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34
2부 212화
– 6 –
바깥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오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말 타고 궁궐 후원부터 한 바퀴 도는 게 습관이 된 탓이다. 이불을 밀고 일어나 옷을 입는데 내가 움직이는 소리에 상희가 눈을 떴다. 선 채로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일어났어?”
“응. 오늘도 일찍 나가네.”
잠시 눈을 깜박거리던 상희가 일어나서 자기도 옷을 입었다. 그리고 내가 아직 덜 입은 옷 입는 걸 잠시 도와주고는 ? 내 옷은 혼자 입기 정말 힘들다! – 문을 열더니 복도에서 지키고 서 있는 상궁을 불렀다. 뭐라고 속삭이는 듯하더니 바쁘게 복도를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간단한 심부름.”
궁금했지만 묻기가 뭐했다. 그대로 조용히 상희한테 도움을 받아 옷을 마저 다 입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상희가 데리고 있는 상궁이 소반 위에 약사발을 조심스레 받쳐 들고 들어와서 방 가운데 놓고 물러갔다. 의심스러운 기분이 들어 물어봤다.
“무슨 약이야?”
“응, 남자한테 좋은 약. 자, 마셔.”
상희가 약사발을 들고 내게 권했다.
“너도 내일모레 40줄이다? 이제 보약도 좀 먹고 해야지.”
“나…나 아직 건강한데.”
이런 거 안 먹고 버티려고 매일 말 두 시간씩 타고 활도 쏘고 하는 건데! 약을 거절하려고 힘써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상희는 요지부동이었다.
“운동도 하고 약도 먹으면 더 좋잖아? 마셔서 나쁠 거 없으니까 마셔. 와이프가 일곱이나 되면 원래 보약도 좀 먹어야 하는 거야. 그게 싫으면 다음 생에는 좀 줄이든가.”
“내가 처칠이 되고 싶어서 됐냐.”
투덜거리면서 약그릇을 받아들었다. 너 빼고 다른 여섯은 다 경성군한테 물려받은 거라고! 너, 나중에 중전 되면 혹시 나한테 후궁 하나도 못 들이게 할 생각인 건 아니겠지?
그런데 약사발을 입가로 가져오니 말로 형용하기 힘든 애매한 냄새가 확 코를 찔렀다. 이 약, 도대체 주성분이 뭐야? 갑자기 목소리가 떨렸다.
“상희야, 이 약…뭐 넣고 만든 거야?”
“모르는 게 나을 텐데.”
내가 눈을 부릅뜨는 걸 본 상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속삭였다.
“내의원에 있는 좋은 약재 적당히 골라서 넣었어. 괴상한 건 안 넣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기분은 찝찝했지만 일단 원샷으로 비웠다. 냄새는 상당히 비렸지만, 막상 입에 들어가니 별 이상한 맛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상희가 웃으면서 약그릇을 챙겼다.
“올 때마다 한 그릇씩 줄게. 설마 약 먹기 싫어서 내 처소에 안 오는 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대답이 늦는데?”
승지들과 함께 모여앉아 보고서를 읽는 중에도 그 수상한 약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뭘 넣었을까. 그냥 인삼이나 적당히 넣은 거면 다행이겠다. 에휴, 설마 독은 안 넣었을 테니 일이나 하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승정원을 나섰다.
– 7 –
“각 지역 관장들에게 서한을 보내, 가동할 수 있는 수차를 모조리 동원해서 보와 저수지에 물을 채우도록 하라. 행여 장마철에도 비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할 수 있는 대비책은 모두 해두어야 하리라.”
가뭄, 흉년이라면 정말 치가 떨린다. 4년 만에 겨우 벗어났는데 또 말려들고 싶지는 않다. 이제 곧 전쟁도 터질 텐데, 흉년 따위로 고생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전하,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그동안 수축한 저수지와 보가 넉넉하고, 또한 작년에 대국 조정에서 보내온 은과 쌀이 아직 많이 있으니 그로써 백성을 구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우참찬 이원익. 확실히 댁이 하는 말이 맞긴 하지. 하지만 난 그 은을 군비로 쓸 계획이지 구휼미 구입 같은 데 쓰고 싶지 않단 말이다. 남만에서 배와 초석을, 중국에서 구리를 사와야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다. 유황도 그렇고.
전쟁은 분명히 일어난다. 한 달 전인 지난 3월에, 옹주 두 사람의 혼인식을 모두 치른 뒤에 도성으로 돌아온 하성군이 명확하게 보고했다. 노부나가가 대륙을 넘보고 있다고.
“전하, 일본국 대군 신장은 그 자신이 대국 황제가 되겠노라고 장담하고 있사옵니다.”
