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29
2부 207화
– 8 –
“좀 민망하긴 하군요.”
“사내의 양물을 이렇게 드러내놓다니.”
“덩치에 비하면 그것이 그리 크진 않구먼.”
적어도 스페인이나 독일에서는 옷을 차려입은 사람을 그린 그림을 벽에 걸어놓았다. 하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로마에서는 나체의 남녀가 뒤엉킨 그림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조각상도 역시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이들이 다수였다.
“여기서도 여인의 그…그곳은 그래도 드러내 그리지 않았구려. 로마 화공들도 사람이 힘써 지켜야 할 마지막 도리는 아는 모양이오.”
“정사 대감, 혹시 명확하게 그린 모양을 보고 싶으셨습니까?”
“예끼, 이 사람!”
폭소가 터졌다. 교황은 손님맞이의 일환으로 조선 사절단에게 역대 교황들이 수집한 그림, 조각 등 미술품을 보여주었다. 고위직 세 사람을 포함해서 어느 정도 지위가 되는 수행원들이 함께 화랑(?廊)에서 조각과 그림을 둘러보고 있었다.
교황청에서는 당연히 안내인을 딸려 주었다. 하지만 안내를 맡은 오르시니 주교는 조선말을 거의 할 줄 몰랐으므로, 일행이 자기들끼리 이런 농지거리를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뭐 서양인들이 춘화를 당당히 걸어 놓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소.”
이수광이 점잔을 빼며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혼인도 하지 않는 승려들이, 그것도 대종사가 사는 궁전에다가 이런 저속한 그림을 이토록 많이 보관함을 보니 그 사정을 알 만합니다. 저들은 몸에 쌓인 양기를 마땅히 뺄 곳으로 빼지 못하니, 이리 모아놓은 춘화를 보며 눈으로 뽑아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불승들이 정신머리 없는 아낙들을 유혹하여 올라타는 것처럼 말이오?”
이들은 모두 사대부들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관례라는 이유로 불교가 왕실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긴 하지만, 이들이 불교를 보는 눈이 고울 수는 없었다. 어리석은 백성이나 여자들이 믿는 헛된 신앙으로 내버려 두기에는 고려 때부터 불교가 쌓은 악행이 너무 컸다.
“글쎄요. 베네치아에서 들은 소문으로는 교황, 추기경, 주교 같은 고위 승려들이 드러내놓고 혼인은 하지 않더라도 측실을 두고 서자를 얻는 경우는 무척 많다고 합디다. 심지어 유부녀를 간음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고 하더군요.”
“음, 그건 소인도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수광은 파티와 회담으로 사람을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이덕형은 회담을 준비하느라 여러 자료를 모으면서 접한 이야기들이었다. 정곤수는 이들이 꼭 필요한 내용만 일차 걸러내 만든 문서를 주로 접하다 보니 이런 뒷소문은 많이 접하지 못했다.
“허어! 그럼 천주교가 퍼지면 조선에서도 그런 자들이 나타날 게 아닌가? 전하께서 선교를 허용하실 때는 그런 줄을 모르고 하셨을 것인데, 이거 큰일이로세.”
정곤수가 혀를 차는 모습을 본 이수광이 웃으며 상사를 진정시켰다.
“그런 자들도 있다는 것이지 다 그런 건 아니니 염려 놓으소서. 성현께서 아무리 청렴하라 하셨어도 사대부 중에 그 도리를 어기고 사욕을 추구하는 자들이 숱한데, 어찌 서양인들이라 하여 그 교조(敎祖)가 남긴 바를 완전히 충실하게 수행하겠나이까.”
불교 역시 마찬가지다. 석가불은 그 허황함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중생을 구원한다며 나름 좋은 뜻을 많이 내세웠지만, 그 뒤를 이은 승려들은 교언영색과 요설(妖說)로 백성들을 유혹해 자기들의 잇속만 채우고 있지 않은가.
“우리 땅에 온 승려들은 그런 타락을 쇄신하고, 교조가 남긴 유지를 바르게 이어받겠다고 뜻을 새로이 하여 회(會)를 조직한 이들이라 하니, 그런 문제는 없으리라 보셔도 됩니다. 굳이 비하자면 우리 사림 같은 이들이라고 하더군요.”
이수광은 불교에 대해서도 제법 알았다. 그래서 불승 모두가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도와 예를 내세우면서도 실상은 썩어빠진 사대부들이 허다한 것과 마찬가지다.
“자, 아무리 저 오르시니라는 이가 우리 말을 못 알아듣는다 해도 이쯤 해 두세나. 공연히 저들 교단을 비웃는 말을, 그것도 저들 교단의 심중에서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정곤수가 대화를 정리했다. 그리고 벽에 걸린 그림들을 훑어보며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건 그거고 확실히 정말 사람 같이 잘 그리기는 잘 그렸군. 우리네 그림과는 화풍이 아주 다르지만. 아마 전하께서도 그 탓에 화공을 구해 오라 하셨겠지.”
