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497
2부 2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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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를 차단하기 위해 밀양강 동쪽에 남긴 병력은 1천. 싸움터를 정리하는 일도 모두 이들이 맡았다. 그리고 당장 전투에 투입할 수 없는 말구종 등의 하인배들은 모두 밀양읍성에 남겨두고 왔다.
왜군 선발대를 짓밟은 기병들이 다리를 건너와 합류하면서 지휘부도 다시 합쳤다. 신립을 다시 만난 유성룡은 승리를 치하하면서도 앞으로 벌어질 싸움에 우려를 표했다.
“적 본대가 어떤 짓을 꾸미고 있는지,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당장 알 수 없어 유감이오.”
전초전이 끝나기도 전에 유성룡은 척후병을 남쪽으로 내려보내서 적의 동태를 살폈다. 지금 적이 확실히 있는 위치는 두 곳이다. 족친위 추격대를 저지한 밀양강 동쪽 평지 입구, 그리고 거기서 바로 건너편인 밀양강 서편 언덕이다. 오위군이 집결한 서쪽 평지 남쪽 끝이다.
문제는 그 뒤편을 볼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서쪽으로 우회해서 산을 타고 넘어가자니 적을 살피고 오는 데 시간이 걸리고, 지금은 해가 중천에 떴으니 어젯밤처럼 강물 속으로 척후를 보낼 수도 없다. 왜병들도 눈이 있으니 다 보일 게 아닌가.
“저 언덕 너머, 낙동강 본류와 밀양강이 합쳐지는 곳에 꽤 넓은 평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어젯밤 그 일대에 적 본영이 분명히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밤새 적진을 살피고 왔던 오위 소속 군관이 확언했다. 적 주력과 싸우려면 언덕을 넘어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저 야산 옆에 붙은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가면 강줄기가 동편으로 확 꺾입니다. 꺾이면서 강폭이 좁아지는데, 거기에 적이 가교를 가설했습니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곧 낙동강 본줄기가 나타나는데, 밀양강을 중심으로 양편 기슭에 모두 적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럼 빨리 내려가 저 언덕을 넘으면 적 본진을 칠 수 있다는 거로군.”
지금 조선군이 집결한 자리에서 일본군이 진을 친 언덕까지는 1각(30분)을 조금 넘는 정도 거리다. 어젯밤에 살핀 대로라면 적은 아군의 절반 정도 숫자이니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
다만 문제는 언덕은 물론 그 옆에 있는 야산 위에서도 왜적이 싸울 태세를 갖추고 아군이 접근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미 해가 중천을 넘어가고 있다는 데 있었다. 왜군 선발대가 접근하기를 기다려 치고, 병력을 수습해서 다시 합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지금 곧바로 저 언덕을 올라가 치자는 말이오?”
유성룡의 질문을 받은 신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목책을 세우고 조총대를 두어 방어할 준비를 했으나, 별로 크지 않은 언덕이고 목책 또한 크게 견고하지 않으니 쉽게 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포탄으로 목책을 부수고 철기를 돌격시키면 저들 역시 바로 무너질 겁니다.”
“우리 오위가 보유한 화포로는 목책을 부수기 어려워 보이는데…야포로 그게 잘 되겠소?”
오위 포병은 도감군 포병과 보유한 장비가 다르다. 도감군 포병인 총통위는 온갖 중화포를 다 장비하지만, 오위 포병은 오직 무종 때 개발한 갑자야포 60문밖에 운용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신립이 그렇게 주장한 때문이었다.
신립은 오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기동부대로 육성했다. 전투에 포가 무척 쓸모 있다는 거야 신립 역시 잘 알았다. 하지만 기동에 방해가 될 만큼 크고 거추장스러운 포를 사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포도 가볍고, 그동안 계속 포가를 개량해서 굴리기 편한 갑자야포가 최선이었다.
더구나 갑자야포는 척탄을 넣고 쏠 수 있다. 적병을 죽이고 대열을 흔들어놓는 데는 보통 철환보다 척탄이 훨씬 효과가 좋다. 갑자야포로 척탄을 쏘면 550보(660m)까지 나가고, 만약 예기치 않게 포탄이 떨어지면 보병들이 가진 척탄을 모아다가 쏠 수도 있다.
가볍고, 사정거리도 길고, 탄약 조달도 유리한 점은 좋다. 하지만 원거리에서 야전을 벌이는 용도로만 상정하고 채택한 무기다 보니, 성곽이나 목책을 부수기에는 위력이 부족했다. 목책 뒤에서 버티는 적병이야 파편으로 죽일 수 있지만, 목책 자체는 부수기 어렵다.
