 이에 반해서 제약 없이 자유로운 학문을 하는 서인들은 대개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왕에게 맞설 수도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왕은 사대부 중 으뜸가는 존재일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왕에 대한 충성심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군주는 분명 하늘의 뜻을 받아 모든 백성을 다스리는 존재이고, 사대부들에게는 도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왕을 보좌하여 뜻을 펼칠 의무가 있었다. 걸주급의 폭군이나 되어야 ‘천명을 받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 임금이 옛 성현들이 남긴 뜻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 하나, 반정을 일으켜야 할 만큼 문제가 있는 통치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윤두수는 임금이 펼치는 갖가지 정책들에 불만은 품었을지언정 꿈에도 역모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누명이다! 내가 죄를 지었다면 그 죄상을 밝혀 보아라!”
이속들은 나장들에게 붙들린 채 몸부림을 치는 관찰사를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지금 관찰사를 붙들고 있는 건 어명을 받잡고 내려온 금부도사다. 그들이 나선다고 뿌리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죄상은 의금부에 가면 상세히 알게 될 거요. 얘들아, 묶어라.”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임을 깨달은 윤두수가 마침내 체념했다. 나장들은 윤두수가 입고 있던 관복을 벗기고, 흰 옷만 입은 채로 끌어다가 준비한 함거에 태웠다. 이제 도성까지 가는 긴 여정이 남아 있었다.
– 20 –
“대사헌 정철은 무리를 모아 과인에 대한 불만을 주고받았고, 장차 군사를 일으켜 계림군의 아들이자 자기 조카인 현산군 이흥을 추대하고자 하였다!”
대전에 울려퍼지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신하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미 이 사건으로 체포된 사람만 800명을 넘어간다. 대부분 서인 계열 인사와 그에 얽힌 몇몇 종친들이다. 내가 펼치는 정책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던 이들이기도 하다.
“여성부원군 윤승구는 정철이 자기 손녀사위 이흥을 추대하겠다고 하자 적극 동조하였다. 우의정 이정봉은 이흥이 등극하면 조정을 설득하여 모든 관료들이 이를 따르도록 만들겠다고 약조하였다.”
세 사람은 이번 역모에서 주역을 맡았다. 도성 내부에서 동조자를 확보하고 내게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리며, 전라도에서 군사가 올라오면 적극적으로 내응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정철은 한참 맞은 후에야 이런 혐의를 인정했다. 윤승구는 형틀을 보기만하고도 자기 앞에 있는 공초 내용을 인정했다. 이정봉은 자기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진 않았지만, 대신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하지도 않았다. 유죄를 받아들인 셈이다.
“군사를 일으킬 때가 되면 전라감사 윤두수는 정철과 내통하여 전라도 관병을 동원하고 또 속오군을 일으켜 육해로로 도성에 진군하려 하였다. 그러니 이를 어찌 가볍게 보겠느냐?”
위관인 이산해가 ‘밝혀 낸’ 저들의 거병 계획은 이러했다. 정변을 일으킬 날짜가 정해지면 윤두수가 자기가 거느린 전라도 군사를 소집한다. 각 지방에 흩어진 속오군도 소집한다. 이때 정철과 윤두수에게 가까운 사대부가 지휘하는 부대를 골라서 소집한다.
군사들에게는 서울에서 여진병과 왜별기가 병란을 일으켰으니 진압하러 가는 길이라고 속일 계획이었다. 도성에 당도한 뒤에 자기들을 진압하려는 경군과 대치하면 인의와 도리를 무기로 하여 경군을 설복, 무릎을 꿇게 하고 반정을 성공시키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허술한 계획이다. 하지만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철과 윤두수가 정말로 세운 계획이 아니니까. 이산해가 만들었는지, 정여립이 만들었는지 나도 모른다. 모르는 편이 훨씬 속이 편하다. 그리고 몰라야 나중에 또 이용해먹을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허나 전하, 전라도 군사는 육로와 해로가 모두 충청도를 지나야 도성으로 올 수 있습니다. 헌데 어찌 전라도 군사만으로 난을 일으키겠습니까?”
