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32
2부 1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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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아주 맑고 화창한 날씨를 1년 내내 즐길 수 있었다. 무슨 소리냐고? 비가 거의 안 왔다는 이야기다. 날이 흐려야 비가 오지.
덕분에 벼농사는 아주 죽을 쑤셨다. 그나마 강물과 우물에서 수차로 물을 퍼부은 덕에 죽을 쑤는 정도로 끝났다. 이것도 없었으면 솥단지까지 깨먹고 끝났을 뻔했다.
평소였다면 이 정도 수확이면 전국에서 식량 부족 문제가 나타났을 터다. 하지만 이젠 그런 걱정은 한시름 덜었다. 감자가, 고구마가, 옥수수가 올해부터 재배되어 수확을 거두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아직은 전국으로 재배가 퍼지지 않았고, 여기저기에 있는 고을에서 시범재배가 되었을 뿐이라 모든 백성들이 굶주림에서 해방될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예전이었다면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을 백성들 상당수가 배를 채우게 해주었다.
“내년에 종자로 쓸 만큼은 남겨야 한다. 모조리 먹어치우지 않도록 하라.”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내년에 심을 씨까지 먹어치우는 농부는 없다. 나도 알긴 알지만, 처음 심으라고 준 작물이다 보니 노파심에 자꾸 당부하는 말을 꺼냈다. 감자 한 알이라도 백성들 입에 더 들어가도록, 당분간은 감자는 씨로 재배해야겠다.
“전하, 전하께서 꼭 옥수수죽을 드셔야 하겠습니까?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백성들이 양식이 부족해 곤란을 겪고 있으니, 과인도 한 끼라도 박한 음식을 먹어 저들이 느끼는 고충을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느냐.”
말린 옥수수 낱알을 가루내서 쑨 옥수수죽은 옥수수로 가장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신선한 옥수수를 자루째 통으로 굽거나 쪄먹어도 되지만, 먹는 모습이 점잖지 못하니 임금이 그리 먹을 수는 없지. 보관하는 수고까지 생각하면 가루로 끓인 죽이 가장 편한 선택이다.
유럽에서는 가난한 서민들이 옥수수죽만 먹다가 비타민 결핍증으로 펠라그라병에 걸렸다고 했지? 조선에서는 그 문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가난한 백성들은 양을 불리려 죽에다가 나물 등 온갖 잡다한 부재료를 넣는 게 일상이니까 말이다.
물론 고기나 생선은 백성들이 쉽게 먹지 못하지만 ? 흉년이라면 더더욱 ? 그거야 솥에다가 개구리나 붕어, 미꾸라지 한 마리씩만 잡아넣어도 되는 문제가 아닌가. 나눠준 책에다 그것도 전부 적어두었다. 가능하면 콩이랑 밤, 도토리 같은 것도 섞으라고.
올해도 적전에서는 새 작물들을 열심히 키워 종자를 많이 만들었다. 주식이 되는 세 가지 외에도 호박과 땅콩, 고추도 심었다. 내년에는 이것들도 모두 종자를 나눠줄 수 있다.
내년은 1587년 정해년…백성들에게 아주 획기적인 해가 될 거다. 기다려진다.
– 13 –
북변은 정말 말하기 힘들 만큼 춥다더니 별로 춥지 않았다. 그냥 선선한 기운이 도는 것이 돌아다닐 만 했다.
“아직 초가을입죠. 나리께서 이곳 겨울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러시는 겁니다요.”
살림을 챙겨주러 온 동네 사내가 키득거렸다. 오는 길에 집안 노비 하나를 데려오긴 했지만 워낙 낯선 곳이라 주변 사정을 모르니 노비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현감이 보내준 동네사람이 살림을 챙겨주고 있었다.
“저기 동네 둘러싼 울타리 보이십죠? 그 밑에 가시덤불 보이십죠? 겨울이면 저기에 물을 부어 얼려서 얼음성을 쌓습죠. 그게 여기 겨울입니다요.”
얼음성 이야기를 듣자 북변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정여립은 한숨을 쉬었다. 제기랄, 뭔가 좀 제대로 해보려는 참에 이런 곳으로 밀려나다니.
“전하, 신은 오직 전하께 대한 충심으로 역도들을 잡아내고자….”
“묻겠다. 충청도 관찰사 권징에게 유죄라는 증거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있었습니다. 허나….”
“내놓지 못하는 증거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다! 그대는 사원(私怨) 때문에 무고한 이를 죄인으로 몰았도다.”
임금은 정여립이 미사여구를 담아서 내미는 자기변호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오직 죄를 추궁했을 뿐이다. 정여립이 어떻게든 대답을 회피하려 하자 정철의 첩에게서 손톱을 뽑았던 바로 그 집행관까지 불러왔다.
“네 죄를 스스로 불겠느냐, 아니면 네가 정철의 첩에게 하였듯이 손톱을 열 조각 내어서 한 쪽씩 뜯어내겠느냐?”
