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07
2부 185화
– 31 –
“대감! 전면에서도 적이 앞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달자 약 2만 기가 돌격할 태세로 천천히 앞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총을 가진 기병 3천 기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아군을 혼란스럽게 하는 동안에는 적 본진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몽골군 본대는 진영 안에서 꼼짝 않는 듯했다.
하지만 배후에 적 별동대가 나타나고, 조선군이 동요하는 낌새가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만 기에 달하는 적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쪽에서 퍼부어댈 포화가 두려운지, 한참 멀리 떨어져서 이편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탄환을 장전하다가 사격을 받아 피해를 냈던 적 총병들도 사정거리 밖에서 대열을 정비하고 총을 장전했다. 그리고는 다시 알짱거리면서 언제든 다시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듯 자신감을 드러내며 조총 사거리 밖에서 유유히 오갔다.
“자기들 뒤에 본대가 대기하고 있다고 아주 간이 배 밖에 튀어나왔군.”
유극량이 이를 갈았다. 만약 저놈들을 잡겠다고 대포를 쏘면, 다음 포탄을 장전하는 틈을 노리고 적 본대가 밀어닥친다. 후방에서 쇄도하는 적 별동대를 막기 위해 병력을 뒤로 빼내서 전선이 허술해져도 역시 적이 밀어닥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짓쳐 드는 적 철기를 두고는 생각할 시간도 길지 않았다. 젠장, 저런 철기는 명나라나 보유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옛날에 전성기가 다 끝난 몽고 놈들 따위가 수천 기나 되는 철기를 동원했을 줄이야.
“대장군포, 중장군포와 화차는 그대로 전방을 겨눈 채 두어라! 야포만 뒤로 돌려라! 좌군, 우군에서 각각 병력 2천을 후방으로 빼내라!”
후방에 나타난 적은 어느새 1천 보 거리까지 다가왔다. 중군이 보유한 조총과 뒤로 끌어낸 야포를 모조리 쏜다고 해도 저들이 돌입하기 전에 저지할 재주는 없다. 삼성부에서 해치웠던 것처럼 지뢰라도 묻어놓지 않은 이상에는.
저만한 철기가 전열로 밀려들면 도저히 막아내지 못한다. 비어버린 총을 재장전하기도 전에 기병들이 휘두르는 창과 활에 이쪽 대열이 먼저 짓밟힐 게 뻔하다. 고로 병력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이쪽에는 아직 남은 패가 하나 더 있었다. 굳은 표정을 한 유극량이 지시를 내렸다.
“기병을 내보낸다. 오도리가 전열, 족친위가 후열이다!”
“예, 대감!”
깃발이 휘날리고 진영 좌우측에 대기하고 있던 기병들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번쩍이는 은빛 갑옷에, 말안장에 달린 총집에 총신이 긴 권총 두 자루씩을 꽂은 오도리 기병들이 선두집단을 이루고 붉은 두정갑을 차려입은 족친위 기병들이 그 뒤를 따랐다.
“적이 3백 보 거리에 닿으면 야포로 조란환을 쏘아라! 조총은 백 보 앞에 올 때까지는 쏘지 마라!”
아무리 무거운 갑옷을 착용한 철기라고 해도 사람이 달음박질하는 것보다는 빠르다. 3백 보 거리에서 총을 쏘면, 다음 탄환을 장전하기 전에 적이 먼저 이쪽 대열에 도착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가까이 끌어들여서 정확하게 쏘느니만 못하다.
가능하면 아군 기병이 선전하여 적이 근접하기 전에 대열을 흐트러뜨리고 가능한 한 많은 적을 죽여 주기를 바랐다. 유극량이 초조한 눈으로 기병 대열 선두를 살폈다. 커다란 준마에 탄 거인이 철퇴를 치켜들고 호령하며 대열을 이끌고 있었다.
– 32 –
양측 기병 대열이 맞부딪히려 하자 수천 개나 되는 화살이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시버 족 경기병들이 쏘는 화살이 구름을 이루는 밑에서 몽골 철기들이 창을 겨누고 앞으로 돌진했고, 조선 기병들은 족친위와 오도리를 가리지 않고 활을 들어 화살을 날렸다.
