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11
2부 189화
– 1 –
남녀 포로 수천 명이 밧줄에 묶인 채로 종로 거리를 행진했다. 도로 양편으로 나뉘어 걷는 여진족들 사이로는 전리품을 가득 실은 수레가 연달아 지나갔다. 인삼, 진주, 은, 모피와 같은 교역품과 창검, 갑옷과 같은 무기였다.
요 몇 년 사이 북방 오랑캐들을 상대로 거둔 세 번째 개선식이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도 이 구경거리에 꽤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지나간 두 번 전쟁과 비해도 규모나 전과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고, 개선식이 도성 백성들에게 이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저 많은 야인 연놈들이라니!”
“지난번 개선식 때보다 훨씬 많은데!”
“상감께서 친정을 나가셨으니, 그만큼 도적을 많이 잡으신 거겠지!”
서울 거리를 행진하는 여진족 포로의 수는 1만 명에 달했다. 지난번 니탕개의 난이 끝난 뒤 열린 개선식에서 선보인 야인들이 3백여 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하면 정말 엄청난 숫자였다.
“그러니까 그때보다 서른 배나 더 많은 도적놈을 쳐부순 거 아닌가?”
“전하께서는 정말 명장이시구먼! 천세! 천세!”
종로 거리가 좁게 보일 만큼 몰려나온 백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흥분에 차서 수군거렸다. 조선왕조 2백 년 동안 유례가 없는 대승리가 나왔는데, 이게 다 상감마마 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임금이 친정에 나섰다고 해서 꼭 전투력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 임금이 보는 앞에서 공을 세우려고 발악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는 하겠지만, 그게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도리어 성급하게 움직이다가 실패하는 이들이 나타날 공산도 높아진다.
솔직히 이번 전쟁에 투입한 병력이나 상대한 적의 수를 따져 볼 때 포로는 지난번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도성 백성들은 순전히 임금의 공으로 대전과를 올렸다고 인식했다. 그 배경에는 바로 조보가 있었다.
한성부 관아 밖에 게시해두는 조보는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조보 내용에 한자가 많이 있긴 하지만, 시중에는 글을 익힌 사람이 많이 있다. 글을 잘 아는 사람 하나가 게시판 앞에 서서 조보에 실린 전쟁 소식을 글 모르는 다른 이들에게 해설해주는 건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조보에서 승리 소식을 전할 때는 임금이 어떻게든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 빠지지 않았다. 주상께서 군사를 이리 움직이라 명하셨다, 주상께서 적의 공격을 예측하고 방비를 명하셨다, 주상께서 적괴가 어디 있음이 틀림없다 지적하셨다 등등.
이에 반해 패하거나 큰 손실을 본 싸움은 하나같이 임금이 내린 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나온 결과로 치부했다. 그러면 백성들이 친정에 대해 어찌 생각할지는 빤한 게 아니겠는가.
이 찬탄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자들이 전쟁 초반 주력이었던 오위군 군사들이었다. 이들은 울라 제압이 끝난 뒤 역을 마치고 도성으로 귀환했는데, 돌아오면서 이야깃거리를 한 보따리 가지고 왔다. 물론 그 안에는 임금에 대한 칭송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백성들이 임금의 무공에 탄복하면서 주상전하 천세를 연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실상이야 물론 다르고 나라에서 적는 공식적인 기록도 사실에 부합하게 기록해서 남기겠지만, 적어도 민간에서는 이번 전쟁은 임금이 혼자 이긴 것처럼 전해질 가능성이 컸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는 하오.”
광화문 앞에 친 장막 아래에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세자 성의 귀에도 사방을 채운 백성들의 천세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무종 때부터 확립된 본래 개선식 때 법도에 따라 자리를 잡자면 광화문 위에 있어야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 빤하지 않은가.
