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88
2부 266화
– 6 –
“대인께서도 바쁘십니다. 이리 자주 오시니, 곧 통변도 필요 없어지시겠습니다.”
“다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일에 한 조각이라도 보태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이리 큰 뜻을 품고 오신 분을 며칠이나 기다리시게 해서 유감입니다. 허허, 앉으시지요.”
또 북경에 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만나야 할 사람들도 그대로다. 공부상서가 증동형에서 석성으로 바뀌었지만, 그 외에 다른 상서들은 전부 지난번에 왔을 때와 같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나마 바뀐 사람인 석성 역시 안면이 있는 상대인 건 마찬가지다.
“이번에 대인께서 가져오신 용건은 참으로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입니다. 차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왜인들이 조선을 손에 넣고 천조를 넘본다면 실로 끔찍한 일입니다. 그래서 빠른 대책 논의를 위해 우리 여섯 사람이 한꺼번에 대인을 접견하기로 했습니다.”
이산해를 맞이한 상서들은 조선이 파악하고 있는 왜적의 현황에 관해 관심 있게 들었다. 그 수효가 최대 50만에 달할 수 있다는 보고에 두 눈을 등잔만 하게 뜨기도 했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이야기를 듣던 병부상서 왕일악은 이런 질문도 했다.
“비록 바다가 사이에 있다고 하나 왜국은 귀국과 제법 가까운 인접국이거늘, 어찌 그 많은 군사가 조선을 치려고 준비하는데 그대들은 이를 몰랐소?”
“작년 가을부터 계속 배를 보내 조선과 가장 가까운 왜땅인 구주 북해안을 꼼꼼히 살폈으나 간교한 왜적들이 더 멀리 떨어진 구주 남해안에 배를 은닉한 탓에 이를 탐지하지 못했습니다. 북해안에 배가 없으니 적이 아직 침노하지 않으리라 여기다가 방비가 느슨해졌습니다.”
일본인을 첩자로 고용했다가 탐지에 실패했다는 이야기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공연히 조선 조정이 무능해 보일 뿐 아닌가. 당장 급한 문제도 아니고.
“무엇보다 당장 닥칠 문제가 식량입니다. 왜적이 쳐들어와 올해 수확이 모두 손실되게 생긴 남도 지방은 조선 제일의 곡창인지라, 자칫 내년 농사까지 제대로 짓지 못하게 된다면 실로 큰 재앙이 닥칠 형국입니다.”
이산해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백성들이 굶지 않게 하려면 이 정도 행동은 얼마든지 취할 수 있었다. 어차피 명나라 상서의 격이 조선 정승보다는 높으니까.
“조선은 천조를 지키는 중원의 울타리라, 그 밖에 있는 외적들이 쳐들어온다면 마땅히 서로 힘을 합쳐 싸워야 할 거요. 귀국은 어떤 도움을 원하시오? 천병이 싸움을 돕기를 바라오?”
조정을 출발하기 전, 주상께서도 명나라 군대는 필요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으셨다. 왜적을 물리친 뒤에도 돌아가지 않고 조선 땅에 눌러앉아 영향력을 행사하러 들거나, 구해준 은혜를 들어 후에 압력을 가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이다.
물론 명나라가 군대를 보내줄 만한 값은 이미 치렀다. 지난 2백 년 동안 조선은 명나라를 깍듯하게 상국으로 모셨다. 매년 조공을 바치고, 몇 번이나 군대를 보내 북방 야인들을 평정하여 명나라 조정이 이쪽에 신경을 덜 쓰게 했다. 몇 년 전에는 달단까지 쓸어버렸다.
그런 노력도 전부 조선이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명나라 역시 조선을 도와준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행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지만, 추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천병은 사절한다는 게 임금 이하 조선 조정 전체의 일치된 견해였다.
“아직은 우리 군사가 넉넉히 있으니 천병을 동원하는 폐까지는 끼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감히 청하니, 양식만 좀 도와주십시오. 말씀드렸듯이 왜적이 우리 곡창에 침입하였기에 올해, 내년 두 해 농사는 심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쌀이 얼마나 있으면 될 것 같소?”
호부상서 송훈이 질문했다. 이산해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중국 되로 재서, 5백만 석 정도는 필요합니다.”
중국 되로 1석은 조선 단위로는 1.2석이다. 즉 원조받을 곡물은 6백만 석이 된다.
“삼남에서 생산하던 물량보다는 적습니다만, 저희가 비축해둔 곡식도 있으므로 그 정도만 보내주시면 일단 한 해를 버틸 수 있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적은 양은 아니구려.”