유럽에 가거든 이탈리아에서 솜씨가 뛰어난 화공을 고용해 오라는 건 견서사 일행에게 내린 임금의 명령 중 하나였다. 절대 어설프게 얼굴을 익힌 화상(?商) 따위에게 소개받아서 구하지 말고, 공정하기로 이름난 베네치아 정청에 알선을 부탁하라는 지시도 덧붙어 있었다.
어명은 비엔나로 가는 도중에 잠시 베네치아에 들렀을 때 수행했다. 조선에 데려갈 화공을 구해달라고 부탁하자 베네치아 관리들은 선뜻 수락했고, 이들이 비엔나에서 돌아오는 시점에 맞춰서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의 제자 중 하나라는 이를 데려왔다.
“그러고 보니 안토니오 살바네티라는 화공 말입니다. 확실히 그림 솜씨는 뛰어나던데, 혹시 베네치아에서 고용한 간자는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로 간다는데 선뜻 자원했다는 것도 그렇고, 우리 수행원들과 너무 잘 어울리는 것도 그렇고요.”
이수광이 얼굴을 찌푸리며 걱정을 늘어놓자. 정곤수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조선에서 살 집과 거느릴 하인을 제공하고, 조수 및 물감과 도구에 들어가는 비용도 이쪽 부담이고, 순수하게 보수로 지급하는 돈만 매년 베네치아 금화로 100두카트에 고용기한 20년 만료라는 조건을 걸었네. 그만하면 충분히 지망자가 나올 수 있지 않은가?”
베네치아 화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정청에서 녹봉을 받는 국가 화가 자격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역시 그림에 드는 비용은 나라에서 제공하고, 죽을 때까지 매년 80두카트를 받는다. 다만 정원이 한정되어 있어서 선임자가 사망해서 빈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세상 반대편이라고 해도 그 정도면 충분히 갈 만하지. 그리고 자네들도 봤지만, 베네치아 그 나라는 세계를 돌아 쳐들어올 만큼 큰 나라도 아니지 않았나. 그런 저들이 우리 땅에 간자 하나쯤 보낸들,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속삭이며 걷다 보니 세 사람은 어느새 큼지막한 조각상 앞에 도착했다. 커다란 흰색 돌 한 덩어리를 통째로 깎았는데, 어른 사내 하나와 사내아이 두 명을 뱀 두 마리가 졸라 죽이려고 하는 흉측한 형상이었다.
“이건 참으로 괴이하군. 그러고 보니 사람이 온갖 형벌을 받는 그림도 많던데, 서양인들은 이처럼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형상을 만들어놓고 보기를 즐기는가?”
정곤수가 인상을 찌푸리자 이수광이 웃으며 농담처럼 말을 이었다.
“서양인들은 옛 전설이나 기담(奇談)을 소대로 해서 서화나 조상(造像)을 만든다고 하니, 그 하나일 것입니다. 전하께 바치도록 선물로 달라고 청해 볼까요?”
“아서게. 그 먼 길을 생각하면 이런 돌덩어리는 짐만 될 게야. 그리고 전하께서는 책 한 권 받는 쪽을 이런 돌덩이 하나 받는 것보다 더 반기실 걸세.”
임금은 책을 사고 화공을 데려오라고 했지, 저런 돌덩이를 얻어오라고 하진 않았다. 세상을 반이나 돌아 조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임을 생각하면, 확실히 저런 건 쓸모없는 짐이었다.
“이보시오, 오르시니 주교. 이 상은 무슨 모습을 조각한 것이오?”
대화 내용도 바꿀 겸, 이덕형이 오르시니를 불렀다. 어떤 초상화 앞에 서서 조선 측 수행원 네 사람에게 이 그림이 누구를 그린 것인지 설명해 주고 있던 오르시니가 이쪽으로 넘어와서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정말 뛰어난 솜씨지요? 이건 율리우스 2세께서 교황위에 계시던 1506년, 지금부터 83년 전에 로마 에스퀼리노 언덕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옆 포도밭에서 발굴한 대리석 조각입니다. 1,500년 전 로마제국 시대에 만든 걸작이지요.”
오르시니는 조각이 발견된 연원에 관해 설명한 뒤에 사건의 배경이 되는 전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레네를 납치한 데서부터 시작하는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사절단 일행은 그 흥미진진한 서사시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 9 –
“조선군을 포교에 활용할 수 있겠는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교회에 있어서 무엇보다 귀중한 보화는 인간의 영혼이다. 황금보다, 보석보다 소중한 영혼. 그 영혼을 모아 지옥 불에서 구원하는 일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자 교회가 수행해야 할 책무였다.