“민간에는 태조대왕의 용력과 연관이 있는 속설이 수백 개가 넘는다고 알고 있소. 호랑이인 줄 알고 바위를 쏘았더니 화살이 바위에 박혔다느니, 화살 하나로 적 셋을 거꾸러뜨렸다느니, 심지어 귀신까지 쫓았다느니 하는 것들이 말이오.”
명궁은 아니지만, 세자도 활은 쏠 줄 알았다. 그래서 아무리 센 활을 쏘더라도 화살이 사람 몸뚱이를 셋이나 뚫고 나가지 못한다는 정도는 알았다. 세고 약하고를 떠나서 화살대와 깃이 걸려서 지나가지 못한다. 그만큼 신화적인 위업이면서 사실일 리가 없는 전설이다.
“그에 비교하면야, 군사를 움직여 적을 물리치셨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이치에 맞는 사실이 아니오? 물론 3백 년쯤 내려가면 아바마마께서 신통력을 발휘하여 적진에 폭풍우가 몰아치게 하고 하늘에서 천병을 불러 야인들을 토멸하셨다는 이야기가 돌지도 모르지만 말이오.”
세자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비쳤다. 지난 한 해 동안 세자를 보필하면서 여러 차례 이번 같은 표정을 보았던 병조판서 김명원이 자그마하게 속삭였다.
“세자 저하. 도성에 있는 모든 눈길이 개선 대열을 보고 있다 하나, 이곳을 보는 이가 만약 하나라도 있으면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릅니다. 태도에 주의하소서.”
멈칫한 세자가 헛기침을 하며 굳어진 얼굴을 풀었다. 김명원이 한 말이 옳다. 역심을 품은 것도 아니고 부왕이 이룬 위업이 부럽다는 생각밖에 없지만, 그거야 속마음일 뿐이다. 밖에서 보는 이들에게는 멋대로 짐작할 수 있는 트집거리일 수도 있다.
“알겠소. 하지만…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기에 한숨이 나는 건 사실이오.”
조선에서 임금이 친정한 적이 없는 건 친정해야 할 만큼 큰 전쟁이 없었던 탓이 가장 크다. 기껏해야 야인이나 왜인들 한 떼가 쳐들어 와 도적질을 하는 정도가 고작인데, 장수들이 맞아 싸워도 충분한 것을 굳이 임금이 나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이웃 명나라에서는 황제 정통제가 친정에 나섰다가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광경까지 본 조선에서 임금이 직접 전장에 나가겠다고 하면 주변에서 난리가 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부왕은 그 반대를 뚫고 친정을 나갔다. 그 결단력이, 그리고 충분한 성과를 얻은 그 능력이 부러웠다. 자신도 언젠가는 그만한 성과를 내고 싶었다. 물론 전쟁을 하고 싶다고 아무 때나 할 수 없다는 정도는 이번에 잘 알았다.
“잊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이번 야인 토벌에서 소모한 재정은 지금까지 써버린 것만 따져도 곡식으로 80만 석을 넘사옵니다. 하지만 아직 출병한 군사가 다 돌아오지 않았고, 공을 세운 장수와 군사들에게 포상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 비용도 마련해야 합니다.”
전쟁이 다 끝난 뒤에야 도착한 남병을 빼고 세더라도 조선군이 투입한 전력은 15만은 된다. 이들에게 1인당 평균 5석을 포상으로 준다고 해도 75만 석이 필요하다. 세자 성도 이 막대한 수치에 대해서는 이미 보고를 받았다.
“알고 있소. 하지만 적도들에게 빼앗은 물품으로 벌충할 수 있지 않소? 말이나 소, 무구나 노비가 있지 않소. 저 포로들도 다 노비로 분배한다 하셨다고 들었소만.”
“그렇습니다. 하지만 도성까지 끌고 온 일부만 노비가 될 것이고, 북방에 두고 온 나머지는 호조에서 거느린 금점이나 탄점, 벌목장에서 도형(徒刑)에 처할 것입니다. 그러니 포상을 주는 용도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김명원의 설명을 들은 세자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전리품이라고 해서 임금이 임의로 처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되었다.