이부상서 양외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오. 폐하께도 상주하여 비답을 얻어야 하고, 내각과 호부에서도 의논이 필요하오. 5백만 석이라면 우리 재정에도 상당한 부담이라 말이오. 운반하기도 어렵고.”
“그 문제라면 저희 스스로 해결하겠습니다. 강남 미곡상들과 직접 접촉해도 좋다고 허락만 해주시고, 인삼 판매를 늘려도 좋다고만 해주시면 저희가 인삼을 가져와 쌀로 바꾸고 운반도 능력껏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화포를 만들 구리 매입도 허용해주셨으면 합니다.”
상서들이 눈을 마주쳤다. 잠시 자기들 사이에서 눈빛과 손짓이 오간 뒤에, 좌장격인 양위가 이산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알겠소. 그래도 논의는 해보아야 하니, 일단 객관에서 기다려 주시겠소?”
“알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청이 더 있습니다.”
“무엇이오?”
“왜적과 싸우는데 천병을 보내주실 필요는 없으나, 혹 저희가 왜적과 싸우는 데 힘을 쏟는 동안 배후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왕일악은 그 뜻을 바로 이해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염려하지 마시오. 건주위든 누구든, 왜적과 싸우는 귀국을 배후에서 해하려 시도하는 자가 있다면 당장 짓밟아버리라고 요동총병 이여송에게 일러두겠소.”
“감사합니다, 상서 대인.”
“유구와 조선 모두 경고한 대로, 왜인들이 정말 난을 일으켰군요. 자, 어떻게 할까요.”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함께 명나라를 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미리 통보한 바 있다. 하지만 조정 일각에는 조선이 일본과 손을 잡고 쳐들어올지 모른다고 경계하는 이들이 아직 있었다.
“얼마 안 가 칼을 겨누는 방향을 바꿀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지요. 힘에 부쳐 어쩔 수 없이 항복했다고 하면서 말이오.”
호부상서 송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내준 쌀은 그대로 우리를 치는 군량미가 되겠지요. 청사에 남을 만큼 어리석은 처사가 될 거요.”
“설마 그럴까요. 조선인들은 예의와 도리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왜인들과 손을 잡고 천자께 칼을 돌리다니, 그런 무도한 짓을 할 리가 없습니다.”
석성이 적극 변호에 나섰다. 다른 이들도 딱히 그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공부상서가 한 말이 맞긴 하오. 하지만 세상사라는 것이 어찌 생각대로만 흘러가겠소?”
왕일악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의견을 내놓았다.
“사자를 보내서 조선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직접 보고 오게 합시다. 어차피 저들이 요구한 만큼의 물자를 준비하는데도 시간은 걸리니까, 그동안 실제 상황을 살피게 하는 거요.”
도성 인근에 보관하던 관곡만 털어서는 백만 석도 조달할 수 없다. 창고를 싹 비워 조선에 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 이상은 시장에 나온 곡물을 매집해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이 걸린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만약 조선이 정말 일본과 결탁할 기미가 보인다면 모아놓은 전량은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지 않겠소?”
“무슨 걱정이오. 우리 군자(軍資)로 쓰면 그만이오. 한꺼번에 둘을 다 막으려면 오죽 비용이 많이 들겠소? 아무리 돈과 쌀을 준비해도 모자랄 거요.”
조선이 홀로 일본과 싸우든, 일본과 힘을 합쳐 명나라로 쳐들어오든 근래에 없었던 대규모 전쟁이 될 것은 자명하다. 여섯 상서는 부디 황제가 이 급한 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반응을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 7 –
“일본과 조선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라…그 승패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난 관심 없소. 어차피 둘 다 이교도 왕국이잖소.”
스페인령 마닐라에 주재하는 6대 총독, 산티아고 데 베라(Santiago de Vera)는 멕시코에서 마닐라 갈레온 편으로 도착한 자기 후임자 페레즈 다스마리나스(Perez Dasmarinas)를 향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스마리나스는 6월 1일부터 총독직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서류나 보시오. 여기 필리핀에는 귀하가 맡아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있단 말이오.”
마닐라를 석조건물로 채우고, 성벽을 쌓아 요새화한다. 필리핀 곳곳에 요새를 세워서 여러 섬과 원주민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한다. 필리핀 총독으로서 해야 할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늘의 별처럼 많은 이곳 섬들을 장악하고, 원주민들로 하여금 옳은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하면서 금을 찾아 폐하께 보내는 거요. 이교도들이 벌이는 전쟁 따위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소. 놈들이 배나 주문하면 모를까.”
데 베라 총독은 6년이나 필리핀을 통치해 왔다. 조선에 가 있는 예수회 신부들의 부탁으로 군사고문을 보내주거나 금을 받고 배를 두 척 건조해 주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쏠쏠한 부수입일 뿐이었다. 그가 관심을 가진 대상은 조선보다는 중국이었다.
