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4
1부 0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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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녹수를 만나고 나니 약간이나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안 좋은 소식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생겼고, 기존에 준비하던 일들도 좀 더 즐겁게 진행할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활력 재충전?
처음 만났을 때는 하도 예뻐 보여서 잠시 눈이 멀었다. 하지만 궁으로 돌아온 뒤 곰곰이 생각하자 정신이 들었다. 진짜 연산군이 간 길을 그대로 걷지 않겠다고 그토록 결심하지 않았었나? 그래서 후궁도 더 들이지 않고 버텼는데, 하필 장녹수한테 반하다니 제정신인가?
장녹수가 연산군에게 붙어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는 나도 대충 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일단 유혹에 넘어가면 어찌될지 모른다. 베갯머리송사 이상 가는 게 있던가, 어디.
아무리 청순가련하게 생겼어도 저건 장녹수다. 그 악명은 나도 익히 아는 터, 굳이 역사와 같은 사람인지 아니면 ‘실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지 알기 위해서 모험해 볼 필요는 없다. 마침 남편도 말짱하게 살아 있으니 더 잘 됐다. 가수는 그냥 가수로 보고 즐기기로 하자.
결심을 하고 미련을 떨쳤다. 그래도, 기왕이면 중전과 두 후궁들이 장녹수 반만큼만 현대적으로 생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쨌든 미인을 보고 다른 쪽으로 머리를 굴린 것만으로도 그간 쌓인 스트레스는 좀 풀린 모양이다. 그 덕인지 진행하고 있던 여러 프로젝트도 비교적 큰 탈 없이 진행되었다. 심지어 이런 소식도 크게 절망감을 느끼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충청도 땅에서 홍길동이라는 도적이 날뛰고 있다고?”
“그러합니다, 전하.”
충청감사가 올린 장계에 따르면, 홍길동 일당은 그 수가 수백에 달하여 동서를 누비며 아침에는 홍성, 저녁에는 청주에 나타날 지경이라고 했다. 별로 이상할 건 없어 보였다.
왜냐고? 홍길동 일당이 정말로 그 수가 수백이라면 아침과 저녁에 서로 다른 고을에 출몰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 작정만 하면 한 날 한 시에 충청도 전역에 나타나는 묘기도 부릴 수 있을 게다. 신문도 없고 TV도 없는데 나타난 홍길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알겠는가.
“포도청에 일러서 도둑을 잡는데 경험이 많은 포교 열 명을 충청도로 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충청감영에서든 어디서든 홍길동을 붙잡으면 붙잡은 이에게 저화 백 섬을 주겠으며, 홍길동을 잡을 수 있도록 그 소굴을 고변한 자에게는 스무 섬을 주겠노라.”
뭐든지 달성하려면 돈 거는 게 최고다. 사람을 잡으려면 현상금을 걸고, 성과를 내게 하려면 포상금을 걸어라. 사람은 그게 누구든 돈 걸린 일에는 눈빛이 달라지는 법이다.
“전하, 일개 도적의 목에 거는 상금으로는 너무 과한 액수가 아닐까 하옵니다.”
“전혀 과하지 않다. 여기 충청감사가 올린 장계에 따르면, 홍길동의 일당은 돈 있는 민가를 털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관청의 곡식까지 훔쳐 욕심을 채웠다. 이들이 더 세를 키우기 전에 붙잡아야 관의 위엄이 설 것이다.”
설마 이 홍길동이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길동처럼 신통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테지. 하늘을 날고 변신술을 구사하는 도사가 아니라면, 결국 언젠가는 잡히게 마련이다. 전우치도 임꺽정도 결국 다 잡혔다.
“홍길동과 같은 도적이 날뛰는 이유를 따지고 보면 결국 올해 충청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내년 농사가 잘 되고 백성들이 나라의 은혜를 알게 되면 도둑의 무리는 절로 그 기세가 수그러들 것이다.”
국민들이 등 따시고 배부른데 망하는 나라는 없다. 그게 제대로 안 되면 불만이 생기고 내부가 혼란해지며 외부의 침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경제사정이 안 좋아지면 범죄가 늘어나는 이치를 생각하면 된다.
