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91
2부 2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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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이별입니다, 아버님.”
“어쩔 수 없지. 주군께서 그리 정하신 이상 따르는 것이 신하로서 지켜야 할 도리다. 네가 할 일을 훌륭히 수행하고 돌아오너라.”
사나다 마사유키, 노부시게 부자는 그동안 대구부사 조경과 협력해서 대구부를 강화하는데 진력했다. 노부나가가 동래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더더욱 방어태세 강화를 서둘렀다. 대구성은 이제 두꺼운 외벽과 해자, 복잡한 내성으로 적을 도륙할 준비를 완비했다.
일각에서는 왜별기를 동래에 원병으로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지만, 조경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동래부 구원은 경상좌병사가 담당한 일이기도 할뿐더러, 혹시 적 제2진이 울산이나 경주를 통해 상륙하여 대구로 몰려올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는 적이 경상도 어디에 상륙하더라도 꼭 통과해야 하는 요지다. 지금 대구에 모여 있는 군사는 좌병사의 소집에서 제외된 관군에다 속오군을 합친 조선군 3천과 이들 부자가 거느린 왜별기 3천으로, 총 6천이다.
대군이라고 할 만한 규모는 아니다. 대구성 본성에다 달성, 주변 산성 다섯 곳에까지 모두 병력을 넉넉히 두자면 병력이 적어도 이보다 두 배는 필요하다. 그래서 관찰사 겸 도순찰사 김성일이 주변 고을에 연통을 돌려놓았다. 속오군을 소집해서 대구로 보내라고 말이다.
본래 법규에 따르자면 전란이 터졌으니 속오군도 병마절도사 지휘하에 들어가는 게 맞다. 하지만 병마절도사가 주재하는 경상좌병영이 멀리 울산에 있다 보니, 후방 지역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부 임무는 도순찰사로 명받은 김성일이 처리해왔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전하께서도 제게 공경군 근무를 명하지 않으시고 계속 왜별기에 있으라 하셨는데, 왜 도총관이 저를 공경군에 넣으려 하는지 그 이유입니다.”
도총관은 신립이다. 신립은 오위 군사 5만에 족친위 군사 3천을 거느리고 사흘 전 대구에 당도했다. 성벽 밖 벌판이 오위 군사들이 친 장막으로 덮일 정도였다.
공경군은 족친위를 뜻한다. 일본의 공경(公卿)들처럼 ‘고귀한 신분이지만 싸움은 서투르다’ 해서 왜별기 군사들이 비하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그야, 왕실 일족은 모두 공경군 소속으로 싸움에 나가라고 전하께서 정하신 때문이겠지. 너 역시 전하의 사위로써 왕실의 일족, 공경군에 들어갈 신분이 되지 않았느냐?.”
선왕의 부마, 즉 왕의 매제와 매형들도 예외 없이 족친위에 들어가 있다. 지난번 북방 원정 때도 모조리 참가했고, 죽은 사람은 다행히 없으나 불구가 된 사람은 있었다. 족친위에 속한 귀하신 분들이 일반 병사들처럼 싸우다 죽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본 게 이들 왜별기였다.
“단순히 신분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히 도총관이 노리는 바가 있습니다.”
짚이는 바는 있었다. 신립은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왜적을 치는 데 꼭 필요하다’면서 왜별기 3천을 전부 자기에게 넘기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대구부사 조경이 왜별기는 자기 관할 하에 있으며, 어명에 따라서 대구를 지키려면 왜별기 전력이 꼭 필요하다고 버텨서 무산시켰다.
임금이 신립을 남쪽으로 내려보내면서 도순변사로 명하기라도 했다면 일개 부사인 조경이 신립의 지시에 맞설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임금은 무슨 의도인지는 몰라도 신립에게 남도 군사 전체에 대한 지휘권을 주지 않았다. 신립은 오위군 총대장일 뿐이었다.
“혹시 저를 인질로 삼아 아버님께서 왜별기를 끌고 따라오게 할 심산인 것은 아닐까요?”
“너는 아직도 조선을 잘 모르느냐? 네가 도총관 옆에 있다는 이유로 내가 왜별기를 데리고 도총관 밑으로 간다면, 도총관은 좋아하며 반길지 몰라도 대구부사가 당장 내 목을 치겠다고 덤벼들 게다.”
일본이라고 해서 장수들이 마음대로 소속부대를 이탈할 수는 없지만, 작정하면 저지를 수는 있다. 휘하에 거느린 병사가 자기 영지에서 모은 자기 병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병사가 왕의 병사인 조선에서는 그런 행동이 불가능하다. 왜별기 병사들도 이젠 모두 왕의 병사다.
“그럼 저를 곁에 두고 일본군이 즐겨 쓰는 전법에 대한 조언이라도 얻을 셈일까요?”
