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391
2부 1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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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은 부지런히 붓을 놀렸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와의 회견, 그리고 왕궁에서 열린 환영 연회장에서 스페인의 유력 대신과 귀족들을 상대로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정리해야 했다. 그 뒤에 입수한 정보들도 당연히 포함이다.
『…현재 서반아 궁정에서는 잉글랜드와의 전쟁이 가장 뜨거운 화제입니다. 전하께서는 필시 저들이 이미 패했다는 소식이 들어온 뒤에 우리 사신들이 도착할 것이니 적절히 상황을 살펴 서반아 조야를 위로함으로써 호의를 얻으라 명하셨으나, 아직 승패가 결정나지 않았습니다.
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서반아 국왕이 동원한 함선이 총 130여 척, 인원은 선원과 군사를 합쳐 2만 6천 명입니다. 이들이 세운 목표는 잉글랜드 함대를 격파하여 대륙에서 잉글랜드로 건너가는 해로를 열고, 서반아령 저지대 지역에서 육군 병력을 수송해 양륙시키는 것입니다.
함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육군은 전체 규모가 3만이라고 합니다. 잉글랜드 군대도 해안에 집결하여 침공을 대비하고 있기는 하나, 그 질에서 심각하게 떨어지므로 상대가 되지 않을 듯합니다. 섬나라인 데다 왜국과 달리 내전이 없어 군대를 양성할 일이 없었다 합니다.
아직 타국인으로부터 평을 들은 바가 없어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서반아 육군은 유럽에서도 최강으로 평가받고 있는 듯합니다. 이들은 우리 조선과 달리 양민이라 해서 모두 군역을 지지 않고, 스스로 군에 들어가는 자들에 한해서 복무합니다. 그만큼 숙련된 정병들입니다.
군에 지원하는 자들은 대개 예로부터 내려오는 귀족 가문의 후손들이거나, 농민이나 직공 일이 싫어서 군인이 되었습니다. 서반아의 풍속 자체가 붓을 잡고 학문을 닦기보다 검을 잡고 무사가 되는 쪽을 선호하며, 일반 백성들도 그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합니다.
이 군병들은 전적으로 국왕이 지급하는 보수를 받아 생활하는데, 책정된 액수가 딱히 높은 편이 아닌 데다 체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사기가 떨어질 뿐 아니라 당장 생활하기가 곤란해지므로 인근에 있는 백성들을 약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지대 반란이 쉽게 진압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체임된 군사들의 약탈과 그에 따른 현지 백성들의 반감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훈련도감을 번상병이 아닌 급료병으로 충원하고 계시는데, 신이 보기에는 서반아 군대와 같은 체계를 구축하시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신이 접한 서반아 군대의 사례를 보건대, 급료병 확충은 사전에 재원을 충분히 확보한 뒤에 진행하심이 필수입니다.
물론 서반아 군대는 자국이 아닌 외국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백성을 약탈하는 데 훨씬 망설임이 덜합니다. 하지만 장차 우리 군사들이 어디서 활동할지 알 수 없는 터인데, 백성을 함부로 약탈하여 도적의 무리로 평가받게 된다면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완화하고자 하면 군병들에게 정해진 소집일과 조련일 외의 다른 날에는 군사들을 군영 안에 묶어놓지 말고 밖에서 자유롭게 살게 하소서. 또한, 군영에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각자 장사든 농사든 자유롭게 하여 수입을 얻게 하소서. 그러면 부담을 줄일 수 있나이다.
수군 또한 비슷합니다. 이번 잉글랜드 원정에 동원한 배 130여 척 중에서 국왕이 소유한 전선은 30척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민간에서 소유한 상선에 포를 싣고 무장을 갖춘 것입니다. 우리도 새 조선소에서 건조한 배를 민간에 풀어 상선으로 겸용케 하소서.
물론 순수한 군선이 싸움에서 더 강함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 더 많은 선박을 확보하려면 이 방법은 필수이니, 유럽 여러 나라도 순전히 관선으로 함대를 편성하지 않고 유사시에 사선을 징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덕형이 잠시 붓을 내려놓고 어깨를 두드렸다. 보고서가 완성되면 예수회를 통해서 보낼 것이다. 이제까지 항해 도중에 작성했던 보고서도 모두 그 경로를 거쳐 조선으로 갔다. 지금 쓸 수 있는 수단 중에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전달 방법이었다.
