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73
2부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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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머저리 같은 놈들이 다 있나!”
도성에서 도착한 편지는 나를 비롯해 전선에 나온 이들을 모두 실소하게 했다. 감히 정변을 시도하다니? 그나마 동원한 병력도 하나 없이, 그저 입심으로 궁정 쿠데타를 시도해? 그것도 세자를 꼬드겨서?
세자가 ‘장래 필시 성군이 될 재목’이라고 스승들한테 칭찬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학문을 닦으니까, 적당히 주워섬긴 명분을 내세우면 자기들한테 동조해 주리라고 예상한 모양이다. 정말 그리 판단했다면, 정말 멍청한 놈들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이간질은 분명 정치적으로 유효한 술수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공격 대상이 되는 두 주체 사이에, 어느 정도는 갈등이 존재해야 가능한 수법이다. 내가 폐세자를 시도하고, 세자가 이에 순순히 따르지 않고 반격을 기도한다거나 하는 상황 같을 때나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양녕대군이나 사도세자가 자기 세자 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또는 목숨을 건지려고 발버둥 치는 상황이라면야 반정 ‘시도’도 가능하고 주변에서 꼬드기는 것도 가능할 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패륜이 패륜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조선에서야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을 빼면 그런 사례가 거의 없었으나, 중국에서는 선례가 많다. 황실 내에서 무력을 동원해 부자간, 형제간에 골육상쟁을 벌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명나라만 해도 영락제가 반란을 일으켜 조카 건문제를 죽이고 제위에 오르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런 시도는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 같은 난세일 때나, 나라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건국 초기에나 가능한 일이다. 개국하고 2백 년이 흘러 기틀도 든든히 잡힌 이 나라에서 군사도 없이 변란을 꾸미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아무리 저들이 세상 이치를 모르는 꽁생원들이라고 해도 어찌 이런 무모한 계획을 꾸밀 수 있는지 내 납득이 되지 않는구나. 우상은 이해하겠는가?”
유성룡이 쩔쩔매면서 고개를 숙였다.
“신으로서도 도무지 알 수가 없사옵니다. 그저 어리석은 자들이라고밖에는….”
명단에 적힌 자들의 면면을 보니 하나같이 경성군이 재위 10년 차를 전후해서 본격적으로 자기 사람을 조정에 집어넣기 시작하던 때 들어온 소장 관료들이다. 덕과 도리, 예를 따지는 태도가 시끄럽기는 해도 딱히 해가 될 건 없다 싶어서 나도 그냥 언관 자리에 묻어두었다.
아마 저들은 경성군이 자기들을 뽑자 ‘이 기회에 무종 이후로 3대에 걸쳐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조정을 바로잡겠다’면서 결의에 불탔을 거다. 그러던 임금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그간 지양해 온 무종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찼을까? 배신감도 느꼈겠지.
생각해 보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시도는 아니긴 하다. 분명히 임금이 성군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짓 ? 자기들이 보기에 – 들을 벌이고 있고, 이는 본래 임금이 보이던 태도와는 전혀 다르며, 그에 대한 간언도 듣지 않는다면, 과연 저들이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마이동풍으로 일관하는 임금에게는 전혀 기대를 걸 수 없다. 반정을 일으키자니, 힘이 있는 종친들은 모두 군대에 끌려가 임금과 함께 있다. 명종 때부터의 중신들은 이미 쌓아둔 지위와 영달을 지키려 하니 나서지 않는다.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세자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저들이 이런 무모한 시도를 감행하게 된 배경도 이해가 갔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목숨을 걸고 벌인 의거이리라. 성군이 될 자질을 가진 세자라면, 대의를 위해서 사적인 정리 따위는 포기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뜻은 참으로 가상하다. 하지만 내가 그 뜻을 이해한다고 해서 결과까지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임금을 가리켜 미쳤다고 하고, 세자를 부추겨 보위를 빼앗게 하려고 시도한 자들이다. 이런 대역무도한 놈들을 눈감아주면 내 위신이 추락하고 나라가 흔들린다.
