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8
1부 048화
– 9 –
서울 장안이 이제까지 본 적 없는 구경거리로 떠들썩했다. 이제까지 백여 년 조선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고, 실제 역사대로 굴러갔다면 4백년 뒤에 나라가 망할 때까지도 단 한 번도 없었을 광경이다.
“저게 야인이야?”
“생긴 건 우리랑 별 차이 없네?”
“차이가 없기는. 꼴사납게도 생겼구만.”
요동에서 개선한 원정군이 도성 한가운데를 행진했다. 도성을 관통하는 도로에서 개선행진을 벌이다니, 정말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도성 주민들은 앞을 다투어 담장과 지붕 위에, 그리고 도성 성곽 위에 올라가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동대문을 통해 입성한 대열 선두에는 참전한 병사들 가운데서도 정예로 골라 뽑은 평안도 기병 300기가 서 있었다. 검은 색 경번갑으로 통일한 갑옷은 빛이 나게 닦았고, 손에 든 창날은 번쩍이며 광채를 뿜었다. 전마들도 털에서 윤이 나고 살이 오른 것으로 골라 타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나타난 이들은 조총을 든 내금위 무사 200명이었다. 이들도 역시 준마에 올라 ? 사실 내금위 무사쯤 되면 최정예 기병인 겸사복만큼은 아니라도 한 기마술 하게 마련이다 ? 위풍당당하게 시내를 걸었다. 이들은 붉은 두정갑으로 복장을 통일하고 당당함을 뽐냈다.
“저게 조총이구나?”
“삼백 보 밖에 있는 참새를 맞힐 수 있다며?”
내금위 군사들이 서대문 밖 사격장에서 하도 총질을 해댄 덕에 도성 백성들이라면 조총의 존재 자체는 다들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총을 볼 기회는 없었다. 당연히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도 이번 퍼레이드의 최고 주인공은 아니었다.
세 번째이자 가장 주목을 끈 행진이 바로 포로로 잡혀 온 여진족들의 대열이었다. 대부분의 도성 백성들에게 있어서 ‘야인’이란 늘 소문으로만 들려온 존재, 저 먼 북쪽 어딘가에 사는 신비한 자들이다. 당연히 이들이 제일 관심을 끌었다.
“저거 봐라, 저거! 저 새끼 노려본다!”
“눈 깔아라, 이 새끼야!”
두 손을 뒤로 묶인 남자 포로들 중에는 아직 기개가 살아 있는 자들도 있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자신들을 향한 야유를 당당하게 받아냈다. 물론 대부분은 비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끌려가고 있었다.
“저거 인물 괜찮은데?”
“에미가 조선 여자인가보지.”
“이봐! 낯이라도 씻고 나와라, 이년들아!”
“에그, 가엾어라….”
손을 앞으로 묶인 여자와 아이들의 대열이 지나가자 노골적으로 희롱하는 소리, 그 초라함을 비웃는 소리가 더 커졌다. 물론 여자들은 그 가련한 모습을 불쌍하게 여기기도 했다. 대여섯 살짜리 어린애들도 손을 묶여 끌려오고 있으니 그리 보일만도 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질 말아! 저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아? 저기 뒤로 손 묶인 놈은 큰 도적이고! 저기 작은 놈은 조그만 도적이고! 저기 질질 우는 년은 도적놈 여편네에 도적놈 싸지른 에미야! 제놈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저래도 싼 거라고!”
동정하는 소리를 한 이들은 대부분 이런 반응을 받았다. 도성 백성들이야 직접 야인에게 습격을 당할 일은 없다. 하지만 소문이 워낙 나쁘다 보니 눈앞에서 이리 불쌍한 모습을 보여도 동정을 받지 못했다.
거리에 나선 이들 중에는 사대부도 상당수 있었다. 다만 사대부들은 일반 양민들처럼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지는 않았다. 격한 반응이라고 해 봐야 혀를 차며 손가락질을 하는 정도들이었다.
나는 조정 중신들과 함께 광화문 위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즐겁게 감상했다. 가능하면 일선에서 지휘를 해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것까지는 무리라는 건 나도 알았다. 하지만 포획한 적의 물자와 사람을 직접 보며 승리감을 만끽하는 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는가.
조정에서는 이 퍼레이드에 대해 반대하는 소리가 드높았다. 평안도 군사들이 고향에서 도성까지 왕복하는 데 필요한 경비에 포로, 가축까지 나르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게 첫째 이유였다. 그리고 군자가 덕이 아닌 무위를 과시함은 옳지 않다는 명분도 내세웠다.
