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01
2부 279화
– 1 –
이틀을 잠을 자지 못했다. 위가 쥐어짜는 듯이 아팠다. 물을 마실 수가 없고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압박을 견디다 못해서 손을 댄 술조차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았다. 뭔가 억지로 집어넣으면 곧바로 토해버렸다. 비변사에도 온종일 핼쑥한 얼굴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상궁과 내관들이 아무리 내게 음식을 권해도 소용이 없자 중전과 상희가 나섰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증상을 살핀 상희가 내 귓가에 대고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멀쩡하다가 이러는 거 보면 급성 위경련인 것 같아. 분명 스트레스 탓이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쉬는 수밖에 없네.”
침소에 들어와 자리에 누우면 상희가 뜨거운 물수건으로 환부에 온찜질을 해주었다. 통증은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식욕은 없었다. 그나마 통증이 덜해지면서 깜박깜박 토막잠을 잘 수는 있었다. 그래도 편하게 자는 잠은 절대로 아니었다.
두 눈을 감기만 하면 유성룡이 보낸 장계 속 참상이 생각났다. 고지 위로 올라가는 비탈을 덮은 사람과 말의 사체, 왜군에게 포위되어 분투하는 김여물과 3천 결사대,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전군의 활로를 뚫은 사나다 노부시게 등등 닷새 전 그날에 있었던 사건들이.
유성룡이 올린 장계에는 신립이 그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명백하게 옮겨져 있었다. 왜군이 삼랑진까지 온 시점에서 꼭 지켜야 하는 다음 요지는 대구였고, 그 상황에서 포위를 피해 후퇴하면 적은 오위군을 산속에 봉쇄한 채 대구로 직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금 대구가 강력하게 요새화된 건 나도 알고 있다. 대구부사 조경은 대구성을 어떻게 고쳐 강화했는지 상세한 도면까지 그려 보내면서 보고했다.
강화한 건 대구성 본성뿐이 아니다. 대구성과 순치(脣齒)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달성, 그리고 대구 분지를 둘러싼 산줄기 위에 있는 산성 5개소까지 철옹성으로 만들었다. 대구 이북 방면 주변 고을에서 방어병력도 지원받고 있다.
문제는 신립이 대구성을 직접 자기 눈으로 보고서도 그 방어력을 신뢰하지 못한 듯하다는 거다. 성이야 어쨌건, 노부나가가 거느린 십만 대군을 막아내기에는 대구에 있는 우리 병력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 걸까? 자기가 서쪽으로 돌아서 대구에 도착할 때까지 버티지 못할 만큼?
신립이 동래성 함락 소식을 듣고서 바로 대구에서 남하한 거야 이해할 수 있다. 영남대로가 그동안 많이 확장되어 잔도가 더 이상 잔도가 아니라고 하지만, 관문을 지키기는 별로 어렵지 않으니까. 그런데 목적지인 그 작원관이 이미 떨어졌으면, 그만 가야지! 왜 결전을 걸어?!
유성룡에 따르면 신립이 내세운 명분은 둘이다. 장마가 지면 기병이 움직이기 어렵다는 것, 왜군이 강을 타고 대구로 기동하면 막을 수단이 없다는 것. 내가 보기에는 다 어떻게든 자기 손으로 왜군을 박살 내고 공적을 독점하기 위해 견강부회로 갖다 붙인 논리로밖에 안 보였다.
장마가 오면 오위군이 제대로 활동할 수 없다고? 그럼 왜군은 활동하기 쉬워지나? 왜군이 개구리야? 비 내리는 계절이 왔다고 좋아하게?
비가 내리면 왜군도 행군에 지장을 받는다. 어서 전과를 확대해야 하는 공격측 입장에서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 자체가 손해다. 게다가 군량 수송도 어렵다. 노부나가가 준비한 군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약탈로 사는 하루살이들은 아닐 게 아닌가.
왜군이 낙동강을 타고 대구로 올라갈까 봐 걱정했다는 논리도 그렇다. 그건 결국 곽재우를 비롯한 속오군 영남 삼대장이 낙동강 수로를 차단할 실력이 있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소리고, 우리 수군이 바다에서 낙동강 하구를 봉쇄할 수 있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신립은 왜병 수천 명을 태운 선단이 대구로 직행할지도 모른다고 했다지만, 이순신이 강을 막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낙동강 하구는 지금도 굳건하게 막혀 있다.
