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69
2부 247화
– 4 –
눈앞을 메운 적선들을 본 이순신은 감상을 간단히 표했다.
“적의 수가 생각한 바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구나.”
중도에 합류한 탐망군관들은 자신들이 본 적선이 7백여 척이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밤눈이 밝아도, 보름날 밤도 아니고 초승달이 뜬 밤에 수백 척이나 되는 배를 정확히 셀 수 있을 리 없다. 게다가 경황도 없었을 테니, 적의 수를 실제보다 많게 보았을 공산이 컸다.
이순신은 적의 수를 보고보다 대략 ⅓정도 줄여서 보았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적선이 대략 5백여 척이니, 예상과 거의 들어맞은 셈이다.
“적은 조라포 일대에 상륙할 의도였던 듯하다. 우리가 전선을 부산진에 두었다면, 손을 쓸 사이도 없이 거제도가 넘어갈 뻔하였구나.”
“통상께서 현명하게 판단하신 덕분입니다.”
옆에 서 있던 송희립이 고개를 숙였다. 이순신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부산진으로 적이 가지 않은 건 아니다. 이미 출동하는 도중에 부산진 방면에 두었던 당선에서도 불길이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적은 필시 세를 나누어 거제도와 부산진을 동시에 치려고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만약 경상우수군이 부산진에 진을 치고 있었다면 부산진을 공격하는 적은 무난히 막아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눈앞에 있는 5백 척이 거제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꼴은 그저 두 손 놓고 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을 게 뻔했다.
부산진으로 향한 왜적은 경상우수군이 없어도 대처할 수 있다. 절영도에 포대도 구축했고, 적이 육지에 내려도 부산진성과 동래부성, 다대포성 등이 앞을 막아선다. 병력 소집을 마치고 울산병영에 주둔하고 있는 경상좌병영군도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거제도에는 군사가 없다.
“육군은 거의 경상우병사를 따라서 진주성에 가 있고, 남은 인원은 거의 수군으로 동원하여 나왔네. 속오군 약간밖에 남지 않은 거제도에 수천을 넘는 왜병이 내린다면, 그 군사만으로도 거제도는 물론이고 삽시간에 통영까지 무너질 게 분명하지.”
아무리 전선이 무사하다고 해도 보급을 받을 수 없으면 수군은 무용지물이다. 경상좌수영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경상우수영이 없어도 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왜적이 거제도와 통영을 장악하고 본토로 올라가면 진주성이 양면으로 적을 마주하게 된다.
“호남에 이미 들어간 적과 영남에 새로 올라온 적이 연결하여 남해 연변이 모두 적의 손에 들어가리라고도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물러날 수가 없네. 적이 일부라도 병사를 내려놓는다면 거제도를 지킬 수가 없으니까.”
만약 거제도를 빼앗기고, 연쇄적으로 요충지를 빼앗긴다면 수군은 전라우수영까지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왜적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배로 본국에서 군사와 치중을 계속 실어 올 수 있다.
“그렇기에 이곳 거제도를 지켜야 하지. 여봐라, 기패관! 즉시 명령을 전하라!”
상선에 탄 장졸들이 온몸을 곧추세웠다. 드디어 저 엄격한 통제사와 함께 싸움을 시작한다. 과연 통제사는 수백 척이나 되는 저 왜선들 사이로 돌진해 들어갈까? 일단 뒤쪽으로 물러나서 적이 흩어진 뒤를 노리지는 않을까? 아니면 겁만 줘서 몰아내려고 시도하거나?
대부분 수졸들은 아직 이순신을 잘 몰랐다. 그를 잘 아는 이들, 이를테면 임꺽정이나 서림 같은 이들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팔다리를 휘둘러 몸을 풀며 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상당수 군사는 압도적인 적선 숫자에 질려 통제사가 철군을 명하리라고 기대했다.
“이제부터 적진에 돌입한다! 첨자찰진 선두에 거북선을 내세워라!”
몇몇 군사들이 기대한 바와 달리 이순신은 거침없이 공격을 명했다. 몇몇 군사들이 입에서 소리 없는 탄식을 발했지만 무정한 기패관은 기라졸을 시켜 신호를 전하게 했다. 곧 신호기가 펄럭이고 함대가 속도를 늦췄다. 잠시 후 거북선이 앞으로 나와 대열 선두에 자리를 잡았다.
본래 첨자찰진에서는 돌격선이 정찰선 바로 다음으로 선두에 선다. 하지만 거북선은 워낙에 큰 덩치 탓에 뒤를 따르는 배들의 시야를 좀 가리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통제사의 명령에 따라 조금 뒤에 머무르다가 싸움이 임박해서야 앞으로 나왔다.
