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58
2부 136화
– 16 –
“에조치 조사를 마친 결과가 올라왔습니다.”
“음, 그래.”
노부나가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명나라를 함께 치고 그 땅을 빼앗아서 조선과 일본이 나눠갖자는 이야기에 하성군이 그렇게 기겁을 할 줄은 몰랐다. 아니, 능력도 없는 작자들이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꼴을 왜 두고 본다는 말인가?
“땅은 지배할 자격이 있는 자가 지배해야 하오. 자기 땅에 있는 도적들도 다스리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천자를 운운한단 말이오?”
“하지만 천하의 도리라는 것이 그렇지가 않습니다. 천명을 받아 천자가 된 이상, 힘과 위협 대신 예와 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하성군이 핏대를 올리자 노부나가가 코웃음을 쳤다.
“그럼 첫 번째 명나라 황제도 그 예와 덕으로 천자가 되었소?”
“태조 홍무제는 천명에 따라 몽고 오랑캐를 물리치고 옥좌에 올랐습니다. 오랑캐가 학정을 하고, 그로 인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천하의 도리를 되돌리고자 하는 뜻이 있었기에 하늘이 화답한 것입니다.”
아직도 하늘의 도리나 따지다니. 이제 2년 머무른 정도로는 조선식 사고방식을 씻어낼 수 없는 모양이다. 노부나가가 상대를 천천히 노려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결국 그 홍무제가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천자가 된 거 아니오. 만약 홍무제가 승리하지 못했다면, 천자는커녕 원군(元軍)에게 붙들려 반역자로서 처형당했을 거요.”
대화가 여기까지 가자 하성군은 미처 반박하지 못했다. 원나라를 타도하겠다고 주원장보다 먼저 일어섰다가 원 조정의 손에 토벌당하고 역적으로 선포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 보시오. 다 이겼으니 천명이니 천자니 운운하는 것이지, 홍무제가 원군에게 패했다면 그저 반적이 되는 것이지 어찌 천명을 거론했겠소? 그렇다면, 이 내가 명나라 원정을 벌여서 승리하기만 하면 내가 천명을 받은 천자가 되는 게 아니오?”
어떤 지위를 차지할 자격은 그 지위를 차지한 능력에 의해 정당화된다. 노부나가는 그렇게 믿었다. 능력이 있으면 그 지위에 오를 것이고 도전에 맞서서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지켜내지 못한 자리는 애초에 가질 자격이 없었던 거다.
명나라 황제가 정말 천자로 불릴 능력과 자격을 갖추었다면 조선과 힘을 합쳐 벌인 공세를 막아내고 제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갖추지 못했다면 명나라는 무너질 것이고 지금 가지고 있는 제위를 노부나가에게 내놓게 될 것이다.
“여기, 모가미 요시아키가 올린 에조치 탐색 보고서입니다.”
에조치는 직접 가서, 또는 부하를 보내 살피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래서 노부나가는 에조치 탐사를 위해 직접 사람을 보내는 대신 데와의 효웅, 모가미 요시아키에게 탐사를 명령했다.
“이리 넘겨라. 직접 읽겠다.”
모가미 측 사자가 공손하게 두 손으로 보고서를 내밀었다. 시동이 이를 받아 다시 건네자 노부나가가 돌돌 말린 종이를 천천히 펼쳤다. 자, 에조치는 과연 어떤 상태일까.
모가미 요시아키는 작년 가을에 내린 노부나가의 명령에 따라 북쪽 에조치에 익숙한 이들을 중심으로 2천 명을 모았다. 이들은 겨울이 끝나자마자 에조치에 건너갔고, 사냥과 교역으로 식량을 직접 조달하면서 에조치 전역을 조사했다. 그 조사 결과가 이제 올라온 것이다.
“역시 북쪽으로 명나라에 갈 수는 없는 것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에조치는 커다란 섬이었다. 배 여섯 척으로 하여금 해안선을 죽 돌게 한 결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혹시 에조치가 조선 북쪽, 북방인들이 사는 육지와 붙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완벽하게 사라졌다.
에조치 최북단에서 보니 바다 건너에 또 다른 육지가 보이기는 했다고 했다. 하지만 설사 그 땅이 북방인들이 사는 땅과 이어진다고 해도 진군로로 쓸 수는 없었다.
