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35
2부 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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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보 같은 원숭이 놈아!”
호된 질책이 쏟아졌다. 시마즈를 제압하고 규슈를 평정하는 대공을 세웠건만 칭찬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욕설과 비아냥이 퍼부어졌을 뿐이다.
“사람 흉내를 내기 싫어졌느냐? 하코네 산속으로 돌려보내 산속에서 도토리나 주워 먹게 해 줄까? 이따위로 내 체면을 깎아 먹다니, 이러고도 네놈이 사람이냐?”
히데요시는 단 한 마디도 항변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주군이 퍼붓는 모욕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낡은 표현이지만, 이번 일은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성군 도노! 하성군 도노!”
“괘…괜찮소.”
분명 화살이 날아들기는 했지만, 가마에 타고 있던 하성군은 화살에 맞지 않았다. 그 대신 화살에 맞은 사람은 하성군의 가마 앞에서 대열을 선도하던 원균이라는 호위무장이었다. 약간 빗나간 화살이 그 어깨를 맞힌 것이다.
“천하에 다시없을 바보 같은 놈! 내 위신을 이따위로 망쳐 놓다니!”
그래도 노부나가가 예전 아케치가 벌인 반역에서 깨달음을 얻기는 했던 모양이다. 엄청나게 화가 났으면서 히데요시에게 손찌검하지는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 이보다 작은 실수를 두고도 기절하도록 두들겨 팼을 것을 생각하면 노부나가도 나이가 든 모양이다.
다만 히데요시도 이번 일에 한해서는 노부나가가 자신을 죽도록 때리더라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요한 인질이자 손님인 하성군이 하마터면 죽을 뻔한 것이다.
“도시히사 놈이 정면에서 활을 쏘는데 어떻게 제대로 막아서는 놈이 하나도 없었단 말이냐! 네놈과 네놈 부하들은 모두 바보천치란 말이냐!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규슈 원정에 시바타 그놈을 보냈을 거다!”
오다 가문 최상의 맹장이라 불리는 시바타 가츠이에는 우에스기 정벌 이후 영지에서 쉬고 있다. 우에스기 정벌이 원체 격전이었던 만큼 그 와중에 시바타 본인조차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지금은 물론 다 나았지만, 히데요시에게 정치적으로 밀리면서 주춤한 상태다.
“만약에 하성군이 그 화살에 맞았다면, 조선 국왕에게 내 체면은 어찌 된단 말이냐! 기껏 중요한 볼모를 받아놓고,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다고 말이다!”
화살을 쏜 시마즈 도시히사는 요시히사의 둘째 동생이었다. 둘째인 요시히로는 당주인 형의 결정에 따라 열세를 인정하고 항복하는 데 동의했다. 넷째 이에히사는 적극적인 투항파였다. 셋째인 도시히사는 항전을 주장했지만 혼자서는 대세를 뒤집을 수가 없었다.
항복하기로 결정되자 도시히사는 자기 혼자라도 나서서 히데요시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총대장인 히데요시가 죽으면 휘하 군사들도 당황해서 전투를 포기하고 철수하리라고 예상하고 영접하러 나가는 척 하면서 활을 들고 나선 것이다. 화살은 딱 한 개를 겉옷 안에 숨겨서.
위장은 성공적이었다. 화살통도 없이 빈 활만 하나 들고 있으니, 다들 그저 복장을 갖추기 위해서 도시히사가 활을 들고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가 마중하듯 앞으로 나왔을 때 히데요시 측도 마찬가지 판단을 했고, 그 틈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활을 겨눌 기회를 얻었다.
도시히사에게 있어서 딱 한 가지 유감스러운 사실은 히데요시의 얼굴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누가 히데요시일지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를 본떠서 무척 화려하고 이상한 물건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기 가마를 타고 이상한 옷을 걸친 자가 히데요시가 분명하다. 심지어 가마 앞에 오는 장수는 일본이 아닌 당나라 ? 일본에서는 조선, 명나라를 통틀어 당(唐)이라고 부른다 ? 갑옷을 입기까지 했다. 그 외에는 다들 평범한 갑옷을 입었다.
