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67
2부 245화
“아리마, 마쓰라. 그대들은 다시 얻은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하리라.”
“물론입니다, 노부나가 님.”
흥양에서 철수해 온 두 사람은 영지에서 병력을 보충했다. 배는 노부나가가 이미 조달한 것 중에서 적당한 양을 제공해 주었다. 여기에 함께 움직일 다른 영주들의 병력이 더해져서 7군 소속 5백 척이 구성되었다.
“전라도에서 그대들이 패한 이야기는 군감인 후루타가 보낸 보고서를 통해 잘 들었다. 조선 전선은 크고 강하며, 화포도 있다. 하지만 많아야 50척이라 하였으니, 5백 척을 데리고 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남만포를 장착한 아다케부네도 몇 척 딸려 보내주겠다.”
노부나가는 원균이 예상한 수치 중 가장 큰 숫자로 조선 경상우수군 규모를 가늠했다. 그럼 투입해야 할 전력도 계산이 나온다. 전라도에서 조선 전선 50척이 일본 수군 100척을 단숨에 쳐부쉈으니, 500척이면 저들이 화포를 쏘는 사이에 달려들어 포위할 수 있으리라.
“노부나가 님, 텟코센과 니혼마루를 7군에 좀 더 배정하심이 좋지 않겠습니까.”
오사카성을 다 지은 후에 바로 이 배들을 건조하는 책임을 맡은 도도 다카토라였다. 새롭게 만든 이 거대한 배들은 이제까지 일본에서 만든 가장 큰 아다케부네보다도 컸다. 또한, 조선 전선보다도 크다. 무장으로는 조총 이외에 다수의 남만포를 싣고 있었다.
여기에 텟코센(鐵甲船)은 선체에 철판까지 붙였다. 조선 수군이 쏘는 화포를 맞더라도 쉽게 부서지지 않을 강력한 군선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이를 간단히 거절했다.
“아니, 그 배들은 부산진을 막아선 포대를 공격하려고 만든 배들이다. 조선 전선은 텟코센 없이도 잡을 수 있지만, 놈들이 만든 포대는 텟코센 없이 부술 수 없다. 부숴야 할 포대 수가 한둘이 아니니, 본래 예정대로 모두 6군에 배정한다.”
수전은 기동성으로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포대를 부수려면 오직 화포와 맷집으로 싸워야 했다. 노부나가는 조선군이 경상도 해안에 구축한 포대 제압에 이 배들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7군이 조선 경상우수군을 격멸하는 동안 6군은 부산진에 상륙한다. 그리고 곧바로 해안을 따라 움직이면서 조선 수군 진영을 점거하고 안전한 정박지를 확보한다.”
군감 후루타 시게나리는 흥양에서 수군이 치른 수전을 꾸준히 관찰한 끝에 고니시가 창안한 새로운 전법이야말로 조선 수군을 상대하는 최고의 수단임을 깨달았다. 조선 수군과는 최대한 수전은 회피하고 육지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정리해서 노부나가에게 제출했다. 조선 수군을 구축하려면 처음 상륙에 성공한 곳에서 바로 내륙으로 진격을 시도하기보다는, 양쪽 해안을 따라 적어도 10리(40km) 정도는 점령해야 한다는 거였다. 또한, 항구에 포대를 설치하여 조선 전선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노부나가 역시 이 방안이 기존 전선만 사용해서 보다 강력한 조선 수군을 상대하는 부담을 피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전술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 보고를 바탕으로 조선 출병 계획을 다시 다듬었다.
“7군이 성공적으로 경상우수군을 격멸하더라도 곧 전라도에 있는 적 전선 1백 척이 달려올 것이다. 이때 놈들이 기항할 자리가 없도록, 7군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6군은 부산진 일대에 있는 모든 포구를 점령해야 한다. 물론 조선 육군이 나타나 덤빈다면 그놈들부터 깨뜨린다.”
7군이 거제도를 점령하고 6군이 부산진 일대를 장악하는 동안, 6군을 내려놓은 수송선들은 규슈까지 계속해 왕복하면서 병력과 물자를 나른다. 최종적으로 17만에 달하는 노부나가 직할 조선 원정군을 모두 옮겨놓는 것이다.
