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36
2부 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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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 제패 직전까지 갔던 시마즈 가문으로서는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히사가 벌인 독단행동 때문에 다 이루어진 항복협상은 취소될 뻔했고, 노부나가로부터 직접 침공하겠다는 위협까지 받았다.
그나마 항복협상이 깨지지 않은 건 히데요시가 피를 흘리지 않고 그저 위용으로 시마즈를 무릎 꿇렸다는 영예를 포기하지 못한 덕분이었다. 히데요시는 하성군이 다치지 않았음을 알자 곧바로 침착함을 되찾아 항복식을 치렀다. 그리고 신속하게 군사를 물려 쥬고쿠로 돌아갔다.
시마즈 가문에서는 일단 항복 조건에 따라 모든 병력을 사쓰마로 철수시켰다. 그리고 원래 그 영토를 지배하던 영주들이 복귀하는 모습을 보며 속을 썩였다. 귀인을 해치는 죄를 지은 도시히사는 일단 이쪽에서 스스로 가둬두는 것으로 했다.
조선 왕자가 화살에 맞아 다친 것도 아니니 큰일까지는 없으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어느날 느닷없이 아즈치에서 노부나가가 보낸 서한이 도착했다. 사쓰마, 오스미, 휴가 3국은 지키도록 해주지만 나머지 영토는 신속하게 내놓고, 더불어 도시히사를 할복시키라는 명령이었다.
“영토는 내놓을 수 있지만….”
요시히사가 머뭇거렸다. 동생을 할복시키고 싶지 않았다. 사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한 데 대해서는 요시히사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싸웠으면 졌다. 안다. 하지만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한 건 속이 터지는 일이다. 시마즈 가 남자로서 의기를 보인 게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요시히사가 격정적으로 불만을 토로하자 다른 형제들은 묵묵히 서로를 마주보았다.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 도시히사와 가장 적극적으로 항복을 주장한 넷째 이에히사는 아예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들 중에서 이에히사만 위의 세 형들과 어머니가 다르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아라.”
당주인 큰형이 명령을 내렸다. 도시히사가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일찍이 여기 있는 다른 이들 전원이 항전을 주장했을 때 홀로 화친을 주장했습니다. 오다 가는 규슈만 빼고 천하를 모두 손에 넣었고, 그 군사를 이끌고 온 하시바는 농민으로서 지금의 지위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그런 자들과 싸워 유리할 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시마즈 가 4형제 중 제일가는 지장이라고 불리는 도시히사다. 이에히사도 도시히사가 하는 말이라면 늘 귀담아들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다른 형제들이 그가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 하는 언쟁이었다.
“항전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싸우기라도 했어야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무사로서 해야 할 바를 못했으니, 어찌 밥을 먹고 잠을 자겠습니까? 설사 다른 자가 다시 군대를 끌고 오더라도, 일단 싸우기로 한 하시바는 처단해야 했습니다.”
“더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히사가 끼어들었다.
“그 전에 무슨 논의를 했건, 가문의 중의(衆意)가 새로이 정해진 뒤에 이를 따르지 않음은 반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다 측이 형님 한 사람만 할복하면 넘어가 주겠다고 하는데, 이를 망설일 필요가 있습니까?”
얼굴에 핏발이 선 도시히사가 앞에 놓인 차 쟁반을 들어서 이에히사가 앉아있는 쪽 바닥에 집어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전 전에는 항전하자고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던 놈이, 사태가 불리해지니까 잽싸게 다시 항복으로 방침을 바꿨겠다? 하시바 놈이 네게 무엇을 안겨주었느냐? 시마즈 가 당주 자리를 약속받기라도 했느냐?”
이에히사의 얼굴도 벌게졌다. 적은 군사로 류조지 다카노부를 패사시키고 규슈 제패의 문을 열었던 자신에게 모욕이 떨어진 것이다. 뛰듯이 일어난 이에히사가 허리에 찬 칼을 잡았다. 도시히사도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당장 앉아라!”
요시히사가 호통을 쳤다. 맏형의 성난 목소리에 움찔한 두 형제가 칼에서 손을 놓고 다시 주춤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지금 가문의 미래와 형제의 목숨이 걸려 있다. 그런데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이에히사, 네 손으로 형을 베고 오다에게 그 공을 자랑할 셈이냐?”
노부나가는 분명 도시히사를 할복시키라고 했다. 그런데 할복시키지 않고 참수했다고 하면 이번에는 그걸 트집거리로 삼을지도 모른다. 이에히사도 그걸 빤히 아는 만큼 뭐라고 나서서 답하지 못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침묵하고 있던 둘째 요시히로가 한숨을 쉬었다. 요시히사가 이제까지 한 마디도 입밖으로 내놓지 않은 맏동생을 돌아보았다.
“그대는 할 말이 없느냐?”
