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55
2부 2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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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겨우 이틀 싸워서 70척이나 되는 배를 잃고, 병력은 2천 명이나 잃었다고?”
히데요시는 화도 내지 않았다. 기가 막혀 입을 떡 벌렸을 뿐이었다.
“그럼 빼앗거나 가라앉힌 조선군 배는 몇 척이나 되고, 수급은 얼마나 거두었는가?”
“총과 활로 쏘아죽인 조선군은 수가 좀 되나, 배는 한 척도 부수지 못했고 수급도 하나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고니시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다른 수군 장수들은 입을 꾹 다물고, 모든 답변을 고니시에게 떠맡긴 상태였다.
“그나마 내 함대가 도착해서 적이 물러나는 바람에 싸움을 중도에 그쳐서 그 정도로 피해가 그쳤다고? 계속 싸웠으면 적에게 제대로 피해도 주지 못하고 모든 배가 가라앉았을 거라고?”
기가 막힌 상황에 반쯤 넋이 나간 히데요시가 계속 뇌까렸다. 고니시 이하 1군 장수들은 할 말이 없어 계속 침묵을 지켰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히데요시는 이번에 보급품보다는 병력을 주로 운반해서 9백 척에 3만 명을 싣고 넘어왔다. 군량은 1군과 2군이 실어온 것으로 일단 충당하고, 추가로 필요한 분량은 조선에서 노획하여 보충할 생각이었다. 4군도 물자보다는 병력을 많이 싣고 올 예정이다.
“이틀 뒤에는 4군이 온다. 그리고 내가 몰고 온 함선들도 돌려보내야 하는데 조선 수군이 저렇게 설친다면 어찌 배가 안전하게 규슈를 오갈 수 있단 말이냐?”
3군, 4군이 이용할 배 중 절반은 1군, 2군이 몰고 왔던 배들이다. 그 뒤로 갈수록 반복해 사용해야 하는 선박의 비중이 늘어난다. 조선 수군이 동서에서 흥양을 포위하고 계속 공격을 퍼붓는다면, 선박 손실은 일본군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이 될 터였다.
“이제까지 규슈와 흥양을 오가는 도중에 상실한 배만 70여 척인데 싸움 두…아니 세 번을 벌이고 70척을 잃다니. 게다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다니.”
히데요시는 벌떡 일어서서 머리를 싸쥔 채 군막 안을 혼자 걸었다. 고민하는 상관을 보면서 부하 장수들도 침묵을 지켰다. 한참 고민하던 히데요시가 발길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수군은 잘 모른다. 고니시, 그대가 판단하기에 우리가 최대한 손실을 줄이면서 조선 수군과 상대하려면 어떤 방안을 쓰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느냐?”
“싸우지 않아야 합니다, 주군.”
지금이 기회다. 마쓰라, 아리마 두 적극적인 호전파 장수들은 어제 입은 패배로 기가 죽어 있다. 다른 장수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지 않는 만큼, 고니시로서는 지금이 히데요시에게 수군에 관한 자기 의견을 확실히 전할 기회였다.
“남만포라도 가져오면 모를까, 오오쓰쓰 정도로는 조선 수군이 배에 실은 화포와 대적하기 힘듭니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벌인 전투에서, 조선 전선에 유효한 무기는 노획한 조선군 화포뿐이었습니다.”
어제 일본 함대는 낭도에서 쏘아대는 포격을 받고 조선 전라좌수군이 추격을 중단한 덕분에 겨우 살아났다. 오늘 전라좌수군은 낭도에서 멀리 떨어진 위치로 기동하면서 원거리에서 포를 퍼부었다. 역시 일방적으로 난타당했지만, 거리가 멀어서 어제보다는 손실이 적었다.
수송선단 호위함대에 있어서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전라우수군에게 아주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았으니까. 완전히 궤멸당해서 수송선단까지 격멸당하기 직전에 겨우 살아난 참이다.