“일본인들은 제법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소. 조선도 내가 보내준 우리 군사고문 덕분에 군대를 좀 강화했다니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겠지만, 아마 영토를 상당히 뺏길 거요.”
두 나라가 왜 싸우는지 데 베라 총독은 별 관심이 없었다. 인접국이 싸우는 이유야 뭐 흔한 거 아니겠는가. 영토분쟁이나 무역 허가권, 왕위계승권 같은 문제겠지.
“그러고 보니 4년 전에 내가 폐하께 올린 명나라 원정안에 대해서 혹시 폐하께서 생각을 바꾸시지는 않으셨소? 병사 2만 명만 동원하면, 일본군과 동맹해서 명나라를 정복할 수 있단 말이오.”
전임자의 말을 들은 다스마리나스가 코웃음을 쳤다.
“총독께서는 여기 6년이나 계셨으면서 명나라가 얼마나 큰지 아직도 모르셨습니까? 명나라, 아니 카타이는 거의 유럽 전체만큼이나 큰 나라입니다. 스페인과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독일에 사는 사람 숫자를 다 합친 것만큼 많은 사람이 삽니다. 겨우 2만 병력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귀관이 그런 걸 어떻게 아시오? 그 정보는 어디서 나왔소?”
“마드리드에 온 조선 사절단이 알려주었지요.”
다스마리나스는 마드리드 궁정에서 조선인들을 만났다. 다스마리나스가 필리핀에 부임하러 갈 예정이라는 사실을 안 조선인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에 대해 그가 알아야 할 사항들을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조선과 중국의 역사, 갖가지 현황도 그 속에 들어있었다.
“총독께서 명나라를 정복하자고 하는 건 결국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하지만 명나라는 크리스트교에 대한 거부가 심하고, 힘으로 믿음을 강요하기에는 너무 큽니다. 그에 비하면 조선 쪽이 훨씬 낫지요.”
조선은 소규모이긴 해도 신앙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에 스스로 사절단을 보낼 만큼 개방적이다. 이제까지 일본 외에는 이런 정책을 편 아시아 국가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수많은 영주가 병립하는 봉건적인 국가로, 그중 일부가 우리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보일 뿐입니다. 이에 반해서 조선은 온 나라가 국왕 밑에 하나로 뭉쳐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욱 좋은 선교 상대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지요.”
후임자인 다스마리나스가 자신만만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데 베라가 천천히 팔짱을 끼었다. 그 역시 조선의 상황에 대해 아예 모르지는 않았다. 알 만큼은 알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인들은 오직 예수회 사제 일부만 받아들이면서 다른 수도회를 거부하고 있는데 어떻게 선교하겠소? 아무리 예수회가 아시아 선교 독점권을 가졌다 하나, 이건 곤란하오.”
“그걸 깨기 위해서라도 이번 전쟁을 이용해야지요.”
다스마리나스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성 야고보를 받드는 기사입니다. 신앙이야말로 저희가 검을 뽑는 유일한 이유, 이 전쟁에 개입해서 조선을 지원한다면 조선은 확실히 우리 신앙을 향해서 크게 기울어질 겁니다.”
“어떻게 개입하겠다는 거요? 우리 병력은 필리핀을 제압하기도 모자란 참인데.”
“전쟁이 진행되는 양상을 확인한 뒤에 가장 효율적이면서 또 크게 생색을 낼 수 있는 개입 수단을 찾아야겠지요.”
호언장담을 들은 데 베라가 한숨을 쉬었다.
“알겠소. 그거야 귀하가 알아서 하시오. 지금은 인수인계를 받고, 귀하가 정식 총독이 되는 6월 1일 이후에 말이오.”
“그러겠습니다.”
– 8 –
두 사내가 다실에 앉아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다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차를 나누는 건 핑계일 뿐, 다른 이의 눈에 띄지 않고 대화를 나눌 장소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과연 노부나가 공께서 계획하신 대로 올해 안에 원정을 끝낼 수 있을까요.”
손님에게 질문을 받은 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잠자코 고개를 저었다.
“모를 일이오.”
그와 마주 앉아 있던 손님, 사타케 요시시게는 한숨을 쉬었다. 그 역시 노부나가의 명령에 따라 병력을 거느리고 나고야로 향하는 길이었다. 다만 사실상 마지막 원정대라고 할 수 있는 11군이라, 도착할 때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덕분에 병사들부터 일단 서쪽으로 보내고,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자신은 오사카에서 잠시 머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웃 다이묘인 이에야스의 초대를 받았다.