“8군은 강릉까지 해안을 따라 북상한다. 그리고 강릉을 점령한 다음 동쪽에서 산을 넘어서 도성을 위협하는 거다. 우에스기, 잊지 않았겠지?”
다른 방면은 그렇지 않았지만, 강원도 공략에 대해서는 임해군과 원균 두 사람 모두 그다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원균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임해군은 멍청한 짓이라고 직설적으로 비웃었다. 산밖에 없는 강원도를 왜 가느냐면서.
노부나가는 그 반응을 무시했다. 강원도 방면 조선군이 남쪽을 지원하지 못하게 하고, 조선 도성을 동쪽에서 위협하는 것만 해도 일군을 보낼 가치는 충분했다.
사실 이쪽은 히데요시의 가신, 가토 기요마사가 착안한 공세 방향이다. 하지만 가토에게 그 임무를 시킬 생각은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모두 가지고 있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가토를 자기 손에 놓아두고 싶었고, 노부나가는 가토 같은 애송이가 그런 일을 해내리라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임무가 우에스기 카게카츠에게 돌아갔다. 그 역시 나이로만 보면 가토보다 별로 나을 게 없는 애송이지만, 우에스기 가문에는 그를 보좌할 신하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게다가 우에스기 가문의 영토인 에치고 지방은 조선 강원도 못지않게 산이 많은 고장이다.
“그대의 부친이 남긴 위명이 헛되지 않게 싸우기 바란다. 병력 2만이면 조선인들이 놀라서 동요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카게카츠는 과거 군신(軍神)이라고 불리던 우에스기 겐신의 양자다. 본래는 누이의 아들이나 양자가 되어 겐신의 대를 이었다. 외숙이자 양부를 존경하여 닮고자 늘 애쓰고 있었다.
이제 조선 원정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게 되었다. 눈 앞에 펼쳐진 대함대와 끝없이 늘어선 막사를 내려다보며, 노부나가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선언했다.
“우리 전군이 조선에 전개하면 조선 국왕은 두려움에 떨겠지. 나는 그의 영토가 불바다가 되기 전에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 것이다. 허리를 숙이고 내 밑으로 들어올 것인지, 아니면 멸망 당할지. 그자가 옳은 선택을 할 만큼 현명하기를 빈다.”
바람이 노부나가의 웃음소리를 하늘 높이 실어날랐다. 멀어질수록 희미해진 웃음소리는 곧 사라져 없어졌다.
– 68 –
“뭐 이리 지형이 복잡해?”
함열 선두에 선 아리마대의 요셉 호 선장 안토니우 다 실바가 뱃길을 살피면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벽란도라는 조선 교역항으로 들어가는 뱃길은 고메즈가 넘겨준 해도만 보고 생각한 것보다 더 복잡했다.
“섬, 또 섬, 이제 섬은 다 지났나 했더니 여기는 개펄. 젠장, 이거 항구에서 보내주는 수로 안내인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니잖아?”
섬과 개펄 위치는 대개 해도와 일치했지만, 해도를 보면서도 앞으로 가기 힘들었다. 이렇게 지저분한 뱃길은 근래에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이 벽란도라는 항구는 마치 세비야처럼 강을 타고 또 더 올라가야 했다.
“어쩌죠, 선장? 방향을 돌릴까요? 조선인들이 너무 많이 지나가는데요.”
작은 배를 탄 조선인들이 뱃길 때문에 꾸물거리는 이들을 보고 놀라 급히 도망치는 모습이 숱하게 보였다. 근해를 오가는 작은 어선이나 화물선인 듯했다. 필시 저 중에 몇 척은 이들이 목표로 삼은 벽란도로 들어가고 있을 게 분명하다.
수상한 남만선이 나타났다는 소식도 저 어선들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으리라. 이를 악물었던 선장이 씹듯이 내뱉었다.
“됐어! 그냥 간다.”
바다 사나이로서 체면이 있지, ‘조선 항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주겠다’고 그렇게 호언장담을 해놓고 이대로 발을 빼 도망간다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가더라도 대포 몇 발이라도 쏜 뒤에 돌아가야 했다. 조금만 더 가면 벽란도로 들어가는 예성강 입구도 보일 참이다.