하성군이 입 밖으로 낸 첫마디를 들었을 때, 비변사 회의실에 있던 임석자 전원이 입을 딱 벌렸다. 나야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니 한숨만 쉬고 말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신하들로서야 진실로 어처구니없는 소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어찌 가당키나 한 소리란 말이오? 섬나라 왜적들이 천자의 자리를 넘보다니?”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하다. 지금 시대 인식으로는, 북한이 미국을 부수고 워싱턴에서 승전행진을 하겠다는 소리로 들릴 수준 아닌가.
“저들은 예로부터 대국과 우리 해안을 노략질해왔소. 왜구들이 다시 설치는 정도라면야 그 버릇이 발작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제위를 넘본다고? 그 야만인들이?”
김명원은 몇 차례나 야만인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만큼 받은 충격이 컸다는 이야기겠지. 하지만 하성군은 그 표현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병판 대감, 왜인들은 절대 그저 야만인이라 비하할 존재가 아니올시다. 소인이 바다 건너 왜국 땅에서 수년을 살며 직접 살피니, 저들에게도 나름대로 문화가 있고 예의가 있으며 저들 나름의 질서가 있었습니다. 우리처럼 조정도 있고 말입니다.”
“그 ‘일황(日皇)’이라 자칭하는 허수아비 군주가 거느린 조정 말이오?”
천황(天皇), 또는 덴노. 지금 조선에서도 일본에 명목상 군주와 실제 지배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 정도는 다들 안다. 정통 군주인 천황이 권력을 잃은 지 오래고, 전국의 여러 무사 중 힘센 이가 장군이라는 지위에 올라 권력을 잡았다가 그 힘이 기울어졌다는 점도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선 사대부들에게 있어서 천하에 존재하는 황제는 명나라 황제 단 한 사람뿐이다. 그래서 일본 천황에 대해 말할 때는 ‘자칭’이라고 꼭 부연하거나 왜황(倭皇)이라 부른다. 무로마치 막부 쇼군은 명나라에서 왕으로 책봉을 받았으니 ‘일본국왕’이고.
아무튼, 지금 일본 조정이 가지는 위상 같은 걸 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부나가가 하고 있다는 침략 준비에 관한 보고부터 얼른 하라고 명했다.
“예, 전하. 일전에도 서한으로 아뢰었습니다만 왜인들은 지금 오랜 전란으로 단련된 오십만 대군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뒤이어 노부나가가 품은 침략적인 의도를 이미 파악했으면서도 진즉에 알리지 못한 데 대한 장황한 변명이 뒤따랐다. 서한도, 전언도 완전히 안심하고 보낼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됐으니 그만 닥치고 본론으로 돌아가라고 한 번 더 호통을 쳤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지금 신장은 오십만 대군 중 적어도 삼십만을 보내 명나라를 치겠다 하고, 이를 위해 배를 건조하고 병장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구주로 들어오는 남만선에서는 계속 염초를 하역하고 있으며 이는 속속 화약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망할 포르투갈 놈들. 우리랑 일본이 서로를 가상적으로 상정하고 군비를 확충하고 있는 걸 빤히 알면서 양쪽에다 모두 초석을 팔고 있단 말이지. 어차피 포르투갈이 나랑 동맹을 체결한 것도 아니니 기대할 건 없었지만.
“더불어서 전하께옵서 명나라 정벌, 이 정벌이라는 어휘는 무척이나 망측하고 또한 불경한 것이오나, 신장이 실제로 이같이 말하였기에 그대로 옮기는 행동을 용납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이 명나라 정벌에 동참하시기를 권하라고 신에게 요구하였나이다.”
이 이야기를 듣자 모여 있는 신하들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하도 기가 막혀서 뭐라고 말을 할 정신도 다들 상실한 상태였다.
물론 일전에 찾아온 축하사절이 이미 나한테 동참 제안을 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노부나가 옆에 붙어 있던 하성군이 모를 리가 없지만, 내가 미리 하성군을 따로 만나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하께서 이런 무도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시리라는 점도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을 보내 전하를 설득하라 명하면서도, 군사를 낼 준비는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로 만나서 들은 이야기로도 확인했지만, 내가 가모에게 들려 보낸 막연한 답은 노부나가가 진행하는 원정 준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애초에 노부나가한테는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고, 사자 파견과 별개로 선박 건조 및 물자 비축을 진행하고 있었다.
가모 파견과 동참 제안은 이미 전쟁 준비를 시작한 상황에서 벌인 행동이었다. 더구나 내가 하성군을 소환하는 의도를 빤히 알면서도 그대로 보낸 건, 내게 겁을 주어 위압하려는 의도가 확연하다.
“전하! 신은 지금 하성군이 전한 바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신장이 어리석은 바보가 아닐진대 어찌 그런 무모한 계획을 품겠습니까?”
