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33
2부 211화
– 3 –
일단은 하늘이나 바라보도록 하자. 아직 장마철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그동안 비가 오겠지. 그거 말고도 처리할 일은 많으니까.
“식년 대과를 올해부터 매년 치르는 준비는 원활히 진행되고 있는가?”
“그렇사옵니다. 시험관을 선정하고, 8월에 시험을 치르기로 조보를 통해 공고했사옵니다.”
본래 조선에서는 3년에 한 번 과거를 보아 인재를 선발한다. 소과 200명, 대과 33명. 분명 적은 숫자지만 관료기구도 작고, 남아도는 관료 예비군이 워낙 많아서 늘 자리가 부족하다. 그게 나중에 붕당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
하지만 몇 차례 전쟁으로 영토가 넓어지면서 인력 수요가 큰 폭으로 늘었다. 수령으로 보낼 사람도 필요하고, 돌아다니며 관리할 사람들도 필요하다. 그동안 누적돼 있던 미임용자원(?)은 몇 년 새 다 소모돼 버렸다.
경성군 시기까지는 북평을 비롯한 몇몇 요지에 소수의 관리가 나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대다수는 주둔군 관리를 맡은 무관들이었고, 문관은 북방에서 동원한 서리들이 대부분이었다. 무관들도 북방 출신 토관(土官)들이 많았다. 심지어 다수는 여진족. 사실상 간접통치였다.
그러던 사정이 내가 각성하면서 바뀌었다. 대량으로 전가사변이 행해지면서 북방에 보내야 하는 관리 숫자가 폭증한 거다. 새로 설치한 고을에 하나씩만 배치해도 최소 매년 수백 명은 필요했다.
처음에는 정일한처럼 유능하다는 평이 있는 자들을 골라 보냈다. 문제는 그만큼 유능하면서 충직하게 근무하는 자들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힘든 북방에서 관리로 살고 싶지 않은 자들이 줄줄이 사표를 냈다. 더구나 지난번 전쟁 이후 그런 경향이 더 강해졌다.
차라리 대놓고 직무를 거부하는 녀석이 나오면 나도 몽둥이를 꺼내 휘두를 수 있다. 하지만 다들 연로한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느니, 건강이 좋지 않다느니, 역량이 부족하여 학문을 조금 더 닦아야겠다느니 하는 개인적인 사유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나로서는 확실히 짜증이 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기도 했다. 아니, 일하기 싫다고 자기가 나가겠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는가. 억지로 잡아놓으려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주 특출한 인재가 아니라면, 자기가 싫다고 사표를 내는 작자들을 억지로 붙들어놓을 것까지는 또 없다.
“과거를 자주 열어 인재를 많이 뽑으면 천하의 많은 선비가 포부를 펼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대들은 자기 주변에 있는 덕 있는 선비들에게 홀로 덕을 닦는 데 만족하지 말고 출사하여 나랏일에 몸을 담으라고 힘써 권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3년에 한 번 보던 과거를 매년 본다는 건 과거 합격 인원이 3배로 늘어난다는 소리다. 이는 양반, 사대부들에게 내가 제공하는 당근이기도 하다. 방구석 니트짓을 그만두고 관직에 나갈 기회가 늘어나는데, 저들이 솔깃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물론 새로 등용한 이들 중에도 편한 임지만 찾는 놈들이 있겠지. 하지만 쭉정이는 털어내면 된다. 가능하면 그동안 기회가 부족해서 밀리던 서얼이나 평민들까지, 새로운 피를 받아들여 이 조정을 쇄신할 좋은 기회인 셈이다. 장차 대일전을 치르기 위해서도 그럴 필요가 있다.
“전하께 아뢰옵니다. 부여주 관찰사 권율이 보고한 바로는 건주위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하니, 대책을 마련함이 좋지 않을까 하옵니다.”
그 장계는 나도 읽었다. 이건 참 개입할 수도 없고 맹랑했다.
“누르하치가 옛 해서부 놈들을 약탈한다 한들, 우리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요동부 관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요동도사가 헤아려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시옵소서, 전하. 건주위가 지금처럼 커지면 요동에 잔존한 모든 야인을 자기 밑에 넣고 무리를 크게 키워 난을 일으킬지도 모르옵니다.”
물론 나도 그 위험성을 안다. 누르하치는 임진왜란 뒤에 정말 그렇게 했었으니까. 여진족을 통일해서 칸이 되고, 후금을 세우고, 조선과 명나라를 쳤다.