“방책은 하나입니다. 2군 우익에 원병을 보내 되도록 빨리 육로로 전라좌수영을 공략하고, 좌익이 그냥 두고 간 회령포에도 병력을 보내 공략해야 합니다. 그럼 조선 수군은 동서로 더 물러날 수밖에 없고, 이곳 흥양은 자연스럽게 적에게 공격받지 않게 됩니다.”
고니시는 조선 수군을 격파하려면 ‘수륙병진’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일본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배들을 억지로 수전으로 밀어 넣어 죄다 조선 바다의 벌레들이 먹게 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 희생을 치르고서 이기지도 못한다면 더더욱.
“또한, 진군 중인 2군에 급히 사자를 보내 노획한 조선 화포를 몽땅 흥양으로 보내게 해야 합니다. 지금 우군은 구례까지, 좌군은 영암까지 갔는데, 노획한 조선군 물자를 전혀 후송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라병영까지 함락했으니 분명 막대한 양을 노획했을 텐데 말입니다.”
고니시의 주장을 주의 깊게 듣던 히데요시가 물었다.
“조선 화포를 가져다가 우리 전선에 싣자는 말인가? 그리고 화포로 싸우자고?”
“아닙니다. 조선 화포를 싣기에는 우리 배가 너무 가볍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직접 포를 쏠 수 없어 포로들에게 포를 쏘게 해야 하는데, 자칫 그놈들이 자폭이라도 하면 배와 그 배에 탄 병사, 싣고 있던 장비와 물자까지 모두 잃게 됩니다.”
육지에서는 적당히 간격을 두고 포를 배치하기만 해도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밀집해 있고 배라고 하는 약한 구조물 위에 모두가 올라탄 바다에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가 없다.
“제가 어제부터 했듯이, 해안에 높은 땅을 골라 포대를 만들고 그 위에서 포를 쏘도록 하는 편이 가장 유리합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쏘는 포는 육지에서 쏘는 것보다 정확할 수 없고, 더 높은 곳에서 쏘느니만큼 더 멀리 날아갑니다. 저들이 가까이 오기 힘듭니다.”
고니시는 미리 준비해 둔 지도를 펼쳤다. 흥양을 함락한 후 새로 그린 것이다.
“이곳 발포진을 둘러싸는 여러 섬과 포구는 모두 산을 두고 있습니다. 산마다 모두 포대를 설치하고 조선 수군이 왔을 때 겨누어 쏘게 하며, 전선들은 포대가 공격하는 흐름에 맞춰가며 나서게 한다면 적을 막아내기 한결 유리할 것입니다.”
고니시가 진언한 대로 해서 성공한다고 해도 적 수군을 격파하지는 못한다. 오직 밀어낼 수 있을 뿐이다. 히데요시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지만 딱 두 사람이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데나가, 너는 저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신의 동생이자 가장 신뢰하는 부장인 히데나가가 표정만큼이나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조용했지만 깊이 생각한 끝에 내놓는 게 분명한 사려 깊은 대답이었다.
“그 말이 옳습니다. 우리 군의 임무는 뒤따라 오실 노부나가 님을 위하여 최대한 많은 적을 무찌르고 조선 땅 깊숙이 진격하는 것인바, 적 수군을 수전으로 무찌르는데 시간과 병력을 낭비할 여유가 없습니다.”
차근차근 내놓는 대답에 고니시가 안도하는 한숨을 쉬었다. 행여 히데나가가 적과 싸우자고 나서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더구나 우리가 너무 많은 배를 잃으면 노부나가 님께서는 어떻게 바다를 건너시겠습니까? 지금은 가능한 많은 배를 돌려보내는 데 중점을 두고, 적 수군이 위치한 근거지를 육상에서 공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시지요.”
“좋다.”
히데요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천부를 공격 중인 나베시마 군에 모리 군을 원병으로 보내라! 또한, 시마즈 군은 회령포 공략에 나서라. 그 외 각 군은 편성을 마치는 대로 진격을 개시하라.”
