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22
2부 200화
– 24 –
“감사합니다, 전하! 충심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깜짝 놀랐다. 임해군은 일본에 다녀오라는 내 지시를 받고 코가 바닥에 닿도록 크게 엎드려 감사를 표했다.
“전장에서 실수를 범하고, 별 공도 세우지 못한 신에게 이런 대임을 맡겨 주시니 감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야만적인 왜인들에게 왕화를 전파하겠습니다.”
하성군 아들이 지금 넷이던가? 그중에 군호는 임해군, 광해군 둘만 받았다. 나머지는 더욱 낮은 칭호인 수를 받았다. 전부 서자뿐이고 적자는 없다. 다행히 순화군이나 정원군은 역사가 바뀌면서 삭제된 모양이라, 덕흥군 가계의 막장성은 실제 역사에서보다는 훨씬 덜하다.
하지만 임해군이 워낙 독보적인 개망나니였던 터라서 그 존재감은 아주 거대했다. 차차하고 혼인한 뒤에 매우 얌전해지긴 했지만, 그 변화가 진짜일 리가 없지 않은가. 좋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사람 본성이 어디 가나?
시중에서는 차차가 임해군을 사람 만들었다는 소리도 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런 소문은 믿지 않았다. 눈이 삔 차차가 언젠가 정신을 차리고 이혼장을 제출하는 그날이 오기만 손꼽아 기다렸을 뿐이다. 그러면 약속대로 저 폭탄을 제거할 수 있으니까.
솔직히, 이번에 임해군이 전장에서 엉망진창이 되어 돌아온 모습을 보고 정나미가 떨어져서 차차가 이혼 선언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이혼은커녕 둘이서 열흘이나 방에 처박혀 있었다니, 이건 완전 기대 밖이다. 역시 남녀 간에 생기는 몸정을 무시할 수 없나 보다.
아무튼, 그동안 보아온 임해군의 태도로 보건대, 먼 길을 가기 싫어할 줄 알았다. 적어도 별 감정표시 없이 맡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저렇게 대놓고 좋아하면서 받아들이다니?
“혼인하면서 처가에 인사를 드림은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사람의 도리를 수행하게 되었는데 어찌 꺼리겠습니까?”
공부도 안 한 놈이 자기가 주워들은 말을 어떻게든 갖다 붙여서 핑계를 댄다. 코웃음을 친 뒤에 몇 마디 더 물어보니, 뭐? 차차를 안 데리고 가겠다고?
“너무 먼 길이라, 행여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소중한 내자를 처가에다 놓고 오기는 너무 아쉬우니, 본가에 머무르면서 모친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식, 이거 차차랑 진짜 화해한 게 아닌 모양인데? 그냥 전쟁터에 다녀오고 여자가 고파 성질 죽이고 잠깐 굽실거린 거구만. 이제 배부르고 등 따습고 이불 속에서도 신나게 즐기고 나니 또 딴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이거지.
아무래도 귀찮은 차차는 집에 두고, 자기 혼자 처가에 가서 사위 대접을 신나게 받고 싶은 모양이다. 더구나 전쟁터에 나갈 때와는 다르게 생명의 위협도 없으니 얼마나 신이 났을까.
뭐, 좋다. 차차 없이 가야 저 자식이 고삐를 풀고 깽판을 칠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 저놈이 일본에 가서 망나니 질을 벌이다가 노부나가나 히데요시 손에 죽기라도 한다면, 나로서는 살아있을 때보다 훨씬 좋은 패가 되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수일 내에 왜사 일행이 왜국으로 돌아가니, 같이 가려면 채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여러 달 머물러야 할 테니, 준비를 잘 갖추어라.”
“예, 전하!”
너무 신나 하는데. 왠지 저놈이 ‘하성군을 다시 파견할 테니 넌 이제 조선으로 돌아오라’고 해도 싫다고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망나니에 멍청할 뿐이지, 엉뚱한 욕심이 있는 놈은 아니니까 괜히 헛수작을 벌이거나 하지는 않겠지.
– 25 –
노부나가 문제로 고민하는 중에 명나라에 있는 이산해로부터 희소식이 왔다. 마침내 송화강 이동 영토를 조선에 넘기겠다는 동의를 명나라 조정에서 얻어냈다는 이야기였다.
“이 문제로 북경에 간 사신들 전원의 품계를 올리고, 크게 포상하라! 저들이 돌아오는 대로 시행하라!”
이산해를 북경에 보낸 건 올해 초였다. 지금이 12월이니까 거의 열 달? 전쟁이 끝나고도 넉 달을 끌었다. 새해 선물을 받은 셈이다.
