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81
2부 259화
– 39 –
“절영도 포대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오르고 있고, 부산진 앞에는 수백 척이나 되는 왜선이 있었습니다. 다대포진성도 이미 왜적에게 함락되어 왜적의 깃발이 내걸리고, 성에서는 연기가 솟고 있었습니다.”
“적이 조라포로 온 한 갈래와 부산진으로 간 한 갈래 말고도 또 있었다는 뜻이냐?”
“아닙니다. 조라포에서 도망친 적이 다대포를 함락했습니다. 깃발을 보고 확인했습니다.”
거제도 조라포 앞바다에서 해전을 치른 직후, 이순신은 힘세고 숙련된 격군과 날랜 탐망꾼 몇을 뽑아 탐망선을 타고 부산진에 다녀오게 했다. 등선군에 속한 도왜병들 중에서도 눈썰미 있고 왜국 내 세력에 정통한 이를 한 명 뽑아 같이 보냈다.
도왜병을 굳이 포함한 이유가 적이 배에 꽂은 깃발을 보고 그 세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에서 각 도 병영에 속한 군사들이 서로 다른 깃발을 사용하듯, 왜국 영주들도 서로 다른 깃발을 사용한다는 것쯤은 이순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제도에 온 자들도 각자 깃발을 내걸고 싸웠고, 전투가 끝난 뒤 모은 깃발을 통해 놈들이 각자 어디에서 왔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라도 침공에 가담했던 왜구 놈들이 여기에 또 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하지만 놈들이 다대포로 간 것은 뜻밖이었다.
“소인들도 적이 동쪽으로 도망치는 광경을 보았기에 대마도로 돌아갔으리라고 여겼습니다. 헌데 가는 길에 처음에 다대포를 지나갈 때는 없었던 적이, 부산진을 살피고 돌아오면서 보니 다대포를 점거하지 않겠사옵니까. 걸린 깃발을 보니 조라포에서 도망친 놈들이었습니다.”
본래 거제도에서 부산을 왕복하는 여정은 이틀은 걸린다. 하지만 이순신은 하루 반 정도면 부산에 다녀올 만큼 튼튼하고 억센 이들을 특별히 골라서 보냈다. 그래서 어제 오후에 내보낸 탐망선이 오늘 저녁에 귀환할 수 있었다.
“만약 가는 길에 적을 보았다면 어찌 바로 돌아와 통상께 알리지 않았겠사옵니까? 코앞에 적이 있음을 알고도 어찌 그대로 놓아둔 채 떠났겠습니까.”
“옳은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이순신이 보고를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탐망군관이 고개를 숙인 뒤 현장에서 본 적세에 관해 설명을 재개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만큼 다가가서 살피니 절영도 포대는 화약고가 터진 듯, 모든 포가 부서지고 포대 앞에 세운 여장도 망가져 있었습니다. 섬 주변에는 적어도 5백 척 이상 되는 왜 중선과 대선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왜 소선들이 주변을 돌며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절영도 안쪽으로 돌아 부산진이 있는 포구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겠군.”
“그렇습니다, 통상.”
어제 낮에 벌어진 수전에서 경상우수군은 대중소를 합쳐 왜선 170여 척을 불태우고 48척을 나포했다. 붙잡은 적선 중 일부는 등선군이 뛰어들어 싸워 빼앗았지만, 대부분은 적이 고금도 바닷가에 버리고 간 배들이었다.
나포한 적선에서 붙잡은 포로는 약 2천 명. 하지만 왜군 전체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어느 쪽으로 오는지 같은 정보는 거의 몰랐다. 대부분 배 안에서 노를 젓던 격군들이라 그런 긴한 정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뜬소문 수준으로 중구난방으로만 알고 있는 탓이다.
왜장이나 왜병이 거의 잡히지 않은 데는 놈들이 죽어라고 저항한 탓도 있었지만, 군사들이 갑옷 입은 적은 눈에 보이는 대로 쏘아죽인 데도 원인이 있었다. 게다가 포에 맞아 죽은 적도 상당한 숫자니, 쏘아죽인 왜적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대포에 있는 적선은 얼마나 되었는가?”
“소관이 귀환하는 길에 본 적선은 불과 십여 척이었습니다. 포구 입구에서 경계하는 전선도 불과 소선 세 척이었던 것을 보면, 다대포를 탈취한 뒤 바로 도망친 게 아닐까 합니다.”
“서평포는 상황이 어떠하였는가?”
