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27
2부 205화
– 4 –
교황청 안은 분주했다. 잠시 뒤에 사상 최초로 동방에서 찾아온 사절단이 교황을 예방하는 것이다. 그것도 이쪽에서 와달라고 청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찾아와 만남을 청했다.
“방문하는 이들 중에서 신자는 없다고 했나?”
“그러합니다, 추기경 예하.”
교황 특사로 조선에 다녀온 엔리코 오르시니 주교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 현재 교황청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조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라고 할 수 있었다.
“의미 없는 질문이겠습니다만, 통역은 역시 세스페데스 신부에게 맡기시겠습니까?”
세스페데스는 조선 사절단이 스페인에 있는 동안 통역 겸 안내자로 함께 머물렀다. 그러다 조선인들이 이탈리아에 도착하자 밀라노에서 헤어져 로마로 왔다. 교황청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문회에 출석하기 위해서였다.
사문관 일곱 명은 세스페데스를 앞에 세워 놓고 열흘 동안 계속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그 결과 ‘조선 국왕이 사제왕 요한의 후예일지 모른다’고 하던 그동안의 보고서는 분명한 증거 없이 순전히 추측으로 작성되었음이 확실히 판명되었다.
다만 나름대로 근거가 아예 없는 상황은 아니었고, 그 소문을 전한 행동 역시 악의로 행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정상참작을 받았다. 심사 결과를 보고받은 교황 식스투스 5세는 가볍게 한숨을 쉰 뒤 세스페데스에게 구두로 근신 처분을 내렸다.
어차피 사제왕 요한의 후예 따위, 만나지 못해도 선교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시대다. 강철 갑주와 화승총으로 무장한 군사들이 사방으로 진출하는 시대가 아닌가.
“3개월간 근신했으면 충분하겠지. 어차피 지금 로마에는 세스페데스만큼 조선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없지 않나.”
오르시니와 이름이 같은 엔리코 카에타니(Enrico Caetani) 추기경은 교황청에서 대표적인 친 스페인파 인사였다. 악명 높았던 교황 로드리고 보르지아, 알렉산데르 6세가 사망한 후로 스페인인 교황은 없지만, 스페인 지지파는 여전히 세가 막강하다.
지금 이탈리아에서 독립적인 세력은 사실상 교황령과 베네치아, 단 두 나라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전체를 지배하는 패권은 남과 북을 모두 지배하는 합스부르크가 쥐고 있었다. 그것도 선제후들에게 휘둘리는 신성로마제국이 아니라 왕이 절대권력을 쥔 스페인이 말이다.
스페인과 유일하게 싸워볼 만한 나라는 프랑스인데 이미 60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쫓겨났다. 더구나 지금은 내란 때문에 나라 상태가 멀쩡하지도 않고, 내란에서 승기를 잡은 세력이 하필 위그노 교도인 앙리 드 나바라라는 점은 치명적인 문제였다.
자칫하면 프랑스 역시 잉글랜드처럼 가톨릭을 버리고 신교 국가로 바뀔지도 모른다. 독일도 가톨릭과 신교가 뒤섞여 수시로 충돌하는 데다 서진하는 튀르크를 막아야 하니 당장 교황청을 지원하기는 어렵다. 결국, 가깝게 지내는 나라는 스페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순수 이탈리아인인 카에타니 추기경이 스페인파 거두로 활약하는 배경이었다. 그는 펠리페 2세를 도와 잉글랜드에서 가톨릭 세를 회복시키고, 아직 끝나지 않은 프랑스 내전에서 가톨릭 세력이 승리하게 만드는 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
물론 가톨릭 세력을 확산시켜야 하는 범위는 유럽만이 아니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그 모든 지역에서 여러 수도회에 속한 선교사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오늘 교황청을 방문하는 조선 사절단과 교황 식스투스 5세의 회견도 이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과정이다.
“자네도 조선어를 못 배웠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배울 여유가 없었습니다.”
오르시니가 이끈 사절단이 조선어를 배우기에는 체류기간이 너무 짧았다. 배를 타고 유럽에 돌아오는 동안은 조선어 공부보다는 세스페데스에 대한 조사와 조선 사절단과의 대화 쪽에 더 중점을 두었다. 이 조사 기록이 로마에서 벌어진 심사 자료가 되었다.