유성룡이 주춤거리며 물었다. 동인 출신이라서 이번 난리에 얽혀들 일은 없는 사람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신감 있게 행동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이리라.
“충청도 관찰사 권징도 유사시에는 저들에게 동조하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한다. 내가 믿고 지방관을 맡긴 이들이 줄줄이 반역도들과 한패가 되다니, 실로 슬픔을 금할 수가 없다.”
내가 이산해에게 제거하라고 암시를 준 대상은 윤두수 하나뿐이다. 권징에 대해서는 딱히 지시를 내린 적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정여립이 자기 원한을 풀 기회로 활용한 듯하다. 권징 이 친구도 서인이고, ‘사문난적’ 정여립을 싫어해서 상종도 하지 않고 지냈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정녕 군사를 준비하여 난을 일으키려고 했다면 모조리 죽여 그 목을 숭례문 앞에 내걸어야 하리라. 하지만 저들이 군사를 실제로 일으키지는 않고 훗날 어찌 움직일지 모의만 하다가 말았으니, 그 죄를 조금은 감해 줄만하다.”
신하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말을 들었다. 이미 넓어질대로 넓어진 연루자들의 범위를 생각할 때, 자칫 역적으로 몰린 이들을 옹호하다가는 그대로 자신도 줄에 묶여 역적으로 추가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리라.
“더불어 한 가지 손봐야 할 문제가 있다. 향반들이 속오군 지휘권을 가지고 있으면, 당파에 따라 난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음이 이번 일로 입증되었다. 그래서 감사나 병마절도사가 명을 내리지 않으면 군사를 소집하지 못하게 했는데, 이번에는 감사가 역도들과 내통하였다.”
지방관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들을 하나씩 빼앗는 건 내가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계획이다. 징세권과 행정권은 당분간 가지고 있게 해야겠지만, 군사권과 재판권은 적어도 내가 재위하는 동안에는 회수하고 말 테다. 하려고 하면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어찌하실 생각이신지요.”
영의정 이영송이었다. 기운이 완전히 빠져 축 늘어진 목소리였다.
“앞으로 관찰사는 군권을 행사할 수 없게 하겠다. 각 도에서는 병사와 수사, 각 절도사가 군권을 행사하라. 관찰사가 병사를 겸임하던 도에서는 새로이 병사를 임명하여 관찰사가 군무를 수행하지 않도록 하겠다.”
대전 안이 동요로 술렁거렸다. 임금을 대리해서 지방을 통치하는 지방관이 전권을 쥐는 건 언제인지도 모르는 먼 옛날부터 지속되던 관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임금이 그 손에 든 칼을 빼내겠다는 것이다.
“어이 그리 동요하는가? 모든 수령에게서 군권을 뺏겠다는 말이 아니다. 각 고을 수령들은 여전히 자기 고을 군사를 지휘할 권한이 있다. 단지 도 전체에서 모은 군사를 지휘할 권한을 병사에게만 주겠다는 것이다. 관찰사는 병사를 지원하는 데 주력하라.”
군 지휘권은 가능한 일원화되는 편이 좋다. 기존 체계도 어떻게든 굴러가기는 했지만, 보다 효과적으로 하자면 행정과 군사는 분리되는 편이 좋다. 일단 최고지휘권부터 갈라 놓고, 차츰 각 고을 수령들에게서도 군권을 회수해야지. 경찰력만 줘도 충분하지 않나 말이다.
“속오군은 당분간 향반들이 계속 지휘하게 하겠다. 이번에 적당들이 속오군을 동원해 난을 일으킬 궁리를 했다 하나, 저들이 서로 궁리만 했을 뿐 실제 일으키지는 않았다. 또한 무지한 백성들이 낯선 장수를 잘 따르지 않는 문제는 여전하니 속오군은 그대로 둔다.”
속오군 조직은 민방위처럼도 활용할 수 있다. 재해 발생 시 노동력 동원, 역내 치안 유지, 호랑이 사냥 같은 데 말이지. 다만 통제권은 각 고을에 주재하는 영장이 확실히 맡아야 한다. 향반은 명목상 지휘관으로 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