“귀환할 시간이 촉박하여 포구에 들르지는 못했사오나, 서평포에는 아직 경상좌수영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사옵니다. 다만 통상께서도 아시다시피 정박한 전선은 없었습니다.”
곧바로 동쪽으로 도망한 적이 중도에 방향을 틀어 다대포를 향했을 줄은 몰랐다. 대마도로 도주하거나 부산진을 향한 본진과 합류했으리라고 판단했었다. 제법 여유를 두고 거제도에서 도망친 자들이, 겨우 다대포를 목적지로 택할 리는 없지 않은가.
“내일 아침 바로 출격하여 다대포에 들어간 왜적을 공격하고, 서평포 상황을 살펴 서평포에 남은 군사들을 구출한다. 이대로 두면 서평포 군사들은 퇴로가 끊겨 전멸할 게 아니냐.”
“알겠습니다, 통상.”
이순신이 하고자 했으면 오늘 아침에 바로 경상우수영 전군을 이끌고 부산진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어디를 노리는지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로 군사를 움직인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옆에 있는 다른 군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덕도에 표착한 적은 다 잡았는가?”
“명하신 대로 안골포 군사들이 섬에 올라서 토벌을 시도했사오나, 너무 수가 많아서 섣불리 손댈 수가 없었사옵니다.”
어제 가덕도로 도망친 왜적은 군사와 격군을 합쳐 4천 명은 족히 되었다. 안골포 군사들만 가지고는 감당이 안 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수전을 치러야 하는 판국에 등선군 병력을 가덕도에 투입할 수도 없었다.
“천성보에 있는 군사와 물자를 모두 안골포로 빼내고, 가덕도를 비워라. 섬에 아직 머무는 백성들도 육지로 옮기게 하라. 놈들을 굶겨서 기운을 뺀다.”
표착한 지 아직 하루밖에 안 되어 왜병들이 팔팔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열흘쯤 계속 굶주리면 꼼짝도 못 할 것이다. 그때 가서 처리하면 쉽다.
“안골포, 제포, 영등포 세 진포에 속한 방선은 가덕도 주변을 돌면서 왜적이 해변에 모습을 보이는 대로 쏘아라. 혹시 속임수일 수 있으니, 구명을 청하더라도 용서 없이 쏘아라.”
왜병이 쉽게 항복하지 않는다는 건 어제 싸움에서 충분히 알았다. 가덕도에 갇힌 왜적들이 섬에서 빠져나갈 배를 빼앗을 심산으로, 해안에서 투항하는 척하면서 아군을 끌어들일 공산은 충분히 있다. 이순신은 수하 군사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게 할 생각이 없었다.
“산 채로 잡은 왜적들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아시겠지만 거의 격군들입니다.”
“칼 한 자루 차지 않았고, 상전에게 강제로 끌려왔다 하는 자들을 모조리 목을 베는 건 좀 가엾겠지. 일단 영등포 인근 땅에 울타리를 쳐서 가두고, 등선군 군사들에게 감시하도록 하라. 놈들이 양순해지면 뭍에서 노역을 시키거나 배에 태워 노를 젓게 하겠다.”
몽땅 베어버릴 게 아니면 밥은 먹여야 하고, 그러자면 밥값을 시켜야 한다. 저들에게 일을 시키면 그만큼 많은 수졸을 노역 대신 싸움에 투입할 수 있으니 이순신으로서는 충분히 해볼 만한 선택이었다. 말을 안 들으면 그때 가서 베면 그만이다.
“그리고 전라좌수영에 사자를 보내 우리가 파견한 전선들을 돌아오게 하라. 어제 싸움에서 물리친 적이 5백 척인데 부산진에 있는 적선이 또 5백 척이라 하니, 우리 편에서도 전선이 더 많이 필요하다.”
“전라수군에는 출동 명령을 내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혹 적이 또 호남을 노릴지도 모른다고.”
전라도에 대군을 상륙시킨다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자들이다. 이번에 대군이 경상도로 들어온 것을 보면 분명 적 주공은 경상도로 오리라는 본래 예측이 맞았다. 하지만 전라도로 보내둔 왜군 진영에 원군이나 물자를 보내는 선단 정도는 올 수도 있다.
“전라 및 충청수군은 후에 상황을 보아 부르겠다. 그때까지는 우리 경상우수군만으로 적과 싸운다.”
“예, 통상!”
적이 전라도 및 충청도 해안을 직접 노리지 않는다는 것만 확실해지면 된다. 그러면 판옥선 2백 척, 거북선 8척을 모아서 부산진을 차지한 왜적을 공격할 수 있다. 삼도 수군이 한꺼번에 나서면, 적은 곧바로 본국과 연결이 끊기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리라.