하지만 지금 그럴 가능성을 공인할 생각은 없다. 일단 지금 당장 누르하치가 뭔가 벌이는 상황도 아닐뿐더러, 지금 나와 그놈 사이 관계는 매우 좋다. 더구나 도화선에 불이 붙어 있는 폭탄 같은 노부나가가 발밑에 있지 않은가. 머리 위에 새 불더미를 만들 여유가 없다.
“이번 난리 때 건주위는 우리 군사들과 힘을 합쳐서 열심히 싸우지 않았느냐. 지금도 우리 백성과 강토를 해하지 않고 자기 인근에 있는 야인 부족들과만 싸우고 있으니, 확실한 증거도 없이 저들이 변란을 모의코자 세력을 키운다고 의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끈질기게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의주목사로 있다가 최근에 조정에 돌아온 중추부 첨지사 황윤길은 건주위에 대해 엄중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누르하치는 실로 인걸이라, 이쪽에서 방관하면 해서 3부의 남은 유민을 모조리 흡수할지도 모릅니다. 해서 3부에 남은 야인은 그 수가 30만에 달하니, 이를 모조리 손에 넣으면 우리가 감당하기 벅찰 만큼 건주위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황윤길은 여진족 40만은 우리 백성 40만과는 질이 다르다고 역설했다. 의주목사로 북방에 있으면서 자기가 직접 본 바를 바탕으로 하는 말이니, 설득력도 강했다.
“그 야인들은 우리가 아니었으면 지난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굶주려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베푸신 은혜가 있었기에 살아났습니다. 그런 자들이 건주위 밑에 들어가도록 두고 보고만 있어야 하겠습니까?”
작년에 끝난 전쟁에서 잡은 해서부 포로들은 30만에 달했다. 이 포로들은 명나라 조정에서 송화강을 국경으로 인정하는 대신에 그쪽으로 돌려보내기로 했지만, 요동부 쪽에서 받아들일 형편이 아니라서 봄까지는 우리가 맡아서 보살피기로 했다.
당연히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라고 해서 호구처럼 굴지는 않았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는 구호 아래, 겨울 동안 활용할 수 있는 30만 인력으로 부여주에서 필요한 온갖 공사를 시행했다. 겨울이라고 해서 토목공사를 아예 못 하는 건 아니니까.
굶어 죽지 않게 해줬다는 점에서는 ‘은혜를 베풀었다’는 황윤길의 발언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반년 가까운 기간 동안 저들을 사실상 노예로 부려먹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과연 그걸 은혜라고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알라르콘이 내미는 십자가를 저들이 어찌 생각했을지도.
“첨지사가 걱정하는 바는 알겠으나, 요동부 영역 내에서 건주위가 다른 야인들을 약탈한다 하여 우리가 개입할 수는 없다. 대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방인 우리가 어찌 상관하겠는가?”
황윤길이 끈질기게 경계를 표하는 모습을 보니 실제 역사에서 저 양반이 히데요시를 보고 돌아와서 일본이 분명히 침공할 거라고 주장했다는 생각이 나는구나. 부사인 김성일은 당색이 달라서 의도적으로 반대했다지만, 여기서는 당쟁이 그 정도까지 심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건주위 문제가 그토록 걱정된다면, 다음 성절사 편으로 대국 조정에 그 위험성을 알리도록 하자. 그리하면 대국에서 적절히 조치하지 않겠느냐?”
명나라는 손도 까딱 안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내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장차 명나라에 맞서서 건주위를 사냥개로 부리려면 지금보다는 더 크게 키워야 하니까.
명나라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흔들리기 시작할 거다. 그때까지는 대국, 소방이라 칭하면서 허리를 숙여 줄 테다. 노부나가도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고, 다음 세대에 미뤄준다는 인식을 좀 가지면 좋으련만.
– 4 –
“너는 부친보다 이것저것 재주가 뛰어나구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대군.”
임해군이 매를 팔에 앉힌 채 호탕하게 웃었다. 하루하루가 신나고 즐거웠다.
“그대의 부친은 몸을 직접 움직이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군. 사냥을 나와도 매를 직접 날리거나 활을 당기는 법이 없었다. 차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쪽을 훨씬 선호했지.”
“부친께서는 평생 선비셨던지라.”
노부나가의 매서운 눈매 같은 건 임해군에게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자신은 조선 임금이 직접 보낸 사절이면서 노부나가의 조카사위가 아닌가. 뭔가 엄청나게 큰 잘못이라도 저지르지 않는 한 위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처외삼촌인 노부나가의 매서운 눈매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저 저 양반이 원체 성질이 더러워서 인상도 저렇게 더러우려니, 생각할 뿐이었다.