“어쩔 수 없소. 포상은 아직 누구한테 얼마나 줄지도 정하지 않았으니, 아바마마께 결정을 서두르시라고 진언하는 수밖에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세자도 김명원도 그 결정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수만이나 되는 장졸들이 세운 공을 평가하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김명원이 문득 떠오른 다른 사안으로 화제를 돌렸다.
“동평관에 머무르던 왜사들이 크게 실망하여 돌아갔다는 소식은 신도 들었사옵니다. 그동안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청하는 그자들 때문에 고생이 실로 크셨사옵니다.”
“말 마시오. 그대도 익히 아는 바가 아니오.”
일기도주 종의지는 계속해서 사신을 보내 파병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변란이 일어났으니, 대대로 조선을 섬기는 신하로서 마땅히 군사를 내어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3천 군사를 낼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들이 먹을 군량도 지참하겠으니 군사를 낼 허락만 해 달라고 했다.
“심지어 대마도에 선발대 5백을 미리 보내놓고, 배로 동해를 북상할 것이니 우리 땅을 지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도 하였소. 하지만 그런 중차대한 일을 어찌 아바마마께 허락도 받지 않고 내 임의로 진행할 수 있겠소.”
“현명하신 판단이셨사옵니다.”
일기도주가 보낸 파병 제안은 조정에서 짧은 시간이기는 해도 논란이 되었다. 몇몇 신하는 아군이 입을 손실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서 왜병을 받아들이자고 했다. 하지만 조정 신하들 대다수는 저들이 무슨 속셈을 품고 있는지 모르며, 필요하지도 않다는 이유로 반대를 표했다.
“자고로 왜인들은 음흉하여 그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말로는 전하께 충성하기 위해서 군사를 보낸다 하였으나, 진짜 그 속셈이 무엇인지를 어찌 알겠습니까? 들이지 않기로 하심이 잘하신 일입니다.”
왜인들은 결국 원정이 끝날 때까지 파병 허가를 받지 못한 채 돌아갔다. 이제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으리라.
“주상전하 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갑자기 함성이 커졌다.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수레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수레 위에는 몽골군에게 노획한 철갑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고, 해서 4부를 다스리던 네 명의 추장 즉 만타이?바인다리?후르한?부자이 네 사람의 소금에 절인 수급이 네 모서리에 걸려 있었다.
갑옷 더미 위에는 간소하지만 장엄한 용상이 자태를 뽐내고 있고, 화려한 두석린갑 차림을 한 부왕이 당당하게 그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위용을 본 백성들이 부르는 천세 소리가 하늘을 진동시켰다.
세자를 비롯해 광화문 앞 장막 아래에 있던 신하들까지 전원 천세를 연호하면서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랬다. 임금 본인이 개선 행진의 주역인데 누가 감히 광화문 문루 위에서 행렬을 내려다볼 수 있겠는가?
야인 포로 60명이 사슬에 묶인 채 끄는 수레가 갑옷 더미와 보좌를 실은 채 천천히 광화문 앞을 지나갔다. 이제 행렬은 도성 안 큰길을 굽이굽이 돌아 종묘에 도착한 다음 끝날 것이다. 종묘에 도착하면 부왕은 선대왕들의 영전에 수급 네 개를 바치고 제를 올릴 예정이었다.
이 제사에 참여하고 부왕을 환영하기 위해서, 모후를 비롯한 왕실 일가와 도성에 있는 종친 전부가 종묘에서 기다리고 있다. 물론 모후를 비롯한 비빈이나 공주, 옹주들은 승전 제례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모두 나와 있는 것은 어명에 따른 조치였다.
