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08
2부 2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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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로 넘어가는 길을 지키는 조선군은 철저히 방어적인 전술을 구사했다. 돌과 흙을 섞어 담을 쌓고, 그 뒤에 화포를 숨겼다. 산비탈 위에 숨어 있던 복병이 화살을 퍼붓다가 일본군이 쫓아 올라가면 얼른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돌파하기 무척 까다로웠다.
“야습은 시도해 보았는가?”
지휘권을 인수한 사타케 요시시게의 질문을 받은 깃카와 히로이에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시도는 한 차례 했으나, 산길을 잘못 들어갔다가 호랑이를 만나는 바람에 우리 병사 셋을 잃고 혼비백산해서 내려왔습니다. 그 뒤로 야습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랑이?”
조선군이 지키는 토성 뒤쪽으로 우회하려고 산길로 파고든 참이었다. 맨 뒤에서 두 번째로 걷던 병사가 문득 자기 뒤에서 따라오던 동료의 발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멍청한 놈이 말도 없이 오줌이라도 누고 있나 하고 돌아본 순간 시퍼런 불덩어리가 보였다.
다음 순간 대열 뒤쪽에서 울리는 비명에 앞을 가던 병사들도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두 눈에서 불타는 듯한 안광을 토하는 처음 보는 짐승과 그 발밑에 가로놓인 병사의 시체를 보았다. 두 발을 먹잇감 위에 얹어놓은 커다란 얼룩무늬 짐승이 무섭게 울부짖었다.
“호랑이다!”
길 안내를 맡은 부역자였다. 그에게 호랑이에 대해 이미 들은 병사들이 기겁했다.
“쪼, 쫓아내!”
창병들이 일제히 창을 겨눴지만, 끝이 흔들리지 않는 창날은 하나도 없었다. 호랑이는 귀를 뒤로 눕히면서 몸을 낮췄다. 철포병 중 하나가 총을 쏘려고 하자 지휘하던 무사가 저지했다.
“총소리를 내면 기습이 실패한다! 그냥 창으로 찌…악!”
펄쩍 뛰어오른 호랑이가 한 번에 창병들의 대열을 뛰어넘었다. 그리고는 앞발로 지휘무사를 내리찍었고, 목이 꺾인 무사는 그대로 쓰러졌다. 창병 하나가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들었지만, 살짝 움직여 창을 피한 호랑이는 그대로 달려들어 그 병사의 목을 물어뜯었다.
그 뒤로는 어떤 대항도 없었다. 모두 비명을 지르며 창을 팽개치고 도망쳤을 뿐이었다.
“조선군도 아니고 짐승에게 쫓겨나다니, 쯧쯧.”
요시시게가 혀를 찼다. 깃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육로가 안 되면 해로는? 부산에서 들은 바로는 경주 인근에 꽤 좋은 항구가 있다던데.”
“20척이 넘는 조선 수군 전선이 그쪽에 있습니다. 저희가 가진 배는 불과 40척이라, 도저히 덤벼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수군 지휘관 도도 다카토라였다. 몰랐다면 겁쟁이라고 욕했겠지만, 조선 수군이 어떤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이미 전해 들은 요시시게로서는 공격을 강요하기도 곤란했다.
“알겠다. 굳이 위험을 무릅쓸 건 없으니 일단 정면공격을 계속하면서 방법을 찾기로 하지.”
자리에서 일어서는 요시시게에게 도도 다카토라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혹시 하시바군 소식을 들으셨는지요? 제 주군 히데나가 님이 그쪽에 계셔서 말입니다.”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네. 하시바군 전체가 소식이 끊겼다는 것만 알아.”
“그렇습니까….”
와키자카처럼 히데요시의 추천으로 노부나가 밑에 들어왔지만, 야단스러웠던 그와는 반대로 견실한 실적으로 평판을 올린 다카토라다. 그런 그에게도 히데나가는 무척 좋은 주군이었다.
“하시바 공은 충분히 유능하니 패하진 않았을 걸세. 곧 소식이 들어오겠지. 히데나가 공도 분명 무사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감사합니다.”
이로써 첫 군의를 마친 요시시게는 적진을 살피러 나섰다. 경주를 함락한 뒤에 대구 공략을 지원하러 오라는 게 그가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지시였다.
– 22 –
아슬아슬하다. 가까스로 수습하기는 했지만, 적과 맞붙어서 패해 본 병영군은 적과 맞서서 싸우기를 두려워했다. 배설은 이들 병영군은 목책과 토담 뒤에 구축한 방어선을 유지하는 데 주로 투입하고, 적을 공격하는 데는 속오군을 많이 활용했다.