“모두 들으라. 성인의 도가 퍼지지 않았던 옛날에는 왕자가 왕을 시해하고 등극하는 경우가 허다했음은 나도 안다. 하지만 이 조선이 도덕이 없는 나라였더냐? 예와 성인의 도리를 입에 달고 다니며 임금을 겁박하던 자들이 패륜을 권하다니, 실로 헛웃음이 나는 일이로다.”
세조와 영락제는 조카를 쳤다. 태종과 당태종은 형제를 쳤다. 이들은 권력을 찬탈했다 해도 적어도 아버지를 대놓고 공격하지는 않았다. 태종은 어떻게든 자신이 이성계와 직접 맞섰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절치부심했고, 덕분에 안정된 권력을 확립할 수 있었다.
만약에 아버지를 대놓고 친다면…수양제가 된다. 수양제는 아버지 문제를 죽였다는 의혹을 샀고, 이후 역사적으로 패륜아로 찍혀 있다. 나라를 망하게 만든 폭군이기도 하지만 패륜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후세의 평가가 조금은 나아졌을 거다.
“내 환궁할 때까지 기다리게 할 것도 없다. 세자에게 서한을 보내어, 지금 의금부에 가두어 놓은 역도들은 죄다 목을 베어 도성 한복판에 걸어 놓게 하라. 행여 놈들과 동조하고자 일을 꾸미던 자들이 있다면 그 모가지를 보고 생각을 달리할 것이다.”
이럴 때, 웬만한 사안 같으면 어떻게든 피고자들을 변호하려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 인연이 혈연이든 학연이든 지연이든, 그들과 뭔가로 얽힌 사람 몇 정도는 언제나 조정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이 사건이다 보니 그렇게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전하, 저들이 큰 죄를 지었음은 분명합니다. 마땅히 극형을 내려 처벌하심이 지극히 옳고 또 옳사옵니다. 하오나 이런 큰일을 맡아 무난히 처결하시기에는 세자 저하께서 아직 경험이 일천하시옵니다.”
다만 데려온 여러 신하 중 최고위 신하인 유성룡이 나서서 한마디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 생각인가 싶어 수긍해 주었다.
“그래서 경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비록 영의정이 도성에 남아서 저하를 보좌하고 있다 하나 이 사건을 완벽히 처결하기에는 미흡하니, 전하께서 난리를 완전히 진압하고 환궁하신 이후에 직접 국문하시고 저들을 엄히 벌하소서. 그리하셔야만 이 나라가 진정 누구의 나라인지 만백성이 알게 할 것입니다.”
오,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군. 성이가 역도들을 임의로 처벌하지 않고, 일단 투옥한 뒤 내게 처분 방법을 알려달라 청한 것만으로도 내 우위는 확실하게 알려졌다. 여기에 그 처형도 환궁 뒤에 내가 직접 실시하면 지존으로서의 내 위치는 만천하에 공언되는 셈이다.
“지금 저들을 처형한다면 한 가지 또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반역을 도모할 때는 필시 함께 모의한 패거리가 여럿 있게 마련입니다. 한데 이를 제대로 추국하여 전모를 밝혀내기도 전에 저들을 모두 처형해 버리면 어찌 연루된 자들을 잡아 벌을 주겠습니까?”
음, 그건 확실히 문제다. 금위사도 이 건에 대해서는 전혀 사전에 탐지를 못 했던 모양이니 말이다. 이 망할 밥 버러지 놈들.
금위사는 그동안 행세깨나 하는 왕족이나 고위 대신들, 지방장관들을 상대로 해서 감시망을 펼쳤다. 무력으로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큰 인물들을 주로 살폈고, 이 점은 연산군 때도 같은 원칙을 유지했다. 가진 거라곤 입과 머리밖에 없는 간관들은 중요한 감시 대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정호찬도 이런 입만 산 놈들은 감시하지 않았었다. 말로 하는 불평까지 틀어막으면 원성만 높아진다고 여겨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내버려 두었다. 물론 그런 모임에 실행력을 가진 유력인사가 하나라도 섞이는 순간 곧바로 전원이 지옥행 특급열차를 탔지만 말이다.
