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23
2부 201화
– 27 –
“소첩이 어찌 전하께서 결심하신 일에 싫다 나서겠나이까. 전하께서 필요하다 판단하셨으면 마땅히 시행하시면 될 일입니다.”
너무 선뜻 동의해서 내가 도리어 놀랐다. 내 팔을 베고 누운 중전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자기가 왜 그 결혼에 반대하지 않는지 설명했다.
“세간에서는 아직도 혼인할 때 신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사옵니다. 하지만 소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첩을 보소서. 전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소첩의 외조모는 천대받는 백정이 아니었나이까.”
알지, 잘 알고말고. 지금 이 조선 천지에서 중전의 외할머니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걸? 지금도 그때 사냥대회에서 다지가 쇠뇌를 들고 서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눈에 화살이 꽂힌 짐승들 앞에 당당하게 서 있던 그 날이 말이다.
물론 지금은 그때 다지처럼 말과 활을 다루는 여자 백정은 구경하기 힘들다. 경작지가 늘고 행정력이 강화되면서 옛날처럼 사는 백정들은 팔도에서 거의 사라졌다. 사냥을 업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산척들은 있지만, 이들은 백정과는 풍속이 또 다르다.
옛날 백정들은 순 마적(馬賊)이나 다름이 없었다. 도적질도 말 타고 떼거리로 들이닥쳐서 확 털어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인구가 늘면서 미개간지가 농지가 되어 사냥터가 줄어들고, 말을 키울 땅도 없어졌다. 당연히 무기와 말 다루는 법을 익히기도 힘들어졌다.
여기에 행정력 강화로 도적질도 그만두게 되면서, 백정집단은 당연히 옛날 같은 전투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황이, 환이 시절까지는 이장곤의 영향력도 있고 해서 백정들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성군은 일부 백정들의 일탈을 핑계 삼아 철퇴를 가했다. 옛 악습을 포기하지 않은 일부 백정이 도적질을 벌이자 이를 빌미로 백정집단 전체를 탄압했다. 군사를 몰아 백정들이 사는 마을을 해체하고 각 고을에 흩어 관노로 만드는가 하면, 부여주로 집단 이주시켰다.
덕분에 압록강-두만강 선 이남에서는 백정 마을 대부분이 없어지고, 도축업자나 수공업자로 전직해서 자리를 잡은 일부 백정들만 남았다. 이제 옛날 방식으로 사는 ‘진짜’ 백정은 한반도 내에서 완전하게 사라졌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그 명맥은 부여주로 쫓겨난 이들이 잇고 있다. 백정들이 원래 고려 때 흘러들어온 거란이나 여진 같은 유목민족 출신이라는 설명이 있었지? 그런 주장을 따르자면 나름 고향으로 돌아간 셈일 수도 있겠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부여주에 퍼져 사는 백정 인구는 2만에서 3만 명 정도. 이주 과정에서 지치고 굶주려 많이 죽은 데다, 옮겨간 뒤로도 지원이 박했기 때문에 수가 크게 늘지 못했다. 오도리보다 인구가 적으니 뭐 할 말이 있겠나.
다만 치안이 불량한 데다 황무지가 널린 부여주 특성상, 옛 생업…인 사냥과 도적질은 아주 신나게 벌여대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속오군으로 편제하긴 했지만, 그동안에는 중앙군 전력을 주력으로 삼은지라 눈에 띄게 크게 활약할 일은 없었다.
뜻밖이라면 뜻밖이지만, 최근까지는 백정들이 벌이는 도적질이 그다지 내 골치를 썩이지는 않았다. 이유인즉슨 간단하다. 저들이 주로 터는 대상은 그전부터 부여주에서 살아온 여진족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진족도 기회만 되면 백정들을 털었다.
전가사변이 대규모로 벌어진 시기는 내가 눈을 뜨면서부터다. 그 이전에는 백정들처럼 형벌 차원에서 일부 이주당하는 자들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털어먹을 대상 자체가 이웃에 사는 여진족 마을밖에 없었다. 아니면 목단강을 건너 해서부 쪽을 털러 가거나.
물론 전가사변으로 세운 조선인 이주집단을 털거나, 두만강을 건너와 약탈을 벌인 ‘여진족’ 도적놈 중에 일부가 실은 강제 이주한 백정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놈들이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만 봐서는 도무지 구별이 안 된다는 거다. 여진족인지, 백정인지.
지나간 일은 다 없는 거로 치더라도 앞으로가 문제다. 부여주에 살던 여진족 대부분이 이제 목단강 너머로 이주했으니, 그만큼 만만하게 털어댈 상대가 없는 백정놈들이 남에서 올라간 조선 이주민들을 먹이로 삼을 공산이 크다.