“목책이야 우리 군사들이 직접 돌입하면 간단히 부술 수 있습니다. 포병이 먼저 언덕 위에 있는 적을 쏘아 쫓아내고, 보병이 나가 도끼나 대검을 써서 목책을 부숩니다. 그 뒤에 기병이 언덕에 올라, 아까처럼 내리닫는 힘으로 적 본진을 짓밟으면 됩니다.”
자기 말대로 하면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적을 격파하고 삼랑진을 되찾을 수 있다며, 신립은 여유만만하게 호언장담을 했다. 확실히 아까 벌인 싸움에서 왜적을 짓밟으면서 오위 기병들이 보인 위력을 생각하면, 허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유성룡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앞에 있는 작은 언덕이야 그럴 수 있겠지요. 하지만 뒤쪽 산에 있는 왜적은 어쩌겠소?”
“그 야산에 있는 적은 야포를 계속 쏘아 제압하면 됩니다. 우리 군사들이 그 옆을 지나쳐 본진을 공격해도 감히 막지 못할 것입니다.”
“알겠소. 그런데 말이오, 만약 적이 언덕 뒤에 복병을 두었다면? 언덕 뒤에 조총수와 궁수 수천 명을 세워놓고 우리 군사들이 언덕 위로 머리를 내밀 때마다 마구 쏜다면, 우리 군사가 오르는 족족 쓰러져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니 어찌 그 위를 넘어 적을 칠 수 있겠소?”
야포는 보이는 적을 향해서만 쏠 수 있다. 언덕 뒤는 보이지도 않고 쏠 수도 없었다.
“본관이 왜장이라면, 분명 언덕 뒤에 군사를 잔뜩 대기시켰을 거요. 지금 공격을 서두르면 적이 펼친 계교에 걸려들까 걱정이 되오.”
잠시 할 말을 잃었던 신립이 곧바로 반박했다.
“보병이 언덕 앞까지 진격했지 않습니까. 기병이 넘기 전에 언덕 위에 올라 배후에 왜적이 있는지를 살피고, 적이 진을 치고 있으면 먼저 척탄을 던지고 총을 쏘아 무너뜨리면 됩니다. 그 뒤에 철기가 나서서 적을 도륙하면 어찌 적이 송두리째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평양군께서 확실히 정론을 말하셨소. 허나 언덕을 가운데 두고 적과 아군이 붙어 쟁탈전을 벌인다면 그 싸움이 빨리 끝나리라 어찌 확신하겠소. 분명 싸우는 도중에 해가 질 거요.”
밤에는 싸움을 멈추고 군사를 물릴 수밖에 없다. 기력이 남은 군사들에게 야습을 시키자니 보름이 바로 내일이라 달빛도 밝다. 마침내 신립이 목소리에 짜증을 섞었다.
“그럼 어쩌자는 말씀이십니까? 눈앞에 적이 있는데, 싸우지 말고 물러나자 하시는 겁니까?”
“제 생각으로는 적의 뒤로 돌아 배후를 치면 어떨까 합니다.”
유성룡이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한 사이 김성일이 사람 하나를 데리고 왔다. 밀양 관아에서 만났던, 작원관에서 머리에 상처를 입은 군관이었다.
“이 자가 말하길, 저기 야산 옆에 나 있는 길로 들어가면 정면에 있는 야산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왜적의 눈을 피해 낙동강 본류에 도달할 수가 있답니다. 그쪽에 펼쳐진 평지는 여기 밀양강 쪽보다 훨씬 넓다 하며, 우리 군사 모두 전개할 수 있을 정도라 하고요.”
신립의 눈에 이해의 빛이 떠올랐다. 김성일이 설명을 계속했다.
“오늘 해가 질 때까지, 또한 내일 아침까지도 일부 군사를 여기 남기고 또 포를 쏘게 하여 왜적이 우리가 이쪽에서 공격하리라 예상하게 합시다. 그러는 한편으로 우리 본군은 서쪽으로 산을 돌아 왜적의 본진을 치면 어찌 적이 버텨내겠습니까?”
– 15 –
“적이 제법 조심스럽군.”
노부나가는 신립이 승세를 몰아 그대로 진격해오기를 바랐다. 그랬으면 야산과 언덕 뒤쪽 사면에 매복시킨 병력을 활용해서 그대로 혼전으로 몰 수 있었다. 조선 기병들이 아무리 세다 해도 정면으로 붙을 때 이야기지, 언덕 뒤편에 숨은 병사들까지 내다볼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조선군은 승세를 몰아 언덕을 바로 공격하는 대신 화포를 끌고 와서 포탄만 퍼부었다. 작은 화포였지만 날아온 포탄이 터지면서 파편과 불길을 막 흩뿌리는 바람에 언덕 방어를 맡은 초소카베군이 꽤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포기하고 물러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포격을 맞으면서 조선군을 막는 초소카베군 진영에서는 사자를 보내 포격이 위협적이기는 해도 견딜 만하다는 보고를 했다.
