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38
2부 2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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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가 하는 일은 차차를 구출하는 것뿐이 아니다. 아직 자신에게 불만이 많은 류조지 계열 규슈 토착 사무라이들을 억누르고, 시마즈와 오토모를 붙들어서 계속 오다 가문에 충성하게 단속해야 했다. 또한, 그 역시 병사를 조달하고 배를 건조해야 했다.
“규슈에서만 내년까지 만들어야 하는 배가 5백 척이었지.”
히데요시는 나고야성 보수에 필요한 예비 자재를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상당한 양의 목재를 구해서 잘 말려두었다. 노부나가가 영을 내리면 즉시 건조에 들어갈 조건을 맞추려고 말이다. 그처럼 미리 머리를 쓰지 못한 많은 영주들은 뒤늦게 나무를 베느라 법석을 떨었다.
“지금까지 완성한 배가 3백 척이면 남은 배를 완성할 시간은 충분하다. 목수들을 다그치지 말고 여유 있게 작업을 진행하라. 불필요하게 서두르다가 부실한 배가 나오면 곤란하다.”
내년 봄이면 일본 전역에서 건조한 3,000척이나 되는 배가 물자와 병사를 가득 싣고 이곳 규슈로 몰려든다. 나고야성은 진공군이 대륙으로 나가는 전진기지이고, 그만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것도 히데요시의 몫이었다.
그 작업을 완료하자면 배를 만들고 건물을 세우는 목수, 석공들을 잘 다뤄야만 한다. 너무 혹독하게 작업을 재촉하면 기술자들이 현장을 팽개치고 도망쳐 버릴 테고, 배도 건물도 제때 완성되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 책임은 모두 히데요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모리 가문에서 건조하기로 한 배는 작업이 얼마나 진척되었나? 그쪽도 진행 상황을 빨리 파악하여 보고하라.”
아무래도 노부나가가 그동안 미룬 갖가지 지시를 한꺼번에 내리기로 했는지, 아즈치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조선 원정을 위해 시행해야 할 갖가지 지시사항이 내려왔다. 모리 데루모토는 히데요시 휘하에서 1차 원정군으로 잡혀 있어서, 히데요시가 직접 진행을 챙겨야 했다.
모리 외에도 시마즈, 오토모 등 규슈 다이묘들이 1차 원정군으로 잡혀 있다. 후속부대는 더 동쪽에 있는 영주들이다. 최종적인 공격목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봐라, 도라노스케. 이 지도를 보니 조선 동쪽 강원도에 병사들을 내려서 곧바로 한양을 향해 진격하는 방안도 괜찮아 보이지 않느냐? 조선 수군은 남해안에 집중되어 있으니, 놈들을 피해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인 듯한데.”
“제가 보기에는 괜찮은 수단 같습니다. 수군 병력 일부를 나눠서 경상도 일대 조선 수군을 붙잡게 하고, 수송선단이 바로 북진하면 조선군을 피해 강원도 해안에 내릴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이번 오사카성 군의에서 건의해 봐야겠다.”
조만간 오사카성이 완공된다. 오사카성은 원인불명의 화재로 준비한 재목 상당수가 불에 타 소실되는 바람에 준공이 약간 늦어졌다. 공사를 책임지고 있던 도도 다카도라는 할복으로 죄를 갚겠다고 했으나, 노부나가는 이를 반려하고 공사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히데요시는 성이 완공되는 시점인 10월 15일까지 오사카성에 들어오라는 노부나가의 명을 받고 있었다. 서쪽 끝에 위치한 그뿐만 아니라 동쪽 끝에 있는 이에야스나 다테, 모가미 같은 다이묘들도 모두 호출을 받았다. 사실상 모든 주요 다이묘를 소집하는 셈이다.
명목상으로는 오사카성 완공 축하연과 그에 이은 다회가 열리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실제 양상은 전혀 다르리라고 히데요시는 짐작하고 있었다. 분명 조선 원정 사실을 공개하고 또 목표를 정하는 최종 군의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조선 원정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일단 노부나가는 원정을 갈 테니 배와 물자, 병력을 준비하라고만 명했다. 조선이 목표라고 깨달은 건 히데요시 자신이 가진 통찰력으로 얻은 결론이었다. 노부나가의 측근 중에 하나가 알려준, ‘요즘 주군께서 조선 왕족 임해군과 따로 만나는 일이 늘었다’고 한 이야기에서였다.
지금 임해군은 노부나가의 사위다. 이미 조카 차차와 정식으로 혼인한 임해군에게 자기 딸 아이히메까지 내주고, 원정에 앞서서 그렇게 자주 만난다는 건 별볼 일 없는 평범한 볼모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럼 왜일까?