그런 사태를 막으려면 놈들이 벌어먹을 일자리를 주어야 하는데…예전에 남쪽에서도 농사를 안 짓던 녀석들이 인제 와서 그 북쪽에서 밭을 갈 리가 없겠지. 으, 일단 조사해 보고 농사를 짓기 싫다는 놈들은 모조리 송화강이나 흑룡강 연변으로 이주시켜서 수비병으로 활용할까?
오도리나 왜인여진을 활용하듯이 백정이라는 부류 자체를 군대로 고용해 버리면, 녹봉으로 일정액을 지급하는 외에는 알아서 하게 놓아두면 된다. 사냥이나 적지에 대한 약탈에서 얻는 소득은 그대로 그놈들이 갖는 보너스가 되는 셈이니까.
따지고 보면 왜인여진에 오도리, 백정까지 세 민족이 조선의 카자크가 되는 셈이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다. 나중에 러시아 놈들이 동진해서 아시아에 도착하면, 그 선봉에 있는 것도 카자크다. 양쪽 카자크끼리 맞대결을 펼치게 되겠군.
“전하…?”
“아, 미, 미안하오!”
괜히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중전이 하는 말을 안 듣고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살짝 웃은 중전이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소첩은 백정 외조모를 두고 있습니다. 외조부는 외조모를 전장에서 만났사온데, 혼인할 상대를 고르는데 신분 같은 것은 장애로 여기지도 않았사옵니다.”
중전은 나름 길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대신에 요점만 짧게 줄여서 이야기했다.
“혼인할 당사자만 괜찮다면, 출신이나 신분이 무슨 관계이겠사옵니까? 전하께서는 전하께서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일을 처결하시옵소서. 단 전하께서 소첩의 생각을 물으시는 것이라면, 소첩은 그 왜인을 부마로 들이셔도 좋겠다고 생각하옵니다. 다만….”
“다만?”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중전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인빈은 소첩과 달리 생각할 수도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잘 이야기하셔야겠지요.”
“그렇지. 법도로는 중전이 옹주의 어미지만 아무래도 인빈이 친어미니까.”
인빈 조씨…누구라더라, 진짜 역사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않았던 그런 가문 출신이다. 궁에 들어온 건 간택후궁으로였고, 경성군이 가장 아끼던 후궁이다. 그래서 서장녀도 낳았다.
물론 아꼈다고 해서 지금 내가 중전이나 상희를 대하듯 했다는 말은 아니다. 경성군은 후궁이나 그 자녀들에게 무척 차가운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태도가 차갑다는 것과 자주 동침하는 건 전혀 별개 문제다. 과거 경성군은 조씨를 좋아해서 중전에게보다 더 자주 드나들었다.
다만 내가 각성한 뒤로는 드나드는 횟수가 줄었다. 아니, 거의 발을 끊었다. 일단 내가 나를 확실히 모르는 상태에서 ‘나를 아는’ 여자를 품에 안는다는 게 너무 불안했다. 중전 한 사람만 만나는 리스크도 막대한데, 다른 여자를 더 상대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중전에게 익숙해지고, 경성군으로서의 생활에 좀 익숙해졌다 싶을 때쯤에 상희를 다시 만났다. 중전에 상희까지 두 사람을 주로 챙기려다 보니, 다른 후궁들에게는 당연히 더 소홀해졌다. 아마 인빈의 마음속에도 서운한 감정이 꽤 쌓여 있으리라.
“전하께서 뜻을 정하셨다고 하면 인빈도 따를 것입니다. 왜인과 혼인한다 하나, 임해군의 처처럼 바다 건너 이국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설마 꺼리겠습니까?”
그래, 차차처럼 바다 건너로 시집가겠다고 자진해서 나서는 것도 보통 각오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 차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조선에 왔는지, 그리고 골라잡은 남편감이 하필이면 임해군 따위인 이유가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 28 –
“귀국 대군도 이 문제는 중신들과 논하지 않았다 하였지?”
“그렇습니다.”
밀회 장소는 어느새 노고산 성당으로 고정되어버린 느낌이다. 일본인들이 귀국하기 전날, 말을 타고 나들이를 나선 척하고 성당에서 또 프로이스와 가모를 만났다.
“이 문제는 절대 새어나가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니만큼, 나 역시 신하들 앞에서 답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리로 불렀으니, 그리 알라.”
노부나가에게 어떤 답을 보내야 할지, 끝내 조정에서는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비변사 회의실에 모인 중신들은 분노하고 개탄했을 뿐 똑 부러지는 결론을 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노부나가가 요구한 대로, ‘함께 명나라를 치자’는 의견에 찬성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뱃길만 내주자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조정 중론은 세 가지로 가닥이 잡혔다. 당장 명나라에 알려서 대비하게 해야 한다는 이들, 내 주장에 따라 사건의 진위를 좀 더 파악해야 한다는 이들, 그리고 왜인들이 늘 하는 허황한 소리에 불과하니 그냥 무시하자는 이들.