“그보다,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수일 전에 병판은 내후년에나 군사를 내어 야인을 치도록 고려하자 했으나, 과인이 보기에 명년 봄에는 꼭 야인을 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하들이 술렁거렸다. 이 망할 자식들, 그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중신들이 전쟁하지 말자고 한 진짜 이유를 알 것 같다. 바로 새로운 권력자, 경쟁자의 출현을 달갑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규모 군사원정과 이를 통한 대승리는 새로운 스타를 출현시킨다. 세종대왕 때 4군 6진 개척을 통해 이름을 떨친 이가 김종서와 최윤덕이고,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통해 구성군 이준, 남이, 유자광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후자는 20대의 젊은 무신들로 기존 훈구파 권력집단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그 마무리는 예종대에 남이가 역모 혐의로 처형되면서 끝났다. 원래 그 일파인 유자광은 기존 권력자들 편에 붙어서 살아남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인이 원하는 바는 모든 조선 백성들이 야인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헌데 지금 조정에서는 출병을 거부하는 주장이 대세로다. 물론 이는 2년째 흉년이 든 데다 대규모로 군사를 동원해도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예상 때문이리라 본다.”
성종 말기, 1490년에 2만에 달하는 군사로 6진 일대의 여진족들을 토벌한 일이 있었다. 내가 확인한 야인에 대해 가장 최근에 벌인 대규모 군사행동이 이 사건이다.
이때 조선군이 거둔 전과는 건국 이래 최대 병력을 동원했다고 말하기에 심히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거둔 수급은 불과 9급, 2만 군사가 출동해서 겨우 9명을 죽인 것이다. 정보가 샌 데다, 정복이 아니라 토벌에 나설 수밖에 없는 조선군의 한계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결과였다.
“과거 전례를 보면, 기해년(1479년)에는 불과 천여 명의 군사로 적을 들이쳐 16명을 베고 15명을 붙잡았으며, 포로로 잡힌 중국인 7명을 구출하기도 하였다. 지난 경술년에 2만이나 되는 군사가 나가서도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 못한 일과 심히 대비되는 바라 할 수 있다.”
“전하, 그리 말씀하심은 원정에 동원하는 군사 수를 줄이겠다는 말씀이신지요?”
병조판서 이계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동안 조정에서 논의한 바, 원정군 규모는 대략 만 오천여 명 정도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정을 ‘한다면’ 말이지만.
“그러하다. 기병을 중심으로 한 정병 2천 명 정도로 하여 압록강 일대의 야인 부락을 들이치고, 가능한 많은 우리 백성들을 구출해 오려 한다. 그 정도 규모라면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적들이 쉽게 몸을 빼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 타협하자. 내가 원하는 잘 갖춰진 대규모 원정이 안 된다는 게 신하들 입장이면, 일단 소규모 원정부터 하면 될 게 아닌가. 페라리를 타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되면 일단 티코라도 타면서 후일을 노려야지 언제까지 걸어서 다니겠나.
“원정은 눈이 녹기 시작하는 내년 3월로 하겠다. 평안도 기병 1천 5백에 보병 3백, 내금위 무사 2백을 동원하여 정예 2천 군사로 압록강 일대의 야인 부락을 소탕한다. 지금부터 각 고을에 영을 내려 군사와 병기를 준비토록 하라!”
빠른 기병을 소수 동원하여 붙잡혀간 백성들을 구출해내는 정도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내년 봄으로 원정을 약간 미룬 이유는 내금위 무사들 때문이다.
굳이 내금위 무사들을 포함시키는 이유는 총이 가진 효과를 전장에서 제대로 선보이고자 함이다. 하지만 저들은 이제 막 조총을 지급받은 터라 실전에 나가 봐야 화약만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 저들이 총을 능숙하게 다룰 때까지, 단 몇 달이라도 훈련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외교적인 이유 때문에도 여유시간은 필요하다.
“예조에서는 다음 사행 편으로 명나라에 출병 배경을 설명하는 서한을 보내도록 하라. 압록강 건너는 바로 요동이라, 자칫 명나라 측이 쓸데없는 오해를 하게 만들 수 있다.”
“예, 전하.”
예조판서 이세좌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이세좌는 그동안 명나라와의 충돌을 고려하여 야인 토벌을 가능하면 미루자는 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내가 확실한 의지를 드러내자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병판, 내년 3월에 군사를 내겠다는 과인의 계획에 혹시 불만이 있는가?”
조선에서 군사를 움직이는데 있어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이 병조판서다. 임금도 결국 병조판서를 통해서야 군대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내수사 노비들을 동원해서 정말 내 말만 듣는 친위부대를 양성할 생각을 한 거고.
만약 이계동이 오늘도 반대하면 서슴없이 잘라버릴 작정이다. 그동안 거의 4년을 웬만한 일은 다 신하들 하자는 대로 해주면서 양보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참을 만큼 참지 않았나?
“전혀 없사옵니다. 백성들을 생각하시는 성심에 어이 이의가 있겠나이까. 다만 신은 그동안 전하께서 대군을 편성하시려 함에 있어 여건이 부족하다고 말씀드렸을 뿐이옵니다.”