부산포 공격은 몇 차례 했어도 부산과 대마도를 잇는 항로는 아직 완전히 차단하지 못했다. 판옥선이 기지를 떠나서 움직일 수 있는 거리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경상우수군은 낙동강 하구는 확실히 봉쇄하고 있다. 왜선이 낙동강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어둠을 틈타 해변에 붙어 한두 척씩 들어가는 정도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함대를 이룰 만큼 많은 왜선이 낙동강으로 들어가는 건 말도 안 된다. 결국, 혼자 전공을 독점하고픈 신립이 내세운 핑계라고 생각한다.
내가 신립의 자리에 있었다면 유성룡이 제안했듯이 밀양성을 지켰을 거다. 대구성에서 오는 보급을 받으면서 영남대로를 막고 방어전을 치르며 버텨야 했다. 원군이, 도감군과 북방군이 남쪽으로 내려올 때까지.
그러면 노부나가는 신립군을 막기 위해서라도 주력을 삼랑진 일대에 유지할 수밖에 없다. 신립을 놓아두고 대구를 치러 간다고 서쪽으로 가버리면, 신립이 당장에 남진해서 동래성을 탈환하고 왜군을 우리 내륙에 고립시킬 게 빤하지 않은가? 전라도에 있는 히데요시처럼?
신립은 싸우지 않고 그저 밀양에 버티고 앉아만 있어도 그 존재감으로 왜군 주력이 창원-밀양 선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동래성이 이미 함락당한 시점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었건만, 어서 동래성을 구하라고만 명하고 플랜B를 생각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유성룡은 자기가 신립을 억제하지 못한 죄를 벌해달라고 청했지만, 이건 유성룡에게 벌을 줄 일이 아니다. 신립에게 무슨 불평을 듣더라도, 자기네들 우상을 떠나보낸 오위군이 사기가 떨어지더라도, 병조 행정을 말아먹어도 좋으니 병조판서에 앉혀서라도 교체했어야 했다.
나는 그 잠깐의 트러블이 두려워서 신립을 도총관으로 계속 놓아두었고 순전히 내 잘못으로 신립도 죽고 오위도 잃었다. 삼랑진 앞 들판에서 신립과 함께 사라진 오위군 3만 명을 생각할 때마다, 머릿속으로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고 죽고만 싶었다.
“밀양 인근 고을에 명을 내려 오위 군사들을 얼마나 수습했는지 살펴 보고하게 하라. 당장 싸울 수 있는 이는 마땅히 모아서 대구로 보내고, 심신이 다쳐 싸울 수 없는 자는 각 고을이 맡아서 보살피게 하라.”
이 정도가 오위 군사들에게 당장 해줄 수 있는 한계다. 비변사 신하들은 파리한 내 안색을 보고 안절부절못했지만 차마 내게 군무에서 손을 놓고 들어가서 쉬라고 하지는 못했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평소와 같이 나를 대하는 사람은 이항복 하나였다.
“전하, 지금 영호남 양도를 범한 왜적이 호서까지 넘보고 있으니 실로 상황이 심각합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충청병사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막게 하라. 많은 수는 아니지 않으냐.”
전주성을 공격하는 왜군은 아무래도 양식이 딸리는지 주변 지역으로 병사를 내보내 약탈을 시작했다. 전주 인근 마을들은 이미 수성을 시작하기 전에 이일이 좁쌀 한 톨까지 싹 치워둔 탓에, 식량을 구하려면 적어도 오십 리 이상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전주 인근에 있는 곡창지대로 익산, 김제 같은 커다란 고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일은 여기서도 백성과 물자를 산성으로 옮기게 하고 산으로 옮기지 못한 곡식은 몽땅 태워버렸다. 정군을 전주성으로 집중시켜서 지킬 인원이 부족한 읍성은 그냥 빈 채로 방치했다.