“매 부리는 재주는 언제 익혔나?”
“부끄럽습니다만, 어려서부터 글을 읽기보다는 말을 타고 매를 날리는 편을 좋아했습니다. 계집을 안는 것도 좋아했습니다만.”
“너는 이곳 일본 땅에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사람이로구나.”
노부나가는 진짜 조카를 대하듯 격식 없이 임해군을 대했다. 하성군에게 돌아오라는 서신을 가지고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그랬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하성군은 별말이 없었다. 그리고 바로 떠났다. 얼마나 급한지, 측근이던 원균도 망설이는 티가 나자 그냥 두고 갔을 정도였다.
부친이 조선으로 돌아가자 임해군은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그 옛날 악소배 시절의 그였다면 아예 미친 듯이 놀아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차차와의 피를 말리는 결혼생활, 그리고 전쟁터 경험 덕분에 어느 정도는 남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차차 그 아이가 아주 드세지? 성격이 강한 편이라 시집을 보내면서도 걱정이 많았다. 어떤 남편을 골랐는지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네가 직접 찾아와서 다행이다.”
“저도 처외숙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장모님께서는 무척 좋은 분이시지만, 처외숙께서 제 장인이셨다면 그것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장모인 ‘오이치노 카타’는 이제 마흔을 좀 넘었다고 하는데 나이보다 열 살은 젊어 보이는 미인이었다. 차차처럼 키가 크고, 성격 역시 차차와 비슷해서 조선 여자들이랑은 전혀 다르게 당당한 태도였다. 하지만 원숙한 나이에서 오는 품위가 있어 차차처럼 격하지는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자기를 쥐고 흔들기만 하는 차차보다 오이치노 카타 쪽이 임해군에게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는 터, 적당히 허허 웃으며 노부나가에게 마치 농담처럼 답했다.
“기왕이면 조카가 아니라 따님을 보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대군 나리의 사위가 되었으면, 저는 기꺼이 바다를 건너와서 충실한 사위 노릇을 했을 겁니다만.”
반쯤은 진담이었다. 무엇보다 빌미만 잡히면 죽이겠다고 노려보는 주상 형님이나 아내인지 원수인지 알 수 없는 차차와 떨어질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럴 생각도 했는데, 내 딸들이 다 어려서 말이지.”
뜻밖에 노부나가는 아쉬운 듯이 말했다. 임해군이 잠시 흠칫했을 정도였다. 노부나가는 별 표정 변화 없이 말을 몰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딸이 열이거든. 그런데 내가 나이가 있다 보니 일찍 낳은 애들은 다 시집을 갔고, 그 밑에 애들은 또 너무 어려서 말이야. 조선에서는 여자가 열다섯 살은 되어야 혼인한다던데 내 딸 중에는 그때 그만한 애가 없었지.”
“참으로 아쉽습니다.”
임해군이 긴장을 풀고 웃으면서 답했다. 뭐, 상대가 조카사위라고 해도 이 정도 농담은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노부나가는 여기서 그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때. 아무리 거친 여편네라도 곁에 없으니 요즘 적적하지 않나?”
“아, 괘, 괜찮습니다.”
사실 임해군은 일본 생활이 전혀 외롭지 않았다. 외롭기는커녕, 노부나가가 시녀로 붙여준 왜녀들을 이불 속으로 끌어들인 지 이미 오래였다. 부친 하성군의 옆에서 시중을 들던 시녀가 한눈에 마음에 들어 하성군이 뜨자마자 덮친 것부터 시작하여 줄줄이 올라탔다.
차차와 차차의 시녀들 때문에 왜녀들은 몸가짐이 아주 엄격한 줄만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방으로 불러들여서 이불 위에 눕히기만 하면 다른 절차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옛날 집에서 부리던 시비들 쪽이 도리어 반항이 심했을 정도였다.
덕분에 임해군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사냥을 나갈 준비를 한 말과 매가 기다리고 있고, 돌아오면 산해진미와 향기로운 술이 있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면 처소를 채우고 있는 여러 미녀 중 아무나 골라잡아 동침했다.
