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47
2부 225화
– 11 –
“왜적이 발포진을 급습했다고!”
이순신으로서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겨울 동안 경상우수영을 이전하고, 봄이 온 뒤에 수영에 속한 전선을 소집해서 수조를 벌이면서도 대마도 방면에 대한 경계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쪽에서는 어떤 동향도 없던 적이 난데없이 좌수영 구역을 칠 줄이야.
“예, 영감. 천여 척에 달하는 왜선이 동틀 녘에 남쪽 바다에서 느닷없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정걸 영감께서 급히 구원해 달라고 청하고 계십니다.”
정걸이 보낸 구원을 청하는 사자는 단 이틀 만에 우수영에 도착했다. 보통 사흘 정도 걸릴 거리를 이틀 만에 왔으니, 격군들이 얼마나 미친 듯이 노를 저었는지 알 만했다.
“마땅히 도와야 할 일이다. 어허, 발포진이라니.”
이순신은 그 자신이 발포만호로 근무했던 바가 있다. 그러니만큼 발포진에 가장 먼저 적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컸다. 더불어 유감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왜구들이 경상도 인근 바다를 지나지 않고 전라좌수영 인근 지역에 갑자기 나타난 전례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도 경상도에만 역량을 집중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조선 수군은 대마도를 중심으로 한 경계망 확충에만 노력을 쏟았다. 적이 대군으로 쳐들어온다면 대마도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사이를 왕래하는 데 꼭 필요한 중계점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순신이 과거 왜구가 전라도를 바로 덮쳤던 적이 있음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전라좌수영은 이순신이 담당한 구역이 아니었을 뿐이다. 남도수군통제사로서 각 수영에 명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전쟁이 실제로 터지기 전까지는 발동되지 않았다.
”즉시 각 진포에 연락선을 보내서 출동을 준비하라고 명하라. 또한, 가장 빠른 배를 내어 전라좌수영 상황을 파악하고, 어느 정도 도움이 필요한지 확인하라.”
최악의 경우에는 전라좌수영이 완전히 궤멸당했을 수도 있다. 전라좌수영은 보유하고 있는 전선 대부분을 흥양에 두고 있으니, 자칫하면 본영밖에는 안 남았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경상우수영이 바로 싸움에 나서야 한다.
“정 수사가 전력을 제때 빼돌렸어야 할 텐데.”
적 수천 명이 이미 땅에 올라 육지에서 공격해 온다면 수군으로서는 진포를 지켜낼 도리가 없다. 성을 불태우고 그 안에서 죽거나, 배를 타고 도망치는 길뿐이다. 장수로서 지켜야 하는 긍지를 생각하면 전자를 택해야겠지만, 최대한 오래 적과 싸우려면 후자를 택해야 한다.
물론 그 후퇴는 최상급자의 명령에 따라 통제되어야만 한다. 일선에 나간 장수나 군사들이 목숨을 구하려 멋대로 도망친다면, 이는 군이 무너지게 만드는 일이자 임금의 은혜를 허무는 반역이다. 마땅히 참형에 처해 마땅한 죄인이 된다.
하지만 정걸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발포진은 구하지 못하리라. 천여 척, 수효를 절반으로 줄여서 잡더라도 5백 척은 될 왜선이 쳐들어 왔다. 그 많은 배가 발포진에 과연 들어올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발포진 군사들을 압도할 건 분명하다. 만호 박홍섭은 최선을 다했겠지만.
“발포만호가 좀 더 철저히 경계했으면 좋았을 것을요.”
휘하 군관 한 사람이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찼다. 발포만호가 더 철저하게 탐망선을 띄웠다면 조금 더 일찍 적을 발견했을 게 아니냐는 거였다. 이순신은 고개를 저었다.
“조정에서 그리 오지 않으리라 했는데 발포만호가 무슨 의심을 했겠느냐. 또한, 천여 척에 달하는 적이 닥쳤다면 한 시진 정도 일찍 발견했다 한들 결과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겠지. 어쩌겠느냐, 이 역시 하늘의 뜻인 것을.”
이미 일어난 일을 두고 달리 대응했으면 더 좋았으리라고 후회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그보다는 지금부터 수습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순신은 신속하게 휘하 전선을 소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조항진 소속 전선들을 모두 평산포에 집결하게 하라. 다만 가덕진 소속 전선들은 군사를 소집하기만 하고 각 진포에서 대기하라.”
전군을 전라도로 출동시키지 않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발포진을 덮쳤다고 하는 왜선 천여 척은 미끼일지도 모른다. 경상우수영 전선 백여 척이 모조리 전라도로 나가면 그 틈을 타서 대마도를 빼앗고, 부산포까지 공략하려는 수작이 아니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냉정하게 판단하면 조선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대마도를 거쳐 공격하는 길이 사실상 유일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실제 전례를 보아도 그렇다.