친정 자체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보니 이를 수습하는 방안도 전례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부왕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그대로 선례가 되어 후대 임금 중 누군가 친정에 나섰을 때 참고하게 될 것이다. 과연 언제쯤 다음 친정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다만 저 괴상한 수레는 뭔가 싶었다. 아무리 전례를 따르는 이들이라도 저 수레는 되살려서 활용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런데 병판, 저 수레는 어찌 된 영문인지 혹시 들으셨소?”
“신이 듣기로…전하께서 친히 정하시길, 그저 말을 타면 백성들에게 위용을 드러낼 수 없고 포로들에게 가마를 지게 하면 행여 역심을 품고 가마를 뒤집어 전하께 위해를 가하려는 자가 있을지 모르니 안전하게 수레를 타고 식을 거행하겠다 하셨다 합니다.”
“그럼 수레를 포로들이 끌게 하고 갑옷을 쌓은 것도…?”
“예, 모두 전하께서 친히 명하셨사옵니다.”
세자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면서, 멀어져가는 수레를 바라보았다. 아바마마께서는 지금 저 보좌 위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드러내놓고 승전을 과시하면서, 왕조가 시작된 이래 첫 대외원정에서 승리함으로써 얻어낸 영광과 기쁨을 만끽하고 계실까?
– 2 –
“전하께서는 어찌 황제께 몸을 의탁한 자를 함부로 처형하실 수 있습니까!”
어쭈, 한 발짝만 더 나오면 나 한 대 치겠다? 지금 너는 하급자로서 예의를 지키는 거냐?
“무엄하시오! 그대가 아무리 대국 요동총병관이라 하나, 우리 전하께서는 일국을 다스리는 군주이시거늘! 예의를 지키시오.”
젠장, 역시 부모는 잘 만나고 볼 일이다. 이여송은 아버지 이성량 덕분에 30대 초반에 이미 총병 직함을 달고 있었다. 총병이 본래 무품(無品) 벼슬이긴 하지만, 정3품 지휘사들을 밑에 두고 있으므로 종2품 이상은 된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이번에 발배 토벌에서 세운 공까지 해서 ‘실질적인’ 권한이랑 직급도 올라간 모양이지. 그런데 지금 상황이 이여송 이 자식이 가진 직급 따위나 따질 때가 아니었다.
“감히 배신 주제에 어디서 끼어드는 게냐! 내 전하와 담판 중이거늘, 닥치지 못할까!”
이여송이 저따위로 버릇없는 놈이었던가? 총병이 원래 무품이기는 하나, 지금 놈이 대드는 유성룡도 배신(陪臣, 제후국의 신하)이라고 해도 그 직급이 이여송에게 뒤지지 않는다.
유성룡은 정1품 우의정이다. 명나라 관직과 조선 관직이 가지는 위상 차이를 생각해서 세 등급을 깎아도 종2품이다. 그만하면 충분히 이여송과 비슷한 고관이다. 하지만 이여송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마구 내갈기고 있었다.
더구나 웃기는 건, 이놈이 아주 유창한 조선말로 지껄여댔다는 거다. 지금까지 이여송하고 접촉했던 우리 신하들은 하나같이 ‘말이 조선 혈통이지 조선말도 못 하던데요’라고 보고했다. 그런데 저토록 유창한 걸 보면 그동안은 그저 못하는 척했던 모양이다.
“총병, 그대가 분개함은 이해하오. 그리고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하는 바요.”
저 자식이 유성룡을 개똥으로 취급하는 이상 마주 상대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신립이 여기 있었으면 혹시 저놈을 상대로 대거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내가 충돌을 안 일으킬 생각에 다른 데로 보내 버렸으니 할 수 없지.
“하지만 그대가 과인의 처지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시오. 도적놈이 ‘나는 이미 천자께 몸을 의탁하였으니 누구도 해할 수 없다’며 오만방자하게 구는데, 그걸 그대로 놓아둔단 말이오?”
