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25
2부 103화
– 21 –
망원경 속에 비치는 해안선은 평화로워 보였다. 바닷가에 있는 산에는 푸른 소나무가 높이 솟아 있고, 간간이 서 있는 오두막은 풀로 지붕을 덮고 있었다. 조각배에 탄 어부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가 산 안드레아 호를 보고 깜짝 놀라 육지를 향해 노를 젓는 모습도 보였다.
“조선 관리들이 우리가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듯하군요.”
고메즈 선장이 뱃전에 서서 유쾌하게 웃었다. 서양 배가 지나가는 모습을 처음 보고 놀라는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풍경도 다르다. 조선 해안은 중국이나 일본과 미묘하게 달랐다. 산과 바다 모양도, 바닷가에 있는 집과 배도 조선 특유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게요. 우리를 따라오는 저 친구들이 제때 경고를 해주지 않은 모양입니다.”
산 안드레아 호는 혼자가 아니었다. 조선군 갤리선 네 척이 산 안드레아 호와 육지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돛만으로 순항하는 이쪽과 달리 돛과 노를 총동원해 가면서 말이다.
“저 배가 혹시 조선 해군에서 가장 큰 배인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조선인들은 배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습니다. 연안을 지나는 수송선은 더 큰 배도 있지만, 군함으로 쓰는 배는 저게 제일 클 겁니다.”
세스페데스는 자기가 본 경상좌수영과 경기수영 배들을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자기가 본 배들 중에는 판옥선이라고 불리는 저 배가 가장 컸다.
“흠, 이 산 안드레아보다는 좀 크지만 대형 갈레온선을 몰고 오면 조선 함대 정도는 압도할 수 있겠군요. 갤리선이라 기동력은 좋겠지만, 갈레온은 갑판이 높으니 내려다보면서 공격할 수 있을 겁니다. 화포는 어떤 걸 실었죠?”
“정확히는 모릅니다. 조선에서 만든 화승총과 화포, 활로 무장했다는 것만 압니다.”
세스페데스는 약간 불안해졌다. 혹시 이 선장이 조선 수역에서 해적질이라도 벌일 궁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수역에서 물자를 운송하는 포르투갈, 영국, 에스파냐, 네덜란드 상선들은 상호간 약탈을 짭짤한 부수입으로 삼았다.
약탈 대상은 서로만이 아니었다. 아시아 현지인들이 운항하는 상선도 당연히 먹잇감이었다. 아시아인들은 대체로 무장이 취약한 배를 타고 다니므로 털기도 더 쉽다. 물론 선적하고 있는 상품을 털려면 대포로 가라앉히면 안 되지만 말이다.
“조선에서는 모든 상선이 국왕 소유입니다. 행여 조선 수역에서 배를 약탈한다면 국왕에게 분노를 살 겁니다.”
조선에서 배가 다니는 무역로라고 해봐야 겨우 둘이다. 중국으로 가는 항로 하나, 일본으로 가는 항로 하나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만일 유럽인들이 해적질을 한다면 범인은 빤할 것이고 선교사업은 엄청난 지장을 받을 것이다.
세스페데스가 무슨 생각으로 제지하는 말을 했는지 고메즈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웃으며 이렇게 말한 걸 보면 말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선은 향료나 비단을 산출하는 땅도 아니라면서요? 굳이 그런 가난한 곳에 와서 위험부담을 무릅쓸 생각은 없습니다.”
세스페데스는 고메즈 선장을 비롯한 뱃사람들에게는 조선이 신비한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자칫 쓸데없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뭔가 사고를 치게 만들지 모른다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이 정말 사제왕 요한의 나라이고 솔로몬왕의 유산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실은 가능한 비밀에 부쳐져야 했다. 로마에서 그 사실을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할 때까지 말이다.
“혹시나 해서 또 여쭙습니다만, 정말 우리가 배를 댈 항구는 있는 거겠지요.”
