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76
2부 2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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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8백 명을 무찌르는데 손실이 5백 명이라니. 그것도 2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하고.”
싸움이 끝난 부산진성을 돌아보고 온 노부나가가 접의자에 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시동이 옆에 서서 투구를 받아들었다. 뒤를 따라 들어온 나가마스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근래에 입을 일이 없었던 갑옷을 걸쳐서인지 태도가 좀 어색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생각보다 저항이 치열했습니다. 사실 도중에 조선 수군이 나타나지 않아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없었던 걸 보면 조선 수군은 거제도에 머물러 있었겠지. 와키자카가 잘 해치웠으리라 생각한다.”
와키자카는 5백 척을 거느리고 갔다. 그 병력으로 설마 50척과 싸워 패하지는 않았으리라. 비록 수송선이 2백 척이라지만, 수송선도 적을 포위할 수 있다. 게다가 여차하면 수송선에 탄 병사들을 바로 전선으로 옮겨타게 해서 병력을 보충하는 식으로 싸울 수도 있지 않은가.
“적 수군이 여기 부산진을 비워두어서 정말로 다행이었습니다. 자칫 수전이라도 벌어졌다면 형님께서 위험하실 뻔하시지 않았습니까.”
노부나가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동생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흥! 그게 무슨 소리냐? 이순신이 여기 있었다면 경상도 수군은 전멸하고 이순신은 지금쯤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구명을 청하거나 아니면 목이 잘리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천하제일의 수군 장수가 니혼마루 스무 척과 텟코센 열두 척을 가지고 여기 있지 않으냐.”
니혼마루와 텟코센은 노부나가가 조선 원정을 공포하기 전부터 건조에 들어간 배들이었다. 본래는 명나라 원정을 염두에 두고, 명나라 함대를 쓸어버리면서 병력과 물자까지 대량으로 운송하고자 만들었다. 그만큼 도도 다카토라가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이 배들을 포함하는 노부나가 직할 수군을 지휘하는 대장이 바로 일본 최고의 수군 장수인 구키 요시타카다. 노부나가는 임해군과 원균이 혹평하거나 말거나 이순신을 높이 평가했지만, 적어도 수전에 있어서는 이순신이 구키를 능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형님, 전부터 여쭙고 싶었던 일이 있습니다만….”
시동이 나가는 뒷모습을 확인한 나가마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에게 핀잔을 먹기는 했지만, 대화를 끊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모처럼 두 사람만 있는 자리인 것이다.
“왜 명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시는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숙영지 전체는 이런저런 소음으로 시끄럽지만, 노부나가가 들어오면서 쉬고 싶으니 다 나가라고 했기 때문에 노부나가가 있는 곳 근처는 조용했다. 그 침묵 속에서 나가마스가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계속했다.
“형님께서도 정말 모르지는 않으실 겁니다. 조선은 절대 명나라 정벌 제안에 동참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요. 설사 조선부터 정벌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바로 명나라 정벌에 나설 수는 절대로 없을 겁니다. 손실을 복구하고 병력을 추스르는 데만 몇 년은 걸리겠지요.”
나가마스는 15년 전, 다케다 카츠요리를 격파했던 나가시노 전투 이후로는 전장에 나가지 않았다. 군재도 딱히 없고, 싸움을 즐기지도 않아 노부나가 대신에 여기저기를 방문하는 사절 노릇이나 하면서 유유자적했다. 차차를 데리고 조선에 다녀온 것도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한 발 떨어져서 상황을 살피는 넓은 시야와 식견은 갖추고 있었다. 노부나가 한 사람의 강력한 의지로 추진되는 이 전쟁이 무리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만큼 말이다.
“일본에서는 아무 말이 없더니, 지금에 와서 그런 걸 묻는 이유가 뭐냐?”
“돌이킬 수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나가마스가 잠깐 멈칫하면서 형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노부나가는 평소처럼 역정을 내지 않았다. 평소 매사에 가볍게 처신하던 나가마스가 지금 얼마나 진지한지 알았기 때문이리라. 그 차분한 눈에 힘입은 나가마스가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하시바를 보낼 때까지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원정을 중단할 수 있었습니다. 10만 병력이 무척 아깝기는 하지만, 눈 딱 감고 잊어버리자고 하면 잊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규슈 병력만 투입했으니 규슈가 약해지는 결과가 크게 나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노부나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가마스는 형의 침묵에 힘입어 질문을 계속했다.
