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15
2부 1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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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솔직해져 보면 어떻소? 옛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요동을 차지한 이들이 중원에 칼을 들이대지 않은 적이 몇 번이나 있냐, 그 말이오.”
예부상서 심리는 천천히 찻잔을 기울이며 여유를 부렸다. 어차피 내주기로 한 땅이라 해서 넙죽 내줄 수는 없다. 아무리 가치 없는 땅일지언정 분명 명나라 영토다. 요구만 하면 땅을 내주는, 그런 호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도 조선 같은 소국에게.
“내 기억하기로…먼저 공손씨가 위나라에 맞서 요동에서 군사를 일으켰소. 그리고 고구려가 수와 당에 맞섰고, 발해 역시 산동을 공격하여 당과 대립했소. 그다음에 요가 일어서서 송을 쳤고, 금이 요를 멸한 뒤 송을 쳐 마침내 장강 이북을 빼앗았소.”
이산해가 입을 열어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심리가 손을 들어 자신이 아직 발언을 끝마치지 않았음을 표시했다.
“그 뒤, 달자들이 세를 규합하여 금을 무너뜨릴 때 중원을 무너뜨리기보다 먼저 그 좌익이 요동을 쳤소. 그리고 우리 태조 홍무제께서 달자들을 막북으로 몰아내셨을 때도, 요동에서는 나하추가 세력을 유지하며 버틴 바 있소.”
이번에는 잠시 쉬는 동안에도 이산해가 끼어들지 않았다. 심리가 확실히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반박하자고 마음먹은 모양이다.
“또한, 그대들 조선도 요동을 얻고 중원을 노리려는 욕심을 드러낸 바 있소. 강헌왕 본인이 요양을 점하지 않았소? 공정왕이 역도 정도전을 참하고 천조에 충성하겠다는 의지를 표했기에 넘어간 것이지, 만약에 정도전의 계획대로 요동을 침범했다면 천병이 조선을 정벌했을 거요.”
강헌왕은 태조 이성계, 공정왕(恭定王)은 태종 이방원이 받은 명나라 왕호다. 두 번째로 왕 자리에 올랐던 둘째 이방과도 역시 공정왕(恭靖王)이지만, 한자가 다르다.
“지금 그대들은 송화강 이동 땅을 달라 하오. 이미 80여 년 전에 목단강 이동 땅을 얻고서 또다시 땅을 달라 하니, 도대체 어디까지 갖고자 하는 거요? 40년 뒤에는 이제 요동을 모조리 넘기라고 요구할 생각이오? 그 뒤에는 군대를 몰아 요서를 침공하려고?”
“말씀이 과하십니다, 상서 대인.”
지금 명나라를 실제로 다스리는 건 황제가 아니다. 바로 여섯 상서들이다. 이산해도 그동안 북경에서 온갖 정보와 소문을 들었다. 황제가 아니라 신하들이 조정을 움직이고 있는 현실에 기가 막혔지만, 사실이 그러하니 이 상황을 가능한 한 유리하게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임금께서는 혼란을 진정시켜 천자께서 지고 계신 근심을 덜어드리고자 하실 뿐, 다른 의도는 없으십니다. 대인께서도 생각해 보시옵소서. 주민이라고는 여진족 약간명밖에 없는 땅, 그나마 이번 전란으로 태반이 죽어 나간 땅에 무슨 가치가 있어 저희가 욕심을 갖겠습니까?”
그동안 명나라 고관들을 만날 때마다 이산해가 반복한 말이 이거였다. 폐허가 되고 인구도 줄어든 땅을 누가 가지고 싶어 하겠냐고. 놓아두면 도적 떼가 들끓어서 요동부에서 관리하기 귀찮게만 될 것이라고.
“인구가 필요하다면 산동과 산서 등지에서 남아도는 농민들을 이주시키면 그만이오. 가난한 농민들은 땅을 준다면 기꺼이 넘어갈 테고, 폐허가 된 땅도 열심히 개간해서 농사를 짓겠지.”