“도체찰사의 말이 옳다. 세자에게는 죄인들을 엄중히 가둬 두도록 하고, 내 난리를 진압한 후에 환궁하여 처결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엎드려 절하는 유성룡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의구심이 들었다. 혹시 유성룡이 그 정신 나간 놈들 목숨을 어떻게든 건져보려고 날 상대로 수를 쓰는 게 아닐까?
즉시 처형만 면하면 일단 몇 달은 확실히 죽음이 연기된다. 그리고 내가 승리해서 개선하면 기분도 좋을 테고, 사건을 접한 지도 한참 지나 화도 식었으니 혹시 저들을 용서해서 죽음은 면하게 해 줄지도 모르지 않는가. 게다가 승전 기념 특별사면도 시행할 수 있다.
유성룡이라면 충분히 그 정도 계산은 할 수 있을 거다. 좋다, 한번 속아 주지. 일단은 덮어 두고, 이번 전쟁에서 내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으면 그 멍청이들에게 벌을 내릴 때 자비를 베풀어주겠다. 하지만 승리를 거둔다 해도 결과가 미흡하면, 몽땅 거열형에 처해 버릴 테다.
참수에서 거열로 업그레이드가 된 이유? 그야 간단하다. 연체이자다. 정해진 죽음을 미루지 않았는가. 일이 흐트러지면 그 정도 가중처벌은 각오해야겠지?
대충 처리가 결론이 났으니 성이가 보낸 보고를 덮고 회의를 끝냈다. 내실로 돌아와 중전과 상희가 각각 보낸 개인적인 편지를 펼쳤다. 중전의 편지는 늘 그렇듯 차분하게 궁궐 내외의 소식을 전하고 간단하게 자기 소회를 적고 있었다. 마침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이 소의가 비 소식을 알려주었다고.”
이곳 강동 땅도 눈이 넉넉하게 쌓여 있다. 북평 주민들에 따르면 이 정도 눈만 와도 충분히 가뭄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남쪽에도 비가 넉넉히 온다니, 올해는 농사가 괜찮게 되겠구나. 이대로 공물 없이 전세를 올려 대동법을 시행하자는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해봐야겠다.
상희는 출산한 뒤에는 처음으로 편지를 보냈다.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오빠가 된 첫째가 동생을 얼마나 귀엽게 여기는지 등이었다. 차차가 얼마나 임해군을 띄워주며 이미지 세탁을 열심히 하는지도 비웃음과 함께 적어놓았다. 하지만 즐거운 분위기는 앞부분 절반뿐이었다.
후궁 소생 자녀들은 모두 중전의 자식으로 취급된다는 왕실 법도, 그래서 엄마 소리도 듣지 못하는 엄마 아닌 엄마가 두 번째 된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폭발 직전이었다. 그나마 첫째를 낳았을 때는 내가 옆에 있어서 버텼는데, 지금은 혼자다 보니 속만 썩어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누구한테 털어놓고 상담할 수도 없으니 이건 나도 속만 썩일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서 다독여 위로해 주는 수밖에 없겠지.
한숨을 쉰 다음 상희가 보낸 편지를 잘 접어서 화로에 던져 넣었다. 혹시라도 누가 내용을 본다면 좋을 일은 하나도 없으니까.
– 4 –
“그대와 그대의 형이 지금 동원할 수 있는 군사는 얼마인가?”
“정예 철기 1만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누르하치를 대신해서 건주위 대표로 내게 교섭하러 온 슈르하치가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씩씩하게 말했다. 제법 능숙한 조선말이었다.
“그동안 해서를 노략질해서 상당한 물자와 가호(家戶)를 새로이 얻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아직 군사가 1만 기 그대로란 말인가?”
이번 전쟁에서 누르하치는 확실한 우리 동맹이다. 겨울 전역에서는 연계 없이 각자 알아서 싸웠지만, 봄 전역부터는 제대로 연계해서 싸우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연히 만나 의논할 필요가 있다. 누르하치 본인이 오기는 곤란하다고 슈르하치가 온 것 정도는 용인했다.