노부나가는 명나라 원정에 앞서 임해군을 조선의 새 왕으로 앉히는 일부터 감행할 심산임이 분명했다. 자기 사위인 임해군을 조선 국왕으로 앉힘으로써 자연스럽게 조선을 자기 휘하로 끌어들이고, 그 힘을 명나라 정벌에 동원할 생각이리라.
“당연한 시도입니다. 조선이 명나라 정벌에 동참한다는 건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전쟁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결정된 후 우울함을 떨치지 못하는 고니시였다. 조선과, 그리고 명나라와 굳이 싸우지 않아도 일본은 얼마든지 번영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역설했지만, 주군 히데요시는 그 이야기를 노부나가에게 전하지 않았다. 전해봐야 소용없을 게 뻔했으니까.
“그 이야기는 됐다. 그보다 고니시, 네가 보기에는 강원도 상륙이 어떨 듯하냐?”
소 요시토시를 뺀다면 일본 전역에 있는 여러 다이묘 중에 가장 조선에 대해 잘 아는 이가 고니시다. 그 고니시가 힘 빠진 얼굴로 지도 앞에 섰다.
“저희가 직접 가서 보고 온 바지만, 조선 도성은 너무 크고 웅장한 성이라 도리어 지키기 어렵습니다. 병사 3만이면 충분히 성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군, 송구한 말씀이오나 강원도를 침공로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
기껏 세운 계획에 대뜸 반대하자 히데요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기가 적극적으로 찬동한 작전안을 고니시가 깎아내리자 가토 기요마사의 표정도 험악해졌다. 하지만 고니시는 못 본 척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강원도는 지형이 험해서 산밖에 없는 가난한 지방입니다. 에치젠 같은 곳이지요. 행군도 어렵고 군량을 나르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현지에서 구하려고 해도 워낙에 식량이 귀한 지방입니다. 게다가 강원도 연안에는 좋은 항구가 없습니다. 선단이 정박할 수가 없습니다.”
고니시는 직접 강원도에 가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래에서 그를 가르쳤던 스승은 무릉도 출신이라서 강원도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그래서 가끔 쉬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곳이 어떤 고장인지 말이다.
“그렇다 해도 군사가 전혀 움직이지 못할 건 없잖소! 대군을 움직이기는 무리일지 몰라도, 조선군을 분산시키는 정도 역할은 할 수 있을 거요.”
“우리 군대도 분산되어 적에게 격파당할 수 있소. 그러면 정면으로 싸울 병사가 줄어들 뿐,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소.”
총애하는 두 장수가 또 말다툼을 벌일 기세를 보이자 히데요시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이시다, 요즘 조선으로 도망갔던 놈들이 다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이시다 미츠나리는 가토와 고니시가 싸우건 말건 평온한 표정이었다. 미츠나리가 가지고 온 문서를 받은 히데요시는 가나로 적은 부분만 대충 훑어보고는 다시 미츠나리에게 돌려주었다.
“아소 가나 류조지 가 신하로서, 조선에 건너갔다 돌아오는 자들은 모조리 잡아 처형한다. 이 히데요시 밑에 들어오기 싫다고 떠났던 자들이 전쟁을 앞두고 규슈로 돌아오는 건, 조선의 간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동안 조선으로 건너간 하급 무사가 수천 명에 달하며, 개중에는 이름과 지위가 제법 높은 자들도 여럿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규슈 일대에 퍼져 있었다. 심지어 히데요시를 저격하려다가 실패하고 할복한 시마즈 도시히사조차 실은 살아서 조선으로 도망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일시 몸을 피하려고 조선에 갔다가, 전쟁이 곧 일어난다는 소문을 듣고 공을 세워서 다시 출세하려고 돌아오는 자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일본에 있던 자들이라면 그렇게 해도 괜찮겠지. 하지만 이미 조선으로 건너갔으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수상하네. 조선 국왕을 위해 싸워서 조선에서 출세할 수도 있는데 왜 규슈로 돌아온단 말인가? 그런 자들은 믿을 수 없다. 붙잡아서 모조리 처형해라.”
“존명.”
히데요시는 석 달 이상 소식이 끊겼던 자들이 다시 마을에 나타나면 즉시 붙잡아 심문한 뒤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소집령에 응하지 않고 행방이 묘연한 자들은 조선으로 도망친 것으로 간주하고 영지를 몰수하겠다는 결심도 언명했다.
영지를 받은 무사라면 마땅히 소집령에 응해야 한다. 하지만 바다 건너 이국(異國)으로 나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소집을 피해 도피하는 자들도 간혹 있었다. 이런 자들은 굳건하게 기반을 갖추지 않은 뜨내기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히데요시를 혐오하는 규슈 토박이도 있다.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리고 난 히데요시는 아직도 싸우고 있는 가토와 고니시를 진정시켰다. 앞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원정에 나서야 할 자들이 벌써 개와 원숭이처럼 으르렁대니 실로 골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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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부를 둘러싼 성곽은 상당히 견고했다. 비록 석성이 아닌 토성이긴 하지만, 지금 성벽을 다시 쌓을 여유까지는 없다. 그리고 토성도 충분히 전투에 쓸 수 있다.