“조선 국왕은 수도 인근에만 직할 정예군 5만 명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1만은 기병, 나머지는 보병이며 조선식 화포도 다수입니다. 이 전력으로 최근에 조선 북방에 사는 타타르 부족 다수를 격파했으며 과거에는 일본에도 원정한 바 있습니다.”
세스페데스가 추기경들 앞에서 조선군의 전력에 관해 설명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라면 지금 유럽 전체에서 세스페데스 이상으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더불어서 기존 중앙군과는 별도로 새로 유럽식 정예부대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보병연대 10개에 기병연대 2개, 포병연대 하나로 편성한 대군단입니다. 마닐라에서 스페인 장교와 병사 10여 명을 고용하고, 특사단과 동행했던 스페인 군인 50명이 더해졌습니다.”
“장비는? 장비는 조선식 장비에, 훈련만 스페인식으로 한다고 스페인군 수준 군대가 생기는 건 아니잖소?”
조선은 몰라도, 중국이나 일본 군인들이 어떤 무장을 하고 다니는지는 글과 그림을 통해서 유럽에도 알려져 있다. 조선군도 그만한 수준이라면 그다지 강력한 군대는 못 될 것이다.
“펠리페 2세는 이번 특사단 편으로 무기와 갑옷 만드는 기술자들을 조선에 보내주었습니다. 이미 가 있는 고문단도 있으니까, 조선은 이제 스페인식 육군을 양성할 조건을 완전히 갖춘 거지요. 심지어 유럽식 함선을 건조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항해사와 조선공까지 보냈습니다.”
“그거야 특사단이 출발할 때부터 우리도 알고 있던 일이 아닌가. 중요한 건 그들이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는가 하는 걸세.”
“저는 특사단과 함께 귀환했기 때문에 이후의 진행 단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보여준 조선 국왕의 열의로 보아, 분명 자기 뜻대로 잘 훈련된 정예부대를 편성해서 전력을 강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스페인 해군이 잉글랜드를 공격하려다가 궤멸당한 게 바로 작년이다. 하지만 스페인 육군이 유럽 최강이라는 데는 아직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영국인들 스스로도 만약 스페인 측 계획대로 플랑드르 주둔 육군이 도버에 건너가는 데 성공했으면 자기들은 끝장이었다고 인정할 정도다.
“하지만 조선군이 강력하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풀리는 건 아니오. 그 군대가 우리 주님의 군대여야 하는 것이지. 그대들의 노력은 확실히 가상하지만, 이교도 군대가 강해지는 결과만 나타난다면 그 노력이 무슨 소용이겠소.”
스페인 출신인 오소리오 추기경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역시 전임 교황인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임명한 사람으로, 일흔이 가까워가는 노인이다. 심지어 펠리페 2세를 보좌하는 스페인 국가 최고 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무력을 통한 선교를 권장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교도 무어인들과 오랜 전쟁을 치러온 스페인에서는 십자군의 전통이 강했다. 신대륙에 건너간 콘키스타도르, ‘정복자’들이 원주민 왕국들을 멸망시키고 가톨릭을 전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아직도 살아있다.
동양에서도 큰 차이는 없다. 필리핀 주재 스페인 총독부에서는 펠리페 2세에게 명나라 정복 계획을 두 차례나 상신했었다. 첫 번째 계획은 스페인 병사 6천 명에다 왜구들을 합류시켜서, 두 번째 계획은 정규군 1만에 필리핀 원주민 5천, 일본군 5천 명을 더해서 결행하자고 했다.
동군연합 관계인 포르투갈군까지 동원해서 마카오, 복건을 거점으로 북경까지 진군하겠다는 그 계획은 실로 거창했다. 유럽에서 치르는 전쟁만으로도 골치가 아팠던 펠리페 2세가 묵살해 버린 탓에 무산되긴 했지만, 국왕이 병력을 보내주었다면 정말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이 엄청난 계획을 세운 목적이 바로 선교를 위해서였다. 스페인인이 대다수인 도미니코회가 선교에서 강경한 태도를 내세우는 것도 출신에서 받는 영향이 컸다. 마찬가지로 스페인 출신 회원이 주축이면서 현지인을 유화적으로 대하는 예수회가 도리어 색다른 존재였다.
“조선 국왕은 명백히 교회에 호의적입니다. 아직 스스로 세례를 받겠다는 기색을 보인 적은 없지만, 평범한 이교도가 알 수 있는 이상으로 성서 내용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는 동방의 카롤루스 대제가 되어 이교도를 정복해 줄지도 모릅니다.”