“과연 그들이 울라 땅에서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산해는 차분한 태도로, 하지만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다.
“대군을 주둔시켜 보호하지 않으면 도적들이 이주한 백성들을 덮쳐 죽이고 약탈할 겁니다. 그렇게 세력을 키운 도적들은 두 번째 해서부가 되어 변경을 어지럽히고 천자가 가진 권위에 도전하려 시도하겠지요. 그리고 또 이번 같은 대원정이 필요하게 될 겁니다.”
이산해는 열심히 상대를 설득했다. 어떻게든 협상을 성사시키라는 왕명이 있는 이상 실패할 수는 없었다.
“저희 조선은 천자께 충성하는 번국으로서, 오직 천하의 안정을 위해 기꺼이 부담을 나누어 가지고자 합니다. 저희가 평화를 누림이 오직 천자께서 베푸시는 덕에 의함인데, 어찌 약간의 군사를 내어 야인과 달자를 다스림을 망설이겠습니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울라 땅에 사는 야인들을 성인의 덕으로 교화시켜 양순하게 하는 한편으로, 떠돌아다니는 도적들이 설치지 못하도록 군사를 충분히 두어 평안하게 하겠습니다. 또한, 달자들이 변경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방비를 튼튼히 하여 천자께서 베개를 높이 하고 주무시게 하겠습니다.”
이산해가 약속한 바는 이제까지 다른 관리들이 조선 사신을 접견하고 보고한 바와 같았다. 심리 역시 조선이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켜 주기만 한다면 송화강 동쪽을 영유하도록 하더라도 별 위험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상서께서 거론하신 무리들이 훗날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공손씨 일족은 위열조가 토벌했고, 고구려는 당고종이 쳐 무너뜨렸으며, 요는 금이, 금은 몽고가 멸했습니다. 나하추는 태조 홍무제께 귀순하였으니 그중에서 무너지지 않은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위나라 열조(烈祖)는 조조의 손자이자 조비의 장남인 위나라 2대 황제 조예를 말한다. 다만 공손씨를 토벌하는데 직접 나선 인물은 황제인 조예 본인이 아니라 태위 사마의였다.
“또한, 역도 정도전 역시 천자께 수고를 끼치지 않고 저희 스스로 처벌하였습니다. 이후 단 한 번도 반심을 품지 않았으며, 변경을 어지럽히는 도적들을 토벌할 때도 매번 천자께 칙허를 구하였습니다. 2백여 년에 거쳐 쌓은 신의를 어찌 이제 더럽히겠습니까.”
확실히 조선은 그동안 충성스러운 번국이었다. 국경을 범하거나 불손한 태도를 보인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명나라와 국경을 접한 인접국 중 가장 인구가 많고 국가 형태를 제대로 갖춘 나라라는 점에서, 경계를 풀지 말아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저희는 천자께 바치는 충성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이번 난리를 배후에서 조종한 코르친을 토벌하는 군사까지 보냈습니다. 저희 군사 1만 5천 기가 건주위 군사 5천 기와 함께 원정에 나섰으니, 곧 승전보가 전해질 것입니다.”
“그 원정은 조선의 안정을 위해 벌이는 게 아니오?”
“대명과 아국이 곧 한 몸인데, 어찌 어느 일방을 위해서만 군사가 움직이겠습니까? 달자를 쳐서 물리침은 울라 변경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면서, 또한 장성 이북에서 무리를 모아 천자께 거역하는 도적들을 없애는 일이기도 합니다.”
심리는 살짝 찻잔을 기울여 차를 마시는 동작을 취하면서 자기 표정을 가렸다. 조선 사신이 하는 말은 분명 옳다. 하지만 몽고인들을 막는다는 핑계로 키운 군사가 요하를 향해 쇄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예전에는 그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정벌에서 조선군이 보여준 힘은 생각보다 너무 강했다. 해서군은 회전을 벌일 때마다 박살이 났고, 압도적인 대군을 보유하고 방어전을 치르면서도 전세를 뒤집지 못했다.