더불어서 포대 건설은 축성 분야에서 이름난 인재인 도도 다카토라에게 맡길 테니 고니시와 협력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모두 입을 모아 지시를 수행하겠다고 외쳤다.
– 34 –
“탐망선이 보고한 바로는, 이번에야말로 천여 척에 달하는 적이 왔다고 합니다.”
전라좌수영은 적이 오가는 행렬이 잠시 끊겼을 때 탐망군관 한 명과 수졸 한 떼를 손죽도에 보냈다. 봉화산 위에서 남쪽을 살피다가 적 원군이 나타나면 바로 알리기 위함이었다.
때맞춰 오른 봉화 덕분에 전라좌우수영이 모두 늦지 않게 피했다. 자칫 후퇴가 늦었으면 천 척에 달하는 왜선이 사방을 포위하여 아군을 사지에 몰아넣었을지도 모른다.
봉화를 올린 탐망군들은 봉화를 본 적이 섬에 군사를 양륙시키는 바람에 간신히 몸을 빼내 도망쳤다고 했다.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다. 손죽도 백성들은 이미 다른 섬으로 피난했고.
“이래서야 우수영과 함께 적을 칠 길도 없겠구나.”
정걸이 한숨을 토했다. 백 척으로 4백 척을 부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천 4백 척이라니! 이건 도저히 감당이 힘들었다. 더구나 이억기와 연락하기도 거의 불가능해졌다. 전라우수영 역시 회령포를 지키느라 어쩔 수 없이 싸우다 말고 철수했으리라.
“영감, 설마 저게 전부 전선이겠습니까. 다수는 수송선일 겁니다.”
“그렇다 해도 일부는 전선이 아닌가.”
적어도 2백에서 3백 척 정도는 전선이라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적이 병력을 많이 갖게 된 만큼, 이제 2백 척 정도 띄워서 좌수영 전선들과 싸우면서 쉰 척 정도 옆으로 빼내서 좌수영 일대에 상륙시키는 건 일도 아니게 되었다.
“이쪽은 의병(疑兵)이고, 적의 주공은 분명히 경상도로 오리라고 생각했는데….”
정걸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수백 척이나 되는 대군이 세 번이나 밀려왔다. 이는 적이 정말로 고흥을 거쳐 도성까지 진격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일 수 있다.
과연 왜적은 배를 몇 척이나 가지고 있는 걸까? 이번 함대를 모두 가라앉혀도 또 밀려오는 게 아닐까?
“고민만 한다고 해서 적이 없어지지 않는다. 우수영과 협격은 어렵다고 해도, 우리만이라도 나가서 단 한 척이라도 더 적선을 불태워야 한다.”
정걸의 머릿속에는 후퇴한다거나 항복한다는 생각 같은 건 아예 없었다. 만약 전라좌수영이 본영을 버리고 동쪽으로 물러난다면 어떻게 될까? 적은 흥양뿐 아니라 여수와 순천 일대까지 모두 거점으로 삼고 자유롭게 배를 댈 수 있게 된다.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적의 거점을 흥양 한 곳으로 제한하려면 어떻게든 좌수영을 지켜야 한다. 그러자면 한층 더 적극적으로 나가 적을 쳐야만 했다.
“경상우수사께 원병을 더 청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단 스무 척이라도….”
평산포만호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직 통제사라는 호칭은 입에 익지 않은 모양이다.
“적이 이쪽으로 이렇게 몰려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다소 길이 멀더라도 방비가 더욱 약한 전라도를 통해 계속 군사를 밀어 넣기로 작정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경상도에서 배를 좀 더 빼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 외에도 몇몇 장수가 경상도에 원군을 더 청하자고 했다. 결국, 정걸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내일부터 싸움에 나서는 한편으로, 전하께 표를 올리고 결정을 청하도록 하겠다.”