보고서를 마저 작성하려니 출발 전에 임금이 했던 언급이 다시 생각났다. 주상께서는 어찌 서반아가 원정을 결행하기 1년도 더 전에 그 사실을 알고 계셨을까? 역시 인간이 알 수 있는 범주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전하께 하늘의 계시라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다만 원정의 승패에 대해서도 임금이 알려준 말이 맞을지는 솔직히 조금 의구심이 들었다. 연회 자리에서 만난 서반아 대신들은 모두 승리를 확신했는데, 그 근거로 잉글랜드가 보유한 전력이 육군이건 수군이건 모두 서반아보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덕형이 듣기에도 그만한 전력 차이라면 분명 서반아 군대가 이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쟁이란 양측 군대가 가진 힘만으로 결판이 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천시, 지리, 인화 등 수많은 요소가 배합된 결과로 비로소 승패가 나는 법이다.
이덕형은 이 싸움의 승패에 대해서는 서둘러 예단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풍랑이라도 일어 서반아 함대가 그냥 돌아올 수도 있고, 어떤 사정으로 육군이 승선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혹시 상륙에 성공하더라도 잉글랜드인들이 뜻밖에 강하게 저항할 수도 있고.
어느 쪽이 이기기를 바라냐고 하면, 당연히 조선에 우호적으로 대하는 서반아가 승리하기를 바랐다. 잉글랜드는 한자로 어떻게 적어야 할지도 알 수 없어 국문으로 나라 이름을 적어야 할 정도로 아는 게 없는 나라인데 어찌 그 승리를 바라겠는가?
장차 잉글랜드가 동방으로 와서 조선과 교류를 맺고 사귈만한 나라임을 보여준다면 그들이 번성하기를 바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적어도 이번 전쟁에서는 지지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이덕형은 생각을 정리하면서 차분하게 붓에 먹물을 찍었다. 아직 기록할 내용은 얼마든지 남아 있었다.
– 8 –
“그럼 귀하는 작위가 어떻게 되십니까?”
“조선에서는 에스파냐와 작위 체계가 좀 다릅니다. 백작 정도에 해당하겠군요.”
이수광은 출발 직전에 임금으로부터 영풍군(榮豊君)이라는 군호를 받았다. 그는 태종대왕의 후손으로서 엄밀히 말하면 법적으로는 종친이 아니지만, 왕실의 후예임은 분명했다. 그래서 이 사행길에 군호를 가지고 나선 것이다. 서양 귀족이나 왕족들과 어울리기 편하도록.
“항렬을 따지면 지금 국왕께서는 제 조카손자 뻘이 되십니다. 왕실 본가에서 갈라져 나온 지 그만큼 오래되었지요.”
“하지만 고귀한 피는 쉽게 흐려지지 않지요. 하하.”
연회 자리에서 왕실 혈통을 강조한 덕분인지, 따로 초대를 받았다. 이수광을 초대한 이는 조선으로 따지면 예조판서에 해당하는 대신이라고 했다.
“조선에서는 왕관을 쓰지 못하면 왕자라 해도 그 후손은 결국 평민이 됩니다. 군주로서 백성과 토지를 다스리는 권한은 오직 국왕에게만 있습니다. 신하들은 오직 임금이 내리는 녹을 받으면서 관료로 봉직할 뿐입니다.”
서반아 국왕이 조선 임금처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배에서도 미리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와서 보니 그 정도가 심했다. 국정에서는 분명 국왕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나, 각 지방에 산재한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들은 자기 땅에서는 그대로 군주였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분명 국왕의 자리는 신께서 내리신 것입니다만, 각 가문과 도시가 예로부터 가지고 있던 권리도 역시 존중되어야 하니까요.”
웃으면서 하는 설명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예로부터 살아온 과정이 다 다른데 어찌 나타나는 모습이 똑같을 수 있겠는가.
“귀족들은 폐하를 도와 국정에 참여하거나 군인으로서 전쟁에 나갑니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특권을 계속 보유하는 것도 그에 대한 보상이지요.”