목을 조이는 차차도 없고 종친으로서 수행할 의무 운운하는 자들도 없다. 지금처럼 신나게 즐기기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뭐든지 하리라. 하지만 노부나가한테 대놓고 할 소리는 아니라 진땀만 흘리는데, 노부나가는 그런 심정을 모르는지 앞을 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지내면서 보니 너는 제법 괜찮은 사내인 것 같다. 차차가 어린애라 제대로 남편을 고를지 걱정했는데, 아주 훌륭한 남편을 골랐군. 내 사위로도 괜찮을 것 같아. 내 일곱째 딸 아이히메가 이제 열다섯 살인데, 측실로 들일 생각이 혹시 없나?”
“예, 옛?!”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노부나가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놀랍나? 일전에 잔치 때 봤겠지만, 그 아이도 미색은 차차 못지않지. 하지만 자기 어미를 닮아서 성격은 아주 얌전하고 말이 없어. 어떤가? 생각해 보겠나?”
“그, 그런 일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이미 처외숙의 조카사위인걸요.”
가까스로 중심을 회복한 임해군이 목소리를 떨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게 뭐 어때서? 조선에서는 금기일지 모르나, 여기 일본에서는 사내가 사촌자매를 동시에 취하는 정도는 평범한 일인데. 간혹 사촌도 아니고 친자매를 한꺼번에 측실로 들이는 사람도 있는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임해군은 일전에 본 아이히메를 떠올렸다. 다른 딸들이 각자 자기 모친 옆에 있는데 그녀만 모친이 죽고 없어서 혼자 앉아 있었다. 무척 쓸쓸해 보이면서도 청초한, 아름다운 처녀였다.
군침은 넘어갔지만 손댈 수도 없고 손을 대서도 안 되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꿀단지가 굴러들어오려 하는 것이다.
“아, 저, 그래도….”
하지만 선뜻 수락할 수는 없다. 후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문이 조선으로 퍼지는 정도는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조선으로 돌아가면 어쩌란 말인가. 시앗이라면 절대로 못 참는다는 차차가 눈에 불을 켜는 건 둘째 치고, 조선에서 용납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뭐, 내키면 이야기하게. 아직 그 아이는 혼처를 정하지 않았으니까.”
말을 마친 노부나가는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듯 말을 몰아 앞으로 나갔다. 임해군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면서 지금 오간 문답을 과연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 5 –
바닷가에 우뚝 솟은 거대한 나고야성은 위풍당당했다. 높이 솟은 천수각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위에는 백여 척이나 되는 선단이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다.
“배를 벌써 여기다 모아놓을 필요는 없다. 도대체 어떤 멍청이가 이런 지시를 내린 거냐.”
인상을 잔뜩 찌푸린 히데요시가 뒤를 따르는 이시다 미츠나리에게 명령했다.
“혹시 선박 건조가 얼마나 진척됐는지 알리고 싶었다면, 내가 직접 가서 보도록 보고서만 보내면 될 게 아니냐. 그걸 굳이 내 코앞에 들이민 저 멍청이가 누구야?”
“히데츠구 님이십니다.”
미츠나리의 차가운 목소리에 히데요시는 말문이 막혔다. 히데츠구는 누나의 아들로, 자식이 없는 히데요시가 후계자로 삼기 위해 양자로 들였다. 하지만 딱히 유능하지는 않아서, 핏줄이 배경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출세하지 못했을 터였다.
“알았다. 배를 끌고 온 선인 우두머리에게 명하여, 잘 보았으니 본거지로 귀환하라고 해라.”
“예, 주군.”
미츠나리를 돌려보내고 나서 히데요시는 난간에 기댄 채 바다를 보았다. 저 바다, 노부나가 휘하 군단장으로서 건너야 할 바다. 하지만 주군 노부나가는 아직 바다 건너 어디를 목표로 할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명나라인가, 조선인가, 류큐인가.
양자로 삼은 조카 히데츠구 생각이 났다. 똑똑한 아들이 딱 하나만 있었다면, 그런 멍청한 놈을 후계자로 삼지는 않았으리라. 오이치를 아내로 들일 수 있었다면, 오이치에게 아들을 딱 하나만 낳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히데요시는 기왕이면 조선이 공격 목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부나가가 조선을 먼저 친다고 명령하면, 즉시 조선인으로 위장한 결사대를 투입해서 차차를 구해올 생각이었다. 그 임무를 부여할 인원도 이미 다 뽑아 놓았다.
그런 큰 공을 세운다면 노부나가도 차차를 히데요시에게 주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차차도 그 정도 은혜를 받으면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히데요시에게 감사하면서 기꺼이 몸을 맡길 것이다. 시도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