“노부나가 공께서는 11군이 바다를 건너기도 전에 조선 국왕이 무릎을 꿇으리라 하셨지요. 하지만 듣자 하니, 일이 그렇게 되어가지는 않는 듯합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벌써 한 달이 되었다. 그동안 조선에서 싸움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상세한 내용은 아니더라도 대략적인 상황은 이곳 오사카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전라도로 들어간 하시바군은 제법 잘 싸우는 모양이오. 내륙으로 들어가 여러 성과 고을을 함락했다는군.”
“문제는 내륙으로 진입한 뒤에는 소식이 끊겼다는 사실 아닙니까.”
막대한 목재를 소모해서 만든 배들이 조선 수군에게 가로막혀 줄줄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전쟁을 시작한 지 한 달인데, 상실한 선박이 벌써 수백 척이나 된다고 했다. 덕분에 전라도로 가는 해로는 막히고, 히데요시가 끌고 간 9만 병사도 연락이 끊겼다. 요시시게가 탄식했다.
“조선에는 땔나무가 없을까 봐 일본에서 장작을 갖다 주는 꼴이군요. 지금 서국(西國)에서는 상인과 노인을 빼면 거리에 나가도 병사가 아닌 남자를 볼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들었습니다. 군량과 화약을 나르느라 동원된 자들도 많고요.”
“이곳 오사카는 대도시라 덜한 편이오. 하지만 여기서 서쪽으로 갈수록 남자가 적어지지요. 아무래도 병사도, 일꾼도 서쪽에서 많이 동원했으니까.”
서쪽에 있는 조선을 공격하려니 서부 영주들이 인력도 대부분 동원하는 게 당연하다. 동국(東國)에 있는 영주들은 대개 돈과 물자만 제공하고 병력은 거의 내지 않았다. 요시시게 역시 사타케 가문의 위광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숫자인 2천 명을 데리고 왔을 뿐이었다.
“아시겠지만, 동쪽이라고 해서 절대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병사와 일꾼을 조선에 보내지 않는 대신 물자를 서쪽에 보내면서 나무를 베어 재목을 마련하고, 배를 건조해야 하니까요.”
“내가 어찌 그 사정을 모르겠소. 내 영지인 에도 역시 동쪽이오.”
노부나가의 제일가는 친우이자 동맹이지만, 이에야스 역시 이번 전쟁준비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일본 내를 안정시키는 임무와 별개로 군량과 화약을 비롯한 물자를 제공하고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어야 했다. 이제는 구리를 모아 대포를 주조하라는 명까지 떨어졌다.
“지금 전쟁은 일본 전역의 병사를 몽땅 긁어모으는 수준이오. 노부나가 공께서 여름이 오기 전에 전쟁이 끝나리라 하셨기에 다들 이를 악물고 병사와 물자를 모았는데, 전쟁이 길어져서 돌아오는 게 늦어지면 모두 타격이 클 거요.”
병사는 곧 농민이다. 한참 씨를 뿌리고 모를 심어야 할 시기에 사상 최대의 대군을 동원해 원정에 나섰으니 민심이 호의적일 리가 없었다. 더구나 주고쿠, 규슈에서는 병사뿐만 아니라 수부까지 대량으로 동원했다. 그리고 병사도 아닌 수부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에야스 공께서도 몇 차례 원정을 그만두시라고 간언하셨다 들었습니다만….”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나는 지금이라도 노부나가 공께서 원정을 그만두셨으면 싶소.”
이에야스가 한숨을 쉬었다. 깜짝 놀란 요시시게가 눈을 크게 떴다.
“이미 시작한 원정을 어떻게 취소한단 말입니까? 저들이 곱게 돌려보내 줄까요?”
“명분을 만들어야지요. ‘이 전쟁은 임해군이 부추기는 바람에 일어난 것’이라고 사자를 보내 조선 국왕에게 전하고, 지금 점령한 모든 조선 영토를 대가 없이 반환하면서 임해군을 넘기는 정도라면 화의를 맺고 귀환할 수 있을 거요. 노부나가 공께서 체면을 깎이는 게 문제지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싸우지 않고 일본군이 철수하는 조건이라면 조선인들이 적절한 선에서 협상에 응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침공을 사과하고 물러가겠다는 적을 굳이 쫓아오면서 죽일 만큼 조선인들이 독하다고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노부나가 공께서는 화의를 맺고 병력을 물릴 생각이 전혀 없으시지. 바다 건너에서 별로 이득도 없는 싸움에 소모될 사타케의 정예병들 생각을 하니 무척 안타깝구려.”
이에야스가 탄식했다. 요시시게가 조용히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