“곧 제가 도착할 테니 기다려서 확인한 후 제게 처결을 요구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허, 하나 묻겠소. 그럼 이 총병 그대는 조선의 국왕인 이 몸에게 방자하게 군 그 두 놈을 살려줄 생각이었다는 게요?”
씨바, 한번 막 나가 보자고.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이여송 앞에서 벌벌 기었던 거야 나라가 망할 판이니 그랬던 거고, 난 아니잖아? 난 명나라 군대 같은 거 없어도 여진족 때려 부수고 왜군 막아낼 수 있다고. 이번에 연합작전에 동의한 건 순전히 작전구역이 명나라 영토라서다.
명나라는 이번에 나한테 진 빚이 만만찮다. 자기네 소굴에서 준동하는 도적들을 내가 대신 소탕해주지 않았나? 그런 판에 그 두 놈을 살려준다고? 그게 될까?
“아, 그야…물론 처형했을 겁니다. 그런 죄를 지은 자를 어찌….”
역시 이여송은 당황해서 더듬거렸다. 욘석아, 너 낼모레 마흔이지? 이 형님은 말이다, 겉은 어려 보일지 몰라도 이제 쉰을 바라본다! 너 정도 머릿속 들여다보기는 여반장이라고!
“그럼 뭐가 문제요? 놈이 망령되게 황제 폐하를 들먹였을 때 그 말에 따르지 않았던 일? 만약 그대가 보낸 사자가 내 앞에 있어 상황을 증언했다면 과인은 지체 없이 그 말에 따라서 놈들을 묶어 놓고 그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을 거요. 하지만 누가 그 망발을 증명했겠소?”
“놈을 추격하던 귀국 군사 중, 우리 사절이 놈을 만나고 본관에게 돌아오기 위해서 진영 밖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본 자가 있었습니다! 마주쳤다는 보고까지 들었단 말입니다!”
바로 그래서 내가 신립과 그 밑에 있던 왜인여진들을 이여송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북쪽으로 보내버린 거다. 신립은 자기가 누구를 놓쳤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나는 신립을 잠시 치워두는 거로 보답했다. 사실 놓친 게 더 잘된 일이었으니까 말이지.
방금 이여송한테도 한 말이지만, 만약 신립이 이여송의 사자들을 억류했다면 나는 부자이를 처형할 수 없었을 거다. 놈이 이여송에게 투항했다는 확실한 증인이 아닌가 말이다. 그놈들을 죽여서 입을 막았다가는 어떤 후폭풍이 몰아닥칠지 모르는 일이고. 자, 이것도 끝내자.
“그대를 통해서 황제께 투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두 해서 추장을 죽인 일은 내가 황제께 직접 글을 올려 죄를 청하겠소. 그러니 그대는 더 이상 그 문제로 격노하지 않아도 될 거요.”
“뭐, 뭐라 하셨습니까?”
이여송이 종이처럼 창백해진 낯빛으로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당연히 잘못을 숨기려 할 줄 알았을 텐데 드러내놓고 황제한테 고한다니 도리어 당황한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랴, 그렇게 처리하는 편이 차라리 나한테 나은걸.
“과인은 이제 도성으로 돌아가오. 귀환하는 즉시 황제께 글을 올려 이번 전란이 폐하께서 내려주신 은덕으로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 고하고, 폐하께 항복하겠다 했던 두 추장을 참한 데 대해 용서를 청하겠소. 또한, 우리가 세운 공에 대한 포상도 청할 것이오.”
“그 말을 들은 이여송 표정이 볼만했지.”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지만, 종묘 앞에서 피식 웃었다. 자기가 갑인 줄 알던 조무래기 갑 녀석한테 한 방 먹이던 그 통쾌함. 진짜 갑은 황제지, 황제. 적어도 아직까지는.
자, 이제 제사를 마치면 공식적인 원정 끝이다. 그리고 ‘가족’들이 기다린다. 상희를, 중전을 품에 안을 수 있다.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