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75
2부 1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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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지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으렷다.”
“물론입니다, 전하.”
목단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 전체를 목조로 만든 이 다리는 목단강 일대 야인들에게 조선이 가진 힘을 상징하는 물건이 될만했다. 그들이 아는 어떤 세력이 이런 다리를 만들 수 있겠느냐 말이다.
교각은 돌과 벽돌로 석축을 쌓아서 만들었다. 갈수기라서 강바닥을 파고 공사를 벌이기도 쉬웠다. 노동력? 이순신이 잡아서 보낸 부여주 야인 사내 1만 명이 있지 않은가. 노예가 되는 길에 구해줬는데, 온 가족을 겨우내 먹여주는데 그만한 밥값은 해야지.
물론 저들을 얻은 뒤에야 공사를 시작한 건 아니다. 겨울이라고 강 건너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사냥으로 겨울을 전부 보낼 수도 없고, 봄이 와서 얼음이 녹은 뒤에 보급로를 유지할 생각까지 하면 다리 건설은 필수였다.
북평에서도 비축해 놓은 재목은 넉넉히 있었다. 벽돌가마에서 구워 놓은 벽돌도 있었다. 돌 쪽은 좀 모자라긴 하지만 어쨌든 쓸 만큼은 있었다. 여기서 모자라는 건 튼튼한 다리를 지을 수 있는 건축기술 딱 하나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기본 설계를 했다. 현대에 있을 때 읽었던 일본인 작가가 쓴 책, 로마 동인지 취급을 받는 책에 로마인들이 다리를 세울 때 사용한 설계 및 시공 방법이 그림으로 나와 있었다. 그 내용을 본 기억을 되살려 설계를 하고, 시공 명령을 내렸다.
군대 내에서 각종 공사를 하는 야전공병은 연산군 시절부터 내가 만들겠다고 별렀지만, 그 작업을 제대로 진행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그 뒤에 군에서 필요한 공사는 어떻게 해결했나 살펴보니, 대개는 그때그때 군사들을 투입해서 해결해왔다. 역시 조선에서도 ‘군대=삽질’인가!
하지만 아무리 군에 관련된 공사라고 해도 병사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노역을 시키면 군역이 요역이 되어버리고, 당연히 군대가 백성들에게 인기가 없어진다. 전문 공병대 창설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마침 딱 맞는 인적자원이 있었다.
“승군들에게 베와 쌀을 내려 포상하도록 하겠다. 승군은 개인적으로 재물을 받지 않으니까, 도총섭으로 하여금 저들이 속한 각 사찰에 나누어주게 하라.”
“예, 전하.”
경성군은 불교를 심하게 싫어했다. 나를 비롯한 여러 선대 임금들이 계속 유지하던 제도를 차마 없애지는 못했지만, 각 절에서 만들어 바치는 세공품 양을 늘린다거나 사찰에 임시세를 물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압박했다. 각 산사(山寺)에 산성 관리를 맡긴 것도 그 하나였다.
산성을 관리한다면 그저 풀이나 뽑아서는 안 된다. 성이 무너지지 않게 관리하고 손상되면 보수해야 한다. 경성군은 혹시 폭풍이나 지진으로 성이 무너지면 주지 이하 전원을 매질하게 했으므로 허술하게 쌓을 수도 없었다. 이런 조치가 2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왔다.
당연히 승군들은 돌 쌓는 공사라면 도가 트게 되었다. 이렇게 큰 다리를 세운 적은 없지만, 산 위에 성과 보를 쌓고 그리로 오르는 길을 닦은 경험은 많다. 돌을 쌓아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교판(橋板)을 놓는 정도 일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엄동설한이다 보니 강바닥조차 얼어붙기는 했다. 하지만 조금만 파내면 그 밑바닥은 얼 정도는 아니었고, 공사를 쉴 때는 짚단과 멍석을 쌓아 보온조치를 했다. 충분히 깊이 파낸 뒤에는 말뚝을 빼곡하게 박아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그 위에 교각을 쌓아 올렸다.
