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1
1부 041화
– 5 –
“그동안 농사를 망친 백성들에게 부역으로 저수지를 만들게 하신 바, 전라?충청 양 도에서 올해에만 크고 작은 보와 저수지 328개소가 축조되었습니다. 내년에 만약 가뭄이 든다면 이 보에 모은 물을 사용할 수 있으니 농사에 큰 도움이 되리라 보이옵니다.”
공조판서 변종인이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그래, 이런 건 필요한 일 맞지? 태풍은 정말 어떻게 막을 길이 없지만 가뭄은 어느 정도 피해를 완화할 수 있으니까.
“전하, 헌데 전하께서는 이앙법을 가능한 널리 보급하실 뜻을 그간 여러 차례 비치셨사옵니다. 지금도 그리 생각하고 계시옵니까?”
변종인이 주저주저하는 태도로 물었다. 그리 거리낄 거 없는 일이라 바로 수긍했다.
“그러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이앙법은 자칫 파종도 못하고 한 해 농사를 모조리 망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때문에 선대왕들께서 전면 금지를 명하신 적도 여러 번입니다. 이익을 좆는 백성들이 지금도 암암리에 벌이고는 있사오나, 그 위험이 큼은 분명합니다. 뜻을 재고하심이 어떠신지요.”
“아니, 이앙법은 허용한다. 싫다는 백성들에게까지 이앙법으로 벼를 심으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스스로의 뜻으로 하는 모내기까지 금지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건 양보할 생각이 없다. 이앙법은 분명 모내기철에 가뭄이 들면 한 해 농사를 모조리 날릴 위험이 크다. 하지만 벼농사에 드는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조선 후기에 이앙법이 확산되면서 농촌에서 다량의 잉여 노동력이 발생했음은 내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이점은 이거 하나가 아니다. 이앙법을 쓰면 모내기 직전까지 논이 빈다. 그 땅에 겨울 작물인 밀이나 보리를 심어 이모작을 하면 한 땅에서 두 번 수확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
물론 조선 후기에 농촌에서 밀려난 이들 잉여 노동력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한 몫을 단단히 했다. 하지만 지금, 연산군 시기는 조선 후기에 비해 훨씬 강건한 사회적 체력이 있다. 상공업에 투자하면 그 잉여 인력을 흡수할 여력이 있다고 나는 보고 있었다.
“바로 그 위험을 막고자 그대가 방금 보고한 보와 저수지를 만들게 한 것이 아닌가? 백성들이 보다 편히 농사를 지으면서 보다 많은 수확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면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닌가. 내년부터는 절대 이앙법을 금하지 말고, 각 백성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하라.”
이앙법을 할 여건이 되지 않거나 신뢰할 수 없어서 그전 농법대로 직파(直播)를 하고 싶어하는 농민도 있을 수 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강제로 이앙법을 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 선택은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헌데 오늘 과인은 그대들과 한 가지 의논할 일이 있노라.”
변종인 외에 또 이앙법 권장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올해만 두 차례 역모가 벌어진 결과 웬만한 정책에서는 조정에서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그전이라면 분명 한바탕 난리가 났을 일이지만, 반대의 화신인 사림들이 워낙 기가 죽은 터라 별 말이 없었다.
아, 어쩌면 지 멋대로 하다가 엿을 한 번 먹어야 저 새끼가 관두지…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저놈들 마음속에 일일이 들어가 볼 수도 없는데 어떻게 그 속셈을 알겠는가.
“현재 도형을 언도받은 죄수들은 속전을 바치고 형을 면제받거나 각도에 보내져 잡역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모두 모아 염전에서 일하도록 하면 어떻겠는가.”
내 말을 들은 신하들은 다소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수선거리더니 파평 부원군 윤필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이미 도형수들의 노역처 중에 염전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다. 헌데 과인은 호조가 관할하는 염전이 아닌, 내수사 염전에서 죄수를 사역하면 어떠하겠는지 의견을 묻는 바이다.”
죄수를 내수사 염전 노역에 동원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워낙 기존의 법도를 벗어나는 문제라 많이 망설였다.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다. 혹시 통과될 수 있을까?
“도형수뿐만 아니라 태형이나 장형을 받은 이들도 매를 맞는 대신 기간을 정해 내수사 염전에서 일하도록 하고, 사형을 언도받은 이들도 죄를 뉘우친다면 처형하는 대신 일을 하며 죗값을 갚도록 하면 어떻겠는가? 국법을 바꾸는 일이기에 정하기 전에 그대들에게 묻는 바이다.”