프랑스인들은 ‘샤를마뉴’라고 부르는 프랑크 왕국의 왕, 카롤루스 대제는 이탈리아에 침입한 랑고바르드족, 스페인을 정복한 이슬람 세력, 독일 땅을 지배하는 작센족과 싸웠다. 그 결과로 당시의 교황 레오 3세에게 ‘서로마 제국’ 황제의 자리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카롤루스가 확실히 제압한 이교도는 작센족 하나뿐이다. 이슬람은 막아내기는 했지만 물리치지는 못했고, 랑고바르드족은 본래는 아리우스파를 신봉하는 이단이었지만 샤를마뉴와 싸울 시점에는 이미 정통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였으니까 말이다.
“카롤루스 대제는 이교도인 작센인들을 정복하고 그들에게 신앙을 전했습니다. 조선 국왕이 개종하고 교회의 품으로 들어온다면, 그도 역시 중국을 정복하여 중국인들에게 신앙을 퍼뜨릴 수 있을 겁니다.”
예수회는 성향상 사회조직 최상단부를 겨냥한다. 비록 조선에서는 아직 하층민들밖에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했지만, 왕실과 귀족에 대한 전도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국왕 한 사람만 신앙의 길로 이끈다면, 나라 전체가 방향을 돌릴 수 있다.
“하지만 국왕은 우리 교리를 알면서도 개종하지 않고 있다 하지 않았소. 도대체 언제쯤이면 그가 개종하겠소? 중국을 향한 십자군을 일으키려면 뭔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할 듯한데.”
오소리오 추기경은 필리핀 총독부가 상신한 중국 침공안을 적극 지지한 사람 중 하나였다. 나이가 비슷한 교황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중국에 가톨릭 신앙을 뿌리박는 날이 되도록 빨리 오기를, 가급적이면 자신이 죽기 전에 진전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 점을 걱정하신다면, 이미 주님의 손길은 조선 군대에 닿아 있습니다. 이미 보고드렸듯, 제 동료 알라르콘 신부는 레판토에서 펠리페 2세 폐하를 위하여 싸웠던 용사입니다. 국왕은 그에게 새 정예부대에서 검술과 의술을 가르치면서 선교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특사단이 귀국할 때는 연대가 아직 창설단계인 탓에 신자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병력이 더 확충되고 전선에도 나가게 되면 늘어날 게 분명하다, 위기에 빠지면 구원과 희망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니까 말이다. 세스페데스의 설명은 설득력 있게 좌중의 귀를 파고들었다.
“한 알의 밀알이 백 배, 천 배로 늘어나는 법이지요. 군대에서 신앙을 얻은 병사들이 집에 돌아가서 가족에게 전도하면 신자 수는 급격하게 늘어날 겁니다. 그렇게 조선군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이 되면, 어찌 아시아를 정복할 십자군이 되지 않겠습니까.”
일본을 지배하는 권력자 오다 노부나가 역시 그 자신은 개종하지 않았으나 교회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조선 국왕도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이들이 성스러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면 필리핀 주둔 스페인군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이미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아 개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조선입니다. 그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가벼운 양보 정도를 아까워할 게 아닙니다.”
세스페데스의 열변을 들은 카이타니 추기경이 천천히 자기 생각을 끄집어냈다. 그는 교황이 이 사안에 대해 어떤 쪽으로 마음을 정했는지 대략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면 이 회의를 교황의 뜻에 맞게 이끌어가고자 했다.
“조선 국왕은 군대를 강화하는데 관심이 많다지요. 우리가 그 작업을 좀 돕는다면, 국왕이 우리에게 더 큰 호의를 가지고 선교를 용인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교황청에서 병사를 보내자는 말이오? 무엇 때문에? 이미 스페인군 고문관들이 가 있잖소.”
나이든 추기경 한 사람이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필요도 없을뿐더러 보낼 사람도 없소. 용병인 교황군 병사들에게 조선에 가라고 하면 죄다 도망쳐 흩어지고 말 거요. 그 신의 없는 자들을 멀리 동쪽으로 보내다니, 말도 안 되오.”
교황청에는 여분의 군사력이 별로 없다. 아니, 군대 자체가 교황령 자체의 치안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밖에 없다. 교황군이 적대적인 군주들과 맞서 싸우던 시기는 60년 전에 벌어진 로마 약탈, ‘사코 디 로마(Sacco di Roma)’와 함께 끝났다. 이제 대군은 필요하지 않았다.
“카나니 추기경께서 하신 말씀도 옳습니다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서른아홉 살인 카이타니 추기경은 자기보다 서른 살 가까이 많은 노인들이 계속 쿠사리를 놓는 상황이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어쩌랴, 이들 모두 선대 교황이 뽑은 선임자들인 것을.
“우리에게는 신앙심이 깊고, 로마에서 내리는 명령에는 언제든지 순종하며, 더없이 고귀한 신분이고, 육지와 바다에서 이교도를 상대로 벌이는 모든 싸움에 익숙한 전사들이 있습니다. 몰타섬의 성 요한 기사단이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