다만 그 장수들 중에 한 사람은 신경이 쓰였다. 히데요시는 햇살을 형상화한 투구를 쓴다고 들었는데, 호위무장 중 한 사람이 그런 투구를 쓰고 있었다. 이상한 옷을 입은 자에게 화살을 날릴 생각으로 시위를 당기는데, 그 순간 그 투구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당황했지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그래, 필시 저 투구를 쓴 자는 가게무샤이거나 혹 투구 운반을 맡은 근습무사일 것이다. 히데요시 이외에는 지금 이 자리에 저런 화려하면서도 괴이한 옷을 입고 나타날 자가 없을 것이다.
고민은 찰나 만에 끝났다. 화살은 가마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목표로 삼았던 히데요시의 목줄기는 꿰뚫지 못했다. 그 앞을 막고 있던 당나라 갑옷을 입은 장수가 두 팔을 펼쳤고, 그 자의 덩치가 워낙 컸던 탓에 그 왼쪽 어깨에 꽂힌 것이다.
다음 순간 히데요시 군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어차피 준비한 화살은 하나뿐이었고, 칼을 뽑을 여유도 생각도 없었다. 도시히사는 그대로 꽁꽁 묶였다.
“도시히사 놈은 하성군이 화려한 옷을 입고서 위엄 있게 가마를 타고 있으니까 네놈이라고 생각했다지! 이 소문이 사방으로 퍼지면 어찌 될 것 같으냐! 네놈이 그 비루한 목숨을 아껴볼 생각에 하성군을 미끼로 내세웠다고 할 게 아니냐!”
히데요시에게는 결단코 그럴 의사는 없었다. 갑옷을 입고 항복식장에 간 것도, 천하통일이 완수되는 순간에 주군을 대신해 항복을 받으면서 경망스러워 보이지 않으려고 나름 신경을 쓴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난 사태는 어떤 변명도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실망했다, 실망했어, 이 원숭이 자식아! 네놈이 머리를 제법 굴린다고 생각해서 하성군과 붙여 놓고 친하게 지내게 했는데, 그 머리를 그따위로 굴려? 미끼가 필요하면 네 부하 중에서 골랐어야지, 이 자식아!”
여기서 잘못 변명을 했다가는 뭐가 날아올지 모른다. 요즘 노부나가가 측근에 있는 부하를 구타하지 않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화가 치솟으면 옛 버릇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성군의 앞을 막아 지킨 호위무장 원균에게 그 용기를 기리는 의미에서 황금 서른 냥을 내려라! 도시히사는 할복하라고 명하고! 만약 시마즈가 거부한다면, 내가 직접 가서 가고시마 성 주춧돌까지 불태워버릴 테다.”
히데요시를 비롯한 신하들은 노부나가가 지금 내뱉은 위협을 충분히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노부나가가 직접 지휘하는 20만, 아니 25만 대군이 쳐들어가면 사쓰마에는 풀 한 포기나 개 한 마리도 남지 않을 것이다.
“원숭이 네놈을 어떻게 처분할지는 좀 더 생각해서 결정하겠다. 당장 꺼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앞에서 물러나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하성군이라도 만나서 추후 거취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하성군이 노부나가에게 히데요시는 크게 잘못한 일이 없으니 선처해달라고 청하면, 노부나가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 21 –
유극량은 지난번 해서부의 난을 무찌른 공으로 상당한 상을 받았다. 품계도 오르고 벼슬도 올라서 몇 가지 중책을 잇달아 맡은 참이었다. 한창 바쁘게 일하는 중인데 상감께서 특별히 불렀다, 그리고 놀라운 분부를 받들게 되었다.