처음에는 오위군 병사들이 부대 단위로 돌아가면서 노역을 했다. 그러다가 이순신이 보내준 야인들이 들어왔고, 당연히 가장 힘든 공정은 야인들 몫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반역죄로 목이 잘리기보다는 낫다고 여겼는지, 다들 제법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보였다.
배가 통과할 수 있는 문제는 나름 중요했다. 목단강 수운이 부여주에서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북평보다 상류로 올라가는 배는 그다지 대형선이 아니라서 다리 건설에 큰 장애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하, 신은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다리를 놓는 정도야 괜찮다고 하더라도, 황제께서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성을 쌓다니요.”
“도체찰사는 걱정이 너무 많구나. 여기에 성보(城堡)를 쌓지 않으면 어찌 다리를 방어할 수 있다는 말인가? 행여 못된 마음을 품고 서쪽 강가에서 다리에 불을 지르는 자가 나타난다면, 동쪽 강가에 있는 우리 군사들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처음에 다리를 만들자고 했을 때는 반대가 없었다. 다들 이번 원정에 쓰려고 임시로 만드는 다리이리라고 생각한 탓인데, 막상 내가 내놓은 설계안은 조선 팔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견고한 돌다리였다. 강서로 가는 영구적인 통로를 만든다는 말이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게다가 다리 서쪽 입구에는 벽돌로 성채를 지어 요새화하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하자 북방의 조그만 관아에서 열린 임시 어전회의는 발칵 뒤집혔다.
“전하! 목단강 이서는 명백한 대국 영토입니다! 저희가 허락도 없이 멋대로 성을 세웠다가 황제께서 진노하신다면 그 후과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아니, 성채는 꼭 필요합니다. 원정을 나가는 동안 다리를 지키려면 어차피 군사를 두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단단한 거점을 구축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목책을 두르고 군사를 두어 엄중히 지키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소?”
“목책과 성벽 중에 어느 쪽이 튼튼할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을 거요!”
날 따라온 얼마 안 되는 문관들은 대부분 이 아이디어에 질색했다. 하지만 무관들은 명나라 쪽 반응을 걱정하면서도 군사적으로 꼭 필요한 조치라는 데 동의했다. 신립은 정말 고맙게도 대놓고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목단강 이서가 명나라 영토라곤 하나, 그 땅에 거하는 야인들은 조정의 명을 거의 따르지 않잖소! 차후에 놈들이 거듭 난동을 부린다면 또 군사를 내어 토벌해야 할 것인데, 그러자면 강을 건너가기 위한 확고한 거점이 필요하오. 든든한 다리와 다리를 지킬 성채가 말이오.”
“도순변사께서는 대국 관리들이 우리 보고 월권을 한다며 힐난하면 뭐라 답할 생각이시오!”
“그게 걱정이시오? 참 생각도 모자라시는구려! 야인들과 교역을 진행하기 위한 상관(商館) 건물을 새로 지었다 하면 그만 아니오! 강서 땅에 도적이 들끓어 상관을 좀 견고하게 지었을 뿐인데, 그것이 무어 그리 큰 문제겠소?”
신립 답지 않게 문관들과의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모습을 보니 뭔가 대견한 기분이 들었다. 와, 역시 싸움지상주의자라 싸움과 관련된 주제에서는 머리가 팍팍 도는 모양이다. 싸울 줄도 모르는 족친위를 죽으라고 버리는 말로 보낸 일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논쟁 끝에 성곽을 짓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대군을 거느리고 있으니 일꾼은 얼마든지 있고, 숲에서 베어온 통나무를 박아서 만드니 속도도 빨랐다. 본래 계획은 벽돌로 만든다는 거였지만, 겨울이라 제대로 기초를 다질 수가 없어서 그건 차후에 진행하기로 했다.
“관찰사는 이번 원정이 끝난 뒤에 책임지고 이 자리에 제대로 된 성을 세우도록 하라. 대국 조정과 교섭하여 문제가 되지 않게 하는 일은 한양에서 할 터이니, 그대는 별다른 고려 말고 축성에만 집중하라.”
“예, 전하. 명심하겠나이다!”