정여립은 전옥이 겁을 먹게 위협을 하였을 뿐, 정말로 손톱을 조각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임금은 손톱 조각내기를 기정사실로 취급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무슨 말을 올려도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정여립은 결백을 주장하려던 마음을 그제야 포기했다.
순순히 자백을 마친 정여립은 북방으로 정배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가사변이 아니었다! 가족은 모두 도성에 그대로 놓아두고 정여립 자신만 북변으로 가라는 명을 받았다. 아무래도 주상은 정여립이 무슨 수작을 부릴까봐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 고을에는 다들 생업이 무엇인가? 공부를 하는 사람은 있는가?”
유배된 죄인도 먹고 살아야 한다. 이 먼 곳까지 집에서 돈이나 쌀을 보내올 수는 없으니, 뭐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터였다.
예로부터 귀양을 간 양반들이 하는 일이라면 글방을 여는 경우가 많다. 정여립 역시 서당을 열 수 있을지부터 확인해보았다.
“웬걸입쇼. 이 고을은 현감 나리랑 관아에서 일보는 아전들 빼면 무지렁이들만 모인걸입쇼. 거개가 농군이라 밭가는 게 일이고, 포수들 몇은 산에서 짐승을 잡는 게 일입죠. 역모에 얽힌 양반나리 같은 사람이라도 오면 모를까, 저희는 죄다 글도 모릅니다요.”
경쟁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교육을 받으려는 수요가 너무 없어서 서당은 세워보지도 못하고 망하게 되었다. 속으로 혀를 찬 정여립이 말을 돌렸다.
“그럼 나도 농사를 지어야겠군.”
“현감 나리와 의논해 보십쇼. 땅은 사방에 얼마든지 있으니 땅을 내주시든지 관아에 일터를 마련해주든지 하실 겁니다요.”
정여립은 이곳 현감인 정일한이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해보았다. 자신은 동래 정씨, 정일한 쪽은 봉화 정씨다. 일단은 다른 본이지만 모든 정씨는 경주 정씨에서 갈라져 나온 집안이니까 굳이 빌붙으려면 못 붙을 것도 없다. 그러고 보니 정철은 연일 정씨였던가.
“알겠네. 현감께 도움을 청해 보지.”
북평에서 정여립을 인수한 관찰사는 정여립을 북쪽으로 간 권징, 정철 등과 가까운 고을로 보낼 수는 없다고 도로 남쪽으로 내려보냈다. 덕분에 삼성에 비하면 훨씬 덜 추운 고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고, 같은 정씨 현감도 만나게 되었다.
정여립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래, 기운을 내자. 상감은 전가사변에 처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요즘 잘 내리지도 않는 유배형을 내려서 일가는 그대로 두고 정여립만 내보냈다. 이는 곧 공을 세우거나 적당한 때가 되면 도성으로 도로 불러들이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변방에서는 청년들을 모아 글과 학문을 가르치고, 무예를 닦게 하여 필요시에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게 가르치는 이가 필요할 것이다. 정여립은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만 도성에 돌아가는 날도 빨라질 것이니까.
– 14 –
산을 능숙하게 오르내리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도리어 그 뒤를 따르는 젊은이들이 힘겨워할 정도였다.
“이 산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파…팔공산입니다.”
“음, 혹시 구멍이 여덟 개라 팔공산인가?”
말투에서는 아직 왜인 억양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제법 익숙한 조선말이었다.
“여기에도 성을 쌓아야겠어. 그러면 대구부성을 엄호하는 지성(枝城)으로서 훌륭히 역할을 할 게야.”
사나다 마사유키, 이제 사(射)씨를 사성받아 사마유(射馬有)가 된 왜별기장이 팔공산 자락을 둘러보며 지시했다. 그 뒤를 따르던 군관들이 급히 문서를 꺼내들고 석묵필로 급히 적었다.
“음, 그 석묵필 왜국에 팔면 한 밑천 잡겠네그려. 먹을 안 갈아도 되니 밖에서 글을 쓰기 참 좋군. 왜 안 내다파는지 몰라.”
잠시 딴소리를 하던 마사유키가 산자락을 가리키며 지시를 계속했다.
“이쪽에 능선을 따라 벽을 쌓고, 총과 활을 쏠 수 있게 한다. 그러면 산 밑으로 지나가는 길을 완전히 막아버릴 수 있다.”
“전하, 제게 남부지방에 구축할 성채를 설계하라 하셨습니까.”
마사유키를 호출한 임금은 뜻밖에도 큰 과업을 떠넘겼다. 그동안 왜별기를 이끌고 도감군을 훈련시키는데 매진하고 있던 마사유키에게는 정말 깜짝 놀랄 일이었다.
“그러하다. 대구부, 전주부, 이 두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개선하고 이를 밖에서 엄호할 수 있는 지성을 세울 설계를 그려오도록 하라. 그대가 직접 내려가서 현지에서 지형을 살핀 뒤에 새로이 세울 성벽 형태를 그려오라.”