“물론입니다. 조선 국왕이 충분히 큰 항구를 만들어두었으니까요. 마닐라와 멕시코 사이를 오가는 대형 갈레온도 정박할 수 있을 정도지요.”
세스페데스는 조선 국왕이 항구 건설에 엄청난 돈을 들였으리라고 생각했다. 돌로 견고하게 쌓은 제방과 잔교, 건선거와 배수펌프까지. 이만한 돈을 투자했다는 건 그만큼 조선 국왕이 유럽인들과의 교류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는 주문하신 물품 수량도 적고 해서 카라벨인 산 안드레아 호가 왔습니다만, 더 많은 양을 주문하신다면 당연히 더 큰 배가 올 겁니다. 그때 정박할 장소가 없다면 일이 난감해질 테죠.”
“선장, 당신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염려 마시지요.”
큰 배는 예수회 입장에서도 필요하다. 그래야 많은 상품을 실어오고 실어가서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조선 국왕은 특히 가능한 많은 초석을 구하고 있다. 대형 갈레온 한 척만 와도 조선이 1년 동안 스스로 생산하는 것보다 많은 양을 실어올 수 있다.
그 초석으로 조선 국왕은 도대체 누구와 전쟁을 할 생각일지, 궁금했지만 알 수는 없었다. 전투기술을 가르칠 용병을 구하는 것만 보더라도 전쟁준비를 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과연 그 상대는 누구일까? 몇 년 전에 싸웠다던 북방의 타타르일까? 타타르 정복을 준비하고 있을까?
고메즈 선장은 여기서 세스페데스와의 대화를 끝내고 배 뒤편으로 갔다. 선미루에서 해안을 스케치하는 항해사와 뭔가 이야기할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에스파냐 용병들을 이끄는 지휘관 로드리고 대위가 옆으로 다가왔다. 갑판 아래편 선실에서 빈둥거리는 것도 지쳤는지, 대위는 평복 차림으로 갑판 위에 올라와 있었다. 필요가 없으니 그렇겠지만 무장은 하지 않았다.
“신부님, 저희와 조선인들 사이 통역은 누가 맡습니까?”
“알라르콘 신부가 맡게 될 거요. 지금도 조선 병사들에게 로델레로 전법을 가르치고 있소.”
“로델레로 전술에 익숙한 알라르콘이라….”
로드리고 대위가 천천히 수염을 쓰다듬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름 하나가 있었다.
“혹시 레판토에 참전했던 알라르콘 대위 아닌가요?”
“맞소. 어떻게 아시오?”
세스페데스가 반문하자 로드리고 대위가 빙긋 웃었다. 무척 반가워하는 태도였다.
“레판토에서 그분과 같은 배에 탔었습니다. 벌써 15년 전이군요.”
지금 로드리고의 휘하에 있는 병사들 중에도 셋이 레판토 참전 경력자라고 했다. 그들 셋은 알라르콘 신부와는 모르는 사이지만 말이다.
“그분은 레판토 직후에 성직의 길로 들어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한번 내려놓았던 검을 다시 드시다니, 놀라운 일이군요.”
“선교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소. 이제 당신들이 왔으니 다시 내려놓을 수 있겠지요.”
선교사로서 군사훈련까지 시켜주는 건 아무래도 심적 부담이 컸다. 유럽에 알려진다면 여러 면에서 골치아파질 일이기도 했다. 분명히 다른 수도회들이 벌집을 쑤신 것처럼 맹비난하고 나서리라. 신의 말씀을 전하러 가서 용병 노릇을 한다고.
“내가 1년을 지내 봤는데, 조선이 그리 지내기 나쁜 나라는 아니었소. 물론 에스파냐에서 하던 것들을 다 즐기기는 힘들 거요. 하지만 조선 국왕은 약속을 꼭 지키는 사람이니, 적어도 계약대로 황금을 받을 건 분명하오.”
