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96
2부 2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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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돌격한 궁기병 6천 기가 화살을 퍼부었다. 배후에서 나타난 기병에 당황하여 방향을 돌리려던 적에게 화살이 날아갔다. 물론 말 위에서 쏘는 화살은 겨냥이 어려우므로, 땅 위에 서서 쏠 때처럼 정확하게, 속사로 날릴 수는 없다. 그래도 1만 개가 넘는 화살이 쏟아졌다.
왜병들도 선 채로 등에 화살을 맞지는 않았다. 급히 방향을 돌려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려고 했다. 하지만, 군대 진형이란 그저 병사들이 뒤로 돌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그것도 적군이 배후를 들이치는 상황에서 말이다. 손에 든 총과 창이 부딪치고 대열이 뒤엉켰다.
그 혼란 속으로 화살이 날아갔다. 줄지어 선 왜병 무리를 상대로 하는 만큼, 정확하게 겨눌 필요 없이 대충 적당히 날려도 충분했다. 왜병들도 조총과 활로 일부 응사했으나 거의 맞지 않았다. 달리는 말을 정면도 아닌 측면에서 쏘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인 탓이다.
이에 반해 오위와 족친위 기병들이 날린 화살은 적을 잇달아 쓰러트렸다. 왜군 대열이 좀이 슨 옷처럼 여기저기 상하고 구멍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자 신립이 손을 흔들었다. 화살 공격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전군 돌겨어어어억!”
신호기가 나부끼며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러자 5천 기에 달하는 조선 최정예 철기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비탈을 달려 내려갔다. 북변에서는 40도가 넘는 경사면도 자유자재로 말을 탄 채 오르내리던 이들이다. 이곳의 완경사 정도는 우스웠다.
화살 세례를 받고 이미 진형이 반쯤 무너져 있던 왜병들은 기창과 편곤을 휘두르며 덤비는 오위 기병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기병들은 앞을 가로막는 왜병들을 창으로 찌르고, 편곤으로 후려치고, 말발굽으로 짓밟았다.
장창을 들고 막으려 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장창으로 기병을 막으려면 숙련된 창병과 잘 짜인 진형이 필요하다. 지금 왜군에게는 전자는 있을지언정 후자가 없었다. 오위 기병들은 화살에 맞아 생긴 틈으로 파고들면서 용서 없이 창을 내지르고 편곤을 휘둘렀다.
희생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적이 말을 찌르는 바람에 말과 함께 땅을 구르는 이도 있었고, 총성과 함께 무기를 떨어트리고 낙마하는 기병도 보였다. 하지만 그 숫자는 극소수였다. 전체 전황에 하등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이거라니까.”
남만갑을 입고 호마(胡馬)에 올라탄 신립이 구릉 위에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4천 명 정도 되던 왜군이 오위 기병들이 배후에서 공격하자 제대로 방어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짓밟히는 모습을 보니, 전쟁이 시작되고 한 달 넘게 쌓인 체증이 그대로 싹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나도 저기 있어야 했는데.”
신립이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북방에서 싸울 때까지만 해도 신립은 언제나 전군의 선두에 서서 군사들을 이끌었다. 직접 활과 편곤으로 죽인 야인 숫자가 몇 명쯤이나 되는지, 자신도 잘 몰랐다. ‘호랑이 병마사’라는 명성은 그 피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야 이번 싸움에서도 맨 앞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유성룡과 김성일이 합세해서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고 붙들고 늘어졌다. 5만 대군을 책임지는 총대장이, 그것도 전초전에 불과한 소규모 전투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었다.
신립으로서는 일종의 거래를 한 셈이다. 용병에서 재량권을 얻은 대신 선두 자리를 버렸다. 개운하지 않은 거래이긴 하지만 용납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후진에서 전황을 바라보며 지휘하는 데 따르는 장점도 있으니까.
“대감, 도주하는 왜병들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창기병들에게 한 번 더 돌입하게 할까요?”
이런 거 말이다. 전체적인 전국이 더 쉽게 눈에 들어온다. 예전이라고 이런 이치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선두에서 적을 쳐부수다 보면 아무래도 뒷전이 되곤 했다.
시선을 돌리니 대열이고 뭐고 다 무너진 채 도망치는 왜병들이 보였다. 창기병들은 적진을 한번 헤집고 나온 다음 다시 대열을 정비하는 중이었다. 기병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강력한 법인데, 적군 사이에서 멈췄다가는 위험할뿐더러 그 위력도 심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니다. 쉬고 있는 족친위를 내보내 추격하게 하라. 이제 초장인데, 벌써 창기병을 지치게 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족친위 기병들은 다 궁기병이다. 말 타는 재주나 말과 무구에 들일 수 있는 재정적인 여유 같은 건 일반 기병들보다 월등하고 무과 합격자도 여러 명 섞여 있지만, 신립은 이들을 죽을 위험이 큰 창기병으로 편성하지 않았다. 족친위가 가진 정치적 배경 때문이다.