조선이 이제까지는 신의를 지켰다고 하지만, 앞으로도 지킨다는 보장은 없다. 새로 옥좌에 앉은 이가 어떤 야심을 품느냐에 따라 이는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 지금 국왕이야 믿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나중에 그 자리를 이을 국왕들도 믿을 수 있을까.
요동은 북경을 지키는 방패다. 요동이 무너진다면 적은 바로 산해관으로 밀어닥칠 것이고, 산해관이 함락되면 그다음은 바로 북경이다. 그 사이를 막는 존재는 몇몇 성채들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건주위는 건재해서 이편에서 제법 쓸만한 패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조선이 송화강 방면에서 요하를 향해 진군한다면, 이쪽에서는 건주위를 시켜 압록강 남쪽 조선 본토를 공격하라고 명령할 수가 있다.
조선인들이 아무리 대군을 동원하더라도 요동을 공략하고 산해관을 공성하면서 건주위까지 제압할 만큼 많은 병사를 배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들이 건주위부터 공격해서 조선 본토에 대한 위협을 제거한다면, 그 자체가 전쟁을 개시하는 신호가 되니 대비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귀국은 30만에 달하는 해서 3부 소속 남녀노소를 울라 땅에 억류하고 있소. 저들은 엄연히 폐하에게 속해 있거늘, 모두 귀국에서 흡수할 셈이오? 설사 송화강 이동 땅을 그대들이 영유하도록 승인한다 해도, 호이파?하다?예허 3부는 거기 속하지 않소.”
이산해 역시 심리와의 회견에서 이 건이 분명히 문제가 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당연히 조정에서도 훈령이 이미 도착해 있다.
“저희 전하께서는 요동의 식량 사정상 당장 저들을 부양할 수 없으리라 여기시고, 혼란을 막기 위해 울라로 데려오신 것뿐입니다. 급한 대로 울라 땅을 갈아 양식을 마련하였고, 올해 겨울을 난 뒤에 모두 저들의 땅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정말 돌려보낼지는 확신할 수 없다. 울라 땅을 내놓으라고 하면, 포로로 잡아둔 해서 소속 야인들을 정당한 전리품이라고 주장하면서 몽땅 부여주로 끌고 가버릴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정말로 발생한다면 지원받은 전비를 토해내라고 요구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아무튼, 그 문제는 우리 조정에서도 좀 더 논의해 보아야겠소. 아직은 확답을 드릴 수 없으니 공에게 양해를 부탁하오.”
“국가대사가 아닙니까. 이해합니다.”
이산해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객관으로 돌아가는 수레 위에 오르려니,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명나라 고관들을 한 번 만날 때마다 일 년씩 나이를 먹는 기분이었다.
– 10 –
“이번 원정에 참여했던 군사들에게 내주는 보상은 쌀로 주도록 하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논의 끝에 전사자에게는 쌀 10석, 중상자에게는 5석을 보상으로 지급하기로 되었다. 보행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경상자와 무사히 귀환한 자는 각자 2석씩 주기로 했다. 물론 특별히 공을 세운 자는 그 공에 따라 더 준다.
이 액수를 산정하느라 집현전과 홍문관 관원들이 옛 전례를 참고하고 나라 사정을 감안하며 머리를 썩였다. 분명히 내가 연산군 때 일본 원정에서 전사상자에 대한 보상금을 주었지만, 제대로 체계화가 안 된 데다 그 뒤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흐지부지 없어진 탓이다.
처음에는 군사들에게도 장수들처럼 저화로 보상금을 줄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찍어 놓은 저화도 넉넉하지 않았고, 수십만 석이나 되는 저화가 일시에 시중에 풀리면 그 가치가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면 그건 별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백성들도 저화보다는 쌀을 더 반길 것입니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할 수 없지. 아직 조선 사회에서 화폐가 완전히 안착했다고 볼 수가 없으니까. 현물을 주는 편이 공연히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보다는 저화 가치를 덜 떨어트리지 싶다. 마침 오가가 실어온 명나라 쌀이 있으니 그걸로 참전보상금을 지급하면 된다.