용병들에게는 황금이 신이다. 로드리고 대위는 아무 말 없이 씩 웃었다. 조선이 그들에게 엘도라도가 되어준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조선 국왕에게 충성할 수 있었다. 이교도를 위해서 기독교인과 싸우라는 지시만 없다면 말이다.
– 22 –
“전하, 남만선이 충청 수영을 통과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병조판서 김명원이 잔뜩 굳어진 얼굴로 보고했다. 김명원은 서인이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딱히 연루되지 않았다. 아니, 연루시키지 말라고 내가 확실하게 언질을 넣었다. 지금 조정에는 김명원만큼 우수한 군사행정가가 없으니까 말이다.
확실히 김명원은 전선지휘관으로는 무능하다. 하지만 군사행정 솜씨에 있어서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정말 놓칠 수가 없다. 하긴 이건 처음 하는 이야기도 아니구나. 그만 해야지.
“동래를 출발한지 이제 보름이 아니냐. 벌써 거기까지 도착했단 말이냐?”
경상도에 있는 조창에서 도성까지 조운선으로 오는데 60일이 걸린다. 남만선이 충청도까지 보름만에 왔다면 거의 세 배쯤 빠른 셈이다. 바람을 잘 만나고, 암초를 신경쓸 필요 없는 먼 바다를 통해 움직였다면 충분히 가능한 속도겠지 싶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느리게 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 해안을 관찰하고 지도를 만드느라 더 빨리 올 수 있는데도 천천히 오는 건 아닐까?
“더 빨리 올 수도 있으나, 뱃길을 조심하면서 올라오느라 속도가 늦다 합니다.”
역시 그렇군. 틀림없다. 저놈들, 지도 만들면서 오는 거다. 경계해야 되겠는데. 서양인들이 우리 지리정보를 파악하는 건 달갑지 않다.
하지만 측량을 해서 지도 만드는 기술은 분명히 저놈들이 아직 우월하다. 그러니 저놈들이 일단 지도를 만들게 한 뒤에 사본을 받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지난번에 서한이 오기를, 분명히 염초 5백 근을 싣고 온다고 했지.”
동래에 도착한 세스페데스가 보고서를 보내기를, 배가 약간 수리할 부분이 있어서 일본에서 출발이 지연된다고 했다. 그래서 정철을 중심으로 한 반역사건을 처리할 시간이 생겼다.
“전가사변에 처한 죄인들은 무사히 북으로 가고 있는가?”
“예, 전하. 호송하는 군사들이 세심히 살피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상례를 보면 역모에 참여하기는커녕 역모 관련자라는 제보만 있더라도 숱하게 죽어나간다. 하지만 이번 역모는 특별히 관대하게 처분하기로 했다. 정철이 범했다고 알려진 행동은 분명히 역모에 해당하겠지만, 어차피 조작된 역모가 아닌가.
게다가 이번 역모는 실행에 옮긴 음모사항이 하나도 없다. 불평 외에는 계획조차 구체적인 게 없다. 그럼에도 이 건으로 체포된 주요 인사만 800명, 가족과 노복들까지 합치면 관련자가 1만 명에 달한다. 죽이지 않기로 결심한 이상 이들을 처분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전가사변.
참, 당연히 현산군 이흥은 이들과 같이 보내지 않았다. 이흥은 무릉도로 보내서 그 섬에서 별명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게 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내는 무릉도 귀양일세 이거.
“부여주 관찰사 이종덕으로 하여금 준비를 잘 갖춰두게 하라. 이들을 시켜 흑룡강으로 가는 북평 이북 길에 새 고을을 세우게 할 것이니라.”
부여주 관찰사는 결국 그 뒤에 교체했다. 정만기는 해서부에게 당한 기습에 큰 피해를 입은 책임도 물어야 하고, 본인도 완전히 지쳐버려서 더 이상 관찰사로 일할 수가 없었다.