“경하드리옵니다, 전하. 이로써 옛 발해 땅을 거의 얻으신 셈입니다.”
유성룡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 ‘거의’지. 요동이 아직 없으니까.
“새로 얻은 송화강과 목단강 사이 땅은 무엇이라 부르면 좋겠사옵니까?”
“이미 논의를 거치지 않았느냐? 옛날 속말말갈이 살던 곳이니, 속말주라 하자.”
속말말갈이 살던 땅이 송화강 일대인 건 알지만, 송화강 남쪽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북쪽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엄밀하게 말해 ‘고증’이 틀린 셈이 되는 거겠지.
하지만 뭐 어떠냐. 만약에 속말말갈이 송화강 북안에 살았다고 하면, 나중에 그 지역까지 속말주에 합쳐버리면 그만이다. 그럼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 조치지 뭐.
“울라 외에 다른 해서 족속들은 내년 봄에 요동으로 송환하기로 했다 하니, 이제 우리가 더 신경 쓸 필요 없게 되었다. 이제 울라 땅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도록 하자.”
울라 놈들, 아직도 가지고 있는 칙서가 있으면 모조리 빼앗아서 태워버린다. 부여주에서도 모든 칙서를 회수한 만큼, 이제 우리 땅에 있는 모든 여진 부족에게는 칙서가 없다.
칙서는 보유한 수량에 따라 명나라와의 무역 쿼터가 정해지는 물건이다. 당연히 하나하나가 돈줄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그 정치적 의미 쪽이 훨씬 크다.
칙서라는, 이 도장이 찍힌 종이는 단순한 무역 허가증이 아니다. 각 부족은 명나라 벼슬과 함께 칙서를 받았다. 그리고 위소 편성이 여기에 따라붙었다. 즉, 칙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 부족이 명나라 신하라는 의미가 된다.
연산군 때…아니, 무종 때만 해도 힘이 부족했다. 그래서 부여주를 넘겨받으면서 명나라가 부여주에 설치한 모든 위소를 인정하고, 그놈들이 조공을 바친답시고 요동도사 앞으로 줄줄이 들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아넘겨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났다.
이번 국경선 재협상에는 칙서에 관한 언급이 없다. 명나라로서도 우리 영토에 있는 각 여진 부족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를 포기한 거고, 우리도 안중에 두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제 명나라는 몽골 방어에 있어서 우리 힘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니 그 정도 배짱은 부릴 수 있다. 기존 위소 구조를 폐지하고, 그저 부족 이름 정도로나 남긴다. 부잔타이 녀석도 이제 울라의 대추장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거느린 소집단이나 통치하게 될 거다.
그 이득을 생각하면 명나라가 포로 송환에 내건 조건 정도는 약과다. 저들은 우리가 데리고 있던 해서 3부 소속 백성 30만을 돌려보낼 때, 이들이 먹을 3개월 분 식량을 함께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들이 살던 땅이 폐허가 되어 당장 식량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조정에서 다소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나는 이산해에게 수락하라는 훈령을 보냈다. 송화강 이동 땅을 몽땅 갖게 됐는데 그 정도 대가를 치르지 못할 게 뭔가. 게다가 내 이름으로 해서 백성들에게 식량을 주면, 저들이 감사할 대상도 내가 된다. 충분히 받아들일 조건 아닌가.
전쟁은 이미 끝났다. 물론 피해를 본 여진족들이 마음속에 원한을 품고 있기는 하겠지만, 민심을 사 두어서 나쁠 건 없다. 장차 저들을 내가 직접 통치를 하든 말든 말이다.
– 26 –
“김충선을 그대 사위로 맞아들이기로 하였다고?”
“그러하옵니다, 전하.”
조회가 끝나자마자 호조판서 윤두수가 난데없는 소리를 했다. 왜별기에 속한 군관 김충선, 그것도 올해 열여덟 살 난 애송이에게 자기 서녀를 주어 사위로 삼고 싶다는 거였다.
“저들은 외인(外人)이니만큼 전하께 허락을 받아야 할 듯하여 이리 청을 올리옵니다.”
편전이 술렁거렸다. 윤두수의 딸이라면, 적녀가 아니라 서녀라 하더라도 맞아들여 혼인하고 싶다는 명문가가 줄을 선다. 지금 여기서 지원하라고 해도 열 명은 족히 손을 들 것이다.
“혼인이야 양쪽 집안에서 동의하면 되는 것이지만….”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니, 이 영감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왜장을 사위로 맞으려고 하는 거야? 차차가 임해군 사람 만들었다고 요즘 종친이나 대갓집들 사이에 일본인 며느리에 관한 관심이 크다더니, 일본인 사위까지 탐내는 현상이 나타난 건가?
