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71
2부 249화
– 11 –
좌우로 돌아 조선 전선들을 포위한 왜선들은 절대 측면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후진에서도 가장 후미에 있는 배들, 그것도 꽁무니 방향으로만 죽자사자 달려들었다. 판옥선 대열 측면을 노리다가 화포에 얻어맞으면 어찌 되는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판옥선 후면에는 화포가 없다. 게다가 타공이 키를 잡아야 하므로 방패판도 전면이나 양쪽 측면처럼 든든하게 세워져 있지 않다. 움직임이 빠른 왜선이 후미에 달라붙고, 그리로 왜적이 올라와 공격한다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왜적들이 간교하구나.”
인상을 찌푸린 이순신이 명령을 내렸다.
“기패관! 후군으로 하여금 반전하여 방진을 치고 추격하는 적을 막게 하라.”
“예, 통상!”
적이 측면으로 달려들었으면 멈출 필요도 없이 두드려 부수면서 달릴 수 있었으리라. 허나 적이 측면을 피하고 후면을 향해 덤비는 것을 보니, 판옥선과 많이 싸워본 자들이 분명했다. 강점을 피하면서 약점을 노릴 줄 알았다.
“흥양에 있던 왜선이 모조리 왜국으로 돌아갔다더니 저놈들이 그놈들인 모양이다. 정 수사, 이 수사에게 실컷 혼이 났으니 어떻게 하면 화포를 조금이라도 덜 맞을지 요령을 익혔겠지.”
기라졸이 신호기를 펄럭이자 후군을 구성한 전선 15척이 일제히 뱃머리를 돌렸다. 양옆으로 돌아 들어온 왜선들은 그동안 포에 맞아 십여 척이 멈추면서 수가 줄어들었음에도 아직 남은 수가 130척에 가까웠다. 하지만 전선 15척이 방진을 펼친다면 그 정도는 막을 수 있다.
방향을 돌린 후군 전선들이 현측 총통을 일제히 방포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왜적은 자기 뒷덜미를 후군에게 드러내고 중군을 쫓지는 못할 터였다.
“이대로 전선을 몰아 적 본진을 들이친다.”
“예, 통상.”
적 선진은 이제 몇 척 안 남았다. 그 뒤에 있는 백여 척을 다음 순서로 쳐부수고, 그보다 뒤에 있는 마지막 함대를 쳐부순다. 그리고 난 뒤에 후군이 붙들고 있을 나머지 적선을 모두 붙잡아 불태우면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다.
– 12 –
원균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경상우수영이 보유한 저 전선은 원균이 살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물이었다. 세상에,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상자 같은 배라니? 어떻게 저런 괴이한 물건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순신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놈이 분명했다. 5백 척이나 되는 왜선을 봤는데 주저하지도 않고 그대로 뛰어드는 것도 그렇고, 저런 배 같지도 않은 배를 만들어놓은 것도 그렇고, 정말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인간이라면 절대로 저렇게 움직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저 배는 안이 보이지를 않으니 총과 활을 쏘아도 사람이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마침 초가집처럼 지붕에 멍석을 덮어놓았기에 저건 또 무슨 바보짓인가 했더니 분명 횃불을 던졌는데도 불이 붙지 않았다. 화공을 대비해 물에 적셔 놓은 게 분명했다.
심지어 그 멍석 밑에도 뭔가가 있었다. 가까스로 지붕 위에 기어오른 놈 몇이, 지붕 위에서 몇 발 내딛기도 전에 비명을 지르면서 고꾸라졌다. 지붕에다 칼이라도 꽂았든가, 아니면 멍석 속에 마름쇠라도 섞어서 짰을 것이다.
“대, 대장! 저 메구라부네는 뭐요? 당신 조선 출신이잖소!”
“닥쳐! 나도 처음 본단 말이다!”
메구라부네(盲船)는 일본에서 장갑을 씌운 형태의 모든 전선을 가리키는 통칭이다. 노부나가 세력이 만들어 썼던 텟코센(철갑선)도 메구라부네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본인인 부하들은 물론 원균 자신으로서도 조선 수군에 저런 배가 있다는 건 처음 접한 사실이었다.
“어, 어쨌건 계속 싸워라! 기어오르라고!”
총과 활이 효과가 없는 이상, 기어오르는 외에는 다른 공략법도 없었다. 일번창과 일번검이 누리게 될 영광과 포상에 혹한 병사들은 눈앞에 나타난 괴물을 향해 연신 덤벼들었지만, 그중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배와 함께 박살이 나거나,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추락할 뿐이었다.
“남만포, 남만포를 쏘라 하라!”
