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41
2부 119화
– 3 –
이건 정말 꿈이 아닐까. 세상에, 치트라고 해도 이런 치트가 있을 수 있을까. 이거야 정말로 하느님의 은혜가 아닐까. 나, 진심으로 다시 성당에 나갈까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고? 그야 하느님이 보내주신 보물선이 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지.
“교황 성하와 에스파냐 국왕 폐하의 이름으로 조선국 국왕 전하께 인사를 올립니다.”
근정전 앞에 늘어선 쉰 명에 달하는 사절단을 보자 내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세상에, 이거 현실이야? 현실 맞아? 로마 교황이랑 스페인 국왕이 나한테 사절을 보냈다고?
세스페데스가 알려주길, 지금 로마 교황은 식스투스 5세라는데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스페인 왕은 모를 수가 없다. 바로 진짜 첫 번째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지배자이자 가톨릭 세계의 수호자, 펠리페 2세이기 때문이다!
지금 유럽 최강국은 누가 뭐라고 해도 스페인이다. 육군이건 해군이건 말이다. 내년에 영국 상륙하려다가 무적함대가 쓴맛을 제대로 볼 거긴 하지만, 영국이 스페인을 제대로 추월하려면 아직 멀었다. 재정은 파산 상태라지만, 아직은 분명한 초강대국이다.
유럽을 영적인 면과 물리적인 면에서 좌지우지하는 이 양반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구 반 바퀴 너머에 있는 내게 특사를 보냈을까? 머리가 혼란스럽다. 당황스러운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 데만도 정말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교황 성하께서는 전하께서 스스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셨다 하는 소식에 크게 감탄하시고, 이는 온 교회를 위해 기쁘고도 또 기쁜 일이라 하시며 저희를 보내 환영한다는 인사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팔레데스 신부가 하는 통역으로 교황 특사로 온 엔리코 뭐시기라는 주교가 하는 인사말을 듣는데, 눈이 휘둥그레질 이야기가 나왔다. 뭐? 스스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지금 나온 저 인사는 내가 세례를 받아서 완전히 신자가 되었다는 투잖아? 난 선교사를 허락했을 뿐인데?
이런 소리가 나올 구석은 빤하다. 내가 세스페데스 쪽으로 눈을 돌리자 세스페데스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망할 놈, 역시 네가 부풀렸구나. 저걸 그냥….
내 속이 부글거리건 말건 교황 특사는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비록 전하께서 직접 세례를 받지는 않으셨으나, 직접 선교사를 청하여 받아들이시고 이들 신의 사도들이 조선 백성들에게 구원을 전하도록 허용하셨습니다. 이는 실로 동방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실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휴우, 사제왕 드립이 없어서 다행이다. 세스페데스가 나한테 요한의 후손이 아니냐고 하긴 했지만, 그 억측을 로마에까지 보고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내가 세례를 받았다고 완전한 허위보고를 한 것도 아니고. 하긴, 성직자가 겨우 그런 걸 가지고 거짓말을 할 리가 있나.
“교황청에서는 이미 3백 년 전, 당시 고려로 알려져 있던 이 조선에 이미 많은 신자가 있고 고려 국왕께서 이들을 보호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에 칭송과 감사의 뜻을 전달하였는데, 그 서한이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허나 오늘 저희가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저 양반들이 고려랑 조선이 사실은 같은 나라인 줄은 용케 알았네. 아니, 그건 세스페데스 쪽에서 편지로 보고했을 수 있으니 별로 어려운 문제는 아니긴 하군.
“비록 3백 년 전에 피었던 신앙의 불꽃은 잠시 흐려졌다 하나, 이제 다시 이어졌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성하께서는 동방 선교에 관심이 많으시어, 일본과 명나라에서도 조선처럼 그리스도의 불꽃이 피어오르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이건 좀 곤란하군. 선교에 열성적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성향이 문제다. 이 특사도 그렇고, 교황도 그렇고 우리 문화를 어떻게 취급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아무나 한반도에 들어와서 선교하며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다.
“방금 들으니 그대는 프란체스코회 소속이라 하던데.”
“그렇습니다.”
“나는 내 왕국에서 예수회에 독점적인 선교 권한을 주었다. 예수회가 우리 왕국이 가지고 있는 관습과 전통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다른 선교회가 조선에서 선교하고 싶다면, 역시 우리 관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대는 이 점을 약속할 수 있는가?”