“보시오, 영상. 백성들이 무척 기뻐하고 있지 않소? 승전이란, 널리 알려야 하오. 싸움에 이기고도 그 사실을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뜻을 꺾지 않았다. 돈 몇 푼이 문제가 아니다. 퍼레이드는 도성 백성들에게, 궁극적으로는 전국에 승전이 갖는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기껏 토벌을 벌여 승리를 거둬 놓고 과시하지 않다니, 말이 되는가.
“평안도에서 그대로 군사를 해산하고, 포로로 잡은 자들을 각 관청에 관노로 분배하고 끝냈다면 이런 반응은 없었을 게요. 그저 높으신 나리들이 한바탕 했나 보다 하고 넘어가겠지. 하지만 이렇게 전과를 알리면 추후 출정에도 반응이 좋을 게요.”
영의정 한치형은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조용히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대신 이조판서 신수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전하, 이렇게 승전을 자랑하는 것은 좋으나, 만약 패했을 경우에는 어이 하시렵니까? 백성들이 전황에 관심을 갖게 되면 패전했을 때는 곧바로 민심이 흉흉해질 것이옵니다.”
“이기면 되지 않소? 손자가 이르기를, 전쟁은 필승의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만 시작해야 한다 하였소. 이길 수 있는 준비를 완료한 뒤에만 개전한다면 어찌 패배가 두렵겠소?”
물론 세상만사를 내가 좌우할 수는 없다. 그 부분은 쓴웃음을 지으며 인정했다.
“다만 상대가 누구든, 적이 먼저 쳐들어온다면 승산 여부에 무관하게 싸워야겠지. 허나 이기기 곤란한 상대라면 가급적 저들이 쳐들어올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거요.”
명나라 같은 상대 말이지. 적어도 정예군 5만 정도 편성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명나라랑 정면으로 붙는 건 피하도록 하자. 속으로 다짐하며 문루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퍼레이드 행렬은 이제 거의 끝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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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드러내는 공식 행사는 퍼레이드로 끝이다. 하지만 궁궐 안, 엄밀히 말해 조정에서는 정리할 일들이 남아 있다.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끄느라 고생이 많았소. 다시 한 번 치하하는 바요.”
“아닙니다, 전하. 신은 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보다 주력인 평안도 군사들이 힘써 싸운 공이 컸습니다.”
병조참의, 아니 이제는 병조참판이 된 박원종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뭐 내 앞에서만 저럴 것 같기는 하다만, 그래도 대놓고 거만하게 구는 것보다야 낫겠지.
“치사하는 말은 이미 조정에서 많이 나누었으니 이쯤 하겠소. 여기 모인 이유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니까.”
이곳은 편전인 사정전 옆에 있는 만춘전이다. 4월도 반이 지난 지금 따뜻한 온돌방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군사 관계자만 모인 소수 모임에 쓰기에는 사정전이 너무 넓었다.
“예, 전하. 그러면 준비한 사안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원종이 준비한 문서를 꺼내들었다. 주변에 둘러앉은 우의정 성준, 좌찬성 이극균, 도총관 유자광, 강귀손, 김영정, 병조판서 이계동 등 주요 신하들 십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중 다수는 본래 문관이지만, 조선에서는 문관 출신이 무관 고위직을 맡는 일이 드물지 않다.
“지난 토벌에서 야인들이 군사를 모아 결전을 시도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군사들이 워낙 급작스럽게 짓쳐들어 적들이 대비할 틈이 없었던 탓도 있고, 우리 군사들이 적을 치더라도 땅은 점유하지 않고 곧 물러가리라 알기에 숨어서 기다린 탓도 있으리라 보옵니다.”
박원종은 차분하게 브리핑을 계속했다. 사실 이 정도는 조선 무장들에게는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다. 듣는 이들도 별다른 질문 없이 조용히 박원종의 말을 경청했다.
“적과 맞붙어 싸운 일은 9회 있었습니다만, 포위된 적이 빠져나가지 못해 발악한 경우를 빼면 모두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들에서 적을 만나 공격하니 놈들이 흩어져 일부는 싸우고 일부는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사옵니다.”
“조총은 실전에서 어떠하였는가?”
“위력은 좋으나 정면에서 적과 싸울 일이 없었다 보니 큰 구실은 하지 못했습니다. 쏠 때마다 큰 소리가 나서 기습에서는 쓰기 곤란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 불꽃과 굉음이 생각보다 커서, 야간에 적을 놀라게 하거나 저항하는 자들의 기를 꺾는 데는 매우 유용했습니다.”
쳇, 총을 총이 아니라 폭죽으로만 쓴 셈이군.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다. 총이 없는 자들에게 총을 유용하게 쓰는 용도 중 하나가 화염과 총성으로 겁을 주는 도구니까.
“마을 안에서 진을 치고 저항하던 야인들에게 총을 쏘았더니, 굉음과 함께 사람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기가 질려 투항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달려서 도망가는 자들을 향해 쏘았을 때는 활을 쏘는 경우에 비해 잘 맞히지 못했습니다.”