내년 식량? 당장 왜적이 식량을 빼앗아가려고 오는데, 그놈들 입에 넣어줄 쌀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년에 굶건 어쨌건, 왜적을 당장 굶기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식량을 수집하러 다니는 왜병들이 부안, 군산, 심지어 논산 접경까지 나타났다. 왜군 주력은 전주성을 떠날 수가 없으니, 이 식량수집대는 기껏해야 수백 단위 소수였다. 그 정도라도 속오군으로 상대하기는 까다롭다.
“충청도 군사 3천을 논산으로 보내 적이 경계를 넘지 못하게 하라 이르라. 지금 전라병사 이일이 전주에서 적을 잘 잡아두고 있으니, 막기만 해도 왜적이 곧 물러나리라.”
이일은 전투상황을 아예 일일보고로 써서 보내고 있다. 왜군은 전주성을 포위하려 했지만, 지형 때문에 남쪽과 서쪽밖에 둘러싸지 못했다. 나머지 방향은 말 그대로 그냥 열렸다.
“전주성 방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들이 비승군이로다. 애초에 적을 내려다보며 거동을 철저히 살피니, 어찌 적이 술책을 세우겠느냐? 이일에게 명을 내려, 비승군을 운용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사안을 정리하여 대구에 전하도록 하라. 대구도 그 요령이 곧 필요하리라.”
비승군의 열기구 덕분에, 전주성은 주간에는 제대로 된 공격을 단 두 번밖에 받지 않았다. 그나마 처음에는 왜군이 기구가 뭔지도 모르고서 대놓고 쳐들어오다가 처발렸고, 두 번째는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해 기구가 뜨지 못하는 날을 노렸으나 역시 실패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비가 오고 바람이 세니, 양군 모두 활과 화기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오직 창칼과 맨주먹만으로 돌을 던지며 싸워야 했으니 왜군이 무슨 짓을 해도 견고한 성벽을 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바보도 아닌 히데요시가 오죽 몰렸으면 그런 시도를 했을까 싶다.
적군이 비승군이 뜨지 못하는 밤을 틈타 야습을 가해오기도 했지만 역시 별 효과는 없었다. 적이 성에 접근하려면 일단 전주천을 건너야 하니 물소리가 나는 데다, 밤이라고 해도 정말로 칠흑 같은 밤은 아닌 까닭이다. 그렇게 어두우면 왜군인들 어찌 성을 보고 공격하겠는가?
달빛만 있으면 왜적을 향해 총포를 쏘고 화살을 날리며 진천뢰를 던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왜군은 두 차례 야습에서 모두 시체 수백 구만 남기고 물러갔다.
전주성 방어는 거의 이일의 공적이 되겠지만, 선거이도 자기 이름으로 공적을 쌓고 있었다. 자기 휘하에 있는 오도리 기병들을 끌고 나가, 식량을 수집하러 다니는 왜군 별동대를 짓밟고 다닌 거다. 세 차례 전투를 치러 왜적 4백여 명을 베고, 우리 백성 53명을 구출했다고 했다.
전주성 방어는 이제 마음 푹 놓고 히데요시가 후퇴하기만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전주 외에 다른 전라도, 특히 전라남도 쪽에서는 헬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광주와 나주에 있던 적이 일제히 동으로 나가는데, 처음 서쪽으로 갈 때와는 달리 노상에 있는 모든 집과 밭을 불태우고 사람을 죽이며 재물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왜군이 처음에 우리 백성에게 점잖게 굴었는데, 이에 속아서 산에서 내려와 집에 있던 자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하아, 저놈들이 조선 백성들을 유인하려고 의도적으로 속인 건 아닐 거다. 실컷 노략질하고 싶은데 노부나가의 금지령 때문에 참고 있다가, 내륙에 고립된 채 지원이 끊기니까 작정하고 본색을 드러낸 거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놈들이 일본에서 쌀을 받아먹게 해줄 수는 없다.
“흥양에 있는 왜 수군은 아직 배가 있느냐?”
“수군이 올린 보고로는 소선 한 척도 없으리라 합니다. 저들은 이제는 가짜포대도 만들지 않고, 해안에 있는 진보를 버리고 흥양읍성 일대에 몰려 있다 합니다.”
흥양에 있는 고니시군은 해안포대로 우리 전선들이 연안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래서 되도록 접근을 삼갔는데, 녹도만호 정운이 이 문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했다.