프란체스코회, 도미니코회. 이 두 수도회는 뒤늦게 동양에 왔다. 이들은 제사와 같은 전통적 관습을 인정하지 않고 전적으로 가톨릭 교리에 따르라고 요구했고, 그 결과 중국에서 선교를 금지당했었다. 이쪽 세계에서는 처음부터 못을 박아버릴 생각이다.
“그 문제는 제가 개인적으로 확약할 권한이 없습니다. 로마에도 보고하고, 총회를 거쳐야만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니 전하께서는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주교쯤 되는 자리에는 정치력 없이는 올라갈 수 없는 모양이다. 내 요구사항이 분명히 마음에 들지 않을 텐데도, 엔리코 뭐라는 주교는 웃으면서 차분하게 답했다. 아마 출발하기 전에 교황이, 동방의 왕이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인내하라고 다짐했겠지 싶기는 하다.
“고맙다. 즐거이 머물다 가기 바란다.”
“저희 펠리페 2세 폐하께서는 전하께서 스스로 선교사를 받아들이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크게 기꺼워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스페인 국왕이 보낸 특사 차례다. 이 양반 이름은 디에고 뭐 올리베이라 백작이라 했다. 잠깐, 올리베이라? 어째 귀에 익은데? 그거 일본사람이 쓴 어느 스페이스 판타지에서 잘난 척 뽐내던 어떤 폴리페서 이름 아니었나?
소설 속 캐릭터와 똑같은 이름을 만나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다. 조~금 호감이 더해졌다.
“저희 국왕께서는 그리스도의 빛이 세상 끝까지 비치는 것과 만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것, 두 가지 외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러던 중에 머나먼 동방에 있는 조선에서 폐하께서 그러하시듯이 백성을 중시하며, 신앙을 존중하는 군주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신 것입니다.”
신앙 문제는 오해가 분명하니까 일단 넘어가고, 백성을 중시하는 군주라는 소리는 어디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펠리페 2세는 제국의 모든 사무를 직접 결제하는 엄청난 일 중독자였다고 들었는데. 나는 그렇게 서류에 파묻혀 죽을 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세스페데스가 로마에 어찌 보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대가 모시는 군주처럼 종일 국사에만 매진하지는 않는다만….”
“아닙니다. 저희 폐하께서 감탄하신 부분은, 전하께서 얼마나 오랜 시간 집무실에 계시는가 하는 문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저희 폐하께서는 전하께서 선교사들에게 선물로 작물 씨앗을 요구하신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실로 탄복하셨습니다.”
그거야…먹지도 못할 금덩어리에 비하면 앞으로 대를 물려 농사지을 수 있는 씨앗을 얻는 편이 훨씬 가치가 크니까 그렇지. 펠리페 2세도 아마 그 점에서는 나랑 같은 생각일걸.
“이에 감동하신 폐하께서 제게 명하셨습니다. 전하께 조금이라도 보탬을 드리고자 폐하께서 선물을 마련하실 테니, 배를 준비하라고요. 그리고 마침 교황청에서 특사를 보낸다기에 같은 배로 함께 아시아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물이 뭔데? 궁금하긴 한데 차마 대놓고 묻지 못하는 사이 올리베이라 백작이 한껏 웃으며 선물 목록을 펼쳐 들었다.
“펠리페 2세 폐하께서 전하께 드리는 선물은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종마를 6마리 가져왔습니다.”
스페인, 그것도 안달루시아 산 말이라니! 그거, 일반 승마용이나 경기병용으로는 세상에서 최고로 치는 말이잖아! 삼총사에서 아토스가 전쟁에 나갈 때 타던 말이라고! 그런 말을, 진짜 최고급 종마로 6필이나?!
나도 모르게 두 눈이 동그래졌다. 올리베이라 백작은 스페인 말의 명성이 머나먼 동방까지 퍼져 있다는 사실이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카스티야에서 가장 젖을 잘 내는 암소 5필과 황소 한 필, 잘 선별한 돼지 세 쌍과 토끼 열 쌍, 수탉 세 마리와 암탉 열 마리,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 수집한 밀, 보리, 아마 등 모든 농작물의 가장 좋은 씨앗들입니다. 전하께서 백성들을 먹이시는 데 쓸모 있을 겁니다.”