함경도나 평안도 쪽은 운반이 힘들긴 하지만, 어차피 군량미 보충 때문에라도 곡식을 갖다 나르기는 해야 한다. 그 김에 보상금으로 줄 곡식도 함께 운반하면 될 듯하다. 보상금만 따로 운반하면 거기서 뭘 떼먹는 놈이 나올지 모르니, 관곡으로 함께 운반한 뒤에 떼는 편이 낫다.
“노획한 소와 말은 모두 관에서 쓸 것이니, 왜인여진이 허락받아 가져가는 외에 개인적으로 빼돌리는 자가 없도록 유의하라. 말은 군영에서 군마로 쓰고 소는 부여주에서 농우로 나눠줄 것이다.”
왜인여진이 예외인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평소 생활보조를 받는 대신 전사해도 보상금이 없다. 말 그대로 ‘혈세(血稅)’를 내는 놈들이고, 그래서 약탈을 허용해주는 거다.
그놈들 몫은 빼고, 우리 군사들이 노획한 소와 말만 대략 10만 필 정도 되었다. 해서에서 본래 기르던 가축 숫자는 당연히 그보다 많았지만, 놈들이 숨기거나 싸움 도중에 도망친 녀석들이 상당한 수였다. 전마 같은 경우에는 전투 중에 전사(?)한 녀석들도 많았고 말이다.
게다가 송화강 이동 울라 땅을 우리 영토로 만들기로 했으니, 울라 녀석들에게도 가축을 좀 남겨줘야 한다. 그래야 농사를 짓지. 소나 말도 없이 맨몸으로 농사를 지으라고 하면 놈들을 소도둑으로 만들게 될 뿐이다.
나머지 3부에서는 숨겨둔 가축을 꺼내오든지, 건주위에서 얻든지 알아서 해결하겠지. 설마 요동부에서 소를 주지는 않을 테고, 이번에 그렇게 두들겨 맞았으면서 소도둑질을 하겠다고 송화강을 건너오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넘어오면 보복원정을 또 펼칠 명분이 될 거고.
자, 그러면 필요하지만 다들 썩 좋아하지 않는 조치도 다시 시작해야지.
“지난 한 해는 북방에서 원정을 행하느라 전가사변을 중단하였다. 올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재개할 필요 없겠지만, 내년 봄부터는 다시 전가사변을 시행토록 한다.”
목표 인원은 함경도, 평안도를 제외한 각 도에서 한 달에 1천 명. 올해는 풍년이라 예년에 보내던 것보다 숫자를 줄였다. 대상은 당연히 예전에 그랬듯이 범죄자 일가지만, 정 대상자가 없다면 제비뽑기라도 해서 인원을 뽑아 올려보낸다.
“북방을 우리 영토로 다지자면 사민은 필요한 일이옵니다. 허나 백성들 중에는 터전을 옮겨 새로이 시작하기를 꺼리는 이들이 많으니, 가능하면 원하는 자들만 모아 옮기소서.”
“개척은 시급하나 나서는 이가 많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이주를 자원하는 자들을 뽑기 위해서 기근이 닥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사실 전가사변은 흉년일 때 반발이 도리어 적다. 고향에서 굶느니 차라리 다른 곳으로 떠나 새 삶을 찾아보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흉년이 3년 차로 접어들면서는 직접 자원하는 이들도 꽤 나왔다. 물론 그들만으로 필요 인원을 채우지는 못한다.
물론 대부분 백성들은 기근이 닥쳐도 북방으로 이주하기보다는 나라에서 구휼곡이 나오기를 더 바란다. 나 같아도 그러겠지만, 지금 내 입장은 백성이 아니라 임금이니 어쩔 수 없다.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 반복할 필요는 없다. 내년부터는 사민을 재개할 것이니라. 그때까지 북경에서 협상이 타결되면 목단강 이서, 송화강 이동 울라 땅으로 백성들을 보내겠다. 타결이 늦어지면 부여주로 보내 개척을 계속한다.”
