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78
2부 156화
– 14 –
좁은 골짜기는 무척이나 을씨년스러웠다. 반드시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치중대 호송을 맡은 백 명 남짓한 군사들은 자꾸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들은 천으로 지붕을 씌운 수레 대열 양쪽 옆에서 한 줄로 늘어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중대장 나리, 이거 아무래도 조짐이 좋지 않….”
선임 소대장이 중대장에게 다가가 귀엣말을 건네는 순간 q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미간에 그대로 화살이 박혔다. 곧이어 수십 개나 되는 화살이 쏟아졌다.
“도망쳐라! 수레를 버려라!”
수레를 호송하던 병사들은 기습을 받자 그대로 도망쳤다. 장수들조차 군사를 추슬러 반격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대로 말머리를 돌렸다. 삽시간에 골짜기 바닥에는 포장을 씌운 수레 열두 대만 남았다. 그 옆에 재수 없는 병사 서넛이 같이 뒹굴고 있었다.
조선군이 도망친 것을 확인하자 매복하고 있던 야인 백여 명이 골짜기 위에서 우르르 달려 내려왔다. 적이 도주하는 광경을 보았기 때문에 아주 안심하고 있었다.
과연 저 수레에는 뭐가 실려 있을까? 곡식? 옷? 무기?
울라 병사들은 산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편히 쉬지도 못하고 숨어 있었다. 그러다가 소규모 수레 행렬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덮친 것이다. 이제 호송하던 조선군이 사라졌으니 유유히 전리품을 확인하고 필요한 물건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얻은 것은 화물만이 아니었다. 조선 수레꾼들이 소를 풀 틈도 없이 도망갔기 때문에 짐을 내릴 것도 없이 수레째로 몰고 갈 수도 있게 되었다. 신이 난 울라 전사들이 환호하며 수레에 달라붙었다. 성급한 자들은 벌써 고삐를 잡고 소를 몰기 시작했다.
“곡식이 실려 있으면 좋겠…!”
신이 난 울라 병사 하나가 맨 뒤에 있는 수레에 손을 뻗었다. 후방에 뚫린 입구로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창날 하나가 안에서 쭉 뻗어 나왔다. 창은 그대로 벌린 입안에 들어가 꽂혔고, 병사는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잠시 비틀거리다가 푹 쓰러졌다.
기대감을 품고 달려오던 울라 병사들이 황급히 멈췄다. 피에 젖은 창이 그대로 수레 안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수레 안에 적이 숨어 있었음을 깨달은 병사들이 급히 활을 쏘았다. 기껏해야 몇 명,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수레 안에서도 응사하긴 했다. 그런데 불화살이, 그것도 단 한 개가 엉뚱한 방향을 향해서 날아갔다. 불화살은 주변을 둘러싼 울라 병사들 대신에 앞에 늘어선 자기네 수레 중 한 대를 맞혔다. 울라 병사들이 비웃었다.
“저런 얼간이들!”
삽시간에 불길이 수레 위에 덮인 천을 삼켰다. 울라 병사들은 비가 새지 않게 하려고 천에 기름을 먹였나 보다 생각했다. 짐이 아까워서 두들겨 끄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부신 섬광이, 그리고 격심한 진동과 폭음이 그 주변에 있던 병사들을 덮쳤다.
“으, 으아아악!”
수레 가득 실려 있던 화약이 폭발하면서 주변에 있던 병사 20여 명이 그대로 폭풍에 날려 죽거나 다쳤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쇳조각에 맞아 쓰러진 인원도 10여 명에 달했다. 화살 하나에 30여 명이나 되는 인원을 잃은 것이다.
“이, 이놈들이 속임수를!”
지휘자가 치를 떨었다. 당장 적이 숨어 있는 저 수레로 뛰어올라 타고 있는 놈들을 모조리 끌어내려 난도질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폭음에 놀란 소들이 멍에를 어깨에 진 채 마구 날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폭주하는 수레를 피하느라 대소동이 벌어졌다.