“뒤에 오는 놈들한테 잘 따라오라고 해라! 자칫하면 좌초한다!”
되도록 조선인들 눈에 띄지 않도록 바깥 바다에서 기다리다가 밀물 때를 골라 들어왔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산 페드로 호가 의도적으로 골탕을 먹였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수로 사정 때문에 한 줄로 졸졸 따라오는 뒤쪽 배들을 괜히 한 번 흘겨보았다.
– 69 –
“수사 어르신! 남만선들이 수정산 앞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철저하게 준비했다. 놈들이 경계하지 않도록 파수꾼들은 연기 하나 피워올리지 않고, 적이 나타났다는 연락도 파발을 띄워서 했다. 교동도에 경기수영 소속 전선을 모두 모아놓고 적을 기다리던 최호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놈들이 신장이 고용한 해적, 용병이란 말이지?”
“그, 그렇습니다.”
산 페드로의 1등 항해사, 에스피노사라는 서반아인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산 페드로에서 가장 높은 이가 사실상 그였다.
“선장입니다. 선장이 일본인에게 황금을 받고 그놈들에게 뱃길을 안내했습니다.”
금위사 관원들이 투입된 심문은 딱 이틀 걸렸다. 선장인 고메즈는 물론 다른 선원들도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버텼지만, 일등 항해사 에스피노사가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희 선원들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벽란도에 온 겁니다. 조선인들에게 우리 손으로 직접 뭘 하는 게 아니니까, 알 필요 없다고 선장이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친해진 조선인들을 대할 때 괜히 어색해하지 말라고요.”
“바르보사 부선장도 모르는 그 사실을 그대는 어떻게 모두 알고 있는가?”
“제가 놈들에게 나눠줄 해도를 베껴 그렸습니다.”
에스피노사에 의하면 그동안 고메즈는 절대 벽란도로 들어오는 해도 사본을 만들지 않았다. 만약 해도가 다른 선장의 손에 들어가면 짭짤한 이득을 올리고 있는 조선 항로를 가로챌까 봐 우려한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에 들렀을 때 변동이 생겼다. 규슈 총독 ? 히데요시를 그리 불렀다 ? 에게 불려 갔다 오더니 선장실로 에스피노사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해도 사본을 만들게 했다. 에스피노사는 전사작업 도중에 다른 서류 사이에 끼어 있던 협약서를 살짝 훔쳐보았다.
“해도를 제공하고, 벽란도 인근까지 공격함대를 안내해 주면 1천 두카트에 해당하는 황금을 주겠다는 각서였습니다. 나가사키에서 출발할 때부터 그 여섯 척과 함께 움직였고, 며칠 전에 겨우 헤어졌습니다. 선원들은 그 배들이 왜 우리를 따라오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관원들이 돌아보자 고메즈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심문은 그렇게 끝났다.
“그동안 조선과 쌓은 신의가 있으면서 황금 때문에 배신하다니, 용서가 안 되는 일입니다.”
최호가 듣기에는 몫을 나누지 않고 혼자 황금을 독차지하려고 한 데 대한 불만처럼 들렸다.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자, 적을 친다! 북을 울려라!”
포구에서 출동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던 거북선 세 척과 대전선, 즉 새로 만든 대형 판옥선 네 척이 일제히 앞으로 나갔다. 대전선 두 척, 거북선 세 척, 다시 대전선 두 척으로 이루어진 종진(縱陣)이었다. 이대로 앞으로 나가면 남만선들이 오는 진로를 정면으로 가로막게 된다.
저들이 이미 지나온, 바깥 바다로 나가는 길은 섬 반대편에 대기하고 있던 전선 스무 척이 이미 틀어막고 있을 것이다. 행여 뒤늦게 뱃머리를 돌려 빠져나가려 해도 소용없으리라.
“통제사 영감! 적선들이 다가옵니다!”
