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30
2부 2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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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정월, 양인들이 쓰는 달력으로는 2월이라지만 조선에 비하면 별로 춥지도 않았다. 그래서 견서사 일행은 조선에서 가져온 겨울옷 중에도 가벼운 옷을 골라 입고 열심히 일정을 소화했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빼고.
“로마에서는 겨울에 눈보다 비가 자주 오는군. 거 참 요상한 나라일세.”
정곤수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곳 겨울 날씨는 비가 많아서 조선과는 무척 다르다. 물어보니 어쩌다 내리긴 해도 쌓일 만큼 눈이 오는 날은 거의 없다고 했다.
“아예 겨울이 없는 고장도 지나지 않았습니까. 정월이 찌는 듯이 덥고 7월에 그나마 더위가 가시고 겨울이 온다는 고장도 있었지요.”
“하긴, 그 동네도 겨울에 비가 많이 온다고 했었지.”
이들이 탄 배가 희망봉을 지난 때가 마침 남반구의 겨울이었다. 덕분에 더위를 그리 심하게 겪지 않고 아프리카를 통과했다. 동승한 서반아인들도 운이 좋다고 축하해주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좁은 곳에 갇혔었는데도 지쳐 죽지 않은 것이 용하이. 아, 내가 아니고 호랑이 말일세.”
이수광이 유럽에 오는 배가 그렇게 좁았었냐는 표정을 짓자 정곤수가 급히 설명을 더 했다. 그 점은 이수광도 공감하는 부분이었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좁은 것도 좁은 것이지만, 녀석을 먹이느라 고생깨나 했지요.”
호랑이에게 염장육을 먹일 수는 없었다. 항구에 들를 때마다 소와 돼지를 사들이고, 갑판에 닭장을 놓고 닭을 쳐서 호랑이 먹이로 썼다. 사람도 마음껏 못 먹는 신선한 고기를 호랑이는 하루에 다섯 근씩 먹었다. 소와 돼지가 떨어지면 닭을 서너 마리씩 먹었다.
어쩌다 바람이 좋지 않아서 닭까지 떨어진 때도 있었다. 장닭과 씨암탉, 병아리 몇 마리만 남은 상태로 사흘이 지나자 어쩔 수 없이 서반아인 선원들에게 낚시를 시켰다. 다행히 배고픈 호랑이는 바다에서 낚은 사람 다리통만 한 물고기를 큰 불평 없이 먹었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비늘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말끔히 씹어먹은 호랑이는 만족스러운 듯이 입가를 핥았다. 안도한 일행은 그 뒤로 호랑이에게 주는 먹이로 주로 생선을 주고, 낚시에 며칠 실패하면 그제야 닭을 주었다.
“먹지도 못할 소랑 돼지를 싣고 다니며 돌보느라 고생하던 서반아 뱃사람들의 불평이 그예 사라졌지. 정말 속이 후련했네.”
“소관은 그보다는 몇 명씩이라도 일과에서 빠져 낚시로 소일할 수 있게 된 점을 선인들이 더 좋아하는 듯 보였습니다만.”
비록 손님으로 탄 배였지만, 이수광은 서양 범선이 움직이려면 얼마나 사람 손이 가는지를 꼼꼼하게 눈여겨보았다. 노를 저을 필요는 없다고 해도, 바람이 부는 방향과 세기가 바뀌는 데 맞춰 끊임없이 돛을 조절해야만 배가 순조롭게 앞으로 갈 수 있었다.
“임금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힘든 노역에서 빠져 강태공처럼 세월을 낚으며 유유자적할 수 있으니 그 누가 싫다 하겠습니까. 다만 저희 같으면 선인들은 계속 배를 몰게 하고 군사들이 고기를 낚게 할 텐데, 서반아인들은 그러지 않더군요.”
“서반아에서는 ‘검을 든 자는 생업으로 노역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관념 같은 게 있더군. 꼭 왜인들처럼 말일세.”
“하긴, 사대부가 아무리 영락해도 결코 주판이나 공장(工匠)의 도구를 잡으려 들지 않으려 드는 관습과 매일반이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농사는 짓지 않습니까.”
“업으로 고기를 낚지는 않지.”
조선을 떠나 유럽인들과 함께 보낸 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저들의 사회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 무엇을 중심으로 돌아가는지도 웬만큼 익혔다. 물론 잘 안다고 할만한 나라가 단 하나뿐이라는 건 유감이지만, 다른 나라도 큰 차이는 없으리라 보였다.