– 35 –
“무척 바쁘니 용건을 서둘러 주었으면 좋겠다. 무슨 일인가?”
전쟁지도 때문에 미치도록 바쁘다. 그래서 내가 아직 도성에 있음에도 세자에게 일상적인 정무 상당수를 이양했다. 나는 거의 비변사에 있으면서 전시 내각을 지휘하고, 세자는 편전에 앉아 일반사를 처리했다. 나쁘지 않은 분업이다.
이렇게 왕좌를 두 개로 나눌 정도로 바쁜 참에 팔레데스 신부가 궁궐에 와 알현을 청했다. 특별하게 부탁 같은 건 잘 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궁금했기에, 10분이라는 시간제한을 걸고 불러들였다.
“지금 조정 전체가 불구덩이에 빠진 듯한 상황임은 알리라. 그래, 무슨 일인가?”
“전하께 청을 드리고자 왔습니다.”
“청? 부탁 말인가?”
이미 말했듯이 팔레데스 신부는 내게 부탁 같은 건 거의 하지 않았다. 세스페데스가 소환된 이후 선교단에서 내게 뭔가 요청할 게 있어도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낼 정도였다. 아 물론 부탁 정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 전쟁이 터진 상황이라는 거지.
“무슨 청인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들어줄 여유가 없다. 일본군을 물리친 뒤에 보자.”
“아니, 아닙니다. 전하께서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팔레데스 신부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놀라운 한 마디를 꺼내놓았다.
“소승은 전하께 저희 교회와 신자들도 이번 전쟁에 참여토록 허락하여 주십사 청을 드리러 왔습니다.”
천주교는 가뭄 동안 벌인 구호 활동 등으로 무척 교세가 늘었다. 내가 알기로, 세례를 받은 신자만 해도 5천 명 가까이 된다. 물론 절대다수는 마포, 서강 일대에 거주하는 하층민들이고 중인 이상은 거의 없다. 사대부는 개성 본당에 속한 소수를 빼면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대부분 사대부는 여전히 천주교를 유사불교 정도로 취급하는 중이다. 세자에게 서양 고전 교육을 시행하는 일로 한바탕 논전을 벌이고서 서양 철학은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천주교가 완전히 독립적인 별개 종교로서 취급받는 건 별개 문제였다.
승려, 사원, 경전 등 불교 용어를 가져다 쓰는 탓도 크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라 한계가 있다. 대부분 조선인이 발음하려다 혀가 꼬일 게 뻔한 라틴어 용어를 그냥 쓰라고 할 수도 없고, 다수 번역어를 내가 정한 터라 내가 익숙한 한자 용어를 고르다 보니 그리됐다.
하여튼 천주교단이 전쟁에 도움이 된다면, 추후 교세를 펼치는 데 큰 도움이 되긴 할 거다. 그런 의미에서 저들이 조력하겠다고 나오는 의도가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려고? 어차피 신도들은 대부분 병역도 면제인데.
오해를 피하고자 설명하자면 가톨릭 신자라서 병역이 면제되는 게 아니다. 병역을 면제받는 이들이 많이 입교한 거다. 비슷하게 들릴지 몰라도 엄연히 다른 문제다.
조선에서 군역은 재산이 웬만큼은 있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서양이나 중국도 옛날에는 다 그랬듯이 재산이 없으면 책임도 적다. 그나마 신원이 분명하면 속오군에라도 넣겠지만, 마포 일대에 사는 하층민들은 신분과 주거지가 확실치 않은 자들이 많아 거기서도 빠진다.
어쩔 셈이지? 의용군이라도 조직할 생각인가? 역시 재식이 형 책장에서 봤던 다른 소설이 생각났다. 천주교 신자들이 신교의 자유를 얻으려고 의용연대를 만들어 입대하는 내용이었다.