“저희 주군께서는 언덕 뒤쪽 사면으로 병력을 물러나게 하여 포탄을 피하고, 적이 달려들면 즉시 반격하겠다 하셨습니다.”
“알겠다, 물러가라.”
초소카베군은 지금 밀양강 양편에 진을 치고서 조선군의 추가 진출을 막고 있다. 강 동쪽에 있는 좁은 길목은 아들인 노부치카가, 서쪽에 있는 넓은 평지는 부친인 모토치카가 맡았다. 전령무사를 돌려보낸 노부나가가 측근 장수들을 불렀다.
“이상하군요. 분명 신립의 성격이라면 닥치고 전력으로 돌격해서 언덕을 넘으려들 텐데….”
임해군이 머뭇거렸다. 자기 예측이 또 빗나가자 체면을 구겼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전장에서 장수가 내리는 판단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강을 따라 계속 공격하기 무리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
신립이 일본군 병력 규모를 정확히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선발대인 호소카와군 4천을 이겼으니, 적어도 그보다는 많은 병력이 삼랑진 일대에 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적에게 붙잡힌 호소카와군 포로들이 이쪽 규모를 불었을 수도 있다.
“서쪽 길이 동쪽보다는 넓다고 하지만, 그래도 강가 평지가 별로 넓지 않다. 당연히 저들이 타다오키를 상대로 한 것처럼 우리도 두꺼운 방어진을 펴고 적을 영격할 수 있는바, 신립이란 자가 바보천치가 아니라면 이를 피하고자 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조선 기병도 무적은 아니다. 임해군이 이미 거들먹거리며 떠벌렸고, 호소카와군을 후속해서 전진하던 중 패전을 수습한 초소카베군이 적 선두를 위협해 쫓아냄으로써 확실히 입증했다. 방책과 장창진, 철포를 조합하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다들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이미 다케다 가의 기마대를 똑같은 방법으로 쳐부수지 않았느냐? 시타라가하라에서의 싸움을 벌써 잊지는 않았겠지.”
부하들이 긴장하고 있음을 눈치챘는지 노부나가가 옛일을 거론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시타라가하라는 나가시노 성 앞에 펼쳐진 평원으로, 정확히 15년 전에 노부나가가 다케다가 가지고 있던 무적전설을 격파한 곳이었다. 즉, ‘나가시노 전투’가 진짜로 벌어진 곳이다.
“물론입니다, 주군.”
“잊지 않았다면 됐다. 지금 상황을 보면, 적은 정면으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데도 치지 않았다. 오늘은 포격만 하고 내일 공격할 수도 있지만, 다른 길로 돌아서 우리를 공격하려고 궁리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더구나 저들은 이 일대 지리를 우리보다 훨씬 잘 알지 않나.”
노부나가가 막대기를 들더니 주변 지형을 간략하게 땅바닥에 그렸다. 이곳 삼랑진에 도착한 지 이제 이틀, 이 정도는 파악해 놓았다.
“지금 영남대로를 따라 올라오는 우리 병력은 이쪽, 지금 본영을 둔 낙동강에 접한 평지에 모두 집결하고 있다. 급히 행군하느라 지친 병사들이 갑자기 나타난 조선군에게 기습이라도 당한다면, 자칫 꽤 큰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겠지.”
노부나가가 막대기로 원을 그리며 땅바닥을 긁었다.
“조선군은 분명히 이 북쪽에 있는 산줄기 사이 어디선가에서 나타난다. 어디가 적이 나타날 출구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로서는 적이 나오는 광경을 살피는 게 최선이다.”
임해군을 따르는 부역자 중에도 이 일대 지리를 상세하게 아는 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쪽 편에서 준비할 대비책은 하나다.
“여기, 본영 옆 평지 한가운데에 꽤 높이 솟은 언덕이 있다. 이 언덕 위에 감시탑과 보루를 쌓아라. 기병이 돌격하면 저지할 목책과 함정도 설치해라. 기한은 오늘 밤이다.”
“일야성입니까, 주군? 시타라가하라 평원에서처럼?”
“그렇다. 그리고 호세 놈이 이끄는 남만포를 죄다 보루 위에 배치하겠다.”
시타라가하라에서 다케다군을 막아낸 오다군의 결정적인 전술이 바로 일야성(一夜城)이었다. 오르막 지형에 울타리와 해자를 설치해 평지에서의 야전을 공성전으로 만들어버리고, 적군이 고착되면 위쪽에서 사격을 퍼붓는다. 다케다군은 여기에 공세를 가하다 괴멸당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신립군이 5만이라고 하는데, 이게 오직 병사로만 5만 명이라고 한다. 우리도 병사가 5만이지만 우리 병사들은 이곳 본영과 작은 강 좌우를 지나는 통로에 흩어져 있으니 적이 본영으로 바로 쳐들어오면 우리 병사가 부족해진다.”