지금 왜적을 추격하는 데 족친위를 내보낸 것도 같은 이유다. 자고로 패잔병 추격은 희생은 적으면서 공은 크게 세울 수 있는 임무가 아닌가 말이다.
족친위에 명령을 내리고 보니 옛날 해서부가 난리를 일으켜 급하게 출정할 때 생각이 났다. 그 당시, 족친위에 들어 있던 임해군이 자기 밑에 있었다.
그때 임해군은 오위 상관들에게 무척 좋은 인상을 주었다. 어리면서도 무척이나 싹싹했고 직무에도 충실했다. 임금에 대한 충성심도 투철했다. 그러던 젊은이가 어떻게 왜적과 결탁해 역심을 품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분명 왜추 신장이 농간을 부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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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진인 보병, 포병은 총알 하나 쏘지 않았다. 그저 자태를 드러내고 왜적이 아군의 의도를 착각하게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적장은 아군이 강 건너에서 대군으로 자신을 치려 한다고 생각하다가 배후에서 들이치는 기병들에게 궤멸당했다.
“역시 도총관이 기병을 부리는 재주 하나는 조선 팔도에서 당해낼 사람이 없구려.”
유성룡이 찬탄했다. 과거 북방에서도 임금을 따라 종군하면서 익히 보았던 광경이지만 역시 장관은 장관이었다. 그때는 친정이었던지라, 비록 도체찰사라 해도 군무를 놓고 신립과 딱히 얽힐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 신립과 좀 친해 뒀으면 이번에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기세라면 왜적 본대도 쉽게 쳐부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성일 역시 기쁜 빛을 감추지 못했다. 비록 아군의 십분지 일에 불과한 소수라고는 해도, 강력한 왜군을 일거에 격파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쳐부숴 나가다 보면 신립의 주장처럼 왜군 선두를 몰아내고 삼랑진 정도는 탈환할 수 있을 듯했다.
어젯밤 신립은 헤엄 잘 치는 군사 셋을 뽑아서 삼랑진까지 헤엄쳐서 다녀오게 했다. 육지로 움직이면 중간에 진을 친 왜적과 조우할 수 있으니, 적이 살피지 않고 있을 강물 속을 통해서 하류로 내려가라고 한 것이다. 요즘 날이 따뜻해서 물속에서도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척후로 뽑힌 병사들은 검은 옷을 입고, 커다란 통나무를 강에 띄워서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삼랑진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삼랑진 주변에 들어온 적세를 살펴 왜병 2만에서 3만이 밀양강 양편 기슭에 진을 치고 있음을 확인했다. 적은 목재로 밀양강에 임시 다리까지 놓았다.
아직 배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적이 진을 친 상황을 보니 영남대로와 별개로 낙동강으로 대구를 치려는 게 분명해 보였다. 밀양강 서편, 낙동강과 만나는 합류점 일대에 병력을 모은 이유도 그 탓인 듯했다.
다만 보고에 의하면 적은 강가 평지에 막사를 쳤을 뿐 딱히 성벽이나 방책 같은 건 만들지 않았다. 그 소식을 접한 신립은 적이 증원되기 전에 바로 내려가서 쳐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삼랑진을 틀어막고 적이 대구에 범접할 수 없게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적도 계속 병력을 올려보내고 있지 않소. 그 점이 걱정스럽소.”
유성룡으로서는 아무래도 좀 불안했다. 적은 아군 척후가 돌아온 뒤로도 계속 동래 쪽에서 병력을 불러올렸을 게 빤하다. 아군은 조선에 건너온 왜적이 전부 몇 명이나 되는지, 그것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들은 바는 50만이라지만, 벌써 그만한 병력이 건너왔을 리 없지 않은가.
두 사람이 앞으로의 방침을 논의하는 사이 군관들이 군사들을 시켜 밀양강에 임시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다리를 만들 뗏목과 판자는 모두 미리 준비했다.
밀양강 동쪽 기슭은 방금 싸운 평지를 제외하면 강물과 산자락 사이에 영남대로만 딱 끼어있는 형상이다. 대규모 기병을 가진 오위군이 전투하기 어렵기에 길을 막는 데 투입할 일부 보병만 남겨두고 기병을 전부 서쪽 기슭으로 빼려는 것이다.
