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0
1부 0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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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혼내주려면 가장 필요한 게 배다. 헌데 지금 조선 수군이 보유한 주력함선은 판옥선이 아니다. 나를 비롯해 현대 한국인 대부분이 조선시대 주력함이라고 알고 있는 판옥선은 16세기 중반에야 만들어졌다.
지금 조선 해군이 가진 주력 전투함은 맹선(猛船)이라고 하는데, 승선 인원에 따라 대맹선(80명), 중맹선(60명), 소맹선(30명)으로 나뉜다. 아직은 이것도 쓸 만하지만…아무래도 나중을 생각하면 판옥선이 필요하다.
맹선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이 배가 전문 전투함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맹선은 본래 조운선을 개조한 물건이다. 즉, 현대 육군으로 비유하자면 보병전투차를 만드는 대신 장갑트럭을 만들어서 보병전투와 물자운반에 다 쓰는 거다! 이래서야 미진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왜구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그 근거지를 두들겨야 한다. 전국시대가 끝나 일본이 안정을 찾고 스스로 해적을 단속한다면,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좋다. 일본 정부나 그 위임을 받은 세력과 협정을 맺고 두 나라 사이 관계를 부드럽게 발전시켜 나가는 결말도 가능하다.
사실 왜구 대책으로 일본을 두들겨 부수는 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바다 건너로 원정을 나가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드니까 말이다. 게다가 일본 인구는 조선보다 많고, 군대는 더 많다. 게다가 마을 간에도 싸움이 일상이라 일반인도 전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하지만 일본이 ‘통일’되고, 안정을 찾으려면 아직도 90년은 더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 통일을 이루는 장본인이 문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일본 통일까지야 뭐 괜찮다고 쳐도, 그 후폭풍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다고!
이미 언급했듯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통일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표가 달성될 수 없다면, 차선책은 하나뿐이다. 일본이 분열된 현 상황을 이용해 규슈 서부를 우리 영향권에 넣고, 나머지는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게 방치한다.
일본을 몽땅 정복해서 통치한다는 계획도 세워볼 법 하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다. 설사 전투마다 승리해서 패권을 쥔다고 해도, 안정적으로 통치할 행정력이 부족하다. 항복한 일본 영주에게 통치권을 계속 인정하면서 봉건제를 유지해야 할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정복인가.
직접 다스리지도 못한다면 정복의 의미가 없다. 어차피 일본은 앞으로도 90년 동안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을 테니, 우리 영향력은 천천히 넓혀 나가도 된다. 우호적인 영주에게 무기를 공급한다거나, 방법은 많다.
하지만 영향력을 제대로 뻗치려면 일단 한 번은 쳐야 한다. 그리고 그러자면 제대로 된 전투함, 정말 싸움에만 쓸 배가 필요한 거고. 바로 판옥선이 말이다.
“전하, 이런 대형선을 만들자면 비용이 많이 들 것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큰 배는 실용성이 없습니다.”
역시 조정에서는 반대하는 소리부터 나왔다. 대사간 이균이 가장 먼저 ‘필요 없는’ 건함을 반대하고 나섰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대맹선도 둔해서 적선을 제대로 잡지 못합니다. 헌데 대맹선보다 더 큰 전선을 만든다면 움직임이 더 둔하여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새 전선을 만든다면 차라리 그 목재로 가볍고 빠른 배를 여러 척 만들어 적을 잡기 좋게 함이 가합니다.”
“대사간은 왜적들이 늘 소선으로 돌아다니며 약탈하리라고 자신하는가? 적들이 장차 더 큰 배를 타고 대규모로 몰려와 약탈을 하면, 작은 배만으로 어찌 저들을 막는가? 큰 배에 화포를 실어야만 적들을 바다 위에서 진멸할 수 있다!”
해군력 경쟁은 결국 경제력이 허용하는 한 거함거포로 갈 수밖에 없다. 더 큰 배는 더 많은 무기와 승무원을 태우고 더 강한 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수준이 동등하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조일간 수군력 차이도 비슷한 양상으로 갔다. 내 기억대로라면, 16세기 중반에 이미 왜구가 선체 위에 누각을 세운 대형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조선은 기존에 보유하던 맹선이 적을 압도하지 못하게 되자 그 대체재로 판옥선을 배치했고, 덕택에 임진왜란에서 승리했다.
일본 원정을 가려는 내 장기적인 계획을 감안하면 더더욱 판옥선이 필요하다. 일본 해적선들은 조선 수군을 피해 도망갈 수 있을지 몰라도 성이나 도시는 도망갈 수 없으니까 말이다. 항구를 봉쇄하고 포격을 퍼붓거나 병력을 양륙하면 일본 수군이 알아서 요격에 나설 것이다.