“그래도 유럽이 왜국보다는 낫네. 왜국은 검을 쥔 무사만 대우를 받고 출세하지만, 유럽은 학식을 쌓고 공부를 열심히 한 이들이 출세하여 무부들을 호령할 수 있지 않은가. 당장 여기 교황만 해도 농가에서 돼지를 쳤다 하지 않는가.”
조선 사절단에서 교황의 출신을 듣고 비웃은 이는 하나도 없었다. 혹시 노비였다면 모를까, 가난하기는 했으되 어엿한 양민이 아닌가. 양민이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과 인품을 쌓고 교회 전체를 다스리는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면 칭송할 일이지 절대 비웃을 일이 아니었다.
“비록 일개 교를 관장하는 종사가 나라까지 다스림이 좋다고는 하지 못하겠으나, 그 옛날에 로마라는 나라가 얼마나 난장판이었는지 듣고 보니 그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더구먼.”
“동감입니다.”
이틀 전에 견서사 일행은 고대에 유희장이었다는 커다란 석조건물을 방문했다. 이미 그전에 만신전이라고 불렸다는 거대한 성당을 구경하고 온 뒤였기에 찬탄은 극에 달했다. 천년도 더 넘는 옛날 사람들이 돌로 이런 거대한 건물들을 지었다는 말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대한 건물을 세울 재주가 있으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코로세움이라던가? 그런 커다란 건물을 세워놓고 고작 한다는 일이 사람과 짐승을 풀어 서로 죽이게 하는 유희라니, 주왕이 벌인 온갖 패악질과 다를 게 없지 않나.”
여기서 주왕은 주나라 문왕에게 토벌당한 은나라 마지막 왕 제신(帝辛)을 뜻한다. 은나라는 전쟁에서 잡아 온 포로들을 하늘에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고, 마지막 임금 주왕은 여기에 더해서 주지육림, 포락지형 등 갖은 악습을 만들어 천하를 괴롭히다 쫓겨났다.
“옛날 황제가 다스리던 시절이 그런 악습이 횡행하는 시대였다면, 교회가 다스리는 지금이 로마 백성들에게는 훨씬 좋을 것일세.”
“하지만 대감, 저희에게 그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교회 측 사람인 오르시니 주교라는 점을 감안하소서. 교회가 황제가 가지고 있던 자리를 빼앗았으니, 그가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기들 편에 유리하게 전했을 공산도 있지 않사옵니까.”
이수광은 상사와 달리 제정 로마가 얼마나 타락했는지에 관한 가톨릭교회 측의 설명을 다소 회의적으로 보았다. 뭐, 지금 그게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아, 저는 이제 일어나 보아야 할 것 같사옵니다. 오늘도 일정이 있어서요.”
“남들은 쉬는데 자네만 바쁘군. 오늘은 어떤 집에 초대를 받았는가?”
“카이타니라 하는 추기경입니다. 우리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습니다.”
정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수광이 서반아어가 능숙한 데다, 왕실의 인척이라고 신분을 부풀렸다 보니 로마에 와서도 사교적인 자리는 거의 이수광의 몫이었다.
“고생이 많네. 즐거운 자리가 되기를 바라고, 전하께서 맡기신 일도 잘 수행해주길 바라네.”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 11 –
완공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웅장한 교황의 거처, 라테라노 궁전에는 수많은 방이 있다. 그중 한 회의실에 교황의 측근 추기경 여섯 사람이 모여 교황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 시내에 이런 소문이 돌고 있는데 혹시 들으셨습니까?”
개중에 한 사람인 피넬리 추기경이 난데없이 입을 열었다. 좌중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교황께서 이 궁전의 완공을 기다리시느라 조선인들과의 만남을 올해로 미루셨다는 소문이 돌고 있음을 아시는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동료 추기경들은 코웃음을 쳤다. 교황에게 궁전이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라테라노 궁전이 수리중이라면 바티칸 궁전에서 손님을 맞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고작 새집 자랑 때문에 멀리 동방에서 온 손님을 마다했다니,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더구나 교황 식스투스 5세는 개인적인 허영심 따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가 라테라노 궁전을 재건하고 로마를 일신한 이유는 로마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서이지, 자신이 호화롭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 인삼이라는 만드라고라를 맛볼 기회가 몇 달 미뤄졌고 보니, 아마 그로 인한 아쉬움도 그런 소문이 도는 데 한몫했겠지요.”
베네치아 출신인 코르나로 추기경이 탁자 위에 놓인 도자기 그릇으로 손을 뻗었다. 안에는 조선 사절단이 교황에게 선물로 바친 꿀에 절인 인삼이 반쯤 담겨 있었다.