고삐를 잡고 있던 자들이 달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워낙 큰 폭음에 놀란 데다, 손길까지 낯설다 보니 소들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도리어 한껏 날뛰어 수레에 타고 있던 야인들을 죄다 땅바닥에 떨궈버리고 달려가는 수레도 있을 정도였다.
“제기랄! 보내버려! 잡으려고 하지 마!”
내버려 두면 얼마 안 가 소가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어딘가에서 멈춘다. 그러면 바퀴 자국을 따라 쫓아가서 다시 잡으면 된다. 지금 무리해서 잡을 필요가 없었다.
당장 해치워야 할 자들은 속임수로 큰 피해를 입힌 저 얄미운 조선 놈들이었다. 그놈들은 또 불화살로 주변 수레를 겨누고 있었다. 화약을 실은 수레가 또 터진다면 시체가 또 수십 구 나올 것이다. 도망치면 되겠지만 겨우 몇 놈 때문에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달려들어! 끌어내려 죽여라!”
지휘자가 고함을 치자 병사 십여 명이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잡았다. 저 안에 있을 조선군 숫자는 기껏해야 두엇이다. 일제히 달려들면 한두 명 정도는 화살에 맞을지 몰라도 나머지가 곧바로 해치울 수 있다.
울라 전사들이 막 덤비려는데 갑자기 땅이 울렸다. 그리고 함성과 말발굽 딛는 소리가 매우 크게 다가왔다. 조선군 수송대가 왔던 방향에서 대규모 조선 기병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제기랄, 도망쳐라!”
처음부터 전부 함정이었다. 저항하지 않고 빠르게 도망친 보병들, 화약을 실은 수레, 불붙기 쉬운 덮개, 불화살로 무장한 궁수, 화약이 터지자마자 들이닥친 기병.
지휘자는 너무 수월했던 습격에서 수상한 점을 깨닫지 못한 자신을 저주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숲으로 도망치는 수밖에.
울라 병사들은 산산이 흩어져 숲으로 도망쳤다. 어느새 뒤를 쫓아온 조선 기병들이 화살을 날리고 편곤을 휘두르며 그 뒤를 쫓았다.
– 15 –
“전사 7천을 따로 떼어서 부여주 안으로 들여보낸다.”
만타이는 조선군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면 보급로에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급로를 습격하라고 매복시킨 부하들은 여기저기서 함정에 빠져 큰 피해를 보았다. 조선군은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함정을 파서 여진족들을 속였다.
소규모 미끼부대를 덮쳤더니 바로 뒤에 대부대가 바짝 붙어 따라오고 있었다. 방비가 없는 수레를 공격하자 포장이 활짝 열리면서 화포가 사방으로 불을 토했다. 막다른 골짜기에 있는 숙영지를 들이치니 벼랑 위에서 총탄과 화살이 쏟아졌다.
이런 식으로 근 스무날 동안 잃은 병력이 3천은 족히 되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서 병력만 왕창 잃어버렸다. 그에 반해 적에게 입힌 손해는 거의 없었다.
조선군의 보급에 타격을 입히려면 울라에 있는 곡식과 가축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저들이 직접 운반하는 식량도 그 경로를 차단해야 그 효과가 완전해진다.
문제는 그 ‘차단’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만타이는 그 문제를 부여주 공격으로 타개할 생각이었다.
“들여보낸 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조선인 마을을 습격하고 불태워라. 포로도, 재물도 필요 없다. 무조건 죽이고 부수기만 하라.”
“당장 우리 땅에 조선군 십만이 들어와 있는데, 부여주를 친다는 말입니까?”
부하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만타이가 간단하게 자기 의도를 밝혔다. 부하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가능한 한 쉽게 이야기했다.
“놈들은 우리가 완전히 물러났다고 믿는 탓에 부여주에서 방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부여주에서 분탕질을 벌이면 분명 혼란에 빠져 병력을 도로 뺄 것이다.”
만타이의 눈이 빛났다. 분명 성공하리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물자 운반도 부여주에서는 지방민을 소집한 속오군이 운반한다. 북평까지 도착하면 그제야 왕이 이끄는 정예군이 받아서 움직인다. 부여주에서는 분명히 수송 중의 방비가 훨씬 허술할 것이다. 길을 잘 아는 부여주 놈들을 함께 보내면 우리가 습격하기도 쉽겠지.”