“나는 그동안 프랑스 쪽 동향을 살피느라 조선인들에 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네. 이번 회견도 원래 준비를 담당한 구아스타빌라니 추기경이 느닷없이 앓아눕는 바람에 갑자기 맡게 되었지. 자네가 도와줄 부분이 많네.”
필리포 구아스타빌라니(Filippo Guastavillani) 추기경은 58세로, 전임 교황인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임명한 사람에다 또한 전임 교황의 생질이기도 하다. 자기 능력으로 출세한 카에타니 추기경은 교황의 인척이라는 연줄로 추기경 자리를 얻은 선임자를 별로 존중하지 않았다.
“제대로 전달받은 자료가 없는데, 사절단 중에는 가톨릭 신자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이 정말로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아직 조선에서는 일부 하층민들만 신앙을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카에타니 추기경이 조선 사절단 접대 업무를 맡게 된 것은 사흘 전이다. 원래는 프랑스에서 위그노 쪽이 지금 승리를 거두고 있으니, 가톨릭 연맹 쪽을 지원할 방안을 직접 가서 탐색해 보라는 교황의 명령을 따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고위층 신자도 제법 생겼다고 들었는데, 조선에서는 선교에서 그러한 성과를 얻지 못한 이유가 뭔가?”
“저희가 살핀 바로, 조선 귀족들이 그리스 철학과 비슷한 성리학이라는 중국 철학에 심취한 탓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들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만사를 초월하는 ‘이’와 ‘기’라는 두 힘이 이 세상을 구성한다고 생각하지요.”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비슷한가?”
“그런 셈입니다.”
카에타니 추기경이 인상을 찌푸렸다.
“중국 철학에 심취했다면서, 왜 중국에서 나온 개종자가 조선에서는 없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
“중국에서는 조선보다 수십 년이나 먼저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걸릴 뿐, 분명히 그 문은 열리고야 말 것이니 기다려 주시지요.”
“알겠네. 그럼 일본 선교에서 빠르게 성과를 올린 이유는 또 뭐지? 일본인들은 중국 철학을 배우지 않았나?”
오르시니 주교는 프란체스코회 소속이었다. 하지만 이번 특사 임무를 맡고서 예수회를 여러 번 드나들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선교를 진행했는지 그 사정은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만사를 신앙의 잣대로 보지 않을 만큼 충분히 이성적이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신앙을 받아들인 배경에는 정치적 고려가 컸습니다. 지방 영주들이 포르투갈이 보낸 교역선을 쉽게 받아들이기 위해 개종하고, 이를 이용해서 기존 불교 세력을 탄압하고 그 교단이 가진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물론 중국 철학을 모르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잉글랜드의 헨리 8세 같은 놈들이군.”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는 첫 번째 왕비와 이혼하고 재혼하는 문제를 빌미로 삼아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잉글랜드 내 교회와 수도원이 보유하던 토지 등 재산을 몰수해서 왕실재정을 메웠다. 실로 비슷하다고 평가할 만했다.
“조선인들이 가진 철학적 관점에 대해서는 유럽으로 오는 뱃길에서 여러 차례 토론한바, 그 내용을 기록하여 제출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도 이미 읽으셨습니다.”
“내게도 한 부 주게. 말했다시피 난 아무것도 받지를 못했어.”
플라톤 철학은 결국 기독교를 강화했다. 당연한 일이다. 절대적인 진리는 결국 교회에 있는 것이니까. 조선인들이 믿는다는 중국 철학도 탐구해 보면 둘 중 하나이리라. 거짓이거나, 교회 안에 포함할 수 있게 되거나.
카에타니 추기경은 조선인들이 로마 교회에 대해 품었다는 의문이나 표했다는 불만에 대해 적은 종이뭉치를 받아들었다. 이따가 오후에 있을 회견 때까지 전부 숙지해야만 했다. 그래야 교황 옆에 임석해서 회담에 참여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펠리페 2세 폐하처럼 저들에게 황금과 선물을 안겨줄 수는 없으니, 영적인 면에서 저들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채워주어야겠지. 과연 저들은 어떤 음식을 원할까….”
카에타니 추기경이 서류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오르시니 주교는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 5 –
추기경들이 처음 보는 붉은색의 예복과 검은 모자를 쓴 조선인들이 시종들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접견실로 들어왔다. 추기경들도 붉은색 예복을 입고 있어서 접견실 안은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식스투스 5세의 흰색 옷과 세스페데스의 검은색 옷만 두드러져 보였다.