일찍이 이들 형제의 조부인 시마즈 다다요시는 이들 4형제를 가리켜 ‘요시히사는 총대장이 될 재능과 덕이 있고, 요시히로는 뛰어난 무용과 지략을 갖추었으며, 도시히사는 자초지종을 따지는 데 견줄 자가 없고, 이에히사는 군법과 전술의 묘를 얻었다’고 평했었다.
실제로 이들 4형제는 각자 지닌 재주에 따라서 가문을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규슈 전부를 시마즈의 깃발 아래 합치려던 참에 오다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주군, 도시히사를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요시히사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지금 성에는 히데요시가 보낸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할복을 확인하려고 와 있다. 교섭이나 매수라는 게 도저히 통하지 않을 상대란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도시히사를 구할 생각인가?”
요시히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쓰마 최고라는 그 지략이 빛을 발하려는 순간이었다.
“조선으로 보냅시다. 물론 여기서는 죽은 것으로 하고 말입니다.”
“후쿠시마 공, 참 미안하게 되었소. 할복을 준비하던 참에 도시히사 님이 도망치고 말았소.”
“뭐라고요!”
숙소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두 눈을 치켜떴다. 노부나가로부터 도시히사가 할복하는 장면을 확인하고 그 머리를 가지고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건만, 시마즈 놈들은 자꾸 시간을 끌려고 했다. 그래봐야 노부나가가 용서할 리는 없을 터인데.
“지금 추격대가 나가려 하는데, 동참하시겠소?”
“물론이요!”
붙잡는 현장을 확인하지 않으면 시마즈 놈들이 사람을 바꿔칠지도 모른다. 행여 도시히사가 아닌 엉뚱한 머리를 가지고 돌아가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마사노리로서는 일생에 그보다 더 큰 후회가 없게 될 터였다.
“저기다!”
백여 명이나 되는 기마대가 쫓자 서너 명밖에 안 되던 탈출자들은 탈출을 포기했다. 이들은 길가에 선 빈 오막집으로 뛰어들었다. 곧 오막집은 겹겹이 포위되었다.
“도시히사 님! 어서 나오십시오. 이미 당주이신 요시히사 님께서 승인하셨습니다. 도망치지 말고 사나이답게 배를 가르십시오!”
요시히사를 모시는 근습무사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소리쳤다. 당연하겠지만 도시히사는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원숭이 새끼 따위에게 항복하는 형님은 더이상 내 주군이 아니다! 나는 이 길로 주고쿠로 가서 빗나간 화살을 다시 겨눌 테다!”
분명히 도시히사의 목소리였다. 추격대에 동참한 마사노리는 그 어리석은 결심을 비웃었다.
“그런 짓을 하시면 기껏 맺은 강화가 깨지고 사쓰마가 짓밟히게 됩니다!”
근습무사는 소리쳐 대화를 계속하면서 손짓으로 부하들을 여기저기에 배치했다. 마사노리는 그 옆에 서서 오막집에서 빠져나가는 모든 길이 막힌 것을 확인했다.
“자, 어서 나오십시오! 아니면 끌어내겠습니다!”
“순순히 끌려나갈 줄 아느냐!”
다음 순간 오막집 뒷문 쪽에서 맹렬한 칼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집이 포위된 줄도 모르고 뒷문으로 탈출하려던 시도가 분명했다.
“모두 뛰어들어라! 도시히사 님을 잡아라!”
근습무사가 나서서 호령하자 서른 명 가까운 병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뛰어들었다. 오막집 앞뒤에서 한참을 치열하게 칼 부딪는 소리가 나나 싶더니 갑자기 벽 틈으로 연기가 새나오기 시작했다. 곧 지붕 틈으로 불길이 일었다.
“무엇들 하느냐! 도시히사 님을 어서 끌어내지 않고!”
“허나 나리, 불길이…!”
별로 크지도 않은 오막집은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되었다. 추격대는 붙잡으려던 도망자들을 단 하나도 잡지 못했다. 모두가 숯이 되고 말았다.
“일단 속인 듯하긴 합니다.”
불타버린 오두막 지하에는 토굴을 파두었다. 도시히사는 그 굴을 통해 가까운 우물 속으로 빠져나갔고,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목을 베어간 시신은 도시히사와 체구가 비슷한 가신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사쓰마이니만큼 주군 대신 죽겠다는 자는 많았다.
“머리 좋다고 명성이 자자한 이시다나 오타니 같은 자들이었으면 속이기 힘들었겠습니다만, 후쿠시마는 실로 맹장이지만 생각은 단순하다고 소문이 난 자라 다행이었습니다.”
어둠 속이라 주변 판별이 어려웠던 덕을 보았다. 마사노리는 도시히사의 목소리만 듣고서 도시히사가 끝까지 오두막집 안에 있다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칼싸움이 시작될 시점에 이미 토굴로 들어가 있었다. 지금은 변복을 하고 시종과 함께 이키로 가고 있을 것이다.