“우리가 좁은 길목에 진을 쳤다면, 저들의 진로를 가로막고 화포를 쏘아 모조리 불태울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곳은 넓은 바다이고 우리가 멈추면 저들이 우리 옆을 지나칠 것이니, 우리가 저들을 먼저 쳐서 깨트리는 수밖에 없다.”
“예, 통상.”
거북선 세 척을 첨자찰진 선두로 내세운 우수영 함대는 빠르게 적을 향해 움직였다. 돛대는 이미 바닥에 눕혔고, 군사들 대부분은 두려워 떨면서도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그동안 충분히 쉬고 배불리 먹으며 힘을 아껴둔 격군들이 몸을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배는 점점 더 힘차게 앞으로 나갔다. 화포장, 사수, 조총수들은 각자 무기에 화약과 탄환을 재고, 시위에 화살을 얹은 채 곧 다가올 적을 기다렸다.
– 5 –
상선, 왜식으로는 어립선에 탄 왜인들이 저마다 웅성거렸다.
“저놈들 우리 쪽으로 돌진해 오는데?”
“미쳤나?”
저쪽 함대가 몇십 척 안 되는 건 여기서도 빤히 보였다. 저쪽에서도 이쪽이 몇 척인지 빤히 보고 있으리라.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돌입하다니, 지금 눈앞에 나타난 조선 수군은 제정신이 아니라고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질 거 같으니까 당당하게 죽고 싶은 모양이지.”
“암, 그런 게야. 배만 크면 이기는 줄 아나?”
“그런데 저 괴상한 상자는 뭐지? 조선 놈들은 제대로 된 배를 만들 줄 모르나? 앞에 달린 저 우스운 용대가리는 또 뭐야? 보고 무서워서 도망가라고 달아 놨나?”
부하들은 비웃었지만, 원균은 고함을 치고 싶었다. 아니, 살려달라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지금 경상우수군 대열 선두에서 다가오는 저 상자형 전선은 언뜻 보아도 뒤를 따르는 판옥선보다 컸다. 더구나 뚜껑 덮인 상자 형상을 하고 있으니 왜병들이 올라탈 수도 없다.
“저들은 우리 함대를 정면으로 부수려 한다! 양측의 배 크기 차이가 확연하니, 신호를 보내 배를 대고 사다리와 밧줄을 걸어 기어오르게 하라!”
원균이 맡은 본래 임무는 분명 거제도에 상륙한 뒤 길을 안내하는 역할이었다. 달리 말하면 선봉을 맡되 육지에서 맡게 되어 있었다. 그 뒤로 재차 부여받은 임무도 뱃길 안내였지. 전군 선두에서 조선 수군과 전투를 벌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와키자카는 무슨 생각인지 원균을 선두에서 빼주지 않았다. 선두에서 적과 싸우는 영광을 양보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는데도 묵살당했다. 지금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답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이젠 다른 길이 없었다.
“어립선은 뒤로 빠져서 화포로 지원한다! 전진 속도를 늦춰라!”
가까이 가면 화포에 맞는다. 상자같이 생긴 저 배가 어떤 화포를 실었는지 몰라도, 최소한 천자총통 정도는 탑재했을 게 분명하다. 이 아다케부네는 덩치가 크니 화포도 잘 맞을 거다. 맞싸울 수도 없는 게, 이 배에 있는 남만포는 고작 현자총통만 한 작은 포 세 문뿐이었다.
“대장, 혹시 도망가려는 건 아니겠죠?”
“아, 아니다. 무슨 헛소리냐.”
변명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둘러선 부하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원균을 흘겨보았다. 사실 부하들은 원균이 아직도 조선 갑옷을 입고 있는 것부터 마뜩잖게 여기고 있었다.
“대장. 우리 생각엔 말이지, 대장이 혹시 난전 중에 몰래 도망쳐서 조선군으로 다시 들어갈 생각을 품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럴 리가 있느냐?! 가당찮은 소리 하지 마라! 너희들 중 하나라도 포로로 잡히면….”
원균이 자기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질렀다. 부하들의 눈길이 매서워졌다.
“우리 중 하나라도 포로로 잡히면?”
“꼭 구, 구해오겠다는 말이다, 하하.”