아들을 송별하러 나온 마사유키가 말 위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왜별기고 남만별기고, 오위군 외에는 전부 길에 굴러다니는 개똥으로 취급하던 그 작자가 말이냐? 다른 장수라면 혹 몰라도 도총관이 그럴 리는 절대로 없다. 그보다는, 너를 이용해서 전하께 잘 보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어 보이는구나.”
“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군략(軍略)은 이미 충분하게 배웠다. 하지만 정략(政略)에까지 익숙해지기에는 노부시게가 아직 젊었다. 부친의 발언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아들을 보며 마사유키가 쓴웃음을 지었다.
“너도 그날 도총관이 대구부사를 만나자마자 대뜸 하는 말을 다 들었겠지?”
“예, 아버님.”
“대구를 지키려면 우리가 꼭 필요하다는 대구부사를 보고 도총관이 뭐라고 했느냐?”
“자기가 오위군을 이끌고 남쪽에서 왜적을 다 쳐부수면 대구에서 수성할 필요 자체가 없을 것이니 왜별기 따위는 뒤에 남겨둘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뒤에 곧바로 널 공경군에 넣겠다고 했느냐?”
“아닙니다. 이틀 뒤, 어젯밤에야 사자를 보내서 제 신분을 강조하며 저는 왜별기가 아니라 공경군에 있어야 한다고, 오늘 오위군이 대구에서 출발할 때 합류하라고 했습니다.”
“그래. 일본식 전법을 배우려는 의도였다면 처음 이야기가 나온 자리에서 말을 꺼냈어야지. 왜별기 몇 명이라도 종사관으로 붙여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무조건 왜별기 전체를 내놓으라고만 억지를 쓰다가 나중에 너만 빼내려는 걸 보면 다른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
노부시게는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마사유키가 쓴웃음을 지었다.
“도총관은 동래부에 올라온 일본군을 모조리 혼자 쳐부술 심산이다. 그게 가능한지는 둘째 치고 그럴 계획이란 말이다. 그러면 도총관 휘하 오위군, 그리고 공경군이 공적을 독차지하게 되겠지.”
그제야 이해의 빛이 노부시게의 얼굴에 떠올랐다. 마사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공경군에 넣어두면, 공적을 쌓게 할 수 있다. 당연히 전하께서 너를 칭찬하실 것이고, 너를 배려해서 공을 세울 기회를 준 도총관에게도 호의를 품으시겠지. 도총관의 의도는 분명 거기 있을 것이다.”
“아…알겠습니다. 그럼 제 처신은 어쩌는 게 좋을까요?”
“어쩌긴 뭘 어쩌겠느냐? 기회가 온 이상 전장에 나가 싸울 뿐이다. 그리고 공적을 쌓아라. 그게 네 장인이자 주군이신 국왕 전하께 네 능력을 선보이고, 자격을 인정받는 방법이니까.”
마사유키는 신립의 계획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노부나가가 얼마나 많은 배를 준비했는지는 몰라도 한 번에 십만 대군을 보낼 수 없을 건 분명하다. 지금 확인된 적은 부산진과 다대포에 나뉘어 상륙한 4만여 명, 오위군 5만이 상대하지 못할 규모는 아니다.
더구나 적군은 오위군 편제와 전력에 대해서도 잘 모를 것이다. 임해군이 저편에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오위군은 임해군이 복무하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동안 일본에서 건너왔을 증원병력이다. 이미 건너왔는지 안 건너왔는지 모르겠지만 그 규모에 따라 대처를 다르게 해야 할 터였다. 무턱대고 달려들다간 패할 수도 있다.
아마 그래서 도성에서 유성룡까지 내려왔으리라. 도체찰사인 유성룡이 도착했으니, 신립도 자기 성격대로 막 내지르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 일본군이 쉽게 전진하지 못하게 견제하면서 도성에서 원군이 추가로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전하는 쪽이 유성룡의 계획이리라 짐작했다.
“아무튼, 너는 국왕의 사위로서 부끄럽지 않은 전공을 세우는 데만 집중해라. 혹 적진에서 아는 이를 만나더라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는 점 정도는 알겠지?”
“예, 아버님. 설사 형님을 만난다 해도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인사를 건넨 노부시게가 딸린 부하 넷과 함께 족친위 대열에 합류했다. 마사유키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머리를 돌려 대구성으로 돌아갔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준비를 계속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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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은 전군 선두에 서서 진격을 재촉했다. 왜적이 이미 동래부를 함락하고 경상좌병영까지 쳐서 흩어버린 지금, 오직 오위군만이 적을 막을 힘이 있었다. 대구에서 사흘이나 머무르다니, 예상 밖이었다. 그 탓으로 동래성을 구하지 못했다.