“형님께서 직접 오신 이상, 이 원정은 절대로 중단할 수 없습니다. 규슈, 주고쿠에 대기하고 있는 14만 병력이 순차적으로 계속 넘어올 테고, 만약 이 원정이 실패한다면 오다 가는 절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을 겁니다. 형님, 왜 이런 위험한 원정을 결행하시는 겁니까?”
나가마스가 질문을 마쳤을 때, 노부나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는 조선 새가 우는 소리가 형제의 귀에 들렸다.
“다케다가 왜 망했는지, 너는 아느냐?”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흐른 뒤 노부나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시 움찔한 나가마스가 대답했다.
“카츠요리가 미숙했던 탓이 아닙니까. 그러니 부친 신겐이 물려준 유산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망했지요.”
“카츠요리는 왜 미숙했는가?”
“그야 신겐이 병으로 급사하는 바람에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가문을 계승한 탓이 크지 않습니까. 카츠요리도 아예 바보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 신겐이 살아서 나를 끝장낸 뒤에 가독을 물려주었다면 카츠요리도 훌륭한 가주로서 다케다 가를 이끌 수 있었겠지. 그런데 나가마스, 신겐이 몇 살에 죽었는지 기억하느냐?”
“쉰두…살입니다.”
나가마스는 그제야 형이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생이 짐작하는 바를 확인해 주듯, 노부나가가 천천히 자기 속을 털어놓았다.
“나는 지금 쉰일곱이다. 신겐이 죽었듯 어느 날 갑자기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내겐 가문을 물려줄 후계자가 없지. 혼노지 때 노부타다가 죽었으니까.”
노부나가의 눈이 충혈되었다. 평소라면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머뭇거리던 나가마스가 조심스럽게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형님께는 아직 열 명이나 되는 아들이….”
나가마스가 하는 위로에 노부나가는 냉소적인 코웃음을 쳤다.
“닥쳐. 그것들은 모두 얼간이에 머저리들이야. 노부타다만큼 현명하고 용감한 녀석은 없어. 내가 죽으면 서로 권력을 잡겠다고 치받고 싸우다가 오다 가문을 말아먹을 놈들이야.”
나가마스 역시 조카들의 능력에 대해 별다른 기대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둘째 노부오키, 셋째 노부타카 모두 능력은 없으면서 욕심만 많다. 넷째는 히데요시에게 양자로 갔다가 병에 걸려 죽었고, 그 아래는 다들 너무 어려서 두 형을 이기기 힘들다.
“내 후계자로 삼을 만한 녀석은 노부타다가 남긴 히데노부밖에 없다. 그 녀석은 제 아비를 닮아 영특하고 군재도 있어. 하지만 아직 열 살이라 권위가 부족하다. 내가 죽으면 분명 못난 형제 놈들이 서로 자기가 조카보다 연륜과 자격이 있다면서 싸워댈 거다.”
나가마스가 생각하기에도 그럴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바다 건너 땅으로 원정을 나갈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일본 천하는 바보 두 놈이 알아서 나눠 가지라지. 나는 중원을 정복하여 히데노부가 어떤 자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영토를 갖도록 해줄 테다. 중원은 넓은 땅이고, 여기 참여한 자들에게 보상을 해주고도 히데노부에게 충분히 넓은 영토를 남겨줄 수 있다.”
조선에 넘어오고서야 노부나가가 펼쳐 보인 속내에 나가마스는 할 말을 잃었다. 분명 이런 목적으로 출병을 결정했다면 신하들에게는 그 이유를 솔직히 말할 수 없으리라.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건 나가마스가 노부나가의 동생이면서 실권은 전혀 없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럼 실패한다는 확증은 있느냐? 불과 수천 해적이 휩쓸었던 명나라다. 일전을 벌여 조선 국왕부터 손을 들게 한 뒤, 조선에서 뽑은 병력까지 합쳐서 곧바로 북경으로 진격하면 저들이 무릎을 꿇지 않을 리 없다. 북경 일대가 모두 내 영지가 되는 거다.”
나가마스는 노부나가가 무서워서 그동안 아무도 꺼내지 못했던 질문을 했다. 명나라 황제가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면 어쩔 작정이냐고 말이다. 일본군이 접근하면 북경 대신 다른 도시로 수도를 옮길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 따라갈 것인가?
노부나가는 너털웃음을 웃고는 이 질문에 답했다.
“하성군도 내게 그걸 물었었지. 답은 간단하다. 적이 수도인 북경을 내준 시점에서 전쟁은 일단 내가 이겼다. 곧바로 황제를 추격하기에 병력이 좀 모자란다면, 잠시 휴식하면서 군대를 정비한 후 전쟁을 재개하면 그만이다. 영지가 넓어진 만큼 병사를 보충하기도 쉽다.”