일본인들은 무려 백 년 동안이나 내전을 벌였었다. 백 년에 걸친 전국시대를 끝낸 장본인이 무능하거나 바보일 리가 없다. 조정 신하들은 그런 상식을 가지고 노부나가를 보고 있었다.
“유능하다 하나, 신장도 결국 섬나라 무인입니다. 세상을 넓게 보는 능력에 미진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성군은 노부나가의 미친 생각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구구절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정말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역시 하성군이 아무리 난봉꾼에다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라 해도, 전쟁을 막으려고 노력할 정도의 양심은 있었구나.
“허나 신이 열과 성을 다해 설득했음에도 신장이 품고 있는 그 무도한 생각을 도저히 접게 할 수가 없었나이다. 이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절망하는 참에, 전하께서 임해군을 통해서 귀국하라 명하셨기에 시급히 들어와 이리 사정을 고하게 되었나이다.”
여기서 하성군에 대한 뜻밖의 비난이 하나 있었다.
“아니, 그럼 하성군께서는 거느리던 노복과 관원들은 그대로 적에게 죽으라고 두고 오셨단 말씀이십니까? 심지어 자기 목숨을 구해준 원균과 장자 임해군까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모두 데리고 나오려 했다면 신장이 나가도록 두었겠습니까?”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는 그만두라!”
호통을 치자 소란이 뚝 그쳤다. 그래, 임해군이나 원균이 저쪽에서 처형되면 뭐 또 어떤가? 솔직히 그 멍청이들이 왜장으로 탈바꿈하는 지경으로 떨어지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낫다.
어쨌든, 상황은 심각했다. 병력 준비 상황이나 선박 건조 상황 등 하성군이 보고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늦어도 내년 여름까지는 노부나가가 원정 준비를 완료할 것으로 보인다. 대마도 쪽에서 뒤늦게나마 추가로 들어온 정보도 이를 입증하고 있었다.
“이달 초에 일기도주 종의지가 장계를 올려 고하기를, 구주를 통치하는 각 영주들이 저마다 나무를 베어 배를 짓고 있다 하였습니다. 갑자기 대량으로 배를 지으니 그 용처를 알 수 없다 하였는데, 이로써 그 용처를 알았습니다.”
“실로 그러하다. 더러운 야욕에 쓸 배로구나.”
종의지,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이 자식도 개자식이다. 대마도보다 훨씬 풍요로운 이키섬을 갖게 해주고, 대마도를 우리 관헌이 다스린다고는 해도 종씨 가문 영향력도 유지하게 해줬다. 물론 무역 중개하면서 돈 버는 거 지원해줌은 물론, 갖가지 혜택도 주었다.
그렇게 받아 처먹은 놈이, 이미 진즉에 파악했을 노부나가의 전선 건조 정보를 하성군 귀국 이후에야 알리고 있으니 속이 뒤집힌다. 이 자식, 벌써 저쪽으로 돌아선 건가?
이키섬에 있는 종씨가 받은 은혜는 공짜가 아니었다. 그게 다 일본 정보 제때 캐서 보내고 유사시에 방패 노릇 하라고 준 거다. 내가, 내 후손들이 마음씨가 좋아서 호구 노릇 하려고 퍼준 게 아니란 말이다!
“종씨는 이 나라의 신하이면서도 그 의무를 게을리하니, 엄히 벌함이 옳습니다. 어찌 이런 중요한 사안을 이제야 보고한단 말입니까?”
신하들도 나와 견해가 같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군사를 일으켜 이키섬 원정을 나서기에는 우리 사정도 좋지가 않다. 더구나 노부나가가 이를 명분으로 당장 전쟁을 시작해버리면 그건 또 그거대로 난감하다.
“지금 당장 종의지를 목베고 일기도주를 교체함이 실로 가하겠으나, 왜인들이 이를 기화로 삼아 일기도를 공격해오면 지키기가 매우 힘들다. 그보다는 대마도에 더 많은 군사를 보내고 파수대를 지어, 왜적들이 나타났을 때 바로 알릴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겠다.”
이미 언급했지만, 대마도 전체를 불침요새로 만들기에는 인력이랑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역시 봉화대에서 조기경보를 보내는 역할, 그리고 이즈하라 같은 요소 몇 곳에 성채를 지어서 거점방어를 수행하게 하는 정도가 한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마도에 아예 군사를 두지 않으면, 적이 섬을 거쳐 그날로 바로 동래로 밀어닥칠 것이니 군사를 모으고 방비를 강화할 수 있는 시간 여유도 딱히 없을 것입니다.”