일단 적이 달려들게 만들기만 하면 판옥선의 우위는 절대적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들이 판옥선을 ‘바다의 성’이라고 불렀다고 했다던가? 중세 이전 해전에서 선체 크기와 갑판 높이 차이에서 오는 우위는 엄청나다. 일본군은 바다 위에서 말 그대로 공성전을 치러야 한다.
게다가 아직까지 일본에는 조총을 비롯한 화약병기가 없다! 물론 조선이 보유한 화약무기도 임진왜란 수준은 아니지만, 그거야 방향성을 잡고 개량하면 된다. 어차피 당장 원정을 시작할 것도 아니니까 시간은 넉넉하다.
당연히 판옥선이 완벽한 배는 아니다. 속도가 느리고, 항해능력도 떨어지고, 승선인원도 너무 많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신대륙으로 탐사를 나가거나 대양 한가운데서 해전을 벌이려는 게 아니니까. 일본은 가깝다. 항해성능은 일본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고 언제 일어날지도 알 수 없는 일을 대비하느라 지금 당장 백성들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전국에 있는 병선이 수백 척인데, 이들을 모두 보다 큰 배로 대체하고자 하면 그 노역을 백성들이 어찌 다 감당하겠습니까?”
이균은 목은 이색의 증손자로, 성종 때 출사한 진짜배기 사림 출신이다. 그래도 정3품인 병조참지(참판, 참의에 이은 병조 서열 4위)까지 올라가본 사람이라 군사 문제에 아예 문외한은 아니었지만, 본래 성향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과인은 전조인 고려조 시절 원나라 때문에 강제로 왜국을 원정했을 때 급하게 군선을 조달하느라 민폐가 얼마나 혹심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어찌 그런 무리한 계획을 세우겠는가? 새 전선을 짓는 것은 세월을 들여서 천천히 할 것이다.”
아직 신하들에게 일본을 치겠다는 뜻을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일본 원정을 하면서 연안을 방어할 전력까지 남기려면 적어도 판옥선이 2백 척은 필요할 거다. 그만한 배를 어찌 한 해 동안에 만들겠는가. 벌목은 어떻게 한다고 쳐도 조선공을 확보하기도 힘들 거다.
“과인은 도적들을 막고 사직을 평안히 하고자 새 군선을 지으려 한다! 물론 백성들에게는 당장의 노역이 힘겹겠으나, 장차 왜적들이 몰려와 인명을 살상하고 재물을 약탈하면 그때는 어찌 막으려는가! 그런 논지라면, 가뭄이 언제 올지 모르니 보도 다 허물어야 하는가!”
“신은 그렇게까지 주장하려던 것은 아니었사옵니다.”
내가 벌컥 화를 내자 이균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아 진짜 가만히 있는 날 폭군 만들지 말란 말이야!
그래도 논전 끝에 물리칠 수 있었던 이균은 나은 편이었다. 홍문관 부제학 최진은 아주 장문의 상소를 써서 제출했다. 읽다가 지쳐서 빡칠 기운도 모자랄 지경이었는데, 대충 요약하면 이랬다.
?큰 배를 만들어 봐야 왜구가 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작년부터 겨울에 천둥이 치고 여름에 우박이 내리는 등 하늘이 흉조를 보내고 있다. 이런 재변에 더해서 야인과 왜적이 날뛰는 것도 다 임금이 부덕한 탓이니 근신해야 한다.
?흉년으로 힘든 백성들에게 배 짓는 노역을 시키고 전장에까지 내보냄은 말도 안 된다.
?지금 임금을 충동질하는 자들은 강한 군선만 있으면 왜적이 침노하지 못할 것처럼 교언을 속삭이는데, 큰 비용을 들여 새 군선을 만들고서 왜적을 잡지 못하면 비웃음만 살 것이다.
?원래 제왕의 도리는 야만인들이 귀부한다 해서 즐거울 것이 없고 배반한다 해서 분노할 것이 없이 모두 포용해야 한다. 지금 분하다 해서 군비를 강화할 필요가 없다.
?전쟁에 열중하면 결국 국력을 소모하고 나라가 망한다. 우리 조선은 아직 국력을 쌓는 중이고, 임금은 젊으니 살얼음을 밟듯이 근신해야 하는데 군비라니 말도 안 된다.
이건 무슨 구약성서적인 도덕관인가? 임금이 부덕하면 외적이 쳐들어온다고? 한반도는 야훼가 지배하는 세력권인가? 하느님이 보시기에 ‘히브리인들’이 적절치 않은 행동을 할 때마다 이민족의 손에 자기 백성들을 넘기게?
