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50
2부 1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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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통나무를 땅바닥에 꽂아 만든 성채는 북방에서는 흔한 형태다. 남쪽에서처럼 석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나무는 사방에 널려 있으니, 당연한 선택이다.
“옛 기록을 보면 고구려는 돌을 쌓아 천리장성도 쌓고 요동성도 쌓았다 하던데, 우리 역시 그리 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성들은 요하 쪽에 있었지. 요하야 옛적 조선 때부터 우리 백성들이 살았던 곳이라 돌도 넉넉히 있지만, 이곳 목단강 일대는 충분히 개간하지 않은 곳 아닌가. 돌을 구할 곳이 없으니 어찌 석성을 쌓겠는가.”
권율이 이곳 삼성부에 부임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갑자기 내린 어명에 따라 부랴부랴 후임자에게 고을을 인계하고, 같이 옮겨가게 된 정일한과 함께 여기 도착했다. 주어진 시일이 촉박하여 여정은 정말 바빴다.
전임자인 권징은 미리 통보도 없이 후임이 오자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기뻐했다. 드디어 이 북방 땅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모소동에 말려들기 전 벼슬인 관찰사로 다시 올라간다는 사실이 더 반가웠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권 감사께서 웬만한 일은 다 해두셔서 다행일세. 고을을 둘러싸는 성벽을 완성해서 방어에 한시름 덜게 하셨고, 식량도 많이 저축하셨으니.”
지금 삼성부 인구는 2만이다. 정철의 난에 말려들어 일시에 옮겨진 1만 이외에도 다른 지역 백성들이 많이 들어왔다. 권징은 이 많은 백성들을 잘 다독여서 삼성부를 건설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집이 별로 없어서 귀틀집으로 겨울을 지냈다고 들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듣던 바보다는 낫더군요.”
두 사람은 문루 위에서 몸을 돌려 성내를 내려다보았다. 이 성은 동서남북 네 귀퉁이에 큰 성문이 있고, 당연히 문루도 있다. 눈앞에 펼쳐진 집들 대부분은 널빤지나 통나무를 얹어서 지붕을 만들었다. 곡식을 올해 처음 수확하는 터라, 초가를 얹을 짚도 없는 것이다.
기와집은 딱 한 채 있었다, 삼성부사, 즉 권율 자신이 주재하는 관아다.
“강을 통해 연해주에서 물자가 올 수 있어서 그나마 천만다행일세. 그 뭐라더라, 오소리강? 그 강을 지나 흑룡강으로 내려가서 다시 배를 돌려 목단강으로 올라오는 길이 있다니, 분명히 전하께서 있을 거라 말씀하시긴 하셨네만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네그려.”
“그야 부사 나리나 저나, 맡은 고을이 바로 목단강에 면해 있지는 않았으니 말입니다. 강을 통해 식량에 벽돌, 기와까지 올 줄은 몰랐지요.”
딱 한 채 있는 기와집인 관아에 얹은 기와가 연해주에서 선편으로 올라온 기와다. 연해주 감영이 있는 해삼위 일대에는 기와와 벽돌, 그릇을 굽는 가마가 지금 십여 개나 들어서 있다. 거기서 생산한 물건들이 배에 실려서 강을 따라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기와와 벽돌은 무거워서 나르는 수고가 크니, 어찌 소요되는 양을 전부 연해주에서 날라다 쓰겠는가. 우리도 가마를 만들어 직접 구워야겠지.”
배 한 척에 싣고 올라온 기와와 벽돌은 집 한 채를 지으면 고작인 분량이다. 전임자 권징은 가마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방에 나무가 널린 땅에서, 나무로 벽도 세우고 지붕도 이으면 되는데 왜 벽돌과 기와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래도 권 감사 나리 덕분에 식량은 넉넉해서 다행입니다.”
권징은 가마 만들기보다는 농지를 개간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얻은 농토에 담저와 옥수수를 심고, 강에서 고기를 낚게 하고, 숲에서 사냥을 했다. 양반, 사대부라 해도 일에서 빠질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식량은 연해주에서도 왔다. 연해주에 사는 야인 여진들, 옛 골간 올적합에 속하는 야인들은 지금도 강과 바다를 삶터로 삼아서 고기잡이를 주로 한다. 부여주에서는 야인들에게 세금으로 초피를 거두지만, 연해주에 사는 야인들은 어포를 세금으로 바쳤다.