선두 대전선 장대에 선 최호가 천리경으로 보니 남만선 갑판 위에서 우왕좌왕하는 선원들이 똑똑하게 보였다. 밑에 있는 에스피노사가 매우 탐난다는 표정으로 천리경을 보았다. 하지만 천리경은 아직 교역품으로 내도 좋다고 윤허를 받지 않은 물건이라, 내줄 수 없었다.
“죄다 산 페드로보다 작구먼.”
벽란도에 기항하고 있는 산 페드로만큼 큰 배는 선두에 선 한 척뿐이었다. 다른 배들은 다 그보다 작았다. 이쪽이 한 줄로 길을 막고 있음을 보면서도 다가오는 건 아마 조선 배를 처음 보아 전선인지, 일반 사선(私船)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어쩌면 노략질할 만한 큰 배가 나타났다고 여기고 신이 나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최호가 저들의 어리석음을 속으로 비웃는데 병선군관이 다가와 물었다.
“통제사 영감, 방포하오리까?”
최호는 지금 경기수사에 서도수군통제사까지 겸하고 있다. 전쟁이 터진 후, 적이 먼 바다를 돌아 도성을 급습할까 우려한 비변사의 건의로 신설한 직책이다.
남도수군통제사가 경상도와 전라도 수군을 통할하듯이, 서도수군통제사는 경기·황해·충청도 수군을 통할한다. 충청수군은 처음에는 남도수군통제사 예하였지만, 서도수군통제영을 세우고 난 뒤에는 이쪽으로 소속이 옮겨졌다. 서해를 더 잘 지키자는 조치라고 했다.
최호로서는 만족할만한 일이었다. 구태여 충청수군까지 데려가지 않아도 남도에는 판옥선이 이미 2백 척이나 되지 않는가. 혹시 원군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때 내려보내면 될 일이다.
“방포하라!”
먼저 쏴도 좋다는 어명도 있었지만, 이미 저들이 못된 의도를 품고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뒤다. 공연히 다가가다가 피해를 볼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지시해둔 대로, 좌현에 있는 지자총통 10문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뒤를 따라오던 대전선과 거북선 6척이 곧바로 뒤따라 발사하자 60문에 달하는 지자총통이 연달아 불길을 토했다. 일흔 개에 달하는 장군전이 대열 선두에 선 가장 큰 남만선을 향해 쏟아졌다.
다음 순간 수십 개나 되는 물기둥이 남만선을 휩쌌다. 날아간 장군전 중 태반은 수면 위에 떨어졌지만, 스무 개가량은 갑판 위에 떨어지거나 선체 측면에 맞았다. 갑판에 맞은 뒤 튀어 오른 장군전 하나가 선원 두 명을 그대로 휘말아 쓰러트리는 광경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우현 총통을 준비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좌현 노는 뒤로 젓고 우현 노는 앞으로 저었다. 일반 전선에 비하면 분명 느린 속도지만, 덩치에 비하면 확실히 빠르게 모든 배가 완전히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역시 장군전을 잰 지자총통 70문이 표적을 겨냥했다.
“쏘아라!”
남만선은 별다른 대응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조선 수군이 반전하여 재차 포를 겨누는 모습을 보고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남만선에서도 우현으로 키를 꺾었다. 회전해서 좌현 함포로 반격을 시도하려는 의도겠지만 이미 늦었다. 경기수군이 먼저 쏘았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명중한 포격이 많았다. 첫 사격이 빗나가는 양상을 본 포수들이 조준을 얼마나 틀어야 할지 깨달았고, 적선이 방향을 돌리면서 측면을 드러낸 덕분이었다. 남만선의 넓은 측면에 몇십 개나 되는 장군전이 박히고 몇 개는 또 갑판을 휩쓸었다.
“오호! 돛줄이 여럿 끊어졌구나.”
남만선은 노를 젓지 않고 돛의 힘으로 움직인다. 그 돛을 묶은 밧줄은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갑판을 뒤덮고 있어서, 쉴 새 없이 당기고 묶고 풀어줘야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그 줄이 끊어진다면 배가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만다.
“일자진(一字陣)을 펼친다!”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고 밀어붙일 생각이다. 일곱 척은 그대로 뱃머리를 우측으로 돌렸다. 양측 함선들이 이룬 대열이 마치 고무래 정(丁)자 같은 형상을 이루었다.