역시 유성룡 때문이었다. 하사품을 받았을 때는 반가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역시 유성룡이 따라붙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성룡은 사흘 전 대구에 도착했다. 오위군이 아직 대구에 있음을 확인하더니, 도체찰사인 자신이 허락하기 전에는 오위군이 출정할 수 없다고 언명하고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하루만 쉬고 날이 새자마자 바로 동래로 출발할 예정이었던 신립은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유성룡이 왕명을 받고 왔음을 모두 알고 있는데 두고 가버릴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한나절 정도는 기다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형편없는 약골 선비’는 다음날 낮까지 그대로 뻗어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오른 신립이 대구부 관아로 뛰어가서 재촉했음에도 유성룡은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저녁이 되어서야 유성룡이 비실거리는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신립이 품계고 뭐고 다 잊고 고함을 지를 뻔한 바로 그 순간 유성룡이 도성에서 가져온 선물 보따리를 내밀었다.
“전하께서 친히 내리신 어갑(御甲)이오! 조선 최고의 용장이며 충신인 그대를 어여삐 여기신 주상께서 본관을 통해 하사하셨으니, 다가오는 싸움에서 이 갑주를 걸치고 용전하기 바라오. 다만 그대는 귀한 몸임을 명심하시오. 이 갑옷만 믿고 적진으로 뛰어들어서는 절대 안 되오!”
유성룡을 향해서 막 폭발하려던 분노는 은빛으로 번쩍이는 갑옷을 보는 순간 자취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신립은 본래 훈련도감에 품은 경쟁심 때문에 남만식 무기도, 전술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랴? 임금께서 내리신 갑옷이 여기 있는데! 그것도 어갑이!
이 휘황찬란한 갑옷이야말로 상감께서 신립을 얼마나 아끼시는지를 보여주는 증표였다. 이 정도 물건을 가져왔다면 유성룡 때문에 하루 이틀 정도 출정이 늦어진다 해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장수가 전장에 나가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임금에게 칭찬을 받고,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아닌가!
유성룡은 신립에게 갑옷을 건네자마자 다시 뻗었다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신립과 마주 앉았다. 도순찰사 김성일과 대구부사 조경까지, 네 사람이 둘러앉아 추후 오위군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며 대구를 어떻게 지킬까에 대해 격론을 벌였다.
“이제 도체찰사께서도 원기를 회복하셨으니, 오늘이라도 동래부를 구하러 나갑시다! 지금은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유성룡은 주상께서 전군을 결집하여 적 주력과 회전을 벌임으로써 왜군을 격파하고자 하는 의도를 품고 계신다고 했다. 하지만 신립은 전혀 생각이 달랐다. 당장 싸워야만 했다.
한층 더 의욕이 솟구친 원인은 어제 받은 갑옷이었다. 상감께서는 자신을 신임하고 계신다. 마땅히 어서 출정하여 왜적을 토벌함으로써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유성룡도 가능한 모든 군사를 모은 뒤에야 적과 결전을 벌인다는 구상은 현실적이지 않음을 알았다. 무엇보다 북방에 있는 군사들이 내려오려면 아직 한 달은 족히 걸리리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토의는 적을 막아내면서도 오위군 전력을 온존하는 방법에 집중되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동래부에서는 왜적에게 포위된 우리 군사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적세를 살피자며 어찌 여유를 부릴 수 있습니까? 적세는 동래로 진군하면서 살펴도 충분합니다!”
신립이 재촉하는데도 유성룡은 선뜻 출병에 동의하지 않았다. 동래성이 어려운 처지에 처해 있음은 알지만, 혹 왜병이 경주를 거쳐 동쪽에서 대구로 다가올 수도 있지 않으냐고 했다.
“상황이 급해도 적세를 확실히 파악한 후에 움직여야 하오. 내가 비록 군사는 잘 모르지만, 이미 전라도를 범한 적이 경주라 해서 범할 수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하오.”
왜선 수백 척이 경주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갔다는 보고가 이미 올라왔다. 하지만 함흥까지 올라가지 않는 이상, 경주 이북 땅에는 대군을 동원해서 공격할만한 목표가 없다.
남쪽에서 쳐들어오는 적이 굳이 멀리 북쪽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방향을 바꿔 남으로 내려올 이유는 없었다. 유성룡은 적이 뭔가 착오를 일으켜 북상했고, 다시 남으로 내려와서 예정대로 경주 쪽을 노릴 공산이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도총관께서도 잘 생각해 보시지요. 왜적들이 강원도를 치겠습니까, 함경도를 치겠습니까? 분명 왜적 길잡이가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잡은 게 분명합니다. 놈들이 언제 다시 내려올지 모르는데, 경솔하게 전군을 동래부로 보냈다가 일이 생기면 어찌합니까.”
김성일도 유성룡 편에 섰다. 조경이 한마디 보탰다.