“신이 삼성부에 향군장으로 있을 때, 김충선이 군사를 끌고 싸움에 나서는 모습을 수차례 보았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군사를 거느리는 태도가 비범하고 그 품행에 절도가 있으니, 학문을 닦은 사대부와도 비길 만하였습니다.”
양자 사이에 연이 생긴 것은 왜별기가 삼성부에서 1년 가까이 주둔하던 시기다. 김충선은 군무 때문에 향군장인 윤두수와 자주 접했고, 집에도 종종 드나들었다고 했다.
“그러다 경의 서녀와 눈이라도 맞은 것인가?”
“부끄럽습니다. 집이 워낙 작은지라 내외를 구분하기 어려웠사온데, 그만 신의 서녀가 집에 드나드는 김충선을 보고 연모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신이 눈치를 챈 때는 거의 한 해 전이었사오나, 죄인의 몸으로 자식의 혼사를 치를 수는 없기에 미루어 두었사옵니다.”
삼성부에는 큰 집이 거의 없다. 도성에서 아무리 떵떵거리고 살던 양반이라고 해도 여섯 칸 정도 되는 토막집이 고작이었다. 전가사변 당한 죄인들 자신의 손으로 나무를 베어서 기둥을 세우고, 흙을 발라 벽을 막아야 했기에 큰 집을 지을 수가 없었다.
윤두수 역시 마찬가지다. 장성하여 혼인한 세 아들이 각기 방 하나씩을 쓰고, 아내와 첩이 아직 혼인하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하나씩 방을 썼다. 마지막 방이 윤두수의 사랑방이었다.
마사유키는 방비 강화 문제로 상의할 사안이 있을 때면 권율에게는 아들 노부시게를 보내고 윤두수에게는 김충선을 보냈었다고 한다. 김충선은 마사유키가 보내는 전언을 가지고 윤두수 집 사랑방을 수시로 찾아왔는데, 그러다가 윤두수의 서녀와 마주쳤다고 한다.
“처음에는 신도 어찌 야만스러운 왜인과 혼사를 맺을 수 있겠냐고 생각하였사옵니다. 헌데 그와 어깨를 맞대고 도적을 물리쳐 보니, 김충선이 비록 그 태생은 왜인이라 하더라도 올곧은 심성과 예를 숭상하는 마음은 여느 선비 못지않음을 알았사옵니다.”
“그렇게 김충선을 좋게 보았다면 물 한 그릇을 떠놓고라도 바로 혼인을 시킬 일이지, 왜 한 해를 더 끌었는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신은 죄인의 몸이었사옵니다. 중한 죄를 받아 근신해야 하는 죄인의 몸으로서 어찌 경사를 치르겠습니까. 전하께서 신을 용서하시고 도성으로 불러주신다면, 그때 비로소 혼사를 치르리라 마음먹고 기다렸사옵니다.”
내가 안 불러들이면 자식들을 노총각 노처녀로 늙어 죽게 할 심산이었단 말인가. 뭐 됐다. 이젠 다 지나간 일이니 그런 걸 굳이 캘 필요가 있나.
“또한, 곧 도적이 들이닥쳤사옵니다. 싸움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혼사 따위를 치르고 있을 여유가 없었고, 싸움이 끝난 뒤에 혼례를 치러 줄 생각도 하였으나, 왜별기가 도감군과 함께 성을 떠나 진군하는 바람에 때를 놓쳤습니다.”
그래도 싸움이 끝나면 삼성부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북방으로 출정했다가 곧바로 도성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했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도 사면을 받아 도성으로 오게 되면서 비로소 혼사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려울 때 맺은 약속이라 하여 깰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시행한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윤두수 이 양반, 딸이라도 그 추운 북쪽 땅을 떠나게 해주려고 그 혼인을 기획했던 게 아닐까? 김충선과 혼인하면 왜별기가 남쪽으로 귀향할 때 그 뒤를 따라 함께 떠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전가사변당한 죄인의 일족은 함부로 유배지를 떠날 수 없다. 하지만 임금이 이름까지 내려줄 정도로 특별하게 아끼는 왜별기 소속 무관과 혼인한다면 분명히 떠날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했겠지. 물론 나는 함께 떠나도 좋다고 허락했을 거고.
그렇다고 해도 대단하긴 하다. 하려고만 했으면 조선인 관원들을 상대로 수작을 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왜인인 김충선을 그 상대로 삼다니 말이다. 적녀가 아니라 서녀니까 왜인에게 더 쉽게 내줄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약속을 지키려는 태도에 탄복이 절로 나왔다.
“도성에 돌아온 뒤에 다른 집안에서 혼인 제안이 들어오지 않던가?”