조정에서는 새로운 성을 짓는데 대해 불만을 표하는 소리가 많이 나왔다. 올해도 가뭄 탓에 조세 수입이 적은데, 왜 토목사업을 자꾸 벌이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부역이 백성들에게 거저 양식을 주지 않는 수단이라고 해도, 지금은 곡식을 아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대들이 하는 말도 옳다. 허나 내 뜻은 지금 당장 성을 고쳐짓자는 이야기가 아니로다. 장차 여유가 생겼을 때 바로 지을 수 있도록 성을 지을 자리만 미리 보아두자는 뜻이니, 필요 이상으로 내 뜻을 거슬러 반대하지 말도록 하라.”
노부나가가 히데요시를 시켜 규슈를 정벌한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임금이 요즘 조급해졌다. 아무래도 천하통일을 마친 노부나가가 조선에까지 손을 뻗으려 하지 않을까, 그 점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전주와 대구를 명시하면서 성벽을 보완하라 명한 것도 그 탓이었다. 마사유키도 알고 있는 바지만, 경상도와 전라도에 일본군이 상륙해서 도성으로 진격하려면 그 두 고을을 지나쳐야만 한다. 해안 어디에 상륙하든 말이다.
물론 해안에 있는 성채들도 강화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오다군이 올라올 정확한 상륙지를 모르는 이상, 해안에 있는 성채는 순위가 뒤로 밀린다. 하지만 어디에 상륙하든 대구는 분명 지나간다. 그러니 1순위로 방어설비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다만 2순위가 전주인 이유는 마사유키로서도 궁금했다. 차마 조회 중에 임금에게 물어보진 못하고, 나중에 병조판서 김명원에게 물어보니 이리 대답해주었다.
“전조 말기에 왜적이 일부러 먼 바다를 돌아 전라도에 들어왔던 적이 있네. 게다가 전주는 왕실이 발상한 곳으로서 태조대왕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경기전이 있지. 절대 적도들이 들어와 더럽혀서는 안 되는 곳이기에 그대를 보내 성책을 보완케 하시는 걸세.”
설명을 들으니 납득이 되었다. 임금이나 병조판서가 해준 말을 다 들으니 장차 풍년이 들면 축성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마사유키는 그 사전작업으로 성책을 설계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실력에는 자신이 있다. 일본에서 수많은 전투를 겪었고 성채를 이용한 방어전도 여러 차례 치렀다. 하지만 그를 귀순장이라고 부르는 조선인들이 내리는 평가에는 답답한 기분이 숱하게 들었다.
임금이나 병조판서, 훈련대장은 그를 얕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밑에 있는 군관이나 군졸들 중에는 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왜별기 전체를 폄하하는 작자들이 많았다. 창이나 칼을 다루는 재주는 마지못해 인정하면서 뒤에서 흉보고 비웃는 것이다.
“한 번, 한 번 제대로 솜씨를 보여줘야 해. 그래야 그놈들이 아무 말도 못 하지.”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거기서 솜씨를 선보인다면 누구도 이들을 비웃지 못할 것이다. 그래야만 축성도 그의 뜻대로 잘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전공을 통해 얻은 권위라도 없다면, 벽을 이리 쌓아라 저리 쌓아라 하는 간섭이 끝도 없이 쏟아지리라.
더구나 대구와 전주에 쳐들어올 외적은 오직 왜인들뿐이다. 더더욱 자신과 수하 군사들이 백안시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마사유키도 알았다. 그래서 전공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에 그 대상이 일본에서 자기에게 여러 차레 호의를 보여주었던 히데요시라 해도 말이다.
“아버님, 이 일대에 이미 존재하는 산성이 여럿 있는데 어찌 연결하시겠습니까.”
아들 노부시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에는 펼쳐든 대구 지도가 있었다. 그 지도를 받아든 마사유키는 쓱 한 번 훑어본 뒤 신랄하게 지시했다.
“모든 성벽이 줄줄이 이어지게 할 필요는 없다. 필요 이상으로 긴 성벽은 무의미하게 많은 병사를 수비병으로 필요로 하며,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성벽은 없는 것만 못하다. 각 거점에 배치할 병력을 충분히 두고, 서로 지원할 수 있는 통로만 확보하면 된다.”
하나의 거대한 성을 짓기보다 상호지원이 가능한 여러 작은 성을 인접하게 두는 편이 대구 방어에는 더 효과적이다. 지금 임금은 경상감영도 곧 대구성으로 옮길 생각이니, 장차 대구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경상도 일대의 정치 중심지가 될 것이다.
“다 그렸으면 어서 이쪽으로 옮기자. 어디…고쳐쌓을 부분이 또 어디에 있을까.”
마사유키는 눈에 띄는 모든 특이사항을 철저히 기록했다. 그래야만 임금에게 보고서를 올릴 수 있고, 내년에 공사를 시작했을 때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