“성벽 자체는 개축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성벽 바깥에는 해자를 적당히 넓고 깊게 파고, 성벽 위에는 사수들이 그 뒤에 숨어서 총과 활을 쏠 수 있도록 토벽을 세워야 합니다.”
사나다 마사유키는 ‘남도축성사(南道築城司)’라는 벼슬을 받아 남으로 내려왔다. 부마가 된 아들 노부시게를 비롯한 여러 왜별기 군관들과 함께였다.
노부시게는 부마라는 신분상 본래는 족친위로 옮겨야 했다. 하지만 조선인만 있는 족친위에 그가 들어갔을 때 겪게 될 곤란함을 감안한 임금이 특별히 왜별기에 머무르도록 허락했다.
“알겠네.”
대구부사 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크게 눈에 띄는 공은 없었지만, 충실하게 자기가 맡은 몫을 다한 장수다. 임금이 특별히 선발해서 새로 내려보낸 사람이다.
“나도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주상께서 그대들을 보내신 걸 보니 알 만하네. 조만간 왜놈들이 이리 쳐들어오리라 예상하고 계신 모양이지.”
“저희로서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직 일본이 쳐들어오리라는 조정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하지만 전선을 확충하고 성을 보수하며, 방어의 핵이 되는 여러 지방관을 숙련된 무장으로 교체하는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백성들도 조금씩 술렁이고 있었다.
“전선을 건조하고 화포를 주조하는 일에 동원된 백성들이 소문을 퍼뜨리면서, 어떤 이들은 전하께서 무종 때처럼 구주 원정을 하시려는 모양이라고 수군거리고 있지. 하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군. 전하께서 구주를 치신다면 자네들을 보내 이곳 성벽을 보완할 필요가 없을 테니.”
“과찬이십니다.”
마사유키가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아들 노부시게가 부마가 되면서 졸지에 국왕의 사돈이 되었지만 언제나 언행을 조심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이었다.
처음에 임금에게 아들의 혼인 부탁을 했을 때는 설마 옹주를 내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 닥치자 놀랐지만, 그 의도 역시 곧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임금의 의도에 맞추려면 자신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저는 그저 왜국 땅에서 성을 지키며 싸워본 경험이 많기에, 적에 맞서 성을 지키는 전법을 조금 알려드리러 왔을 뿐입니다. 딱히 지금 당장 전쟁이 난다고 알리러 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 지금 당장 왜인들이 쳐들어 와서 대구성 밑에 도달하지는 않겠지?”
“설사 왜인들이 못된 마음을 먹고 대군을 일으킨다 해도 이미 철이 늦었습니다. 왜국에서야 수확을 마친 뒤 겨울에 싸움에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조선에 오려면 바다를 건너야 하니 말이지요. 지금 군사를 일으켜 바다를 건너면 얼마 싸우지도 못하고 뱃길이 끊길 겁니다.”
두 사람은 눈빛으로 깊은 의미를 교환했다. 일본이 쳐들어올 위험성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그러니까 공연히 난리를 쳐서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백성들을 놀라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조용히, 차분하게 진행해야 한다.
“부사께서도 아시겠지만, 대구부 주변에는 고을을 둘러싸는 산이 무척 많습니다. 이 산에는 모두 산성이 있지요. 이 성들을 여유가 있는 동안 모두 보수해 놓으면 적이 대구를 공격할 때 쉽게 뚫을 수 없는 철벽이 될 겁니다.”
대구 주변에는 달성, 용암산성, 팔거산성, 용두산성 등등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산성이 있다. 이런 성들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조경도 잘 알고 있었다.
“옳은 말일세. 모두 대구를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성이지. 어떤 성을 어떻게 보수할지 하나씩 살피며 논해 보세.”
시간은 있다. 적이 온다고 해도 내년이다. 이들에게 문제는 남은 시간 동안 과업을 얼마나 꼼꼼하게 처리하느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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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됩니다, 전하.”
주저하면서 꺼낸 고민인데 이항복은 단칼에 잘라버렸다. 예상했던 반응이긴 하지만, 역시나 안 좋은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성공하면 효과는 볼 수 있겠습니다만, 대가로 치러야 할 게 너무 큽니다. 전하께서 적에게 창독을 흘려 저들에게 두창을 퍼뜨리신다면 세상 만민이 전하의 행동을 가리켜 어찌 제대로 된 군주로서 할만한 합당한 일이라 하겠습니까?”