– 40 –
대군이 움직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상주에 머무르는 동안 군사들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조련을 거듭하면서 기다렸지만, 역시 멈춰 있던 군대를 다시 움직이는 건 쉽지 않았다.
“대구까지 하루는 더 가야 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도체찰사를 기다리란 말이지.”
군대가 움직이기 가장 좋은 길은 영남대로다. 하지만 영남대로는 상주를 통과하지 않았다. 오위군은 어제 아침 일찍 상주에서 출발해서 지선 도로를 타고 영남대로로 들어갔다. 어제는 김천에서 야영했고 오늘은 왜관에서 묵는다. 이틀 연속으로 백 리를 걸었다.
“왜적이 우리 땅에 올랐는데, 더 빨리 가야 하건만!”
“참으소서. 너무 급하게 가면 군사들이 지쳐서 막상 싸움터에서 힘을 내지 못하옵니다.”
김여물을 비롯한 종사관들은 흥분한 신립을 뜯어말리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이들이 힘써 붙들지 않았으면, 신립은 진즉에 기병 1만 3천 기만 인솔한 채로 남쪽으로 달려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오위군 기병이라면 두세 배쯤 되는 왜병은 그냥 짓밟을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나마 이틀이 지나니 흥분이 가라앉고 침착해졌다. 그래서 기병만 거느리고 달려가겠다는 소리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계속 조바심을 내면서 군사들을 재촉했다. 급한 마음 탓이겠지만, 재촉에는 욕설까지 섞여 있었다.
“화약도, 군량도 많이 가져가지 않으니 더 빨리 걸어도 될 텐데! 젠장!”
“이해하소서. 비록 많이 단련하였다 하나, 모든 군사가 평양군 대감 같을 수는 없사옵니다.”
아첨 섞인 진언에 신립이 좀 누그러졌다. 하지만 비난 대상이 자기 군사들에서 유성룡으로 옮겨졌을 뿐이었다.
“도대체 영상께서는 왜 내려온다는 말인가! 싸움을 한 번 해본 경험은커녕, 수령으로 나가 군무를 수행해 본 적도 없는 양반이 뭐하러 전쟁터를 찾는단 말인가?”
유성룡은 워낙 천재로 명성이 자자했던 탓에 일찌감치 요직만 골라 거쳤다. 지방관으로는 상주목사를 잠깐 거쳤을 뿐이고, 반년도 되지 않아 주상께서 다시 불러올렸다. 게다가 상주는 워낙 평안한 고을이다 보니 이때도 군사를 움직일 일은 없었다.
신립은 군무 경험 없는 유성룡에게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싫었다. 전주에 나가 있는 이일 역시 체찰사 이원익 밑에 있기는 하지만, 이원익은 애초에 성격이 유한 사람이다. 만사를 이일이 알아서 하도록 두고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성룡은 그런 성격도 아니다.
“영상께서는 도성에서 상대할 사람이 없을 만큼 바둑을 잘 두신다고 합니다. 그만큼 대국을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바둑과 장기를 잘 두는 장수가 싸움에 이긴다면, 무과에서는 무예와 병법을 시험하는 대신 놀이판을 펴고 앉아 대국을 벌이면 되겠군!”
신립이 콧방귀를 뀌었다. 바둑 이야기를 했던 군관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장수와 군사는 장기알도, 바둑돌도 아니야! 모두 살아서 숨 쉬는 사람이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존재들이란 말일세. 더구나 전장에서는 장기판처럼 전장을 내려다볼 수도 없고, 바둑판처럼 한번 놓은 돌이 그 자리에 고정되지도 않아!”
물론 신립에게도 비승군 한 조가 따라오고 있다. 하지만 신립은 열기구 하나만 있으면 모든 적정을 살필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날씨가 나쁘면 뜰 수 없고, 한 자리에서 오르락내리락할 뿐이며 자기 힘으로 이동하지도 못하는 기구가 무슨 결정적인 도구란 말인가?
가장 확실히 적정을 살필 수 있는 도구는 직접 돌아다니는 기병의 눈과 그를 태운 말이다. 북방에서 그랬듯, 비승군 따위는 고정된 성채를 지킬 때나 유용한 집단이었다. 전주성에 있는 이일이야 그것도 잘 쓰고 있겠지만, 들판을 누비며 적을 섬멸한 신립에게는 별 필요가 없다.
“그래서 비승군을 대구부에 놓고 내려가시겠다는 겁니까?”
