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92
2부 270화
– 1 –
어제 동래성을 함락시킨 뒤 꼬박 하루를 전장 정리에 보냈다. 성벽 안팎에 널브러진 조선군 시체를 허섭스레기들과 함께 해자에 던져 넣어 파묻고, 불타버린 성내를 대충 치웠다. 일본군 전사자들은 전장 한쪽에서 격식을 갖춰 화장했다.
마지막까지 분투한 동래성주의 시신은 동래성을 내려다보는 서편 산줄기 위에 조선식으로 묻어주었다. 그가 보인 충정에 찬탄한 노부나가는 휘하에 거느린 전병력에게 송상현이라 하는 조선 성주에게 경의를 표하라고 했고, 직접 쓴 묘비명까지 내려주어 목비에 새기게 했다.
“석비는 나중에 느긋하게 세우도록 하지. 그대들도 저런 충의를 본받기 바란다.”
“물론입니다, 주군.”
친족이나 중신의 배반을 몇 차례나 겪은 적이 있는 노부나가다. 지난번 아케치의 반란 때는 정말로 죽을 뻔했고, 후계자 노부타다까지 잃었다.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는 신하의 모범적인 사례를 눈앞에서 보았으니, 자기 신하들의 충성에 한층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송상현의 무덤에 예를 표하고 돌아온 노부나가 앞에 송상현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이가 나타났다. 자연스럽게 냉소적인 어조가 나갔다.
“임해군, 이번에 그대가 행한 항복 권고는 소용이 없었다. 앞으로는 다를 것 같은가?”
얼굴이 붉어진 임해군이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아직 저들이 새 태양이 떠올랐음을 모르는 탓입니다. 이제 조선 팔도에 새 임금이, 그리고 새 세상이 열릴 텐데 저들이 우매하여 모르는 것이지요.”
철릭 차림을 한 임해군이 열을 올렸다. 노부나가는 피식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동래를 함락하여 우리 기반이 생겼으니, 팔도 전역에 파발을 띄워 세상이 바뀌었다고 알려야 합니다. 함부로 사람을 전가사변에 처할뿐더러, 고귀한 피를 타고난 종친과 사대부를 함부로 전장에 보내 죽게 만드는 폭군은 물러날 때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임해군의 열변은 딱히 노부나가와 그 주변 장수들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조선 내정에 관한 지식이 부족할뿐더러, 임해군이라는 인간 자체가 딱히 존경심을 품고 대할만한 성품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지금 임금은 세금도 열 배가 넘게 올렸다 했습니다. 제가 정식으로 보위에 오르면, 세금을 예전처럼 낮추고 전가사변을 없애며 족친위도 폐지할 것입니다. 임금이 제정신이 나가기 전인 십 년 전으로 모든 제도를 되돌리고 나라를 평안케 하겠다는 말입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조선 조야에 퍼뜨리겠다는 말이겠지?”
“그렇습니다. 일본에서 데려온 제 수하들을 팔도에 풀어 알리면, 압제에 한을 품은 수많은 양반과 상민들이 떨쳐 일어나 제게 합류할 것입니다.”
어제 아침 송상현이 보인 반응을 보면 임해군의 사자들이 과연 맞아 죽지 않고 끝까지 말을 전할 수는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조선 땅에서 놓여난 임해군의 수하들이 과연 임해군 편에 머물러있을지도 말이다. 이참에 기회가 왔다고 죄다 도망치지 않을까.
그런 불안감에도 노부나가는 사방으로 자기 수하들을 보내 관리와 사대부들에게 동참하라고 촉구하겠다는 임해군의 계획을 승인했다. 조선 임금이 계속 동맹을 맺기를 거부한다면 일본이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이 있음을 보여주며 압박하는 수단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임해군의 수하들이 도망치거나 잡혀서 조선 국왕 손에 들어간다고 해도 별로 문제가 될 건 없다. 저들이 알고 있는 기밀도 거의 없을뿐더러, 일본군이 얼마나 대병력으로 기세등등하게 쳐들어왔는지 확실히 알려주어 기를 꺾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조선 임금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쳐들어온 일본군에게 크게 충격을 받았으리라. 조선 수군이 일부 승리했다고 하나, 수십만 병력이 이미 조선 땅에 올라오지 않았나 말이다. 이미 올라온 일본군을 수군이 쫓아낼 수는 없다. 남은 건 양국 육군 사이에 벌어질 결전이다.
조선 국왕이 이제라도 일본군 규모에 겁을 먹고 협상을 청해 온다면, 임해군쯤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그편이 소중한 딸 아이히메에게도 훨씬 좋은 일이리라.