이유는 많다. 일단 추위 문제. 에조치만 해도 정말 추운데 더 북쪽 땅으로 어떻게 군대를 보내겠는가. 저 먼 북쪽 땅은 여름에도 추울지도 모른다.
그럼 자연스럽게 보급 문제가 대두된다. 그리 추운 땅에서는 군량을 공급받을 수가 없으니 필요한 모든 물자를 이쪽에서 보내야 한다. 이동로가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르는데, 그 부담은 보통이 아닐 것이다.
배를 너무 많이 타야 하는 것도 문제다. 에조치 횡단에서 시간과 병량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배를 타고 그 북방 땅까지 한 번에 가는 게 낫다. 하지만 항로가 길어질수록 해난사고가 날 확률은 급상승한다. 귀중한 병력과 물자가 찬 북해 바닷물 속에 빠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에조치를 명나라 침공로로 활용할 수 없음을 확인하자 노부나가가 가지고 있던 관심은 바로 식었다. 하지만 공들여 작성해온 문서를 그냥 집어던지기도 아까워서 설렁설렁 훑고 있는데 갑자기 한 대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뭣이? 조선인들이 에조치에 드나들고 있다고?”
에조치 서해안에 있는 몇몇 에조 부락에는 조선인들이 몇 년에 한 번씩은 배를 타고 찾아와 머무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동안 에조치에 관심이 없었던 노부나가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예, 저희 장사꾼들처럼 물건을 가지고 와서 에조들과 교역을 합니다. 그자들과 하는 경쟁 때문에 요 몇년 교역에서 얻는 이득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습니다. 수십 년 전에는 서로 싸워 사상자를 낸 일도 몇 차롄가 있었습니다만, 근래에는 충돌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왜 이런 사실을 그동안 내게 알리지 않은 것이냐?”
“저희가 조선인들과 직접 접촉하는 것도 아니고, 저희가 직접 관할하지 않는 에조 부락에 들를 뿐인지라….”
요시오키의 사자는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노부나가가 한 번에 자기 머리를 날려버릴까봐 두려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여기서 추궁을 그칠 생각이 없었다.
“놈들은 에조치에서 교역만 하느냐? 에조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애조치를 정식으로 자기 땅으로 만들려는 기색은 없느냐?”
“군사를 두거나 정착민을 데려오지 않는 걸 보면 영토로 만들 의사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교역할 때 통역으로 쓰려는지 에조를 자기네 나라로 데려가 말을 가르치는 경우는 있고, 교역품으로 무기를 가져오기 때문에 반항적인 자들이 그걸로 무장을 갖추곤 합니다.”
벌떡 일어선 노부나가가 접견실 안을 왔다갔다 하며 걸었다. 하성군은 지난 2년 동안 여기 머무르면서 조선이 에조치에 손을 대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관심이 없었거나, 비밀로 했거나 둘 중에 하나이리라.
“에조치는 우리 세력권이니 마땅히 조선인들이 출입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차피 겨울이라 교통이 끊겼으니 놓아두어라. 혹시 조선 국왕 모르게 아랫사람들이 멋대로 수작을 부렸을수도 있으니, 내년에 조선 국왕에게 사절을 보내 확인해야겠다.”
모가미 요시아키는 조선인들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노부나가가 에조치를 철저히 조사해서 그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조선에서도 교역을 통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지방관이 멋대로 저질렀는지 모른다. 겨우 이까짓 일로 사이를 망칠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놈들이 사용한 해로다. 서쪽에서 에조치로 건너왔다고 했으렷다.”
“예, 그렇습니다.”
노부나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해 보았다. 바다에 서툰 조선인들이 배로 건너올 정도라면 이쪽에서도 충분히 건너갈 수 있다. 더 쉽게 건널 수도 있을 거다.
“아마 그 배들은 북방인들의 땅에서 출발했을 거다. 봄이 되어 날씨가 좋아지면 에조치에서 서쪽으로 배를 띄워서 조선인들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내라. 정확히 어디에 도착하는지, 거기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쯤인지 상세하게 조사하는 거다.”
“알겠습니다.”