어쨌든 비변사에서 회의를 거듭한 끝에 나온 결론은, 세 가지 대책 중 어느 쪽을 결정하든 당장은 왜사 일행을 고이 돌려보내야 한다는 거였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사신들을 붙잡아서 북경으로 압송한다면 노부나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논란이 시작된 초기에는 너도나도 떠들던 대로 당장 왜사 일행을 묶어서 북경으로 보내자, 즉 대놓고 노부나가에게 중지를 날리자…고 하는 이들은 이제 없었다. 그랬다가는 일본군이 당장 바다를 건너와서 명나라보다 우리부터 먼저 칠 거라는 내 말을 다들 납득했기 때문이다.
역사에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힘도 없으면서 중간에서 어설프게 눈치를 보다가 처맞은, 두 차례 호란을 치른 조선이야말로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내 신하들은 모르는 일, 이쪽 세계에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 아니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그대가 전한 계획은 너무도 허황한 게 아닌가 싶다.”
이번 두 번째 회견을 가능한 적은 사람에게 노출된, 비밀회담으로 했으면 하는 의도는 나와 저들이 마찬가지였다. 이쪽에서 많은 사람이 알게 될수록 명나라에 사안을 유출하고 싶어지는 사람도 많아질 게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항복 한 사람만 대동했다. 가모 역시 조선 주재 선교사들은 배제하고 프로이스 한 사람만 데리고 임석했다. 통역을 통한 기밀유출을 가능한 줄이려는 조치였다. 다른 사람을 데려오면 우리 쪽 선교사가 통역해야 하지만, 이항복은 프로이스와 라틴어 대화가 되니까.
“무엇이 허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귀국은 소국이다. 그런데 어찌 명나라 같은 대국을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모가 웃었다.
“명나라는 나라는 크지만, 저들의 힘은 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과거에 왕직 일당이 명나라 해안을 휩쓸었을 때, 숫자도 얼마 안 되는 해적들에게 얼마나 곤욕을 겪었는지는 전하께서도 아실 것입니다. 그보다 열 배, 백 배가 되는 군대가 쳐들어가면 어찌 견디겠습니까?”
머릿속에서 갈등이 일었다. 그런 헛된 꿈은 그만 잊어버리라고 진지하게 말려 볼까? 가모는 노부나가의 사위다. 이놈을 설득할 수 있다면, 일본에 돌아가서 노부나가를 설득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대륙 정복을 포기하고 그냥 일본 땅에서 번영을 즐기라고 말이다.
노부나가가 그 길을 택한다면 모두가 평화를 누릴 텐데. 몇십 년 기다리다가 명나라가 내정 문제로 혼란에 빠지면 그때 대륙을 넘봐도 된다. 명나라는 분명히 부패와 혼란 때문에 무너질 테니까 말이다. 누르하치의 위협도 있고.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울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이 임진왜란으로 명나라의 감시가 소홀해진 탓이라고 한다. 그 틈을 타서 누르하치가 여진 세력을 통합하여 여진 내 경쟁세력을 없애고, 통일된 역량으로 명나라를 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내 본의는 아니지만, 이쪽 세계에서 누르하치는 내 덕분에 이미 여진족 세력을 제패했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건주위를 압살할 힘을 가지고 있던 해서 4부는 모조리 붕괴했다. 이제 누르하치에게 도전하려는 여진 세력은 없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다. 누르하치가 명나라를 흔드는 틈을 타서 대륙을 도모하려면,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거다. 나야 아직 30대니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그날을 기다릴 수 있지만, 이미 50대가 꺾인 노부나가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겠지.
더구나 중국이라는 블루오션(?)으로 진출할 꿈에 부풀어 있는 프로이스가 여기 있다. 전쟁을 부추기지는 않더라도,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지원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지 않은가.
“화약은 저희가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물자를 수송할 배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 십자군이 진격하는 모습을 보면 중국에 있는 우리 신도들이 진공에 협력할 테니, 많은 성채와 도시가 내부에서 문을 열 겁니다.”
“지금 중국에 있는 천주교 신자는 한 줌도 안 되는 것으로 아오만.”
십자군 운운하는 소리에 기가 막혔다. 십자군이 그렇게 일으키고 싶으면 유럽으로 돌아가서 신성동맹이나 제대로 움직이게 해 보라고. 우리한테 엉뚱한 바람 넣지 말고.
그리고 중국 내 기독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우리에게 내응할 거라는데, 그런 행동이 바로 원활한 포교를 막은 요인 중에 하나다. 기독교를 매국종교로 인식시켰단 말이다. 외세를 끌어들여 조선 조정을 압박하려던 황사영 백서 사건이 그 좋은 사례가 아닌가.