노부나가는 임해군에게 사자를 보낼 때 나카가와군 병사들을 호위로 붙여주라고 지시해서 돌려보내고 자신은 군막을 향했다. 군의를 위해 무장들이 모여 있었다.
– 2 –
“요시아키군은 낙동강을 건너 서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서둘러 움직여서 조선 수군 군영을 파괴하라 일러라.”
낙동강은 무척 큰 강이다. 조선 수군이 수시로 다대포를 공격하러 오는 상황에서 배를 써서 병력을 건넬 수도 없다 보니, 요시아키군은 도강에 무척 애를 먹었다.
먼저 다대포에서 노획한 조선 화포로 ? 7군이 가지고 있던 남만포는 몽땅 거제도 앞바다에 가라앉았으니 ? 다대포 옆 산에 포대를 구축해서 조선 전선의 접근을 막았다. 포대의 엄호를 받으면서 다대포에서 바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널 심산이었다.
처음 나타난 조선 정찰선은 계획대로 쉽게 몰아냈다. 그리고 부산에서 불러온 배에 병사를 태워 막 강을 건너가려는 참에 조선 메구라부네가 나타났다. 포대에 준비해둔 어떤 화포로도 메구라부네를 쫓을 수가 없었다.
다급해진 요시아키군에서는 다대포 일대에서 모은 조선 쪽배를 활용해 화공선을 만들었다. 하지만 기껏 만든 화공선은 메구라부네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메구라부네가 화공선을 보고서 화포를 한 방 쏘자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메구라부네에 모든 시선이 쏠린 사이 보통 조선 전선이 서너 척 접근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구름 같은 연기를 뿜으면서 불꽃을 뿜는 불화살 수백 발을 퍼부었다. 그 불화살을 뒤집어쓴 포대는 삽시간에 혼란에 빠져버렸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불꽃을 뿜는 근원은 화살 밑에 달린 종이통이었는데, 이 종이통들이 연달아 폭발을 일으켰다. 쇳조각 파편이 섞인 불벼락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포대 위는 완전히 아비규환이 되었다. 사상자가 바닥을 뒹굴고 쌓아둔 화약이 유폭을 일으켰다.
잡아놓고 포를 쏘게 하던 조선 포로들까지 그 소동 속에서 모조리 죽거나 도망쳐버리면서, 포대는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다. 결국, 요시아키군은 첫 번째 도하 시도에 실패했다. 부산에서 보낸 배도 모조리 침몰당했다.
두 번째 도하 시도는 다대포보다 좀 더 상류에서, 인근 지역에서 끌어모은 나룻배와 뗏목을 사용해서 벌였다. 그런데 언제 눈치를 챘는지, 조선 수군이 반대편 강변을 따라 또 나타났다. 그리고 화포와 불화살을 퍼부어서 기껏 다시 준비한 배와 뗏목을 죄다 태워버렸다.
붙잡은 포로들의 말로는 지금이 강물이 많이 줄어든 시기라고 했다. 그래도 워낙 큰 강이다 보니 조선 수군 군선이 흐름을 타고 거슬러 올라온 것이다. 얼마나 더 상류로 올라가야 적이 올라오지 못할지는 알 수 없었다.
요시아키는 밤을 틈타 세 번째 시도를 펼쳤다. 조선 수군도 밤에는 야습을 걱정했는지 강을 떠나 바다로 나갔다. 그 틈에 한참 상류에서 뗏목으로 강을 건넘으로써 간신히 낙동강을 건너 거점을 마련했다. 건너고 보니 서편 기슭으로 완전히 건넌 게 아니고 하중도였긴 했지만.
다음날 다시 나타난 조선 전선은 미리 준비해둔 화공용 뗏목 수십 개를 강 양편에서 일제히 떠내려 보내 해결했다. 한쪽 기슭에서만, 그것도 급하게 내보냈을 때와 비교하면 훨씬 효과가 좋았다. 조선 전선은 부리나케 방향을 바꿔 바다로 물러났다.
하중도에 거점을 확보하고 나자 완전히 서편 기슭으로 넘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기에 도착할 때와는 달리 저편에 조선군이 진을 치고 있기는 했지만, 별로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전투경험도 없고 미숙한 농민병들이라, 대낮에 당당하게 건너는 일본군도 막지 못했다.
처음 세 차례 도하 시도에서 조선 수군의 방해와 어둠 탓에 발생한 사고 ? 혹시라도 조선 수군이 발견하고서 달려올까 봐, 횃불 하나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달빛에 기대 강을 건넜다 ? 로 입은 손실에 비하면, 전투가 있었다 해도 마지막 도하는 놀면서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요시아키가 얼마나 빨리 조선 수군 근거지를 파괴하느냐가 우리 함대가 무사히 조선까지 왕래할 수 있느냐 여부를 크게 좌우한다. 전령을 보내 도강에 성공한 공을 치하하고, 최대한 빨리 해안을 따라 진격하라고 명령하라.”