한데 맹랑한 소리를 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중에, 나랑 해서 놈들이 정면으로 싸우는 동안 실컷 꿀을 빨면서 이득을 본 놈들이 개전 전이나 지금이나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이 똑같다고 하니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그동안 만 단위로 셀 만한 포로를 획득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어린아이와 여자들이라 당장 병사 숫자를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갓 데려온 자들은 믿을 수가 없어서 병사로 쓸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잡아 온 포로들이 도망가지 않도록 할 감시병도 붙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병사가 더 많이 필요해졌는데도 황제가 내린 칙명에 따르느라 1만이나 되는 병사를 뽑아 응원군으로 준비했다는 거였다.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알겠다. 그럼 그대들이 맡을 역할에 대해 알려주리라.”
건주위에 어떤 역할을 맡기는 편이 좋을지는 신립이나 이일을 비롯한 장수들과 여러 차례 토론한 끝에 결정했다. 유성룡도 그 자리에 동석해서 정치적, 외교적인 면에 대해서 고려할 사안들을 지적하게 했다. 무장들은 아무래도 그 점에서 약한 부분이 있어서 말이다.
“우리 군사들은 울라 영토로 바로 진격할 예정이다. 호이파는 왜인여진으로 견제할 터이니, 그대들은 예허와 하다 두 부가 울라를 응원하지 못하도록 붙들어 주면 되겠다.”
“저희는 세력이 약하고 군사가 적습니다. 한 부 정도라면 정면으로 상대할 수 있지만 두 개 부를 정면으로 상대하기는 벅찹니다.”
이 자식이 약한 척은. 그동안 그 둘에다가 호이파까지 세 부를 상대로 약탈 행각을 벌였던 전과는 뭐라고 설명할 테냐. 속에서 뭔가가 부글거리며 끓어올랐지만, 꾹 참았다. 이놈들은 내 부하가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명나라 신하로서 도우러 온 원군이다.
“두 부를 쳐부수고 정복하라는 게 아니다. 저들이 거느린 군사가 울라를 도우려고 움직이지 못하게만 하면 된다. 행여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 평안도 군사가 압록강을 넘어서 그대들과 협력할 것이다.”
“평안감사에게는 아무 말도 못 들었습니다만.”
“내가 그대를 만나 확정을 지은 뒤에 지시를 내릴 것이다. 이미 준비는 다 되어 있고, 강물 너머에 우리 군사들이 대기하고 있음은 그대도 알고 있을 텐데.”
모를 리가 없다. 누르하치가 얼마나 영리한데 강 하나 건너에 우리 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줄을 모르겠나. 당연히 슈르하치도 알고 있을 거고, 병사를 1만 기밖에 뺄 수 없다고 버티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 군대에 대한 경계심일 거다.
“알겠습니다. 전하께서 하신 말씀을 대추장에게 꼭 전하겠습니다.”
건주위와의 협력은 내키지는 않으면서도 꼭 필요한 조치다. 슈르하치한테 대놓고 고맙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겨울 전역에서도 확실히 득을 봤다. 예허, 하다 양 부에 속한 병사들이 각 전선에서 빠져나간 시점이 누르하치가 날뛰고 다닌 이후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교섭을 그럭저럭 잘 끝내고 나니, 그 뒤에는 우리 내부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 이것 역시 쉽지 않은 문제였다.
“병조에 조회하여 오위군 2진이 언제쯤 출발할 수 있을지 확실히 보고하게 하라.”
“예, 전하.”
오위군은 번상병이다. 1년에 몇 달만 근무하지, 한 해 내내 복무하는 직업군인이 아니라서 때가 되면 교대시켜야 한다. 지금 1진 중에서, 특히 보병들은 사실상 행군 말고 한 게 없으니 그대로 돌려보내기에는 배가 좀 아프다. 하지만 그게 규정이니 어쩔 수가 없다.
방어전이라면 이런 번상병도 괜찮지만, 공격에 나설 때는 확실히 불편하다. 역시 도감군을 어서 확충해서 좀 더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을 확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