원균이 보는 앞에서 지자총통이 불을 뿜었다. 갑판에 갈긴 조란환에 세키부네 한 척에 타고 있는 병사들이 한 방에 쓸려나가는 모습을 보자 두 발에서 절로 힘이 빠졌다. 거제현령으로 있을 때도 실제로 지자총통을 쏘아본 적은 없었고, 저 정도 위력이 나올지도 몰랐다.
발작적으로 지른 소리가 전해졌는지, 곧 아래층에 실려 있던 남만포가 불을 뿜었다. 비록 남만인이 아니라 그들에게 배운 왜인 포수가 다루었으나 포는 정상적으로 발사되었다. 날아간 포탄은 메구라부네까지 가는 거리 절반쯤에서 바다에 떨어졌다.
“화약을 더 넣어라! 더 멀리 쏘란 말이다!”
현자총통 정도밖에 안 되는 물건이지만 조총보다는 낫다. 한참 지시를 내리는 와중에 보니 주변이 조용했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어 보니 부하들이 죄다 자기만 보고 있었다. 움찔한 원균이 호통을 쳤다.
“뭐, 뭐냐?”
“대장, 지금 싸움 말인데….”
‘뭐? 우리도 배를 몰아 저 괴물에게 돌격하자고? 야, 이 미친놈들아! 뒈지려면 네놈들끼리 뒈져라! 나까지 끌고 죽으려고 하지 말고!’
원균은 속으로만 이렇게 생각했다.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데 잠시 우물거리던 부하가 자기 할 말을 빠르게 지껄여댔다.
“일단 물러납시다. 원래 싸움이란 건 상황이 유리할 때를 골라서 하는 법인데, 저 상자곽 같은 메구라부네는 도무지 어떻게 쳐야 할지 모르겠소. 벌써 우리 배를 40척이 넘게 잡아먹은 저 괴물을, 대장은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원균이 주변을 둘러보니 주위를 에워싼 부하들 모두 같은 의견임을 알 수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화색이 돌고 상기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하지만 이미 싸우다 죽은 병사들은 어떡하려고 그러느냐?”
“그거야 그놈들이 운이 없는 탓이지. 자, 저놈들은 잊고 어서 물러납시다.”
부하들의 재촉을 받고서 새삼 떠올렸다. 이놈들은 노부시, 즉 도적놈들이다. 그것도 본래 한 패거리도 아니고 여러 패거리에 속한 놈들을 끌어모아 부대를 조직했다. 당연히 부대원 간에 서로 유대감도 없고 협력도 안 되는 콩가루였다. 잡병들은 거친 노부시들 눈치만 봤다.
쓰시마를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이 오합지졸들은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세상일은 역시 돌고 도는 법, 적어도 지금 원균에게는 이 의리 없는 놈들이야말로 최고의 부하들이었다!
“좋다. 당장 어립선을 돌…으앗!”
느닷없이 얼굴에 피와 뇌수가 튀었다. 옆에 서 있던 부하 하나가 이마에 총을 맞으면서 튄 것들이었다. 총에 맞은 무사는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벌렁 자빠졌다.
“유탄인가?”
부하들이 잠시 당황했으나 곧 진정됐다. 상자 모양 조선 전선까지는 아직 2정(약 218m)은 충분히 떨어져 있었다. 철포를 조준해서 맞히는 건 불가능하지만, 재수가 없으면 잘못 날아든 총알에 맞고 죽을 수는 있는 거리다. 다들 운 없는 동료에게 욕 섞인 애도를 건넸다.
원균은 거기 끼지 않고 시종이 건네는 수건으로 서둘러 얼굴부터 닦았다. 피가 묻은 정도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데, 물컹한 뇌수가 얼굴에 묻은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재수도 없는 자식, 잘 가라. 대장, 봤죠? 어서 배를 물립시다. 이미 여기도 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부하 하나가 또 총탄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다음 순간 원균을 둘러싸고 있던 부하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적이 동원한 철포병이 수백 명쯤 되는 것도 아닌데, 이리 유탄이 연달아 나올 리 없다. 이건 분명 조준사격이다. 하지만 어디서?!
“저기다!”
급히 주위를 살피던 무사 하나가 대나무를 묶어 만든 방패를 잡고 팔을 뻗었다. 다음 순간 날아든 세 번째 탄환이 무사의 눈을 정통으로 맞혔다. 뒤통수가 터지면서 피와 뇌수가 주변에 흩뿌려졌지만, 탄환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는 모두가 알게 되었다.
“정면에 있는 용대가리다! 철포대! 남만포! 당장 쏴!”