“전하. 태형과 장형은 모두 그 정도 벌을 받을만한 죄를 지었기에 받는 것입니다. 애초에 도형을 받을만한 죄인이라면 도형을 받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국가가 소유한 염전이나 광산도 아니고, 전하의 사재(私財)인 내수사 염전에서 일을 시킴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대사간 김계행이 먼저 반대하고 나섰다. 김계행은 성종 때 출사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사림이고, 김종직과도 꽤 친분이 있었다. 다른 이였다면 치도곤을 당했겠지만, 내년이면 70세가 되는 노인이고 해서 지난번 사화에서는 크게 얽혀들지 않았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란 일단 한번 오르면 두고두고 귀찮아지는 법이다. 김종직과의 친분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 텐데 이렇게 나서는 걸 보면 정말 곧긴 곧은 사람이다. 하긴 그래서 사간원을 책임지는 대사간 자리에 앉힌 거지만.
“국법을 어긴 죄인에게 노역을 시킴은 나라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궁성이나 성곽을 짓는 노역이라면 혹 모르겠습니다. 허나 내수사 염전에서 노역시킨다 함은 전하께서 사욕을 채우려 하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니 될 일입니다.”
“대사헌의 말이 옳습니다.”
다음 주자가 바톤 터치하고 나섰다. 호조판서 박숭질이었다.
“현재 호조가 소유한 염전이나 광산 등지에서도 도형수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모두 내수사로 빼신다면 호조의 수입에 상당한 피해가 옵니다. 국가의 수입을 호조에서 내수사로 옮김은 재정을 곤란하게 하는 바, 영명하신 전하께서 바라시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물론 과인이 바라는 바는 국고가 튼실해지는 것이다. 도형수를 부려 얻은 소금은 모두 내수사에 귀속하지 않고 호조와 나누게 할 것이다.”
“전하, 말씀하시는 바는 알겠으나 내수사가 분배해주는 소금은 호조가 직접 소금을 거둘 때보다 적을 것이 분명하지 않사옵니까? 전하께서 아무리 만백성의 어버이시라 하나, 도형수를 내수사에서 일하게 하심은 도가 지나치신 행동이라고 판단되옵니다.”
젠장, 이 양반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군. 완패다. 내가 정말 줏대 있고 유능한 이를 골라 인선을 잘 한 거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겠다.
전각 안에 가득 늘어앉은 다른 대신들도 모두 대사헌과 호조판서의 편을 들었다. 모든 중신들이 입을 모아 반대하니 나로서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하긴 이 문제는 나부터도 찝찝한 기분으로 추진했으니 더 밀고 나가기도 좀 그랬다.
“알겠다. 이 문제는 앞으로 논하지 않겠다.”
안타깝지만 죄수 노동력이라는 값싼 대안은 활용할 수 없게 되었다. 기존에 투입했던 내수사 노비들은 숙련된 기술자만 남기고 원래 일터로 돌려보내야 할 것 같으니, 박이재에게 임금을 주고 노동자를 고용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생산비가 크게 오르지는 않기를 바랄밖에.
– 6 –
“그리 되었다.”
“알겠사옵나이다, 전하. 애초에 상정했던 바가 아니니만큼, 염전 운영에 있어서 그리 큰 곤경에 처할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근 보름 만에 다시 내 앞에 선 박이재는 낭패할 소식에도 별로 당황해하지 않았다. 하긴 죄수 노역 계획은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던 바를 내가 멋대로 추진했을 뿐이니 실패해도 타격이 없을 게 당연하겠다.
“역군을 확보하는 대로 염전을 계속 늘려 나가도록 하겠사옵니다. 다만 차후 신설하는 염전은 황해도, 평안도 쪽에 세우려고 하나이다.”
지난번 회견 때까지만 해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에 내가 깜짝 놀랐다. 염전은 당연히 서남해안 갯벌에 만드는 거 아닌가?
“아니, 왜 그런가? 남쪽이 더 덥고 햇빛도 강하니 전라도 쪽에 세우는 게 낫지 않은가?”
“전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어차피 겨울에는 소금을 만들지 못하니 봄부터 가을까지만 염전을 운영한다고 하면 실질적인 운영 기간은 큰 차이가 없사옵니다. 게다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갯벌이 단단하여 매끈하게 만들기 좋기에, 굳이 비싼 자패를 깔지 않아도 되옵니다.”
여기서 자패(瓷牌)는 타일을 말한다. 내구도 차이도 있고 소금이 잘 팔리면 그 정도 비용은 충분히 뽑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에 토기도 아닌 자기 타일을 일부러 만들어 깔았다. 그런데 그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패가 없으면 소금에 갯벌의 흙이 섞이지 않는가. 더러운 것이 소금에 섞이면 누가 그 소금을 사겠는가.”
“소금을 물에 한 번 더 녹여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다시 말려 굳히면 깨끗한 소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햇빛에 말린 건염(乾鹽)은 자염에 비해 쓴맛이 나기 때문에 값이라도 싸야 하고, 그러자면 들어가는 비용을 가능한 줄여야 합니다. 비싼 자패를 사용하기 곤란하옵니다.”