“다대포를 점령한 왜적이 낙동강을 따라서 올라오고 있는데, 그 기세가 무척이나 흉맹하다 합니다. 섣불리 움직이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 주의함이 옳겠습니다. 이미 울산에 있는 경상좌병사가 동래부를 구하러 움직였으니, 오위는 잠시 기다려 봄이 어떨지요.”
그 이야기도 신립에게는 분통 터지는 소리 중 하나였다. 서득운은 진즉에 동래성을 구하러 움직였어야 했다. 그런 사람이 아직도 울산에서 엉덩이를 뭉개고 있었다.
서득운이 얼른 군사를 내지 않은 핑계도 유성룡과 같았다. 북쪽으로 올라간 왜선들이 다시 나타나면 어쩌냐고? 그야 간단하지 않은가! 동래에 있는 적을 빨리 해치우고 다시 맞받아치면 되지! 적이 둘이면 한 번에 하나씩 해치우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지금 당장이라도 오위를 출동시켜야 하고, 왜병과 싸우는데 쓸모가 있을 왜별기도 오위에다 배속해 달라는 신립의 요구에 대해서도 세 사람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대구성도 지켜야 하고, 뒤늦게나마 서득운이 군사를 움직인 만큼 동래성은 더 버틸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다만 유성룡도 신립의 주장을 아예 부인하지는 않았다.
“적이 더 모이기 전에 그 싹을 밟아 버려야 한다는 도총관의 말도 옳기는 옳소. 내 듣기로 왜적은 50만 대군과 배 3천 척을 준비했다 했는데, 우리가 대구에서 적을 기다리는 동안 적이 계속 배로 군사를 나른다면 우리 수군이 아무리 중간에서 막아도 다 막지 못할 거요.”
“그렇습니다! 넘어온 적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대군이 되기 전에 쳐야 합니다!”
신립이 세운 전략은 간단했다. 다대포에 있는 왜적 2만과 동래부에 있는 왜적 2만, 두 적이 하나로 합치기 전에 뭉개버려야 한다. 그리고 왜국에서 후속부대가 건너오는 대로 쳐부순다. 그럼 적은 구멍에서 머리를 내미는 대로 잘리게 되어 힘을 쓰지 못하리라.
“처음부터 말했지만, 문제는 오위가 내려가는 동안 왜적이 다른 쪽으로 올 수 있다는 거요. 울산 쪽으로 오면 그나마 괜찮지만, 북쪽으로 간 왜적들이 다시 돌아와서 경주를 치고 대구로 온다면 막을 군사가 없지 않소?”
“그 문제가 그리 걱정되신다면 왜별기를 오위로 넘겨달라는 요청을 철회하겠습니다. 그러면 오위가 내려가도 안심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끝내 신립이 한 가지 문제에서 손을 들었다.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신립은 왜별기 전체는 놓고 가더라도 상징적인 인물 하나는 꼭 끌고 가겠다고 앙심을 품었다. 되도록 상징성이 크고 명분도 있으면서 자신에게도 쓸모가 있는 자로.
“왜별기가 남아 대구성을 지킨다면, 설사 적이 경주 쪽에서 쳐들어오더라도 오위군이 다시 돌아오거나 도성에서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요.”
유성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위를 움직이는 데 대한 신립의 나머지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무턱대고 움직일 수는 없소. 내일 아침을 기해 군사를 움직이되, 일단은 조심스레 움직이면서 숙련된 탐망군관을 내보내서 적세를 탐지하고 돌아오게 합시다. 그 뒤에야 확실히 움직여 적을 칠 수 있지 않을까 하오.”
동래성은 불과 2천 군사를 가지고서 닷새째 버티고 있다. 1만 5천이나 되는 원군을 받으면 며칠 더 버티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러니 오위군이 다소 여유를 가지고 접근해도 괜찮으리라.
“제기랄, 며칠은 무슨! 서득운, 이…!”
동래성을 구원하러 간 경상좌병영군이 참패했고 서득운은 패군을 수습하려다가 전사했으며, 동래성 역시 함락되고 말았다는 급보가 들어온 게 어젯밤이었다. 경상좌병영 병마우후 배설이 보낸 소식이었다.
보고를 받은 대구성 전체가 뒤집혔다. 회의 결과고 뭐고, 당장 오위가 동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신립의 주장에 더 이상 반박은 없었다. 약속한 바가 있어 왜별기는 두고 가기로 했지만, 나머지 병력은 모조리 남쪽을 향했다. 귀찮은 비승군도 두고 움직였다.
잠시 후면 남쪽에 있는 대적과 곧 마주친다고 생각하니 신립의 마음속에서 흥분이 싹텄다. 이제 드디어 왜적과 결전을 벌인다. 기필코 적괴 신장의 목을 베어 전하께 바치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