조선인들이 도착하고 보름, 그동안 인삼이 떨친 명성은 로마시를 휩쓸었다. 관대한 교황은 자신이 받은 선물 거의 전부를 추기경들과 로마시 유력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모피, 종이 같은 물건들도 인기였지만 인삼만큼 크게 사람들에게 흥분을 불러일으킨 물건은 없었다.
“조선산 인삼의 명성이 마드리드에서 직통으로 날아왔으니까요. 늘 피로가 쌓여 힘들어하던 펠리페 2세가 이 약초를 먹고 벌떡 일어났다는 소문이 유럽 전역에 자자합니다.”
전 유럽의 약제사, 약초학자들이 그 소문을 듣고 이 인삼 한 뿌리를 구하려고 눈이 벌게져 있다. 하지만 인삼을 가진 이들은 오직 조선 사절단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인삼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펠리페 2세와 교황, 그리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뿐이다.
펠리페 2세는 측근 신하들 일부에게 인삼을 나눠주었다. 하지만 루돌프 2세는 단 한 뿌리도 주변에 돌리지 않았다. 당연히 인삼을 원하는 이들의 눈이 로마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교황께서 나오십니다.”
인삼 이야기가 더 길어지려는 참인데 시종이 소식을 전했다. 추기경들이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옷차림을 정돈하고 교황을 맞았다. 느긋한 걸음으로 방에 들어온 교황은 다들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하며 자기도 자리에 앉았다.
“그래, 조선 사절단은 이 ‘영원의 도시’를 충분히 구경했나?”
“물론입니다, 성하. 로마를 본 자, 어느 누가 탄복하지 않겠습니까.”
카이타니 추기경이 고개 숙여 보고했다. 오르시니 주교가 보고한 바로 조선인들은 옛 로마 유적과 오늘날 쓰이는 교회를 관람하면서 크게 탄복했다고 했다. 하지만 미술관에서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 듯하다는 보고였다. 교황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마 벌거벗은 남녀를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조선인들도 알프스 너머 북방인들 같은 꽉 막힌 도덕관을 가진 탓일 것이야. 신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육체를 보고 아름답다 느끼지 못하다니,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여기는 이탈리아다. 식스투스 5세 역시 이탈리아인이었다. 예술적인 면에서, 경건한 태도를 지향하는 북유럽 출신들과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절단을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초대해서 우리 미사가 진행되는 모습을 한 번쯤 보여주는 것도 좋겠군. 그래, 저들이 가져온 요구는 어찌 대처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이 나왔는가?”
교황에게는 할 일이 많다. 그동안 추기경들 사이에 진행된 토의에 대해 업무 중에 몇 차례 전해 듣기는 했지만, 대면보고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일단 조선에 교황특사를 다시 한번 보내는 편이 좋겠습니다. 특사가 현지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돌아온 뒤에 최종적인 결과를 내는 편이 어떨지요. 그때까지는 일단 예수회가 현지에서 해오던 대로 하도록 묵인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코르나로 추기경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툭하면 교황청과 분쟁을 벌이기 일쑤인 베네치아 출신이지만, 추기경이 된 이상 교황에게 철저히 충성한다. 그것이 벌써 세 명째나 추기경을 배출하고 있는 베네치아 유수의 귀족, 코르나로 가문의 원칙이었다.
“첫 번째 특사로 파견했던 오르시니 주교는 조선 국왕이 정말 사제왕 요한이 맞는지 여부만 검증하느라 조선의 제사 풍속 같은 것은 전혀 살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문제를 조사할 새 교황특사를 보내서 그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오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석한 추기경들이 교황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사 문제가 과연 공의회를 열어서 풀 문제인가는 특사가 조사한 결과를 받아보고 결정해야 하리라. 정말 귀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가까운 행사라면 공의회에 회부할 것도 없고, 단순한 추모라면 그때 다시 진지하게 논한다.
“공의회는 실로 큰 행사입니다. 금세기 초에 있었던 제5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5년, 그 뒤에 열린 트렌토 공의회는 18년을 끌었습니다. 물론 루터, 칼뱅을 따르는 이단자들이라는 큰 문제 때문에 논할 사안이 많아서이기는 했습니다만.”
두 공의회 모두 종교개혁 운동에 대처하느라 열렸다.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가톨릭이 쇄신에 실패하는 바람에 루터가 폭발했고, 트렌토에서는 이에 맞서기 위한 재정비를 결의했다.
“이번 사안으로 공의회를 연다면 최근에 열린 두 차례 공의회보다는 인노켄티우스 4세께서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파문하셨던 제1차 리옹 공의회, 또는 클레멘스 5세께서 성전기사단을 해산하신 비엔나 공의회가 준거가 될 듯합니다. 그래도 큰 행사임은 분명합니다.”