“옳은 말이다. 대마도에 군사를 두면, 저들이 이를 제압하는 동안은 우리 본토에 진공하지 못하리라. 대마도에 있는 성보를 강화하고, 군사들을 두어 침공에 대비하도록 하라.”
성을 지키다가 역부족이라고 판단되면 산으로 후퇴하면 된다. 우리 군사 3백에서 4백 명만 대마도의 산과 숲을 누비며 게릴라전을 펼쳐도, 대마도를 조선으로 건너오는 침공 중계점으로 쓰려던 일본군의 계획에 심대하게 지장이 꽃필 거다.
그 정도 시간이면 경상도 일원에 비상경계령을 발동하고 함대를 소집하기에 충분한 여유다. 제1파가 상륙하는 건 혹시 놓칠 수도 있겠다만, 후속함대는 확실히 잡는다.
“대국 조정에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까지는 그 실현 의도가 미심쩍었기에 함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만, 신장이 품은 탐욕이 확실해진 이상 더 늦출 수 없습니다.”
“옳은 말이다. 그리하라.”
이쪽 세계 유구에서도 명나라에 알렸을, 혹은 알릴 테니 우리가 가만있을 수는 없다. 적이 미적지근한 태도를 유지했다면 좀 더 끌고 나갈 수 있었겠지만 할 수 없지. 과연 명나라가 이 황당한 제보를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1년 뒤에 왜군이 침공할 거라는 전제가 확실해졌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경상도 일원에 적이 침범할 조짐이 있음을 알리면서, 관민이 합심하여 총력을 쏟아 방어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의견제시는 일견 타당했다. 어차피 노부나가는 날 끌어들이려는 미련도 버리고 원정을 준비하기 시작한 지 오래라 하니, 놈에게 침공을 결행하게 만드는 사인을 줄지 모른다는 걱정 역시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문제는 우리 쪽에 있었다.
“이미 4년간 계속된 가뭄 때문에 입은 피해도 아직 다 회복하지 못하였는데, 올해 또 비가 오지 않습니다. 지금 남도 일원에서는 가뭄 피해를 줄이기 위해 관민이 온 힘을 쏟고 있는데, 갑자기 전쟁을 대비해 병비(兵備)를 갖추라고 하면 민심이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노부나가는 내년에 온다. 그럼 올해에는 조금 여유가 있다는 거고, 방비에 들이는 노력만큼 농사에 좀 관심을 두어도 된다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솔직히 말해서 올해 수확을 잘 거두어야 내년에 군량미로 쓸 게 아닌가.
더구나 올해는 전세를 올린다, 전가사변을 재개한다 등등으로 지방 백성들을 들쑤셔놓기도 했다. 여기에 왜군이 곧 쳐들어온다고 공표하기까지 하면, 지방 민심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을 가능성도 있다. 대중적인 패닉이 퍼진다면…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저들이 우리를 칠 목적으로 배를 건조하고 있다 하니, 먼저 건너가서 모조리 불태워버림은 어떻겠습니까?”
아예 우리가 먼저 공격하자, 즉 파쇄공격에 나서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김명원이 먼저 고개를 저었다. 출전 비용이 막대하게 필요한 건 둘째 치더라도, 여기에도 다른 문제가 있었다.
“소용없습니다. 저들이 배를 구주에 집결시키지 않고 본주나 사국 등지에 분산시키면 이를 일일이 찾아 불태울 수도 없고, 일부 불태운다고 해도 분격한 적이 남은 배를 끌어내어 당장 침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되면 우리는 방비 준비가 미진한 채 적을 맞게 됩니다.”
우리 수군 주력이 일본에서 분탕질하는 사이 일본 수군이 제2함대를 편성해서 조선으로 밀려온다면 그것도 끔찍한 일이다. 확실히 지금 해군력으로 일본을 선제공격하면서 우리 바다도 완벽하게 지켜내기는 모자란다.
“옳은 말이다. 지금은 우리가 먼저 치기보다 시간을 벌면서 방어준비를 하는 편이 좋겠다.”
결론은 났다. 일단 일본이 쳐들어오리라는 정보는 누구도 비변사 외부에는 퍼뜨리지 못하게 함구령을 내렸다. 그리고 각 수영에 규정에 따른 전선 확보를 서두르도록 명하고, 남해안에 자리 잡은 각 진보에 보수작업을 조속히 마치도록 명했다.
“비용이 부족하면 병영 또는 감영에서 내주도록 하라. 전선 건조 역시 마찬가지다.”
“예, 전하.”
요란하지 않게, 기존에 유지하던 전시체제 연장선상에서 방어준비를 진행하도록 하자. 헌데 이제부터는 일본 쪽 정보를 어떻게 얻나 걱정이 된다. 종의지가 믿을 수 없음은 입증됐는데…임해군이 과연 정보를 모아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