이건 정말 고맙고도 감사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를 못하겠다. 맹세컨대 저들이 타고 온 배 선창에다가 황금을 하나 가득 실어왔어도 지금 기쁜 만큼 기쁘지는 않았을 거다. 현대 농업과 축산업에서 육종의 기반이 된 게 유럽산 가축과 농작물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찔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전하를 도울만한 사람들도 보내주셨습니다. 플랑드르 출신 조선공 일곱 명과 톨레도 출신 대장장이 세 명, 제노바 출신 항해사 여섯 명, 독일 출신 광산기술자 다섯 명, 역시 독일 출신 기계공 네 명, 인쇄공 두 명이 저희와 함께 왔습니다. 저기 뒤편에 서 있는 이들입니다.”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신하들도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긴 실제적으로는 어쨌건 간에, 사대부들은 검박한 태도를 모범적인 것으로 여기니 말이다. 금은보화를 선물하기보다 가축과 작물을 선사하는 펠리페를 호의적으로 봐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함께 온 장인들도 실속 없는 사치품 제작이 아니라 산업을 일으키는 데 꼭 필요한 재주를 갖춘 이들이니, 어찌 반기지 않겠는가.
아마 이건 펠리페 2세의 성격 탓이 크지 싶다. 내가 역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건 아니지만 펠리페 2세가 사치를 일삼았다거나 백성들에게 가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결과야 어쨌건 늘 백성들을 위해 노력한 군주였다고 기억한다. 그러니 내게도 이런 선물을 보냈겠지.
“이런 귀중한 선물을 받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도다. 이는 나에게 있어서 솔로몬의 모든 재화와 보물보다 더 값어치가 있는 보화이니, 진실로 어떤 말로 감사를 표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그대의 군주에게 어떻게 답례하면 좋겠는가?”
정말이지 내가 줄 수 있는 건 뭐든지 주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영국 침공을 도와준다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건 제외하고. 그러고 보니 펠리페 2세, 내년에 영국 해군한테 코피 터지게 당할 텐데…정보라도 좀 줘야 하나?
“아무것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국왕께서는 그저 선의로서 이것들을 선사하셨으니까 말입니다. 그저 전하께서 진실한 신앙의 형제로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쪽도 돌려서 말했을 뿐이지 하루빨리 개종하라는 건 같구먼. 됐다. 선물이 정말 풍족하니 그 정도 말은 넘어가 주마. 스페인이 장차 프랑스나 영국에 밀려날 게 안타깝긴 하다만, 그건 역사의 흐름이 그런 거니 내가 어떻게 하겠나.
“이번에 보여주신 우의를 내 절대 잊지 않으리라 전하라. 바라시는 바는 노력해 보겠도다.”
아 뭐 펠리페 2세에게 잘 보이려고 굳이 내가 세례를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백성 중에서 가톨릭을 믿고 싶은 이들만 믿도록 허용해주기만 해도 충분하다. 게다가 길어야 몇십 년 안에 영국인, 네덜란드인들이 여기까지 온다. 그러면 종교적 압력은 거의 사라진다.
상업 면에서도 스페인보다 영국이나 네덜란드와 교역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펠리페 2세가 처한 입장에서야 우리가 선물만 받고 입을 닦았다고 분개할 수도 있겠지만, 우린 우리대로 할 말이 있다. 스페인이 시대의 흐름에 밀려난 거지, 우리가 배신을 때린 건 아니니까.
어쨌든 밀려나기 전까지는 잘 지내볼 일이다. 스페인은 필리핀을 차지한, 어떻게 보면 유럽 세력 중 유일한 인접국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더구나 이렇게 두둑한 선물을 주고서도 대가는 필요하지 않다고 하니, 단단히 덕을 베푼 셈이다. 적어도 바로 걷어찰 수는 없다.
“경회루로 옮기도록 하자. 잔치 준비가 되어 있도다.”
“예, 전하.”
– 4 –
“서애 자네가 바쁜 일이 많겠군.”
“힘들 건 없는데 워낙 급작스러워서 말일세.”