“그야 그만큼 오래 수련을 하지 못한 탓이겠지. 활을 쓰는 자들은 죄다 십여 년 이상 활을 잡았지만, 조총은 이제 겨우 반년도 안 되었잖소? 연습을 반복하면 훨씬 좋아질 거요.”
유자광이 옆에서 거들었다. 맞는 말이다. 그동안 사격술 기초훈련으로 표적판은 실컷 쏘았지만 움직이는 목표를 쏜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조총수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나가야겠다. 아무래도 사냥만큼 사수가 움직이는 물건을 맞추는 솜씨를 크게 늘릴 수단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웃자 둘러앉아 있던 신하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다만 병조판서 이계동은 다소 안 좋은 표정을 지었다. 뭔가 거리끼는 일이 있는 듯했다.
“허나 전하. 이번에 공격한 부락들 중에는 우리 땅을 침범하지 않았던 부락도 있습니다. 과거 태종대왕께서 재위하시던 시절 경원부를 약탈했던 우디거 일족을 치지 않고 엉뚱한 모린위를 쳐서 살상했다가 대규모 반발을 초래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이계동이 언급한 사건은 1410년의 일이다. 당시 조선 조정은 본래 예하에 두고 있던 여진 부족들이 명나라에 귀부하자 보복으로 교역을 중단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몇몇 부족들이 경원부를 공격해서 병마사 한흥보와 관군 15명이 죽었다.
보복작전을 벌이기 위해 나선 조선군은 엉뚱하게도 습격에 가담하지 않은 다른 부족을 공격했다. 부족장을 비롯해 무고한 이 수백 명을 죽이고 근거지를 완전히 박살낸 다음 포로까지 30여 명이나 잡아 돌아온 이 사건으로 여진족들이 격분했다.
“그때 두만강 일원의 야인들이 모두 하나로 뭉쳐 난을 일으키는 바람에 국경의 정세가 심히 혼란스러웠었습니다. 더구나 압록강 일대 야인들은 명나라에 구원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골치 아픈 사태를 피하려면, 야인들을 치되 옥석을 가려 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옵니다.”
이계동은 경험 많은 노장이다. 여진족 토벌에도 여러 번 나갔고, 북방 지역의 정세도 잘 알고 있었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명나라의 군사적 상황 및 조선에 대한 태도도 살피고 온 바가 있었다. 그만큼 사태를 넓게 보았다.
“지당한 말이오. 허나 저들이 원체 여기저기 흩어져 거주하는데다가 우리 군사가 한번 나가기만 하면 꽁무니를 빼기 바쁘니, 어찌 하나하나 확인하며 칠 수 있겠소? 동청례를 다시 보내 건주위를 비롯한 각 부족을 을러 보기는 하겠으나 효과는 다짐할 수 없소,”
이런 둘러대기는 조선이 초기부터 잘 써먹었던 핑계다. 부락을 잘못 알았네, 걔가 거기 있는 줄 몰랐네 운운하며 은근슬쩍 여진의 주요 인물을 해치우거나 부락을 뭉개곤 했다.
“앞으로도 매년 정기적으로 군사를 내어 저들을 혼내주면 다시는 우리 백성들을 괴롭히지 못하리라 보오. 비용은 들겠으나, 백성들을 평안케 하려면 필요한 일이오.”
이미 몇 번 의사를 비쳤기에 다들 찬성할 줄 알았는데 어째 표정들이 좀 떨떠름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강귀손이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우려를 표했다.
“전하, 군사를 내어 저들을 다스리는 일에는 신도 반대하지 않사옵니다. 허나 그 출병 시기를 정례화 함은 재고해 주시옵소서. 자칫 저들이 때를 맞춰 대군을 준비해서 역공할 수도 있고, 명나라에 청하여 출병을 취소하게 만들 수도 있사옵니다.”
그건 나도 이미 생각한 문제다. 하지만 뭐, 그걸 가지고 굳이 말다툼을 시작할 필요는 없겠지. 그냥 좋게 답해 두자.
“알겠소. 출정 계획을 세울 때 참고토록 하겠소.”
이후로도 진격 과정에서 있었던 갖가지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고참 장수들은 자신들의 노하우를 풀어놓았고 문관 출신 고관들은 합리적인 관점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개선사항을 생각했다.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내 첫 전쟁은 이렇게 마무리될 모양이다. 직접 전선에 나간 건 아니지만, 전략을 수립하고 그동안 준비한 사항들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했다.
결과는 꽤 만족스럽다. 이대로 잘 마무리되고 내년 봄까지는 미진한 부분들이 마무리되면 좋겠다. 설마, 만사가 다 잘 끝났구나 싶을 때 어디선가 날벼락이 떨어지는 건 아닐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