부하들도 만타이가 전하고자 하는 뜻은 다 이해했다. 하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견해는 추장과 다른 듯했다.
“괜찮겠습니까? 적지에 들어가서 제대로 싸우지 못할 수도 있는데요. 더구나 당장 가족이 조선군을 피해 숲속에 숨어 있는데, 그걸 놓아두고 멀리 떨어진 부여주에 가라고 하면 그대로 도망쳐버릴 전사들도 많을 겁니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보내. 부여주를 불바다로 만들고 식량 보급을 끊으면 조선 임금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갈 수밖에 없을 거다.”
저들이 무슨 짓을 해도 울라에서는 십만 대군을 먹일 군량을 구할 수 없다. 곡식도, 가축도 모조리 숲과 산으로 옮겼다. 숨기지 못한 분량은 태워버렸다. 우물에는 짐승 사체를 던지거나 독을 탔다. 적을 쫓아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추장, 우물에 독을 탈 것까진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게 다 나중에 우리가 마셔야 할 물인데….”
“우물은 다시 파면 된다. 어설프게 굴다가 적에게 숨 쉴 공간을 주지 말고, 할 때 확실하게 숨통이 끊어지도록 목을 졸라야 해.”
계속 싸움을 피하고, 적에게 식량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식수 조달을 막으면 조선군은 결국 물러날 거라고 만타이는 확신했다. 그리고 이쪽이 승세를 잡기만 하면 엉덩이를 뭉개며 관망하고 있는 다른 3부에서도 바로 원군이 올 거라는 점도 의심하지 않았다.
자기 휘하에 있는 여러 소부족 중 어떤 자들을 부여주로 보낼지 선별하고 있는데 부하 한 명이 갑자기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저러나 싶어 쳐다보는데 또 한 명이 그렇게 숨을 몰아쉬며 만타이의 천막으로 뛰어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왜 그렇게들 급한가?”
두 번째 전령이 아직 헉헉거리는 사이 호흡을 가다듬은 첫 번째 부하가 한쪽 무릎을 꿇더니 보고했다.
“추장! 조선 국왕이 직접 이끄는 정예군이 우리 영토 안에다 성을 몇 개나 쌓고 있습니다. 그저 나무 울타리를 놓아서 진영을 만드는 정도가 아니고, 나무기둥을 세워 벽을 만들고 흙을 다져서 보강하는 제대로 된 성입니다! 그것도 가장 잘 개간해 놓은 땅만 골라서요!”
듣고 있던 만타이는 맥이 제대로 빠졌다. 그래서 발을 들어 부하를 걷어차면서 나오는 대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이 돼지 새끼! 그놈들이 그 정도 거점을 만들리라고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네놈들이 해야 할 일은 놈들이 짓는 여러 성 사이에 매복해서 수송대를 습격하고 교통을 끊는 거다!”
분명히 사전에 예상하고 대책까지 준비한 일에 대해서도 이따위 반응이라니, 그저 한심할 따름이었다. 만약 내게 조선군 수준의 부하들이 있었다면…하면서 만타이가 한 번 더 바닥에 쓰러진 부하를 짓밟자 부하가 숨 막히는 소리로 외쳤다.
“추, 추장! 제발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노, 놈들이 자기들이 지은 성에 우물을 파고 밭을 일구고 있단 말입니다!”
“뭐, 뭐라고?!”
만타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조선군이 아예 울라 땅에 장기간 눌러앉을 생각으로 들어와서 배짱을 부린다면 만타이로서도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어진다. 저들이 스스로 농사를 지어서 식량을 조달한다면 보급로를 차단하는 의미도 사라지니까 말이다.
만타이는 발길질을 하다 말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눈치 빠른 부하가 잽싸게 의자를 뒤에 갖다 놓았고, 물러나던 만타이는 뒷무릎에 의자가 닿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멍하게 있던 그가 두 번째 사자를 향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네놈이 가지고 온 보고는 뭐냐? 네놈도 저만큼 재수가 없는 보고 거리를 가지고 왔느냐?”