내가 다릿목 좌우에 자리를 잡은 두 성채를 돌아보는 길을 수행하던 관찰사 이종덕이 얼른 내 말을 받아 복창했다. 그 뒤를 따르는 서리들이 급히 받아적는 모습도 보였다.
일단 일은 시킨다만, 이것도 시한부다. 해서 놈들, 그리고 그 뒷배를 봐준 코르친 놈들까지 제대로 쓴맛을 보여주고 나면 관찰사도 교체다. 아마 이종덕도 자기가 관찰사 자리를 지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가능한 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 재기할 기회라도 있으니 저렇게 굽실거리면서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충실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거겠지. 좋은 태도다. 다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직무에 임한다면 나라가 참으로 빨리 발전하지 싶다.
– 8 –
겨울 동안 베어서 말려둔 나무가 강변에 즐비하게 쌓였다. 뚱땅거리는 망치 소리와 톱으로 나무를 켜는 소리,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목재를 다루는 인부들의 목소리가 강변을 채웠다. 그 광경을 둘러보던 이순신이 선거이에게 말을 건넸다.
“역시 배 만드는 일은 도감군이 낫군. 족친위는 이런 일에는 도무지 쓸모가 없네.”
귀하게 자라신 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힘쓰는 일이라면 모를까 복잡한 손재주가 필요한 배목수 일 같은 건 족친위 군사들은 하나도 못 한다. 결국엔 이런 일은 이 재주 저 솜씨를 다 부릴 줄 아는 도감군이 도맡아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선거이도 사정은 빤히 알았다.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장군. 할 줄 모르는 일을 억지로 하라고 했다가는 뒷수습만 더 힘들어질 테니 말입니다. 적재적소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옵니다.”
오위 군사들은 이순신이 삼성부를 구원한 날보다 이레 뒤에 도착했다. 부상자가 많은 탓에 아무래도 이동이 느렸고, 도중에 죽은 이들도 많았다. 게다가 삼성부에서 패하고 도망치던 적 패잔병 일부를 만나 교전을 벌여 발생한 사상자도 있었다.
오는 길에 정리한 명부를 받아 보니 남은 병사는 거의 족친위였다. 오위에 속한 정규병력은 조방장 방일수를 도와 싸우려다가 적에게 포위당해 대부분 죽었고, 도망치려고 할 때는 이미 때가 늦은 뒤였다. 먼저 죽어라 도망친 족친위만 살아남은 것이다.
다른 많은 없어진 군사들처럼, 방일수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임해군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분명히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 있었음이 분명한데, 어떻게 되었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싸우다 진영 내에서 죽었는지, 도망치다 눈밭에 묻혔는지 알 수 없었다.
족친위 내에는 장수로 임명할만한 자가 없었다. 잠시 고심하던 이순신은 휘하에 거느린 두 위장 중에 이억기를 임시 지휘관으로 삼아 족친위 군사를 지휘하게 했다. 비록 젊지만 유능한 무장이고, 공정왕의 5세손이라 족친위 군사들을 위압할 혈통적인 배경도 있는 사람이다.
“가진 거라곤 혈통에 대한 자부심밖에 없는 자들이 족친위 군사들입니다. 장군께서야 군율 이외에 다른 규범으로 저들을 통제할 생각이 아예 없으시겠지만,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가끔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종사관 이항복이 슬쩍 끼어들었다. 이순신은 별로 달갑지 않은 문제였던지라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파총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족친위를 맡아야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여기 선 파총을 보임하시기보다는 이 파총을 보내신 게 나았습니다. 어쨌거나 이 파총은 멀긴 해도 종친이니, 저들에게 발언권이 더 세지요. 이 파총도 그걸 아니까 자원한 게 아니겠습니까.”
정예인 도감군을 지휘하는 편이 어설픈 반편이나 마찬가지인 족친위를 지휘하기보다 쉽고 공을 세우기도 좋다는 사실을 모를 장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억기는 서슴없이 나서서 족친위 지휘를 맡겠다고 자청했다. 사실 그때 선거이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후에 이 파총은 족친위를 이끌어 성벽 주변에 아직도 굴러다니는 시신을 수습하게 하고, 무기를 거두며 주변을 경계하게 했지요. 덕분에 송화강 너머에 있던 코르친 군이 이미 철수한 사실도 알지 않았습니까.”