가물가물, 잘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 있는 메구라부네의 용머리. 그 안에 사람이 둘 있었다. 빨간 갑옷을 입은 조선 장수와 검은 갑옷을 입은 조선 철포병. 그 철포병은 화약을 재기 위해 총구를 쑤시지도 않고 있었다. 지금 이쪽에서 일제히 쏘면 놈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철포병들이 총구멍으로 총을 내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나마 어립선에 탄 철포병들은 모두 노부시가 아니라 잡병 출신이되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있었다. 명령에 따라 일제사격이 불을 뿜었다. 초연이 구름같이 일었다. 남만포 세 문도 여기에 연기를 보탰다.
원균은 적이 안심했다. 이 거리에서는 분명히 철포고 남만포고 안 맞을 거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쏘아대면, 어떤 명사수라고 해도 초연에 가려서 조준할 수 없을 거다. 저놈이 도대체 어떤 총을 들었기에 이 거리에서 연타로 사람 머리를 맞혀 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같은 생각을 했는지, 다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이제 배만 뒤로 물리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총성과 함께 머리 하나가 터져나갔다. 네 번째 시체가 다락 위에 널브러졌다.
“우아악!”
질겁을 한 노부시 부하들이 모조리 바닥에 엎드렸다. 누굴 쐈는지 몰라도 또 총성이 들리고 아래층에서 비명이 터졌다. 원균도 부하들처럼 납작 엎드린 상태로 부들부들 떨었다. 발사한 조총을 다시 장전하려면 적어도 1분은 걸리는데 저 조총수는 장전도 빨랐다. 벌써 몇 발이냐?
“배를 뒤로 물려라! 뒤로 물려! 후퇴해라!”
엎드린 채 고함을 지른 탓에 바로 전달되진 않았다. 하지만 저 메구라부네가 걸리적거리는 이쪽 배를 밀어젖히며 움직이느라 늦어지는 사이 어립선이 방향을 돌렸다. 이제 저 조총수가 겨누는 총구에서 벗어났다고 안심하고 일어서는데 엄청난 진동이 두 차례 배를 뒤흔들었다.
“메구라부네가 쏜 포탄에 맞았습니다!”
비명을 들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강력한 화포라니? 천자총통보다도 위력이 강하다. 군기시에서 언제 저런 포를 만들었지?
아니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배가 포에 맞은 진동으로 나뒹굴던 원균이 목이 터지라고 외쳤다. 당장이라도 달아나야 했다.
“노를 저어라! 놈이 다가오면 죽는다! 노를 안 젓는 놈은 베어버려라!”
노를 젓는 수부들이 자리를 벗어나면 베어버리라는 명령은 쓰시마를 떠날 때 이미 내려져 있었다. 바다를 모르는 노부시들이 지휘관인데도 명령대로 배가 움직인 이유가 여기 있었다.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베어버렸으니, 어떻게 배가 안 움직이겠는가.
다행히 포탄은 아다케부네의 다락 상부에 맞았다. 거기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병사들은 몇십 명이나 휩쓸렸지만, 아래쪽에서 노를 젓는 수부들은 포탄에 맞지 않았다. 덕분에 이들은 미친 듯이 노를 저었다. 주변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세키부네와 고바야도 바로 뒤따랐다.
“앞에 있는 와키자카군 전선에서 신호가 오릅니다! 자리를 지키랍니다!”
“무시하고 달려!”
“저쪽에서 총을 쏘면 어쩌죠, 대장? 아까도 그렇게 몇 척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원균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우리도 마주 쏜다! 살려고 가는 길을 막는데, 그냥 둔단 말이냐?”
“좋습니다~!”
강력한 적에게 쫓겨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중이건만, 원균이 탄 아다케부네 다락 위에서는 뜻밖에 화기애애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동안 서먹하기만 했던 상관과 부하가, 처음으로 진정 마음이 통하는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 13 –
“머저리 놈, 보내줘라.”
원균의 어립선이 제대로 적과 싸우지도 못하고 도망쳐오는 꼬락서니를 본 와키자카가 혀를 찼다. 60척이나 되는 배를 거느리고도 적선을 제대로 저지하지도 못하다니.
와키자카 함대가 틈을 벌린 사이로 포탄에 맞아 다락이 반쯤 무너져내린 원균의 어립선이 지나갔다. 이쪽에 대고 하염없이 절을 하는 원균을 보면서 콧방귀를 뀐 와키자카가 신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전진하라! 적을 섬멸한다!”
원균군을 격파한 조선 메구라부네들은 거침없이 와키자카군을 향해 밀려왔다. 뒤를 따르는 다른 전선들은 불타는 원균군 함선의 잔해를 피하느라 약간 속도가 늦어졌다.