조선 복색을 지키는 이유에는 그것도 있었다. 수전에 패하고, 배가 침몰하면 물에 뛰어들어 우수영 배로 헤엄쳐 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왜놈들에게 붙잡혀 있었는데 기회를 보아 도망쳤다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부하들 때문에 그것도 글렀다. 2천 명 중 한 놈이라도 포로가 된다면 자신이 왜국에 있으면서 무슨 일을 했는지 다 알려질 게 아닌가. 저 꽉 막힌 이순신 놈은 분명 자신을 잡아 도성으로 압송할 것이다. 진노한 상감 앞에 서면 살아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전군에 돌격 명령을 내려라! 본진에서 내린 명에 따라야 한다.”
원균의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이 귀찮은 부하 놈들을 몽땅 죽여 버릴까? 지금 와키자카의 명에 따라 이놈들을 선두로 내몰면, 패했을 때의 책임은 분명 와키자카에게 있다. 원균의 부하인 노부시들은 육지 싸움에나 능숙하지 수전에는 서투른데, 알고도 시켰으니까.
이놈들이 다 죽으면 설마 노부나가가 새 병사를 주지는 않을 거다. 무능한 놈이라고 해서 길이나 안내하라고 시킬 테고, 목숨이 위험한 일도 더 안 겪어도 될 거다. 여차하면 도망가서 조선으로 돌아갈 기회도 더 생길 거고. 그래, 그렇게 하자.
“어서 달려들어라. 저들은 배가 큰 만큼 바로 밑에 달라붙은 적은 제대로 공격하지 못한다! 빨리 달려들어라!”
원균이 갑자기 열성적으로 지휘를 시작하자 옆에 있던 부하들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하지만 겉모습만으로는 원균이 흥분했다는 건 알겠으되, 왜 흥분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선두에 있던 고바야들은 명령대로 돌진했다.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주군, 어찌 요리키인 원균 따위에게 선봉을 내주십니까?”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올라왔다. 예상했던 반응이기에 와키자카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조선 수군은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했다. 그 힘을 원균으로 받아내고, 적이 힘이 빠졌을 때 우리가 나가서 숨통을 끊는다.”
조선 수군은 예상보다 수가 많았다. 그리고 처음 보는 괴상한 형상의 배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쪽보다 소수, 미끼로 내세운 원균군을 적이 쳐부수는 사이 학익진으로 포위해버릴 생각이었다. 아리마군, 마쓰라군이 학익진의 양 날개로서 적을 둘러싸고 공격한다.
포위가 완료되고 원균군이 궤멸당했을 때쯤 본진인 자신이 정면으로 적을 몰아쳐 섬멸하고 승리를 거둔다는 게 와키자카의 계획이었다. 그래서 원균을 선봉으로 보낸 것이다.
“원균군은 이번 전쟁에서 배를 처음 타본 놈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놈들이 일번창, 일번검 중에서 하나인들 제대로 해내겠나? 이번 싸움의 모든 영예는 조선 수군이 지친 뒤에 우리가 나가서 거둔다.”
적의 성에 가장 먼저 돌입한 자를 일번창, 뛰어들어 적을 가장 먼저 벤 자는 일번검이라고 부른다. 가장 용맹하다는 의미인 만큼 큰 영예다. 먼저 돌입하면 먼저 죽는 경우가 잦으므로, 꼭 같은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 수전에서는 성을 배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와키자카는 ‘용감히 싸운 용사 아무개의 목을 거둔 자’는 대개 용사가 싸우다 지친 뒤에야 덤벼든 자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아직 원기 왕성한 용사의 목을 벤다면, 그건 그를 능가하는 용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설사 그만한 용사라도 적의 힘은 빼놓는 편이 현명하다.
“수송선단에 있는 요시아키 님께 사자를 보내, 싸움이 끝날 때까지 멀찍이 떨어져 뒤에서 기다리라고 해라. 혹시 유탄이라도 날아가면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
조선 수군을 격멸하고 나면 바로 거제도에 상륙한다. 그러려면 수송선은 잘 모셔둬야 했다. 와키자카는 맹렬하게 돌진하는 원균군을, 그리고 양쪽으로 갈라지는 아리마군과 마쓰라군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6 –
“대장군포를 쏘아라!”
선두 거북선에 타고 있던 돌격장 나대용이 기세 좋게 고함을 쳤다. 비록 싸움보다는 전선 제작에 재능을 보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도 무관이었다. 적과 싸우고 싶고, 공적을 쌓고 싶었다. 더구나 자신이 만든 거북선이 실전에서 어떻게 활약하는지도 직접 보고 싶었다.
“빗나갔다! 포를 우측으로 더 틀어라!”
1번 포가 쏜 첫 포탄은 빗나갔다. 24근짜리 철환은 목표로 삼은 적 중선을 스쳐 지나가서 물보라만 크게 일으켰다. 인상을 살짝 찌푸린 나대용이 장대에 설치한 대나무 전성관에 입을 대고 고함을 쳤다.