그 문제는 나도 몰랐던 일이다. 평생 소금은 그냥 소금으로 먹었지 출신을 따져 가며 맛보면서 먹은 게 아니었으니까. 이쪽에 오기 전에도 남이 해주는 밥만 먹고 살았지 스스로 요리를 안 했으니 소금의 맛 따위 구분하면서 살 일은 없었다.
그보다, 이 시대 사람들 스스로가 내가 일러준 바를 넘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왠지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하긴 나는 미래 지식을 좀 더 알고 있을 뿐이지, 창의력이나 판단력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건 아니다. 절대적인 천재는 아니란 이야기다. 나 스스로가 잘 안다.
그나저나 확 티가 날 정도로 쓴맛이 난다니, 소금시장을 지배하기는 언감생심이 되겠구나. 싸구려 시장이나 장악하는 걸로 만족해야겠군.
“게다가 도성으로 나르는 운송비를 감안하면 전라도보다 평안도나 황해도가 훨씬 좋습니다. 그쪽 뱃길이 훨씬 안전합니다.”
“알겠다, 앞으로 염전 경영에 대해서는 네게 전적으로 맡기겠다. 봉산군에 있는 석묵 광산은 상태가 어떠하냐?”
석묵(石墨)은 흑연을 말한다. 한국지리 시간에 배운 덕분에 한반도에 흑연이 꽤 묻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한 광산 소재는 몰랐었다. 헌데 얼마 전에야 흑연을 여기서는 석묵이라고 부르며 먹 만드는 데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개발된 광산은 황해도 봉산군이었다.
지금 이 광산은 국유로, 농한기에 주변 농민들을 부역시켜서 흑연을 채굴하고 있다. 당연히 생산량도 많지 않다. 조정에서 쓰는 먹 제조에 사용할 분량을 채취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올해도 수령이 지방관들을 부려 채굴을 하고 있습니다. 부역이라 보수가 없기 때문에 농민들의 불평이 상당합니다. 내수사에서 이를 양도받아 노임을 주며 운영한다면 운영은 가능합니다만, 그 많은 석묵을 어떻게 판매할지가 걱정되옵니다.”
“염려 마라. 판매처는 있을 터이다.”
흑연 하면 첫 번째 용도는 연필이다. 진흙과 함께 구워 심을 만들고, 나무판 사이에 끼워 모양을 만든 뒤 깎아 가며 사용한다. 다만 우리가 쓰는 보통 연필은 한지와 같이 쓰기에는 별로 좋은 필기구가 아니다. 심 굳기를 4B 수준으로는 만들어야 한지에 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연필을 종이보다는 목재나 옹기 같은 물건 위에 적을 수 있는 필기구로 팔아 볼 작정이다. 우리 시대에 목수들이 매직이나 네임펜으로 기둥 한쪽에 쓱쓱 메모하곤 하듯이, 매직만큼 굵고 4B만큼 무른 연필이라면 휴대하고 다니면서 여기저기에 붓펜처럼 쓸 수 있지 싶다.
“그 외에, 찾으라 하신 석탄을 찾았다는 보고가 두 곳에서 들어왔습니다. 경기도 공성현에서는 땅 위에서 바로 퍼낼 수 있는 석탄이 있었고, 평양성 인근 대동강 동안에서도 석탄이 있었습니다. 둘 다 불을 붙여 보니 연기를 내며 타는 것이 분명한 석탄이었습니다.”
공성현은 현대에는 연천이다. 연천에는 질은 낮지만 한반도에서 유일한 노천탄광이 있다. 캐기 쉬울뿐더러 비교적 서울에서 가까우니 일반 연료용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아까운 목재가 장작으로 사라지는 비율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연탄가스’는 조심해야겠지만.
그리고 평양 동쪽에 있는 사동지구에는 질 좋은 무연탄이 있다. 서울로 운반하는 게 좀 빡세겠지만 나중에 석탄을 활용해서 산업적으로 뭘 좀 해보려면 이 정도 급은 필요하다. 서울로 나를 때도 배를 써서 대동강을 거쳐 서해로 운반하면 그리 힘들지는 않을 거고.
“두 곳 모두 내수사 소유로 확실히 못을 박아 두어라. 광산이 들어설 자리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은 적당히 보상금을 주거나 다른 곳에 있는 내수사 토지를 빌려주어 내보내도록 하고.”
“예, 전하.”
증기기관을 만드는 시도라도 해 보려면, 석탄 없이는 안 된다. 물론 장작으로도 증기기관을 돌릴 수는 있다. 문제는 그건 말 그대로 숲을 모조리 불구덩이에 처넣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목재도 소중한 자원이니 가능하면 석탄이 필요하다.
필요한 것, 챙겨야 할 것들은 많기도 하다. 그나마 지금이 조선이 외침을 겪지 않는 시기라 천만다행이다. 다만, 대규모 침략이 없다 뿐이지 소소한 골칫거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바로 이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