연해주 감영에서도 곡식보다는 어포를 많이 비축했다. 그리고 상감은 내수사가 연해주에서 생산하는 소금에 절인 고래고기와 감영에서 비축해둔 어포를 선편으로 삼성부에 보내게 했다. 아직 농토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던 시기에는 실로 고마운 식량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곳에서 직접 잡은 고기와 사냥한 짐승, 농사지은 작물이 있으니 해삼위에서 오는 배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수확한 담저만 해도 그 양이 상당하니까 말이다. 흑룡강에서 낚는 물고기만 해도 식량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다.
지금도 해삼위에서는 열흘에 한 척 꼴로 배가 온다. 다만 싣고 오는 짐은 식량보다는 철재, 무기, 화약 등에 집중되어 있다. 부여주에서는 도저히 자급할 형편이 안 되고, 대체품도 없는 물건들이다. 물론 상당량은 북평까지 올라가고 삼성부에는 일부만 하역한다.
“겨울이 되면 야인들이 덮칠 수 있으니 방비를 튼튼히 하라는 어명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니 권 감사께서 방어에도 좀 더 신경을 쓰셨다면 좋았겠습니다만….”
“이 정도면 그래도 양호하지. 더 이상 바라면 욕심일 걸세.”
삼성부를 둘러싼 방벽은 나무기둥을 박아 만든 목벽에 부분적으로 토벽으로 보강한 형태다. 권징은 나무기둥을 성기게 박아서 그저 목책만 만들어두었는데, 지난 4월에 착임한 왜별기장 사마유가 기둥을 빽빽하게 더 박아서 목벽으로 강화하라고 권했다고 했다.
“부역을 시켜서 목책 겉에 흙을 바르게 하면 어떨까요? 나무로만 벽을 세우면 적이 화공을 벌인다면 그대로 타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냥 토벽보다 높이 쌓기도 쉬우니, 아직 날이 따뜻한 동안에 흙을 개어 바르게 하시지요. 나중에 벽돌이 준비되면 그 겉에 벽돌을 씌워도 좋고요.”
“생나무로 세운 벽이니 쉽게 타지는 않을 것 같네만, 대비해서 나쁠 건 없겠지. 그리 하세.”
두 사람 모두 이 북도에서의 험한 겨울을 몇 해나 넘겼다. 모든 공사는 아직 날이 따뜻한 동안에 해치워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겨울이 되어서 땅이 얼면, 아무리 곡괭이질을 해도 쥐 한 마리 묻을 구멍도 파기 힘들다. 더구나 삼성부는 이들이 있던 고을보다 한참 북쪽이다.
“군사는 오도리 기병 1천에 이곳 속오군 3천, 왜병이 6백…이만하면 야인이 1만 명 정도는 들이닥쳐도 괜찮겠지.”
겨울에 여기 주둔했던 관군 기병 3천은 전부 빠져나갔다. 울라를 응징하는 싸움을 치르려면 많은 병력이 필요하고, 때문에 부여주 일대 병력은 대부분 북평으로 모이고 있었다. 목단강을 넘어오는 도적들도 요즘은 사라져서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왜병들을 믿을 수 있겠사옵니까? 말도 잘 통하지 않사온데요.”
“갈 곳도 없는 이들일세. 조선 땅에서 살고 싶다면 최선을 다하겠지.”
4월에 삼성부에 처음 온 왜병은 300명이었다. 헌데 그 뒤에 6월에 300명이 더 왔다. 왜국 구주에서 분란이 생겨 머무르지 못하고 도망해 온 자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모두 왜별기장 사마유에게 지휘를 받았다. 물론 사마유는 권율에게 지휘를 받으므로 왜병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정도는 별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온 왜병들 중에는 신기한 조총을 쓰는 자들이 있더군.”
“저도 봤습니다. 얼마나 굵고 큰지, 탄환이 천 보는 날아갈 듯하더군요.”