“그렇지. 적을 찾아 쉴 새 없이 기동하고 싸워야 할 판에, 언제 불을 피워 기구를 올리고 그 위에서 살핀 결과를 받아 움직인단 말인가?”
“하지만 주상께서 특별히 보내주셨는데….”
비승군은 본래 오위군에 속한 조직이 아니다. 상주에서 대기하는 중에 내려왔다.
“주상께서 배려해주심은 감사하나, 전장에서 딱히 긴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뒤로 젖혀두는 정도는 장수로서 할 수 있는 일일세. 대구부도 중요한 성이니,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대구 방어를 강화하고자 비승군을 양보했다고 하면 전하께서도 서운해하지는 않으실 걸세.”
한참 투덜거리고 나니 화가 좀 풀렸다. 신립은 군사들에게 서둘러 숙영지를 준비하게 했다. 어서 진채를 세우고 밥을 먹고 잠을 자야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또 백릿길을 걸을 테니까.
신립은 대구에서 유성룡을 기다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상황이 급하니, 정세만 확인한 후에 바로 부산진으로 간다. 도체찰사는 급하면 자기가 빨리 쫓아오면 그만이다.
– 41 –
천리경으로 보니 적은 민가를 허물고 나무를 베어 조달한 목재로 갖가지 공성기구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새 준비했는지 흙을 채운 가마니를 가져다가 해가 뜨기 전에 토루(土壘)를 잔뜩 세워놓고, 그 안에다 화포를 집어넣었다. 두른 담이 높아 포수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성벽 가까이에 커다란 토산도 쌓기 시작했다. 만들어둔 포대에서 엄호할 수 있으리라 여긴 모양이지만, 턱도 없는 일이었다. 당장에 호령이 떨어졌다.
“포를 쏘아라!”
총통 사거리 밖에서 만드는 공성기구는 성벽 앞으로 밀고 올 때까지 두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이 성벽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토루나 토산을 만드는 꼬락서니까지 그대로 보아넘길 수는 없었다.
송상현이 호령하자 곧바로 날아간 포환이 5백 보쯤 떨어진 토산 비탈에 정통으로 박혔다. 안심하고 흙을 쌓던 왜병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적이 마주 쏘고 있습니다!”
흙가마니로 구축한 토루 속에 틀어박힌 왜적 포수들, 아마 남만인일 포수들이 이쪽 성벽을 향해서 포를 쏘았다. 십여 발이나 되는 포성이 울리고, 절반 가까이가 성벽에 맞았다.
“우리도 마주 쏘아라!”
지자포가 포루를 향해 불을 뿜었지만 맞히지 못했다. 토산이야 드러난 면적이 워낙 크니까 적당히 쏘면 이쪽을 향한 사면 어디든 맞출 수 있지만, 대포 한 문이 겨우 들어간 포루 정도 표적은 작다. 2백 보 떨어진 과녁 한가운데 있는 붉은 원을 활로 맞히기보다 힘들었다.
왜적이 설치한 포루는 십여 개로, 남문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위치했다. 적이 북쪽보다 남쪽 성벽에 공격을 집중하려는 의도를 품었음을 빤히 보여주는 배치였다.
“오늘 밤에는 적이 더 많은 포루와 토산을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성을 나가 토산을 부수는 편이 낫지 않을지요. 지뢰를 묻어서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그러기를 바라고 적이 덫을 놓을 수도 있네.”
동래성에는 군사가 2천 명밖에 없다. 성에 의지해 싸우니까 열 배나 되는 왜적과 비등하게 싸우고 있지, 섣불리 성을 나가 싸우다가는 도리어 섬멸당할 공산이 크다는 사실을 그 역시 잘 알았다.
“문을 열고 나가 싸우는 건 적이 더 근접한 곳에 산을 쌓거든 하도록 하세. 그보다는 저기 호를 파며 성에 근접하는 자들을 먼저 처리해야 할 듯하지만.”
방금 공격해서 쌓는 작업을 중단시킨 토산에서 좀 떨어진 쪽으로, 한참 후방에서부터 호를 파면서 접근하는 왜병들이 보였다. 호를 파서 성에서 쏘는 시석을 피하겠다는 의도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우리 원군이 먼저 올지, 놈들이 후속 병력을 끌고 오는 게 먼저일지…시간 싸움이로군.”
송상현이 울산에서 오는 동쪽 길을 보며 중얼거렸다. 본래 짜놓은 계획대로라면 벌써 도착했어야 하는 경상좌병영군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무래도 일이 꼬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