모처럼 유성룡의 집에 찾아온 이순신은 따스한 환대를 받았다. 삼년상이 끝나고, 올해 초에 조정으로 복귀하자 임금은 이순신에게 훈련도감 좌별장 직을 내렸다. 당장 일선에 나가기보다 새롭게 편성하는 도감군을 보고 그에 맞춰 적응하라는 배려로 보였다.
“그래도 자네가 남만인들에 대해서는 조정에서 가장 잘 알지 않는가? 일본에서 프로이스라 하는 남만승과도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눴고….”
“요즘은 다르네. 나보다는 형조좌랑 이항복이 훨씬 남만인들과 가깝지. 나는 주변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여서 남만사도 찾아가지 않는데, 이항복은 여사스럽게 남만사를 찾아가서 남만 사람들과 어울리더구만.”
“허허,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자네는 어떤가? 자네야말로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매일 남만인을 만나지 않는가.”
젓가락을 들고 안주를 집던 유성룡이 물었다.
“조정에서는 형조좌랑처럼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서야 남만인을 볼 일이 없지. 세스페데스도 요즘은 경복궁을 찾는 일이 줄었거든. 전하께서 저들을 불러들이기보다는 친히 남만사를 찾아 방문하시는 편을 선호하신다네.”
“그래서 요즘 남만사와 남만교에 대한 소문이 시골까지 퍼지는 거였군.”
이번에 남만에서 대선(大船)이 오기 전에도, 이미 남만사에 대한 소문은 크게 퍼져 있었다. 코 크고 눈 퍼런 남만인들이 불당 비슷한 절을 차려놓고 있는데, 온갖 신기한 물건을 가지고 있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만 보여준다는 이야기였다. 상감께서도 자주 드나드신다고 했다.
“나야 도감에 등청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네만, 이미 얼추 일 년을 남만인을 접한 군사들 대부분은 별 거리낌 없이 대하긴 하더군. 군사들은 남만 말을 모르고 남만인들은 우리네 말을 모르면서도 말일세. 섞여 지내니 어떻게든 전하고자 하는 뜻은 전해지는 모양이야.”
훈련도감에서는 스페인어와 조선어, 왜별기가 쓰는 일본어까지 섞인 묘한 방언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순신은 아직 이를 익히지 못했고 일부러 익힐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남만병이 싸우는 모습을 보자면 갑주가 든든하고 창과 칼이 예리하며, 그 휘두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네. 검을 휘둘러도 그 가는 길이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세세히 규정해 놓았으니, 책만 보고 배워도 늘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되었더군.”
조선의 무예는 스승 없이는 제대로 익힐 수 없다. 그 기술이 구전으로만 전해지거나, 혹여 책으로 남았다고 해도 움직임이 대략적으로만 적혀 있어 따라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드리고라 하는 남만인이 가진 검술서에는 검을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각도까지 정확하게 표시한 그림이 들어가 있었다. 스승 없이 책만 보고 배워도 수련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독학으로 검을 익히자면 시간이야 스승에게 배울 때보다 더 걸리겠지만 말이다.
몇 가지 이야기를 더 주고받다가 화제가 사절단이 타고 온 배로 옮아갔다.
“듣자하니 이번에 남만 사신이 타고 온 대선은 실은 본래 군선이라 하더군. 전하께서 직접 벽란도에 가서 친견하신다네. 내일 출발할 걸세.”
“나도 수행하라는 명을 받았지. 나 말고도 도감에서 군관 여럿이 수행할 걸세.”
“그래? 도감 사람들이 나오는 줄은 알았네만, 자네가 그 안에 든 줄은 몰랐네. 그쪽 명단은 병판 대감이 전적으로 만들었거든. 적당히 넣었겠거니 했지.”
임금이 도성을 비우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래도 이번에는 목적지가 가까운 개성이고, 여행 기간도 짧다. 게다가 조정 중신 중에 절반 이상은 한양에 남아 있을 거라서 국왕 부재에 따른 특별한 지시는 내려지지 않았다.
“그럼 오늘은 일찍 파해야겠군. 자네도 오랜만에 찾아왔는데 아쉽네.”
“또 만나면 되지 않겠나. 이제 한동안은 도성에 있을 듯하니.”
술잔이 부딪쳤다. 유성룡이 특별히 하사받은, 사절단이 가져온 남만산 포도주가 찰랑거리게 담긴 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