대마도에 근거지를 둔 왜구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과거에 원나라가 고려군과 함께 두 차례 일본을 칠 때나 무종 때나 명종 때 구주에 출병했을 때도 늘 대마도를 거점으로 삼았다. 섬이 중계점이자 기항지로 삼기에 충분히 컸기 때문이다.
왜적이 흥양으로 쳐들어올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부산으로 들어올 주력군을 보호할 의도로 보낸 의병(疑兵)일 공산이 크다고 생각했다. 신장이 거느린 군사가 50만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2만 정도는 의병으로 날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물자와 병사를 실은 배가 꾸준히 오가기에 구주에서 흥양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작정하면 왕래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조선 수군이 그 꼴을 두고 볼 리 없다. 전라좌수영이 당하더라도 경상우수영과 전라우수영이 양면에서 공격하여 피떡을 만들어놓을 것이다.
일단 출동 준비를 진행하면서 전라좌수영에서 상황을 명확히 알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첩보니까. 그런 면에서 챙길 곳은 또 있다.
“경상좌수영에 사자를 보내 전라도에 난이 발발했음을 알리고, 모든 전선을 소집하게 하라! 대마도에 가 있는 좌수영 군사들에게도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명하여 적이 성동격서로 이쪽 방면을 노리고 있지 않은지 탐지케 하라.”
“예, 영감.”
전쟁이 터진 이상 각도에 있는 수군절도사들은 모두 이순신의 휘하에 들어온다. 공식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 권한을 가능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 12 –
개전 나흘째. 속속 장계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전라좌수사 정걸, 전라병사 최원, 전라감사 이청 등이 보낸 장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아들었다. 조정에서는 연달아서 들어오는 장계를 받아 분석하기 바빴다. 이제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보가 좀 쌓인다.
“가장 먼저 적습을 받은 발포진은 전멸하였으나, 다른 세 진포를 지키던 장졸은 모두 성을 버리고 탈출하였습니다. 적을 눈앞에 두고 성을 버림은 참형에 처할 죄이오니, 당장 선전관을 보내 세 장수를 처형하시고 전라좌수사를 파직하소서.”
“닥치라! 사도첨사와 여도만호는 엄연히 좌수사가 판단하여 내린 명령에 따라 물러났거늘, 그 무슨 망발인가? 또한, 좌수사는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그런 명령을 내렸으니 문제가 없다. 자고로 전선에 나간 장수는 필요에 따라 군주의 명도 따르지 않을 수 있다 하였느니라!”
함대 전력 무사히 보존하고, 병력에다 백성까지 구해서 철수했으니 정걸한테 훈장을 내려도 부족할 판이다. 그런데 처형하라고? 파직? 미친 소리!
물론 흥양현 구출을 포기한 건 냉정한 처사이기는 하다. 하지만 천여 척에 달한다는 적군을 상대로 함대를 보존하자면 뾰족한 다른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전라좌수군이 앉은 채로 소멸한다면, 흥양을 차지한 왜군은 거침없이 동진할 수 있다. 경상우수군과 격돌할 때까지.
“경상우수군, 이순신으로부터는 장계가 올라왔느냐?”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침착하자, 침착해. 여수에 있는 전라좌수영에서 경상우수영이 있는 통영까지는 보통 뱃길로 사흘이 걸린다. 그리고 통영에서 말로 올라오면 이틀은 걸린다. 기다리자. 영남 방면 방어태세 살핀다고 간 이항복도 아직 안 올라왔잖아. 분명히 자세한 소식을 가지고 올라올 거야.
“전라우수영에서는?”
“모든 전선을 목포진으로 모으고 있다는 전갈이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바로 출정하여 좌수영을 돕겠다 하는데, 윤허하시겠사옵니까?”
“마땅히 윤허한다!”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더구나 수군에게 있어서 지금 관할구역 따위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당장에 전라좌도가 무너질 판이니 이억기가 출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워낙에 젊은 장수라 아무래도 카리스마가 좀 부족할 게 걱정이지만, 그거야 종친 버프와 실적으로 해결해야지.
“아, 그리고 녹도진은 당분간 임시로 우수영에 편제하라 이르라! 지금 형편으로는 좌수영에 합류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좌수영에도 그리 알리라.”
“예, 전하.”
녹도만호 정운은 육지 쪽에서 밀려드는 적군과 한나절 가까이 싸웠다. 발포진에서도 소식이 끊기고 흥양현도 완전히 뺏겼음이 분명해지자, 고심 끝에 전선 두 척에다 살아남은 군사들과 백성들을 태우고 탈출했다고 했다. 나머지 배는 성에 남은 무기, 군량과 함께 모두 불태웠고.