“적선이 포를 피하려고 급히 움직인다! 다음번에는 조란환을 써라!”
– 예!
전성관은 하라는 글공부는 안 하고 종이를 둘둘 말아 입에 대고 노는 아들놈을 보고 그가 떠올린 것이었다. 적당한 재료가 없어 길고 굵은 대나무 속을 뚫어서 만들었다.
휘게 만들 수가 없어서 배 후미까지는 명령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용두에 위치한 거북선 장대 바로 밑에 있는 대장군포 포수들에게는 충분히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도노장도 자리를 하층 맨 앞으로 옮기게만 하면 보다 빠르게 속도 조절을 지시할 수 있었다.
“이거, 일반 전선 장대에도 설치해 볼까?”
지금은 선장이 노갑판에 명령을 내리려면 갑판 위에 있는 군관이나 군사를 시켜서 전해야만 한다. 그 단계를 생략하고 전성관으로 바로 명령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지는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대나무 관만 가져다 박으면 되니 개조도 힘들지 않다.
“이번 싸움 끝나고 건의해 보자! 전선에다가도 달자고!”
나대용은 혼자 기합을 넣으며 결의를 다졌다. 이때 준비를 마친 대장군포 2번 포가 굉음과 함께 불을 뿜었다. 이번에는 철환이 명중했다. 싸움을 서둘려는지 백여 보 앞에까지 다가왔던 왜 중선이 그대로 쪼개지고, 갑판 위에 있던 왜병들이 그대로 바닷속으로 내팽개쳐졌다.
“꼭 커다란 도끼로 내려친 것 같군.”
나대용이 웃었다. 자기편 전선이 쪼개지자 화가 났는지, 왜병들이 조총을 쏘기 시작했지만 맞기는커녕 근처로 탄환이 지나가지도 않았다. 너무 멀었다.
“저놈들은 총 쏘는 연습도 제대로 안 했군. 강선도 없는 총을 이 거리에서 쏘다니.”
왜식 조총은 적어도 80보 정도 거리까지는 다가와야 사람을 노려 쏠 정도다. 더구나 여기는 바다 위인데, 저들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마구 쏘아댔다. 그나마 일제사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구난방이었다. 완전한 오합지졸이라고 판단한 나대용이 혀를 찼다.
“한꺼번에 쏘기라도 해야 맞지. 내가 다 안쓰러울 지경일세. 도노장! 그냥 노를 최대속도로 저어서 놈들을 헤집고 지나가라. 병선군관! 지금 앞에 있는 놈들은 무시해버리고, 저기 대선을 깬 다음 후미에 있는 적 본진을 친다. 기패관! 신호를 보내 다른 두 배도 돌격하게 하라!”
– 예, 나리!
장대에서 보니 달려오는 왜선들은 배 위에 대나무와 밧줄로 만든 사다리를 잔뜩 쌓아두고 있었다. 자기들이 생각하기에도 사격전은 자신이 없는지, 판옥선에 기어오를 심산임이 분명해 보였다. 하긴 그편이 차라리 성공률이 높으리라. 올라탈 수만 있다면.
“탈 수 있으면 타 보거라!”
그 말이 전해졌는지, 몇몇 왜선들이 거북선 옆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단 한 놈도 올라타지 못했다. 거북선에는 저들이 들어올 수 있는 문도 창문도 없고, 기어오를 갑판조차 없었으니까 말이다. 당황하는 왜적들을 비웃듯, 세 거북선은 앞을 막는 놈들을 그저 밀어젖히며 전진했다.
다른 두 거북선도 돌격장인 그가 내린 지시에 따라 옆구리에 달라붙는 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한참 뒤에 보이는 대선을 향해 달렸다. 소선 하나가 정면으로 그 앞을 막아서다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깔려 으스러지는 광경이 보였다. 나대용이 소리 높여 웃었다.
어찌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던 왜적들은 곧바로 다른 불벼락을 뒤집어썼다. 선도하는 거북선 뒤를 따르던 여러 전선에서 총통을 쏘아대기 시작한 것이다. 날아든 철환과 조란환에 선체가 구멍이 나고 갑판 위에는 피바다가 펼쳐졌다. 그래도 몇몇 왜선들은 악착같이 달려들었지만.
나대용으로서야 이미 지나쳐간 놈들이 무슨 짓을 당하고 있건 관심 밖이었다. 일단 목표로 삼은 왜 대선만 노려보는 그의 눈에 갑자기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어라? 왜 왜장이 두정갑을 입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