잠시 부들부들 떨던 사자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내놓은 보고는 역시 만타이에게 청천벽력같은 충격을 주었다.
“삼성부를 공격하던 우리 군사들을 깨트린 조선군이, 배 수백 척을 만들어서 타고 송화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쪽으로는 조선군이 오지 않으리라고 여겨서 안심하고 있던 여러 부락이 불탔고, 많은 주민이 남쪽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끝났다. 완전히 절망한 만타이는 쓰러지듯이 뒤로 몸을 기대고는 의자 위에 몸을 눕혔다. 세상에,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조선군 별동대가 송화강을 장악한다면, 육지로 이어지는 보급로를 차단해 봐야 큰 의미가 없다. 수로를 통해서 화약과 무기를 운반하고 식량은 직접 조달하면 몇 년이건 버틸 수 있다.
결정적인 문제는 예하 부족민들이다. 울라에 속한 여러 부족은 조선군에게 시달려서 제대로 농사도 짓지 못한 나머지 굶주리게 될 게 뻔하고, 결국에는 죄다 조선군에게 투항하거나 혹은 다른 부로 도망치게 될 거다.
“어쩌시겠습니까, 그래도 부여주로 병사를 보내시겠습니까?”
“보낼 수 있을 리 없지 않나!”
만타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부하들이 찔끔해서는 서너 발씩 뒤로 물러났다.
“남은 병사들을 모두 집결시켜라. 그리고 조선 임금이 있는 본진을 찾아가서 기회를 살펴! 놈들이 성을 다 짓기 전에 쳐야 한다!”
아까 품었던 여유는 어느새 다 사라졌다. 지금 만타이에게는 조선군이 성을 완공하고 아예 눌러앉을 준비를 완료하기 전에 공격해서 격파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조선군이 십만 명이라 하지만 승산은 충분히 있었다. 저들 병력 중 상당수는 치중대로 일선 군영과 북평 사이를 오가고 있을 테고, 성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한꺼번에 짓고 있으니 말이다. 분명 병력이 상당히 분산되어 있을 거다. 전력을 집중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조선 임금을 잡거나 죽이면, 모든 손실을 회복할 수 있다! 부여주를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고, 매년 세폐를 받아낼 수도 있어!”
만타이는 아직 만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희망으로 승리를 이뤄낼 꿈을 꾸었다. 다만 부하들은 이번에도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추장, 분명히 세자가 임금 대신 왕위에 올라서 그 요구를 거부할 겁니다. 옛날에 오이라트 추장 에센 칸이 명나라 황제를 붙잡았다고 명나라가 항복했습니까?”
토목보의 변 당시에, 오이라트는 정통제를 생포했으면서도 명나라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붙잡힌 황제를 죽여 괜히 원한을 사기도 그렇다 보니, 결국 그냥 풀어주고 말았다.
“더구나 우리가 그 정도 대승리를 거둬버리면 명나라 황제가 요동군을 파병할 겁니다. 혹시 이성량이 돌아와 요동군을 이끌기라도 하면….”
이성량은 이미 요동을 떠났지만, 여전히 여진족 부족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만타이 역시 이성량이 거론되자 말문이 콱 막혔다.
“그건…정말로 조선 임금을 사로잡거든 그때 가서 고민하겠다. 아무튼, 지금 당장은 놈들과 싸워 쫓아낼 궁리부터 하자. 임금을 붙잡지 못하더라도, 겁을 먹게 해서 목단강 너머로 도로 쫓아내는 일 정도는 어렵지 않을 거다.”
“예, 추장.”
급히 사자들이 말에 올라 이곳저곳을 향해 달렸다. 조선군이 펼친 감시망을 피해서 모을 수 있는 전 병력을 조선 임금이 있는 본영 코앞에 집결시키기 위해서였다. 되도록 많은 병력을, 가능한 한 빨리 모을수록 승리를 거둘 가능성도 커질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