원균이 조선 전선을 한 척도 부수지 못한 건 한심했지만 그건 나름대로 좋은 일이긴 했다. 이번 싸움에서는 일번창도, 일번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아리마군과 마쓰라군이 빨리 적 후진을 섬멸하고 와야 하는데.”
조선 수군이 끌고 나온 배 중에 ⅓정도는 좌군, 우군이 포위하고 공격을 퍼붓고 있다. 지금 와키자카군이 상대할 적은 그 나머지다. 특히 선두에서 원균군을 압살한 메구라부네 세 척이 당면한 적이다.
뒤에서 살피니 분명 메구라부네는 강력했다. 하지만 와키자카는 원균군에 두 가지 근본적인 약점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원균군은 배도 작고, 수전에도 익숙하지 못했다. 그러니 졌지! 하지만 우리는 적 전선만큼 큰 아다케부네도 서른 척이나 있고, 모든 군사와 수부들이 바다에 익숙하다. 자, 달려라!”
와키자카의 지시에 따라 어립선에 탄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인접 전선에서도 함성이 울렸다. 와키자카군은 하늘을 찌르는 함성과 함께 조선 수군을 향해 돌격했다.
“배를 동쪽으로 돌려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깜짝 놀란 신하가 묻자 수송선단을 지휘하던 가토 요시아키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 싸움은 이미 글렀다. 우리 수군은 분명히 무너질 거야. 우리가 있는 수송선단까지 조선 수군에게 당하기 전에 빼내야 한다.”
“하지만, 주군! 우리 전선은 3백 척이나 됩니다. 백 척도 안 되는 적을 상대로 당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지금도 저리 맹렬하게 싸우고 있는데….”
“맹렬하게 싸우고 있지. 한참 아까부터.”
요시아키의 목소리는 나무라는 투가 아니었다. 담담하게 현재 우군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백 척이 넘는 아리마, 마쓰라 양군은 적 후위를 섬멸해서 그동안 쌓아둔 원한을 푸는 데만 미쳤는지 야스하루 님을 도우러 오지 않는다. 야스하루 님은 원균이 60척을 거의 다 잃고서도 적을 한 척도 잡지 못한 점은 보지 않고 자기가 승리할 거라고만 여기고 있다.”
“하지만…확실히 우세하지 않습니까. 적은 원균군과 싸우느라 지쳤고 말입니다.”
요시아키는 잠자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보기에 조선군은 원균이 친 진을 돌파하는데 전혀 수고를 들이지 않았다. 원균은 그냥 짓밟혔을 뿐이었다.
“조선 수군은 단 세 척으로 원균의 60척을 격파했다. 야스하루 님의 1백 척은 저기에 오는 조선 전선 50척이면 완전히 짓밟고도 남는다. 그 뒤에 우리가 어찌 되겠느냐?”
“하지만 그런 상황에 부닥친다면 우리도 나서서 야스하루 님을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우리 목숨만 건지자고 도망하겠습니까!”
신하들이 싸우자고 하는 배경에는 아군에 대한 의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주군 요시아키가 용감히 싸우지 않으면 비겁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영지가 깎일 수도 있다. 그러면 요시아키 개인이 아니라 가문 전체가 피해를 본다. 가신들 역시 녹봉이 줄어드는 피해를 받게 된다.
따라서 이들 신하들은 요시아키가 ‘비겁한’ 행동을 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요시아키 본인은 부하들이 걱정하는 바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짐짓 태연하기만 했다.
“수송선이라 해서 방패판도 안 붙였는데, 인제 와서 무슨 수전이냐? 더구나 조선을 공략할 병사들이 수송선과 함께 가라앉으면 그만큼 큰 손실이 없다. 이 병사들을 무사히 조선 땅에다 내려놓아야만 내 임무를 마치는 것이니라.”
불안했지만 주군의 뜻이 이미 정해졌다면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신하들이 입을 다물자 요시아키가 피식 웃더니 명령을 내렸다.
“모든 배는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라! 동쪽으로 움직여서 적을 피해 다대포로 들어간다.”
지금쯤이면 노부나가가 직접 지휘하는 본진이 부산진에서 배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이쪽은 다대포에 군사를 내려 서쪽에서 본대를 엄호하도록 하자.
요시아키는 붓과 종이를 가져오게 해서 어립선 갑판에서 급히 서한을 썼다. 노부나가에게 현재 상황을 정확히 알리고, 계획을 멋대로 변경한 데 대한 사죄를 표하는 글이었다. 결과만 좋다면야 노부나가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