군사들은 갑판 위에서 총과 활을 쏘아 적을 막고 백성들은 갑판 밑에서 노를 저었다. 적이 육지에서만 왔기 때문에 바다는 열려 있었고, 덕분에 비교적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사실 전선 두 척에 탄 양민이라야 그 수가 얼마 안 된다. 하지만 적이 오기 전에 미리 배를 저어 다른 곳으로 피한 백성들이 많았던 덕분에, 녹도진에서 적에게 붙잡힌 이는 거의 없다고 했다. 정말 불행 중 다행이다.
일단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를 통해 상황을 보면 일본군은 고흥, 그러니까 흥양을 교두보로 해서 북쪽으로 진격할 모양이다. 임진왜란 때처럼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조선 임금, 즉 나를 붙잡으려고 한다면 최대한 빠른 길로 전격전을 펼치겠지?
순천, 남원, 전주로 올라오는 코스를 타면 북쪽으로 쭉 올라오기만 해도 한양이다. 노부나가 놈이 과연 한반도 지리정보를 정확히 알고 그런 계획을 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곧바로 임해군의 존재가 떠올랐다. 젠장, 그놈이 노부나가 옆에 있지!
아직 노부나가가 임해군을 조선 국왕으로 선포했다거나 하는 소식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쯤 왔으면 놈이 자의건 타의건 순왜가 되었을 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노부나가가 칼을 겨눴을 때 임해군이 ‘절개를 지킬’ 리가 없지 않은가?
원균 역시 그렇다. 나로서는 그래도 설마 원균이 왜놈 앞잡이 노릇까지 할까야 싶고, 못난 짓을 그동안 좀 했어도 되도록 인간의 선은 지켜줬으면 싶다. 그래도 조선의 무인이 아닌가. 하지만 역시 믿지는 못하겠다.
자의든 타의든 저 둘이 노부나가에게 협력한다면, 아는 게 없으니까 최고급 군사기밀은 안 빠져나갈지 몰라도 지리정보 정도는 얼마든지 새나갈 수 있다. 정말 엄청난 손실이랄밖에.
– 13 –
“사격전을 더 벌여봐야 소용없겠다. 그대로 진격하라!”
앞을 막은 조선군은 3천 명 정도였다. 인근 지역에서 급하게 불러모은 듯, 웅성거리는 데다 지친 티가 역력했다. 다만 허리 높이로 흙벽을 쌓고 그 뒤에 숨어서 총과 활을 쏘고 있어서, 사격으로만 적을 제압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듯했다.
게다가 흙벽 앞에는 얕기는 해도 호까지 파놓았다. 필시 호를 파서 나온 흙으로 바로 벽을 쌓은 게 분명했다. 벽이고 호고 전부 뛰어넘지 못할 만큼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적이 그 뒤에 숨어 있으니 귀찮은 방해물임은 확실했다.
“빌어먹을 고니시 놈. 자기 담당구역이 흥양까지라고 해서 저놈들이 진지를 쌓는 꼴을 빤히 보면서도 손도 대지 않았다니.”
고니시 군, 엄밀히 말하자면 소 요시유키 군 병사들은 상륙한 다음 날에 지협을 확보했다. 먼저 여기 도착해서 방어준비를 하던 조선군을 격파해서 뒤로 밀어냈지만 그뿐이었다. 적군이 도주하는데 추격하지도 않았고 새롭게 나타나는 적군이 집결하기 전에 쳐부수지도 않았다.
같은 날 오후에 도착한 가토 군과 후쿠시마 군은 흥양현에서 어제 하루를 휴식했다. 항해가 워낙에 피곤했던데다, 중간에 침몰하거나 실종된 배들이 좀 있었던 탓에 적어도 하루 정도는 쉬면서 각 부대를 재편성할 필요가 있었다. 수군과 해적이 중심인 1군과는 달랐다.
2군은 휴식을 취한 뒤 전투를 시작하러 나왔다. 그런데 오자마자 조선군이 병력을 증원하건 흉벽을 쌓건 개의치 않고 방관하는 요시유키를 보았으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공은 뭐 하는 거요? 두 방향에 있는 적이 적이 저렇게 눈앞에서 벽을 쌓고 호를 파는 걸 보고도 양쪽 다 그대로 두었단 말이오?”
“어느 쪽이든 걸어서 반 때(1시간)는 걸리는 거리요. 지금 우리 병력으로는 흥양에 들어가는 이곳 입구만 지키는 것도 빠듯하오. 나가서 저들을 칠 여유가 없소.”
가토와 후쿠시마로서는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요시유키는 4천 병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숫자를 자기들이 가지고 여기 있었다면 조선군이 벽을 쌓기도 전에 치고 나가서 박살을 냈을 것이다. 벽을 쌓는 동안 빈둥거리기만 했으면서 다 쌓고 나니까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됐소. 귀공은 뒤로 물러나 길목이나 지키시오. 우리가 알아서 뚫고 나갈 테니.”