울라 땅에는 도감군 1만, 남도군 5만이 주둔하며 치안 유지 작전을 펼치고 있다. 남도군은 별 전투를 겪지 않은 대신 수비대 임무를 맡은 셈인데, 그들로서는 참 고약하게 되었다. 이제 10월이라 북방에서는 겨울이 시작되는 계절인데 저들은 죄다 따뜻한 삼남 출신이니….
현지에 남은 순변사 이일이 보고하기를, 남도군은 추위를 견디기 힘겨워해서 거점방어에만 투입하고 유군, 즉 기동타격대는 도감군과 북방 속오군 중심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군량 운반도 속오군이 맡았다고 한다. 아마 이일로서도 최선을 다한 방책이리라.
사실 남도군은 이제 동원기한이 다 됐다. 하지만 봄이 올 때까지는 그대로 북방에 두고, 그 대신 각자 집에 출전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만주에는 이미 눈이 쌓이고 있는데, 동계행군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하는 게 훨씬 잔인하지 않겠는가?
봄이 오면 남도군 5만을 철수시키고 도감군 1만 8천을 올려보내 교대하게 해야겠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나머지 6개 위도 모두 편성을 마쳤고, 지금은 훈련 중이다. 스페인식 장비는 아직 지급이 덜 됐지만, 내년 봄까지는 모두 마련이 될 거다.
이들은 조선인 교관단에게 훈련을 받고 있다. 북방 원정에 따라가지 않은 스페인 고문단이 남아서 교관 노릇을 해줬다면 좋았겠지만, 전원이 이미 마닐라로 가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참, 북방으로 갔던 고문관 중에는 한 명이 전사하고 세 명이 병으로 죽었다. 도감군 손실이 다 합쳐서 2천 명 가량이니, 고문관 스물 중에 넷이 죽은 정도는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 6개 위가 북방으로 올라가면 이미 베테랑이 된 선배 4개 위와 고문단에게 많이 배워야지.
물론 3만 남짓한 도감군 병력으로는 울라 땅을 방위하고 반란을 방지하기 좀 부족할 거다. 그 간극은 오도리랑 왜인여진으로 메운다. 적어도 당분간은 울라 병력은 신뢰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이일이 보내는 보고에 따르면 부잔타이 놈, 우리가 울라를 먹을 기미를 보이니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자기 밑에 거느릴 부족민들에 대한 통제력도 솔직히 별로고.
조금만 더 살펴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그놈을 처리해 버려야겠다.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되면 우리 관찰사를 보내고, 만약에 실패해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적어도 우리에게 우호적인 놈을 앉혀야 하니까.
“그러고 보니 마닐라에 주문한 양선은 어찌 되었느냐?”
“11월에는 도착하리라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시험 삼아 주문한 5백 톤급 갈레온선. 저쪽 일정이 어떻게 됐는지, 그 사정은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하여튼 올해 완성이 됐다고 한다. 이제 인수할 참이다.
이런 선박도 직접 건조하는 게 목표지만, 아직 조선공들을 교육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일단 펠리페 2세가 보내준 플랑드르 조선공들에게 조선말부터 가르쳐야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걸려서, 내년이 되어서나 본격적인 조선 작업에 들어갈 듯하다.
조회를 마친 뒤 이것저것 점검하고 있는데 도승지가 급히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질문하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전하, 동래부사에게 장계가 올라오기를 왜국 대군 직전이 승전을 축하하는 사신을 보내어 지금 동래에 도착하였다 하옵니다. 전하를 알현하겠다고 하는데 그간 관례가 있어서 상경하는 길을 막을 수는 없으니, 일단 파발로 급히 아뢴다 합니다.”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래졌다. 노부나가가 승전을 축하하는 사자를 보냈다고? 그런 걸 굳이 뭐하러 보내? 지난번에 전쟁 치렀을 때도 안 보내던 놈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