“예, 주군.”
노부나가는 고토 해적과 원균이 그린 지도를 다시 한번 살폈다. 조선 수군 군영은 부산진을 중심으로 해안을 따라 동서로 죽 늘어서 있었다.
“정확히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좌수영에도 군선이 어느 정도는 있겠지. 깃카와 히로이에가 육군, 도도 다카토라가 수군을 이끌고 좌수영 예하 진포들을 소탕하면서 다치바나가 쳐부순 경상좌도군을 추격하라. 바로 출발하고, 울산을 함락하면 보고하라.”
깃카와 히로이에는 9군 병력과 함께 건너왔다. 도도 다카토라는 선박 건조 임무를 마에다 토시이에에게 인계하고 그 역시 9군을 호송하는 호송선단의 일원으로 넘어왔다. 노부나가는 역시 9군으로 건너온 안고쿠지 에케이의 병력도 깃카와 밑에 배속해서 1만 명을 편성했다.
“조선 수군 진영을 그냥 다 파괴할까요? 포대를 강화해서 우리 방어거점으로 쓰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조선 수군 주력은 거제도에 주둔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자들이 부산진 너머에 있는 진포에 나타나서 공격을 퍼부을 정도면 이미 부산진까지 조선군에게 도로 빼앗겼다는 의미가 되니, 전쟁은 이미 하나 마나 한 상황이 되어있을 거다. 그쪽 방면에는 포대 따위 필요 없다.”
다카토라의 질문에 대해 노부나가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너무도 직설적인 표현에 부하들이 꺼낼 말을 잃을 정도였다. 노부나가는 거침없이 지시를 계속했다.
“부산진 동쪽에 포대를 설치할 여력이 있다면, 적이 날려버린 절영도 포대를 재건하는 데 화포 하나, 돌 하나를 보태는 편이 낫다. 도중에 만나는 조선 수군 군영에서 병력과 물자는 최대한 포획하되, 군영 자체는 큰 의미를 두지 마라. 해안에 배만 댈 수 있으면 충분하다.”
“알겠습니다, 주군.”
“중요한 건 적 병력을 격파하여 우익에서의 위협을 제거하는 일, 그리고 일본에서 건너오는 수송선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포구를 확보하는 일이다. 포대는 부산진 이서에 필요하지, 동쪽 해안에는 필요하지 않다.”
처음 흥양에 1군이 상륙하면서부터 일본군은 조선 수군과 여러 차례 수전을 치렀고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그 결과 지금은 어떻게 맞서야 가능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방향이 잡혔다. 다카토라를 비롯한 세 사람에게 출정 준비를 명해 내보내고도 노부나가의 지시는 계속되었다.
“내일은 10군 병력 5만이 건너온다. 오늘까지는 병사들을 쉬게 하면서 동래성 일대 정리에 집중했지만, 내일 10군이 건너오면 본격적으로 조선 내륙을 향해 진격한다. 요시타카, 10군에 도해할 때 목적지를 어디로 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주의를 시켰나?”
“예, 주군.”
전라도에서 겪은 경험을 보건대, 수송선단은 가능한 대규모여야 했다. 100척 중에서 50척이 잡힌다고 1,000척이 이동할 때 500척이 잡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대함대를 투입하면 적이 척수에 밀려 아예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더구나 전라도에서는 양 측면에 있는 조선 수군 군영을 제때 제압하지 못해 적선이 항구를 나오기만 하면 바로 싸움이 벌어졌다. 경상도에서는 그런 상황을 되도록 피해야 했다.
“우리 선단이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적 수군영과 적어도 15리(60km) 정도는 거리를 두고서 움직여야 한다. 지금 거제도에서 부산진까지 거리가 대략 10리를 좀 넘는데, 여기까지 놈들이 움직이는 데만 하루가 걸리지?”
“예. 구키 수군이 패했던 날 적이 움직인 거리를 보아도 그렇고, 원균의 말로 미루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군.”
원균은 다대포가 함락된 뒤에 잠시 본진으로 불려왔다. 노부나가는 몇 가지 궁금한 사안을 물어본 뒤 원균을 다시 요시아키군으로 돌려보냈다. 앞으로 요시아키군이 진행할 조선 수군 진포 공략에서 길이나 안내하라는 의도였다.