코르친 예하 여러 부족들이 합친 몽골군은 삼성부 포위전 내내 별다른 역할은 하지도 않고 얼러대기만 했다. 사실상 병풍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정예 기병 2만여 기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진을 치고 있다는 건 우려할만한 일이었다. 그게 사라졌다.
“잘 된 일이지. 저들이 철수한 덕에 안심하고 배를 만들 수 있게 됐으니. 지엄하신 군령을 무난히 따를 수 있게 되었네.”
이순신이 한참 배를 만들고 있는 군사들을 내려다보며 분연히 말했다. 그러자 이항복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전하께서 직접 내리신 군령이니, 필히 성공시켜야 할 것입니다.”
북평에서 도착한 선전관은 단단히 봉한 봉투를 가져왔다. 조심스럽게 봉한 입구를 뜯어보자 임금이 직접 쓴 어지가 들어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좌별영은 배를 건조하여 송화강을 따라 진격하여 울라 도적들을 배후에서 치라. 또한 오위 및 족친위에 남은 병력은 좌별영에 편입하여 지휘하라.》
송화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울라 땅을 완전히 빙 돌아 적을 뒤에서 치게 된다. 한 방향에서 적을 치기보다 양면으로 나누어 치면 훨씬 혼란을 줄 수 있으니, 그런 어지가 내려온 까닭도 쉽게 이해가 갔다. 그래서 도감군 군사들이 삼성부 목수들과 함께 배를 만드는 중이었다.
“나무를 제대로 말려서 배를 만들면 더 오래 쓸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당장 배가 필요하니 어쩔 수 없네. 여기서 해삼위를 오가는 배를 마음대로 전용하면 강을 통해 날라오던 철과 화약 공급이 끊기지 않나.”
봄이 오면서 하류로 내려가는 얼음은 거의 녹았다. 우수리강도 녹아서, 해삼위에서 물자를 실은 배가 우수리강에서 흑룡강을 거쳐 삼성으로 온다. 그 보급선을 여기서 차고 앉아버리면 다음 물자는 누가 실어온단 말인가. 더구나 그 배들은 중상자를 싣고 돌아간단 말이다!
차라리 수명이 짧더라도 여기서 쓸 배는 여기서 건조하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이번 싸움에 쓰고 나면 쓸모가 없어질 배들이다.
“송화강을 따라 울라 땅에 가려면, 도중에 구왈차와 시버 놈들이 사는 땅을 지나게 됩니다. 장군께서 그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하시리라 믿지는 않습니다만.”
이항복이 태평하게 말을 건넸다. 그가 이런 성격이라는 사실을 그동안 알 만큼 알았으므로 이순신도 그 태도에서 딱히 불쾌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놈들은 코르친 밑에 있으니 분명 우리를 막으려고 들겠지. 하지만 우리 군사도 2만을 넘는 대군이 아닌가. 저들이 겁 없이 우리 길을 막는다면, 마땅한 결과를 맞게 해줄 따름일세.”
결의 가득한 그 목소리에 이항복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전선 이백여 척이 장군에게 지휘를 받으며 강을 거슬러오를 생각을 하니 그저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헌데 흐름을 거슬러 배를 움직이자면 격군이 힘을 많이 써야 할 터인데, 어찌 그 많은 격군을 조달하시겠습니까?”
“족친위를 써야지.”
미리 생각해 놓았던 대답인 양, 이순신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도감군이 배를 지었으니 족친위 군사들도 노는 저어야 하지 않겠는가. 배 짓는 재주라면야 오래 배워야 하고 자칫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라 시키지 않았지만, 배 젓는 재주는 금방 배울 수 있고 실수를 좀 해도 큰 문제는 아닐세.”
“과연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소관은 빼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항복의 웃음소리가 송화강 위로 퍼져나갔다. 작년 겨울에 집어삼켰을 시체 수천 구는 다 어디로 떠내려 보냈는지, 참으로 잔잔하고 평화로운 강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