“맞습니다, 주군.”
여기서 노부나가가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
“전군에 일러서 일꾼들도 모두 내일 싸움에 참여하라고 명하라. 공을 세우는 자는 그 공의 크기에 따라 금은으로 포상을 내리거나 신분을 무사로 올려주겠다.”
힘센 스모꾼에게도 무사 신분을 내린 노부나가다. 전공만 세운다면 일꾼인들 대수인가.
5만 명이나 되는 일꾼에게 지급할 갑옷은 없지만, 창은 여분이 좀 있다. 그리고 일꾼들도 다들 칼 두 자루 정도는 차고 있으니 그대로 가진 무기만으로 뛰어들어도 된다. 신분이 오를 기회라고 하면 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알겠습니다. 다른 지시는 없으신지요.”
측근인 호리 히데마사의 질문을 받은 노부나가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하나 더 있다. 타치바나군은 지금 즉시, 해가 지기 전에 가벼운 차림으로 나가서 서쪽으로 가라. 적이 아직 우리 시야에 들어오기 전에 1리(4km) 서쪽으로 가서 이 들판 서쪽에 있는 산을 점령하라. 적이 어느 방향에서 올지 모르니 전초 역할을 맡아 서쪽 방면을 경계하라.”
들판 북쪽은 죄다 산이니 어디쯤 병력을 두면 좋을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서쪽은 경계가 확실해서 그 산 하나만 점령하면 서쪽을 확실히 지킬 수 있다. 그 산 남쪽은 강물이니까.
“만약 적이 북에서 나타나 우리 보루를 공격하면 그대는 적을 뒤에서 공격하도록.”
“알겠습니다, 노부나가 님.”
몇 가지 사소한 논의가 더 오갔다. 보루 공사는 좀 더 일찍 도착해서 조금이라도 쉰 부대 병사들이 맡기로 했고, 늦게 도착한 병사들은 잠시라도 눈을 붙였다. 긴장감이 진영 전체를 맴돌았다.
– 16 –
언덕에 있는 왜군을 기만하기 위해 보병 2천 명과 포 12문이 밀양강 서편 평야에 남았다. 병력에 비하면 포가 좀 많이 남았지만, 너무 적은 포를 가지고는 왜군을 기만하기 어려울 듯했다. 적을 현혹하려면 포도 넉넉히 두고, 병력도 많은 척 꾸며야 하지 않겠는가.
“행군을 서둘러라! 해가 뜨기 전에 낙동강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신립은 밀양 군관을 길잡이로 삼아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새벽길을 나서기 전에 어제 잡은 포로들을 심문해 보니, 조선에 넘어온 왜군 전체 병력은 10만을 훌쩍 넘고 삼랑진까지 올라온 병력만 이미 4만은 된다고 했다. 더 많아지기 전에 어서 쳐야 했다.
왜적의 수가 늘어났다면 분명히 어젯밤보다 군영도 더 커졌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왜적이 어제 있던 밀양강변 뿐 아니라 낙동강변 평지까지 넓게 진을 치고 있으리라는 의미였다.
어제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종일 포격을 가했으니, 적은 아군이 새벽을 기해 밀양강을 따라 공세를 펼칠 의도로 자기들을 계속 공격했다고 생각하리라. 하지만 그 포격은 의병(疑兵)이고 기만이다. 산길 사이를 빠져나가는 이 대군세야말로 진짜 왜적을 쓸어낼 주력이다.
이쪽에 진을 친 적은 방심하고 잠에 빠져 있으리라. 아직 해가 제대로 뜨기도 전에 산길을 빠져나간 오위군이 그대로 달려들며 말발굽으로 적을 짓이기면 밀양강 서안에 있는 왜병들은 모조리 패멸하고 말 것이다.
“빠져나왔습니다!”
낮은 산 사이를 지나는 십 리 남짓한 길이라 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넓고 편한 길은 아니었다. 대군이 다 지나가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주변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신립이 휘하 병력이 모두 들판에 정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길안내를 맡은 밀양 군관이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군관이 두 눈이 튀어나올 듯한 얼굴을 하고 입을 떡 벌린 채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자네, 왜 그러나?”
“대, 대, 대감! 본래 아무것도 없었던 언덕 위에 탑이 서 있사옵니다!”
“뭐라고?”
신립이 급히 안장에 매달아둔 천리경을 들었다. 정말로 눈앞, 벌판 한가운데 있는 언덕에 큼직한 탑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탑 위에는 왜병들이 올라가서, 이쪽을 보고 아래쪽에 있는 자기 패거리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