에조치 탐사를 명한 이유는 명나라로 가는 육로 탐색이었다. 그건 실패했지만, 굳이 육로가 아니더라도 혹시 명나라로 갈 수 있는 세 번째 경로가 확보된다면 나쁠 거 없는 일이다. 적을 분산시키고 동북 지방 다이묘들이 가진 병력을 끌어내자면 그쪽 길이 필요하다.
더불어서 한 가지 확실하게 지시할 일이 있었다. 장차 감행할 명나라 원정을 위해서는 정말 필요한 지시다.
“돌아가거든 요시아키에게 벌목을 준비하라고 이르라. 중신회의에서 이미 결정한 일이니까 뒤집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예, 꼭 전하겠습니다.”
바다를 건너 명나라를 공격하려면 적어도 배가 2천 척은 필요하다. 그만한 배를 건조하려면 규슈에서 조달한 목재만 가지고는 턱도 없다. 동북지방, 더 나가서는 에조치에서까지 목재를 조달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조선인들을 에조치에서 배제할 필요가 생긴다.
어쨌든, 가능하면 조선과 충돌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다. 자신이 강남을 공격하는 동안 북경을 공격해주어야 하는 소중한 동맹이 아닌가?
– 17 –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건 루비콘 강이 아니고 나도 카이사르가 아니지만, 이 말은 한 번 던져보고 싶었다. 내가, 조선의 임금이 중요한 군사활동을 위해 강을 건너는 사상 첫 순간이 아닌가.
“전하께서도 가이사를 읽으셨는지요?”
“아니다. 일전에 세스페데스에게 들었도다.”
내 옆에서 수행하던 이항복이었다. 자칫 말실수라도 하면 큰일이라 적당히 둘러댔다. 역시 이럴 때는 자리에 없는 사람이 방패막이로 최고다.
“그렇지 않아도 가이사가 쓴 갈리아 전기를 나전어에서 우리 말로 옮기는 중이옵니다. 실로 우리 장수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사료되니, 전하께서는 이 책을 판으로 찍어내어 각 병영에 나눠주고 장수들이 읽게 하소서.”
“좋은 의견이로다. 글이 완성되면 박문국에 넘겨 찍어내게 하라.”
갈리아 전기는 카이사르의 전략, 전술이 녹아있는 책이다. 단순히 전투에 필요한 기술 뿐 아니라, 압도적으로 다수인 야만족을 제압하는 방법까지 있다. 내전기까지 이항복이 번역하면 세트로 보급할 수 있을 텐데.
박문국은 유럽에서 온 인쇄공들이 합류하자 규모가 더 커지고 분위기도 활발해졌다. 서양식 활자도 만들고 인쇄기도 제작해서 대량으로 인쇄물을 찍어낼 준비를 갖추고 있다. 안타깝게도 기존에 쓰던 조선식 활자는 유럽식 인쇄기에 맞지 않아서, 몽땅 새로 만들었다.
이제 안 쓰게 된 활자들은 솔직히 녹여서 재활용하려는 생각도 했지만 ? 놋쇠다, 놋쇠! – 이게 후대에 가면 어떤 가치를 가질지 빤히 알다 보니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잘 보관해두게 했다. 3백 년 뒤에 박물관에 보내야지. 그동안에 혹시 누가 녹여버리지만 말았으면.
“신은 무관이 아닌지라 군사에는 밝지 않습니다. 하지만 갈리아 전기에서 가이사가 군사를 움직인 바를 보니,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사옵니다.”
“무엇인가?”
“군사를 아예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면 모르되, 일단 싸움에 나섰다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군사를 투입하여 가능한 빨리 싸움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옵니다. 공연히 적은 군사를 보내어 싸움을 길게 끌면 수고로움만 더해집니다. 손자병법에도 같은 말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에 이항복은 이순신을 수행하는 종사관으로 종군했다. 전선정보를 활용할 겸, 순수하게 문관 입장에서 조언도 제공할 겸 따라붙었다. 그래서 보직도 6부 참모진 중 형관으로 받았다. 물론 금위사장은 잠시 휴직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가능한 많은 군사를 동원하지 않았느냐.”