“조선에서는 누대에 걸쳐 높은 지위에 오른 명문가는 있으되, 왕실을 제외하면 혈통에 따른 귀족은 이제 없습니다. 작위를 받더라도 그 칭호는 상속되지 않고 당대로 끝납니다.”
이수광은 혈통과 상관없이 과거시험을 통해 실력으로만 사람을 뽑아 기용하는 조선식 인재 등용법과 세습귀족이 없는 조선의 사회구조에 대해서 되도록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가 언급한 ‘상속되지 않는 귀족 칭호’란 군호(君號)를 의미했다.
“군대 지휘권도 그와 같이 시험을 거쳐 등용한 무관들이 맡습니다. 명문가 출신이라면 시험 준비나 승진에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일반 평민이라도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새롭게 편제한 교도연대 연대장은 노예 출신일 정도지요.”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이오? 그건 해도 너무한 것 같은데?”
서반아 귀족들이 경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니 저들에게 놀림거리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수광이 노예 출신 장수라고 거론한 사람은 훈련대장 유극량이었다. 유극량은 그 모친이 본래 대갓집 노비로, 주인집에서 도망쳐서 양인 사내와 혼인하여 낳은 자식이 유극량이었다. 그의 몸에 흐르는 피 절반이 노비인 어머니의 피다.
본래 국법대로라면 유극량의 신분은 분명 양인이다. 무종 때 경국대전을 개정하여 아이의 신분은 아비에게 달렸다고 규정한 이래 종부법은 개정되지 않았다. 부친이 양인이므로 모친의 신분과 상관없이 아들인 유극량 역시 당연히 양인이 된다.
문제는 모친이 주인에게서 몰래 도망쳐 나온 죄인이라는 데 있었다. 법을 어긴 상태에서 한 혼인이므로 그 자녀들의 신분 역시 위태로웠다. 양인이라고 우기려면 못 우길 것도 아니지만, 유극량은 그러는 대신 모친의 원래 주인을 찾아가 죄를 청했다.
모친의 옛 주인은 유극량의 의기에 감탄하여 모친의 죄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노비 신분을 없애 주고, 유극량의 무과 준비를 도와줌은 물론 벼슬길에 나가자 뒷배경까지 되어주었다. 그 덕분에 위아래에서 질시를 받으면서도 비교적 순탄한 관직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다면…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군요. 여기 에스파냐에서는 노예라고 하면 아예 다른 나라, 다른 대륙에서 온 자들이니까요. 우리는 같은 종교를 믿는 형제들을 노예로 부리지는 않습니다.”
같은 혈통을 지니고 같은 말을 쓴다고 해도 가톨릭 신앙을 거부한다면 그자는 꼭 처단해야 하는 이교도이거나 이단자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동방에서 온 사람이라도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 성모상 앞에서 경의를 표한다면 동포다.
서반아인들의 사고는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조선 사대부들도 무지하고 어리석은 조선 백성들보다는 자기와 같은 학문을 익힌 중국 사대부와 더 이야기가 잘 통하고 동질감을 느끼지 않는가. 안남, 유구 모두 마찬가지다. 유학자들은 유학으로 통한다.
아마 이들이 그리스도교 앞에서 모두 형제가 된다고 주장하는 논리도 그와 흡사한 기반을 두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예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노예 신분에서 풀어주어 양민으로 만들어 줄지, 그 여부는 별로 기대가 되지 않지만.
“하지만 이곳 유럽에서는 다릅니다. 고귀한 혈통에는 의무와 권리가 모두 매달려 있습니다. 간혹 조상의 위명을 더럽히는 자들이 나오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 귀족들만으로도 충분히 나라를 이끌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평민들 중 우수한 자는 필요할 때 등용하면 되지요.”
너희는 우수한 귀족이 없으니 노예라도 해방시켜서 쓰는 거 아니냐는 빈정거림이 들리는 듯했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화를 내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이수광은 자연스럽게 여기로 오는 항해 중에 겪었던 재미있는 일들로 화제를 바꿨다.
“우리 조선에서는 국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펠리페라는 이름이 귀국 국왕의 본명이 아니라 별호라고 생각했지요.”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나이 지긋한 귀족 하나가 웃으며 물었다.
“물론 우리도 폐하의 이름을 친구 부르듯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지칭하려면 이름 없이는 불편하지요. 조선에서는 왕을 어떻게 부릅니까?”