“지금 너희가 지키는 경주는 천년 도읍이다! 비록 지금 크게 중요한 고을은 아니라고 하나, 신라 천 년 동안 도읍이었고 전조 오백 년 동안 동경이라 하였느니라. 이런 유서 깊은 고을을 지켜내지 못하고 저 왜구들에게 넘겨주어야겠느냐?”
수백 년 동안 왜구에 시달렸기로는 울산 및 경주 일대도 남해안 못지않다. 당연히 경상좌도 전역에서 모인 병영군보다 이 지역 백성들만 모아서 조직한 속오군이 적에 대해 증오심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속오군은 지형에 밝다. 아무것도 모르고 오는 적을 숨어 있다가 급습하거나, 샛길로 돌아 적진을 뒤에서 공격하기도 했다. 산 위에서 진천뢰를 굴려서 터뜨리고, 그 굉음에 놀라 아래쪽 공터에서 숙영하던 적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게 만들기도 했다.
“낮에는 병영군이 토성에 의지하면서 왜적을 막고, 밤에는 속오군이 적진을 야습하고 있소. 무슨 연유인지 적이 밤에는 전혀 움직이지 않아, 밤에는 우리 마음대로 횡행하며 불을 지르고 활을 쏘아도 적이 꼼짝도 하지 못하니 매우 편하오.”
“그거, 참 다행한 일이로군요. 혹시 적이 아예 다른 길로 올 기미는 없는지요?”
“행여 언양 쪽 길로 적이 돌아올까 두렵기는 하오. 그래서 그쪽에도 속오군 수백 명을 두어 길을 막고 만약에 왜적이 오면 즉시 알리게 하였소. 적이 그쪽으로도 온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서 새로 방어선을 만들어야겠지요.”
“그래도 부럽습니다. 이 일대 속오군들은 왜적을 맞아 싸우려는 의지가 이토록 넘치건만, 왜 같은 경상좌도 백성들이면서 우리 수졸들은 그리 도망을 쳤는지 원.”
경상좌수영 소속 부호군 이운룡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박홍식이 두모포에서 대기한다면서 전선부터 몽땅 다 빼간 뒤에도 마지막까지 좌수영성을 지키다가 빠져나왔고, 지금은 좌수영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지휘관이기도 했다.
‘아이고, 난 도저히 안 되겠네. 이 부호군, 자네가 좌수영을 지휘하게.’
원래대로라면 경상좌수군을 지휘해야 할 좌수사 박홍식은 왜군을 보고 실컷 떨기만 하다가 드러누워 버렸다. 당연히 그 지휘권을 받아서 행사해야 할 그 밑의 장수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서로 떠넘기려고만 했다. 그 결과 서른도 안 된 이운룡에게 지휘권이 돌아오게 되었다.
“속오군들은 이제 가족과 고장을 지켜야 하지만, 수졸들은 이미 집과 처자가 왜적의 손안에 들어가 버렸으니 그 애달픔이 더 앞섰을 거요. 아직 적이 점령하지 않은 지역 수졸들은 모두 남았잖소. 나도 조금만 여유가 되면 수군을 돕고 싶지만, 지금은 도움을 받기만 하는구려.”
“수졸이 부족하여 배를 세워놓기만 하고, 적이 와도 맞아 치지 못할 지경인데 어찌 도움이 되겠습니까. 우후께서 말리지 않으셨으면, 배는 행여 적에게 빼앗기기 전에 모두 태우고 남은 수졸을 모아 진즉에 육군에 합류했을 겁니다.”
이운룡이 푸념을 하자 배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수군은 있는 편이 낫겠소. 왜선이 한 번 나타나서 우리 전선을 보고 사라지더니 그 뒤로는 다시 안 나타나더라 하지 않았소? 적이 수전으로 덤빌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이쪽에 수군이 아예 없거나 둘 중 하나요. 오늘도 왜선이 온다고 알리는 봉화가 오르지 않았잖소.”
“그럴까요?”
“분명 그대가 수졸을 거느리고 동참하면 적과 싸우기 훨씬 쉬워지겠지요. 그래도 적이 우리 후방에 상륙하지 않게 해주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되오. 화포를 빌려준 것만으로도 고맙소.”