양측 모두 빠르게 움직이며 쏘다 보니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장 가볍게 입은 시버 족 기병 사상자가 제일 많고, 그다음은 족친위였다. 오도리는 철갑이 화살을 튕기면서 사람은 다치지 않았으나 말은 보호를 받지 못해 몇몇이 쓰러졌다.
다만 몽골 철기는 거의 사상자를 내지 않았다. 말도, 사람도 철편을 엮어서 만든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있어서 원거리에서 날아온 화살 정도는 가볍게 튕겨냈다. 애초에 원거리용 화살은 그 자체가 가볍고 관통하는 힘도 약하다.
“그 정도는 애초에 다 알고 있잖나! 자, 돌진하라!”
“예, 추장이시여!”
임꺽정은 몇 차례 북방에 출전하면서 여진 말을 익혔다. 사내답고 호탕한 성품에 어떤 이도 이겨낼 수 없는 장사인 데다 술 대결에서도 절대 지지 않는 호걸이기까지 하니, 그에게 반한 오도리 병사들은 진정 충심으로 임꺽정을 따르며 추장이라고 불렀다.
부하들이 선두에 선 자신을 전속력으로 따라오고 있음을 확인한 임꺽정은 자기가 쓰기 위해 특별히 만든 서반아식 한손철퇴를 높이 치켜들었다. 길이가 석 자, 무게가 열 근이나 나가는 특품이다. 평소에 애용하던 대검은 혹시 떨어지지 않도록 안장 위에 잘 걸어놓았다.
본래 도감군 기병이 갖추는 기본 무장은 권총 두 자루와 활, 칼이지만 임꺽정은 권총이 영 손에 맞지 않았다. 그보다는 손에 잡고 휘두르는 검이나 철퇴 쪽이 훨씬 쓰기 편했다.
‘그런 건 서림이 놈이나 쓰는 거지.’
철갑옷을 입은 적을 치려면 검보다는 철퇴가 훨씬 쓸모가 있다. 하지만 조선에서 사용하는 철퇴는 길이가 기껏해야 팔길이 절반밖에 안 된다. 임꺽정에게는 훨씬 길고 육중한 놈이 하나 필요했다. 칼을 골라준 남만 고문관이 이 철퇴도 써보라고 제안해 주었다.
어느새 몽골 기병들이 겨눈 창날이 발하는 광채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선두에 선 적이 몽골 말로 뭐라고 지껄이는 말소리가 들렸지만, 어차피 그에게 몽골 말은 새나 개가 우짖는 소리나 다름없다. 임꺽정은 그에 개의치 않고 소리 높여 외쳤다.
“쳐라!”
하늘을 날던 한 독수리가 인간들이 벌이는 이 싸움을 보았다. 독수리는 여러 해를 살면서 이런 싸움을 숱하게 보았다. 인간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늘 서로 싸움을 벌였고, 싸운 자리에 수많은 시체를 남겼다. 그 고기는 독수리를 비롯한 많은 짐승에게 성찬이 되었다.
오늘 독수리는 또 싸움이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 당연히 남쪽에서 올라온 인간 무리가 이길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숫자는 세 배가 넘고, 더 길고 예리한 무기로 무장했으며, 상대보다 훨씬 딱딱해 보이는 껍질을 덮어썼기 때문이다. 심지어 말에게까지 그런 껍질을 씌웠다.
그에 반해 수가 적은 북쪽 무리, 그중에서도 은빛 껍질을 덮어쓴 자들은 창이나 칼도, 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독수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짧은 쇠막대기 같은 것만 손에 들었다. 독수리는 곧 시체 3천 구가 생기리라고 생각하고, 포식할 생각에 고도를 낮췄다.