“리옹 공의회는 본래는 십자군 출발을 독려하기 위해서 열었던 공의회이니, 그보다 비엔나 공의회 쪽이 더 적절한 사례로 보이오. 단 한 가지 주제 때문에 연다는 점도 그렇고.”
주제가 단 한 가지뿐이라도 쉽지는 않다. 비엔나 공의회는 예고가 3년 전에 나갔고 추기경 20명, 주교 122명, 대수도원장 38명이나 되는 엄청난 인원이 출석했다. 이번에 제사 문제로 공의회를 연다고 하면 그보다 적은 수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의회를 열려고 하면 그전에 충분한 근거자료가 있어야 하겠지. 그대들이 토의한 대로, 일단 내 이름으로 교황특사를 보내고 공의회 개최 여부는 특사가 돌아온 뒤에 결의함이 옳겠소. 장차 동방에서 교회의 바탕을 세울 문제이니, 공의회 의결이 필요하다 보오.”
식스투스 5세는 그 정도는 허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나이가 일흔에 가깝고, 언제 후임 교황이 성 베드로의 의자에 앉을지 모른다. 그 후임자는 자신보다 엄격한 태도로 제사를 금지할지 모르니, 공의회를 통해 확고히 못을 박을 필요가 있었다.
“모두 보고 와야 할 거요. 국왕이 국가 의례로 지낸다는 제사, 귀족 가문들이 지내는 제사, 일반 평민들이 지내는 제사까지 전부. 그럼으로써 그 형식과 의미가 우상숭배와 추모행사 중에 어느 쪽에 가까운지 판별할 수 있을 테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특사를 보내는 김에 조선 국왕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선물을 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성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코르나로가 자리에 앉자 카이타니 추기경이 일어서서 진언했다. 그 말을 들은 교황이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선물이라니? 조선 국왕이 필요로 할 만한 사람이나 물건은 이미 스페인 왕이 다 보내주지 않았는가? 선교사를 더 보내자는 뜻인가?”
교황은 조선에서 선교가 자유로워지면 자기 출신 수도회인 프란체스코회를 파견할 생각으로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예수회가 아시아 선교 독점권을 쥐고 있으니 그럴 단계가 아니다.
“아닙니다. 군사고문을 보냈으면 합니다.”
“교황군에는 그럴 만한 인력이 없지 않은가?”
교황이 한층 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카이타니 추기경이 급히 자기 제안을 설명했다.
“스페인이 보낸 고문관 일부가 해전 경험자라 하나, 저들은 근본적으로 육군입니다. 그러니 해전 전문가를 조선에 보내 조선 국왕이 함대를 강화할 수 있게 하시지요. 몰타섬의 성 요한 기사단에서 인원을 빼내 조선에 파견하라 명하시면 됩니다.”
카이타니 추기경은 자기 제안이 묘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교황은 마땅찮은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성 요한 기사단은 늘 병력이 부족해서 허덕이지 않는가. 그런 이들에게 무슨 명목으로 먼 동방에 군사를 보내라 하겠는가?”
“교황특사를 호위하는 임무라고 하면 기사단에서도 영광스럽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숫자를 많이 보낼 필요도 없습니다. 지휘관 1명에 부하기사 5명, 병사 12명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스페인 고문단이 10명을 조금 넘는다. 추가로 보내진 병사들은 조금만 머무르다가 마닐라로 간다고 했으니 지금은 이미 조선을 떠났을 거다. 그러면 교황청이 보낸 해군 고문단이 스페인 출신 육군 고문들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제가 조선 사절단 부단장을 저희 집에 초대해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조선 해군도 지중해 각국 해군처럼 갈레선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화포와 활을 주무장으로 하지만, 적 전투원이 뛰어들면 백병전도 벌어진다더군요.”
“선상에서 벌어지는 백병전이라면 성 요한 기사단이 전문이긴 하지.”
“네. 마침 조선인들은 백병전에 서투르다고 하니까 적절한 도움일 겁니다. 그리고 기사단은 공의회 결정 없이도 파견할 수 있으니, 조선인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면서 호감도 높이 살 수 있습니다.”
괜찮은 생각이다. 성 요한 기사단도 그 정도 전력쯤은 할애할 수 있으리라.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사 선정, 파견, 조사, 귀환…그 뒤에 공의회를 연다고 하면 결론이 나기까지 적어도 5년 이상 걸리겠군. 좋소. 승인하오. 주님께서 이 늙은 몸을 그때까지 살게 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