나가마스는 황제가 적에게 잡히고 수도를 뺏겨도 금나라와 계속 싸웠던 송나라, 토목보에서 황제가 잡히는 대패를 당하고서도 새 황제를 내세워서 수도를 지킨 명나라의 사례를 들었다. 모두 조선에 사절로 왔을 때 들은 이야기였지만, 노부나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수도를 버리고 도망친 송나라는 결국 망할 때까지 영토를 되찾지 못했다고? 그럼 북경을 내게 빼앗긴 명나라도 되찾지 못할 거라는 소리가 아니냐. 내가, 일본이 가진 힘이 그 옛날의 금나라만 못할 리가 없다. 이 원정은 기필코 성공할 수 있다.”
이미 노부나가가 직접 조선에 오기까지 한 이상, 이번 원정을 도로 물릴 수 없다는 사실은 나가마스로서도 잘 알았다. 게다가 근저에 깔린 노부나가의 동기를 알고 나니, 일본에서부터 말렸어도 소용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성군이 왜 도망치듯 돌아갔는지 알 것 같았다.
– 26 –
다대포진성에서는 조선군이 세운 깃발이 기세등등하게 휘날렸다. 하지만 일본군을 맞이하여 싸울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전선은 한 척도 없었다. 경상도가 보유하는 모든 전선이 이순신 휘하에 모여있으니 여기는 비었으리라고 가토 요시아키가 예측한 대로였다.
“모든 군사는 여기 내려서 다대포성을 공략하도록 합시다.”
말이 좋아 요시아키군이지, 요시아키는 자기가 싣고 온 전체 병력에 대한 지휘권이 없었다. 그는 자기 군사 3천 명 외에는 그저 저들을 태우고 온 수송선단 지휘관일 뿐이었다. 따라서 요시아키로서는 다른 영주들을 좋은 말로 구슬려서 자기 말을 따르게 하는 게 최선이었다.
“적 수군이 도사리고 있는 거제도로 다시 갈 수는 없고, 공적도 세우지 못한 채 부산으로 가서 노부나가 공 앞에 나설 수는 없지 않소? 설마 이대로 일본으로 돌아가겠다는 분들은 안 계시겠지요?”
7군 병력을 지휘할 권한은 본래 총대장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있었다. 하지만 와키자카는 최후까지 싸웠고 지금 행방을 알 수 없다. 남은 이들끼리 적당히 해결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전에 벌어진 싸움에서 우리가 입은 손실은 끔찍하오. 행방이 묘연한 와키자카군을 제외하고, 여기 모인 네 함대에서 잃은 배만 120척이오. 인명 손실은 병사와 수부를 합쳐서 거의 2만 명에 달하오. 이런 꼴로 돌아가 봐야 어떤 처분을 받겠소?”
“우리도 같은 생각이오. 여기서 다대포진부터 공략합시다.”
뒤이어 포구에 도착한 원균군, 마쓰라군, 아리마군도 다대포성이라도 공략하자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마쓰라 시게노부와 아리마 하루노부는 흥양에서도 연이어 패했는데 또 패했으므로 정말 공이 급한 상황이고, 원균은 좌중의 의견이 어디로 흐르든 반대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이 세 함대는 상처 하나 없는 요시아키의 수송선단에 비하면 정말 피해가 심각했다. 원균은 메구라부네 세 척과 싸워서 57척을 잃어버려 어립선 외에는 세키부네 세 척만 살아남았다. 적 후진과 싸운 마쓰라군은 34척, 아리마군은 30척을 잃었다. 살아남은 배들도 손실이 컸다.
“이미 어두워질 기색이 보이니 오늘은 싸울 수 없소. 서둘러 병력을 내려서 성을 포위하고, 내일 아침 공격을 개시합시다. 혹시 조선 수군이 나타날지 모르니 물자는 배에 실은 채 두지 말고 밤을 새워서라도 모두 안전한 육지에 내려놓아야 하오.”
이들은 바로 합의를 보았다. 내일 해가 뜨는 대로 함대는 모조리 부산진으로 탈출시키기로 말이다. 행여 포구 안에 머물다가 조선 수군이 습격해오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모든 배를 잃게 될 게 분명했다. 이젠 배가 없어도 노부나가와 연결할 수 있기도 하다.