“포수가 없어 어차피 쓰지 못하는 포들입니다. 여기서 경주가 함락되면 전선에 실린 포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운룡이 겸연쩍게 웃었다. 울산병영에서 가져온 것과 경주성에 있는 것만으로는 적을 막을 화포가 부족하니 포를 좀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전선에 있는 자모포와 황자포를 그 자신의 임의로 빌려주었다. 박홍식에게는 나중에 포를 넘겨준 뒤에야 보고했다.
“그 포들 덕분에 토성을 강화할 시간을 벌었소. 이제 고개를 막아선 토벽도 4중으로 세워서 명실상부한 성벽이 되었으니, 더 이상 두껍게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이오. 대구를 공략하려던 적도 난관에 빠졌다 하니, 한시름 놓고 여유를 가져 봅시다.”
배설과 이운룡은 장차 도성에서 원군이 오면, 그리고 통제사가 수군을 몰아서 온다고 하면 어떻게 호응하면 좋을지 논의를 시작했다. 전망은 충분히 희망적이었다.
– 23 –
“나는 팔도 승병을 이끄는 도총섭으로서 그대들과 싸워 물리쳐야 하는 사람이오. 함께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상대가 아니오.”
“압니다. 하지만 저희 주군께서는 대사께서 조선에서 제일가는 고승이라는 소문을 들으시고 한번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비록 두 나라가 전쟁을 시작했다고 하나, 부처의 도는 사해에 뻗치는 것이니 막히는 곳이 없지 않습니까?”
강릉에서 배를 타고 금강산을 방문한 왜군 사자가 서산대사를 찾아와 자기 주군이 간곡하게 만나고 싶어 하니 강릉으로 와 달라고 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왜병에 놀라서 모여든 승려들은 이 상황을 보고 다들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 조선의 불승들은 자비를 추구하지만, 백성과 나라를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창을 들고 나서오. 내가 지금 도총섭으로서 할 일을 수행하게 만들지 말고 그대 주군에게 돌아가시오.”
“그건 왕명으로 불살의 교리를 억누르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불도의 근본은 자비, 자비를 베풀어서 저희 주군을 한번 만나 주십시오.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서산대사는 잠시 눈을 감았다. 승려 한 사람이 급히 다가와 귀에 속삭였다.
“가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관리들 사이에 ‘왜국은 승려의 지위가 높아 불승들이 왜적 편을 들지도 모른다’며 경계하는 소리가 돌고 있다 합니다. 그런데 도총섭께서 왜장의 초대를 받아 적진에 가신다면 어떤 의심을 받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전쟁 중이오. 전쟁 중에 적장을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은 장수가 할 일 중 하나이지. 또한, 가르침을 구하는 이를 만나는 것도 승려로서 해야 할 일 중 하나요.”
천천히 대답한 서산대사가 눈을 떴다. 왜장의 사자는 그동안 계속 그 자리에 선 채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산대사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소. 그대의 주군에게 가봅시다.”
“어서 오시오. 강릉 백성들에게 대사의 인품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소. 직접 가서 만나보고 싶기는 했으나, 이곳은 내게 있어서는 적지요. 함부로 본영을 떠날 수 없었던 까닭에 대사를 이쪽으로 모셨으니 양해를 부탁하오.”
“괜찮소이다.”
강릉 관아는 전에도 가끔 와본 적이 있다. 다만 지금 주인은 사또가 아니라 왜장이었다.
“일반 민가는 빼앗지 못하게 했으나, 적어도 관아는 차지하지 않으면 지금 누가 이 고을을 지배하고 있는지 드러내지 못하겠기에 말이오.”
우에스기 카게카츠라 하는 왜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차가 나왔지만, 서산대사는 나온 찻잔에 손을 잠시 대기만 했을 뿐 마시지는 않았다. 그리고 첫 질문을 했다.
“조선은 명백히 왜국과 다른 나라이건만, 왜 군사를 이끌고 이 먼 곳까지 오셨소?”
“시켜서 왔을 뿐이오.”
대답하는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나는 노부나가 공께 패했고, 조선 원정에 동참하라는 명령을 받았소. 명나라를 치겠다는 계획은 들었으나, 그것은 노부나가 공의 계획일 뿐이오. 나와는 관계가 없소.”
“그대는 왜 강릉을 쳤으며, 움직이지 않는 연유는 무엇이오?”
“강릉을 친 이유는 역시 노부나가 공의 명령 때문이오. 동쪽에서 도성을 공격하려는 척하며 조선군을 강원도에 묶어두라 했소.”