“있었으나, 모두 거절했습니다.”
양반가의 딸은 다른 권세가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런데 지금 윤두수는 그런 귀한 기회를 포기하고 왜인에게 딸을 시집보내겠다는 것이다. 좋다. 그럼 하게 해줘야지.
“알겠다. 시부(媤父, 시아버지) 노릇은 사마유로 하여금 하도록 해야겠구나. 왜별기는 이제 곧 대구로 내려갈 참이었다만, 그대가 혼례식 날짜를 수일 내로 잡는다면 그날까지 미루도록 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승지는 왜별기장 사마유를 들라 하라.”
“예, 전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대는 김충선을 아들이라 여기고 혼인 준비를 도와주도록 하라. 조선 풍속에 따른 혼인 준비는 훈련도감 중군 이순신에게 시키겠으니, 그대는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마음의 준비를 시켜 줬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전하.”
사나다 마사유키가 고개를 숙여 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윤두수에게 감사했다. 윤두수 개인은 그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혼인을 진행하고 있겠지만, 이 혼인은 내게도 정치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주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재산도 뭐도 없는 젊은 무사가, 손에 든 칼과 타고난 용기만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 지위도 얻고 아내도 얻었다. 그것도 명문 귀족가의 딸이다. 비록 서녀라고 하지만, 길에 널린 평민 적녀보다 귀족가의 서녀 쪽이 훨씬 탐나는 신붓감인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 이야기가 퍼진다면 이미 조선에 넘어온 왜인들은 물론 아직 일본에 있는 왜인들 사이에 동요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할 거다. 조선에 건너가서 충성을 다한다면 출세는 물론 명문가 출신 아내까지 얻을 수 있다고 말이지.
“전하께서 하시는 말씀은 알겠습니다. 김충선도 잘 타이르겠습니다. 다만….”
마사유키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늘 당당하던 이 양반이 왜 이리 쩔쩔매는지 싶어 궁금해진 내가 먼저 질문했다.
“다만 어쨌다는 말인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어서 해보라.”
잠시 심호흡을 하던 마사유키가 결심한 듯 대답했다.
“신의 진짜 아들 노부시게, 아니 사노부는 김충선보다 4살이나 더 나이가 많사옵니다. 이미 나이 스물둘이 되었으나 혼처를 구하지 못해 아직 홀몸이오니, 전하께서는 사노부에게도 처가 될 규수를 구해주신다면 그 은혜가 뼈에 박힐 것입니다.”
조선말 솜씨가 능숙한 듯 모자란 듯 애매하구먼. 어쨌든 그 말도 분명 맞다. 노부시게 뿐만 아니라 왜별기 전체를 전장에 내보내 굴릴 궁리만 하느라 혼인을 시켜 자리를 잡게 해주는 일 같은 건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인제 와서 생각하니 미안하네.
김충선이 윤두수의 딸과 결혼한다면, 노부시게 정도 되는 이는 어느 정도 집안에서 아내를 얻을 자격이 될까?
내가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노부시게는 주로 부친을 보좌하여 지휘를 맡았지만 필요할 때는 서슴없이 난전 속에 뛰어들었다. 직접 벤 적만 해도 십여 명이 족히 넘는다고 했다. 그만하면 프로파간다를 위해 내세우기에는 충분하다. 더구나 일본에서도 유명한 사나다의 아들 아닌가!
갑자기 머릿속에 아직 혼처를 구하지 못한 내 서장녀, 열여섯 살 난 인빈 조씨 소생 옹주가 생각났다. 그 아이를 노부시게와 혼인시킨다면, 프로파간다로는 최강이 아닐까?
이면을 둘째 부마로 들이겠다는 계획은 그래도 큰 반발 없이 조정을 통과했다. 덕수 이씨가 원체 명문 ? 율곡이 덕수 이씨다 – 이기도 하고, 이순신이 그동안 북방에 원정을 나갈 때마다 공을 세운 숙장(宿將)이면서 문(文)에도 능하다는 평을 받는 사람인 덕이다.
하지만 왜인인 노부시게를 첫째 부마로 들인다면…? 조정은 발칵 뒤집힐 게 분명하다. 혹시 안 될 수도 있으니까, 여기서 마사유키한테 대뜸 나랑 사돈 맺자고 하지는 말아야겠다.
“알겠다. 내 좋은 혼처를 구해보겠으니, 믿고 기다리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고개를 숙이는 마사유키의 뒤통수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 문제는 일단 중전한테 가서 의논을 해봐야 할 듯하다. 일단 모든 왕자, 공주, 옹주들은 법적으로 중전의 자녀이기도 하니 말이지. 과연 중전은 반대할까, 찬성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