‘진천뢰와 신기전으로 그렇게 많은 포대를 부쉈는데, 어찌 적에게 아직도 포가 있는가?’
당장에 전라좌수영에서는 탐망선을 띄워 흥양에 척후를 들여보냈다. 그리고 흥양현 일대의 해안과 섬에 최근에 왜적이 만든 포대에 얹어놓은 모든 화포가 대포 형상으로 정교하게 깎은 뒤 검게 칠한 통나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말았다.
이젠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우리 전선들은 왜조총 사정거리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거리에서 흥양 해안을 돌면서 움직이는 물건이 보이기만 하면 총통과 화살을 쏘아댔다. 적은 아예 바닷가에 얼씬도 할 수 없게 되었고, 마음만 먹으면 상륙도 가능하게 됐다.
문제는 전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전라도 육군은 지리멸렬한 상태고, 경상도 육군 역시 제 코가 석 자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 곳 있었다. 흥양 탈환에 쓸만한 정예 육전부대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군영이.
“통제사 이순신이 통제영에 있는 등선군을 전라도로 보내서 흥양 탈환을 돕게 하였습니다. 장계에 적은 날짜대로라면 오늘 싸움이 있을 것이니, 조만간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이항복이 태연한 얼굴로 보고했다. 용상에 등을 기대며 생각했다. 그래, 제발 수군에서 좋은 소식 하나라도 더 올라와라. 나쁜 소식만 겹치다간 내 오장육부부터 결딴이 날 것 같다.
– 2 –
등선군 2천 명이 사도진에 내렸다. 전쟁 첫날 수군의 손으로 진영을 불태운 흔적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왜군은 한 사람도 없었다.
“흥양에 있는 왜놈들은 다 읍성에 몰려 있습니다. 지금 숫자는 3천 명 정도 됩니다.”
전라좌수영에서 붙여준 탐후인은 주변을 살피면서 빠르게 대답했다. 배를 타고 오는 도중에 이미 설명했다는데, 임꺽정은 하나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오늘따라 배가 더 흔들렸는지, 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원래는 더 많았는데, 저희가 계속 숨어들어와 군량을 불태우고 막사에 불을 지르니 조금씩 본도로 빠져나가 지금은 그거밖에 없습니다. 적은 밤이 되면 성벽 위에 파수를 세울 뿐이니, 화살로 파수꾼들을 죽이고 벽을 넘으면 쉽게 도륙할 수 있습니다.”
전라좌수군과 우수군이 밤을 틈타 군사들을 올려보내 습격하기를 반복하자 왜군은 군사를 성안으로 모았다. 성내에는 아직 흥양 백성들이 살고 있어 조선군이 불을 지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리고 두 수영에는 흥양읍성을 제대로 공략할 만한 여유병력도 없었다.
“그래서 지난 며칠 동안은 더 이상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리께서 오셔서 왜적을 흥양에서 몰아낼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뭐, 싸움은 끝나 봐야 아는 거지.”
이제 겨우 정신이 든 임꺽정이 두 팔을 길게 뻗어 기지개를 켰다. 관절이 뚜둑거리고 몸에 걸친 남만갑 이음매에서 쇳소리가 났다. 주변에서 무구를 챙기던 등선군 군사들이 경외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얘들아, 가자!”
모처럼 치르는 육지 싸움이다. 조선인과 왜인이 반씩 섞인 군사들이 흥겨운 기분으로 각자 필요한 장비를 메고 백정 출신 대장의 뒤를 따랐다.
팅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은 어둠 속에서도 정확히 성벽 위에 선 왜군 보초병을 맞혔다. 목에 화살을 맞은 왜병이 주저앉자 저쪽 성벽 위에 있던 왜병이 급히 달려왔다. 그 왜병도 곧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서림은 조용히 노궁에 세 번째 화살을 쟀다.
서림 옆에서 솜씨를 보던 임꺽정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멍청이들은 우리 수군이 야습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하는 모양이군. 자, 이제 넘어간다. 밧줄을 걸어라.”
벽타기라면 일가견이 있는 자들이 먼저 나섰다. 밧줄을 던져 벽에 걸고 사다리도 준비했다. 막 넘어가려는 참에 임꺽정이 군사들에게 주의할 일 한 가지를 환기시켰다.