“분명히 요시유키 저놈이 조선 국왕의 신하라서 저렇게 뭉그적거린 게 분명하다. 쳐죽일 놈 같으니!”
가토가 전방에 펼쳐진 조선군 방어선을 보면서 혼자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그는 순천으로 가는 동쪽 길을,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보성으로 가는 서쪽 길을 맡기로 했다.
가토는 순천을 치고 바로 남원을 거쳐 전주로 올라간다. 자기가 적극 지지했던 강원도 상륙 작전에서 빠진 건 유감이었지만, 이쪽 방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전주는 조선 왕실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왕실의 발상지라고 하니까 말이다.
후쿠시마는 가토를 엄호하는 한편으로 전라도 자체를 제압하기 위해 움직인다. 강진에 있는 전라병영부터 깨고 나주, 전주를 공략할 예정이었다. 그 뒤에야 남원에 도달하게 된다. 친구인 후쿠시마와 남원에서 만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쪽 이동거리가 훨씬 기니까 쉽지 않으리라.
당연히 이들 두 사람이 거느린 병력만으로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 이들이 조선군을 헤집어놓고 지나가면 뒤이어 도착할 히데요시 군 본대가 적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첫 상륙을 맡은 고니시를 일부러 주저앉히고 선봉을 자신에게 내준 주군이 곧 뒤따라온다. 그 은혜를 갚자면 가능한 한 빨리 진격하여 조선 도성을 함락시키고, 임금을 붙잡아서 주군께 바쳐야 하리라.
“진군하라!”
선두에 선 창병들이 엄호사격을 받으며 비탈 위로 전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조선군 궁수와 조총수들이 흉벽 위로 몸을 내밀고 사격을 가하고, 창과 칼을 든 자들은 충돌을 준비했다.
창병들이 입은 갑옷은 조선군이 쏘는 총탄과 화살을 막아내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묵묵히 전진하던 병사들은 조선군의 사격에 맞아 잇달아 쓰러졌다.
하지만 그 대열이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가를 생각하면 쓰러지는 병사는 일부일 뿐이었다. 한 명이 쓰러지면 곧바로 옆에 있던 병사들이 약간씩 움직여서 대열에 생긴 공백을 메웠다. 덕분에 번쩍이는 창날의 열도 끊어지지 않고 조선군을 겨누었다.
조선군 쪽에도 사상자는 꾸준히 나왔다. 가토 군 조총부대도 맹렬히 총격을 퍼부었고, 적은 아군보다 숫자가 적다 보니 흉벽이 있음에도 사격전에서 열세였다. 조총부대가 적을 견제하는 동안 창병대가 점점 적이 쌓은 흉벽에 가까워졌다.
“적이 치고 나옵니다!”
조선군이 초조해진 모양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이점을 살려볼 생각인지, 창과 칼로 무장한 병사들이 흉벽을 넘어 달려내려 왔다. 가토는 그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딱히 명령을 추가로 내릴 필요도 없었으니까.
“하아앗!”
병사들이 일제히 내지르는 함성이 들렸다. 길게 뻗은 장창이 허공으로 치켜들어지나 하는 순간 일제히 내리쳐지면서 달려드는 조선군 병사들의 머리와 어깨를 후려쳤다. 충분히 떨어져 있음에도 저들이 지르는 비명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적은 상당수가 투구를 쓰고 있었지만 생전 처음 당해보는 타격을 견뎌내기는 힘든 듯했다. 그럴 것이다. 장창으로 내리칠 때 가해지는 타격은 허구한 날 창질을 하는 아시가루들에게도 견디기 어렵다. 하물며 처음 이런 전술을 접하는 조선군이 그 고통을 어찌 버티랴.
“밀어붙여라!”
적을 두들겨 쫓은 창병 대열은 이제 창을 허리 높이로 낮춰 들고 일제히 전진했다. 흉벽에 남아있던 조선군 궁수와 조총수들이 허겁지겁 무기를 겨누었지만, 도망쳐 돌아오는 자기편이 방해되는 바람에 제대로 쏠 수가 없었다. 그 틈에 가토 군 병사들이 흉벽에 도달했다.
“좋아, 넘어라! 그대로 밀어붙여!”
조선군이 완전히 무너졌다. 흉벽 뒤에서 버티고 있던 병사들도 쫓겨오는 아군에게 휩쓸려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고, 대장으로 보이는 장수도 곧 부하들의 뒤를 따랐다.
가토가 흡족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침 그쪽에서도 서쪽 평지 길로 나간 후쿠시마 군이 지금 막 조선군을 쳐서 쫓아버리는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