유성룡의 눈에 남쪽으로 패주하는 왜적들과 적을 추격하는 족친위 기병들, 그리고 도망치다 말고 돌아서서 다시 덤벼드는 몇몇 왜병들이 들어왔다. 맨 앞에서 적을 쫓는 기수는 놀랍게도 부마 사노부였다. 맞서는 왜병들을 향해 우렁차게 왜말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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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친위라 해서 모두 겁쟁이만 있는 건 아니었다.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자 선두를 탐내는 자들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노부시게에게는 그들에게 부족한 두 가지 무기가 있었다. 바로 출신과 배경이다. 그것도 다른 자들이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노부시게는 임금의 부마다. 물론 그 말고도 족친위에는 부마가 여러 명 있지만, 모두 이미 죽은 선왕의 부마들이다. 지금 임금의 부마는 오직 노부시게 한 사람뿐이니 얼마나 위세가 강할지는 불을 보듯 빤하다. 왕자들은 족친위에 나오지 않으니 사실상 최고 신분이다.
여기에 ‘왜장’ 출신이라는 배경이 더 있다. 적이 어떤 세력인지 보면 바로 알 수 있고, 적을 베기 전에 일본어로 항복을 권할 수 있다. 신립은 적을 모조리 쳐 죽이라는 지시밖에 내리지 않았지만, 유성룡은 일본군 정보를 캘 수 있도록 가능한 포로를 많이 잡으라고 당부했다.
이 두 가지만 해도 족친위 안에서 노부시게를 함부로 대할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도총관인 신립이 특별히 데려다 자리에 꽂을 정도로 챙기는 사람이기도 하니, 노부시게가 선두에 서고 싶다고 했을 때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상관은 없었다.
“나는 조선 국왕의 신하 사나다 노부시게다! 호소카와군 병사들에게 권하노니, 헛된 저항을 포기하고 투항하라. 투항하는 자는 생명을 보장하고, 추후 공을 세우면 그에 따라서 국왕께서 재산과 지위를 내리실 것이다!”
호소카와군은 화살 세례를 덮어쓴 데 이어 창기병까지 돌격하자 그대로 무너졌다. 진형을 무너뜨린 오위 창기병들이 난전을 벌이지 않고 빠져나가자 그대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문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겠지만, 영주인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그 선두에 있었다.
노부시게가 기억하기로 호소카와군이 그렇게 형편없는 군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적의 수가 아군보다 열 배가 넘고, 수천 기나 되는 기병에게 배후에서 유린당하기까지 하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싸우는 게 도리어 비정상일 것이다.
“투항하라! 투항하는 자는 우대한다!”
“헛소리 마라!”
고함이 들리더니 일본군 대열 맨 뒤쪽에 있던 2백여 명 정도 되는 병사들이 도망치다 말고 돌아서서 창을 겨눴다. 뛰다가 뒤처지는 적을 활로 쏘아 쓰러트리면서 추격하던 노부시게의 중대원들이 급히 말고삐를 당겼다.
“주군을 위해 죽는 것이야말로 무인의 명예! 너 따위 간사한 자의 말에 넘어가지 않는다!”
얼굴을 모르는 호소카와군 무사가 갑옷을 피로 적신 채 소리쳤다. 왼쪽 어깨에 박힌 화살 두 개가 바르르 떨었다.
“신가리인가.”
신가리(殿)는 본대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뒤에 남는 후위부대를 뜻한다. 무척 명예로운 역할이긴 하지만, 신가리로 남는 병력은 그냥 죽는다고 보면 된다. 패전하여 급하게 후퇴, 아니 도주할 때 후미를 지키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노부시게는 멀어져가는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깃발을 아쉬운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따라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만 놓쳐버렸다. 다이묘쯤 되는 거물을 잡을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닌데 말이다.
“쏘아라! 활과 조총을 가진 자부터 죽여라!”
호소카와군 후위는 작은 평지가 끝나고 영남대로가 다시 산과 강 사이 좁은 길로 접어드는 자리를 딱 틀어막고 있었다. 저들을 모조리 쓰러트리지 않는 한 추격은 불가능했다. 다행히도 저들 중에 활이나 철포를 가진 자들은 거의 없었다. 죽었거나 도주하는 와중에 분실했으리라.
노부시게의 중대원들은 호소카와군 대열에서 멀찍이 떨어져 달리면서 화살만 퍼부었다. 곧 뒤따라온 다른 중대가 합세하자 창과 칼만 들고 버티던 호소카와군 병사들은 삽시간에 시체가 되었다. 지휘하던 무사들이 쓰러지자 쏟아지는 화살비를 견디지 못한 대열이 또 무너졌다.
“쫓아라!”