“왕은 어차피 나라 안에 한 사람뿐이니 ‘높으신 분’이나 ‘지금 왕’, ‘전하’라고 지칭합니다. 왕의 이름은 너무도 신성한 것이라서 일반 백성이 차마 입에 담아서는 안 됩니다.”
“흠, 우리가 신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는 것과 같군요.”
식탁 한쪽에 앉아 있던 신부가 입을 열었다. 집주인이 데리고 있는 고해신부라고 했다.
“우리 모두 아는 이야기지만, 교회에서도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그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은 나머지 이제는 누구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요.”
신부는 교회와 관련된 우스개를 몇 가지 꺼내면서 화제를 이끌어갔다. 이수광도 조선에 온 선교사들이 겪은 실수담 같은 것들을 좀 더 재미있는 모습으로 각색해서 소개하면서 분위기를 맞춰나갔다.
아예 서로 다른 두 세계지만,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의외로 통하는 부분도 제법 있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서로를 알아나가면 훨씬 깊은 교류를 해나갈 수 있을 듯했다.
– 9 –
은빛으로 반짝이는 갑옷과 투구가 들판을 메웠다. 창날이 숲을 이루고, 그 주변에는 총을 든 군사들이 복잡하게 오갔다.
“이게 진짜 테르시오요. 그대들이 본, 몇 안 되는 병사들이 깔짝거리는 게 다가 아니오.”
사신단 일행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천이나 되는 병사들이 신호에 따라 움직이면서 보여주는 일사불란한 모습은 이들이 찬탄을 자아내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우리 카스티야에서는 예로부터 평야가 부족하여 기병이 크게 성하지 못했소. 게다가 더운 날씨도 한몫했지요. 그래서 다른 나라가 강철 갑옷을 입은 기사들을 전장에서 주력으로 삼는 동안 우리는 가볍게 무장한 보병과 경기병을 주력으로 해 왔소.”
지금 참관하는 훈련은 두 개 테르시오 연대가 각기 기병의 지원을 받으면서 서로를 가상적으로 삼아 대진하는 형태였다.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야포가 포탄만 넣지 않은 채로 불을 뿜었고, 화승총도 탄환이 없는 채 총성을 울렸다.
“어…왜별기가 선보인 장창진과는 확실히 다르군요.”
이들이 조선을 떠날 때는 훈련도감이 본격적인 편성과 훈련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 스페인식 보병진 훈련을 처음 보았다. 오위에서 쓰는 장창진은 본 적이 있지만, 그건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장관과는 아주 달랐다.
“여러분에게 익숙한 일본식 장창진이 어떤 구조인지는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 테르시오 대형은 어떤 상황, 어떤 적에 맞서서도 언제나 충분한 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적이 포를 동원한다면 좀 불리할 수 있지만, 그럴 때를 위해 기병이 측면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깃발이 나부끼자 측면에 있던 기병들이 달려나가 적 대포 진지를 공격했다. 함락을 알리는 붉은 깃발이 곧 올라왔다.
“듣기로는 마닐라 주둔군 병사 몇 명이 귀국에 고문으로 가 있다더군요. 귀국에서 배우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된 전술이라면, 그런 곳에 있는 병사 나부랭이보다는 여기 본국에서 제대로 경험을 쌓고 직무를 수행한 장교를 데려가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 같은 에스파냐 병사가 아닙니까?”
“아닙니다. 식민지 경비를 위해서 나간 자들은 숙련된 전사일 수는 있으나 제대로 전쟁을 치러 본 군인은 아닙니다. 식민지에서는 기껏해야 소규모 원주민 집단과 벌이는 난투, 혹은 총을 쏘아 그저 쫓아 버리는 싸움을 할 뿐입니다. 대열을 짜고 적군과 격돌하는 싸움은 오직 본국에서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일행에게 설명을 맡은 장교는 식민지에 나가 있는 떨거지들 따위와 같은 군인으로 취급받는 데 대해서 매우 유감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내용은 분명 사실이기도 했다.
“그 문제는 당장 그대와 확정을 지을 수는 없겠습니다.”
“이해합니다. 계속 보시지요.”
일행은 다시 시선을 들판 쪽으로 돌렸다. 훈련 중인 테르시오 중대들이 열심히 움직이면서 적과 대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