“이번에 훈련원을 훈련도감으로 개칭하고 그 규모를 크게 확대하기로 해였다. 허나 적절한 후보가 없어 그 머리를 비워두었으나, 그대를 새로이 설치하는 훈련도감의 훈련대장으로 임명하노라. 관제를 일신하고 도감에 속한 군사들을 다스려 정병으로 양성하도록 하라.”
훈련도감에는 다른 직책을 겸하는 정1품 도제조가 1명, 정2품 제조가 2명 있다. 훈련대장은 그들 밑에서 실제로 훈련도감을 관장하는 최고위 무관으로, 품계는 종2품이다. 그전에 비하면 엄청난 승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곧바로 훈련도감에 부임한 유극량은 옛 훈련원에서 수행하던 무관 선발시험 준비와 무예, 병법 훈련 등은 훈련도감에서 부수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훈련도감에서는 왜별기, 남만별기 등 외인 무관들에게 훈련받은 새로운 군사를 양성하는 게 주목표였다.
“전하께서는 오위와 별개로 새로운 경군을 만드시려는 건가.”
“그렇습니다. 전원 고립병으로 편성하는 새 군영입니다.”
종사관으로 훈련도감에 들어온 이억기가 빠르게 답했다. 강무관에서 완전히 3년을 채우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실전에 참여한 바도 있고 하여 조금 빨리 종학(終學)을 했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성균관에서는 대과에 합격해야만 수학(修學)이 끝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셈이다.
“내금위와 겸사복에서 전속된 자들이 6백 명, 도성 일대에서 새로이 초모한 군사가 6백 명, 오위에서 전속한 이들이 3백 명입니다. 새로 초모한 군사들은 본래 군역을 지는 정군이 아닌 자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럴 테지. 고립병이 되면 자기 땅과 집을 돌볼 수 없으니까.”
성종대왕 때까지만 해도 각 군영에 속한 군사들은 며칠에 한 번씩 열리는 점고에만 얼굴을 내밀면 되었다. 그 외에는 근무일에 근무만 서면 된다. 훈련은 없고, 그냥 빈둥거리며 보내면 그만이었다. 무종대왕 때부터 훈련이 좀 강화되었지만, 근본적으로 큰 변동은 없었다.
그러던 상황이 4년 전부터 갑자기 엄청나게 변화되기 시작했다. 상감은 그동안 공공연하게 벌어지던 대립제를 절대 금지하고, 군역을 다른 이에게 대리시킨 자와 대신 수행한 자를 모두 붙잡아 전가사변에 처했다. 소집한 군사들도 전처럼 놀리지 않고 내내 군사훈련을 시켰다.
훈련이 고된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유시간이 사라진 충격은 정말 컸다. 예전처럼 군영을 드나들면서 집안일을 돌볼 수 없어지니 순전히 군영에서 받는 녹봉만으로 먹고살아야 한다. 당연히 고립병이 되려는 자는 그동안 찾기 힘들었다.
“본래 군역을 지지 않았던 가난한 백성들이나 천인들이 흉년을 맞아 끼니를 이으려 초모에 응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그 때문에 살림이 넉넉한 양인들인 오위군이 도감군을 무시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지. 그래도 우리 군사 중에서 절반이 넘는 수가 내금위나 오위 출신인데.”
유극량의 옛 상관이었던 신립도 도감군 설치 자체를 자신과 오위에 대한 견제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현재 조선에서 가장 강한 군영인 오위에 속한 장수와 군사들이 모두 싫어하니, 이들 도감군 앞에는 끝 모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장차는 도감군이 조선을 지탱하는 핵심 군사가 될 것이네. 번상병은 지나치게 오래 종군할 수가 없으니까.”
번상병을 집에 보내지 않고 계속 종군시키면 집안 생계가 무너진다. 지금 구조로는 몇 개월 정도 걸리는 장기간에 걸친 대외원정이나 반란진압을 할 수가 없다.