조선 사절 세 사람은 나란히 서서 상체가 땅과 평행이 될 만큼 깊게 허리를 숙였다. 천천히 상체를 든 세 사람 중에서 왼쪽에 선 서장관 이덕형이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교황께서는 전 유럽을 다스리시는 영적인 지도자이시자 그리스도의 대리인이시지요. 세상 영혼을 구원하고자 늘 매진하시는 그 사랑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저희 국왕께서 전하라 하셨습니다.”
서양에서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행동은 노예나 행하는 것, 이들 사절단도 여러 차례 왕궁을 방문하고 군주를 예방하면서 이제는 비교적 간소한 절에 익숙해졌다.
“머나먼 동방에서 신뢰와 사랑을 보여준 그대 나라 군주에게 감사드리오. 세상의 반을 돌아 찾아온 귀한 손님들이니,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기쁨을 담아 환영하고자 하오.”
조선인들은 이제까지 스페인과 이탈리아, 독일을 지나면서 유럽인들이 교황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 파악했다. 교황은 토번의 라마처럼 성과 속을 아우르는 지배자이면서, 자기 영토를 벗어난 권역에 사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천주교의 대종사(大宗師)임을 알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있었다. 라마교를 믿는 자들은 절대로 라마의 뜻을 거스를 엄두를 품지 못하는 데 비해서 천주교를 믿는 자들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교황에게 칼을 들었다. 참으로 애매한 장악력이었다.
처음 주고받은 인사말에 이어 교황 측에서 힘든 여로에 대해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위로와 감사의 말이 오가는 동안, 접견실에 늘어선 고위 성직자들은 세스페데스가 통역하는 사절단 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오르시니 주교의 보고서 및 세스페데스가 사문회 후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서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들었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것과는 비할 수 없었다.
“조선에는 이미 옛날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다 들었소.”
“매우 오래전 일입니다. 저희 국왕께서 말씀하시길, 몽골 대칸이 아시아를 지배하던 시절에 일부 서역 출신 신자가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이 전부이리라 하셨습니다. 귀측 문서에는 서한을 보낸 명세가 있다 들었으나, 우리는 그에 대해 적은 기록이 없습니다.”
이덕형이 약간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 답을 듣고 잠시 주저하던 교황이 물었다.
“그대 나라 국왕은 우리 신앙에 대해 실로 놀라운 지식을 가지고 있다 들었소. 귀하가 방금 밝혔듯이, 몽골 시대에 소수 신자가 들어왔으나 그에 대한 어떤 기록도 남지 않았을 정도로 잊혔다면, 그대 나라 국왕은 어디서 그런 지식을 얻었소?”
세스페데스가 골백번은 했던 질문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 혹시 이번에는 다를까 했지만 역시나 반응은 똑같았다.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사절단원 세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번에는 이수광이 나서서 이덕형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어조로 해명했다.
“공식적으로 남은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임금께서는 ‘전해 내려오는 책을 보았는데, 그만 잃어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로써 미루어보면 전 왕조 시기에 천주교 전래에 대해 기록한 서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왕궁 서고 구석에 박혀 있었을 공산은 있습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혹은 존재조차 모르던 책이 서가 구석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일은 책이 쌓인 곳이라면 어디서든 일어나는 일이다. 교황을 비롯해 여기 있는 성직자들도 상당히 많은 서적을 소장하고 있는 만큼,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내놓은 답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존재를 모르던 책이 튀어나오려 해도 일단 그 책이 거기 있을 이유가 있어야 한다. 기독교 교리와 역사를 그토록 상세히 적은 서적이 한 사람의 신자도 없는 동방의 한 나라 구석에 잠들어 있었다는 건 참으로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면 안타까운 일이오. 수백 년 동안 헤어졌던 우리 형제들을 다시 만났다면 참으로 기뻤을 것인데.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소. 이제라도 그대들이 주님께서 주신 믿음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십자가 아래 하나가 될 테니까.”
저들이 밝히지 않는 과거를 파헤치려 시도한들 도움이 될 일은 없다. 미래를 위해 한 발을 내딛는 게 더 필요하다는 것쯤은 늙은 교황도 잘 알았다. 그 점에서는 조선 사절단 쪽에서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특별히 부탁을 드릴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가능한 일이라면 내가 조치하겠소.”
말을 꺼낸 사절단장 정곤수가 약간 초조한 표정으로 왼쪽을 보았다. 이덕형이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침착하게 용건을 꺼냈다.