그런데 인간들에게 접근하는 순간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수백, 수천 번이었다. 이런 맑은 날에 천둥이라니? 깜짝 놀란 독수리는 다시 고도를 올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지만, 여전히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럼 이 천둥소리는? 의아해하는 순간에도 천둥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그제야 독수리는 이 천둥소리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천둥소리는 당연히 하늘에서 울린다는 자신의 선입견 때문에 착각한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나는 소리인지 궁금해졌지만, 높이를 낮춰 날고 싶지는 않았다. 올리는 곳이 하늘이건 땅이건, 천둥에 가까이 가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천둥은 벼락과 함께 온다. 벼락에 맞으면 그대로 죽는다.
독수리는 날던 고도를 유지한 채 시선을 내려 땅을 살폈다. 하지만 땅 위에는 벼락이 치지 않았다. 천둥소리는 계속 울리는데도 말이다. 조그만 뿌연 구름 같은 것은 수천 개나 있는데, 번쩍이는 번개는 보이지 않았다.
의아해진 독수리가 살짝 고도를 낮췄다. 그 순간 번개가 보였다. 은빛 껍질을 덮어쓴 인간 하나가 내민 쇠막대기 끝에서 번개가 일고 천둥이 울렸다. 곧바로 자욱한 구름이 그 주변을 에워쌌고 벼락을 맞은 다른 인간이 말에서 떨어져 뒹굴었다.
역시 아무리 단단한 껍질을 쓰고 있다고 해도 벼락을 맞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독수리는 얼른 날개를 쳐서 고도를 높였다. 지금 저 싸움터에 가까이 가면 언제 벼락에 맞을지 모른다. 높은 하늘 위에서, 몰아치는 천둥과 벼락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자.
“이놈들! 권총 맛이 어떠냐?”
임꺽정이 유쾌하게 웃으며 철퇴를 내리쳤다. 그 자신은 철퇴를 휘둘러 쇠 투구를 쓴 몽골군 병사들의 대갈통을 깨부수고 다녔지만, 부하들이 쓰는 권총이 단발에 적을 쓰러트리는 광경을 보는 기분도 썩 나쁘지 않았다.
“뭐가 철기란 말이냐! 총 한 방이면 다 끝인데!”
적병들도 당황하고 있었다. 임꺽정이 휘두르는 철퇴에 창대가 꺾이고, 투구가 박살 나면서 갑옷이 터져 철편이 흩날리는 정도까지야 저들도 예상했으리라. 조선군 기병들이 입은 갑옷이 화살을 튕겨내는 모습에도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권총은 그들에게 충격이었다.
몽골병들은 상대가 창도, 활도 뽑아 들지 않는 모습을 보자 웃으며 창을 겨눴다. 번쩍이는 갑옷에도 틈은 있고, 얼굴은 그대로 드러나 있으니 찌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창이 막 닿기 직전에 적이 손에 든 쇠통이 불을 뿜었다. 그제야 그 물건이 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 손에 들고 다니는 작은 총이라니, 게다가 심지에 불도 안 붙이고서 쏘다니! 이런 물건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총이었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날아든 탄환은 갑옷을 뚫고 가슴과 배에 와서 박혔다. 한껏 기세가 올랐던 병사들이 연이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한 발만 쏘는 것도 아니었다. 한 발을 쏘아 한 명을 해치운 조선군이 곧바로 안장에서 두 번째 총을 뽑아 또 한 명을 맞혀 말 등에서 떨어트렸다. 보통 조총보다는 훨씬 짧고 가벼우니, 한 사람이 여러 자루를 가지고 다녀도 무리가 없을 건 뻔한 일이었다.
몇몇 병사들은 쏘아버린 총을 거꾸로 들더니 손잡이 부위로 몽골병을 내리찍었다. 일반적인 조총보다 가볍다고는 해도 쇠뭉치였다. 게다가 손잡이에는 철판까지 덧대어 놓았다. 한마디로 작은 철퇴나 다름없었다.
기병끼리 싸울 때는 창기병이, 그리고 중기병이 최강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조선 기병들이 쏘아대는 총탄에, 그리고 임꺽정이 야차처럼 휘두르는 철퇴에 밀린 몽골군 철기 대열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도감군이 헤집고 지나간 자리에 족친위가 뛰어들었다. 족친위 기병들에게는 권총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익숙한 활과 편곤이 있었다. 이거면 충분했다.