“그럼 우리가 취할 방책은 단순하다. 조선 수군이 나타나면 4척에서 5척 정도 되는 소규모 선단을 내보내서 상대한다. 적이 지나갈 경로상에 있는 높은 산에는 모두 포대를 만들어 화포 하나라도 배치한다. 적의 주의를 끌고, 적이 곧바로 부산포로 진격하지 못하게 하는 거다.”
지연부대가 계속 발목을 잡으면서 시간을 끌면 조선 수군은 그대로 거제도로 돌아가든가, 중도에 배를 세우고 밤을 새워야 한다. 그러면 이제 밤새 야습에 시달리게 될 차례다. 계속해 총을 쏘고 불화살을 날리면, 적어도 조선군이 밤새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다.
지금 일본 수군이 적에 비해서 유리한 점은 전투에 투입하는 배 숫자가 많다는 것, 그리고 배가 작은 만큼 움직임이 날래다는 거다. 조선 전선도 그 커다란 덩치에 비해 무척 날렵한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작은 배가 더 움직임이 빠른 건 당연한 이치다.
“수송선단은 경상좌수영과 그 일대 해변에 병사와 물자를 내릴 것이다. 항구가 부족하면 더 동쪽으로 움직이면서 비어 있는 해변에 병사를 내린다. 다소 혼란이 심하긴 하겠으나, 질서를 중시한답시고 바다 위에서 기다리다가 행여 조선군이 뚫고 들어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물자와 병사를 모두 배에 실은 채 날려버리기보다는 혼란스럽더라도 일단 육지에 내려두는 게 낫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6군, 9군이 먼저 진격을 개시하고 10군은 혼란을 수습한 뒤 따라오면 그만이다.
“주군, 금정산성 위에 있는 조선 피난민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말 그대로 놓아두고 지나가시겠습니까?”
임해군은 이미 그 일로 어제 한바탕 난리를 쳤었다. 모두 끌어내려서 동래부를 복원하고, 자신이 처음 지배하는 조선 영토로서 기반을 단단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인들을 끌고 내려오면 감시하고 돌보아야 하지 않느냐? 끌고 내려와서 걸리적거리느니 그대로 놓아두는 게 차라리 편하다. 정녕 자기 백성으로 삼고 싶거든, 임해군이 직접 저들을 설득해서 데리고 내려오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군의를 마친 노부나가가 밖으로 나왔다. 울산으로 진격할 깃카와군이 이미 출발 채비를 다 마치고 떠나려는 참이었다. 울산까지 점령하면 양륙할 수 있는 항구가 확실히 늘어나게 되니 조선 국왕에게 한층 더 강한 압력을 가할 수 있게 되리라.
조선 수군의 존재는 확실히 싸움을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니 그 강력함이 도리어 선물로 느껴졌다. 조선 국왕이 협상에 응하도록 만들기만 하면, 그 강력한 힘이야말로 명나라 원정에서 가장 큰 자산이 될 게 아닌가. 흥겨운 기분에 시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때는 5월이건만, 아직 비가 오지 않는구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본에서는 5월이면 장마가 시작된다. 노부나가가 하필이면 4월에, 그것도 그 유례가 없는 대병력을 동원해서 조선 원정을 시작한 이유도 되도록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신속하게 출병을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추수철 전에 병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가 있다.
처음 기대했던 대로 전라도 침공만으로 조선 국왕이 무릎을 꿇었다면 전혀 장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하지만 전라도 침공 정도로는 조선 국왕이 굽히지 않았고, 이순신이 나선 조선 수군과 동래성의 송상현 등이 치열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예정이 어긋났다.
“조선의 날씨는 일본과 다른 탓이겠지요. 하지만 주군, 그 글귀는….”
조용히 뒤를 따르던 호위 겸 전령, 모리 나리토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리토시는 본래 노부나가의 시동 출신이나, 지금은 어엿한 호위무사가 되었다. 시동일 때는 ‘란마루’라는 이름을 썼다.
“그래, 아케치 녀석이 읊었던 시 구절이지.”
반란을 일으킨 아케치 미츠히데는 그 직전에 시 짓는 모임을 열어 ‘지금은 비가 내려 땅을 적시는 오월이로다’라는 시를 지었다. 그리고 며칠 안 가서 반란을 일으켰다. 다만 노부나가는 미츠히데가 읊은 시구에까지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오월에 비가 오는 건 자연스러운 하늘의 섭리니, 그 말을 누가 했건 상관없다. 지금 급한 건 장마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서둘러야 한다는 거다. 각 군영에 전령을 보내 내일 출발에 지장이 없도록 철저한 준비를 강조하라.”
“예, 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