새로 온 왜병들은 자기들이 왜국에서 쓰던 조총을 가지고 왔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이고 쏘는 조선 조총과 달리 뺨에 붙이고 쏘는데, 그 외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탄환도 이쪽에서 쓰는 것과 흡사한 동그란 납탄환을 쓴다.
그런데 그중 확실히 특이한 조총이 있었다. 사람 키만큼 총신이 길고 굵기는 팔만큼 굵은 조총이었다. 이 총은 가운데에 회전할 수 있는 고정못이 붙어 있어서, 이 총을 쓰는 왜인들은 이 못을 사용해서 성벽 위에 총을 거치하고 있었다.
“그리 거대한 총이니 아주 멀리 있는 적도 노려 쏠 수 있겠지. 천리경이 여분이 있을 테니, 그 대조총을 쓰는 자들에게 주도록 하게. 망루 위에서 적을 살피다가 쏠 수 있게.”
“예, 부사 나리.”
정일한은 한때 동급이었던 권율 밑에서 일하게 된 데 별 불만이 없었다. 이웃 고을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상관으로 모시고 보니 정말 능력이 범상치 않았다. 앞으로 어떤 힘든 난관이 닥쳐도 이 사람 밑에 있으면 별 탈 없이 넘길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 23 –
두어 달 뒤에는 성절사가 돌아온다. 워낙 명분이 확고하니, 명나라 조정에서도 우리 토벌을 불허하지는 않을 것이다. 관리가 살해당했는데 어찌 그냥 넘어가란 말인가.
몽골이 고려를 처음 침공했을 때 명분도 사신 저고여를 살해한 죄였다. 비록 우리 감목관이 저고여만한 거물은 아니다만, 내가 임명한 관리를 죽임으로써 내게 도전한 자들은 분명 죄를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
준비는 착착 진행하고 있다. 오위군 5만 중에서 3만을 동원하고, 편성이 완료된 도감군 1만 2천을 전부 투입한다. 부여주 관군 중에서 2만, 토병 8천을 동원해서 7만 명을 동원한다. 그 정도면 울라를 뿌리채 짓밟아버리기에는 충분하다. 울라 인구가 10만이 조금 안 되니까.
요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자의 보고도 받았다. 요동순무가 말하기를, 달자들은 요즘 장성 일대에서 줄기차게 습격을 벌이느라 바쁘니 행여 조선을 건드릴지도 모른다는 걱정 따위는 안 해도 된다는 거였다.
다른 3부가 울라를 돕겠다고 나설 일도 없어 보였다. 내 경고를 받은 예허와 하다는 울라가 잘못한 일이니 자기들은 상관할 생각이 없다는 답을 보냈다. 호이파도 개입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믿기가 좀 곤란했다. 애초에 그놈들도 별 차이 없는 도둑놈들인데 뭘 믿으란 말인가.
그래서 왜인여진 2만은 울라 토벌군에서 제외시켰다. 지금처럼 호이파 견제 및 방어를 맡게 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방어는 속오군과 토병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런 교섭은 반쯤 공공연하게 진행했다. 울라 놈들이 뒤늦게라도 겁을 먹고 사죄해 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헌데 아무 연락도 없었다. 호이파 놈들은 여전히 우마시에 나타났지만 울라 놈들은 우마시에도 발을 끊었다. 병사를 소집한다는 소문만 흘러들어왔다.
“울라 부장 만타이는 정신이 나간 것 아닌가? 억울한 자를 지키겠다는 것도 아니고, 명백한 살인죄인 네 명을 지키겠다고 내게 거역한단 말이냐?”
예조판서 유성룡이 차분하게 진언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대국 요동순무도 이미 동의하였나이다. 상께서는 진노를 거두소서.”
요동순무는 이 건에 대해서 명백하게 확답했다. 북경에 있는 조정에서도 승인할 테지만, 그 자신도 내가 분노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한다고 말이다. 이 말인즉슨 혹시 황제가 울라 토벌을 바로 승인하지 않고 미룬다고 해도, 자기 선에서 눈감아주겠다는 소리다.
“알겠다. 성절사가 칙허를 받아 돌아오면 바로 군사를 일으킬 터이니, 출정할 오위 및 도감 소속 군사들에게 만반의 준비를 갖춰두도록 하라.”