말은 좋다. 출병 자체를 꺼리는 게 내 눈에도 빤히 보였구만. 어쨌거나 더 이상 반대 않겠다니 됐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년 봄에는 꼭 군사를 내어 야인을 치겠다. 다들 그리 알고 준비를 확실히 하라! 또한 이 사실이 야인들에게 새어나가 저들이 대비하지 않도록 기밀 유지를 철저히 하라!”
내 의지가 확실함을 알자 다른 신하들도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영의정 한치형을 필두로 한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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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별렀던 일들은 기세가 올랐을 때 해치워야 하는 법이다. 며칠 뒤에는 조정에 새로운 안건을 하나 올렸다.
“의금부 내에, 하위부서를 하나 만들어야겠다. 혹시 역적모의를 꾸미거나 도적질을 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는지, 전국에서 그 소식을 받아들여 분석할 기구가 필요하다. 명칭은 금위사(禁衛司)라고 붙이려 한다.”
물론 지금도 각계에서 들어오는 고변은 받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첩보를 수집하는 기관은 없다. 내 제안은 그 사실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경들도 기억하겠지만 올해만 벌써 역모가 두 건이나 있었노라. 왕실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패, 거기에 직접적으로 시역을 도모한 패까지 있었단 말이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적극적으로 역적들을 찾아내어 쳐 죽여야 한다.”
무오사화야 사실 내막을 보면 사림 일부가 지들끼리 왕실 뒷다마를 깐 거에 불과했고, 이미 알고 있으니 준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배목인 일당이 저지른 미친 짓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조선 천지에 그런 놈들이 또 없으란 법이 없다.
더구나 나는 앞으로 이것저것 더 바꿔 나갈 작정이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이들이 더 생길 것은 확실하다. 그중 한발 더 과격하게 나갈 자들, 즉 반정을 도모할 수 있는 자들을 미리 솎아냄이 내가 원하는 바다.
“전하, 지금도 각 고을에서 관장들이 불온한 소문을 접하는 대로 그 즉시 파발을 띄워 조정에 그 소식을 알리고 있사옵니다. 자칫 옥상옥이 될 것인데 꼭 필요하지도 않은 기구를 굳이 만드셔야 하겠습니까?”
이조판서 신수근이었다. 역시 딱 적절한 타이밍에 아주 적절한 이의제기였다. 나도 미리 준비하고 있던 반론을 아주 자연스럽게 터트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대가 말하는 관장들의 활동이 얼마나 효과적이었기에, 지난번 배목인 일당의 역모 때 전라감사와 구례현감이 사전에 단 한 마디도 보고가 없었단 말인가? 과인이 반역향인 구례현을 아예 없애버리려다 말았던 사실을 잊었는가!”
내가 고함을 치자 조정 대신들 전원이 찔끔하면서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배목인 건에 있어서, 내가 언급한 관리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란이 일어난 고을을 없애버리는 건 고려 때부터 종종 있는 처벌이었다. 말 그대로 주민을 다 죽이고 마을을 불태워버린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행정구역을 폐지해서 옆 고을에 소속시킬 뿐이다. 이번에 구례현에 대해 거론된 처벌도 그 레벨이었다.
“금위사는 추후에 이런 망극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전국 방방곡곡에서 역적들이 혹 무슨 일을 벌이지 않는지 탐색하는 기구로 삼을 것이다. 그 출처가 일개 사당패, 장돌뱅이라 해도 허투루 듣지 않으리라. 이번 역모도 한 사당패가 처음 고변하지 않았더냐.”
예상대로다. 표정에 불만을 내비칠지언정 신하들 중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게 누구건 명백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는 법이다.
“금위사 책임자는 지난번 역모를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의금부 경력 정호찬으로 하여금 겸하게 하려 한다.”
정호찬은 사실상 이제 내 수족이다. 생각 같아서야 그를 아예 판의금부사 정도로 승진시켜 의금부 전체를 내 마음대로 부리고 싶다. 지금이라고 의금부가 개기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내 말을 잘 듣는 이가 의금부를 움직이는 편이 좋은 건 당연하다.
“전하, 경력 정호찬은 이제 겨우 그 벼슬이 종4품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동지사도 아니고 그 밑에 있는 직책이다. 종4품으로도 충분하다.”
솔직히 내 의도는 의금부를 진짜 비밀경찰로 만드는 거다. 비밀경찰은 다른 게 무서운 게 아니다. 언제 어디서 내가 지껄인 말이 권력자의 귀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그 사실이 가장 무서운 거다.
앞으로는 배목인처럼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간 작자건, 역사 속의 중종반정처럼 내 정책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건 그 누구도 안심하고 일을 도모할 수 없게 만들어줄 테다. 지나가는 거지가, 부리던 노복이 금위사 끄나풀이 아니리라고 믿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