“요즘 들어 저희 임금께서 천주교 전교를 허용하심은 교황께서 말씀하셨듯이 귀교가 사랑과 평화를 전한다고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과 평화를 내세우는 교라고 하여도 그 존재 자체가 분란과 불화의 씨앗이 된다면 어찌 바람직하다 하겠습니까?”
“그대의 말도 옳소.”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조선 사절단은 세스페데스가 선교의 최대 장애라고 했던 그 문제를 거론하려는 모양이었다.
“귀교에서는 천주라고 하는 단 하나의 신을 인정하고, 그 외에 다른 잡신은 신으로 모시지 않으며 그 상징은 우상으로 보고 부정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회교도들처럼 말이지요.”
조선에 대한 세스페데스의 상세한 보고 중에는 이슬람에 대한 부분도 있었다. 이전 왕조 때 유입된 무슬림 공동체가 불과 160여 년 전까지 존재했고, 국가 예식을 치를 때면 국왕 앞에서 쿠란을 낭송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였다.
가톨릭은 전래 여부도 불확실한데 이교인 이슬람은 국왕 앞에서 경전을 외는 영광을 누리고 있었다니, 교황청 입장으로는 분통이 터질 이야기였다. 그나마 조선이 완전히 이슬람 국가가 되지 않고 이슬람조차 그 중국 철학으로 눌러 말살해 버렸다니 다행일 따름이었다.
“그 이교도들을 우리와 비교함은 실로 불쾌한 일이나, 비슷한 부분이 있음은 사실이오.”
추기경들이 웅성거릴 기미를 보이자 교황은 손을 들어 소란을 진정시켰다. 어차피 동방에서 온 이자들도 무지한 이교도다. 다소 실례가 되는 실수를 해도 눈감아주어야 했다.
“우리 조선에서는 조상을 섬기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기일이 되면 제례를 올리면서 조상을 추모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일개인은 물론, 왕실에서도 역대 임금께서 돌아가신 날이 돌아오면 성대하게 제를 올려 죽은 이를 기립니다.”
“그렇다 들었소.”
이덕형이 심호흡을 했다. 임금이 당부한 조건을 관철해야 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었다.
“헌데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은 이러한 조상에게 예를 표하는 관습을 가리켜 천주교에서 금지하는 우상 숭배라 하면서 해서는 안 된다고 금합니다. 불가에서 불상에 절을 하는 행동은 예배이니 금지해도 가하지만, 조상에게 예를 표하는 행위를 금지함은 예에 어긋납니다.”
“내 선교사들에게 익히 보고를 받은 바 있소. 그 제사란 조상의 이름을 써넣은 위패를 놓고 지내는 행사인데, 그 위패에는 조상의 혼이 깃든다 하지 않았소? 그대들이 말하는 혼이란 곧 귀신이라, 하느님께서 금지하신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와 같소.”
교황이 내놓은 답은 도성을 출발하기 전에 임금이 일러준 내용과 맥락까지 완전히 같았다. 이덕형은 그에 맞춰 준비한 답을 차분하게 내놓았다.
“교황께서는 그 문제에 대해 외국에서 찾아온 선교사가 조사한 바가 아니라, 조선에서 와서 고하는 저희가 말하는 바를 들으심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일리 있소. 말해 보시오.”
교황이 수긍하자 이덕형이 제사의 의미에 대해 밝혔다.
“교회에서도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유학에서 이르는 제사란, 부모를 힘써 공경하기 위한 행사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부모, 조부모, 그리고 그 위를 거슬러 올라가는 조상이 있기에 지금 이 몸이 있으니, 어찌 그분들을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접견실 안은 조용했다. 이덕형의 낭랑한 목소리와 세스페데스의 통역하는 소리만 울렸다.
“천주교당에서도 자기 부모가 돌아가신 날이면 승려에게 부탁하여 그 혼을 위로하는 미사를 드린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귀신을 불러 복을 달라고 비는 것도 아니고 남을 저주하려는 것도 아니며 그저 부모를 기리고자 하는 제사를 금지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전히 접견실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이덕형이 끝까지 당당하게 쐐기를 박았다.
“저희 국왕께서는 명하시기를, 교황님을 알현하거든 정중히 인사를 여쭙고 예로부터 전해진 관습과 교회의 명령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가엾은 조선의 신자들에게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제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 특전을 주십사 요청하라 명하셨습니다. 이에 청하오니, 부디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