“저 안에는 우리 백성들도 있다. 그러니 혼동하지 않도록, 왜말을 지껄이는 자들만 골라서 쳐 죽여라! 물론 평소 유감이 있었던 도왜병을 실수로 죽이지는 말고, 또 먼저 공격받았다는 핑계로 조선병을 죽이지도 말고. 알겠나?”
등선군 내에서 출신에 따른 갈등이 아예 없지는 않다. 등선군은 본래 도왜병으로 만들었던 조직이고 조선인 병사들은 신참이다. 하지만 조선 전체를 두고 보면 도왜병들이 객식구이다. 그러다 보니 양자 간에는 미묘한 알력이 있었고, 임꺽정은 이 갈등을 가능한 우습게 넘겼다.
“유감이란 술로 푸는 것이여! 칼로 푸는 것이 아니고! 알겠지? 자, 가자!”
등선군 2천 명이 어둠 속에서 임꺽정을 선두로 해서 흥양읍성 성벽을 넘었다. 성벽 안에서 불길이 오르면서 칼 부딪치는 소리, 비명과 고함이 울리기 시작했다.
– 3 –
“드디어 양주까지 왔구나!”
권율이 양주목 관아 객사에 몸을 눕히면서 쭉 기지개를 켰다. 이 행군을 시작할 때 벼슬은 부여주 관찰사였지만 지금은 도순찰사다. 국난을 맞아서 임지가 바뀌면서 직책도 바뀌었다. 품계는 여전히 정2품 그대로지만 말이다.
다만 경상도 도순찰사인 김성일과 달리 권율은 삼도 도순찰사로 임명을 받았다. 담당구역이 훨씬 더 넓고, 권한도 크다는 이야기다.
“대감, 내일 도착한다고 지금 도성에 파발을 보낼까요?”
방에 들어온 황진이 물었다. 젊지만 권율을 수행해서 북방을 안정시키는 임무를 그동안 잘 수행했으며, 이번 전란이 터지기 직전에는 부여주 우병사를 맡았다. 지금은 권율 휘하에 있는 좌군장으로서 함경도 기병을 이끌고 있다. 황진의 목소리를 들은 권율이 일어나 앉았다.
“보내야지. 지금 전하께서 얼마나 비통해하고 계시겠는가. 드디어 우리 북병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닿으면, 분명 큰 힘을 얻으실 걸세.”
왜적이 쳐들어와 남도를 휩쓸고 있다. 선두로 사태를 진정시키러 내려갔던 오위군과 신립은 적에게 패했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패했는지는 모르지만, 오위가 아예 사라졌다는 소문이 양주까지 퍼져 있었다. 아마 도성에 파발이 들어와 알린 소식이 퍼졌으리라.
“템푸스 푸지트, 시간은 정말 날아가듯이 빠르나니. 평양군이 북방을 휩쓸던 그때가 어제와 같건만, 그 양반이 어찌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단 말인가….”
권율은 사위인 이항복이 직접 번역해서 보내주는 남만서를 탐독하고서부터 대화할 때 종종 라틴어 어구를 섞곤 했다. 황진도 이젠 익숙해져서 별 반응은 하지 않았다.
“왜적을 너무 얕보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평양군이 이끄는 오위군이 얼마나 강병입니까?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북방에서도 툭하면 도감군과 주먹다짐을 벌이는 건 골치였지만.”
“그야 자기들은 양인 정병이고 도감군은 천민 출신 고립병이 태반이니까.”
지금은 도감군에 입대하면 매달 저화 한 섬을 준다고 들었다. 그게 진짜 쌀이라면 웬만한 양인 농가 한 해 수입에 맞먹을 정도다. 요즘은 끼니나 이을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진짜 조선에서 가장 강한 병사는 우리 전통의 북병 아니겠나? 우리가 가서 신장을 잡아 목을 베고, 평양군과 오위군의 원수를 갚도록 하세. 체사르가 번개 같은 속도로 군사를 움직여 숙적 폼페이우스를 잡고 혼란스러운 로마를 안정시켰듯이.”
권율이 또 한 번 로마사를 인용했다. 황진이 피식 웃었다.
* 체사르 :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교회 라틴어식 발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