도성에서 출발할 군사만 4만이 넘는다. 그만한 군사들이 도중에 밥을 굶지 않도록 군량을 준비하고, 현지에서 원활히 싸우도록 군수물자를 축적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병조판서 김명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한참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동해 일원에 있는 화약을 모두 긁어서 해삼위로 보내게 하였습니다. 압록강을 통해 보내는 방법도 있사오나, 압록강 상류에서 목단강으로 넘어가는 구간에서는 배를 이용할 수 없는지라 이쪽으로는 소량만 보냈사옵니다.”
바로 그 구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왜인여진들을 이 일대에 정착시켰다. 사실 그 지역은 본래 장백여진에 속하는 주셔리 부 영토였지만, 본래 세력이 약한 주셔리 부는 군말 없이 우리에게 약간의 영토를 내주었다.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고 있다.
“장차로는 남만초를 벽란도에서만 받지 말고 동래와 해삼위에서도 받도록 해야겠다. 전국에 있는 각 군영이 모두 군기시에서 화약을 공급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
삼남 일대 육군과 수군은 동래에서, 경군과 평안도군은 벽란도에서, 북방영토와 함경도군은 해삼위에서 공급받은 염초로 화약을 만들면 된다. 혹시 필요하면 타 지역에서 지원해주고.
“남만초 재고는 넉넉한가?”
“어명에 따라 신기전을 새로이 제조하기에는 다소 빠듯합니다.”
그동안 망설이던 바를 아무래도 실행에 옮기는 편이 좋겠다. 전쟁을 하려면 다른 건 몰라도 식량과 탄약은 넉넉해야 하는 법이 아니던가.
“호조판서는 다음에 남만선이 오거든 주문하는 염초 양을 한 번에 2만 근, 아니 3만 근으로 늘려라. 충분한 화약 없이 무슨 싸움을 하겠느냐.”
3만 근이라고 해도 18톤밖에 안 된다. 산 안드레아 호가 충분히 싣고 올 수 있는 물량이다. 값은 명나라에 인삼 팔고 받는 은으로 충분히 조달할 수 있으니 문제될 거 하나도 없고.
그나마 당장은 여진족, 그것도 울라 하나만 토벌할 예정이니까 화약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장차 왜란이 벌어질 때면 화약이 얼마나 필요할까?
이순신이 해전을 한 번 치를 때마다 화약을 1천 근씩 소모했다고 들은 걸로 기억한다. 아마 이쪽 세계에서도 그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거다. 게다가 육군에서도 화약을 더 많이 소비할 테니…에휴, 일단 넉넉히 사들이고 보자. 남으면 쌓아놨다가 쓰면 되니까.
“아, 팔레데스 신부에게 호조 낭관 한 사람과 함께 다음 배편으로 마카오에 가달라 청하라. 거기 있는 포도아인들에게 배를 좀 빌려야겠다.”
포도아는 포르투갈을 말한다. 포르투갈인들은 동아시아에서 중개무역 겸 운송업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는 중이다. 용선(傭船)도 당연히 그들이 하는 사업 중 하나다.
“전하, 지난번에는 마닐라에 있는 서반아인들에게 새 배를 주문하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호조판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처음 계획을 확실하게 바꾼 건지, 임시적인 조치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맞다. 분명 그렇게 말하였고, 바꿀 생각은 없다. 허나 배가 인도되기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양선(洋船)을 우리 선인(船人)들이 다루어 볼 기회를 얻을 필요가 있다.”
유럽에 간 사절단이 돌아오려면 적어도 4년이 필요하다. 그 인원들이 귀국하기만 기다리며 놀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서양식 범선에 익숙한 선원을 하나라도 더 양성하려면, 실습선 노릇을 할 배가 하루라도 빨리 필요하다. 당연히 화물 수송도 하고.
물론 내겐 펠리페 2세가 보내준 제노바 출신 항해사가 여섯 명이나 있다. 하지만 생 초짜인 선원들로 배를 채워 놓고 항해사 한 사람만 유경험자로 둔다고 해서 배가 움직일 리가 없지 않은가. 일단 배는 움직일 줄 알게 해놓을 필요가 있다.
이것저것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8월도 끝나가는구나. 자, 출병까지 앞으로 두 달이다. 잘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