몽골병 사이에서 외침 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린 자들은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이제 이판사판이라고 여겼는지, 측면에 있던 수천 기는 자기 진영을 돌파하는 조선군 기병을 피해서 옆으로 빠졌다. 적을 뒤에 두고 스스로 포위되는 셈이지만 개의치 않는 듯했다.
“우리 진을 쳐서 뚫고, 그대로 본진과 합류할 셈이겠지.”
배후를 치는 적 별동대가 적 본대보다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와 있던 이순신이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실 이순신만 그렇게 여기는 게 아니었다. 조금만 전세를 읽을 줄 아는 장수라면 누구나 그리 판단할 것이다.
“도원수께서 명하신 대로 맞선다. 창수들은 대열을 정비하고, 조총수들은 그 뒤에서 방포 준비를 하라.”
창수들은 갑옷이 더 든든한 도감군이 전열, 족친위가 후열이다. 장창진 포진은 두꺼울수록 좋지만, 병력이 부족해서 2열뿐이다. 목책은 중군이 늘어선 구역에만 있었다.
그 뒤에 늘어선 조총수들은 연속사격이 가능하도록 3열 횡대로 늘어섰다. 궁수들은 조총수 옆에서 별도로 대열을 구성하고, 역시 화살을 시위에 걸고 당장이라도 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잠시 후면 적과 격돌하게 된다.
곧 포성이 울렸다. 포수들이 연달아 야포를 쏘아 조란환을 날리자 달려오던 적군이 연달아 말과 함께 뒹굴었다. 그런데도 남은 적은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적이 가까이 오면 집중공격을 받을 게 뻔한 포수들이 급히 야포를 뒤로 뺐다.
“방포하라!”
옆에 있는 중군에서도 조총을 쏘라는 고함이 울렸다. 조총수들이 구령에 따라 일제히 총을 쏘아대자 콩 볶는 듯한 총성과 함께 매캐한 초연이 구름처럼 일었다. 첫 번째 열이 바로 뒤로 물러나자 두 번째, 세 번째 열이 연달아 총을 쏘았다. 초연이 자욱하게 주변을 메웠다.
그런데도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궁수들은 점점 다가오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조총수들도 급히 화약을 재고 있었지만, 장전해 봤자 앞을 가린 초연이 가시기 전에는 총을 다시 쏠 수 없었다.
“놈들이다!”
미처 다 가시지 않은 초연 사이로 적 철기 한 기가 나타났다. 그대로 아군을 향해 돌진하며 창을 내질렀지만, 스무 자나 되는 도감군 장창수들이 든 창이 놈들이 든 창보다 아슬아슬하게 길었다. 적이 겨눈 창이 아군을 찌르기 전에 장창수들의 창이 적이 탄 말을 찔렀다.
“으아앗!”
놈은 초연 때문에 이쪽 창이 얼마나 긴지 제대로 못 본 모양이었다. 창날이 마갑을 뚫고 말 가슴에 박힐 때까지 돌진했으니 말이다. 말은 가슴에 창을 꽂은 채 뒷발로 일어서서 고통에 날뛰었고, 기수는 그대로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일어날 틈도 없이 화살이 쏟아졌다.
뒤이어 적 철기들이 계속해 뛰어들었다. 만약 이들이 처음과 같은 규모로, 그리고 일시에 달려들었다면 분명히 조선군이 펼친 방어선은 뚫렸을 것이다. 그만큼 그 위력은 상당했다.
하지만 남은 철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임꺽정이 이끄는 도감군 기병도 철기를 집중적으로 짓밟았고, 대기하고 있던 포수들과 조총수들도 철기부터 먼저 표적으로 삼았다.
조선군 방어선까지 살아서 도달한 철기는 불과 수백 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정도 숫자는 장창진으로 간단하게 저지할 수 있었다. 물론 마구 밀고 들어오는 자들을 막다가 약간 손해를 입긴 했지만, 적을 죽이기만 하고 아군은 안 죽는 전쟁이 어디 있단 말인가.