천연두 환자의 고름이 묻은 옷을 왜군에게 남겨준다거나, 딱지를 말려 갈아서 만든 가루를 식수에 탄다거나, 살아있는 천연두 환자를 적진 안으로 들여보낸다거나…이런 식으로 적에게 병을 퍼뜨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살짝 비쳤을 뿐인데 돌아온 건 단호한 거절이었다.
“우리 군사들이 적에게 패하고, 악의에게 몰려 단 두 개의 성만 남은 제나라와 같은 처지가 된다면 그런 수단을 쓸 수도 있고, 또 쓴다 해도 누구도 전하를 흉보지 않을 것입니다. 허나 지금 우리에게는 십만 정병이 있습니다. 이기기 위해 그런 음험한 방법이 필요치 않습니다.”
표현은 신랄했지만, 표정은 엄숙했다. 이항복 역시 내가 다가오는 전쟁을 눈앞에 두고 무척 긴장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전하께서 그런 수를 쓰셨다는 사실을 영원히 비밀로 할 수도 없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하늘을 날아 고름딱지를 뿌리지 않으시는 이상 수많은 하수인을 써야 하고, 그중에 어느 누군가는 입을 열고야 말 것입니다. 어찌 후세에 알려지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환자를 모으고, 고름을 긁거나 딱지를 채취하고, 이걸 살포할 수 있게 만들고, 직접 뿌리러 다니는 일까지. 여러 단계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작업에 종사할 이들 중에 몇 사람만 입을 열어도 전모가 맞춰지는 건 순식간이다.
21세기 사람으로서 상식을 아무리 굴려봐도 세균전이 정당하다고 인정받는 시대는 없었다. 중세에는 농성하는 수비대에게 시체나 오물 따위를 퍼붓곤 했지만, 그거야 야만적인 시대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문명화된 시대, 계몽된 시대에는 세균전은 맹렬하게 비난을 받았다.
19세기 미국인들이 인디언에게 의도적으로 천연두를 퍼뜨린 행각 같은 거로 일본에 대한 세균전을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그건 그놈들이 개새끼였던 거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개새끼 쪽으로 넘어가도 되는 건 아니니까.
“전하께서는 우리 백성 중에도 아직 종두를 맞지 않은 이가 수백만이나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옵소서. 병에 걸린 왜적이 우리 백성들에게 다시 병을 옮길 공산은 얼마든지 있사옵니다. 그러니 병을 퍼뜨리기보다는 가능한 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편이 좋다 보옵니다.”
그것도 내가 영 찜찜하던 부분이다. 군대라도 동원해서 강제접종을 하지 않는 한은 접종률 100%는 만들 수가 없다. 주전장이 될 경상도 남부 일대는 인구가 많은 편이라 더더욱 종두를 안 맞은 사람도 많다. 그래, 접자. 그냥 싸워서 이기지 뭐.
“그래, 그 일은 없던 거로 하지. 헌데 그대는 곧 닥칠 싸움에서 써먹을 만한 안을 생각해둔 게 혹시 있는가?”
“거제도에 모여 있는 순왜들을 활용할까 하옵니다.”
마사유키가 자기 마음에 드는 자들을 골라 뽑아가고도 거제도에는 아직 2천을 넘는 일본인 망명자들이 있다. 이항복은 이미 그들 중에 금위사 끄나풀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순왜들 중 믿을 만한 이들을 골라 구주로 숨어들게 하여 적이 발진할 기미가 보이면 즉시 대마도로 알리게 하겠습니다. 본향으로 돌아가면 들킬 가능성이 크니, 떠돌아다니는 객승이나 장사꾼, 비렁뱅이로 변장하게 해야겠지요.”
“음, 좋은 수다.”
원래 비밀스럽게 움직이려면 본래 신분은 가능한 한 숨겨야 하는 법이다. 어디 수상한 일을 하면서 본래 모습 그대로, 그것도 고향 땅에 가서 그 짓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저들을 경상우수영에서 수병으로 쓰자 하였사온데, 그중 일부는 육군으로 돌리심이 어떨까 하옵니다. 만에 하나 왜적들이 우리 땅에 내릴 경우, 그 안에 숨어들어서 왜군인 듯이 행동하며 저들의 기밀을 캐고 치중에 불을 지르며 내분을 조장할 군사가 필요하옵니다.”
아르덴 대공세에서 활약한 트로이 목마 여단을 만들자는 말이렷다? 좋다. 왜군 배후를 쓸고 다니는 왜군이라, 시키면 잘할 거다. 어차피 저놈들은 백 년 동안 내전을 치른 사이라서, 서로 통일된 민족의식 같은 것도 없으니까.
“좋다. 5백 명을 따로 할애할 테니 편성토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