후임자인 이종덕은 함경도 관찰사로 재직하던 인물이다. 부여주 근무는 길지 않았지만 전혀 모르는 정도는 아니었다. 군사적으로도 보통사람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어서 정만기보다는 훨씬 낫다.
1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고을 하나를 세운다면, 사실상 도시가 하나 생기는 셈이다. 기왕 보내는 거니, 송화강까지 올려서 전초기지를 형성해야겠다. 감자씨도 잔뜩 가져갔으니 도착하자마자 바로 심으면 겨울 식량은 거둘 수 있겠지.
어쩌면 북변에 생긴 이 도시가 북방유학의 중심지가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 이쪽에 있는 세상에서는 부여주 출신자들이 북인이라고 불리게 되는 건 아니려나.
‘반적’들을 한 고을에 모았다가 반기라도 들면 어쩌느냐는 걱정도 나오긴 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일단 식량을 비롯한 갖가지 물자를 모두 남쪽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그 도시가 반란을 꾸며? 다 굶어 죽으려고?
외적과 내통할 가능성도 솔직히 없다. 진짜 반란을 일으켰던 것도 아니고, 누명을 덮어썼을 뿐인 저 양반 사대부들이 해서부나 몽골족과 손을 잡고 반기를 든다? 아니다. 1만 명 전부가 한꺼번에 넋이 나가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다.
아마 저들은 자신들의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외적이 침입했을 때 최선을 다해 맞서 싸울 것이다. 사실상 전가사변 1만 명 겸 둔전병 3천 명을 두는 셈이다. 1만 명 중에서 싸울 수 없는 여자, 어린애, 노인이 7천 명은 될 테니까.
떠들썩했던 것치고는 역모사건 마무리가 좀 심심한 기분이 들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것도 나쁘지 않다. 정철이 흑룡강변에 앉아 시를 짓건 노래를 하건 내 귀에는 들리지 않고 눈에도 보이지 않을 테니까.
“남만선이 오면 초석의 질을 잘 살피라. 정말 좋다면 앞으로 가능한 많이 수입하자. 대금은 호조에서 조달한 인삼을 주어 치르도록 하리라.”
“예, 전하.”
조선에서는 1년에 굽는 염초가 본래 1천 근이 안 됐다. 내가 연산군 때부터 초전이다 뭐다 하면서 끌어올려서 겨우 연산 3천 근을 만들었다. 여기에 중국에서 수입하는 게 2천 근이다.
이제 여기에 인도산 초석이 보태진다면 화약 공급에 있어서는 모든 갈증이 해소된다고 봐도 된다. 황은 황이, 환이 때 국내에서 황 광산을 여럿 개광해 놓아서 소요량 절반 정도는 구할 수 있다. 물론 질은 일본산이 더 좋고 값도 싸긴 하지만.
“그리고 일전에 비변사에서 논했던, 훈련도감 개편안은 잘 실행되고 있는가?”
“예, 전하. 훈련원을 훈련도감으로 개편하고, 기구와 인원을 확대하는 일은 순조롭습니다.”
훈련도감은 본래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개혁의 필요성 때문에 생긴 군영이다. 이름만 보면 교육부대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실을 수호하는 친위대 노릇을 했다.
“남만인들도 훈련도감에 넣도록 한다. 그리고 정철이 살던 집을 저들에게 내려주어 머물게 하라. 필요한 의식(衣食)도 충분히 줄 수 있도록 준비하라.”
정철의 집이라면 스페인인 14명 정도는 집어넣고도 남는다. 집안일 할 사람으로는 관노와 관비를 스무 명 정도 딸려 주면 되겠지. 급료로는 약속한 금 외에 조선에서 쓰기 좋은 저화도 좀 줘야겠다. 종이돈이라고 막 펑펑 뿌리고 다니는 거 아닐까, 좀 걱정되기는 한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