“왜 움직이지 않고 있소?”
“이 전쟁이 무익하며, 무익한 손실을 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오.”
“그대가 마음을 바꾸어 참으로 다행이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소. 일단 명을 받은 이상 최선을 다해 싸울 생각이었소. 강릉성을 함락했을 때만 해도 그랬소.”
우에스기의 목소리도 기복이 없이 평온했다.
“강릉부사는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내게 항복했소. 조건은 백성들을 해치지 말아 달라는 단 한 가지였지. 아무리 백성들이 걱정됐다지만, 싸워보려는 시도도 없이 항복하는 그자를 보고 조선이란 매우 약한 나라라고 가볍게 생각했소.”
“백성을 희생시키지 않으려는 갸륵한 마음이 아니겠소.”
“조선 국왕도 그렇게 생각할지 궁금하군. 아무튼, 관아를 점거하고 나서 내게 필요한 여러 문서를 찾아 모았소. 여기서 도성으로 가는 길, 그리고 도중에 마주할 조선군 규모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오.”
“장수로서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오.”
“그렇소.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조보라 하는 문서를 보았소.”
‘여기서 도성에 가려면 산과 고개를 3백 개는 넘어가야 할뿐더러, 도성에는 전하께서 직접 인솔하시는 수만 정예군이 있습니다.’
‘조선에서 신립군을 빼면 제대로 된 군대가 없다고 하던데.’
‘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이, 이 조보를 보십시오.’
서산대사 역시 조보가 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에스기가 왜 놀라워했는지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지금 조선이 차지한 강역이 얼마나 넓으며 거느린 군사가 얼마나 많고 강한가 하는 모든 내용을 알았소. 귀국 국왕이 최근에 얼마나 많은 적군을 쳐부쉈는지도.”
“놀라셨소?”
“그러하오. 노부나가 공께서 조선이 이런 나라임을 분명히 알고도 원정을 결정하셨는지, 그 여부는 모르겠소. 하지만 내 판단으로는, 조선이 몇 년 전에 북방에 투입했던 만큼의 군대를 동원해서 마음먹고 싸운다면 일본군이 이기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소.”
우에스기의 목소리에 약간의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더구나 이 산속에서 우리 군이 얼마나 분전하든, 전세에는 전혀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는 사실도 알았소. 도성을 향하는 우리 2만 병사를 막아서는데 2천 명도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도 말이지. 그럼 이 싸움에서 내가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겠소.”
서산대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익한 싸움을 피하고 불살을 실천하다니, 실로 부처님의 자비하심을 보이셨소. 허면, 오늘 소승을 보자 하신 이유는 무엇이오?”
“중재를 청하오. 강릉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조선군과 우리 우에스기군 사이에 서로를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협상을 맺고 싶소.”
실로 놀라운 이야기였지만 우에스기는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서산대사 역시 담담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익한 싸움임을 알았다 해서 내 멋대로 귀국할 수는 없소. 그러니 이 전쟁의 승패가 갈릴 때까지라도 여기서 조용히 지내고 싶소. 조선에 귀순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귀국 왕을 개입시킬 필요도 없고, 강릉을 포위하고 있는 강원병사만 합의해 주면 충분하오.”
“그러면 나중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저 병사들과 함께 무사히 내 영지로 돌아가기를 바라오. 조선이 이기면 그대로 조용하게 귀국하게만 해주시오. 그대가 실로 존경받는 고승이라 들었기에 중재를 청하오.”
잠시 생각하던 서산대사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대가 품은 뜻은 참으로 기특하오. 하지만 우리 조선으로서는 그대가 우리를 방심시킨 뒤 급습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믿기 힘드오. 그대가 잡아놓고 있는 여기 강릉 백성들을 석방하면 그대의 진의를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우에스기는 이 제안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강릉은 내가 점령했고, 이곳 주민들은 인질이오. 우리가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때 풀어주고 가겠소. 주민들을 석방했다가 조선군이 안심하고 공격을 개시하면 우리에게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 초래될 거요.”
우에스기의 우려에는 타당성이 있었다. 여기 한 가지 이유가 덧붙여졌다.
“강릉 백성들 역시 지금 충분히 잘 지내고 있소. 굳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을 거요.”
“음…알겠소. 일단 그대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기는 해보리다.”
서산대사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우에스기도 따라 일어섰다.
“가기 전에 고을 안을 돌아다니며 한번 살펴보시오. 내 말이 거짓말인지 알 수 있을 거요.”
“알겠소이다.”