“조선 국왕이 도시히사를 받아줄까? 그리고 도시히사가 조선에 귀부한다면, 훗날에 우리와 칼을 맞대는 일이 생기지는 않겠느냐?”
요시히사는 자뭇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요시히로가 자애심이 넘치는 형을 안심시켰다.
“사나다 놈들도 조선 국왕에게 성과 이름을 받고 잘살고 있다는 소문이 이미 규슈 전역에 퍼져 있지 않습니까? 도시히사는 훌륭한 무사이니 필시 좋은 대우를 받을 겁니다. 그리고.”
요시히로가 헛기침을 했다.
“도시히사가 하시바인줄 알고 활을 겨눴던…그 조선 왕자는 조선 국왕이 매우 중히 여기는 친척으로, 숙부뻘이라 합니다. 그 맏아들이 바로 차차히메와 혼인한 자라고 하고요. 노부나가 공이 이토록 조선을 호의적으로 보니, 우리가 조선과 싸울 일은 없을 겁니다.”
시마즈는 이제까지 조선과의 사이에 은혜도, 원한도 없었다. 류조지 때문에 다소간 갈등이 있었던 적은 있지만, 그게 폭발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것으로 일은 끝났다. 도시히사를 도피시킨 사연이 노부나가에게 들통나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 24 –
정철은 눈 앞에 펼쳐진 송화강과 목단강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아, 정여립 그놈을 너무 얕보았다. 출세에 영합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로 소인배였을 줄이야.
놈이 작심하고 친 올무는 매서웠다. 반역죄를 지었다는 누명을 벗을 방법이 없었다. 금위사 끄나풀이 도대체 집안의 누구인지 몰라도, 그가 혼잣말로 지껄인 불평까지 수집해다 바쳤다. 옴치고 뛸 재주가 없었다.
임금은 정철이 억울하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형을 내리지 않고 전가사변을, 그것도 혐의자 전원에게 내릴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 사건에 얽혀 추방된 이들 모두를 단 한 고을에 모으다니, 이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역당들을 귀양형에 처하거나 변방으로 보낼 때는 반드시 산산이 흩어놓는다. 그래야만 서로 연결하지 못해서 헛된 짓을 재차 꾸미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도’들만 모아서 고을을 세우게 하다니, 이거야말로 다시 반란을 일으키라고 사주하는 행동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따라서 임금은 정철 자신을 비롯한 여러 사대부와 종친들을 역적으로 보지도 않고, 처벌할 의사도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철은 자신들 모두가 함께 새 고을을 세우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이런 결론을 냈다. 다른 이들 역시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럼 도대체 왜 역적도 아닌 자신들을 여기로 보냈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보자, 임금은 무지한 야인들에게 정녕 도란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눈 딱 감고 가장 우수한 선비들을 북방으로 보낸 게 틀림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무종대왕께서도 과거에 소과에 급제한 이들을 북으로 보내 야인들을 교화시키려 했듯이 말이다.
비록 춥고 힘든 북방이지만, 주변 야인들을 교화하면서 도덕과 이치의 성을 굳건히 세우면 상감께서는 그 공을 높이 평가해 다시 도성으로 돌아오게 해 주실 것이다. 그러면 지금 겪는 이 고생도 모두 문집으로 길이 남길 영광스러운 이야기가 되리라.
“나리께서는 어찌 술만 드십니까?”
“술을 마시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나무 베는 일은 저희가 할 테니 잔가지라도 주우십시오! 자꾸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시면 도호부사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철은 깊은 한숨을 토하며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땔감으로 쓸 잔가지를 줍기 시작했다. 북방으로 오면서 모든 노비, 천민들도 면천이 되어 그와 차이 없는 신분이 되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모두 노동을 해야 했다.
그가 거느렸던 노비들은 면천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나같이 주인을 버리고 나갔다. 그나마 알고 지내던 양인들이 사정을 보아주어 도움을 받았다. 언제쯤에나 당당한 사대부로서 살 수 있을지, 그저 암담할 뿐이었다.
삼성도호부사 권징은 초조한 기분으로 베어들인 재목 숫자를 점검했다. 북방에서는 겨울이 일찍 닥칠 텐데 아직 충분한 월동준비가 되지 못했다. 관아조차 이곳 추장의 집을 그냥 쓰고 있는 판이다. 여기서 본래 살던 야인들의 집만 가지고는 턱도 없다.
“북평에 사자를 보내 목수를 지원해 달라고 하라. 이미 땅이 굳어져서 진흙은 충분히 구할 수 없으니, 나무를 베어 목책을 세우고 귀틀집이라도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
겨울만 버티면 된다. 겨울만 지나고 나면, 내년 봄에 제대로 집을 짓고 농토를 마련할 수가 있다. 그때까지만 견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