숲을 이룬 장창들을 통과하지 못하고 멈춘 적은 곧 총에 맞았다. 장전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조총수들은 적을 향해 가차 없이 탄환을 날렸다. 길이 막힌 적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그때 남은 적들의 머리 위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살아남은 적 경기병들이, 놈들이 자랑하는 활 솜씨를 발휘해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총과 활로 맞서라! 창수들은 대형을 유지하라! 조금만 참으면 된다!”
기병들이 보병 주변을 돌며 활을 쏘아대는 건 예로부터 유목민들이 정주민 보병들을 상대로 늘 사용하던 전술이다. 간단하면서도 보병들 쪽에 무척이나 불리한 전술이나, 충분한 위력을 갖춘 발사무기와 단단한 규율만 있다면 얼마든지 보병이 이길 수 있다.
이순신은 휘하 군사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 자신도 몸소 위치를 지켰다. 적이 쏘는 화살이 자기 주변으로 날아들어도 피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장창수들도 화살을 피해 몸을 빼려고 하지 않았고, 조총수와 궁수들은 적을 정확히 맞혀 쓰러트리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 싸움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겨우 1각(15분) 정도 지났을 때, 화살을 퍼붓는 적군 너머에 새로운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적은 아니었다. 망루 위에 있던 군사들이 크게 소리쳐 걱정하지 말라고 알렸다.
“우리 기병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기병입니다!”
나타난 먼지구름의 정체는 적 철기를 완전히 짓밟고, 적 후방까지 들어가 방향을 돌린 아군 기병들이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권총에 탄환을 다시 잰 다음, 남은 적을 뒤에서 들이쳐 섬멸하고자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중앙을 돌파하지 않았다. 넓게 펼쳐 학익진을 형성하고, 남은 적을 전부 그 날개 안으로 감싸 넣었다. 남은 적은 대부분 시버 족 경기병이라, 총을 쏜 뒤 빈 총을 철퇴 대신 휘두르기보다는 곡도를 뽑아 싸우는 자들이 많았다.
완전히 포위되었음을 알자 남은 적병 중 일부는 전력으로 학익진의 일각을 뚫고 도주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죽거나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승리를 거둔 것이다.
“적장은 참으로 무지한 자로구나. 이런 기회를 보고만 있다니.”
고개를 돌린 이순신이 적 본진을 보며 혀를 찼다. 아군 절반이 적 별동대를 상대로 혈전을 치르는 동안, 적 본진은 공격을 가할 것처럼 위협만 하고 나서지 않았다. 자신이었다면 적진 배후에서 아군이 공격을 개시했다고 확인하는 즉시 들이쳤을 것이다.
“필시 첫 싸움에서 우리 화포가 발휘하는 위력을 보고 겁을 먹은 게로군. 그래서 후방에서 기습한 철기가 우리 진영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포를 쏘지 못하게 되면 그때 가서 돌격하려고 계속 기다린 게야.”
물론 놈들이 돌격했다면 아군은 화포와 신기전, 조총으로 마중했을 것이다. 흉벽과 해자도 있으니 돌파하기도 후면보다 더 어렵다. 하지만 가만히 있기보다는 돌입이라도 했어야 성공할 가망이라도 있다.
“이젠 늦었지요. 다른 군사를 다시 샛길로 우회시킨들, 똑같은 결과만 맞을 테니 말입니다.”
이억기가 다가와 말을 붙였다. 싸움 동안 창병들을 직접 지휘하느라 다른 창병들처럼 피와 먼지로 더러워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맞네. 크게 패했으니 놈들이 다음에는 어떤 수를 쓰려고 할지 모르겠군. 생각해 보세.”
이순신은 조용히 적진을 바라보았다. 놈들은 지금 어리둥절해 있겠지. 아까 도망간 놈들이 소식을 전할 때쯤이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해서부를 구원하러 어서 가야 하는데 조급함만 커질 것이고, 실수도 더 늘게 되리라. 그때가 바로 이순신이 바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