신립이 지휘하는 오위군은 정말 건각(健脚)을 가졌는지 이 겨울에도 마치 봄날처럼 산길을 뛰어갔다. 아무리 노역으로 동원한 가도 주변 백성들이 노상에 있는 눈과 얼음을 치워 행군을 편하게 했다지만, 어찌 그리 빠른지 놀라웠다. 이미 그 후미까지 모두 두만강을 넘어갔다.
“실로 판중추부사가 군사들을 강하게 조련하였구나.”
“도감군도 만만치 않사옵니다.”
오위군처럼 빠르지는 않아도 도감군도 행군이 능숙했다. 주변 사람들은 훈련대장 유극량이 군사들과 너무 격이 없이 어울린다고 흉을 보는 이들이 많지만, 유극량은 사적으로는 거느린 군사들과 허물없이 지내면서도 훈련을 시킬 때는 철저했다.
“경원부사가 다리를 매우 튼튼하게 만들었구나. 상을 주어야겠다.”
이항복과 이야기를 나누며 보니 수천 군사가 짐수레까지 끌고 지나가는데도 다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제법 무거운 포차, 귀차가 지나갈 때도 멀쩡했다.
두만강은 본래 폭이 좁은 편이고, 갈수기인데다 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냥 건너다가 무슨 사고가 생길지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시 다리를 놓는 편이 좋다. 병사들이야 얼음판 위로 적당히 걸어가더라도, 수레나 포차는 다리를 건너는 편이 안전하니 말이다.
“그렇게 하시옵소서. 저화 백 섬쯤 내리시고, 부사에게 ‘얼음장같은 물속에 다리를 놓느라 고생한 백성들에게도 나눠주라’ 분부하시면 좋으리라 보이옵니다.”
“그리 해야겠다.”
도승지 이원익을 불러 호관에게 경원부사에게 상을 내리게 하라고 명하고 다시 강 건너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7만 군사가 건너간 이 여울을 내가 최정예 도감군을 거느리고 건너간다. 감격에 젖어 있는데 문득 알라르콘 신부가 말을 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 거기 있었는가. 고생이 많다. 행군이 힘들지 않은가?”
알라르콘 신부는 군종신부 역할로 따라왔다. 물론 조선인 병사들 중에는 아직 신도가 없다. 알라르콘 신부는 도감군과 함께 출동한 스페인 병사 스무 명을 위해 따라왔다. 물론 겸사겸사 전선에서 전도도 좀 할 생각이겠지.
“괜찮습니다. 견딜만 합니다.”
수단 속에 두꺼운 솜옷을 입고, 겉에는 모피 망토를 걸쳤다. 게다가 원래 군인 출신이라니 크게 힘겹지는 않을 듯하다.
“전하께서도 갑옷을 입고 출진하시는지요?”
“그러하다.”
무슨 소린지 안다. 유럽에서는 왕들이 모두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가지. 왜냐하면 국왕이란 기본적으로 나라에서 으뜸가는 기사이기 때문이다. 임금이 사대부 중에서 으뜸가는 사대부인 조선과는 그 사상이 기본부터 다르다. 알라르콘도 이를 알기 때문에 묻는 것이리라.
“아직은 전장이 멀리 있으니 갑옷을 입지 않았을 뿐이다. 적이 가까이 오면 나 역시 갑옷을 걸치고 군사들을 호령하게 되리라.”
내 갑옷은 두정갑으로 준비시켰다. 외양은 두석린갑이 확실히 멋지고 화려하긴 한데, 너무 무겁다. 잠깐 행사복으로 입는 것도 아니고 전장에서 몇 시간씩 입고 있기는 싫었다. 게다가 영하 수십 도나 되는 혹한에서 놋쇠 비늘이 얼마나 차가울지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괜찮으시다면 전하께서도 유럽 갑주를 한 벌 갖추시면 어떨지요? 도감군에게만 입히실 건 없지 않겠습니까. 다음에 유럽에서 배가 올 때 하나 마련해오라고 연락을 넣겠습니다.”
“아…성의는 고맙게 받겠다.”
유럽식 판금갑옷이라…기사 흉내 낼 수 있게 되는 건가? 입어보고 싶기는 한데,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뭐 선물이라고 주는 거면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