“김포에 새로이 요새를 구축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맡겨 주신다면 저희 신자들이 직접 가서 노역하여 성채를 쌓겠습니다. 아직 교세가 크지 않아 큰 도움은 드릴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전하께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기특한 일이로다!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
그렇지 않아도 문수산성 자리에 요새를 만들려고 현지 조사에 들어간 참이다. 노동력으로 경기도 일대 백성들을 동원할 계획도 세웠고. 교회에서 나서준다면 큰 보탬이 될 터다. 다만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헌데 그대들은 성직자가 아닌가. 군대 경험이 있는 이는 알라르콘 하나라고 알고 있는데, 그대들만으로 요새를 지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신도들이 나서도록 독려하기만 하고, 축조 작업 자체는 우리 관헌들이 수행하게 함이 좋을 듯하다만.”
내 걱정에 대해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저희 중 로카넬라 신부가 수학과 건축에 솜씨가 있으니, 축성도 저희에게 맡겨 주시지요. 그는 장차 조선에 성당을 짓는 것이 꿈이었다 하오나, 일단 전하께 필요한 성채를 먼저 지어 올림으로써 저희 교회가 전하께 도움이 되는 존재임을 보이고자 하옵니다.”
“기특하다, 참으로 기특한 일이로다.”
이탈리아 요새 건축술이라면 자타가 인정하는 유럽 최강이다. 보방식 요새가 유명하다지만, 그 기반에는 이탈리아식 축성술이 있다는 걸 내가 안다. 아, 그러고 보니 견서사가 지금쯤은 귀국길에 올랐겠지? 오는 길에 이탈리아에서 축성 전문 건축가 몇 명 데려오면 좋겠다.
이탈리아, 교황청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안 좋은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사실 꽤 예전부터 속으로 신경을 쓰던 문제긴 한데, 마침 팔레데스를 만난 김에 과연 어찌 나올지 알아보고자 엄숙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대들은 지금 일본에서도 선교사업을 하고 있다. 일본에 있는 프로이스도 지금 노부나가 옆에 서서 전쟁에 협력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다른 게 아니다. 일본 역시 화약 조달이나 무기 수입 같은 건 예수회에서 중개하지 않으면 하나도 들여올 수가 없다. 프로이스의 협력이 없으면 일본은 전쟁 수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 비협조를 하면 일본 교회가 박살이 날 테니 나도 그런 건 기대 안 한다.
내가 의심하는 건 단순한 무기 중개 정도를 넘어서서 예수회 일본 지부 차원에서 노부나가 편에 선 건 아닌가 하는 거다. 물론 특정 국가를 초월한, 조직 자체를 위한 조직인 예수회가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럴…수도 있습니다.”
뜻밖에 팔레데스가 순순히 인정했다. 하긴, 정직이야말로 최고의 덕목임을 그도 역시 알고 있으리라.
“원활한 선교는 저희 수도회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노부나가 공이 더 넓은 선교의 자유를 약속하면서 전쟁을 도우라고 강요한다면, 일본에 있는 저희 형제들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선교회 차원에서 돕지는 않을 것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팔레데스는 이렇게 상당히 위선적으로 들리는 말로 자기 발언을 마무리했다.
“저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과 평화를 전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무력으로 남을 겁박하여 신앙을 강요하겠습니까?”
어, 수많은 반례가 떠오르지만 일단 반박은 하지 않는 거로 하자. 이 양반이 모르는 일이나 이쪽 세계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많으니까. 그리고 확실히 예수회는 무력을 동원해서 선교에 나서려고 하지는 않았었지. 그런 건 대개 도미니코회 같은 과격분자들이었고.
그래. 저쪽에서 프로이스가 어느 정도까지 노부나가를 도울지는 모르겠다만, 이쪽 교회에서 날 돕는다면 그걸로 충분히 덮인다. 추후 서양 사상이나 문물이 원활히 들어올 수 있으려면 지금 신자들을 실컷 부려먹어 줘야겠다. 자기들이 자원했으니 불평은 안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