사림들이 뭐도 임금 탓이네 뭐도 임금 탓이네 하는 걸 처음 본 건 아니다. 하지만 작년에 무오사화에 배목인 일당 건까지 두 번이나 역모가 터지고는 사림들도 좀 입을 다물었었다. 그래서 이 상소문을 보는 순간 무오사화가 강도가 약했던 건가 정말 진심으로 생각했다.
생각 같아서야 다 쳐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도 안 든 게 아니지만,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다. 진짜 연산군이나 그렇게 했으니까. 이를 악물고 한 마디 한 마디 생각하며 내뱉었다.
“그대들은 과인이 기본적인 이치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군비는 어디까지나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백성들을 가능한 해치지 않으면서 확충할 예정이다. 그러고 보니 부제학은 지난번 야인 토벌도 거의 같은 논리로 반대하지 않았던가?”
“그러합니다.”
옆에 서 있던 도승지 정미수가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혀 대답했다. 이를 너무 악물었는지 또 치통이 왔다. 턱이 찌르는 듯이 쑤셨다.
“이 상소에서 부제학은 한 무제를 사례로 들어 과인을 공박하였는데, 한 무제는 나라 경계를 침범하지 않은 이국에까지 원정을 벌여 나라의 부를 소진하였다. 허나 과인이 그만큼 큰 과욕을 부렸더냐? 단지 쳐들어오는 도적들을 막기 위해 약간의 군비를 키우려 함이다!”
아 물론 장차에는 영토도 넓힐 심산이긴 하지. 하지만 그 속셈을 미리부터 밝힐 필요는 없잖아. 지금 군비증강 명분으로 방어 목적을 너무 강조하면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긴 할 텐데, 그 고민은 그때 가서 하자.
“새 군선은 노 젓는 격군을 백 명은 둘 만큼 선체가 커야 하고, 두껍고 튼튼한 나무로 만들어 바위에 부딪히거나 적선을 충파(衝破, 부딪쳐서 깨트림)해도 배가 상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해안에서 쓸 것이니 중국이나 왜국 배처럼 바닥을 뾰족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원양항해용 배는 나중에 필요해지면 그때 만들면 된다. 어차피 지금 조선에서 구할 수 있는 조선기술자들은 원양항해가 가능한 첨저형 배 따위는 만들어 본 적도 없을 테고, 범선으로 장거리 항해를 할 수 있는 선원도 없을 테니까. 그런 건 다 나중에 외국에서 구하면 된다.
“상장갑판에는 장수가 올라가 지휘할 수 있는 장대를 두고, 활 쏘는 사부와 화포 및 포수를 넉넉히 두어 적을 원거리에서 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여기에는 사방에 방패판을 든든하게 둘러 수졸들이 적이 쏘는 화살과 돌을 피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내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은 확연했다. 딱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한대로만 하자는 거다. 원거리에서는 총통과 활을 쏜다. 가까이 오면 질려포통이나 진천뢰로 적선을 박살내거나 화공을 건다. 그러고도 기어오르는 왜적은 창이나 장병겸(배 측면에 거는 큰 낫)으로 훑어버린다.
그 정도면 일본 수군은 상대도 안 된다. 관건은 개떼 러시에 당하지 않도록 충분한 숫자를 확보하는 것. 아무리 판옥선이라도 왜선이 서른 척, 마흔 척이 몰려오는데 혼자 싸우지는 못할 터이다. 모든 수군 장수들이 이순신은 아니니까.
“새 전선은 판옥선이라 명한다. 경기수영에 건조 책임을 맡기니, 그 구조를 명확히 하여 만들라. 다른 수영에서도 그 구조에 대한 문서만 받아서 똑같은 배를 건조할 수 있도록 그 규격을 철저히 맞추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성능 상 스펙은 제시했다. 그 요건에 맞춰서 현품을 만들어내는 건 이제 경기수영 예하 배목수들에게 달렸다. 개념의 문제지 기술적으로 어려운 건 아닐 테니까, 완성품이 나오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으리라.
“한 척이다. 지금 과인이 건조하라 명하는 배는 겨우 단 한 척이다! 이 배는 시험으로 만드는 것이고, 새 전선이 훌륭하게 만들어졌다고 판단되면 그때 가서 재정 형편을 보아 숫자를 늘려 나갈 것이다. 그러니 경들은 올해 농사가 흉년이니 어쩌니 하는 말은 하지 말라!”
“예, 전하.”
정확히 언제인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실제 판옥선을 건조할 때도 조정에서 엄청난 논쟁이 있었다고 들었다. 지금 여기에서처럼 대함파와 소함파가 갈라져 서로 자신이 옳다고 논전을 벌였다고 말이다. 지금도 아마 내가 애매한 태도로 나갔으면 마찬가지였을 게다.
어쨌든 논쟁은 끝났다. 이제 내년부터는 판옥선 양산이다! 흉년만 들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