그리고 중국에 있는 천주교 신자들은 거의 다 광동, 강남 쪽에 있지 않나? 지금 노부나가가 진공 목표로 삼고 있는 산동, 화북 일대에는 별로 없을 텐데. 전쟁에 크게 영향을 미칠 만한 고관도 거의 없고. 잠깐, 강남?
“그대는 지난번 회견에서 내게 말하길, 유구를 거쳐 강남에 진공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했다. 유구 국왕은 그 계획에 동의했는가?”
실제 임진왜란 때도 히데요시는 유구에 참전하라는 요구를 했다. 유구도 바보가 아니니만큼 당연히 그 미친 계획에 동참하지 않았고, 명나라와 조선에 정보를 알렸다. 혹시 이번에도?
“유구에는 아직 사자가 가지 않았습니다만, 곧 갈 것입니다. 유구는 그 풍속이 일본과 매우 흡사하니 당연히 같은 편에 설 것입니다. 만약 맞선다면 토벌할 따름입니다.”
가모는 유구가 얼마나 허약한 나라인지 설명을 시작했다. 유구는 줄줄이 늘어선 섬나라로서 군사를 집결시킬 수도 없고, 섬과 섬을 연결하는 해군도 없다. 수천에 불과한 군사들은 활과 창, 검으로 무장했을 뿐이고 조총을 비롯한 화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치면 그대로 무너진다.
내가 유구에 대해 잘 몰라서 반박 없이 듣기는 했지만, 설마 그럴까 싶었다. 일본에 조총이 들어간 게 벌써 40년이 넘었는데, 일본보다 중국에 가깝고 일본보다 먼저 서양인들이 들어온 유구에 화기가 하나도 없다고? 그게 말이 돼?
어쩌면 사실인지도 모르긴 하겠다. 임진왜란 이후에 시마즈 군에게 일패도지로 나라가 망한 걸 보면 정말로 화기가 없었을지도 모르지. 아니, 설사 화기가 있었다고 해도 전쟁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유구가 시마즈 군을 이겼을 것 같지 않기는 하다.
혹시 유구가 ‘명나라 정벌에 동참하라’는 노부나가의 요구를 받자마자 명나라에 전달했는데 나는 그걸 전하지 않고 뭉개고 있다면 명나라에서 당연히 의심하겠지. 내가 노부나가와 손을 잡은 게 아닐까 하고.
그렇다고 해도 설마 명나라가 우리를 선제공격하지는 않을 거다. 지금 명나라에는 그만한 군사력이 없고, 바로 최근에 벌인 전쟁에서 우리 실력을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침공을 당한 뒤에 알려도 당장 믿지 않고 진위를 확인하려고 들겠지. 진짜 역사에서도 그랬으니까.
“나로서는 쉽게 믿을 수 없다. 귀국에서는 바다를 건너야 대국에 군사를 낼 수 있는데, 그 바다를 건너 고작 수천 군사를 내서 어찌 대국을 친다는 말인가?”
“전하께서는 우리 일본에 정예한 군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십니다. 일본 66주 천하에 있는 모든 군사를 합치면 50만에 달하며, 이들 중에 절반은 바다를 건너 출병할 수 있습니다. 20만 대군이 명나라에 상륙하면 저들이 어찌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명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군사는 300만이다. 그리고 노략질을 마친 뒤에 도망치면 그만인 해적들이 쌓은 경험을 성곽과 고을을 점령해야 하는 대군의 원정과 비할 수 있는가? 그대들이 20만을 상륙시키면 명나라 군대 200만이 주위를 둘러쌀 것이다.”
명나라 법제상 군대 300만…그중에 제대로 된 전력이 한 60만은 되려나 모르겠다. 하지만 어차피 가모는 모르니까 300만이라고 뻥을 쳐야지.
“강남은 부유한 만큼 인구도 많고, 명나라의 처음 수도였던 남경이 있어 방비도 튼튼하다. 지금 수도인 북경 못지않다. 그러니 그대는 장인인 대군에게 원정을 취소하라 권하고 당분간 평화를 즐기도록 함이 어떠한가.”
이 설득은 되도록 시간을 끌고, 혹시 가능하다면 노부나가의 침공 의지까지 가라앉혀보려는 마지막 노력이다. 솔직히 통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대군이 품은 소망은 실로 원대하지만, 나로서는 쉽게 동조할 수 없다. 여차하면 배에 올라 철수하면 그만인 그대들과 달리, 육지에서 저들과 접하고 있는 우리는 고난을 피할 수 없다. 이 문제는 깊이 생각할 문제로, 쉽게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