“소관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이억기가 수긍했다. 부여주 같은 곳은 인구도 적은데, 군대 소요는 많다. 경군을 보내자면 가는 데만 한 달이 걸린다. 그런 곳에 군사를 보내려면 고립병이 확실히 번상병보다 불만도 적고 유리하다.
이제 두 사람은 훈련도감 강화를 위해 필요한 장수들의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상감은 원하는 장수가 있으면 요청해도 좋다고 유극량에게 따로 허락을 해두었다. 덕분에 유극량은 좋은 장수를 마음껏 고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 22 –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겨울바다가 좀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익숙해졌기에 동지사 선발을 시작했다. 적당한 이를 뽑아 출발 준비를 하는데 놀라운 소식이 들어왔다. 평안도에서 관찰사가 급히 보낸 장계였다.
“이성량이 드디어 해임되었단 말인가? 아예 북경으로 소환되었다고?”
“그러하옵니다, 전하!”
드디어 통했구나! 젠장 이게 몇 년 만이야? 당장에 내 입에서 폭포처럼 지시가 쏟아졌다.
“이성량이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동지사가 북경에 도착하는 대로 조사하여 즉시 보고토록 하라! 일시적인 소환인지, 아니면 완전히 해임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는지 확인해야 한다. 혹시 요동이 아닌 다른 지방으로 전임된 게 아닌지도 확인하라!”
이성량이 해임된 이유는 알아볼 것도 없을 거다. 독직(瀆職)을 너무 심하게 저지른 탓이지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이성량은 요동을 오가는 상인들에게서 뇌물을 긁어모으고, 자기 밑에 거느린 각 여진 부족들을 착취했다. 요동은 이성량의 왕국이었다.
그렇게 모아들인 부는 나라를 위해서 쓰지 않았다. 대부분 자기네 일가붙이들끼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모두가 이 문제를 알았지만 이성량의 힘이 워낙 강대해서 나서지 못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게 우리였다. 당연히 만력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조정 안팎에 있는 이성량의 적들도 기회다 싶었는지 일제히 항의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장거정 때처럼 한 방에 통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요동을 탐내는 자들을 위해서 물꼬를 터준 셈이다.
봇물 터진 듯 밀려드는 상소와 고발에도 이성량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그 버티는 힘에도 한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떨어져 나가다니 말이다. 혹시 이성량 반대파가 만력제에게 뇌물이라도 제대로 먹였으려나.
“전하, 요동도사가 바뀌었으니 신임 도사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 야인들이 준동하여 소란을 피울 공산이 크옵니다. 변방에 영을 내려 저들의 동태를 꼼꼼히 살피게 하소서”.
병조판서 김명원이 진언했다. 기본적이고 옳은 이야기기에 바로 수긍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려서 실행하게 했다.
“평안도 관찰사와 부여주 관찰사로 하여금 야인들의 동태를 철저히 살피게 하라! 행여나 이 틈을 노려 요동 땅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이를 빌미로 우리 땅을 노략질하는 자가 나온다면 절대 용서하지 말고 때려잡아야 할 것이니라.”
지난번 해서부 침략 때처럼 누가 또 우리 땅을 쳐들어오면 이번에는 그대로 반격 들어간다. 저번에는 이성량이 딱 개입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바람에 겨우 쳐들어온 놈들만 잡아 족치고 끝내야 했다. 그때 잡은 포로들이 아직도 연해주에서 석탄을 캐고 있다.
물론 걱정은 좀 된다. 한발 때문에 마음껏 병력을 동원하기는 부담스럽다. 비록 우리한테는 속 터지는 짓을 종종 강요하긴 했지만, 이성량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넓은 요동을 안정시키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그 거대한 존재가 없는 것이다.
이성량이 사라진 사실에 기뻐하고, 떨쳐 일어날 기회라고 여기는 자들은 나 이외에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만큼 철저히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나 이외에 다른 놈들이 이 기회를 이용해 세를 넓히지 못하도록 말이다.
젠장, 올해 가뭄만 안 들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