적선이 곧 가까워지고, 기동력을 거의 상실한 적선이 필사적으로 배를 움직이려다가 갑자기 우뚝 멈춰서는 모습이 보였다. 멈췄던 남만선이 천천히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자 최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병선군관이 외쳤다.
“적선이 개펄에 얹혔사옵니다!”
예상치 못한 장군전 세례를 받고 돛줄이 끊어져 공황상태에 빠진 데다, 조선군이 접근하자 당황하여 마구 움직이다가 안전한 깊은 수로를 벗어난 게 분명했다. 남만 선원들이 당황하는 사이 경기수군 전선들이 빠르게 다가갔다. 마침내 적들이 동요하면서 질서가 무너졌다.
“뒤쪽에 있던 남만선들이 배를 돌리고 있습니다!”
“내버려 둬라.”
뒤쪽에 있던 남만선들은 선도함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는지 급하게 선회하고 있었다. 온 길을 되짚어 달아날 속셈인 게 분명했다. 그중 두 척이 또 수로를 벗어나는 바람에 개펄에 올라앉았다. 남은 세 척은 역풍을 거슬러 가면서 필사적으로 바깥 바다를 향했다.
“저놈들은 내버려 둬라. 별군 소속 전선 스무 척이 앞길을 막고 있지 않으냐? 분명히 잡힐 거다. 이쪽에서는 남만 대선을 제압하고 거기 타고 있는 자들을 포박하라!”
장군전 세례를 받은 데다 좌초까지 한 남만선은 이제 끝장이었다. 이제 도망칠 수도 없건만 저들은 발악을 그치지 않았다. 남만인들 – 가까이서 보니 오귀자나 중국인도 많이 섞인 ? 은 소포(小砲)와 조총을 들고 갑판으로 올라와 쏘기 시작했다. 아군 전선에 탄환이 날아들었다.
“대전선을 물러나게 하고 거북선을 보내라!”
최호는 대전선을 접현하게 하고 군사를 건너보내 적선을 나포할 작정이었다. 순순히 무기를 내려놓고 손을 들었으면 좋았으련만, 꼭 반항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피해를 볼 수 있는 대전선이 뒤로 물러나고 대신 거북선이 나섰다. 적은 이번에는 거북선을 향해서도 탄환을 쏘아댔지만, 결과는 빤했다. 철을 씌운 개판 위에서 불꽃이 튈 뿐이었다.
“적선이 좌초하면서 선체가 기울어진 덕을 보았다. 적이 선저부에 실은 대포를 제대로 쏠 수 없음이 실로 다행이로다.”
최호가 천리경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적선이 장군전 세례를 받기는 했으나, 그 정도로 포가 모두 부서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저 배가 얼마나 큰 포를 실었는지는 모르지만, 16근 포 같은 남만포를 근거리에서 쏜다면 거북선도 타격을 받을 수 있었다.
최호가 보는 앞에서, 적선에 다가간 거북선 개판이 네 곳 열렸다. 곧바로 그중에 두 곳에서 자모포가 조란환을 연달아 토해냈다. 또 후장조총을 든 선방포수 네 사람도 연달아 적 포수, 대장 등을 쏘아 넘겼다. 잠시 후 다가간 두 번째 거북선도 반대편 측면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양편에서 포화를 퍼붓자 이미 난장판이 된 남만선 갑판 위에 수많은 시체가 겹쳐 쓰러졌다. 적도 총포를 쏘았지만, 철로 씌운 거북선 개판을 뚫을 수가 없었다.
최호는 그 모습을 천리경으로 살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통제사에 제수받고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해 고민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한 값을 했구나 싶었다.
“나머지 두 척도 제압하라!”
남만선이 좌초할 만한 얕은 곳에서도 조선 전선들은 움직일 수가 있다. 최호가 타고 있는 대전선 한 척을 빼고, 나머지 배들이 두 척씩 가서 남만선 한 척씩을 붙잡기로 했다.
조선 전선이 다가오자, 자기네 대선이 난타당하는 모습을 이미 본 두 남만선에서는 곧바로 백기를 올렸다. 군사들이 외치는 천세 소리 사이로, 최호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