“준비한 육군 1만 5천에 아리마, 마쓰라 양군에서 남은 병사가 2천…1만 7천이면 저 작은 성 정도는 무난하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거요. 하지만 가능하다면 저들이 스스로 성문을 열게 만들면 좋겠지요. 수고를 아낄 수 있으니까.”
요시아키의 어립선에서 열린 회의가 끝날 무렵, 요시아키가 느긋하게 한 마디 던졌다. 다른 영주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뜩이나 큰 패배를 당한 뒤라, 다들 기가 좀 죽어 있었다.
“옳은 말씀이오. 항복을 권고해 보는 건 좋겠지요.”
7군 역시 통역으로 이키 출신 무사들을 몇 명 배정받았으니, 이들에게 항복 협상을 시키면 되리라고들 생각했다. 그런데 요시아키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이키 무사 따위 필요 없소. 우리에게는 원 공이 있지 않소? 벼슬도 높고 무공도 드높아서 조선인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다 들었소. 마침 원 공도 공을 세울 필요가 있으니 원 공에게 이 중대한 일을 맡깁시다. 내일 아침 해가 뜰 때 가서 항복을 권하는 거요.”
“좋소!”
삽시간에 좌중의 의견이 하나로 모였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앉아 있던 원균은 순식간에 전개되는 사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이미 걷잡을 수 없게 되어있었다.
“원 공도 공을 세워야 임해군님께 면이 설 것 아니오? 하지만 휘하 병력을 모두 잃었으니, 싸워서 전공을 세우기는 글렀소. 언변으로 저들이 성문을 열게 해서 공을 세워 보시오.”
요시아키가 잔뜩 추켜세웠지만, 원균에게는 그 말이 이제 죽으러 가라는 저승사자의 선고로 들렸다. 내일 아침 다대포진성 앞에 가서 항복을 권하라고? 아니, 그게 저렇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말인가?
조라포 앞바다에서 죽다가 겨우 살아서 도망쳤는데 이제 대놓고 죽으러 가라니, 정말 앞이 막막했다. 성내에 있는 경상좌수군 군사들이 그의 얼굴을 보면 적과 내통한 국적(國賊)이라고 해서 당장에 쏘아죽이려 들 게 뻔하다. 어떻게 해야 살아날 수 있을까?
– 27 –
밤이 지났다. 첫날 밤은 서로 노려보기만 하면서 보냈다. 정찰은 활발히 했으나 양측 모두 싸움을 벌이지는 않았다. 조선군은 아직 사기가 높은 적군을 치기를 망설였고, 일본군 역시 갓 도착해서 피로한 상태에서 야간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이일과 선거이는 전주성 성벽 위를 돌면서 간밤에 있었던 일에 관해 보고를 받았다. 역시나 성벽을 넘어온 적은 없었다. 성벽 주변을 돌며 살피는 사람 그림자가 몇 명 보였을 뿐이었고, 너무 가까이 오는 자들은 활을 쏘아 쫓아냈다고 했다.
전주천 너머 서쪽에 있는 적진의 기세를 살피니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이쪽에서 기구를 띄워 정찰하는 데 맞서려는 의도인지, 2리 반(1km)쯤 떨어진 완산 꼭대기에다 망루를 세우는 모습이 조금 독특하게 눈에 들어왔다.
“놈들이 저 망루를 다 만들거든, 지자포를 쏴서 부숴버리도록.”
자기 휘하 군관에게 지시를 내린 이일이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다.
“만드는 도중에는 절대 쏘지 말게. 주시하다가 다 만들거든 쏴야 해.”
“예, 병사 영감.”
선거이는 별 관심 없이 바라만 보았다. 왜인들에게는 천리경이 없다고 했다. 저만큼 멀리 떨어져서 맨눈으로 본다면 쳐다본들 얼마나 대단한 게 보이겠는가? 사실상 전주성 내는 전혀 들여다볼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그깟 망루 따위 있거나 말거나였다.
그에 반해 이쪽에서 기구를 타고 올라간 비승군은 적진을 훤히 내다보고 있다. 심지어 높은 하늘에서 적진을 살피고, 그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 땅으로 떨어트려 주는 지경이다. 이래서야 적이 어떤 의도를 품고 움직이는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음, 저기 왜병들이 오는데? 싸움을 선언하는 서한이라도 건넬 생각인가?”
적진을 살피던 이일이 한마디 하자 선거이도 고개를 돌렸다. 적이 보내는 사자인지, 왜병이 탄 말 몇 필이 먼지를 피워올리며 전주성 남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