몇몇 왜병들은 길을 벗어나 강물로 뛰어드는가 하면 산으로 기어올랐다. 족친위 기병들은 길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비는 자들은 놓아두었지만, 도망치는 적은 모조리 쏘아버렸다. 등에, 허리에, 머리에 화살을 맞은 왜병들이 산자락에 뒹굴고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
기병들은 널브러진 시체를 짓밟으며 말을 몰았고 그 선두에 노부시게가 있었다. 조선 활이 아직 손에 익지 않아 일본도를 치켜들었지만, 지휘하기에는 이쪽이 훨씬 좋기는 했다.
“나리! 앞에 적이 있습니다!”
눈썰미 좋은 부장이 소리치더니 급히 고삐를 잡아챘다. 과연 이 다음 평지로 나가는 길목에 제대로 대열을 갖춘 일본군 한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철포대가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멈춰라! 적 후속부대다!”
노부시게도 급히 고삐를 당겼다. 전방에 있는 일본군 쪽에서도 호령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일제히 철포를 쏘았다. 거리가 있다 보니 탄환은 한 발도 맞지 않았지만, 이미 외길을 막고 방어태세를 갖춘 적에게 달려들면 이쪽 역시 피해가 날 게 분명했다.
“일단 본진으로 물러간다! 적이 추격하지는 않을 듯하지만, 잘 살피며 돌아가라!”
깃발을 보니 새로 나타난 병력은 초소카베군이었다. 아마 초소카베 모토치카가 온 듯했다. 시코쿠에서 바다를 두 번이나 건너 조선까지 오다니, 어떻게든 노부나가에게 시코쿠 지배권을 인정받으려고 무리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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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오키가 대패했단 말이지.”
호소카와군은 거의 3천 명에 달하는 피해를 봤다. 일본군 전체 규모로 보면 적지만, 영주인 타다오키 입장에서는 피를 토하고 싶을 만큼 큰 손실이리라.
“타다오키에게는 안됐다만, 신립군이 어떻게 싸우는지 확인한 건 분명한 소득이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임해군이 우쭐거렸다. 동래성에서 위신을 구긴 데다, 시녀는 동래에 놓아두고 따라오라는 지시를 받고 한참 툴툴거렸었다. 하지만 지금 신립군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잘난 척을 할 기회가 왔다고 여긴 듯했다.
“오위군은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군영이고, 그 전력의 핵심은 기병입니다. 더구나 오위군을 지휘하는 자가 신립인 이상, 기병이 처음이고 끝입니다. 신립에게는 보병이고 포병이고 전부 장식에 불과합니다.”
임해군은 신립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용병을 하는지 알 만큼은 신립의 밑에 있었다. 워낙에 드러내놓고 행동하는 사람이니 그 정도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신립군은 기병만 막아낼 수 있으면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로군.”
“그렇습니다. 장창병이 장애물 뒤에서 대형을 짜고 버티는 동안 뒤에서 철포와 대포를 쏘아 사람을 말에서 떨어트리면 기병은 간단하게 처치할 수 있습니다. 적이 밀어닥쳐도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규율 있는 장창병대만 있으면 됩니다.”
임해군은 5천 리 밖 북방에서 달자들과 치렀던 그 끔찍한 싸움을 상기했다. 몽고 기병들이 퍼붓는 화살에 주변에 서 있던 군사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하지만 도감군이 몸으로 쌓은 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후열에 선 병사들이 끝없이 나서서 구멍을 메웠다.
그때 겪었던 긴장과 공포는 지금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공포를 겪게 만들었던 세 원수, 이순신과 신립과 임금에 대한 원한도 다시금 떠올랐다.
“우리 일본군 창병들만큼 명령에 충실한 병사도 없지. 그 점은 염려하지 말게.”
“예, 장인어른.”
지금 삼랑진에는 일본군 후속부대가 속속 집결하고 있다. 이미 5만 명이 모였고, 해가 지기 전에 2만 명이 더 도착할 것이다. 마지막 3만 명도 오늘 밤까지는 합류할 수 있다는 보고가 들어와 있었다.
노부나가는 진심으로 아깝게 생각했다. 그런 강력한 기병대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닌가! 그런 정예는 어떻게든 이쪽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조선군 기병은 다케다나 호죠 기병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정예가 아닌가.
노부나가는 임해군이 신립을 싫어하는 문제와 별개로, 내일 신립과 결전을 치르기 전에 꼭 귀순을 권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동래성의 송상현을 생각하면 신립이 순순히 귀순할 가능성은 작아 보이지만, 그래도 되도록 좋은 말로 신립을 설득해 보라고 임해군을 구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